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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법어집] 석인대소(石人大笑) - 돌사람 크게 웃네
법문장소 admin (법문일자 : 1960.05.01 / 조회 : 8605)

 

석인대소(石人大笑) - 돌사람 크게 웃네

 

 

서문

 

‘石人大笑’에 부치다

 

돌사람 큰 웃음소리에
하늘 땅이 꺼지고
三世가 무너졌네.
눈으로 보려면 장님이 되고
귀로 들으려면 귀머거리가 되네.
무쇠뭉치로 된 놈이라야만
같이 춤추고 노래 부르리라
라라리리 리리라라 얼싸좋구나.

眞際 大禪師의 石人大笑는
우리 佛法門中의 金科玉條로
末世의 大光明이요,
오랜 가뭄의 大法雨가 아니겠는가.
石人大笑는
모든 중생의 大菩薩道를 활짝 열도다.
그러하나, 눈과 귀로 보고 들으면
지옥가기 화살 같으리라.
어째서 그러한고?

악!(喝)

푸른 산 허리에
흰 구름 띠를 두르고
산골짝 한 줄기 물은
돌돌 큰 바다로 흘러가네.

癸酉 四月 初旬
崇山 行願 씀

 

차례

 

서문 --- 4

 

제1부 수행(修行)과 전법(傳法) --- 13

 

제2부 상당법어(上堂法語) --- 27

1. 향상일로(向上一路) --- 29
2.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 --- 33
3. 조계(曹溪)의 참소식 --- 38
4. 대적삼매(大寂三昧) --- 43
5. 당기일구(當機一句) --- 51
6. 일수대 일수익(一手擡一手益) --- 56
7. 영운(靈雲) 선사의 도화 오도송(桃花悟道頌) --- 60
8. 예 일 배(禮一拜) --- 65
9. 적양화 적양화(摘楊花摘楊花) --- 70
10. 분(分)을 따라 세금을 바치는 도리 --- 74
11. 인증(印證)의 가풍(家風) --- 76
12. 남전(南泉)ㆍ조주(趙州)의 호환지기(互換之機) --- 80
13. 여래선(如來禪) 조사선(祖師禪) --- 83
14. 운문(雲門) 삼전어(三轉語) --- 90
15. 감지 행자(甘贄行者)의 독경청(讀經請) --- 93
16. 임제 ‘할’(臨濟喝) 덕산 ‘방’(德山棒) --- 97
17. 이심전심(以心傳心) --- 110
18. 열반(涅槃)의 참뜻 --- 114
19. 보화 존자(普化尊者) 전신탈거(全身脫去) --- 116
20. 석상 칠거(石霜七去) --- 127
21. 육조(六祖) 문하(門下)의 양대선풍(兩大禪風) --- 134
22. 설봉(雪峰) 별비사(鼈鼻蛇) --- 142
23. 요연(了然) 비구니와 관계(灌溪) 화상의 법담 --- 145
24. 조주 간파(趙州看破) --- 150
25. 방(龐) 거사 일가(一家)의 깨달음 --- 155
26. 백장 야호(百丈野狐) --- 164
27. 파자 소암(婆子燒庵) --- 169
28. 약산(藥山)의 향상기(向上機) --- 173
29. 생활 속의 참수행 --- 178
30. 운문(雲門) 항상철가(恒常鐵枷) --- 182
31. 위산(潙山)ㆍ앙산(仰山)의 호환지기(互換之機) --- 190
32. 천도(薦度)의 의미 --- 192
33. 덕산(德山) 삼십 방(棒)의 의지(意旨) --- 198
34. 충(忠) 국사의 삼환시자(三喚侍者) --- 203
35. 삼성(三聖)․설봉(雪峰)․위산(潙山)의 법거량처(法擧揚處) --- 207
36. 용두사미(龍頭蛇尾) --- 213
37. 오조(五祖) 삼환생(三還生) --- 219
38. 마조 가풍(馬祖家風) --- 225
39. 태고(太古)ㆍ나옹(懶翁) 선사의 수법기연(受法機緣) --- 237
40. 무심도인(無心道人) 혜월(慧月) 선사 --- 243
41. 운봉(雲峰) 선사의 안목(眼目) --- 252
42. 상당전(上堂前) 도득일구(道得一句) --- 258
43. 주장두상(拄杖頭上) --- 264
44. 건봉 일구(乾峰一句) --- 266
45. 덕산 탁발(德山托鉢) 암두 밀계(巖頭密啓) --- 271
46. 부처님의 참모습 --- 276
47. 칠현녀(七賢女)의 오도(悟道)와 삼반물(三般物) --- 281
48. 임제 탁발(臨濟托鉢) --- 286
49. 미륵(彌勒) 진미륵(眞彌勒) --- 289
50. 혜충 국사(慧忠國師)의 무봉탑(無縫塔) --- 294
51. 남전 참묘(南泉斬猫) --- 303
52. 마조 서신(馬祖書信) --- 310
53. 황벽 삼장(黃檗三掌) --- 314
54. 취암 미모(翠巖眉毛) --- 322
55. 석인목녀(石人木女) --- 326
56. 달마(達磨) 대사 행장(行狀) --- 331
57. 즉심즉불(卽心卽佛) 비심비불(非心非佛) --- 340
58. 구지(俱胝) 일지두선(一指頭禪) --- 344
59. 천태 삼성(天台三聖) --- 347
60. 정법안(正法眼) --- 352

 

제 3 부 소참 법어(少參法語) --- 355

1. 대도(大道)의 길 --- 357
2. 참선법(參禪法) --- 368
3. 경오년(庚午年) 동안거 중 상선원 정진대중과의 문답 --- 381
4. 신미년(辛未年) 동안거 중 선방 소참 --- 406

 

경허(鏡虛) 문하의 전법기연(傳法機緣) --- 431
전법원류(傳法源流) --- 451
법계도(法系圖) --- 457
후기(後記) --- 459

 

 

제1부
수행(修行)과 전법(傳法)

 

 

수행(修行)과 전법(傳法)

선사께서는 경남 남해 삼동면에서 출생하시어, 21세 되던 해인 1954년 정월에 출가하셨다.
불공(佛供) 드리러 절에 자주 다니던 친척을 따라서 동네에서 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던 해관암(海觀庵)이라는 조그마한 사찰에 우연히 가셨다가, 설석우(薛石友) 선사를 친견(親見)한 것이 출가의 인연이 되었다.
석우 선사는, 그 당시에 승속(僧俗)이 모두 고승대덕 스님으로 추앙(推仰)하던 분으로, 조계종(曹溪宗) 정화 초대 종정(宗正)을 지내셨던 분이다.
석우 선사께서는 선사를 보시더니,
"세상의 생활도 좋지만 그보다 더 값진 생활이 있으니, 그대가 한번 해보지 않겠는가?" 하셨다.
"무엇이 그리 값진 생활입니까?"
"범부(凡夫)가 위대한 부처 되는 법이 있네.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수행의 길을 가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래서 선사께서는 수행하는 스님들의 생활을 유심히  살펴보시고, 세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청정한  수행생활을 하는, 스님들의 삶에 큰 환희를 느껴 출가하시게 되었다.
남해의 조그마한 암자에서 시작된 행자 수업(行者修業)은 큰스님 시봉에다 공양주 소임 그리고 또, 나무를 해오고, 채소를 가꾸는 등으로 해야 할 일들이 종일 연속이었다. 그러한 바쁜 행자생활을 하시던 가운데 6,7개월이 지나서였다.
그 해 하안거(夏安居) 해제일(解制日)에, 선방에 다니며 10여 년 간 수행해오던 선객(禪客) 스님들이 해제하고서 석우 선사께 인사드리러 왔다가 마침, 네댓 분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석우 선사께서는,
"오늘 내가 자네들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하여 보게. 옛날 중국의 삼한(三漢) 시절에는 글자 운자(韻字) 하나를 잘 놓음으로 인해서 과거에 급하던 때가 있었네. 이것은 그  당시 시험에 나왔던 문제인데, '일출동방대소(日出東方大笑) 즉, 해가 동쪽에 떠올라 크게 웃는 모습이 어떠하더라.'하는 이 글귀에 운자 하나를 놓아 보게." 하시고는 덧붙여 말씀하셨다.
"당시에 어떤 사람은 나 '아(我)'자를 놓아서 재상에 등용되었는데, 자네들은 어떤 자를 놓아 보겠는가?"
선객 스님들 중에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자, 석우 선사께서는 신출내기 행자였던 선사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면 네가 한 마디 일러 보아라."
이에 선사께서 대뜸 답하시기를,
"저는 없을 ‘무(無)’자를 놓겠습니다." 하셨다.
해가 동쪽 하늘에 떠올라 밝은 빛으로 온 세상을 비추지만, 비추는 그 모습에는 호리(毫釐)의 상(相)도 없다는 뜻으로 '무(無)'자를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자 석우 선사께서는,
"행자가 장차 큰 그릇이 될 것이다." 라고 하시며 매우 흡족해 하셨다. 이렇게 해관암에서 열 달 가량 지내시고 나서, 석우 선사께서 해인사 선방 조실(祖室)로 가시게 되자,  선사 역시 해인사로 가 그 해 겨울에 사미계(沙彌戒)를 받으셨다. 그 후 해인사 강원(講院)에서 한 해 동안 경전(經典)을 익히시다가,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동화사로 가셨던 석우 선사의 부름을 받고 동화사로 가시게 되었다. 그 곳에서 석우 선사를 시봉하면서 다시 경(經)을 익히셨다. 그러던 중에 한 번은 동화사 대중 스님 이십여 분과 함께 팔공산 상봉을 오르셨다가, 우연히 빈 토굴을 발견하여 대중스님 몇 분과 함께 남아서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고 돌아오셨던 일이 있었다.
석우 선사께서는 당장에,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제멋대로 온갖 것을 다 하려고 든다." 하시며 호통을 치셨다. 그렇지만 참학의지(參學意志)로 가득 차 있던 선사의 심중을 간파하시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화두를 주셨다.
선사께서는 이 때부터 선문(禪門)에 들어서 오로지  화두참구에만 마음을 두시다가, 동화사를 떠나 운수행각(雲水行脚)의 길에 오르셨으니, 그 때가 1957년, 선사의 세수(世壽) 24세였다.
처음에 머무르셨던 곳은 태백산에 위치한 동암이라는 한 작은 암자였다. 모든 반연(攀緣)을 끓고 단신(單身)으로 각고정진(刻苦精進) 해보리라는 각오로, 빈 암자를 택하여 자잘한 피감자로 하루 세 끼를 때우면서 정진생활을 하셨다. 그 곳에서 두 달을 지내셨는데, 마침 그 밑에 있는 큰절 각화사의 주지를 맡게 된 도반(道伴)스님이 와서 보고는, 하루 세 끼 끼니거리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어려운 생활을 걱정하여 내려가서 함께 지내자고 자꾸만 청하는 바람에, 다시 바랑을 짊어지고 선산 도리사로 옮겨가셨다. 그리하여 도리사에서 일고여덟 분의 수좌(首座) 스님들과 여법(如法)히 정진하시면서 동안거(冬安居) 한 철을 나시게 되었다.
선사께서는 견성(見性)해야겠다는 일념(一念)에 마음이 달아, 오로지 정진에만 힘을 쏟으셨다. 저녁 아홉 시에 방선(放禪)하면, 대중들이 다 잠들기를 기다리셨다가 살며시 혼자 일어나 두어 시간 더 정진하시곤 하였다. 그렇게 빈틈없는 수행생활을 하신 지 두  달이 조금 지나서였다. 참선 도중에 반짝 떠오르는 조그만 지견(知見)을 가지고서 '알았다'는 잘못된 확신을 갖게 되셨다. 그리하여 참구하시던 것을 다 놓아 버리고는 해제일만 기다리셨는데, 해제하면 가서 점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석우 선사께서 열반(涅槃)에 드셨다는 부고(訃告)가 날아와서, 동화사로 가 다비(茶毘)를 치르셨다.
그러고 나서 경남 월내(月內) 묘관음사(妙觀音寺)에 주석하고 계시던 향곡(香谷) 선사를 찾아가셨다.
향곡 선사께서는 대뜸,
"일러도 삼십 방(棒)이요,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이니 어떻게 하려느냐?"하셨다.
선사께서 말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시자, 향곡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남전(南泉) 선사의 참묘(斬猫)법문에, 조주(趙州) 선사께서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가신 것에 대해서 한 마디 일러 보아라."
선사께서는 여기서도 답을 하지 못하셨다. '알았다'고 자신만만해  있었는데, 그만 여지없이 방망이를 맞으셨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선사께서도 선지식(善知識)에 대한 신(信)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던 때라, 자신의 생각을 쉽게 놓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방(諸方)을 행각(行脚)하시면서, 당시 선지식으로 이름이 나 있던 고승(高僧)들을 거의 다 참방(參訪)해 보시게 되었다.
그런데 선문답(禪問答)을 전개하는 과정이 또한 문제였다.
어느 선지식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또, 어느 선지식은 긍정하는 듯이 대하셨던 것이다. 그 때 모두 한결같이 불긍(不肯) 했더라면 직하(直下)에 '알았다'는 망념(妄念)을 놓아 버리고  다시 참학인(參學人)의 자세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탓에, '너도 장부요, 나도 장부다'하는 잘못된 인식이 박혀  2년여 세월을 어정쩡하게 허비해 버리셨다.
그러다가 26세 때,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안거(冬安居) 정진을 하시던 중에,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반조(反照)해 보시게 되었다.
'참으로 고인(故人)들과 같이 당당하여 낱낱의 법문을 확연명백하게 아는가? 누가 와서 묻는다고 하더라도 의기당당(意氣堂堂)하고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답을 할 수 있는, 그러한 혜안(慧眼)이 열렸는가?' 하고 자문(自問)해 보셨던 것이다.
대답은 여지없는 부정이었다. ‘도둑을 잘못 알아 자식으로 삼고 돌덩어리를 금으로 삼는다면, 결국 내 손해가 아닌가?’ 하며, 거짓에 사로잡혀 허송세월 해왔던 자신을 반성하시게 되었다.
여기에서 모든 잘못된 소견(所見)을 놓아 버리고 백지로 돌아가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리라는 결심이 서셨다. 그리고 이전과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을 의지하여 공부해야만 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갖게 되셨다.
그리하여 해제하자마자 향곡(香谷) 선사 회상(會上)을 찾아 가셨다.
선사께서 제방(諸方) 선지식들을 참방(參訪)하시던 과정에서, 향곡 선사만은 제방의 다른  선지식들이 쓰지 못하는, '언하(言下)에 흑백을 분명히 가려내는 법(法)'을 쓰시는 것을 보셨기 때문에 의지할 스승으로 마음을 정하셨던 것이다.
선사께서 예배드리며,
"이 일을 마칠 때까지 스님을 의지해서 공부하려고 왔습니다." 하시니, 향곡 선사께서 물으셨다.
"이 심오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대도(大道)를 네가 어찌 해결할 수 있겠느냐?"
"신명(身命)을 다 바쳐서 해보겠습니다."라고 선사께서 대답하시니, 향곡 선사께서 새로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화두를 주셨다.

어떤 사람이 아주 높은 나무 위에서 입으로만 나뭇가지를 물고 손으로 가지를 잡거나 발로 가지를 밟지도 않고 매달려 있을 때, 나무 밑에서 어떤 사람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묻는 이의  뜻에 어긋나고, 만약 대답한다면 수십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자기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찌해야 되겠느냐?

이 화두를 들고 2년여 동안 신고(辛苦)하셨다. 결제(結制)와 해제(解制)를 상관하지 않고 일체 산문출입(山門出入)을 하지 않으시면서, 화두참구 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고 궁구(窮究)하셨던 것이다.
그러다가 28세 때 가을에 '향엄상수화' 화두 관문(關門)을 뚫어 내셨다. 그리하여 종전에  동문서답(東問西答)하던 미(迷)함이 걷혀지고, 비로소 진리의 세계에 문답의 길이 열리셨다.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향곡 선사께 바치시기를,

 

這箇拄杖幾人會(자개주장기인회)
三世諸佛總不識(삼세제불총불식)
一條拄杖化金龍(일조주장화금룡)
應化無邊任自在(응화무변임자재)

 

이 주장자 이 진리를 몇 사람이나 알꼬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다 알지 못하누나.
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룡으로 화해서
한량없는 조화를 자유자재 하는구나.

 

하니, 향곡 선사께서 물음을 던지셨다.
"용이 홀연히 금시조(金翅鳥)를 만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이에 선사께서,
“당흉하여 몸을 굽히고 세 걸음 물러가겠습니다.[屈節當胸退身三步]”라고 답하시자, 향곡 선사께서는 "옳고, 옳다." 하시며 크게 기뻐하셨다.
그러나 송고백측(頌古百則)으로 유명한 설두(雪竇) 선사께서도 다른 공안(公案)에는 다 확연명백하셨으나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 공안에 막혀 다시 20년을 참구하셨는데, 선사께서도 이 공안에는 막히셨다.
그리하여 이 화두를 가지고 다시 참구하여 5년여 동안 전력(全力)을 다 쏟으시다가 해결해 내셨다. 마침내 고인들께서 중중(重重)으로 베풀어놓으신 온갖 차별법문(差別法門)에 걸림이 없어 상통(相通)되셨다.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기를,

 

一棒打倒毘盧頂(일봉타도비로정)
一喝抹却千萬則(일할말각천만측)
二間茅庵伸脚臥(이간모암신각와)
海上淸風萬古新(해상청풍만고신)

 

한 몽둥이 휘두르니 비로정상 무너지고
벽력 같은 일 할에 천만 갈등 흔적 없네.
두 칸 토굴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그 후 선사의 세수 34세이던 1967년, 하안거 해제 법회시에  묘관음사 법당에서 향곡 선사와 법거량(法擧揚)이 있었다.
향곡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묵좌(黙坐)하고 계시는데, 선사께서 나와 여쭈셨다.
"불조(佛祖)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스님께서 일러 주십시오."
"구구는 팔십일이니라."
이에 선사께서,
"그것은 불조(佛祖)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하시니, 향곡 선사께서는
"육육은 삼십육이니라."라고 하셨다.
이에 선사께서 예배드리고 물러가자, 향곡 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내려오셔서 조실방(祖室房)으로 가셨다.
다음날 선사께서 다시 여쭙기를,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眼目)입니까?"하니, 향곡 선사께서 이르셨다.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師姑元來女人做〕"
그러자 선사께서,
"오늘에야 비로소 큰스님을 친견하였습니다."하시니, 향곡 선사께서 물으셨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관(關)."
선사께서 이렇게 답하시자 향곡 선사께서는,
"옳고, 옳다."하셨다.
선사께서는 여기에서 향곡 선사로부터 임제정맥(臨濟正脈)의 법등(法燈)으로 부촉(付囑)받으시고 전법게(傳法偈)를 수(受)하셨다.

 

付眞際法遠丈室(부진제법원장실)

佛祖大活句(불조대활구)
無傳亦無受(무전역무수)
今付活句時(금부활구시)
收放任自在(수방임자재)

 

진제 법원 장실에 부치노라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라
지금 그대에게 활구법을 부촉하노니
거두거나 놓거나 그대 뜻에 맡기노라.

 

그 후 1971년에, 해운대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수산(萇樹山) 기슭에 해운정사(海運精舍)를 창건하시고, 상ㆍ하선원(上下禪院)을 개설하셨다. 최상의 진리인 선법(禪法)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널리 전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시변(市邊)에다 선원을 세우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20여 년 동안 회상(會上)을 열고 계시는 것은 지음자(知音者)를 만나기 위함이시다.

 

 

제2부
상당 법어(上堂法語)

 


1. 향상일로(向上一路)

 

법상(法床)에 오르시어 양구(良久)하신 후,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법상을 한 번 치시고 이르시다.

이 주장자의 진리를 안다면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歷代祖師)의 출세(出世)가,

熱盌鳴聲(열완명성)
鬼窟襄作活計(귀굴리작활계)

끓는 가마솥에 종발소리요
귀신 굴 속에 살림살이라.

누구든지 이 뜻을 확연명백(確然明白)하게 알 것 같으면, 단소(丹霄)에 홀로 걸음하게 될 뿐만 아니라, 천성 만성인(千聖萬聖人)이 우리[籠]를 만들어 가두려고 해도 가둘 수가 없다.
그러면 향상(向上)의 일로(一路)란 무엇이냐?
어느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향상의 일로는 일천 성인(一千聖人)도 전(傳)하지 못하거늘, 학자(學者)들이 공연히 애씀이 원숭이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
향상(向上)의 일로(一路)는 삼세 제불과 역대 조사의 골수(骨髓)요, 불법의 구경법(究竟法)이다. 이 향상일로를 알아서 살활종탈(殺活縱奪)의 자재(自在)함을 얻어야만 선지식(善知識)이 되어, 비로소 만인의 스승이 될 수 있고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수하고 지도할 수 있다.
유시(有時)에는 죽이는 법(法)을 쓰기도 하고, 유시에는 살리는 법을 쓰기도 하고, 유시에는 만천하에 진리의 전(廛)을 펴기도 하고, 유시에는 만천하에 벌린 전을 일시에 거두기도 한다.
그러면 '향상의 일로는 천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했는데, 역시 하나만 알면 안 된다. 전(傳)할 수 없는 도리도 알고 전할 수 있는 도리도 또한 알아야 한다. 그러나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비밀에 부친다. 미리 설파(說破)해줘 버리면 참학인(參學人)이 공부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되기 때문에, 견성대오(見性大悟)를 해야만 그 때 가서 이 비밀문을 열어놓는 법이다.
석일(昔日)에 조주(趙州) 선사께서 수유(茱萸) 선사를 찾아가셔서, 아무 말 없이 법당  문을 열고 들어가 눈을 감고 온 법당 안을 더듬으셨다. 그 때 마침 법상(法床)에 앉아 계시던 수유 선사께서 그 광경을 보고 물으셨다.
"무엇을 찾고 있는가?"
"물을 찾고 있네."
"법당 안에는 한 방울의 물도 없네."
그러자 조주 선사께서는 즉시 일어나셔서 벽(壁)을 더듬으면서 나가 버리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일러 보라.
법당에 한 방울의 물도 없다고 하니, 즉시 일어나 벽을 더듬으면서 나가 버린 뜻은 어디에 있는가?

대중의 답이 없으니 스스로 이르시기를,

茱萸和尙拄杖子(수유선사주장자)
無邊洪波裏漂流(무변홍파리표류)

수유 선사의 주장자가
가없는 바다 거친 파도 속에 표류함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자리에서 내려오시다.

경신년(1980)동안거 결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圓通寶殿)


2.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


법상(法床)에 오르시어 한참 묵묵히 계시다가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법상을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사람을 죽이는 칼[殺人刀]과 살리는 검[活人劍]은 옛적부터 내려오는 진리의 법규(法規)이니, 이것은 일등 종사가(宗師家)의 요긴한 기틀이라.
여기에 이르러서 죽이고[殺] 살리는[活] 온전한 기틀을 크게 쓰는[全機大用] 수완을 갖추어야, 최고의 일구(一句) 진리에 상응(相應)하는 분(分)이 있으리라.

어떤 분들이 이와 같은 자재(自在)의 기틀을 갖추어서 크게 쓰다가 가셨느냐?

당(唐)나라 때의 대선지식(大善知識)이셨던 마조(馬祖) 선사의 문하에서는 84인(人)의 뛰어난 법제자가 배출되었다.
그래서 역대 선지식들께서 이구동성으로, 마조 선사를 부처님 이후 가장 위대한 도인(道人)이라고 평(評)하셨다.

하루는 마조 선사께서 편찮으셔서 원주(院主)가 아침에 문안(問安)을 드리며,
"밤새 존후(尊候)가 어떠하십니까?"하니, 마조 선사께서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과거에 일면불(日面佛) 부처님과 월면불(月面佛) 부처님이 계셨다. "밤새 존후가 어떠하십니까?" 하는데 왜 이 두 분 부처님 명호를 들먹이셨을까?
마조 선사의 이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은 알기가 가장 어려운 고준(高峻)한 법문(法門)이다. 이 한 마디에는 마조 대선사의 전(全) 살림살이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마조 선사를 알고자 한다면 이 법문을 알아야만 한다. 역대의 대선지식들께서도 이것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일면불 월면불', 이 공안(公案)을 바로 알아야만 일대사(一大事)를 마친다."고 하셨다.
산승(山僧)도 이 법문을 가지고 5년 동안이나 씨름했고, 중국의 설두(雪竇) 선사께서도 다른 모든 법문에는 확연명백하셨으나 여기에 막혀 20년을 신고(辛苦)하셨던 법문이다.
그리고 마조 선사의 고준한 법문 한 마디가 또 있다.
백장(百丈) 스님이 마조 선사를 재참(再參)했을 때, 마조 선사의 벽력같은 '일할(一喝)'에 혼비백산하여 사흘 동안 귀가 먹었다가 깨어나, 마조 선사께서 할(喝)하신 뜻을 깨달았다.
마조 선사의 이 '일할(一喝)'의 낙처(落處)는 일등종사(一等宗師)들도 알기 어려운 것이어서,  백장 선사께서도 이것을 알아 상수제자(上水弟子)가 되신 것이다.
그러니 마조 살림의 진가(眞價)는 바로 이 '일할'과 '일면불 월면불'에 있다. 천하 도인이 다 마조 선사를 위대한 도인으로 평가하는 까닭이, 이 두 법문에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고로 참학자(參學者)는 모름지기 이 두 법문에 확연명백해야 마조 선사의 살림살이를 바로 볼 수 있는 법이다.

설두(雪竇) 선사께서 20년 만에 '일면불 월면불'을 깨쳐 게송(偈頌)하시기를,

一面佛月面佛(일면불월면불)
五帝三皇是何物(오제삼황시하물)
二十年來曾辛苦(이십년래증신고)
爲君幾下蒼龍窟(위군기하창룡굴)

屈堪述(굴감술)하노니 明眼納僧(명안납승)도 莫輕忽(막경홀)하라.

일면불 월면불이여!
오제삼황이 이 무슨 물건인고.
20년간 신고함에
그대를 위해 몇 번이나 창룡굴에 내려갔던가.

간곡히 말하노니 눈 밝은 납승도 소홀히 하지 말라.

대중은 설두 선사를 알겠는가?

한참 묵묵히 계시다가 이르시기를,

‘一面佛月面佛(일면불월면불)
五帝三皇是何物(오제삼황시하물)’
超出千聖頂額上(초출천성정액상)
天上人間能幾幾(천상인간능기기)

‘일면불 월면불이여,
오제삼황이 이 무슨 물건인고‘라고 하셨으니
설두는 천 성인의 이마를 뛰어 넘음이라.
천상과 인간에 이와 같은 안목을 갖춘 이가 몇몇이리오!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법상을 한 번 치신 후 자리에서 내려오시다.

신유년(1981) 하안거 결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3. 조계(曹溪)의 참소식


만약 여기에 어느 사람이 있어 위음왕불(威音王佛) 전에 부처님의 진리를 확연히 깨달았다고 하면 산승은 지리산 명다(名茶)를 한 잔 달여 드릴 것이요,
누지불(樓至佛) 후에 부처님의 진리를 확철히 증득(證得)했다 해도 또한 지리산 명다를 한 잔 달여 드리리라.

알겠는가?
누구든 이 말의 근본 뜻을 알아야만 부처님의 진리의 눈을 갖추었다 할 수 있으리라.

육조(六祖) 대사께서 하루는 대중에게 이러한 법문을 하셨다.
"사람 사람의 면전(面前)에 한 물건이 있어서 밝기는 일월(日月)보다도 밝고 어둡기는 검은 옻칠보다도 검고,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있고 아래로는 땅을 괴고 있다. 예도 없고 이제도 없고 미래도 없으며,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모든 형상과 이름이 다 끊어졌다. 가고 오고 말하고 묵묵한 가운데 항상 쓰고 있으면서 잡아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엇인고?"
그러자 육조 대사를 오랫동안 시봉하고 모셔오던 하택 신회(荷澤神會) 스님이 나와서,
"제불(諸佛)의 본성(本性)이며 신회(神會)의 불성(佛性)입니다."라고 답하니, 육조 대사께서 크게 꾸짖으셨다.
"예도 없고 이제도 없고 미래도  없으며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다고  했거늘, 함부로 제불(諸佛)의 본성이며 신회의 불성이라 하느냐. 너는 장차 출세(出世)를 하더라도 지해(知解, 알음알이)의 종도(宗徒, 종문(宗門)의 문도) 밖에는 못 되리라."
신회 스님은 이 육조 대사의 말씀대로 일생을 지해의 알음알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후학(後學)들에게도 역시 지해로써 가르쳤다.
부처님의 진리는 모든 알음알이의 정해정식(情解情識)을 완전히 뛰어넘어야 부처님의 진리의 눈을 갖출 수 있는 것이지, 알음알이의 식견(識見)이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면 부처님의 정안(正眼)과는 거리가 멀다.

신회 스님이 육조 대사 회하(會下)에서 다년간 수행하다가 하루는 청원 행사(靑原行思) 선사를 참예(參詣)하니, 행사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대가 어디서 오는고?"
"조계(曹溪)에서 옵니다."
"조계에서 온다면 조계의 참소식은 가져왔는가?"
이에 신회 스님이 앉아 있다가 몸을 털고 일어서자, 행사 선사께서
"그것은 조계의 참소식이 아니다. 깨진 기왓장 조각에 불과하다."하셨으니, 조계에 계시는 부처님의 진금(眞金) 덩어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에게 진금을 주신 일이 있습니까?"
"설사 있다고 한들, 그대가 어느 곳에서 취하려 하는고?"
여기에서 신회 스님은 그만 말문이 막혀 꼼짝을 못 했다.

신회 스님은 이후에 하택종(荷澤宗)의 개조(開祖)가 되어 지해(知解)의 종(宗)을 하나 만들었는데, 오늘날까지 그 사상이 전해 내려와 그 종도(宗徒)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정법정안(正法正眼)으로 보건대는, 지해(知解)의 종(宗)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정법정안을 이은  육조(六祖)의 정맥(正脈)은 '몰록 깨달을 것 같으면 몰록 다 닦는다'하는 돈오돈수(頓悟頓修)의 법이다.
그런데 신회 스님으로 인해서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법이 펼쳐졌으니, 그렇게 철저하지 못한 소견(所見)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면서 후학자로 하여금 정법(正法)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되어온 것이다.
그러면, 행사 선사께서 "설사 진금 덩어리가 있다고 한들 그대가 어느 곳에서  취하려 하는고?"하셨을 때 신회 스님이 아무런 대꾸도 못 했는데, 만약 그 때 행사 선사께서 신회 스님을 철저하게 다스려놓았더라면, 오늘날까지 점수(漸修)의 폐습이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승(山僧)이 당시의 행사 선사의 입장에 있었더라면, 신회의 말문이 막혔을 때, 거기에서 쉬어 버리지 않고 주장자(拄杖子)로 삼십 방(棒)을 때려서 산문(山門) 밖으로 내쫓았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였더라면, 점수(漸修)의 폐습을 완전히 쓸어 없애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대도(大道)의 활로(活路)를 당당하게 걷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산승(山僧)이 만약 당시의 신회 스님이었더라면, 행사 선사께서 "그대가 어느 곳에서 진금을 취하려 하는고?"하셨을 때 고개를 숙이고 두 팔을 흔들며 나갔을지니, 거기에는 행사 선사의 날카로운 기봉(機鋒)도 어찌하지 못했으리라.


4. 대적삼매(大寂三昧)


대적정(大寂定)의 삼매(三昧)는 삼세 제불(三世諸佛)과 역대 조사(歷代祖師)들의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라.

이 대적삼매(大寂三昧)는 무엇으로써 삼느냐면 무념(無念)이 근본이다.
이 삼매에 안주(安住)할 것 같으면,

一念卽是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
無量劫卽是一念(무량겁즉시일념)

한생각이 곧 무량겁이요
무량겁이 곧 한생각이라

사바세계 삼천 년이 일순간에 스쳐가며,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와 삼세(三世)의 시공(時空)이 모두 이 일념(一念) 가운데 있게 된다.
이 대적삼매는 모든 부처님과 똑같이 모든 중생에게도 다 갖추어져 있다. 다만 중생이 그것을 수용(收用)하지 못하는 것일 뿐인데, 그것은 번뇌(煩惱)의 구름이 한 가닥 가리어져 있어서 알지 못하는 고로 쓰지를 못하는 것이다.

중국 선(禪)의 4대조(四代祖)이신 도신(道信) 선사 당시에 우두 법융(牛頭法融) 스님이 있었다.
우두 스님이 젊은 시절에 혼자서 정진(精進)을 하고 있노라면,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와서 공부하는 자리에는 항상 꽃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공양(供養) 때에는 천녀(天女)들이 공양을 지어 올렸다.
하루는 우두 스님이 도신 선사를 찾아뵙고 그간에 공부했던 것을 말씀드렸다. 도신 선사께서 그것을 들으시고는,
"네가 그러한 삿된 소견(所見)을 가지고 어찌 불법(佛法)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느냐?"하시며 직하(直下)에 방망이를 내리셨다.
무릇,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온갖 새가 꽃을 물어 나르고 천녀가 공양을 올렸으니 큰스님 중의 큰스님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불법의 근본진리를 아는 사람이 보건대는, 그것은 몇 푼어치 안 되는 살림살이이다.
대적삼매(大寂三昧)를 수용하면 모든 성인(聖人)들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고, 천룡팔부(千龍八部)며 귀신·선신(善神)들은 더더욱 볼 수 없으며, 온갖 새와 짐승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어느 스님이 남전(南泉) 선사께서 여쭙기를,
"우두 스님에게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치고 천녀가 공양을 지어 올리는 것은 어떻습니까?"하니, 남전 선사께서는
"걸음걸음이 부처님의 계단을 올라간다."라고 답하셨다.
"도신 선사로부터 방망이를 맞은 후, 새들이 꽃을 물어오지 않고 천녀들도 공양을 올리지 아니한 때는 어떻습니까?"
"설령 온갖 새들과 천녀가 오지 않은 때라도 나의 일선(一線)의 도(道 )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이와 같이 부처님 진리에도 깊고 얕은 세계가 있다.
그러니 여러 대중은 이러한 법문을 잘 새겨듣고서, 공부를 지어가다가 반짝 나타나는 하찮은 경계들을 가지고 살림을 삼아 자칫 중도(中途)에 머무르게 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부처님의 정안(正眼)을 밝히는 데 근간(根幹)을 두고서 철저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보면,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에게 공양(供養)을 베푸는 것보다 소승(小乘)의 진리를 깨달은 한 아라한(阿羅漢)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 복(福)이 많고, 일체의 아라한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대승(大乘)의 진리를 깨달은 한 보살(菩薩)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 수승(殊勝)하며, 일체의 보살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부처님의 경계를 깨달은 한 분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 수승한 복을 짓는 일이다. 그러나 일체의 제불(諸佛)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무심(無心)의 경계를 수용한 한 분의 무심도인(無心道人)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없이 수승한 일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부처님의 진리법에는 이렇게 소승의 경지, 대승의 경지, 부처님의 경지, 그리고 부처님의 경지 위에 다시 무심도인의 경지가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부처님도 대적삼매(大寂三昧)의 무심 경계를 일상의 살림살이로 삼아 수용하시지만, 무심도인의 경지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예전 어느 스님이 낙포(洛浦) 선사께 여쭈었다.
"모든 부처님이 한 분의 무심도인보다 부족한 점이 무엇이며, 한 분의 무심도인이 모든 부처님을 뛰어넘는 점은 어떠한 것입니까?"
이에 낙포 선사께서 송(頌)하시기를,

一片白雲橫谷口(일편백운횡곡구)
幾多歸鳥盡迷巢(기다귀조진미소)

한 조각 구름이 산골짝 어귀를 막고 있어
둥지 찾아 가는 새들이 얼마나 헤맸던가.

대중은 고인(古人)의 답처(答處)를 알겠는가?
산승(山僧)이 보건대, 그것은 일변사(一邊事)만 밝혔지 양변(兩邊)을 다 밝히지 못한 것이니, 오늘 산승이 나머지 일변(一邊)을 밝혀 보이리라.

昨夜三更明月下(작야삼경명월하)
石人相逢呵呵笑(석인상봉가가소)

어젯밤 삼경에 밝은 달 아래서
돌사람이 서로 만나 '하하' 웃음이로다.

그러면 산승(山僧)의 이 답처는 모든 부처님의 편에서 밝힌 것인가, 한 분의 무심도인 편에 서서 밝힌 것인가?

근래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무심(無心)의 경지를 수용하신 분이 두 분 계셨으니, 수월(水月) 선사와 혜월(慧月) 선사이시다.
수월 선사께서는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오랫동안 주석하시다가 말년(末年)에는 만주에서 지내시다 열반(涅槃)하셨는데, 생활이 검소하셨고 항시 대적삼매에 안주(安住)하고 계셨다.
하루는 어느 신도 내외가 수월 선사의 도명(道名)을 듣고 공양구를 잔뜩 싣고서 오대산 상원사로 선사를 친견(親見)하러 왔다. 그때 마침 선사께서는 장작을 패고 계시던 중이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남루하고 초라하여 그 신도 내외가 실망을 한 나머지 도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겉모양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수월 선사께서 물방앗간에서 사중(寺中)의 나락을 찧으시다가 졸음이 와서 호박 안에서 졸고 있었는데, 계속 움직이고 있었던 물레방아가 이때는 허공중에 멈춰 내려오지를  않았다고 한다. 참으로 세인(世人)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일이다.
또, 혜월 선사께서는 항시 손에서 일거리를 놓지 않으셨는데, 논밭을 일구고, 장터를 오가고, 짚신을 삼고, 빗지루를 매는 등의 일상의 일 가운데서 대적정(大寂定)의 무심(無心)을 수용하며 사셨던 것이다.
노령에는 항시 '나무장승'을 부르시면서 매일같이 산에 가셔서 큰 자루에다 솔방울을 가득 주워담아 짊어지고 오셨다. 하루는,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솔방울을 한 자루 주워  오시다가 항상 쉬시는 자리에서 자루를 지고 반쯤 일어나는 자세로 열반(涅槃)에 드셨다.
참으로 무심(無心)을 수용한 도인(道人)의 경계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일들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일상생활에서 대적삼매(大寂三昧)를 항상 수용함으로써 그 힘이 쌓이고 쌓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이 생기면 죽어서 다시 몸을 바꾸어 온다 하더라도 깨달았던 진리의 세계가 매(昧)하지 않아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성인(聖人)이 된다.
이것은 부처님의 견성법(見性法)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삼세(三世)가 모두 공(空)했다', '과거ㆍ현재ㆍ매래가 일체가 되었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필경(畢竟)에 어떠한가?

莫謂無心云是道(막위무심운시도)
無心有隔一重關(무심유격일중관)

무심의 경계가 진리의 극칙(極則)이라 이르지 말라.
무심 또한 한 겹의 관문이 가려져 있느니라.

임술년(1982) 하안거 해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5. 당기일구(當機一句)


기틀에 다다라 척 나오는 일구(一句)!
이것이 가장 소중하다. 당기일구(當機一句)가 석화전광(石火電光)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당대(唐代)의 선지식들인 조주(趙州)ㆍ운문(雲門)ㆍ임제(臨濟)ㆍ덕산(德山) 선사 같은 분들을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봉(機鋒)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글[文章], 송(頌), 염(拈), 평(評) 등은 시간을 두고 사량(思量)하여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면전(面前)에서 즉시에 하는 문답은 사량이나 조작(造作)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당기일구(當機一句)의 기틀을 갖추지 못했다면, 접인(接人)할 능력도 없을 뿐더러 알았다고 하는 것도 모두 망령된 사견(邪見)에 지나지 않는다. 고인들의 전지(田地)에는 꿈에도 이르지 못한 것이다.
요즈음의 선지식들이 당기(當機)에 다다라 주저하게 되는 것은 견처(見處)도, 살림살이도 다 고인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무변대도(無邊大道)의 불법 진리를 바로 알려면 고인들의 법문 하나하나를 다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고인들의 살림살이가 따로 있고 현재 우리가 공부한 살림살이가 따로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견성법(見性法)이란 항상 동일한 것이어서, 만일 서로 다름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어느 한 쪽에 허물이 있는 것이다.
그간 무수한 도인들이 각자가 깨달은 경지(境地)를 기량(機量)대로 써왔다. 제아무리 약삭빠른 이라도 엿볼 수 없고 사량ㆍ분별을 붙일 수 없게끔, 무진삼매(無盡三昧)의 공안을 베풀어놓은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공안에 대하여 확연명백하지 못할 것 같으면, 크게 쉬는 땅을 얻었다고 할 수가 없고, 고인들과 같은 경지를 수용할 수도 없다.
그러니 모든 참학인(參學人)은 고인의 경지에 근간(根幹)을 두어,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베풀어져 있는 공안(公案)의 그물을 다 뚫어 지나가야 한다.

반산 보적(盤山寶積) 스님이 남달리 발심(發心)하여 공부에 전력을 쏟던 중, 어느 해제일에 다른 처소로 가던 길이었다. 걸음걸음 화두를 놓지 않고 가는데 우연히 시장을 지나가다가 식육점 앞에 이르게 되었다.
마침 어떤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와서,
"깨끗한 고기 한 근 주시오."하니, 주인이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차수(叉手)하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깨끗하지 못한 고기입니까?"
이 말이 들려오는 순간, 보적 스님의 마음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과 여러 도인께서 설해놓으신 낱낱 법문에 활발발지(活鱍鱍地)를 얻지 못하여, 또 애를 써서 공부를 지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동구 밖을 지나가다가 상여꾼들을 만나게 되었다. 상여꾼들이 노제(路祭)를 지내고 상구(喪具)를 메면서 선소리 하기를,
"청천(靑天)의 붉은 수레는 서쪽으로 기울어가건마는, 알지 못하겠구나. 금일 영혼은 어디로 가는고?"하니, 상주들이 일제히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곡(哭)을 하였다. 이 곡하는 소리에 보적 스님은 확철히 깨달았다.
그 길로 마조(馬祖) 선사를 찾아가 뵙고 문답이 상통(相通)되어 마조 선사의 제자가 되었다.

알겠는가?
전(前)과 후(後)의 깨달음이 각기 어떠한 경지인가?
정안(正眼)을 갖춘 이라면, 이 경지를 분명히 밝힐 수 있다.

보적 선사께서 깨닫고서 대중에게 법문하시기를,

向上一路千聖不傳(향상일로천성부전)
學者勞形如猿捉影(학자노형여원착영)

향상의 일로는 일천 성인도 알지 못하시거늘
학자들이 공연히 애씀이 원숭이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지없는 확철대오(廓徹大悟)가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법문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설령 법신변사(法身邊事)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반도(半道)에 있음이니, 향상(向上)의 일로(一路)를 알아야만 당기일구(當機一句)의 기틀을 갖추어 제불(諸佛)과 더불어 동참할 수 있으리라.

필경(畢竟)에 어떠한고?

到頭霜夜月(도두상야월)
任運落前溪(임운낙전계)

마침내 늦가을 달이
집 앞 개울에 떨어져 출렁임이로다.

임술년(1982) 동안거 중 내원사


6. 일수대 일수익(一手擡一手搦)


때로는 고봉정상(高峰頂上)에 앉아서 모든 부처님과 천하 선지식을 꾸짖으며,
때로는 십자가두(十字街頭)에서 천사람 만사람에게 설법(說法)하며 전신에 흙먼지를 뒤집어 씀이로다.
또한 때로는, 십자가두(十字街頭)가 고봉정상(高峰頂上)이며 고봉정상이 십자가두로다.
임제(臨濟)와 조주(趙州)는 풀숲을 향하고
덕산(德山)과 암두(巖頭)는 백일하에 도적을 지음이로다.

백주 대낮에 도적을 짓는 수완이 어떠한고?

하루는 암두(巖頭) 스님이 덕산(德山) 선사께 참배(參拜)하러 와서 조실방 문을 열고는, 한 발은 문지방 안에다 들여 놓고 한 발은 마루에 놓은 채 여쭈었다.
"제가 성인(聖人)입니까, 범부(凡夫)입니까?"
그러니 석화전광(石火電光)과 같은 밝은 눈을 갖추신 위대한 덕산 선사인지라, 대뜸 벽력 같은 '할(喝)'을 하셨다.
"억!"
그러자 암두 스님은 아무 말 없이 큰  절을 한 자리 하고는 문을 닫고 물러갔다.
이렇게 사제지간(師弟之間)에 멋진 법담(法談)을 나누었다는 소문이 제방에 분분하니, 동산(洞山) 선사께서 듣고는,
“만약 암두가 아니었다면 덕산 선사의 ‘할(喝)’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칭찬을 하셨다.
다시 암두 스님이 동산 선사의 이 말을 전해 듣고는,
“동산 늙은이가 좋고 나쁜 것도 가리지 못하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내가 당시에 한 손은 올리고 한 손은 내렸었노라.”라고 말했다.

어느 곳이 한 손을 든 곳이며 한 손을 내린 곳이냐?
‘일수대 일수익(一手擡一手搦)’, 이 법문이야말로 도인(道人) 문중에서 법의 안목(眼目)을 가리는 골자이다. 이러한 법문은 옛 부처가 화현(化現)한 경우가 아니고는 활개를 칠 수가 없는 대문이다.
그간에 무수 도인이 출세(出世)하셔서 심오한 법문을 많이 설하셨지만, 이 법문을 능가할 만한 법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덕산 선사와 암두 선사의 이 법거량처(法擧揚處)를 왕삼매(王三昧) 법문이라 한다. 삼매(三昧)의 법문 가운데 으뜸가는 법문이라는 것이다.
대중아!
만약 암두 선사의 한 손은 들고 한 손은 내린 곳을 알 것 같으면, 부처님과 조사의 비밀법을 온전히 짊어지고 가게 될 것이니, 이 가운데 이를 자 있거든 당당히 한 마디 해 보라.

대중의 말이 없자 이르시기를,

암두 선사여! 말하기 전에는 부처의 눈을 가진 이도 엿보기가 어렵더니 ‘일수대 일수익(一手擡一手搦)’이라고 설파(說破)한 후로는 도적의 전신(全身)이 드러나 버렸구려.

산승(山僧)이 만약 당시에 있어서 덕산 선사를 대신해서, 암두 스님이 예배하고 물러갈 적에, 한 방망이 때리면서“이 도적놈아!” 라고 했더라면 과연 어느 곳에 암두가 있으리오.
그러나 암두 스님도 밝은 눈을 갖춘 종사(宗師)인지라, 그냥 물러가지 않고“도적아! 도적아!” 하면서 갔을 것이다.

주장자(拄杖子)를 한 번 치시고 송(頌)하시기를,

撒手歸家人不識(살수귀가인불식)
唯有明月獨窓前(유유명월독창전)

손을 흔들고 본 집에 이르니 아는 이 없고
오직 밝은 달만 홀로 창가에 비춤이로다.

계해년(1983) 하안거 결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7. 영운(靈雲) 선사의 도화오도송(桃花悟道頌)


오른쪽에서는 부처님의 남이 없는 진리의 장단을 치고 왼쪽에서는 남이 없는 진리의 곡(曲)을 염출(拈出)하니,
청아(淸雅)한 음곡(音曲)이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두루함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 남이 없는 진리의 한 곡조를 듣는가?

이 진리의 맑은 음률을 듣는 이는 억겁(億劫)토록 크게 편안하고 크게 즐거운 생활을 누릴 수 있거니와, 이 남이 없는 진리의 곡조를 듣지 못하는 이에게는 삼도고(三道苦)가 곧 목전(目前)의 일이다. 세상의 온갖 부귀공명을 다 누리고 산다 해도, 이 부처님의 무생(無生)의 한 곡(曲)을 바로 알지 못하고 바로 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바탕 봄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영구한 안락(安樂)과 영구한 즐거움을 누리고자 할진대는, 이 남이 없는 진리의 한 곡조를 바로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할지어다.

영운(靈雲) 스님이 위산(潙山) 선사 회상에서 30년 동안 오롯하게 참구(參究)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도화(桃花)가 만발한 것을 보고 마음광명이 열렸다.
30년 만에야 참구하던 화두가 일념현전(一念現前)되어 보고 듣는 것, 사시절(四時節)이 가고 오는 것을 다 잊어 버렸다가, 홀연히 만발해 있는 복숭아꽃을 보는 찰나에 화두당처(話頭當處)가 해결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깨달은 경지를 송(頌)하기를,

三十年來尋劍客(삼십년래심검객)
幾廻葉落幾抽技(기회엽락기추지)
自從一見桃花後(자종일견도화후)
直至如今更不疑(직지여금갱불의)

삼십 년 동안 진리의 검을 찾던 나그네여
잎 지고 싹 남이 대체 몇 번이었던가.
홀연히 도화 보고 마음 깨쳤으니
이제로부터 진리의 법에 다시 의심 없도다.

이 송(頌)을 위산 선사께 바치니 위산 선사께서는,
“자연 인연(自然因緣)을 좇아 깨달은 자는 영구히 매(昧)하지 아니한다.”라고 대단히 칭찬하셨다.
그런데 후에 현사(玄沙) 선사께서는 영운 스님의 오도송을 보고 평(評)하시기를,
“영운 스님이 깨닫기는 분명히 깨달았으나 자세히 보건대는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천오백 대중을 거느렸던 위산 선사께서는 허락하셨는데, 현사 선사께서는 왜 긍정(肯定)하지 않으셨을까?
이 가운데 불법(佛法)의 뜻 다 들어 있다.
만약 이러한 대목에서 당당하게 활개를 치지 못한다면, 그러한 자의 소견(所見)은 다 정해정식(情解情識)의 분별(分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종사가(宗師家)는 바로 이러한 대목을 가지고서, 납자(衲子)가 밝은 안목을 갖추었는가, 갖추지 못했는가 하는 흑백(黑白)을 가린다.
이러한 것을 차별지(差別智)라고 한다.
옛 선사들께서는,
“부처님의 근본체성(根本體性)은 증득(證得)하기 쉽지만, 역대 조사(歷代祖師)들의 차별법문(差別法門)은 밝히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니 모름지기 참학인(參學人)은 이러한 법문에 밝아야만 한가한 요사인(了事人)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면 금일에 산승이 세 분 고인의 살림살이를 점검하여 여러 대중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공양하리라.
영운(靈雲) 선사 오도송(悟道頌)의 깨달은 경지를 평(評)하건대,

靈雲老靈雲老(영운노영운노)
靑天白日指鹿爲馬(청천백일지록위마)

영운노여, 영운노여!
청천백일하에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구려.

“자연 인연을 좇아 깨달은 자는 영구히 매(昧)하지 아니한다.” 하신 위산 선사의 말씀을 보건대는,

爲山老爲山老(위산노위산노)
憐兒不覺醜(인아불각추)

위산노여, 위산노여!
아이를 생각해 주다 추(醜)함을 깨닫지 못했구려.

또, 현사 선사의 점검처(點檢處)를 보건대는,

현사 선사의 회호(回互)의 가성(佳聲)이 우주 건곤(乾坤)에 빛남이로다.
현사노(玄沙老)여!
비록 그러하나, 돌아가서 차나 한 잔 드십시오.

계해년(1983) 하안거 해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8. 예 일 배(禮一拜)


犀因翫月紋生角(서인완월문생각)
象被雷驚花入牙(상피뇌경화입아)

물소가 밤에 달을 구경하니 뿔에서 문채가 남이요,
코끼리가 우뢰소리에 놀라니 꽃잎이 어금니 안으로 들어감이로다.

일구(一句)의 진리를 파헤치는 이 최상승 선법(最上乘禪法)은 알기가 무척 어렵거니와 담담해서 별 맛이 없는 고로, 소인지배(小人之輩)는 대개 소승법(小乘法)으로 흘러가고 만다.
그러나 이 법을 닦아 행(行)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부처님의 대도(大道)의 진리를 얻을 수 없다.
부처님의 대도의 진리는 허공보다도 넓고 넓어 가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외도(外道)들이 비방하려고 해야 비방할 수가 없고 칭찬하려고 해야 칭찬할 수가 없는 법이다.
우리가 이렇게 90일간 불철주야 참선정진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심오한 진리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다.
오늘은 그 90일 중에 반살림이 되는 날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45일 동안에 목숨을 떼어놓고 모든 반연(攀緣)과 습기(習氣)를 다 놓아 버리고 참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두를 들었을진대는, 개개인이 다 장부(丈夫)의 활개를 쳤을 것이다.
그런데 ‘알았다’고 당당하게 나오는 이가 한 사람도 없으니 대체 그 허물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온갖 분별(分別), 망상(妄想), 혼침(惛沈)에 시간을 다 빼앗긴 고로 화두일념(話頭一念)이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허물을 뉘우치고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남은 45일간은 마음 가운데 모든 반연을 다 쉬어 버리고 오로지 화두와 씨름하고 씨름해서 한생각이 간단(間斷)없이 지속되게끔 하라. 한생각이 지속되는 이 삼매(三昧)에 들게 되면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다 진리의 눈을 뜨게 되어 있다.

석일(昔日)에 용아(龍牙) 스님이 취미(翠微) 선사를 참방(參訪)하여,
“어떤 것이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하고 여쭈니, 취미 선사께서 이르셨다.
“선판(禪板)을 가져오너라.”
용아 스님이 선판을 가져가니, 취미 선사께서는 즉시 그 선판으로 용아 스님을 때리셨다.
용아 스님이 맞고는 말씀드리기를,
“때리시는 것은 마음대로 때리시거니와 조사(祖師)의 뜻은 없습니다.”하고 다음에는 임제(臨濟) 선사를 찾아갔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포단(蒲團)을 가져오너라.”
용아 스님이 포단을 가져가니 임제 선사께서 그 포단으로 때리심에,
“때리시는 것은 마음대로 때리시거니와 조사의 뜻은 없습니다.”하고 용아 스님은 가버렸다.

후에 설두(雪竇) 선사께서 송(頌) 하시기를,

龍牙山裏龍無眼(용아산리용무안)
死水裏何振古風(사수리하진고풍)
禪板蒲團不能用(선판포단불능용)
只應分付與盧公(지응분부여노공)

용아산의 용이 눈이 없으니
죽은 물에서 어찌 옛 가풍을 떨치리오.
선판과 포단을 능히 쓰지 못하니
다못 나에게나 줄 것이로다.

대중은 설두 선사를 알겠는가?

한참 묵묵히 계시다가 이르시기를,

설두는 과연 종사가(宗師家)의 일척안(一隻眼)을 갖추었음이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살아 있는 용(龍)이 될 것이며 또, 옛 가풍(家風)을 드날릴 수 있겠는가?

산승(山僧)이 보건대,
만약 당시에 용아 스님이 선판과 포단을 가져오라는 두 분 선사의 말씀에 그것을 가져가는 대신에 각각 절을 한 자리씩 했더라면, 취미ㆍ임제 선사의 날카로운 기봉(機鋒)도 별 수 없었으리라.
절을 한 자리 하는 의지(意旨)는 어디에 있는가?

위산(潙山) 선사께서 하루는 상당(上堂)하시어 대중에게 이러한 법문을 던지셨다.
“노승(老僧)이 죽은 후에 산 아래에 있는 단월가(檀越家)에 한 마리의 물빛 암소가 되어서 왼쪽 옆구리에 ‘위산승 영우(潙山僧靈祐)’라고 새기고 나올 것이니, 그러한 때를 당하여 ‘위산승 영우’라고 불러야 옳으냐, ‘수고우(水牯牛)’라고 불러야 옳으냐?”
대중 가운데서 앙산(仰山) 스님이 나와서 아무 말 없이 절을 한 자리 올리니, 위산 선사께서 즉시 법상(法床)에서 내려 오셨다.

만약 산승(山僧)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절을 한 자리 하는 대신에 지리산 명다(名茶)를 한 잔 올렸을 것이다.

그러면 절을 한 자리 올리는 뜻은 무엇이며, 차를 한 잔 달여 올리는 뜻은 무엇이냐?

鞠水月在手(국수월재수)
弄花香滿衣(농화향만의)

물을 두 손으로 움켜쥐니 달이 손 안에 있고
꽃을 만지니 향기가 전신에 가득함이로다.


9. 적양화 적양화(摘楊花摘楊花)


至道無難(지도무난)
唯嫌揀擇(유혐간택)
但莫憎愛(단막증애)
洞然明白(통연명백)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나
오직 따지고 가림이 허물이니라.
다만 미워하고 사랑함만 없을 것 같으면
확연히 밝아지리라.

이것은 삼조 승찬(三祖僧璨) 선사의 『신심명(信心銘)』에 있는 아주 고준한 법문이다.
하루는 조주(趙州) 선사께서 이 법문을 들어 대중에게 말씀 하시기를,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나 오직 따지고 가리는 것이 허물이라고 하였으니, 조금이라도 말이 있게 되면 벌써 따지고 가림이며 분명함이니라. 노승(老僧)은 그 분명함 속에도 있지 아니하니 대중은 아끼고 보호하겠는가?”
하니, 대중 가운데 한 스님이 나와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이미 분명함 속에도 계시지 않다고 하시면서, 아끼고 보호한다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이에 선사께서,
“나도 모르노라.”
라고 대답하시니, 그 스님이 다시 여쭈었다.
“선사께서 모르신다면 어찌하여 분명함 속에도 있지 않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리 묻는 것이 옳긴 하나 어서 예배(禮拜)하고 물러가 라.”

언중(言中)에 유골(有骨)이라. 우리가 이러한 데 바른 눈을 떠야만 항상 진리의 세계에서 생활할 수 있는 법이다.
조주 선사께서“그리 묻는 것이 옳긴 하나 어서 예배하고 물러가라.”고 하신 뜻이 어디에 있느냐?

청천백일(靑天白日)에 벽력(霹靂)소리가 진동함이로다.

조주 선사 회상(會上)에서, 한 수좌(首座)가 석 달 동안 공부를 잘 해오다가 해제일(解制日)에 이르러 하직인사를 드리니, 조주 선사께서 이르셨다.
“부처 있는 곳에서도 머물지 말고 부처 없는 곳에서도 급히 달아나라. 만약 삼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그릇 들어 말하지 말라.”
이에 그 수좌가,
“스님, 그렇다면 가지 않겠습니다.”
하니, 조주 선사께서는
“버들잎을 따고, 버들잎을 딴다.〔摘楊花摘楊花〕”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가지 않겠습니다.” 하는데 어째서“버들잎을 따고, 버들잎을 딴다.”고 하는가?
우리가 법문을 들었을 때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화두(話頭)인 것이니, 대중 가운데 지금까지 화두를 타지 못한 분들은 이것을 화두로 삼아서 오매불망(寤寐不忘) 참구해 보라.
이러한 법문은 알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어서, 만일 누구라도 각고정진(刻苦精進)하여 이 법문의 뜻을 알아낸다면, 백천삼매(百千三昧)와 무량묘의(無量妙意)를 한꺼번에 다 알아서 하늘과 땅에 홀로 걸음하리라.

조주 선사의 ‘적양화 적양화(摘楊花摘楊花)’를 알겠는가?

千里烏騅追不得(천리오추추부득)

천 리를 달리는 말이라도 따라잡기 어렵느니라.

을축년(1985) 열반재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10. 분(分)을 따라 세금을 바치는 도리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보이시고 이르시기를,

이 주장자를 바로 안다면 부처의 눈과 조사(祖師)의 눈과 선지식(善知識)의 눈을 동시에 갖추어서 때로는 천하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때로는 천하 사람의 눈을 열게 하리라.

어떤 분들이 이렇게 걸어옴인고?

옛날에 남전(南泉) 선사께서 이러한 법문을 하신 적이 있었다.
“내가 어려서 출가(出家)하고부터 소를 한 마리 길렀는데, 이 소를 개울 동쪽에다 놓아 먹이려니 국왕의 땅이라서 국왕의 물과 풀을 침범하지 않을 수 없고, 개울 서쪽에다 놓으려 해도 역시 국왕의 땅이라, 불가불 분(分)을 따라 세금을 바치고 먹여야 했다.”
누구든 여기에서 분명하게 세금을 바칠 줄 안다면, 과거생에 지어온 헤아릴 수 없는 죄업장(罪業障)과 삼세(三世)의 모든 빚을 일시에 다 녹일 수가 있을 것이다.

어떠한 것이 분(分)을 따라 세금을 바치는 진리의 일구(一句)냐?

주장자(拄杖子)를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逢草喫草(봉초끽초)
逢水喫水(봉수끽수)

풀을 만나면 풀을 먹고
물을 만나면 물을 마심이로다.

을축년(1985) 칠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11. 인증(印證)의 가풍(家風)


진리의 문(門)을 활짝 여니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고,
진리의 문(門)을 닫으니 북쪽에는 백두산(白頭山)이요,
남쪽에는 한라산(漢拏山) 이로다.

지금 이 자리는 범부(凡夫)와 도인(道人)을 가리는 선불장(選佛場) 이다.
누구든지 꾸준히 갈고 닦아 자신의 본분사(本分事)를 뚜렷이 밝혀낼 것 같으면, 도인과 범부를 가리는 이 관문(關門)을 통과하여 불법 정안(正眼)을 인증(印證)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 깨달아 알았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부처님의 진리를 어찌 사량(思量)으로써 알 수 있겠는가?
진리의 세계는 너무도 넓고 깊고 가이 없어서 사량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깨달으신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자신이 깨달은 경지를 점검(點檢)받아야만 그 진위(眞僞)를 가릴 수가 있는 법이다.
이 불법(佛法)의 진리는 혼자서 스스로 ‘알았다’고 하는, 그것으로써 살림을 삼으면 모두 사견(邪見)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스승 없이 깨달은 자(者)는 모두 천마(天魔)이고 외도(外道)이다.” 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한 고로 제불제조(諸佛諸祖)께서 모든 사견(邪見)으로부터 정법정안(正法正眼)을 지키기 위하여 인증(印證)의 가풍(家風)을 확고히 세워놓으신 것이다.

옛날 중국에 암두(岩頭) 선사께서 불법사태(佛法沙汰)를 당하여 속복(俗服)을 입고 머리를 길러서 뱃사공을 하면서 사셨던 적이 있었다.
양쪽 강둑에 각각 목판(木板)을 하나씩 걸어놓고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와서 그 목판을 치면, 초막에서 노를 잡고 춤을 추며 나와서 강을 건네 주시곤 하였다.
어느 날 한 보살이 아이를 업고 와서 목판을 쳤다. 암두 선사께서“누구요?” 하고 나와 여느 때처럼 춤추며 와서 배를 대니, 보살이 갑자기 아이의 멱살을 잡아 쳐들고서 물었다.
“노를 잡고 춤추는 것은 묻지 아니하거니와, 이 아이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일러 보시오.”
암두 선사께서는 말 없이 노를 가지고 뱃전을 세 번 쳤다.
그러자 보살은,
“내가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어도 여지껏 아는 자를 만나지 못했는데, 일곱번째 아이를 낳고 만난 이 자도 역시 신통치 못하구나.”
하면서 쳐들고 있던 아이를 강 가운데로 던져 버렸다.
그런 후로 암두 선사께서는 뱃사공 일을 걷어치워 버리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 번 생각을 해보자.
귀한 아이를 강에다 던져버린 까닭은 무엇이며 또, 어떻게 답을 했어야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었겠는가?
그러면, 암두 선사께서 뱃전을 세 번 친 그 답이 잘못된 것인가?
아이를 강물에 던진 보살은 어떠한 용심(用心)을 한 것인가?
이것이 가장 알기 어려운 법문이다. 능히 이러한 관문을 통과해야만 과거장(科擧場)의 합격자로 인증(印證)을 받아, 비로소 만인에게 불법의 진리를 펼 수 있는 사표(師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은 암두 선사와 보살을 알겠는가?

대중의 답이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兩個惡賊相逢(양개악적상봉)
各設陷虎之機(각설함호지기)

사나운 두 도적이 서로 만남에
각각 범 잡는 함정을 베풂이로다.

을축년(1985) 시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12. 남전(南泉)ㆍ조주(趙州)의 호환지기(互換之機)


담너머 뿔이 보임에 소가 있는 줄을 알고,
산너머 연기가 남에 불이 난 줄을 앎이로다.

이러한 일들은 종사가(宗師家)에게는 일상(日常)의 다반사(茶飯事)이니, 전신자재(轉身自在)의 일구(一句)를 알아야만 비로소 대도(大道)의 문에 들었다 하리라.

일일(一日)에 남전(南泉) 선사께서 방장실(方丈室)에서 쉬고 계시던 차제에, 조주(趙州) 스님이 찾아와 예(禮)하니,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어젯밤에 문수 보살과 보현 보살을 각각 삼십 방(棒)씩 때려서 철위산(鐵圍山) 지옥으로 던졌느니라.”
조주 스님이 이 말을 듣고서 여쭙기를,
“스님께서는 누구의 방망이를 맞으시렵니까?”
하니, 남전 선사께서 되물으셨다.
“왕노사(王老師)의 허물은 어디에 있는고?”
이에 조주 스님이 큰 절을 한 자리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두 분 선사의 묻고 답한 기봉(機鋒)을 알겠는가?

한참 묵묵히 계시다가 이르시기를,

東涌西沒(동용서몰)
左邊吹右邊拍(좌변취우변박)
天上人間能幾幾(천상인간능기기)

동에서 솟아오름에 서에서는 이미 흔적도 없음이요,
왼쪽에서 노래부르고 오른쪽에서 장단침이라.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 이 같은 기봉(機鋒)을 갖춘 이가 몇몇이리오.

필경(畢竟)에 어떠한가?

板齒老漢西來後(판치노한서래후)
無限平人被陸沈(무한평인피륙침)

판치노한 이 서역에서 온 후로
무수 사람들이 속임을 당함이로다.

을축년(1985) 동안거 결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13. 여래선(如來禪) 조사선(祖師禪)


인인면전(人人面前)에는 심월(心月)이 뚜렷이 밝아 있고, 집집마다 문전(門前)에는 진리의 장안로(長安路)가 열려 있음이로다.

만약 사람들이 와서 불법(佛法)의 진리를 묻는다면,

때로는 금강왕(金剛王) 보검(寶劍)의 일구(一句) 진리를 만인에게 들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무서운 사자(獅子)가 걸터앉아 있는 작용(作用)을 보이기도 하고,
또한, 때로는 천성 만성인(千聖萬聖人)의 혀끝을 끊기도 하며,
때로는 진리를 물으면 진리를 답(答)하고 심성(心性)을 물으면 심성을 답한다.

방금 산승(山僧)이 열거한 법문을 바로 알 것 같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될 안목(眼目)을 갖추게 될 것이며 또한, 천상(天上)과 인간의 지도자가 될 정안(正眼)을 갖추게 되고 또한, 자신의 일을 다해 마친 요사인(了事人)이 될 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바로 알지 못할진대는, 과거 전생(前生)의 모든 업장(業障)의 습기(習氣)가 해운대 앞바다의 파도처럼 밀어닥쳐, 살아가는 데 온갖 고통이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위대한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느냐?
사람 사람의 목전(目前)에 큰 태산이 가로놓여 있다. 이 산을 넘어야 푸른 숲이 우거져 있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아름다운 새들이 지저귀는 가없는 대평야(大平野)에 도달하게 된다. 이 평야에 이르러야 세세생생 진리의 세계에서 한가히 노닐 수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 태산(太山)은 돈을 가지고도 넘을 수가 없고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도 넘을 수가 없다. 오직 불법(佛法)의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바로 듣고 대신심(大信心)을 내어 쉬지 않고 꾸준히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야 최고봉(最高峰)에 도달하게 된다.
이 산을 넘는 일은 발심(發心)을 한 번 하고 신심(信心)을 한 번 내어 나아간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시시각각(時時刻刻)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새롭게 다져서 나아가고 또 나아가야 되지, 그렇게 하지 않고는 많은 생(生)에 지어온 습기(習氣)에 엎어지게 된다.
사람이 과거 전생(前生)에 무수히 몸을 받고 받아왔던 가운데 아만심, 교만심, 시기, 질투, 애정, 이러한 등등의 잘못된 인습(因習)만 익혀온 고로, 그것이 이 좋은 마음법을 닦는 데 까지도 크나큰 장애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생각지도 않는데도 문득 마음 가운데 자리를 잡고 주인이 되어 있어,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부는 마치 시퍼런 칼날 위를 걸어갈 때와 같이 온 정신을 모아 해나가지 않는다면 절대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니,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릴 일이다.

「금강경(金剛經)」에 이르기를,

凡所有相皆是虛妄(범소유상개시허망)
若見諸相非相(약견제상비상)
卽見如來(즉견여래)

무릇 형상 있는 바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相)이 상 아닌 줄 알 것 같으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부처님 당시로부터 천이백 년 후에 법안(法眼) 선사께서 출세(出世)하셔서,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설(說)해놓으신 이 말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評)을 하셨다.

모든 상(相)이 상이 아닌 줄 알더라도, 여래(如來)는 보지 못하리라.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한 분은 부처님이시고 한 분은 대선사(大禪師)이신데, 보시는 바가 어찌 같지를 않느냐?

한 분은 여래선(如來禪)을 밝히셨음이요,
한 분은 조사선(祖師禪)을 밝히신 것이로다.

중국에 위산(潙山) 선사 문하에는 앙산(仰山)·영운(靈雲)·향엄(香嚴) 스님, 이렇게 세 분의 훌륭한 제자가 있었다.
하루는 형제지간에 진리의 법담(法談)이 벌어져, 앙산 스님이 향엄 스님에게 물었다.
“요즘 사형(師兄)의 견처(見處)가 어떻습니까?”
“한 법(法)도 정(情)에 합당함이 없습니다.”
“한 법도 정에 합당함이 없다는 자, 이 누구입니까?”
향엄 스님이 이에 그만 꽉 막혀 대답을 못하였는데, 여기에서 다시 깨달음으로 뛰쳐서 송(頌)하기를,

去年貧未是貧(거년빈미시빈)
今年貧始是貧(금년빈시시빈)
去年無卓錐之地(거년무탁추지지)
今年錐也無(금년추야무)

거년의 가난은 가난한 것이 아니요
금년 가난이 비로소 가난함이로다.
거년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더니
금년에는 송곳조차 없음이로다.

앙산 스님이 이 송(頌)을 듣고는,
“사형께서 여래선(如來禪)은 알았으나 조사선(祖師禪)은 꿈에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향엄 스님이 다시 게송(喝頌)을 지어 보였다.

我有一機(아유일기)
瞬目示伊(순목시이)
若人不會(약인불회)
別喚沙彌(별환사미)

나에게 한 기틀이 있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대에게 보이노니,
만약 그대가 알지 못할진대는
달리 사미라고 부르리라.
그러자 앙산 스님이,
“사형이 조사선을 알았습니다.”
하고 크게 기뻐하였다.

이러한 차별(差別)의 법문을 밝히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도인 문중(門中)에서 예전부터 이 법문에 대해 말이 아주 많았던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법문 문답의 골수(骨髓)를 바로 알아야만 부처님의 정법정안(正法正眼)을 갖출 수가 있다.
그러면, 여래선(如來禪)과 조사선(祖師禪)은 어떠한 관계가 있느냐?

우리가 여래선을 분명히 알 것 같으면 조사선도 분명히 아는 법이요, 조사선을 분명히 알면 여래선을 바로 안다. 진리를 깨달으면 여래선이 곧 조사선이고, 조사선이 곧 여래선이다.

그렇다면“사형이 여래선은 알았지만 조사선은 알지 못했다.”고 한 앙산 스님의 저의(底意)가 어디에 있느냐?

宗師家回互底時節(종사가회호저시절)
腦後見腮不如往來(뇌후견시불여왕래)

종사가의 회호저 시절이라
뇌 뒤에 볼이 나온 사람을 보거든 왕래하지 말지니라.

병인년(1986) 동안거 해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14. 운문(雲門) 삼전어(三轉語)


사람 사람이 다 자신의 마음의 고향에 돌아가게 되면,

허공보다도 넓은 그 곳에 무진제불(無盡諸佛)이 주야로 무생멸법(無生滅法)을 설(說)하니
항하(恒河)의 모래알 수보다도 많은 보살(菩薩)들이 합장하여 청법(聽法)함이로다.
마음의 고향에는 좌변에 자금(紫金)·마노(瑪瑙), 우변에 호박(琥珀)·진주(眞珠)로 중중장엄(重重莊嚴)됨이니
땅은 황금빛으로 가득했고 수목이 울창하여 온갖 새들이 무생가(無生歌)를 부름이로다.

필경(畢竟)에 어떻게 해야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느냐?

옴 호로호로로다.

운문(雲門) 선사께서 세연(世緣)이 다해가니 제자들을 모아 놓고,

어떠한 것이 부처님법의 진리의 도(道)인가?
어떠한 것이 취모검(吹毛劍)인가?
어떠한 것이 제바종(提婆宗)인가?

이 세 가지 법문을 물으셨다.
여러 제자들 중에서 파릉(巴陵) 스님이,
“부처님법의 진리의 도(道)는‘눈 밝은 사람이 우물에 빠졌음이요’, 취모검은 ‘산호(珊瑚)나무 가지가지에 달이 주렁주렁 매달렸음이요’, 제바종은 ‘은쟁반 위에 흰 눈이 소복히 쌓인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운문 선사께서 이 답처(答處)를 듣고 매우 기뻐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가면, 너희들은 기일에 젯상에다 갖가지 음식을 차리지 말고 항상 이 세 마디 법문을 일러주길 바란다.”
이 세 마디 법문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49년간 설(說)하신 팔만대장경을 뛰어넘는 것이다.
운문 일가(一家)를 알겠는가?

盲人相逢堪笑處(맹인상봉감소처)
扶籬摸壁可憐生(부리모벽가련생)

눈 먼 사람들이 서로 만나 웃는 곳에
울타리를 붙잡고 담장이라 하니 가히 불쌍하구나.

병인년(1986) 하안거 결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15. 감지 행자(甘贄行者)의 독경청(讀經請)


見聞非見聞(견문비견문)
聲色非聲色(성색비성색)

보고 듣는 것이 보고 듣는 것이 아니요,
소리와 빛이 소리와 빛이 아님이로다.

방금 산승(山僧)이 한 말의 뜻을 분명히 알 것 같으면, 중생의 모든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번뇌(煩惱)가 다 끊어져 부처님의 진리의 열반락(涅槃樂)을 수용하게 되므로, 부처님과 동등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목주(睦州) 선사 회상에 한 신심(信心) 있는 처사(處士)가 매일 일정한 시간에 목주 선사를 찾아와 법문을 듣고 가곤 했다. 하루는 평소에 오던 시간을 어겨 늦게 왔으므로, 목주 선사께서 물으셨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는고?”
“마타구(馬打毬)를 구경하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사람이 공을 치던가, 말이 공을 치던가?”
“사람이 공을 칩디다.”
“사람이 곤(困)하던가?”
“예.”
“말이 곤(困)하던가?”
“예.”
“공치는 채도 곤(困)하던가?”
여기에서 처사는 말을 못하였다가 집에 돌아와 밤중에 홀연히 깨닫고서, 이튿날 목주 선사께 가서 인가(印可)받았다.

공치는 채인 막대기가 곤(困)한가를 묻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남전(南泉) 선사 회상에 감지 행자(甘贄行者)가 하루는 공양구(供養具)를 잔뜩 싣고 와서 대중 스님들께 공양을 잘 올렸다. 스님들이 공양을 마치자 처사가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는 한 가지 청(請)을 했다.
“저를 위해서 한 편의 경(經)을 독송(讀誦)해 주십시오.”
대중 스님들이 일제히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독송해 주니,
“그 경(經)은 청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처사가 말했다.
이것 참 기가 막힐 일이다. 시주의 공양받기가 그리 힘이 드는 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經)을 독송해야 하는가?
남전 선사의 시자가 대중과 함께 있다가 조실방으로 가서 이 일을 아뢰니, 남전 선사께서는 즉시 일어나 큰 돌을 하나 안고 공양간으로 가셔서 대중의 공양솥을 깨버리셨다.

어째서 ‘그 경(經)은 청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서 큰 돌을 가지고 가 대중의 공양솥을 깨버렸느냐?
이 도리를 알아야 시주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하루에 만냥 황금이라도 녹일 수 있는 실력이 되어서 빚이 안되는 법이다.
대중아,
남전 선사께서 돌을 안고 가서 솥을 깨버린, 그 도리를 아는 자 있으면 한 번 멋지게 답해 보라.

한참 묵묵히 계시다가 이르시기를,

원주(院主)야, 내일부터는 대중 스님들 운력을 시키지 마라.

병인년(1986) 칠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16. 임제 ‘할’(臨濟喝) 덕산 ‘방’(德山棒)


부처님의 근본진리(根本眞理)를 논(論)하건대,

번갯불도 미치지 못하고 돌불도 통하지 못함이며,
피물결은 파도를 짓고 시신(屍身)은 또한 산을 이룸이로다.

이러한 심오한 진리의 법을 알 것 같으면, 가는 곳마다 법왕(法王)이 되고 가는 곳마다 진리의 스승이 되어서, 만인에게 광명(光明)이 되고 힘이 될 것이다.
임제(臨濟) 선사와 덕산(德山) 선사는 선지식 가운데 으뜸 가는 선지식으로 이 견성법(見性法) 문중에 근본의 정안(正眼)을 갖추신 분들이요, 천추만대(千秋萬代)에 종문(宗門)의 귀감이 되는 분들이다.

임제 스님이 선(禪)에 뜻을 두고 황벽(黃檗) 선사 회상을 찾아가서, 3년 동안 산문(山門)을 나가지 않고 참선정진에 전력(全力)을 다 쏟았다. 그 회상에 몇백 명 대중이 모여 수행생활을 했지만, 임제 스님과 같이 신심(信心)과 용맹(勇猛)으로 일거일동에 화두와 씨름하는, 그러한 좋은 기틀을 가진 사람이 둘도 없었을 만큼 빈틈없이 정진하였다.
당시에 입승(立繩)을 보던 목주(睦州) 스님이 임제 스님을 쭉 지켜보고는 큰 그릇으로 여기고, 하루는 조실(祖室)이신 황벽 선사를 찾아가서 그러한 말씀을 드렸다.
“우리 회중(會中)에 장차 산마루에 큰 정자나무가 될 만한 인물이 있으니 조실 스님께서 자비로 제접(提接)하여 주십시오.”
“내가 벌써 알고 있네.”
황벽 선사께서는 이미 큰 법기(法器)가 하나 와서 진실하게 공부 해나가고 있는 것을 간파(看破)하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나서, 스님께 그 수좌(首座)를 보낼 터이니 잘 지도하여 주십시오.”
목주 스님은 황벽 선사께 이렇게 청을 드려놓고, 임제 스님을 찾아가서
“그대가 지금까지 열심히 참구(參究)하여 왔으니 이제는 조실 스님께 가서 한번 여쭈어 보게.”
하니, 임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을 여쭈어야 합니까?”
“불법(佛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여쭈어 보게.”
임제 스님은 목주 스님이 시키는 대로 조실방에 찾아가 예삼 배(禮三拜)를 올리고서 여쭈었다.
“스님, 어떠한 것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입니까?”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벽 선사께서는 주장자(拄杖子)로 이십방(棒)을 후려 갈기셨다.
임제 스님이 겨우 몸을 이끌고 나와 간병실에서 쉬고 있으니, 목주 스님이 찾아왔다.
“갔던가?”
“예, 가서 스님의 지시대로 여쭈었다가 방망이만 흠씬 맞아 전신이 다 부서진 것 같습니다.”
“이 대도(大道)의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신명(身命)을 내던져야 하네. 설사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만 쪽이 나더라도 거기에 조금이라도 애착을 두어서는 안되네. 그러니 그대가 다시 한번 큰 신심(信心)을 내어, 내일 아침에 조실 스님께 가서 종전과 같이 묻게.”
이 경책에 힘입어 다음날, 임제 스님은 다시 용기를 내어 조실방에 들어갔다.
“어떠한 것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입니까?”
이렇게 여쭈니,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이십 방(棒)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목주 스님은 간병실에 누워 있는 임제 스님을 찾아와 사정얘기를 듣고 나서 거듭 힘주어 말했다.
“이 법은 천추만대(千秋萬代)에 아는 선지식을 만나기도 어렵고 바른 지도를 받기도 어려운 것이니, 밤새 조리를 잘 하고 다시 용기와 신심을 가다듬어 내일 조실 스님을 찾아가게.”
그 다음날도 임제 스님은 조실방에 들어갔다가 역시 종전과 같이 혹독한 방망이만 이십 방(棒) 맞고 물러나오게 되었다.
임제 스님은 더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목주 스님에게 말했다.
“저는 아마도 이 곳에 인연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는 것은 좋으나 조실 스님께 하직인사나 올리고 가게. 갈 곳을 일러주실 것이네.”
임제 스님이 떠날 채비를 다 해놓고서 황벽 선사께 가서,
“스님, 스님께서는 큰 자비로 저에게 법(法)방망이를 내려 주셨는데, 제가 업(業)이 지중하여 미혹(迷惑)한 까닭에 진리의 눈을 뜨지 못하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고는 하직인사를 올렸다.
“어디로 가려는가?”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바로 고안(高安) 강변으로 가서 대우(大愚) 선사를 찾게. 틀림없이 자네를 잘 지도해 주실 것이네.”
그리하여 임제 스님이 바랑을 짊어지고 고안 대우 선사 처소를 향해 수백 리 길을 걸어가는데, 걸음걸음이 의심이었다.
무슨 의심이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났는가 하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어째서 황벽 선사께서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세 번 다 이십 방(棒)씩 육십 방을 내리셨을까?’
그대로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빠져서 걷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수백 리 길을 걸어갔다. 팔만 사천 모공에 온통 그 의심뿐이었던 것이다.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참선법은 바로 이와 같은 일념(一念)을 지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참구하는 한생각이 간절하게 지속되게 되면, 그 가운데서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지은 업(業)이 빙소와해(氷消瓦解)되어 몰록 진리의 문에 들어가게 되는 법이다.
참학인(參學人)들이 10년, 20년 동안을 참구해도 진리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까닭은,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간절한 한생각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경계를 다 잊어버리고 몰록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들어 부동일념(不動一念)이 되면, 일기일경상(一機一境上 )에 홀연히 견성대오(見性大悟)하게 된다.
임제 스님이 여러 달을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고안에 당도하여 대우(大愚) 선사를 참예하였다.
“그대가 어디서 오는고?”
“황벽 선사 회상에서 지내다가 옵니다.”
“황벽 선사께서 무엇을 가르치시던가?”
“제가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세 번이나 여쭈었다가, 세 번 다 몽둥이만 흠씬 맞았습니다. 대체 저에게 무슨 허물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대우 선사께서 무릎을 치시면서,
“황벽 선사께서 그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가르치셨는데, 그대는 여기 와서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가?”
하시며 ‘허허’웃으셨다.
순간, 웃는 그 소리에 임제 스님은 홀연히 진리의 눈을 떴다. 그토록 의심하던 ‘황벽 육십 방(棒)’의 낙처(落處)를 알았던 것이다.
“황벽의 불법(佛法)이 별 것 아니구나!”
임제 스님이 불쑥 이렇게 말하자, 대우 선사께서 임제 스님의 멱살을 잡고는 다그치셨다.
“이 철없는 오줌싸개야! 네가 무슨 도리를 알았기에, 조금전에는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더니 이제 와서는 황벽의 불법이 별 것 아니라고 하느냐?”
그러자 임제 스님이 대우 선사의 옆구리를 세 번 쥐어박으니, 대우 선사께서 잡았던 멱살을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대의 스승은 황벽이니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네.”
임제 스님이 다시 황벽 선사께 돌아와, 여러 해 동안 모시면서 탁마(琢磨)하여 대종사(大宗師)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선(禪) 문중에서는 납자(衲子)가 종사(宗師)의 기틀을 갖추게 되면, 스승으로부터 법을 부촉(付囑)받고 분가(分家)하여서 다른 곳에 회상을 연다. 이 때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부촉하는 표시로 주장자(拄杖子)나 불자(拂子)를 부치는데, 이 주장자와 불자는 모든 부처님의 살림의 정안(正眼)인 것이다.
하루는 임제 스님이 하직인사를 올리니, 황벽 선사께서 시자를 불러 이르셨다.
“주장자와 불자를 가져오너라.”
그러자 임제 스님이 즉시 응수(應酬)하기를,
“시자야, 불〔火〕 가져오너라.”
하였다.
이렇듯 기틀을 쓰는 데 있어서 돌불보다도 빠르고 번개보다도 빨랐다.
그 후 화북(華北)에 머물면서 후학을 지도하셨는데, 누구든지 법을 물으려고 문에 들어서면 벽력 같은 ‘할(喝)’을 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황벽․대우․임제, 세 분 도인을 알겠는가?
대중이 아무 말 없자 이르시기를,

同坑無異土(동갱무이토)
千里同風(천리동풍)
萬里知音(만리지음)

같은 구덩이에 다른 흙이 없음이나
천 리 밖에서 바람을 같이 하고
만 리 밖에서 소리를 앎이로다.

덕산(德山) 스님은 처음에 북방(北方) 서촉땅에 있으면서 교학(敎學)을 깊이 연구했는데, 특히 금강경(金剛經)에 통달하여 세인들로부터 주금강(周金剛)이라고 칭송을 받았다.
스님은 당시에 남방에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을 주장하며 교학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선종(禪宗) 무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크게 분개하여, 평생 연구했던 「금강경소초(金剛經疏鈔)」를 짊어지고 남방을 향해 행각(行脚)에 올랐다.
경(經)에는 삼아승지겁(三阿僧衹劫) 을 닦아야 성불(成佛)한다고 쓰여 있는데, 남방 마구니들은 ‘성품을 보면 그대로가 곧 성불(成佛)’이라고 주장을 하니, 자신이 가서 혼내 주리라 작정했던 것이다.
정말 그 용기와 신심이 대단하다.
수천 리 길을 걸어서 남방(南方)의 예양(澧陽)이라는 곳에 당도하였는데, 점심때가 되어 배가 고프던 차제에 마침 한 노파가 길가에서 떡을 팔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금강경소초가 잔뜩 든 바랑을 옆에다 내려놓고는,
“점심 요기를 하고 싶으니 그 떡을 좀 주시오.”
하니, 노파가 스님을 쳐다보고는 물었다.
“스님, 그 바랑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금강경소초가 들어 있소.”
“그러면 제가 금강경에 대해서 한 마디 물어 보겠습니다. 스님께서 제가 묻는 말에 바른 대답을 하시면 점심 대접을 잘 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떡을 드릴 수 없으니 다른데 가서 요기를 하셔야 합니다.”
“그러지요.”
덕산 스님이 흔쾌히 허락하니 노파가 물음을 던졌다.
“「금강경」에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스님은 지금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려고〔點心〕 하십니까?”
여기서 덕산 스님은 꽉 막혀 버렸다. 금강경은 완전히 달통(達通)했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그 살림살이를 가지고 남방 선지식들을 혼내 주려고 수천 리 길을 행각(行脚)하여 내려오는 판인데, 길가에서 떡 파는 노파의 한 마디에 그만 벙어리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 위세당당하던 의기(意氣)가 한풀 꺾여, 노파에게
“이 근방에 큰스님이 계십니까?”
하고 물으니, 노파가 한 곳을 인도해 주었다.
“여기에서 한 오 리쯤 가시면 용담사(龍潭寺)라는 절이 있는데, 거기에 숭신(崇信) 선사라는 훌륭한 선지식이 계십니다.”
그리하여 덕산 스님이 용담사를 찾아 가는데 걸음걸음에, 노파가“과거심(過去心)도 불가득(不可得)이요, 현재심(現在心)도 불가득(不可得)이요, 미래심(未來心)도 불가득(不可得)이라”는 「금강경」의 문구를 빌어서“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려느냐?”고 했던 물음이, 그대로 화두가 되어 사무치고 사무쳤다.
그렇게 일념(一念)에 빠진 상태에서 걸어 용담사에 당도하여서는 큰 소리로 기세당당하게 말했다.
“오래 전부터 용담(龍潭)이라는 말을 들었건만 지금 와서 보니 용(龍)도 없고 못〔潭〕도 없구나.”
용담 선사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는 문을 열어젖히고 나오시면서,
“그대가 친히 용담(龍潭)에 이르렀네.”
하시며 반가이 맞으셨다.
여기서 덕산 스님은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이것으로 인해 덕산 스님은 용담 선사께 선지(禪旨)를 참문(參問)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 객실로 돌아가려고 방문을 나서는데, 객(客)이라서 도량(道場)도 설은 데다 밖이 너무 어두워서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등불을 찾으니 용담 선사께서 용심지에 불을 켜서 주시므로 덕산 스님이 그것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 때 용담 선사는 별안간 ‘훅’ 불어서 불을 꺼버리셨다. 찰나, 덕산 스님의 마음광명이 활짝 열렸다.

왜 불을 켜주시고서는 그것을 받으려는 순간에 즉시 꺼버리셨을까?
도인이라야 이러한 기봉(機鋒)이 나온다. 부처님 경서(經書)에 아무리 박식하다고 해도 이러한 기봉은 갖출 수가 없는 법이다.

다음날, 날이 밝아오자 덕산 스님은 바랑에 지고 왔던 금강경소초를 법당 뒤켠에서 불살라 버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삼세 제불(三世諸佛)이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법(法)을 설(說)한다 해도 터럭 하나를 허공중에 날리는 것과 같고, 모든 성인(聖人)이 세상의 요긴한 기틀을 다 쓴다 해도 한 방울 물을 큰 골짜기에 던지는 것과 같다.”
용담 선사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는 아침공양 끝에 대중에게,
“사내(寺內)에 이빨은 칼날과도 같고 입은 큰 항아리와도 같은 무서운 분이 있으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조심하라!” 하고 이르셨다.
얼마나 이가 날카롭기에 칼날과 같다고 했으며, 얼마나 입이 크기에 큰 항아리와 같다고 했겠는가? 그러니 그 앞에서 우물쭈물하다가는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는다는 말이다.
이렇듯 누구든지 덕산 선사와 같이 불퇴전(不退戰)의 신심(信心)과 천불 만조사(千佛萬祖師)가 나와도 굴하지 아니하는 용맹심만 지닐 것 같으면, 다 깨달음을 얻어 덕산 선사와 같은 기틀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덕산 선사께서는 여기에서 깨달으신 후, 후학을 제접(提接)함에 있어서 누구든지 법을 물으려고 문에 들어서면 번개 같은 ‘방(棒)’을 내리셨다.

덕산 선사의 살림살이를 알겠는가?

三世諸佛祖(삼세제불조)
氷山裏發火(빙산리발화)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가
빙산 속에서 발하는 불에 불과함이로다.

임제 선사께서는 누구든지 법을 물으려고 문에 들어서면 벽력 같은 고함을 지르셨고, 덕산 선사께서는 주장자로 사정없이 후려갈기셨는데,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두 분 도인의 법쓰는 기틀을 알겠는가?

주장자를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임제 선사의 ‘할(喝)’은 천하 사람의 눈을 다 멀게 함이요,
덕산 선사의 ‘방(棒)’은 천하 사람의 눈을 다 열게 함이로다.

그러면, 눈을 멀게 함이 옳으냐, 눈을 열게 함이 옳으냐?

春生夏長秋收冬藏(춘생하장추수동장)

봄에 만물이 나서 여름에 성장하고 가을에 거두어들여 겨울에 저장함이로다.

병인년(1986) 십일월 보름 해운정사 원통보전


17. 이심전심(以心傳心)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아침을 맞는 이때를 당하여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
산승(山僧)은 있다 하리라.
그러면 어떠한 것이 신년 벽두(劈頭)의 부처님의 진리인가?

집집마다 동자(童子)들이 색동옷 입고 희희낙낙 놀고 있고
나이 많은 노인들은 사랑방에 모여 앉아 서로 술잔을 건넴이로다.

이것은 세간(世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모습인데, 왜 부처님의 진리를 이렇게 표현했는가?
진리를 알면 세상사(世上事)를 버리고 따로이 부처님의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迷)한 자에게는 부처님께서 설(說)하신 팔만 사천 법문도 팔만 사천 번뇌(煩惱)가 되지만, 진리의 눈이 열리면 팔만 사천 번뇌의 업장(業障)이 그대로 팔만 사천 지혜(智慧)로 돌아온다.
그렇게 되면 춤추고 술마시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하는 등의 일체의 세간법(世間法)이 다 부처님의 진리 아닌 것이 없는 법이다.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시고서 가장 높은 진리를 들어 보이셨는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눈뜬 봉사요, 귀머거리라서 알아듣지를 못하니, 불가불 소승법(小乘法)을 설하시게 되었다.
소승법이란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과보(果報)를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과보를 받아 사사건건 괴로움이 밀어닥치니,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설(說)하신 법문이다.
이러한 법문을 12년간 설하시다가 그 다음에는 대승법(大乘法)을 설하셨다.
모든 형상(形相) 있는 바가 다 허망(虛妄)한 것이며, 허망한 이 가운데 진리를 본다면 허망한 낱낱의 것이 모두 진리라는 좋은 법을 열어 보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최상승(最上乘)의 진리를 가섭존자(迦葉尊者)에게 전하셨다.
이렇게 인연(因緣)따라 49년간 법(法)을 펴시다가 세연(世緣)이 다하여 함이 없는 진리의 세계에 입적(入寂)하셨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모습을 뵐 수도 없고 법문도 들을 수가 없게 되자, 아난 존자(阿難尊者)가 가섭 존자에게 물었다.
“존자는 부처님께서 수(垂)하신 금란가사(金襴袈裟) 와 발우(鉢盂) 외에 달리 전해 받으신 법(法)이 있습니까?”
이에 가섭 존자께서,
“문전(門前)의 찰간(刹竿)을 거꾸러뜨려라.”
라고 한 마디 던지셨다.
이 말씀으로 인해 아난 존자가 깨달음을 얻어 가섭 존자의 법(法)을 잇게 되었다.

알겠는가?

一拳拳倒黃鶴樓(일권권도황학루)
一踢踢翻鸚鵡州(일척척번앵무주)

한 주먹으로 황학루를 거꾸러뜨리고
한 번 차서 앵무주를 뒤집는구나.

정묘년(1987) 정월 초사흘 해운정사 원통보전


18. 열반(涅槃)의 참뜻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이르시다.

이 주장자의 진리를 바로 알 것 같으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라쌍수(娑羅雙樹) 동산에서 열반(涅槃)에 드심이 없음이요,
미륵 보살이 도솔천궁(兜率天宮)에서 이억 오천만 년 후의 출세(出世)를 기다리시지 아니함이라.

이 우주가 성주괴공(成住壞空)을 거듭해온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에, 무수한 부처님이 출세하시어 만중생을 위하여 법을 베푸셨으나, 진리의 눈으로 보건대는 세상에 나오신 부처님이 한 분도 없다. 한 부처님도 이 세상에 나오지 않으셨으니, 열반에 드신 부처님 또한 한 분도 계시지 않다.

필경(畢竟)에 어떠한가?

二月寒食淸明後(이월한식청명후)
綠樹枝上黃鶯啼(녹수지상황앵제)

이월 한식 청명 후에
푸른나무 가지 위에 노랑꾀꼬리가 욺이로다.

정묘년(1987) 열반재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19. 보화 존자(普化尊者) 전신탈거(全身脫去)


대도(大道)의 진리는 같고 다름이 끊어짐이니
어느 누가 진리의 눈을 열지 못하리오.
집 뒤안에는 몇 마리 사슴들이 한가히 놀고 있고,
일 없는 노승(老僧)은 좌선(坐禪)중에 졺이로다.

이러한 법문(法門)의 내막을 알 것 같으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알게 되고, 모든 도인의 살림살이를 알게 되며, 팔만장경(八萬藏經)의 법문을 다 알게 된다. 또, 억만 년 전의 나의 참모습을 알게 되고 억만 년 후의 나의 참모습도 알게 된다.
이 부처님의 진리는, 인간의 모든 허상(虛相)과 모든 유형지물(有形之物)을 타파해야만 진리의 참모습이 현전(現前)되는 법이다.
모든 번뇌가 다하고 참모습이 드러난 거기에는 상대(相對)가 다 끊어지고 없다. 거기는 영겁(永劫)토록 나고 죽고 변하는 법이 없다.
이 우주는 이렇게 있다가도 여러 억만 년이 지난 후에는 반드시 없어진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다시 이루어졌다가 또 없어지고 하는데, 우주가 이러한 성주괴공(成住壞空)을 해운대 모래알 숫자만큼이나 무수히 반복하더라 해도,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 이 진리의 살림살이이다.
그러니 이러한 진리의 살림살이를 수용하여 생사안두(生死岸頭)에서 자유인이 되고, 살활종탈(殺活縱奪), 여탈자재(與奪自在)의 수완을 갖춘 대자재인(大自在人)이 되어야 비로소 대장부 할 일을 다해 마친 사람이라 하리라.

반산 보적(盤山寶積) 선사 밑에 보화(普化) 존자라는 제자가 있었다. 보적 선사께서 임종(臨終)에 다다라 마지막 법문을 하시기 위해 상당(上堂)하여 대중에게 이르셨다.
“대중은 모두 나의 모습을 그려오너라.”
이에 몇백 명 대중이 모두 화상(畵像)을 그려다가 바쳤으나 모두“아니다.”라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상수(上首)제자인 보화 존자가 빈 손으로 나와서는 말했다.
“제가 그려왔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내게 가져오지 않느냐?”
보적 선사께서 물으시자, 보화 존자가 냅다 세 번 곤두박질을 치고는 나가 버렸다. 이것을 보시고 보적 선사께서,
“저 녀석이 장차 미친 거동으로 불법(佛法)을 펴나갈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모습을 그려오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곤두박질을 세 번 하였을까?
여기에 심오한 뜻이 있다.
그러니 곤두박질을 세 번 하는, 이것을 보시고서 보적 선사께서 보화 존자의 일생사(一生事)를 다 점검하셨던 것이다.
도인의 수기(授記) 라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보고 일생사를 평(評)하는 것이므로 아주 무서운 것이다.
과연, 보화 존자께서는 일생을 머트러운 요사인(了事人) 생활을 하시면서 시내 복판에서 요령을 흔들고 다니며 법을 펴셨다.

하루는 임제(臨濟) 선사께서 기거하시던 절에 대중공양이 들어와서 그 근방에 계시는 스님 두 분을 초청했는데, 한 분은 목탑(木塔) 선사요, 한 분은 하양(河陽) 선사였다.
세 분이 함께 공양상을 받고 이야기를 나누며 드시던 중에, 우연히 보화 존자 이야기가 나왔다.
“보화가 시내 한복판에서 미치광이짓을 하는데 그 녀석이 범부(凡夫)인가, 성인(聖人)인가?”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언제 왔는지 보화 존자께서 방으로 들어오셨다.
임제 선사께서 보화 존자를 보고,
“자네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 도리어 물으셨다.
“자네들이 한번 일러 보게. 내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즉시 벽력 같은 ‘할(喝)’을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는
“목탑은 노파선(老婆禪)이요, 하양은 신부자(新婦子)요, 임제 소시아(小시兒)는 일척안(一隻眼)을 갖추었다.”
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범부냐, 성인이냐?”는 물음에 목탑 선사가 답을 못하고 멍하게 앉아 있으니, 나이 많은 노보살들이 참선한다고 하면서 힘없이 흉내만 내고 앉아 있는 것에 비유하여, 노파선(老婆禪)이라 한 것이다. 그리고 하양 선사를 신부자(新婦子)라고 한 것은 마치 신부와 같이 얌전에 빠져서 꼼짝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시아(小廝兒)라는 말은 심부름하는 아이를 일컫는 것인데, 임제 도인을 심부름하는 아이로 취급하여 그가 진리의 눈을 갖추었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임제 선사께서,
“이 도적놈아!”
하시자, 보화 존자께서는
“도적아! 도적아!”
하면서 그만 나가 버리셨다.

대중은 알겠는가?

두 도적이 상봉(相逢)하여 왼쪽에서 젓대 불고 오른쪽에서 장단 맞추니, 청아(淸雅)한 소리가 온 우주에 가득함이로다.

보화 존자께서 항상 거리에서 요령을 흔들면서 외치고 다니시기를,

明頭來明頭打(명두래명두타)
暗頭來暗頭打(암두래암두타)
四方八面來旋風打(사방팔면래선풍타)
虛空裏來連架打(허공리래연가타)

밝은 것이 오면 밝은 것으로 치고
어두운 것이 오면 어두운 것으로 치고
사방팔면에서 오면 회오리바람으로 치고
허공 속에서 오면 도리깨로 친다.

하시면서 밤낮으로 동행(東行)하고 서행(西行)하셨다.
임제 선사께서 하루는 시자(侍者)를 불러 이르셨다.
“네가 거리에 나가 보화 존자께서 요령을 흔들며 외치실 때, 뒤에서 허리를 꽉 끌어안고서 ‘그 네 가지가 모두 오지 아니할 때에는 어떻게 하시렵니까?’하고 여쭈어 보아라.”
그래서 시자가 임제 선사께서 시키신 대로 행하며 여쭈니,
보화 존자께서는
“내일 대비원(大悲院)에 재(齋)가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진리의 눈이 열리면 어떠한 법문을 가져다 물어도 이렇게 척척 응(應)하는 자재(自在)의 수완을 갖추게 되는 법이다.

대중은 알겠는가?
산승(山僧)이 만약 당시의 보화 존자였더라면, 시자가 꽉 안고서“모두가 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할 때, 이 주장자로 묻는 자를 삼십 방(棒) 때렸으리라.
그러고 난 후에“필경에는 어떠합니까?” 라고 물을 것 같으면,

冬至寒食百五日(동지한식백오일)

동지와 한식 사이가 백오 일이니라

하루는, 보화 존자와 임제 선사께서 어느 단월(檀越)의 집에서 공양(供養)을 받으시게 되었다.
공양중에 임제 선사께서 보화 존자께 물으시기를,
“가는 털이 큰 바다를 머금고 조그마한 겨자씨 속에 수미산(須彌山)이 들어간다고 하니, 이것이 신통묘용(神通妙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인가, 진리 자체가 그러한 것인가?”
하니, 보화 존자께서는 냅다 공양상을 뒤엎어 버리셨다.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크게 머트럽구나.”
하니, 보화 존자께서 호통을 치셨다.
“이 속에 무엇이 있기에 머트럽다거나 세밀하다고 할 것인가?”
그 다음날, 보화․임제 두 분 선사께서 또 공양청(供養請)을 받아서 어느 단월가에서 공양하시게 되었다.
임제 선사께서,
“오늘 공양이 어찌 어제와 같으리오.”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 또 전날과 같이 공양상을 뒤엎으셨다.
이것을 보시고 임제 선사께서,
“옳기는 옳지만 크게 머트럽구나!”
라고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 또 호통을 치셨다.
“이 눈 먼 놈아! 불법(佛法)에 어찌 추세(麁細)를 논할 수 있느냐?”
이에 임제 선사께서는 혓바닥을 쑥 내미셨다.

두 분 선사의 거량처(擧揚處)를 알겠는가?

老賊相逢互換機(노적상봉호환기)
銅頭鐵眼倒三千(동두철안도삼천)

늙은 도적들이 서로 만나 기틀을 주고 받으니
동두철안이라도 삼천 리 밖에서 거꾸러짐이로다.

보화 존자께서 열반(涅槃)에 다다라, 요령을 흔들며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고 다니셨다.
“누가 나에게 직철(直綴) 을 만들어 줄 자 없느냐?”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장삼을 지어 드렸는데 존자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임제 선사께 말씀드리니, 선사께서는 원주(院主)를 시켜서 관(棺)을 하나 사오게 하셨다. 그 때 마침 보화 존자께서 오시므로,
“내가 그대에게 주려고 직철을 하나 준비해 두었네.”
하시며 임제 선사께서는 보화 존자 앞에 관을 내놓으셨다.
“임제가 과연 나의 심정을 아는구나.”
하시고 보화 존자께서는 곧바로 그것을 짊어지고 시내 사거리로 나가서 큰 소리로 외치고 다니셨다.
“임제가 나에게 직철을 만들어 주었으니, 내가 동문(東門)에 가서 열반하리라.”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는“미친 스님 열반하는 모습 좀 보자.”며 다투어 동문으로 몰려가서 기다렸다. 종일토록 기다려도 존자께서는 모습을 나타내시지 않더니, 저녁 무렵에야 관을 짊어지고 오셔서 말씀하셨다.
“오늘은 일진(日辰)이 나쁘니 내일 남문(南門)에 가서 열반에 들리라.”
그 이튿날, 사람들이 다시 남문에 모였는데도 존자께서는 열반에 드시지 않았다. 또 그 다음날에 서문(西門)에서 열반 하시겠다고 하셔서 사람들이 몰려갔으나, 그 날도 역시 허탕이었다. 그러고는 다음날에 다시 북문(北門)에서 열반하시겠다고 선언하셨지만, 삼 일 동안을 계속 이와 같이 하셨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흘째 되는 날, 북문에는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
보화 존자께서는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혼자 스스로 관 속에 들어가셔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관뚜껑에 못을 쳐달라고 부탁하셨다.
그 사람이 못을 쳐서 관을 봉(封)해 드리고는 성내(城內)에 와서 그 사실을 이야기하니, 소문이 삽시간에 번져, 사람들이 다투어 북문으로 몰려갔다.
보화 존자께서는 이미 열반에 드셔서 몸뚱이는 관 속에 벗어놓으셨는데, 공중에서는 일생 흔들고 다니셨던 그 요령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대중은 보화 존자를 알겠는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대구 동화사(桐華寺)에서 설석우(薛石友) 선사의 추모재일(追慕齋日)에 , 효봉(曉峰)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대중에게 물음을 던지셨다.
“옛날 보화(普化)는 전신(全身)을 관 속에다 벗어 버리고 허공중에 요령소리만 남기고 가셨거니와, 이제 보화(普化) 는 어떻게 가셨느냐?”
이에 당시 동화사 금당(金堂)선원 입승(立繩)을 보던 명허(明虛) 스님이 일어나서 벽력 같은 ‘할(喝)’을 했다.
“억!”
그러자 효봉 선사께서,
“그런 쓸데없는 ‘할’함부로 하지 마라!”
하고 호통을 치시니, 명허 스님은
“제가 ‘할’한 뜻도 모르시면서 어찌 부인하십니까?”
하였다. 이에 효봉 선사께서,
“옛날 중국에 흥화 존장(興化存獎) 선사 회상에서 대중들이 동당(東堂)에서도 ‘할’을 하고 서당(西堂)에서도 ‘할’을 해대니, 흥화 선사께서 상당하시어 ‘만약 대중이 할을 해서 노승(老僧)을 삼십삼천(三十三天) 까지 오르게 하여, 노승이 거기에서 땅에 떨어져 기식(氣息)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난다 해도, 그 할을 옳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고인(古人)의 말씀을 들면서 ‘할’을 그만하라 하시고 대중에게 다시 물으셨다.
“다시 이를 자 없느냐?”
그래서 산승(山僧)이 일어나 답하기를,
“옛날 보화도 이렇게 가셨고, 이제 보화도 이렇게 가셨습니다.”
하니, 효봉 선사께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모름지기 답은 이러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필경(畢竟)에 어떠한가?

萬古徽然何處覓(만고휘연하처멱)
月落三更穿市過(월락삼경천시과)

만고에 아름다운 것을 어디에서 찾을꼬
삼경에 달이 지니 저자를 뚫고 지나감이로다.

정묘년(1987) 삼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20. 석상 칠거(石霜七去)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맑은 바람이 항상 불고 있고
밝은 달이 항상 빛나고 있음이라.

그러면 맑은 바람이 좋으냐, 밝은 달이 좋으냐?

다시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시고,

돌로 만든 사람이 피리를 부니
나무로 만든 여자가 춤을 벌렁벌렁 춤이로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경계는 어떠한 진리를 표현한 것이며, 돌사람이 피리 불고 나무여자가 춤을 추는 것은 어떠한 진리를 표현한 것이냐?
여기에 대해서 확연명백(確然明白)할 것 같으면 모든 성인(聖人)과 더불어 어깨를 같이하고 억만 년이 다하도록 진리의 낙(樂)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문을 바로 알지 못할진대는, 선(善)도 있고 악(惡)도 있고 천상(天上)도 있고 지옥(地獄)도 있어서 항시 윤회(輪廻)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법이다.
그러한 고로 부처님께서 오셔서, 사바세계 중생(衆生)들에게 중생의 이 근본고(根本苦)로부터 영구히 벗어날 수 있는 수행법(修行法)을 제시하신 것이다.
인생은 왔기 때문에 결정코 가게 되어 있다. 가면 어느 곳으로 가는가? 가는 그 곳을 모르니 죽음에 다다라 공포, 불안이 엄습해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착실히 듣고 시간시간 하루하루 자기사(自己事)를 밝히는 선수행(禪修行)을 꾸준히 쌓아갈 것 같으면, 그 복잡한 세간살이 가운데서도 마음의 평온과 안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면 죽음에 이르러서도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나 공포, 불안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마음 가운데 오로지 화두 한생각뿐이면 사지(四肢)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이 오더라도 거기에 끄달리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맑은 정신에서 평상시 옷 갈아 입듯이 태연하게 몸을 바꿀 수 있으므로, 금생(今生)에 원(願)을 세운 대로 태어나게 되는 법이다.
그렇지 않고 죽음에 다다라 정신이 혼미(昏迷)해질 것 같으면, 자신의 원(願)대로 태어나지 못하고 전생(前生)의 지중한 업(業)을 좇아서 지옥으로 가기도 하고 축생(畜生)에 떨어지기도 한다.
부처님법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조건 절대자를 믿고 교주(敎主)를 따른다고 해서 천상(天上)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법에서는 과거․현재․미래, 전생(前生)․금생(今生)․내생(來生)이 항시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고인들께서도,“전생사(前生事)를 알고자 할진대는 금생(今生)에 자신이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내생사(來生事)를 알고자 할진대는 각자가 금생에 얼마만큼 복과 덕을 쌓았으며 얼마만큼 마음의 지혜를 밝히는 수행을 하였는가 살펴보라.”고 하셨다.
그러니 모든 결과는 자신이 지은 대로 오는 것이다.
우리가 생사안두(生死岸頭)에서 매(昧)하지 않고 윤회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것도, 부처님의 신력(神力)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실답게 쌓은 수행의 힘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배가 몹시 고플 때 종일 밥을 쳐다보고 있어 보아야 주린 고(苦)가 없어지지 않고 한술 두술 먹어야만 배가 차고 허기가 없어지는 것과 같이, 스스로 닦지 않는한 지혜가 밝아질 수 없는 법이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봄에 파종을 하고서 거름을 주고, 김을 매주고, 잘 가꾸어야 가을에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듯이, 우리가 공부를 지어가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우리가 애쓰고 애써서 화두(話頭) 한생각을 챙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습기(習氣)는 잠자고, 화두일념(話頭一念)이 무르익어져서 마침내 진리의 과(果)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여러 대중은 이 공부가 어렵다고 하여 중도에서 놓아 버리거나 포기하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 쉼없이 나아 가길 바란다.

당대(唐代)에 석상(石霜) 선사라는 아주 훌륭한 도인이 계셨는데, 전법(傳法)하여 후사(後嗣)를 정해놓으시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열반에 드셨다.
그러고 나니, 회중(會中)에서는 뒤를 이을 분을 모시기 위한 대중공사(大衆公事)가 벌어졌다.
대중을 지도할 수 있는 도안(道眼)이 밝고 덕망이 높은 훌륭한 큰스님을 모셔야 되겠는데, 어느 누가 도(道)가 장한지 서로 알 수가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도인이라야 능히 도인을 안다’고, 지혜의 눈을 갖춘 이가 있을 것 같으면 안목자(眼目者)를 바로 알아, 척 모셨을 것이다. 그러나 점검해 주실 스승이 계시지 않는 상태에서 조실 스님을 한 분 추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의견이 분분하다가, 그 회상(會上)에서 다년간 입승(立繩)도 보고 대중의 존경도 받아오던 노장 스님을 조실에 모시기로 대중의 공론이 모아졌다.
그런데 석상 선사의 시자였던 나이 어린 구봉(九峰) 스님이 완강히 반대하면서,
“그렇다면 제가 열반하신 선사의 법문을 들어서 묻겠사오니, 만일 선사의 뜻에 맞게 답하신다면 그 때는 조실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하고는 물음을 던졌다.
“석상 선사께서는 항상 법문하시기를, ‘쉬어가고 쉬어가되 한생각이 만 년을 가게 하고, 찬 재와 마른 나무같이 가며, 옛 사당의 향로와 같이 차게 가고, 한 필의 흰 비단과 같이 이어가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을 밝히신 것입니까?”
이에 조실로 추대받던 노장 스님이,
“그 법문은 일색변사(一色邊事) 를 밝힌 것이다.”
라고 말하니, 시자가 듣고는 긍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석상 선사의 뜻을 모르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그 노장 스님이,
“그러면 내가 향(香)에 불을 붙여서 향 연기가 피어오를 동안에 이 몸뚱이를 벗어 보이겠다. 만약 내가 석상 선사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가 일어날 때 좌탈(坐脫)하지 못할 것이다.”
하고는 향에 불을 붙여 한 줄기 향연(香煙)이 피어오르자 그만 앉아서 숨을 거두었다.
이에 구봉 스님이 다가가서 그 스님의 등을 툭툭 치면서,
“앉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이 몸뚱이를 벗는 일은 없지 아니하나, 석상 선사의 근본 뜻은 꿈에도 보지 못하셨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앉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몸뚱이를 벗는 이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장한 일이다. 그러나 조사(祖師) 스님들께서 법문하신 구절구절을 꿰뚫는, 그러한 심오한 진리의 눈이 열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후래(後來)에 천동 각(天童覺) 선사께서 이 법문에 대해서 멋지게 식파(識破)하신 대문이 있다.

月巢鶴作千年夢(월소학작천년몽)
雪屋人迷一色空(설옥인미일색공)
坐斷十方猶點額(좌단시방유점액)
密移一步看飛龍(밀이일보간비룡)

어스름 달빛 속에 학이 천 년의 꿈을 꿈이요
눈집의 사람이 백색의 공적에 미함이니
앉아서 시방을 끊는다 해도 아직은 점액 일세.
한 걸음 더 슬쩍 나아가야 훨훨 나는 용을 보리라.


일색변사(一色邊事)의 대답으로는 잉어가 못둑에 이마를 박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석상 선사께서 하신 법문의 심오한 진리는 어디에 있는고?
 
棒下無生印(봉하무생인)
臨機不讓師(임기불양사)

이 주장자 아래 남이 없는 진리는
기틀에 다다라 스승에게 사양하지 않음이로다.

정묘년(1987)삼월 보름 해운정사 원통보전


21. 육조(六祖) 문하(門下)의 양대선풍(兩大禪風)


부처님 법의 가장 높고 깊은 진리를 논할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께서 삼천 리 밖에서 몸을 감출 곳을 찾아야
옳음이요,
역대의 모든 조사(祖師)께서 사면(四面)의 철벽(鐵壁)에 갇혀 도망갈 길이 없음이로다.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몸을 뒤쳐 살아날 수가 있느냐?

噓噓(허허)
蒼天蒼天(창천창천)

허허
아이고, 아이고! 로다
‘허허’, ‘아이고, 아이고!’ 하는 여기에 큰 뜻이 숨어 있다.
우리가 이러한 심오한 진리의 법을 바로 알아야 천상 천하(天上天下)에 진리의 자재인(自在人)이 되어 만인에게 법을 펼 수가 있는 법이다.

육조(六祖) 대사는 육신보살(肉身菩薩)로 도인 가운데서도 위대한 도인이신데, 이 육조대사의 문하(門下)에서 선법이 크게 흥성하여 천하를 덮었다.
육조 대사 아래 많은 도인 제자가 배출되었는데, 그 가운데 으뜸가는 진리의 기봉(機鋒)을 갖춘 분이 남악 회양(南嶽懷讓) 선사와 청원 행사(靑原行思) 선사이시다.
오늘날 중국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종풍(宗風)을 떨치고 있는 선법(禪法)은, 육조 대사의 이 두 상수(上首)제자의 법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청원 행사 스님이 육조 대사를 처음 참예(參詣)하여 예 삼배를 올리고 여쭙기를,
“어떻게 해야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하니, 육조 대사께서 도리어 물으셨다.
“그대는 무엇을 닦아 익혀왔는고?”
“성인(聖人)의 법(法)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떠한 계급에 떨어졌던고?”
“성인의 법도 오히려 행하지 않았거늘, 어찌 계급이 있겠습니까?”
진리의 눈이 열리면 이렇게 쉽다. 묻고 답하는 데 두미(頭尾)가 이렇게 척척 맞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육조 대사께서 매우 흡족히 여기시고 행사 스님을 제자로 봉(封)하셨던 것이다.

하루는 남악 회양 스님이 육조 대사를 친견(親見)하니, 육조께서
“그대는 어디서 오는고?”
하고 물으셨다.
“숭산(崇山)에서 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오는고?”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닦아 증득하는 법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닦아서 얻음은 없지 아니하나 더러운 데 물드는 일은 없습니다.”
“더러운 데 물들지 아니함은 모든 부처님의 살림살이이다. 너도 그러하고 나도 또한 그러하니 잘 두호(斗護)하라.”
육조 대사께서 이렇게 인증(印證)하셔서, 형과 아우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훌륭한 안목(眼目)을 갖춘 이 두 제자를 상수 제자(上首弟子)로 봉(封)하셨다.

이후 청원 행사․남악 회양 두 분 선사의 계파(系派)를 좇아서 선종(禪宗)의 오종(五宗)이 벌어졌다. 행사 선사의 문하에서는 조동종(曹洞宗)․법안종(法眼宗)․운문종(雲門宗), 회양 선사 문하에서는 임제종(臨濟宗)과 위앙종(潙仰宗)이 벌어져 중국 천하를 풍미했던 것이다.
행사 선사 밑으로 석두(石頭)․도오(道悟)․용담(龍潭)․덕산(德山) 선사로 쭉 이어져 내려왔고, 회양 선사 밑으로 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임제(臨濟) 선사로 이어져 내려왔으니, 임제의 ‘할(喝)’과 덕산의 ‘방(棒)’은 육조 문하의 양대 아손(兒孫)의 가풍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선종(禪宗)은 임제 선사의 선풍(禪風)을 이은 임제종인데, 20여 년 전에 향곡 선사께서 산승에게 이렇게 물으신 적이 있었다.
“너는 덕산 선사의 ‘방(棒)’의 살림을 소중히 여기느냐, 임제 선사의 벽력 같은 ‘할(喝)’을 소중히 여기느냐?”
그래서 산승(山僧)은,
“두 분 다 이 주장자로 삼십 방(棒)을 맞아야 옳습니다.”
라고 답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 양대 아손(兒孫)의 가풍을 알겠는가?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건대, 청원 행사 선사께서는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진리의 체성(體性)을 전하셨고, 남악 회양 선사께서는 향하(向下)의 대용(大用)의 법을 전하셨다.
이 진리 자체에는 체(體)와 용(用)이 본시 둘이 아니어서, 체가 용이 되기도 하고 용이 체가 되기도 하여 둘이 항상 일체이다.
그래서 구경법(究竟法)을 깨달아 향상(向上)의 진리를 알게 되면 향하(向下)의 진리도 알게 되고, 향하의 진리를 알면 향상의 진리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둘이 아니면서 이름이 둘이다.

행사 선사와 회양 선사, 두 분이 쌍벽을 이루어 육조 대사의 고준(高峻)한 법을 널리 펴시는데, 행사 선사에게 제자를 봉(封)해 분가(分家)시켜야 할 인연이 도래하였다.
하루는 행사 선사께서 제자 석두(石頭) 스님을 시켜 회양 선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르셨다.
“너가 회양 선사께 가서 이 편지를 전해 드리고 돌아오면, 무딘 도끼[鈯斧子〕를 주어 분가(分家)시켜서 다른 산에 주(住)하게 하겠다.”
석두 스님이 여러 달을 걸어서 회양 선사 처소에 이르러 인사를 올리고는, 전하라는 편지는 올리지 않고 대뜸 여쭈었다.
“모든 성인(聖人)을 사모하지 않고 자기의 영(靈)도 중요시 여기지 아니할 때 어떠합니까?”
이렇게 고준한 일문(一問)을 던지니, 회양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어찌하여 향상(向上)의 진리만 묻고 향하사(向下事)는 묻지 않는고?”
그러자 석두 스님은,
“수억만 년을 생사(生死)의 바다에 잠길지언정 모든 부처님과 성인의 해탈법은 구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자기의 소견(所見)을 고집하였다.
이 말 끝에 회양 선사께서는 돌아앉아 버리시고 상대하지 않으셨다. 양변(兩邊)을 다 들어야 하는데 일변(一邊)으로만 나가니 대화의 상대가 안 된다고 돌아앉아 버리신 것이다.

대중은 알겠는가?

만약 당시에 회양 선사께서,
“이 담판한(擔板漢) 아, 판자를 지고 천리 만리 잘 돌아다녀 보게.”
라고 한 마디 던지고 돌아앉으셨더라면, 석두 스님에겐 크나큰 활기(活氣)가 되었을 것이다.

석두 스님이 그 길로 행사 선사께 돌아가니, 선사께서 물으셨다.
“편지는 잘 전했느냐?”
“편지도 전하지 못하고 신(信)도 통하지 못하였습니다.”
석두 스님이 회양 선사 처소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씀 드리고는,
“편지를 전하고 오면 무딘 도끼를 주어 분가시켜 주신다고 하셨으니 도끼를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행사 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발(足)을 들어 보이셨고, 거기서 석두 스님은 큰 절을 하였다.
행사 선사께서는 여기에서 석두 스님에게 법을 전하여 남악산(南嶽山)에 주(住)하게 하셨다.
고인들께서는 제자에게 법을 전하실 때, 이렇게 세밀하게 다루어 보고 마음에 흡족해야 법을 부촉(付囑)하셨다.
이 법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을 것 같으면, 만인의 눈을 멀게 하고 불조(佛祖)의 정안(正眼)을 그르치는 고로, 고인들께서 법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세밀하고 세밀하셨던 것이다.

무딘 도끼를 달라고 하는데 왜 한 발(一足)을 들어 보였을까?
또, 발을 들어 보이는데 왜 일어나서 큰 절을 했을까?
이 대목은 천고(千古)에 알기 어려운 법문이다. 여기에 무진(無盡) 법문이 다 들어 있다.

대중은 알겠는가?

한참 묵묵히 계시다가 이르시기를,

了知向上句(요지향상구)
豈不知向下事(기부지향하사)

향상의 진리를 요달해 안다면
어찌 향하사를 알지 못하리오.

향하사(向下事)여!

주장자(拄杖子)를 한 번 치시고,

바로 이것이니라.

정묘년(1987) 사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22. 설봉(雪峰) 별비사(鼈鼻蛇)


산승(山僧)이 가지고 있는 이 주장자(拄杖子)의 진리는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만약 사람이 있어 마음의 눈을 떠서, 이 주장자의 진리를 환히 볼 것 같으면,
 
寰中天子勅(환중천자칙)
塞外將軍令(새외장군령)

서울에 천자의 무서운 칙령과 같고
변방에 장군의 엄한 명령과 같음이로다.

이러한 진리의 기봉(機鋒)을 갖출 것 같으면, 북인(北人)이 오면 북인을 능히 접(接)하고 남인(南人)이 오면 능히 남인을 접할 수 있다. 어떠한 그릇의 사람이 오더라도 척척 접(接)한다.
모름지기 이러한 자재(自在)의 수완을 갖추어야 나고 날 적 마다 큰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설봉(雪峰) 선사께서 하루는 법상(法床)에 오르셔서,
“남산에 별비사(鼈鼻蛇)가 있으니 대중은 각별히 주의하라.”
하는 법문을 던지셨다.
왜 종사(宗師)가 하필이면 뱀을 빙자해서 ‘이런 무서운 뱀이 있으니 대중은 조심하라’고 하느냐?
대중 가운데 장경(長慶) 스님이 일어나서,
“금일 이 법당에서 큰 사람이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다음에는 운문(雲門) 스님이 일어나더니, 주장자를 들고 나와서 설봉 선사의 면전(面前)에 던지면서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시 많은 선지식(善知識)들이 이 문답처를 들으시고서,
“사자라야 사자 새끼를 낳고, 훌륭한 아버지라야 훌륭한 자식을 낳고, 훌륭한 스승이라야 훌륭한 제자를 만든다.”
라며, 설봉 선사와 장경․운문 두 제자를 크게 칭찬하셨다.
후에 현사(玄沙) 스님이 이것을 전해 듣고,
“남산의 별비사를 지어 어디에 쓰려는고?”
하고 희한한 한 마디를 던졌다.
여기에 네 분 도인께서 일생 공부하신 살림살이를 만천하에 한 마디씩 던져 놓으셨으니, 이것이야말로 천고(千古)에 빛나는 아주 가치 있는 법문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진리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법문의 가치를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각자가 부지런히 정진해서 참구하는 화두를 타파해야만 이러한 법문의 낙처(落處)를 알게 되며, 그렇게 될 때라야 비로소 부처님의 진리의 눈을 갖추게 되는 법이다.

금일 산승이 옛 선사들의 말씀에 주해(註解)를 더하노니,

주장자(拄杖子)를 던지시고,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보고, 보라!
설봉의 별비사가 산승의 수중에 있음이로다.

알겠는가?

三箇四箇漢(삼개사개한)
平地起骨堆(평지기골퇴)

세분 네분의 고인들이
평지에 뼈만 남음이로다.

정묘년(1987) 구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23. 요연(了然) 비구니와 관계(灌溪) 화상의 법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이르시다.

산승(山僧)이 가지고 있는 이 주장자가 밤낮으로 큰 빛을 발(發)하고 있나니, 만약 사람이 있어서 이 빛을 뚜렷이 보게 된다면,

밝은 가운데 어두움이 있고,
어두운 가운데 또한 밝음이 있음이로다.

이 불성(佛性)이라는 것은 남녀노소, 승속(僧俗)의 차별이 없다. 마음의 바탕은 남자라고 다르고, 여자라고 다르고, 스님이라고 다르고, 속인이라고 다른 것이 아니다. 동일체(同一體)이다. 단지, 과거생에 지은 업(業)에 따라서 이 업신(業身)의 형상(形相)이 다를 뿐이지, 마음의 바탕은 천불 만조사(千佛萬祖師)와 모든 중생이 동일한 것이다.
누구든지 선수행(禪修行)을 해서 자신의 성품을 바로 보기만 하면, 모든 진리가 그 가운데 있으므로 법에 자유의 분(分)을 갖추게 된다. 마음 가운데 있는 팔만 사천 법문, 팔만 사천 지혜를 응화무변(應化無邊) 자재하게 쓸 수 있어서 만인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만천하에 법을 펴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는 자재의 수완을 갖춘다는 말이다.
이러한 자재의 수완을 갖춘 이가 바로 대장부 할 일을 다해 마친 요사인(了事人)인 것이다.
그러니 남녀노소, 승속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신심(信心)을 내어 부지런히 정진해서 자신의 성품을 바로 볼 것 같으면, 다 진리의 위대한 스승자가 되는 법이다.

당대(唐代)의 대우(大愚) 선사 밑에는 훌륭한 비구니(比丘尼) 제자가 있었는데, 오늘은 산승이, 그 분이 깨달은 진리의 세계를 들어서 법문할까 한다.

五蘊山頭古佛堂(오온산두고불당)
毘盧晝夜放毫光(비로주야방호광)
若知此處非同異(약지차처비동이)
卽是華嚴遍十方(즉시화엄편시방)

오온의 색신(色身) 무더기가 그대로 고불당인데
비로자나 부처님이 주야로 백호 광명을 발하고 있네.
만약 여기에서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을 안다면
곧 이 화장장엄이 시방세계에 두루하리라.

이것이 대우 선사의 제자 요연(了然) 비구니의 오도송(悟道頌)이다.
진리의 눈이 열리면 누구든지 이렇듯 심오한 진리의 법문을 척척 할 수 있다. 그러니 여자이지만 이렇게 당당한 대장부 소리를 하는 것이다.
요연 비구니가 회상(會上)을 열어 몇백 명 대중을 거느리고 지도하자, 비구니 도인이 났다고 해서 그 명성이 중국 천지에 자자했다.
하루는 관계(灌溪) 화상이 요연 비구니 회상을 찾아와서는 자청하여 이러한 제안을 하였다.
“스님과 내가 법담(法談)을 하여, 만약 내가 스님보다 부족함이 있을 것 같으면 여기에서 3년 동안 원두(園頭) 소임을 살아 이 곳 대중들을 시봉할 것이요, 스님이 나보다 부족하면 일생 내 시봉을 하기로 합시다.”
요연 비구니가 흔쾌히 허락하고 먼저 묻기를,
“어디에서 왔는가?”
하자, 관계 화상이 답하였다.
“길 어귀에서 왔소.”
요연 비구니가 다시 묻기를
“어째서 덮지 못했는고?”
하자, 관계 화상이 그만 답을 못 했다.
거기에서 한 마디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만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이번에는 관계 화상이 물음을 던졌다.
“어떠한 것이 요연(了然)이냐?”
“이마가 드러나지 않았다.”
요연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떠한 것이 요연의 참주인이냐?”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그러자 관계 화상이 ‘할(喝)’을 하면서 말하기를,
“어째서 변하지 못하느냐?”
하니, 요연 비구니가 답했다.
“신(神)도 아니고 귀(鬼)도 아니거늘, 도대체 변(變)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여기에서 관계 화상이 머리를 숙이고 3년 동안 대중의 원두 소임을 살았다.
이 분도 참으로 철저한 발심수행인(發心修行人)이다. 비구(比丘)라는 상(相)을 떠나서 몇백 명 비구니 스님들에게 3년 동안이나 채소를 가꾸어 공양올리는 소임을 다했으니, 피차가 다 훌륭한 분들이라 하겠다.
그러나 산승(山僧)이 만약 당시의 요연 비구니였고, 관계 화상이었더라면 달리 응수(應酬)하였으리라.
“노구(路口)에서 왔다.”고 하자 “어째서 덮지를 못했는고?” 하는 데 있어서, 관계 화상은 아무 말도 못 하였는데, 산승이라면 이렇게 말했으리라.

과연 , 멀리서 듣던 바와 같구나.

만약 사람이 있어서 산승에게 묻기를, “어떠한 것이 진제(眞際)냐?” 한다면, 산승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으리라.
“어떠한 것이 진제(眞際)의 참주인이냐?” 하고 물을 것 같으면, 이렇게 답하리라.

구중궁궐리(九重宮闕裏)에 앉으니 부처의 눈을 갖춘 이도 또한 보기가 어렵느니라.

필경(畢竟)에는 어떠하냐?

따뜻한 봄날에 훈훈한 바람이 부니, 풀들이 무성하게 자람이로다.

무진년(1988)열반재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24. 조주 간파(趙州看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산승(山僧)이 방금 대중에게 들어 보인 이 주장자의 참뜻을 바로 알 것 같으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천오백 년 전에 이 사바세계에 오신 뜻이 바로 이 안에 있음이라.

이 주장자의 진리는, 만 사람의 마음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과 동일하게 부족함 없이 다 원만히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어째서 중생(衆生)은 부처님과 같이 당당하게 마음의 지혜를 쓸 줄 모르느냐?
그것은 한 가닥 번뇌의 구름이 마음의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심(信心)과 용맹심(勇猛心)으로 각고정진(刻苦精進)할 것 같으면, 마음을 가리고 있는 번뇌의 구름은 봄바람에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석가모니 부처님과 동일한 큰 지혜가 현전(現前)되어, 가는 곳마다 홀로 귀하고 홀로 높은 자가 된다.
위대한 종교가 바로 이것이다. 마음의 바탕은 천사람 만사람이 다 동일하다. 동일한 이것을 바로 보면 너도 부처요, 나도 부처인 것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당당한 진리인가?

중국에 오대산(五臺山)은 예로부터 문수 보살 도량(道場)이라고 하여, 문수 보살을 예배하고 친견하고자 하는 스님들과 신도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옛날에, 이 오대산 가는 길목에 한 노파가 있었다. 오대산을 찾아가는 스님들이 그 노파에게 오대산 가는 길을 물으면, 노파는
“바로 쭉 가시면 됩니다.”
하고는, 그 스님이 너댓 걸음 걸어가면,
“멀쩡한 스님이 또 저렇게 가는구나.”
라고 말했다. 길을 묻는 스님들에게 언제나 그렇게 인도했던 것이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조주(趙州) 선사께 이 일을 말씀드리니, 조주 선사께서 들으시고는
“내가 가서 그 노파를 혼내 주겠다.”
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알 수 없어도 지혜의 눈이 열린 이는 말이 떨어지면 바로 그 뜻을 아는 법이다.
조주 선사께서 즉시 그 노파가 있는 곳으로 가셔서는 다른 스님들처럼 오대산 가는 길을 물었다. 그러자 노파 역시 다른 스님들에게 했던 것처럼 “바로 쭉 가시오.” 했다. 조주 선사께서 몇 걸음 옮기시자, 이번에도 노파는 “멀쩡한 스님이 또 저렇게 가는구나.” 했다.
조주 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절로 돌아오셔서 대중들에게,
“내가 그 노파를 혼내주고 왔다.”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부처님의 진리의 눈이 있다.
대체 어느 곳이 조주 선사께서 그 노파를 혼내준 곳인가?
산승(山僧)이 그 노파를 보건대는,

백주(白晝)에 도적을 지어 천사람 만사람을 기만하고 있음이요,

조주 선사를 보건대는,

후백(侯白) 의 도적이라 하더니, 다시 후흑(侯黑)의 도적이 있음이로다.

조주 선사께서 행각(行脚)시에 한 암자에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있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암주(庵主)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주먹을 내미니,
조주 선사께서
“물이 얕아서 이곳에는 배를 대지 못하겠노라.”
라고 말씀하시고는 가버리셨다.
또 어느 암자를 방문하셔서,
“있고, 있느냐?”
하시자, 이 암주(庵主)도 역시 주먹을 내밀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조주 선사께서,
“능히 주기도 하고, 능히 빼앗기도 하며, 능히 죽이기도 하고, 능히 살리기도 한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예배(禮拜)하고 가셨다.
두 암주(庵主)가 똑같이 주먹을 내밀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보는 바가 다르냐?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조주 선사의 기봉(機鋒)을 알겠는가?

대중의 답이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頭長三尺知是誰
與奪臨時自由人

석 자 머리를 가진 분을 아는 이가 누구냐?
때에 다다라 주고 뺏기를 자유로이 하는 이라.

무진년(1988) 사월 초파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25. 방(龐) 거사 일가(一家)의 깨달음


衆生諸佛不相侵(중생제불불상침)
山自高兮水自深(산자고혜수자심)
萬別千差明此事(만별천차명차사)
鷓鴣啼處百花新(자고제처백화신)

중생과 모든 부처님이 서로 침범하지 아니하며
산은 스스로 높고 물은 스스로 깊음이로다.
만가지 천가지로 다름이 모두 이 진리를 밝힘이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이 새롭도다.

중생과 모든 부처님이 서로 침범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각각 자기의 위치에서 진리의 낙을 누린다는 말이다.
왜 그러하냐?

산은 스스로 높음이요,
물은 스스로 깊음이로다.

이 부처님의 진리는 스님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누구든지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바른 지도를 받아 착실히 수행해 갈 것 같으면, 금생 한 생에 이 일을 다 마쳐 한가한 무사장부(無事丈夫)가 될 수 있다.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승속(僧俗)이 따로 없다. 마음이 열려야 되는 것이지 형상(形相)을 논하는 법이 아니다.스님네라고 수승(殊勝)한 인연이 있다거나 특별한 기지(奇智)를 갖춘 것이 아니고 또, 마을 사람이라고 해서 스님네보다 부족한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대신심(大信心)과 대용맹심(大勇猛心)을 내어 명안종사(明眼宗師)의 지도에 따라 빈틈없이 정진하여 나간다면, 참구(參究)하는 일을 다 마치고 진리의 위대한 스승이 되어서 천상 천하에 홀로 걸음하게 될 것이다.

방(龐) 거사는 부처님 선법(禪法)이 유래한 후로, 마을 거사로서는 가장 으뜸가는 안목(眼目)을 갖춘 분이다. 그간에 무수한 거사(居士)와 보살(菩薩)들이 이 최상승 선법을 닦아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방 거사의 안목을 능가할 만한 기틀을 갖춘 사람은 없다.
방 거사 당시는 마조(馬祖)ㆍ석두(石頭) 선사 두 분이 쌍벽을 이루어 당나라 천지에 선법(禪法)을 크게 선양(宣揚)하시던 때였다. 그래서 당시에 신심 있고 용맹 있는 스님네들과 마을 신도들은 모두 두 분 도인을 친견하여 법문을 듣고 지도를 받았다.
하루는 방 거사가 큰 신심과 용기를 내어 석두 선사를 친견하러 가서 예(禮) 삼배(三拜)를 올리고 여쭙기를,
“만 가지 진리로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하는 자, 이 어떤 분입니까?”
하고 아주 고준(高峻)한 일문(一問)을 던졌다.
그러자 석두 선사께서는 묻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 거사의 입을 틀어 막았다. 여기에서 홀연, 방거사의 마음광명이 열렸다.
“스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거사는 석두 선사께 큰 절을 올려 하직인사를 하고는, 그 걸음으로 수백 리 길을 걸어서 마조 선사를 친견하러 갔다.
마조 선사 처소에 이르러 예(禮) 삼배(三拜)를 올리고 종전과 같이 여쭈었다.
“만 가지 진리로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하는 자, 이 어떤 분입니까?”
“그대가 서강수(西江水) 물을 다 마시고 오면 그대를 향해 일러 주리라.”
마조 선사의 고준한 이 한 마디에 방 거사의 마음광명이 여지없이 활짝 열렸다. 제불제조(諸佛諸祖)와 동일한 안목이 열렸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마조 선사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후로, 집에 돌아와서 대대로 물려받은 가보(家寶)와 재산을 전부 마을 사람들에게 흔연히 보시(布施)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가족과 함께 개울가에 오두막집을 한 칸 지어놓고, 산죽(山竹)을 베어다가 쌀을 이는 조리를 만들어 팔아서 생활 하면서, 온 가족이 참선수행(參禪修行)에 몰두하였다. 부인과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이 있어도 출가시키지 않고 수행하게 하여, 마침내 온 가족이 진리의 눈을 떴다.

하루는 방 거사가, 딸의 진리의 기틀이 얼마나 단련되었는가 시험해 보기 위해서 한 마디를 던졌다.
“일백 가지 풀 끝이 다 밝고 밝은 부처님 진리로다.”
그러자 딸 영조(靈照)가 즉시 받아서,
“머리가 백발이 되고 이가 누렇게 되도록 수행을 하셨으면서 그러한 소견밖에 짓지 못하셨습니까?”
하고 아버지에게 호통을 쳤다.
세상 사람들 같으면 버릇없다고 하겠지만 이 법을 깨달으면 그렇지가 않다. 이 최고의 법(法)을 논하는 데는 높고 낮음이 없는 법이다.
그러니 방 거사가 딸을 보고 물었다.
“너는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는고?”
“일백 가지 풀끝이 다 밝고 밝은 부처님의 진리입니다.”
아버지 방 거사가 똑같은 말을 했었는데“그러한 소견밖에 짓지 못했느냐”며 호통을 쳐놓고는, 자신도 역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여기에 참으로 고준한 안목이 있다. 똑같은 말을 했지만 여기에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의 차이가 있다.
방 거사 일가족이 다 견성(見性)을 하여 멋지게 생활한다는 소문이 분분하니, 많은 도인들이 방문하여 오갔다.
이 도를 깨달으면 거기에는 승속(僧俗)이 따로 있지 않다. 불법(佛法)의 가치는 머리나 옷의 형상에 있지 않고, 오직 그 밝은 눈만이 천고(千古)에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단하 천연(丹霞天然) 선사께서 방 거사를 찾아오셨는데, 마침 영조가 사립 앞 우물에서 나물을 씻고 있던 중이었다.
천연 선사께서 물으시기를,
“거사 있느냐?”
하자, 영조가 나물 씻던 동작을 멈추고 일어서서 차수(叉手)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천연 선사께서 즉시 그 뜻을 간파하시고, 다시 어떻게 나오는가 시험해 보시기 위해서
“거사 있느냐?”
하고 재차 물으셨다.
그러자 영조는 차수했던 손을 내리고 나물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기에서 단하 천연 선사께서 즉시 돌아가셨다.
말이 없는 가운데 말이 분명하다. 우리가 이러한 말을 들을 줄 알아야지, 이러한 말을 들을 줄 모르면 귀한 사람이 될 수 가 없는 법이다.
이 법문의 심심(深深)한 용처(用處)를 보면, 천하 미인이 양귀비가 아니라 영조이다. 영조야말로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으로 더불어 호리(毫釐)도 차(差)가 없는 당당한 기봉(機鋒)을 갖추었다 하리라.

어느 날 방 거사가 가족과 함께 방에서 쉬고 있다가 불쑥 한 마디 던지기를,
“어렵고 어려움이여, 높은 나무 위에 한 섬 기름을 펴는 것과 같음이로다.”
하자, 방 거사 보살이 그 말을 받아서
“쉽고 쉬움이여, 일백 가지 풀 끝에 불법의 진리로다.”
하고 반대로 나왔다.
그러자 영조가 석화전광(石火電光)과 같이 받아서,
“어렵지도 아니하고 쉽지도 아니함이여, 곤(困)하면 잠자고 목마르면 차를 마심이로다.”
라고 말했다.
정말 위대한 가족이다. 위대한 처사이고 위대한 보살들이다. 모든 부처님, 모든 도인과 똑같은 안목(眼目)을 갖춘 분들이다.

방 거사가 하루는 좌선(坐禪)하고 있다가 딸 영조가 들어오니, 영조에게 일렀다.
“내가 오늘 정오에 열반에 들리니, 정오가 되었는지 해를 좀 보고 오너라.”
그러자 영조가 밖에 갔다가 들어와서,
“아버지, 오늘은 일식을 해서 해가 안 보입니다.”
라고 하자, 방 거사가
“일식을 했어? 그럼 내가 나가서 한번 보지.”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에 영조는 아버지 좌복 위에 앉아서 이 애착의 주머니를 벗어 버렸다.
이 얼마나 장하고 위대한가?
방 거사가 들어와 그 광경을 보고는,
“이 요물이 나를 속였구나. 그러나 장하고 장하도다. 내 딸 이여!”
하고 칭찬을 하였다.
방 거사는, ‘너의 다비화장(茶毘火葬)을 하려면, 나는 가는 것을 일주일 연기해야겠다.’하여, 화장을 해 다비를 마치고 역시 앉아서 몸뚱이를 벗어 버렸다.
이웃집 노파가 방문하였다가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서 문을 열어보고는, 방 거사가 좌복 위에 앉아 열반에 든 것을 발견하였다. 마침 방 거사 보살이 옆에 채소밭에서 풀을 매고 있는지라 달려가서 알려 주었다.
“거사님이 열반에 드신 것 같소.”
그러자 보살 역시, 한 손으로는 풀을 잡아 당기고 한 손으로는 호미로 땅을 긁는 자세에서 태연히 몸을 벗어 버렸다.
이 얼마나 쾌활하고 당당한 일인가? 이것이 바로 선수행(禪修行)의 저력이다. 천사람 만사람이 다 바른 수행을 하여 진리의 눈을 뜨면, 방 거사 일가족과 같이 멋지게 살다가 멋지게 가고 또, 멋지게 올 수가 있는 법이다.

여러 대중은 방 거사 일가족을 알겠는가?
방 거사가 말한 “어렵고 어려움이여, 높은 나무 위에 한 섬 기름을 펴는 것과 같음이로다.” 한 것은 어떠한 진리를 표현한 것이며, 방 거사 보살이 말한 “쉽고 쉬움이여, 일백 가지 풀 끝에 불법의 진리로다.” 한 것은 어떠한 진리를 표현한 것인가? 또, 영조가 말한 “어렵지도 아니하고 쉽지도 아니함이여, 곤하면 잠자고 목마르면 차를 마심이로다.” 한 것은 어떠한 진리의 세계를 드러낸 것인가?
이 세 마디에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께서 설(說)하신 법문이 다 들어 있으니, 이것을 가려낼 줄 안다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러면 산승(山僧)이 한 팔을 걷어 붙이고 이 방 거사 일가족의 심오한 법문을 점검하여, 시회대중(時會大衆)에게 법문 공양을 올리고, 위로는 모든 부처님께 참진리의 공양을 올릴까 한다.

만약 산승이, 방 거사 일가족이 한 마디씩 할 때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이 주장자(拄杖子)로 세 분에게 각각 삼십 방(棒)씩 때렸을 것이다.
만약 사람이 있어서, “방 거사 일가족이 멋진 법문을 하여 천추만대(千秋萬代)에 불법(佛法)을 빛나게 하였거늘, 스님은 무슨 장처(長處)가 있기에 고인들에게 방망이를 내리느냐?”고 물을 것 같으면,

來年更有新條在(내년갱유신조재)
惱亂春風卒未休(뇌란춘풍졸미휴)

내년에 다시 새가지가 있어
봄바람에 어지러이 쉬지 못함이로다.

무진년(1988) 오월 보름 해운정사 원통보전


26. 백장 야호(百丈野狐)


남쪽 바다 위에 먹구름이 일더니
어느새 북쪽 대지에는 소낙비가 내림이로다.
1 2 3 4 5 6 7 이여,
눈푸른 장로(長老)도 알기가 어렵도다.

인생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잠시 머물렀다가 구름과 같이 없어져간다. 구름이 허공중에 둥실 떠 있다가 바람이 불면 흔적도 없어지듯,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 사대육신(四大肉身)의 형상을 이루고 있지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지 못하면 그만 내생(來生)이다.
그러니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든 시비(是非)를 다 놓아 버리고 자신의 심성(心性)을 밝히는 이 일을 해야, 한 생(生)을 허비하지 않고 값지게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생(來生)이 목전(目前)에 곧 닥쳐오는데 이 귀중한 시간을 시비(是非) 장단에 다 허비해 버린다면, 또 윤회(輪廻) 고통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 내생(來生)에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게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사람몸을 받는다는 것도 지극히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온갖 ‘좋다’, ‘나쁘다’하는 분별(分別)과 ‘나’라는 허세를 다 벗어 버려야 한다. 흔히들 돈 있다고 허세 부리고 쥐꼬리만한 벼슬한다고 허세 부리는데, 그것이 다 소용 없는 법이다. 세간(世間)의 백 년이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자기사(自己事)를 밝히는 이 일을 행하는 것만이 내생(來生)의 행복으로 이어진다. 인생 백 년이 길다고 해야 절집 참선수행(參禪修行)의 한나절 한가로움에 미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니 여러 대중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자기의 심성(心性)을 밝히는 이 선수행(禪修行)을 꾸준히 하여 남은 생을 값지게 보내기 바란다.

백장(百丈) 선사께서 백장산(百丈山)에 개당(開堂)하시자, 스님네와 신도들이 무수히 모여들어 수행을 했다.
그런데 백장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여 법문하실 때마다 흰 속복(俗服)을 입은 한 노인이 법문을 듣고 대중들과 함께 흩어져 돌아가곤 하였다. 하루는 법문이 끝나고 대중들이 각기 처소로 돌아갔는데도 그 노인이 가지 않으므로, 백장 선사께서 물으셨다.
“거기 서 있는 이가 누구냐?”
그러자 노인이 대답을 했다.
“제가 과거 가섭불(迦葉佛) 당시에 이 백장산에서 회상을 열어 많은 대중을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그 때 어느 학인이 ‘크게 수행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하고 묻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 라고 대답했다가 그 후 오백 생(五百生)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습니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 대자비(大慈悲)를 베푸시어 이 업보(業報)의 몸을 면하게 해 주옵소서.”
그러자 백장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옛날 학인이 그대에게 물었던 것과 같이 그대가 내게 다시 물어라.”
하셨다.
“크게 수행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인과에 어두워지지 않느니라.〔不昧因果〕”
백장 선사의 이 한 마디 말씀에 노인이 야호신(野狐身)을 벗고 하는 말이,
“스님, 이제 스님의 큰 법력(法力)으로 인해서 여우 몸을 벗고 괴로움이 없는 천상락(天上樂)을 받아가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청(請)이 있습니다. 제가 법당 뒤 산중턱 바위굴에 여우몸을 벗고 가리니, 스님께서 스님들이 돌아가실 때와 같이 다비예식(茶毘禮式) 화장을 해 주십시오.”
하고는 예 삼 배를 올리고 갔다.
그런 후에 백장 선사께서 시자에게 열반종(涅槃鍾)을 치게 하셨다. 대중이 그 소리를 듣고는, 그간에 한 사람도 병난 이가 없었는데 열반종이 울리므로, 모두 의아해 하며 가사 장삼을 수(垂)하고 모여 들었다.
“다비(茶毘) 할 일이 있으니 모두 뒷산 바위굴로 가자.”
그리하여 대중이 모두 바위굴에 올라가 보니, 큰 여우가 한 마리 죽어 있어서, 스님네 다비절차와 똑같이 화장을 해서 천도(薦度)하였다.

불법(佛法)의 진리는 심오하고 심오해서 바른 말 한 마디 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법(法)을 펴서 만인을 제도한다는 것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모르고 그릇 횡설수설하면 만인의 눈을 멀게 하고 부처님의 고귀한 진리를 그르치는 고로 살인(殺人) 이상의 과보(果報)가 따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백장(前百丈) 스님이 말 한 마디 잘못한 것으로 인해 오백생 여우의 몸을 받았던 것이다.
대중아, 전백장(前百丈)이 불락인과(不落因果)라 하여 오백생 여우몸을 받았다가 후백장(後百丈)의 불매인과(不昧因果)라는 한 마디에 업보신(業報身)을 벗고 갔으니,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이 옳으냐, 매(昧)하지 아니한다는 것이 옳으냐?

대중의 말이 없으니 스스로 이르시기를,

不落不昧投擲海中(불락불매척해중)
萬仞峰頭吹太平歌(만인봉두태평가)

불락불매를 바다 속에 던져버리고
만 길 높은 봉우리에서 태평가를 부름이로다.

무진년(1988) 하안거 반살림 해운정사 원통보전


27. 파자 소암(婆子燒庵)


묘체(妙體)는 확연히 밝고 밝아서 비유할 데가 없음이요,
만기(萬機)를 몰록 쉬니 천성(千聖)도 용납하지 못함이로다.
묘종(苗種)을 좇아서 땅의 토질(土質)을 가리며, 말〔言語〕을 좇아서 사람들의 지혜의 심천(深淺)을 가리느니라.

인신난득(人身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생(生)을 받고, 받아오는 가운데 한량없는 죄업(罪業)을 지어온 탓에, 사람몸을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사람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진리법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이 지구상에 여러 나라가 있지만 불법(佛法)이 유포되어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설사 부처님 법이 유포되어 있다해도,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외도(外道)에 떨어져 있거나, 소승법(小乘法)에 머물러 있는 수가 허다하다.
그런데 불법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이 소승(小乘)의 불법을 만나 가지고는, 불법의 진수(眞髓)를 알 수가 없고, 십만 팔천 리 밖에서 껍데기 불법만 믿다가 일생을 보내 버리게 된다.
부처님 정법(正法)을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정법(正法)이란 무엇이냐 하면,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들께서 비밀히 전하여 오신 진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정법은 이 법을 아는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는 인연그릇을 갖추어야 배울 수 있고, 익힐 수 있고, 통할 수 있는 법이다.
우리가 금생에 인신(人身)을 받고, 불법(佛法)을 만나고,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는, 참으로 얻기 어려운 이 세 가지 인연을 얻은 것은 세세생생(世世生生) 이 진리의 법에 좋은 인연을 심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 지중한 인연을 소중히 여겨 금생에는 결정코 이 일을 밝히고서 이 몸뚱이를 버려야겠다는 작심(作心)을 하고, 한시라도 정진(精進)의 고삐를 늦추지 말기 바라노라.

석일(昔日)에 한 노파가 토굴에서 혼자 정진하는 어느 스님에게, 진리를 깨쳐서 광도중생(廣度衆生)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극정성으로 공양을 올리며 갖은 뒷바라지를 다해 드렸다.
그렇게 시봉하기를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노파는 그 토굴승의 공부를 점검해보기 위하여, 딸을 시켜서 공양상을 가지고 가게 하면서 은밀하게 한 가지 이르셨다.
딸이 토굴에 가서 어머니가 시킨 대로 스님 옆에 공양상을 놓고는 정진하고 있는 스님을 안으면서,
“스님, 이러한 때에는 어떻습니까?”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그 스님은,
“마른 나무가 찬 바위를 의지했으니 삼동 혹한에 온기조차 없더라.[枯木倚寒岩 三冬無暖氣]”
라고 말했다.
아무리 아리따운 아가씨가 와서 안겨도 거기에 태연 무심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딸이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스님의 말을 그대로 전해 드리자 노파가 듣고는 노발대발했다.
“내가 20년 동안 큰 마구니에게 공양을 올렸었구나.”
하며 노파는 당장에 토굴로 쫓아가서 그 스님을 끌어내고 토굴에 불을 질러 버렸다.

자고로 이것은 도인 문중에서 논란이 많았던 법문이다. 이러한 법문은 견처(見處)가 조금 난 것 가지고는 알기가 어려운 것이어서, 제방(諸方)에 선지식이라고 알려져 있는 분들조차도 동문서답을 하는 법문이다.
그러면 노파는 과연 어떠한 안목(眼目)을 갖추었기에, 토굴승이 그와 같은 굉장한 답을 하였는데도 20년 동안이나 큰 마구니를 시봉했다면서 토굴을 불태워 버렸겠는가?
산승(山僧)이 보건대,
이 노파는 일등도인(一等道人)과 견주어 볼 때, 호리(毫釐)도 하자가 없는 참으로 훌륭한 도인(道人) 보살이다.
그렇다면, 그 토굴승은 뭐라고 답을 했어야 노파에게 쫓겨나지 않고 토굴이 불태워짐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금일에 산승이 한 팔을 걷어붙이고 그 토굴승을 대신하여 답해 보이리라.

이 야호(野狐)들아,
야호의 소견(所見)을 짓지 마라.

왜 이렇게 답하는지를 알겠는가?

官不容針(관불용침)
私通巨馬(사통거마)

관에는 바늘도 용납하지 못함이요,
사사로이는 거마가 통함이로다.

무진년(1988) 하안거 결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28. 약산(藥山)의 향상기(向上機)


이 불법(佛法)의 진리를 논할진대,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돈을 잃고 죄과(罪果)를 받음이요,
역대(歷代)의 모든 조사(祖師)들도 돈을 잃고 죄과를 받음이로다.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무슨 돈이 있어서 돈을 잃고 죄과를 받으셨으며, 역대 조사들 또한 무슨 돈이 있어서 돈을 잃고 죄과를 받으셨는고?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심오한 법문 한 마디를 바로 안다면, 삼세(三世)의 업(業)이 당하(當下)에 다 소멸되고, 이 진리의 법에 당당한 주인이 되어서 아주 한가롭고 한가로운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옛날 중국(中國) 약산(藥山)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고찰이다 보니 몹시 퇴락(頹落)하여 중수(重修)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절 조실(祖室) 스님께서 대중 가운데 신심(信心) 있는 스님을 한 명 뽑아서 화주(化主)를 해오게 하셨다.
그리하여 화주승(化主僧)이 이마을 저마을로 다니면서 화주를 하는데, 어느 단월(檀越)집에 들어가니, 주인이 반갑게 맞아 공양대접을 잘 하고는 물었다.
“스님,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약산(藥山)에서 왔습니다.”
“약산에서 오셨다면 무슨 좋은 약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그러자 화주승이 묻기를,
“무슨 병이 있습니까?”
하자, 그 말 끝에 주인이 은전(銀錢) 스무 냥을 내 주었다.
마침 화주하러 갔던 차제라, 처사가 은전 스무 냥이라는 큰돈을 내미니, 이 맹추 같은 스님은 좋다고 그 돈을 받아서 짊어지고 갔다. 절로 돌아와서 조실 스님께 인사를 올리고는 바랑에서 화주해온 돈을 꺼내면서 말씀드렸다.
“불법(佛法)이 상당해서 화주를 많이 해왔습니다.”
“무슨 불법이 상당해서 화주를 그리 많이 해왔느냐?”
화주승이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조실 스님께서는,
“이놈, 어서 그 돈을 도로 갖다 드려라!”
하고 호통을 쳐서 돈을 돌려 보내셨다.
한편, 단월가의 처사는 화주승이 돌아가고 난 후에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약산에 눈 밝은 도인이 계신다면, 그 돈은 도로 돌아올 것이오.”
지고 갈 돈이 아닌데 화주승이 좋다고 허겁지겁 지고 가버리니 마누라를 불러서 하는 말이었다.
며칠 후에, 그 화주승이 돈을 짊어지고 터덜터덜 와서는 은전 스무 냥을 그대로 내놓았다.
그러자 처사가 말하기를,
“약산에 과연 귀하신 분이 계시는구나.”
하며 은전 스무 냥을 더 보태서 마흔 냥을 주었다.

진리의 눈이 열리면 이렇게 서로 아는 법이다.
은전 스무 냥을 내놓으니 받아가 버리자 처사는 “만약 약산에 도인이 계신다면 이 돈은 도로 돌아올 것이다.” 하였고,약산 도인께서는 화주해온 내막을 들으시고는 돈을 도로 돌려 보내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병이 있습니까?” 하는데 은전 스무 냥을 내놓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러한 법문은 듣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다. 우리가 참선 공부를 잘 해서 진리의 눈이 열리면 이러한 것을 척척 꼬집어 낼 수 있게 된다.
약산(藥山) 선사께서 몸에 조그마한 병이 있어서 오랫동안 법상(法床)에 오르지 아니하시니, 대중이 모두 법문 듣기를 원했다. 그래서 원주(院主)가 선사께 가서 여쭙기를,
“스님, 대중이 모두 법문 듣기를 원하고 있으니, 오늘은 대중을 위해서 설법(說法)을 좀 해 주십시오.”
하자, 약산 선사께서 운집종(雲集鍾)을 치라고 하셨다.
대중이 모두 법당에 모이자, 약산 선사께서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법상에 오르셨다. 대중이 청법(請法)을 하고는 모두 마음을 가다듬고 앉아 있는데, 약산 선사께서는 잠시 묵묵히 앉아 계시다가 곧 법상에서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셨다.
원주가 뒤따라 들어가 여쭙기를,
“스님, 모든 대중이 조실 스님의 법문 한 마디 듣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는데, 어찌하여 한 말씀도 설(說)하지 아니 하시고 법상에서 내려오셨습니까?”
하자, 약산 선사께서는
“경(經)에는 경의 스승이 있고, 논(論)에는 논의 스승이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큰 뜻이 있다.
우리가 이러한 고인(古人)의 살림살이를 모른다면 절대 견성(見性)이 아니다. 선지식(善知識)이 될 수가 없다. 모든 부처님께서 비밀히 전해오신, 그 진리의 세계와는 천리 만리밖에 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일러라, 약산 선사의 심심(深深)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

藥山禪師向上機(약산선사향상기)
其光照破四天下(기광조파사천하)

약산 선사의 향상의 기틀이여!
그 광명이 사천하를 비춤이로다.

무진년(1988) 구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29. 생활 속의 참수행


가지가지의 마음이 나면 만 가지의 진리의 법이 현전(現前)하고
가지가지의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 가지의 진리의 법이 없음이라.

마음은 만 가지 진리법의 주인이다.
이 마음을 깨달아 알 것 같으면 만법(萬法)에 임의자재(任意自在)할 수 있지만, 깨닫지 못할 때에는 온갖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인해 번뇌(煩惱)가 쉴 날이 없다.
우리가 참선수행(參禪修行)을 하는 것은 사람마다 각자 지니고 있는 이 마음을 밝혀서 만법(萬法)의 당당한 주인이 되자는 데 있는 것이다.

옛날에 위산(潙山)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이러한 법문을 하셨다.
“사람 사람마다 각자 모양 없는 참사람이 있어서 항시 면전(面前)에 출입자재(出入自在)하는데,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를 보느냐?”
대중 가운데 한 청신녀(淸信女)가 이 법문을 듣고서, ‘사람마다 모양 없는 참사람이 있어서 일상생활 가운데 쓰고 있다는데, 나는 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고?’ 하는 분심(憤心)이 일어 오매불망(寤寐不忘) 의심하고 참구하고, 의심하고 참구했다.
이 보살은 세간살이 형편이 너무 어려워 시골 장터에서 빵을 구워 팔아서 생활을 꾸리며 살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일구월심(日久月深)으로 화두일념을 지어갔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을 간절하게 골수에 사무치도록 공부한 결과, 하루는 빵을 굽는 도중에 홀연히 화두 관문(關門)이 타파되어 모양 없는 참사람을 알았다.
그리하여 빵소쿠리를 팽개쳐 버리고 위산 선사를 찾아가니, 선사께서 벌써 간파(看破)하시고 물으셨다.
“어떤 것이 모양 없는 참사람이냐?”
그러자 보살이 송(頌)으로 답하기를,

三頭六臂大力將(삼두육비대력장)
一拳擊破泰和山(일권격파태화산)
分破和山千萬重(분파화산천만중)
萬年流水不知春(만년유수부지춘)

머리는 셋이요, 팔은 여섯 가진 대장사가
한 주먹으로 태화산을 쳐부숨에
천겹 만겹의 태화산이 두 동강이 나니
만 년이나 흐르는 물은 봄을 알지 못하더라.

이렇게 깨달은 경지를 송(頌)하자, 위산 선사께서 들으시고는,
“그대가 바로 알았느니라.”
하고 인가(印可)하셨다.
이 청신녀가 바로 유도바(有道婆) 보살이다.
이렇듯 시끌벅적한 시장바닥에서 장사를 하면서 살아가는 여인네가 화두 관문을 뚫어 일대사(一大事)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이 참선공부라는 것이 오로지 마음으로 지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승속(僧俗), 남녀(男女), 어떠한 경계(境界), 그 어떠한 형상(形相)과도 무관한 것이 이 참선법이다.
예전에 능행파(陵行婆), 대산바자(台山婆子), 영조(靈照), 그리고 지금 들어보인 유도바(有道婆) 같은 분들은 모두 속인(俗人)이면서 여자인 몸으로 도(道)를 깨쳤는데, 그 기봉(機鋒)이 아주 날카롭고 자유자재했다.
그러니 수좌(首座)들이 공부한답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은 다 경계에 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20년을 공부해도 해결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예전 도인 스님들께서는 조용한 데서 공부를 익히는 것보다 시끄러운 가운데서 익히면 그 힘이 몇 배나 더 수승(殊勝)하다고 하셨다.
이 공부는 사지(四肢)가 찢어지고 팔풍(八風)이 불어닥칠 때 써먹는 것이라서, 편안하고 고요한 때만이 아니라 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순일(純一)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참선방(參禪房)이 따로 있지 않다. 바른 법문을 듣고 바른 지도를 받아서 걸음걸음 화두를 놓지 않으면, 부엌이나 안방이나 사무실이나 만원 버스 등, 가는 곳마다 다 일등 선방인 것이다. 이러한 공부법을 익히지 않고, 앉아 있을 때는 화두가 있는 듯하다가 서면 달아나고 걸어가면 없어져 버리는, 그러한 공부를 짓는다면 백 생(百生)을 하더라도 진리의 눈이 열릴 수가 없는 법이다.
만약 시회대중이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각자의 화두를 오장육부에 사무치도록 지어간다면, 시절인연(時節因緣)을 만나 축착합착(築著磕著)하여 확연히 열리리니, 다시 한번 대신심(大信心)과 분심(憤心)을 발(發)할지어다.

무진년(1988) 구월 보름 해운정사 원통보전


30. 운문(雲門) 항상철가(恒常鐵枷)


古鏡本無塵(고경본무진)
唯人造點琢(유인조점탁)

옛 거울에는 본래 티끌이 없음이나
다만 사람들이 더럽히고 닦고 함을 지음이로다.

사람마다 옛 거울이 있어서 거기에는 일점(一點)의 진애(塵埃)도 없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공연히 더럽히고 닦고 하기를 그칠 날이 없다.
만약 사람이 있어서 이러한 줄을 바로 알 것 같으면, 참구(參究)하는 일을 다해 마쳐서 억만 년이 다하도록 편안하고 편안한 낙(樂)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부처님의 이 최고의 진리의 법문을 듣고 참선수행(參禪修行)을 하는 것은, 인인개개인(人人箇箇人)이 각자 지니고 있는 이 옛 거울을 바로 보자는 데 그 뜻이 있다.
운문(雲門) 스님이 젊은 시절에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의 법을 깨닫고자 발심출가(發心出家)하여 오로지 참선수행에만 몰두하였다.
당시는 목주(睦州) 선사의 도명(道名)이 유명했던 때였다.목주 선사는 조그마한 단칸 토굴을 지어 외인(外人)이 전혀 들여다 볼 수 없게끔 한 길이 넘게 담장을 빙 둘러쌓고, 한쪽에 사립문만 하나 내어놓고, 그 안에서 생활하셨다.
참학인(參學人)들이 이 목주 선사를 친견(親見)하려고 와서 사립문을 똑똑 두드리면, 선사께서는 문을 반쯤 열고 나오셔서 한 손으로 들어오려는 스님네의 멱살을 잡고,
“이르고 일러라!”
하셨다. 진리의 한 마디를 이르라는 것이다.
만약 방문객이 여기서 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면, 목주 선사께서는 육척장신(六尺長身)의 그 큰 체구의 힘으로, 멱살을 잡았던 상태에서 그대로 밀어 버리셨다. 그러면 아무리 장사라도 5,6미터 밖에 여지없이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운문 스님이 목주 선사의 법(法)이 장하다는 소문을 듣고서, ‘내가 그 스님을 친견하고 탁마(琢磨)받아서 기어코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의 법을 깨치리라.’는 생각으로 목주 선사를 찾아갔다.
토굴 앞에 이르러 사립문을 똑똑 두드리자, 목주 선사께서 문을 반쯤 열고 나오시더니 대뜸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셨다.
“이르고 일러라!”
운문 스님이 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목주 선사께서는 서슴없이 한 손으로 밀어 버리셨다. 그러자 운문 스님은 저만큼 가서 나동그라졌고, 목주 선사께서는 여지없이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셨다.
도(道)를 깨쳤다면, ‘이르고 일러라!’ 할 때 답이 척 나오게 되어 있다. 무엇을 이르라고 하는지 미리 알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이는 상대방의 뜻을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는 법이다.
운문 스님이 목주 선사를 친견하고자 수차 참방(參訪)하였지만, 이르라는 데 답을 못 하니 계속 이런 식으로 쫓겨날 뿐, 도무지 안에 들어가서 진법문(眞法門)을 들을 기회가 생기지를 않았다.
그래서 돌아가 용맹정진을 하다가 하루는, ‘이번에는 내가죽는 한이 있더라도 목주 도인 토굴 안에 들어가고야 말리라.’ 하는 분심(憤心)이 일어, 다시 목주 선사를 찾아갔다.
사립문을 두드리니, 목주 선사께서 나오셔서 또 멱살을 잡으시고는,
“이르고 일러라!”
하셨다.
여기에서 한 마디 바로 해버리면 목주 선사께서도 문을 활짝 열고 흔연히 맞아 들이실 것인데, 운문 스님은 이번에도 또 우물쭈물하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어떻게 해서든지 토굴안에 들어가리라는 사생결단(死生決斷)의 각오를 했기 때문에, 목주 선사께서 여지없이 밀어내시는데, 밀어내는 그 팔을 잡고 전신의 힘을 다해 늘어지면서 한 발을 사립문 안에 들여 놓았다.
한쪽에서는 밀어내고 한쪽에서는 들어가려고 하는 와중에, 목주 선사께서 그만 사립문을 닫아 버리셨다. 그러니 사립문 안에 들여놓았던 운문 스님의 다리가 여지없이 부러졌다.
“아얏!”
뼈가 부러지는 순간, 운문 스님은 자신이 지른 이 소리에 진리의 눈이 활짝 열렸다.
그래서 운문 스님은 일생을 절름발이로 살면서 불법(佛法)을 선양(宣揚)하였다.

운문 스님이 이렇게 해서 깨닫고는, 당시에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고 계시던 설봉(雪峰) 선사의 회상을 찾아갔다.
몸이 불구이다 보니 항상 시자를 데리고 다녔는데 일주문 앞에 당도해서 시자에게 일렀다.
“네가 들어가 조실방 앞에 가서 ‘스님, 어찌해서 항상 목에 철칼을 쓰고 계시면서 벗지 못하십니까?’ 하고 여쭈어라. 그리고 설봉 선사께서 그말을 들으시고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이것은 네 말이라고 하여라.”
시자가 운문 스님이 시키는 대로 설봉 선사 문전에 이르러서,
“스님, 어찌해서 항상 목에 철칼을 쓰고 계시면서 벗지 못하십니까?”
하자, 설봉 선사께서 벼락같이 문을 열고 나오셔서 그 말하는 스님의 멱살을 잡고 다그치셨다.
“일러라!”
시자가 대꾸를 못 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설봉 선사께서
“그것은 네 말이 아니다.”
하시고는 내던져 버리셨다.
“아닙니다. 그것은 제 말입니다.”
“아 이놈아, 그것은 네 말이 아니다.”
설봉 선사께서 유나(維那) 스님을 불러 운집종(雲集鐘)을 치게 하셔서, 천오백 대중이 다 모인 가운데 이르셨다.
“이 놈이 바른 말을 할때까지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놓고 패라.”
그리하여 사중의 모든 대중이 큰방에 모여서 시자 스님을 밧줄로 묶어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놓고는 주장자(拄杖子)로 패려고 하자, 시자가 그 때서야
“제 말이 아닙니다.”
하고 실토를 하였다.
“그러면 누구의 말이냐?”
“운문 스님이 시키신 대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운문 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
“일주문 밖에 계십니다.”
그러자 설봉 선사께서 대중을 향해,
“일천 오백 대중을 지도할 수 있는 안목(眼目)을 갖춘 훌륭한 선지식이 오셨으니, 대중은 일주문 앞에 가서 그 스님을 모시고 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성인(聖人)이라야 능히 성인을 안다. 이 도안(道眼)이 열리면 일거일동에 상대방의 살림살이를 다 아는 법이다.
“스님, 어찌해서 항상 목에 철칼을 쓰고 계시면서 벗지 못하십니까?” 하는 이말의 낙처(落處)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된다. 설봉 선사께서도 시자가 처음 토한 이말이 천고(千古)에 빛날 가치 있는 말이라서, 벼락같이 방문을 열고 나오셔서 그 말하는 스님의 멱살을 잡고“일러라!” 하셨던 것이다.
지혜의 눈이 열리면 꼭 대면(對面)을 해서 대담(對談)을 해야만 상대방을 아는 것이 아니다. 이 부처님의 진리는 천 리 밖에 떨어져 있더라도 한 마디 들어 보면 상대방의 살림살이를 다 아는 법이다. 이렇게 상통(相通)하는 것이 부처님의 마음법이다.
운문 스님은 여기에서 설봉 선사의 인가(印可)를 받고 제자가 되어 다년간 설봉 선사를 모시고 지냈다.

당시에 또 영수(靈樹) 선사라는 도인이 계셔서 수백 명 대중을 거느리고 참선지도를 하셨는데, 20년 동안 수좌(首座) 자리를 비워놓고 어느 스님도 추대하지 않으셨다.
“수좌 스님은 언제 오십니까?”
하고 대중이 물으면,
“이제 태어났다. 태어나서 소를 잘 먹이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 수도(修道)를 잘 하고 있다는 그러한 말씀만 20년간 계속 해오셨다.
그러다 근 20년이 지나서 하루는,
“오늘은 수좌 스님이 올 것이니 대중은 맞을 준비를 하라.”
하고 이르셨다.
조실 스님의 명(命)이 떨어지자, 대중이 일시에 온 도량을 청소하고는 가사 장삼을 수(垂)하고 산문(山門) 앞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웬 스님 한 분이 산문을 들어오셨다. 운문 선사께서 제방(諸方)을 행각(行脚)하시다가 영수 선사 회상을 찾아오셨던 것이다.
영수 선사께서,
“수좌 자리에 모셔라!”
하셔서, 대중들이 운문 선사를 수좌 자리에 모셨다.
그러자 대중 가운데 한 스님이 칼을 가지고 와서 운문 선사의 정수리에 대고는,
“이 때를 당해 어떠합니까?”
하고 대번에 시험을 하였다.
이에 운문 선사께서 주저하지 않으시고,
“피가 범천궁(梵天宮)까지 넘쳤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시험을 던졌던 스님이 칼을 거두고 큰 절을 하였다.
도안(道眼)이 열리면 어떠한 물음을 던져도 이렇게 답이 척척 나오는 법이다. 멱살을 잡고 이르라고 할 적에는 이르라고 하는 낙처(落處)를 먼저 안다. 칼을 이마에다 대고 이르라고 해도 그 낙처를 먼저 알기 때문에“피가 범천궁까지 넘쳤다.” 고 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안목(眼目)의 일구법문(一句法門)은 세상에 있는 황금덩어리를 다 가져온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필경(畢竟)에 한 마디는 어떠하냐?

紅霞穿碧海(홍하천벽해)
白日繞須彌(백일요수미)

붉은 안개는 바다 밑을 꿰뚫고
밝은 해는 수미산을 돎이로다.

기사년(1989) 정월 초사흘 해운정사 원통보전


31. 위산(潙山)․앙산(仰山)의 호환지기(互換之機)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법상(法床)을 한 번 내려치시고 이르시기를,

하나도 옳지 못하고 둘도 이루지 못함이로다.

다시 주장자를 들어 한 번 치시고,

1 2 3 4 5 6 7 이라.

불법(佛法)의 진리는 참으로 묘(妙)한 것이다.
왜 ‘하나도 옳지 못하고 둘도 이루지 못한다’고 해놓고서 ‘1 2 3 4 5 6 7 이라’고 하느냐?
누구든지 이 두 마디만 바로 볼 줄 안다면 불법(佛法)의 눈을 다 갖추었다 하리라.
하루는 위산(潙山) 선사께서 제자 앙산(仰山) 스님과 함께 차를 따면서 말씀하셨다.
“종일토록 차를 따도 그대의 소리만 들리고 그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그대의 본래 모습을 보여 보게.”
이에 앙산 스님이 차나무를 한 번 흔들자 위산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용(用)을 얻었을 뿐, 그 체(體)는 얻지 못했도다.”
그러자 앙산 스님이 여쭙기를,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위산 선사께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계셨다.
이에 앙산 스님이
“스님께서는 체(體)를 얻었을 뿐, 그 용(用)은 얻지 못하셨습니다.”
하자, 위산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삼십 방(棒)을 놓았노라.”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위산 선사와 앙산 선사의 호환(互換)의 기틀을 보라!

好手中呈好手(호수중정호수)

멋진 수완에다 멋진 수완을 바침이로다.

기사년(1989) 하안거 결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32. 천도(薦度)의 의미


이 법당(法堂) 안의 모든 대중의 몸 가운데 한 권의 경서(經書)가 있으나
이 경서는 종이와 먹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그 경서를 만인 앞에 펴니 한 글자도 없음이라.
한 글자도 없으나 항상 깨끗한 광명(光明)을 발하고 있음
이로다.

그러면, 이 경서(經書)를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좋을꼬?

이름을 붙일 것 같으면 벌써 변해 버렸느니라.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이 두 가지가 모두 허망한 것이니, 이 나고 죽는 가운데서 홀연히 몸을 뒤쳐 크게 활개를 칠 것 같으면,

處處綠楊堪繫馬(처처녹양감계마)
家家門外通長安(가가문외통장안)

곳곳에 푸른 버들에는 말을 매고 쉴 수가 있고
집집마다 문전에는 장안의 길이 통해 있더라.

시회대중과 영단위패 영가 그리고 우주의 모든 고혼은 산승(山僧)이 방금 든 이 말의 참뜻을 분명히 안다면, 많은 생(生)에 지어온 업장(業障)과 금생에 얽힌 온갖 애정과 탐착을 즉시에 놓아 버리고, 부처님의 진리의 무위국토(無爲國土)에서 세세생생 편안히 머무를 수 있다.
만약 여기에서 분명히 알지 못할진대는, 산승이 다시 얕은 진리의 법문을 들어 주해(註解)를 더할까 하노니 잘 받아 가지소서.

오늘은 여름 석 달 동안의 안거(安居)를 마치는 해제일(解制日)임과 동시에 선망부모(先亡父母)와 먼저 가신 조상 영가(靈駕), 이 나라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충혼(忠魂), 우주의 모든 고혼(孤魂)을 천도(薦度)하는 날이다.
그러면 천도라는 것은 무엇이냐?
사람이 한평생 살다가 숨이 떨어지면, 이 세상에는 한 줌 재나 무덤만 남고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영혼은, 죽어서 몸뚱이가 없어졌는데도 죽었다는 관념이 없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잠이 들어 꿈을 꾸면 현실과 똑같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희노애락(喜怒哀樂)하게 되는데, 꿈을 꾸고 있을 당시에는 꿈이라는 관념을 전혀 갖고 있지 않는 것과 같다. 몸만 여의었다는 것뿐이지, 그 영식(靈識)은 죽었다는 관념이 없고 생시(生時)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애정, 물질, 원한, 명예 등에 집착하여 거기에 머물러 있다. 영가는 몸뚱이를 벗어 버리면 의지할 데가 없는 고로 우주 공간에 생각대로 주(住)하는 것이다.
영가가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애정과 탐착에 붙잡혀 있으면, 다음 생을 받지 못하고 중음신(中陰神)이 되어, 우주 공간에 몇백년을 머물러 있게 된다. 중음신으로 외롭게 떠돌면 영가 자신이 괴롭고, 따라서 집안이 편안할 리가 없다.
부처님법에 먼저 가신 조상 영가의 천도재(薦度齋)를 올려 드리고 사람이 죽으면 49재(四十九齋)를 올려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가가 염불(念佛)과 독경(讀經)소리, 부처님의 고귀한 진리의 법문을 듣고서 환상에서 깨어나, 모든 애착과 집착을 훨훨 털어 버리고, 다음 생(生)의 좋은 인연을 찾아 태어나라는 뜻에서 재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이 재(齋)는 공양(供養)이 근본이다. 삼보전(三寶前)에 공양 올리는 그 공덕(功德)으로 영가에게 큰 복이 되어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도 재를 지낼 때, 수행하는 스님네를 많이 모셔서 대중공양을 올렸다. 많은 대중 스님을 청하는 뜻은 그 가운데 최상승(最上乘)의 진리를 깨달은 분도 있고, 대승(大乘)의 진리를 깨달은 분도 있고, 소승(小乘)의 진리를 깨달은 분도 있어서, 그 분들에게 올리는 공양이야말로 한량없는 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를 올려드린다고 해서 영가가 다 극락세계에 가고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영가는 이 고준(高峻)한 진리의 법문을 한 마디만 바로 듣게 되면 그대로 부처님 국토에 태어나지만, 아무리 좋은 법문을 해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절에서 영가 천도를 할 때 으레 금강경(金剛經)을 독송하는데, 만약 독송하는 이가 이 경(經)의 심오한 뜻을 모르고 껍데기 문자만 읽어 내려간다면 영가가 감화를 받지 못한다. 그 뜻을 바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가를 천도하는 데는 법력(法力) 있는 선지식 스님네의 고준한 법문 한 마디가 천도의 묘방(妙方)이 된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는 아무리 염불을 하고 경을 외워 보아야 자신이 그 심오한 진리를 알지 못하는 고로, 상대(相對)의 영가 또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진리의 세계에 눈이 열린 이만이, 한 마디 법문을 하고 한 마디 독경을 하는 데서 영가가 그 뜻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이다.

옛날에 방(龐) 거사 일가(一家)가 있었는데, 여러분이 법문을 많이 들어서 잘 알겠지만, 온 가족이 다 진리의 눈이 열린 도인가족이었다.
하루는 어느 절에서 큰 재(齋)가 베풀어져, 방 거사 보살에게 영가 법문을 청(請)해왔다.
방 거사 보살은 여기 법당 내의 모든 보살님네처럼, 형상은 머리도 길렀고 속복(俗服)도 입은 똑같은 모습이지만, 진리의 세계에 눈이 열린 도인이기 때문에 법사(法師)로 청한 것이다.
법문 차례가 되어 청법(請法)을 하자, 보살이 나와 영단 앞에 가 서더니 향로에다 자신의 머리에 꽂았던 비녀를 빼서 꽂아놓고는 그만 나가 버렸다.
영가를 위해서 법문 한 마디 해 달라고 특별히 큰스님 대행(代行)의 법사로 청한 것인데, 법문은 커녕 염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영단 향로에다 자신의 비녀만 꽂고 나가 버린 것이다.

여기에 천마디 만마디를 능가하는 뜻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49년 설(說)이 다 있는 것이다.
금일 영단위패 모든 영가, 우주의 일체 고혼(孤魂)은 알아 들었는가?
방 거사 보살이 한 마디도 설하지 않고 영단 향로에다 자신의 비녀를 꽂고 나간 뜻이 어디에 있는가?

一擧兩擧無人會(일거양거무인회)
兩手扶犁水過膝(양수부리수과슬)

제일의 법문을 들고 제이의 법문을 들어야 아는 이 없어
두 손으로 쟁기를 붙잡으니 논의 물이 무릎을 지나감이로다.

기사년(1989) 하안거 해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33. 덕산(德山) 삼십 방(棒)의 의지(意旨)


산승(山僧)이 가지고 있는 이 주장자(拄杖子)를 잡아드니,
청천(靑天) 하늘에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요란하여 산은
무너지고 땅은 꺼짐이로다.
들었던 이 주장자를 놓으니,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초초(花花草草)가 각각 제 위치
에서 생기분분함이로다.

이 주장자를 들지도 않고 놓지도 아니해서는 어떠한고?

달이 큰즉 30일이요, 작은즉 29일이로다.

만약 여러분이 방금 산승이 열거한 심오한 진리를 분명히 알아 간다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 스님들의 속임을 받지 아니할 것이며, 당당한 대장부의 안목(眼目)을 갖추어서 비로소 사람다운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
덕산(德山) 선사께서 어느 날 대중에게 이러한 법문을 하셨다.
“일러라. 부처님의 진리의 법을 바로 일러도 삼십 방(棒)을 때릴 것이요, 바로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을 때리리라.”
임제 선사께서 이것을 전해 들으시고는 시자를 덕산 선사 회상으로 보내면서 이르셨다.
“네가 가서 지켜보다가, 덕산 스님이 ‘부처님의 진리의 법을 바로 일러도 삼십 방망이를 때리고 바로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을 때린다.’고 말하면 이렇게 물어보아라. ‘바로 이르지 못한 데는 삼십 방(棒)을 때리심이 당연하거니와 어째서 바로 이르는 경우에도 삼십 방을 때린다고 하십니까?’ 그렇게 물었을 때 만약, 덕산 스님이 너를 때리거든, 그 주장자를 빼앗아서 한 번 찔러 버리고 오너라.”
그리하여 시자가 덕산 선사 회상에 가서 지내다가, 덕산 스님이 그 법문을 하실 때를 포착하여 물었다.
“스님께서는 일러도 삼십 방(棒)이요, 이르지 못해도 삼십방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이르지 못한 데는 삼십 방을 때리심이 당연하지만 어째서 바로 이르는 경우에도 삼십 방을 때린다고 하십니까?”
그러자 덕산 선사께서 묻는 시자 스님을 여지없이 갈기므로, 시자가 얼른 그 주장자를 잡아서 덕산 선사를 찔러 버렸다. 덕산 선사께서 밀려가 쓰러지시더니 곧 일어나 방장실(方丈室)로 돌아가 문을 닫아 버리셨다.
시자가 돌아와서 임제 선사께 그대로 말씀드리니, 임제 선사께서 들으시고는,
“내가 원래 덕산을 의심했노라.”
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원래 덕산을 의심했다.”라고 하는 여기에 큰 뜻이 있다.
우리가 이러한 법문을 바로 받아들일 줄 아는 눈을 갖추어야만 염라대왕이 와도 잡아가지를 못하는 법이다.

월내(月內) 향곡(香谷) 선사 회상에서 젊은 스님네들이 모여서 정진을 하는데, 선사께서 이것을 들어 법문하셨던 적이 있었다.
후에 그 스님들 중에 한 사람이 미국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10여 년 공부하다가 자기 딴에는 소견(所見)이 났던 모양이다.
미국에는 공부를 점검해 줄 만한 안목(眼目)을 가진 선지식이 없고, 향곡(香谷) 선사께서는 이미 고인(故人)이 되신 지 오래인지라, 산승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공부를 하다가 견처(見處)가 생기면 스승을 찾아가 흑백을 가리고 점검을 받아야 정법(正法)의 정안(正眼)을 갖추었는가, 갖추지 못했는가를 아는 법이다.
이것을 가려주는 이가 선지식(善知識)이다. 참학인(參學人)의 일생사(一生事) 살림살이를 바르게 점검하여, 세세생생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의 삼매락(三昧樂)을 누리게 하고 만인의 스승이 되게끔, 안목 간택(揀擇)을 해주는 것이 바로 선지식의 역할이다.
만약 선지식이 정법정안(正法正眼)의 당당한 진리의 안목을 갖추지 못하고서 삿된 소견으로 그릇 지도하여 만인의 눈을 멀게 한다면, 그 허물로 능히 지옥도 갈 수 있는 죄업(罪業)을 짓는 법이다.
이렇듯 참학인(參學人)이 불법의 정안(正眼)을 갖추는 일이 바로 선지식의 점검에 달려있는 것이니, 종사(宗師)의 안목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앞에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미국에서 수도(修道)하던 그 스님이 편지에 어떻게 적어 보냈느냐면,
“향곡 선사께서 ‘덕산 도인이 바로 일러도 삼십 방(棒)을 때리고 바로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을 때린다고 하신 뜻이 무엇인가 일러 보라.’ 하셨을 때, 그 당시에는 제가 답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향곡 선사께서 제 방망이를 맞으셔야 됩니다.
스님께서 저의 이 견처(見處)를 보시고 바르게 알았는가, 바르게 알지 못했는가를 자비(慈悲)로써 점검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산승(山僧)이 답신(答信)을 적어 보내기를,
“그대가 향곡 선사께 방망이를 때리는 것은 차치하고, 덕산 선사께서 ‘일러도 삼십 방(棒)을 때리고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을 때린다.’고 말씀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고, 그 낙처(落處)를 바로 알아야 된다.”
라고 하였다.
그러니 고인(古人)이 “일러도 삼십 방(棒)을 때리고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을 때린다.”고 하신 말씀의 낙처를 바로 알아야 이 공안(公案)에 진리의 눈이 열리는 법이다.

대중은 일러 보라. 고인의 낙처가 어디에 있는고?

한참 묵묵히 계시다가 송(頌)하시기를,

啼得血淚無用處(제득혈루무용처)
不如緘口過殘年(불여함구과잔년)

만사람이 울고 울어서 피눈물을 흘린다 해도 쓸 곳이 없음이니
입을 다물고 남은 해를 보내는 것만 같지 못함이로다.

기사년(1989) 팔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34. 충(忠) 국사의 삼환시자(三喚侍者)


종사가(宗師家)가 눈 밝은 제자를 한 개나 반 개 얻기 위해서는 일생토록 심혈을 기울이나니, 사자가 새끼를 낳아 수십 척 벼랑에 떨어뜨려 거기에서 살아서 올라오는 놈이라야 사자의 조아(爪牙) 와 반척(反擲)을 가르치느니라.

석일(昔日)에 한 객승(客僧)이 남양 충(南陽忠) 국사를 친견(親見)하고자 충 국사 처소를 방문하였다.
그리하여 시자(侍者)에게 그 뜻을 전하니, 시자가 대뜸
“국사께서 계시긴 하지만 친견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므로, 객승이 물었다.
“어째서 친견할 수가 없습니까?”
이에 시자가 답하기를,
“설사 부처의 눈을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국사는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하며 친견을 시켜주지 않았다.
그래서 객은 결국 충 국사를 뵙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 시자가 굉장한 눈을 갖춘 분이다. “부처의 눈을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국사는 친견할 수가 없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시자(侍者) 자격이 있는 분이라 하겠다.
그런 후에 시자가 충 국사께 자초지종을 아뢰니, 국사께서 들으시고는 시자에게 호통을 치고 주장자로 때려서 내쫓으셨다.

어째서 충 국사께서는 그렇듯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낸 시자를 주장자로 내쫓으셨느냐?
우리가 이러한 법문을 바로 알 때라야 중생(衆生)의 업(業)이 다하고 육도(六道) 윤회고(輪廻苦)가 다 떨어져 나간다. 그 때는 염라대왕이 밥값을 추심(推尋)할 일도 없다.
그래서 산승이 항상 여러분에게 참선수행을 하라고 간곡히 권하는 것이다.
이 선수행(禪修行)을 모르고 인생 칠팔십을 살다가 홀연히 가면, 어디로 가는지, 어느 곳에 떨어질 것인지 막막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태어나서 할 일은 오직 이 일뿐이다. 부지런히 정진해서 중생(衆生)의 번뇌가 다해야만 내생사(來生事)가 해결되는 것이니, 여러 대중은 촌음(寸陰)을 다투어 정진하길 바란다.

어느 날 충 국사(忠國師)께서 “시자야!” 하고 시자를 부르시자, 시자가 “예.” 하고 대답했다.
이와 같이 세 차례 부르셔서 세 차례 대답하니, 충 국사께서
“장차 내가 너를 저버리는가 했더니 도리어 네가 나를 저버리는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대중은 혜충 국사께서 시자를 세 번 부르신 뜻을 알겠는가?

[대중이 아무 말 없자 이르시기를,]

불쌍한 아이를 생각함이나, 집 안의 허물이 밖으로 드러남은 미처 알지 못함이로다

시자가 세 번 대답한 뜻을 알겠는가?

노사(老師)여, “네가 나를 저버린다.” 하지 마소서.
시자의 성성(惺惺)한 대답소리가 온 우주에 가득하느니.

스승이 부르고 제자가 응(應)하니 모두가 눈멀었도다. 다시 또 눈 먼 이가 하나 있으니, 이 일개할한(一箇轄漢)은 어디로 돌아감인고?

눈 멂이로다.

경오년(1990) 오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35. 삼성(三聖)ㆍ설봉(雪峰)ㆍ위산(潙山)의 법거량처(法擧揚處)


三界無法(삼계무법)
法求何處(법구하처)
四大本空(사대본공)
佛依何住(불의하주)

삼계 에는 진리의 법이 없거늘
어느 곳에서 법을 구할 것이며
사대가 본래 공하거늘
부처는 어디를 의지하여 머물 것인고.

여기에서 분명히 전신자재(轉身自在)할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으로 더불어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부처님 국토에서 안온락(安穩樂)을 누리게 될 것이다.

임제(臨濟) 선사께서 열반(涅槃)에 다다라 제자 삼성(三聖) 스님을 불러 이르셨다.
“내가 이 세상을 뜬 후에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멸(滅)하지 말라.”
그러자 삼성 스님이 말씀드리기를,
“어찌 감히 스님의 정법안장을 멸하겠습니까?”
하니, 임제 선사께서 물으셨다.
“이후에 사람들이 정법안장을 물을 것 같으면, 너는 어떻게 말하려느냐?”
“억!”
삼성 스님이 즉시 벽력 같은 ‘할(喝)’을 하니, 임제 선사께서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 먼 나귀한테서 멸하여 버릴 줄 누가 알았으리오?”
라고 말씀하셨다.
아는 자는 이렇게 척척 응(應)하는 법이다.

삼성 스님을 알겠는가?

掃土已盡(소토이진)

흙을 쓸어 이미 다하였음이라.

여기에서 인가(印可)받으신 삼성(三聖) 선사께서는 한 곳에 주(住)하며 회상을 여시지 않고, 천하 총림(叢林)을 두루 행각(行脚)하셨다.
어느 때,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고 계시던 설봉 선사의 회상에서 지내시면서 설봉 선사께 여쭈셨다.
“그물을 뚫고 나온 금잉어는 무엇을 먹습니까?”
“그대가 그물을 뚫고 옴을 기다렸다가 일러 주리라.”
그러자 삼성 선사께서 벽력 같은 소리로,
“천오백 대중을 거느린 대선지식(大善知識)이 화두도 알지 못하는구나.”
하시니, 설봉 선사께서는
“노승(老僧)이 주지 일에 번거로워서 그렇네.”
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루는 설봉 선사와 삼성 선사께서 함께 길을 가시던 중에 원숭이 몇 마리가 길가에서 놀고 있으니, 설봉 선사께서 보시고 말씀하셨다.
“저 원숭이들이 각기 한 개의 옛 거울[古鏡]을 짊어지고 있구나.”
그러자 삼성 선사께서 그 말을 받아서,
“몇 겁을 지내도 이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옛 거울이라고 합니까?”
하시니, 설봉 선사께서
“흠이 생겼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삼성 선사께서 또,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는 대선지식이 화두도 알지 못하는구나.”
하시자, 설봉 선사께서도 역시 종전과 같이 말씀하셨다.
“노승이 주지 일에 번거로워서 그렇네.”

이 두 문답은, 우리가 공부를 잘 해서 향상(向上)의 일구(一句)를 투과(透過)해야만 그 심오한 낙처(落處)를 척척 밝힐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 문답의 낙처를 밝히지 못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은 본분종사(本分宗師)의 자격이 없는 이라 하겠다.

그 후, 삼성 선사께서는 역시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고 계시는 위산(潙山) 선사의 회상을 찾아가서, 그 곳에서 여러 해 동안 지내셨다. 그 큰 회상에서 살림살이를 드러내놓지 않고 대중들과 같이 묵묵히 수행생활을 하셨는데도, 위산 선사께서는 당신 회상에 위대한 안목자(眼目者)가 와 있다는 것을 간파하시고 계셨다.
하루는 위산 선사께서 시자(侍者)더러, 삼성 선사께 작달막한 나무 막대기를 하나 가지고 가서 이렇게 묻게 하셨다.
“스님, 이것을 들겠습니까?”
시자가 위산 선사께서 시키신 대로 가서 여쭙자, 삼성 선사께서는 즉시,
“큰스님께서 일이 있으시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시자가 위산 선사께 가서 그대로 아뢰자, 위산 선사께서 다시 이르셨다.
“너가 다시 가서 종전과 같이 행해 보이며 여쭈어라.”
그 답으로는 만족되지 않아, 다시 답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자가 다시 가서 여쭙자, 삼성 선사께서는
“다시 범한다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위산 선사께서 이 말을 전해 들으시고는 매우 흡족해 하셨다.
그런 뒤 며칠이 지나, 삼성 선사께서 하직인사를 하시자, 위산 선사께서 법(法)을 전하시려고 시자에게 주장자(拄杖子)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러자 삼성 선사께서
“저의 스승은 따로 계십니다.”
라고 하시니, 위산 선사께서 놀라며 물으셨다.
“누구신가?”
“임제 선사이십니다.”
“임제 선사는 과연 훌륭한 제자를 두셨구나.”
하시며 위산 선사께서 크게 찬탄하셨다.

대중아, 위산 선사와 설봉 선사의 살림살이의 진가(眞價)를 알겠느냐?

과연, 천오백 인의 선지식이로다.

그러면, 위산ㆍ설봉 선사와 멋진 법거량(法擧揚)을 하신 삼성 선사를 알겠는가?

석화(石火)와 전광(電光)의 날카로운 종안(宗眼)을 갖추어서 높은 하늘에 홀로 걸음하니, 일천 성인(一千聖人)도 붙잡아 가둘 수 없음이로다.

필경(畢竟)에 한 마디는 어떠한가?

雲在嶺上閑不撤(운재영상한불철)
流水澗下太忙生(유수간하태망생)

산마루에 구름은 한가히 떠 있는데
개울 아래 흐르는 물은 유달리도 바쁘더라.

경오년(1990) 오월 보름 해운정사 원통보전


36. 용두사미(龍頭蛇尾)


만약 어느 사람이 있어서 말하기를,
“자세히 법왕(法王)의 법을 보건대는 법왕의 법이 이와 같습니다.”
한다면, 이러한 때를 당해 법상에서 내려가야 옳으냐, 법상에 그대로 있어야 옳으냐?

最善江南春三月(최선강남춘삼월)
鷓鴣啼處百花發(자고제처백화발)

가장 좋은 것은 강남의 춘삼월
자고새 우는 곳에 백 가지 꽃이 만발함이로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일은 나고 죽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 일을 해결하려고 왕궁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출가(出家)하여 수도(修道)하셨고, 역대(歷代)의 모든 도인 스님네께서도 이 일을 밝히기 위해 출가 수도하셨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이 나고 죽는 데는 언설(言說)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이 따른다.
우리가 과거에 무수히 많은 생(生)을 받고 받아왔고, 금생(今生)에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은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을 받고 받게 될 터인데, 나고 죽는 이 윤회의 굴레 속에서 받는 고통이야말로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그러한 고로 모든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사바세계에 온 것이지 달리 다른 일이 없다. 만약 다른 일이 있다고 하는 이가 있을 것 같으면, 그 사람은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만반(萬般) 고통에서 헤어날 기약이 없는 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나고 죽는 이 고통의 굴레에서 영구히 벗어나 세세생생(世世生生) 열반(涅槃)의 낙을 누릴 수가 있느냐?
부처님 경서(經書)에는 팔만 사천 길이 펼쳐져 있지만 다 바른 길이 아니다. 오직 부처님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인 이 선법(禪法)을 통해서, 인인개개인(人人箇箇人)이 각자 자신의 성품을 바로 볼 때라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 견성법(見性法)은 한 번 분명하게 깨달으면, 나고 죽는 윤회고통에서 영구히 벗어나고 삼세 인과법(三世因果法)이 다 끊어지는 고로, 세세생생 열반의 낙을 누리게 된다.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참선수행을 하는데도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것일까?
이 참선법은 참구하는 한생각만 지속된다면 깨달음이 저절로 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이 과거생에 지어온 무수 반연(攀緣)과 습기(習氣)로 인하여 온갖 기멸심(起滅心)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고로 깨달음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여러분의 목에다 장검(長劍)을 들이대면서 “화두를 내놓으려느냐, 네 목을 내놓으려느냐?” 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거기에서 흔연히 목을 내밀 수 있는 신심(信心)과 용단이 있어야 한다.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귀히 여기는 것보다도 화두참구하여 기필코 견성(見性)하리라는 신심(信心)이 더 크면, 누구든지 화두일념이 순숙(純熟)하여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이와 같은 확고한 신념이 정립되지 않고는 화두일념(話頭一念)이 지속될 수가 없다. 이러한 신념 없이 어떻게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쌓아온 중중(重重)의 죄업(罪業)의 산을 넘을 수가 있겠는가?
암탉은 병아리를 까기 위해서 21일 동안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다 참아가며 알을 품는다. 배가 고프면 아주 잠깐 모이를 주워 먹고는 온기(溫氣)가 식기 전에 다시 둥지로 올라가서 얼른 또 알을 품는다.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어야 겠다고 들락날락한다면, 365일을 품고 있어도 병아리를 깔 수가 없는 법이다. 따뜻한 기운이 지속되어야만 그 안에서 병아리가 형성되어 삼 칠일 만에 ‘쫄’ 하고 소리를 내는데, 그 때 어미닭이 ‘탁’ 쪼아 주어야 병아리가 나온다.
화두일념(話頭一念)을 지어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나고 죽는 괴로움에서 영구히 벗어나고자 한다면 이번 생(生)은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오로지 화두참구에만 마음을 두어야 한다.
화두참구(話頭參究)를 할 때는 화두를 의심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의심하여, 화두 전체가 분명한 가운데 의심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화두일념이 현전(現前)되어서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고, 그러다보면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여 가을 바람에 밤송이 벌어지듯 홀연히 화두가 타파된다.

덕산(德山) 선사께서는, 누가 와서 부처님의 법을 물으면,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주장자(拄杖子)로 때리셨는데, 어느날은 대중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오늘 저녁에는 답(答)하지 아니하리니, 묻는 자가 있으면 이 주장자로 삼십 방(棒)을 때리리라.”
이 말씀이 끝나자마자 대중 가운데서 한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거늘, 선사께서 주장자로 한 대 때리셨다.
그러자 그 스님이,
“스님, 어찌하여 묻지도 아니했는데 때리십니까?”
하니, 덕산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대가 어디에서 왔는고?”
“신라(新羅)에서 왔습니다.”
중국 당대(唐代)는 선법(禪法)이 흥성하여 무수 도인이 출세(出世)하셨던 때라, 이 법을 배우기 위해서 우리나라 스님네들이 중국으로 많이 갔었던 것이다.
“신라에서 왔을진대는 육로(陸路)로 왔는가, 수로(水路)로 왔는가?”
“수로로 왔습니다.”
“그대가 뱃전을 밟기 전에 이미 나의 삼십 방(棒)을 맞았네.”
여기서는 그 스님이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하였다.
후에 원명(圓明) 선사라는 분이 이 문답의 거래(去來)를 듣고 평(評)하시기를,
“보잘 것 없는 덕산이 용 머리에 뱀 꼬리로구나.”
라고 하였다.

이러한 법문은 아주 쉽다. 적어도 지견(知見)이 났다면 이런 법문쯤은 척척 가려낼 수가 있는 법이다.
대중은 덕산 선사의 용심처(用心處)를 알겠는가?

[주장자를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棒頭有眼明如日(봉두유안명여일)
殺活機權自在用(살활기권자재용)

덕산의 고준한 안목이 주장자 머리에 있어 밝게 빛나니
만인을 죽이고 살리는 당당한 기권을 자재하게 씀이로다.

경오년(1990) 팔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37. 오조(五祖) 삼환생(三還生)


人生百年如浮雲(인생백년부여운)
箇中有人勤精進(개중유인권정진)
忽忙之中明此事(홀망지중명차사)
歷劫不昧安穩樂(역겁불매안온락)

인생 백 년이 뜬구름과 같으나
그 가운데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이 있어
바쁜 중에도 이 일을 밝혀낸다면
역겁에 매하지 않고 편안한 낙을 누리리라.

우리가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 일을 밝힐 것 같으면, 모든 땅덩어리가 변해서 황금이 되고, 넓은 바닷물이 변해서 감로의 제호(醍醐)가 되리라.
이 금덩어리는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고, 감로의 제호는 한번 들이킴으로 인해서 많은 생(生)에 지어온 업장(業障)이 당하(當下)에 소멸되어 목마르고 주린 고통이 영원히 없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만 냥의 황금을 허리에 차고서 목마(木馬)를 거꾸로 타고 해금강(海金剛)을 산책하게 되리라.
그러면, 이렇듯 임의자재(任意自在)한 경계(境界)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수용할 수 있는가?
누구든지 일상생활 가운데 참선법을 익혀서 꾸준히 닦고 닦아 각자의 주인공을 발견할 것 같으면, 그러한 무진보고(無盡寶庫)를 개발하여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써도 다함이 없는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옛날 중국에 달마 대사(達磨大師)로부터 선법이 전해져 오다가 사조 도신(四祖道信) 선사에 이르렀는데, 도신 선사는 팔십에 가깝도록 눈 밝은 제자를 두지 못하셨다.
그래서 도신 선사께서 고심(苦心)하고 계시던 차에, 하루는 당신보다도 더 연로(年老)한 한 노승(老僧)이 찾아와서 예배(禮拜)를 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스님의 고귀한 법(法)을 잇겠습니다.”
그래서 도신 선사께서 여러 가지 부처님 진리의 법을 물어 보시니, 노승은 하나도 막힘이 없이 척척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법(法)에는 계합(契合)이 되었으나 나이가 너무 많은지라,
“그대가 부처님의 진리의 법은 바로 알지만 너무 연로(年老)해서 법을 부촉(付囑)할 수 없으니 가서 몸을 바꾸어 오게. 그러면 그 때 가서 법을 전해 주겠네.”
하고 도신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노승은 소나무 한 그루를 도신 선사의 방 앞뜰에 심어 신표(信表)를 해놓고는 떠났다.
산 아래 마을에 이르니, 마침 한 처녀가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어서, 노승이 처녀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면서 물었다.
“하룻밤 묵고 갈 수는 없겠는지요?”
“집에 어른들이 계시니 여쭈어 보면 쉬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처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노승은 거기에서 그만 몸을 벗어 버리고 처녀의 뱃속에 들어가 잉태(孕胎)되어 버렸다.
그러고는 세월이 흘러, 처녀의 배가 불러오자 집에서는 시집도 가지 않은 처녀가 애를 가졌으니 남부끄럽다고 쫓아내 버렸다. 그러나 도인을 잉태하고 있는지라 가는 곳마다 흔연히 밥을 주고 잘 곳을 내주었다.
그렇게 열 달을 지내다가 출산(出産)하였는데, 처녀는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서 아기를 낳자마자 강가에 내다 버렸다. 그러자 물오리들이 수십 마리 모여들어 아기를 감싸서 보호하니,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는 아기를 구해서 어머니를 찾아 데려다 주었다.
아기를 버린 후부터는 어디를 가도 밥은 커녕 잘 곳도 구하지 못하다가, 아기를 다시 거둔 후로는 또 어디를 가나 흔연히 밥을 주고 잘 곳도 내어주므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아이는 다섯 살이 되자 어머니에게 하직인사를 올리고는 옛날 도신 선사를 찾아갔다.
“재송(栽松)이가 왔습니다.”
“무엇으로 그대를 인정할꼬?”
“저것으로 증명합니다.”
하며 아이는 방 앞의 소나무를 가리켰다.
이 분이 바로 홍인(弘忍) 선사로, 이렇게 해서 도신 선사로부터 법을 이어 받아 동토(東土)의 전등(傳燈) 제오조(第五祖)가 되셨다.
그러니 이 공부는 자기의 참부처를 한 번 발견할 것 같으면, 나고 죽는 즈음에 다다라 자유자재(自由自在)하여 태(胎)에 들어가건 태에서 나오건 조금도 매(昧)하지 아니하는 법이다.

법(法)을 전(傳)해 받은 후 오조 홍인(五祖弘忍) 선사께서는 선법(禪法)을 널리 펴시다가, 훗날 육조(六祖)가 된 노 행자(盧行者)에게 법을 전하시고, 열반에 드실 즈음에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열반(涅槃)에 들거든 육신을 화장시키지 말고 그대로 조사전(祖師殿)에 안치해 두어라. 내가 다시 몸을 받아올 때에는 그 전생신(前生身)이 한 손을 들 것이다.”
이 유언에 따라 오조 홍인 선사의 육신은 열반 후에도 화장하지 않고 조사전에 그대로 모셔졌다.
그로부터 삼백여 년이 흘러 홍인 선사로부터 14대째인 백운 수단(白雲守端) 선사에 이르렀다.
하루는 부전 스님이 예불(禮佛)하러 조사전에 갔다가 오조 스님의 한 손이 들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즉시 대중에게 알렸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와 전설처럼 되어 버린 이야기가 눈 앞에 현실로 나타나자, 모든 대중이 들떠서 선사를 맞을 준비를 해놓고 가사 장삼을 수(垂)하고 기다렸다.
과연, 한 노승(老僧)이 왔다. 노승은 법당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조사전으로 들어가더니 오조 선사의 형상(形相) 앞에 섰다.
“옛날에 이렇게 온 몸으로 갔다가 오늘에 이렇게 다시 왔으니, 그대는 나를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대를 아노라. 무엇으로 증명할꼬?”
향(香)을 하나 꽂으며,
“이것으로 증명하노라.”
하셨으니, 노승은 자신의 전생신(前生身)에게 다시 돌아왔음을 이렇게 스스로 증명하였다.
이 노승이 백운 수단(白雲守端) 선사의 법을 이어 동토(東土)의 제20대 법등(法燈)이 되셨다. 오조 홍인 선사께서 열반에 드신 지 삼백여 년이 지난 후에 몸을 바꾸어 와 오조산(五祖山) 법연(法演) 선사로 선법(禪法)을 크게 펼치셨던 것이다.

이렇듯 오조 선사는 조사(祖師) 문중에 삼생(三生)을 몸을 바꾸어 오신 위대한 도인이셨다.
그렇다면, 홍인 선사께서는 입적(入寂)하시고 오조 법연 선사로 다시 오시기까지 삼백여 년 동안 어디에 계셨을까?
마음광명을 밝힌 이는 몸을 벗어 버리고 적적(寂寂)한 무심삼매(無心三昧) 가운데 있으면, 사바세계 삼천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마음광명을 밝힌 이는 생사(生死)에 자재한 고로 몸을 나투기를 세 번만이 아니라 백천 번도 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법이다.

알겠는가?
과거의 많은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은 지금 다 어디에 계시는가?

燒薪茶毘後(소신다비후)
數莖亦茂盛(수경역무성)

화장하여 섶나무가 다 탄 후에
몇 줄기 풀이 다시 또 무성하구나.

경오년(1990) 구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38. 마조 가풍(馬祖家風)


이 부처님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진리의 법은 감출 수도 없고 덮을 수도 없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의 모든 형상(形相) 있는 바가 진리의 고풍(古風)을 항상 드날리고 있음이라.

진리의 옛 바람이 항상 드날리고 있음이여!
바람을 따라서 비가 화(化)해서 앞산을 지나가누나.

바람을 따라 비가 화(化)해서 앞산을 지나간다는 이 말의 뜻을 알 것 같으면, 삼세 제불(三世諸佛)과 역대 조사(歷代祖師)와 더불어 함께 손을 잡고 억만 년이 다하도록 부처님의 열반락(涅槃樂)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심오한 진리를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느 누구라도 나고 죽는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람의 몸을 받기도 어렵고, 사람몸을 받았다 하더라도 불법(佛法) 만나기 어렵고, 불법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최상승(最上乘)의 진리를 아는 선지식(善知識)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
비유하건대, 깊은 바다 속에서 눈 먼 거북이가 수백 년 만에 한 번씩 쉬러 올라오는데 그 때, 그 가없는 바다 위에 큰 나무토막이 떠 있는 것을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최상승 진리를 아는 선지식을 만난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어렵고 중요한 것은, 참으로 고준한 진리의 법문을 듣고서 실천에 옮겨 바르게 수행해 나가는 일이다.
그 좋은 법문을 듣고도 행(行)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니 하루 이틀 미루다가 백발이 되고 눈과 귀가 멀어지도록 허송세월하지 말고, 당장에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으로 용맹정진(勇猛精進)하여 자기사(自己事)를 밝힐 수 있기를 바라노라.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로 가장 위대한 도인이라면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를 꼽을 수 있는데, 그 분의 탁월한 안목(眼目)은 감히 어느 누구도 능가할 사람이 없다 하겠다.
달마 대사의 스승이신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께서 예언하시기를,
“네 밑으로 7대(代)의 아손(兒孫)에 이르러 한 망아지가 출현하여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일 것이다.”
했는데, 그 예언이 전해 내려와서 육조 혜능(六祖慧能) 선사에 이르렀다.
어느 날 육조께서 제자인 남악 회양(南嶽懷讓) 스님에게 은밀하게 부촉(付囑) 하셨다.
“그대 밑에 천하 사람을 밟아버릴 만한 한 망아지가 출현할 것이네. 그리하여 그 밑에 수많은 도인 제자가 나와서 불법이 크게 흥성(興盛)하리라고 반야다라 존자께서 예언하셨으니, 그대만 알고 잘 지도하게.”
회양 선사께서 회상(會上)을 열어 법을 펴시니, 마(馬)씨 성(姓)을 가진 한 수좌가 와서 신심(信心)을 내어 불철주야 공부를 지어갔다. 그런데 이 수좌는 항상 좌선(坐禪)하는 것만을 고집하여 자리를 뜨는 법이 없었다.
회양 선사께서 하루는, 앉는 데 국집(局執)하는 그 병통을 고쳐 줘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좌선중인 마조(馬祖) 스님에게 말을 건네셨다.
“수좌는 좌선하여 무엇 하려는고?”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자 회양 선사께서는 암자 앞에서 벽돌을 하나 집어와서 마조 스님 옆에서 묵묵히 가시기 시작했다. 마조 스님이 한참 정진을 하다가 그것을 보고는 여쭈었다.
“스님, 벽돌은 갈아서 무엇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고자 하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할진대,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소를 수레에 매서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수레를 쳐야 옳겠는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마조 스님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회양 선사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그대는 좌선(坐禪)을 배우는가, 좌불(坐佛)을 배우는가? 앉아서 참선하는 것을 배운다고 한다면 선(禪)은 앉거나 눕는데 있는 것이 아니니 선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앉은 부처를 배운다고 한다면 부처님은 어느 하나의 법이 아니니 자네가 부처님을 잘못 알고 있음이네. 무주법(無住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림이 없어야 하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고,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선(禪)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네.”
마조 스님은 여기에서 크게 뉘우치는 바가 있어서 좌선만을 고집하던 생각을 버리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사위의(四威儀) 가운데서 일여(一如)하게 화두를 참구하여 순일(純一)을 이루어서 마침내 크게 깨쳤다.
그 후 회양 선사를 모시고 10여 년 동안 시봉하면서 탁마(琢磨)받아 마침내 천하 도인의 기봉(機鋒)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훌륭한 안목(眼目)을 갖추어 출세(出世)하시니 승속을 막론하고 참학인(參學人)들이 무수히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마조 선사의 지도하에 84인의 도인 제자가 나왔으니 충분히 수기(授記)를 받을 만한 분이라 하겠다.

백장(百丈) 스님이 마조 선사를 시봉할 때, 하루는 마조 선사를 모시고 들판을 지나가게 되었다.
큰 저수지에서 들오리들이 놀다가 인기척을 듣고 날아가는 것을 보고, 마조 선사께서 백장 스님에게 물으셨다.
“저기 날아가는 것이 무엇인고?”
“들오리떼입니다.”
“어디로 날아가는고?”
“산너머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조 선사께서는 백장 스님의 코를 잡고 세게 비틀어 버리셨다.
“아얏!”
백장 스님이 아파서 소리를 지르니, 마조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일찍이 날아갔으리오.”
하였다. 날아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백장 스님은 절로 돌아와서 모든 것을 잊고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들었다.
‘오리들이 어디로 날아갔느냐고 물으셔서 산너머로 날아갔다고 말씀드렸는데, 마조 선사께서는 왜 코를 비트셨을까?’
이 한 의심(疑心)에 빠져 있다가 일주일이 지나서 그 의심이 홀연히 해결되었다. 마조 선사께서 코를 비트신 뜻을 알게된 것이다.
그래서 곧 조실방(祖室房)으로 달려가서,
“스님, 어제까지는 코가 아프더니 오늘은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이 말에 마조 선사께서 백장 선사의 눈이 열렸음을 아시고 운집종(雲集鍾)을 치게 하시니, 몇백 명 되는 대중들이 모두 법당에 모였다.
대중들이 청법(請法)을 하고 마조 선사께서 법상에 좌정(坐定)해 계시는데, 백장 스님이 맨 마지막에 들어오더니 절하는 돗자리를 걷어서 어깨에 메고 법당을 나가 버렸다.
이에 마조 선사께서는 한 말씀도 설(說)하시지 않고 즉시 법상에서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셨다.
이렇게 척척 통해야 되는 법이다. 마음땅 지혜가 열리면 이렇게 일거일동(一擧一動)의 낙처를 서로 안다.
백장 스님이 돗자리를 걷어서 어깨에 메고 나가버린 뜻은 어디에 있으며, 마조 선사께서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설하지 않고 즉시 법상을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신 뜻은 어디에 있는가?

[양구(良久)하신 후 송(頌)하시기를,]

龍袖拂開全體現(용수불개전체현)
須彌倒卓半空中(수미도탁반공중)

곤룡포(袞龍袍) 소매를 떨치니 전체가 드러나고
수미산이 반공중에 거꾸로 꽂힘이로다.

마조 선사께서 어느 달 밝은 밤에, 세 제자를 데리고 도량(道場)을 거닐면서 이르셨다.
“그대들이 이제까지 수행한 바를 저 밝은 달을 가리켜 한마디씩 일러 보게.”
그러자 서당 지장(西堂智藏) 스님이
“바로 공양(供養)하는 때입니다.”
라고 답했고, 백장 회해(百丈懷海) 스님은
“바로 수행(修行)하는 때입니다.”
라고 답했다.
그런데 남전 보원(南泉普願)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양팔을 흔들면서 그냥 가버렸다.
마조 선사께서 세 제자의 답처(答處)를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경(經)은 지장(智藏)에게 돌아가고, 선(禪)은 백장(百丈)에게 돌아가는데, 남전(南泉)만이 홀로 형상 밖으로 뛰어났구나.”
하고 남전 스님을 칭찬하셨다.
이 도인 문중에서는 진리의 물음에 한 마디 답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그 답처를 꿰뚫어 상대방의 살림살이를 점검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남전 스님이 양팔을 흔들면서 그냥 가버린 뜻은 어디에 있는가?
만약 시회대중(時會大衆) 가운데 이 뜻을 아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산승(山僧)이 이 주장자를 두 손으로 전하리라.

세월이 흐른 후, 마조 선사께서 법상(法床)에 앉아 계시던 차제에 백장 스님이 들어오니, 선사께서 법상 모서리에 걸어 놓은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셨다.
그러자 백장 스님이 여쭙기를,
“이를 바로 씁니까, 이를 여의고 씁니까?”
하니, 마조 선사께서 그 불자를 원래 걸려 있던 자리에다 도로 걸어 두셨다.
한동안 백장 스님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니 마조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장차 대중을 위해서 어떻게 법을 설하려는고?”
그러자 이번에는 백장 스님이 걸려 있던 불자를 들어 보이니, 마조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이를 바로 씀인가, 여의고 씀인가?”
백장 스님이 아무 말 없이 불자를 도로 제자리에 걸자, 마조 선사께서
“억!”
하고 벽력 같은 ‘할’을 한 번 하셨다.
이 ‘할’에 백장 스님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사흘 동안 귀가 먹었다가 깨어나서 마조 선사께서 ‘할’하신 뜻을 깨달았다.
백장 선사는 여기에서 마조 선사의 법(法)을 받아서, 분가(分家)하여 다른 곳에 주(住)하며 법을 펴셨다.
몇 년 세월이 흐른 후에, 황벽(黃檗) 스님이 백장 선사를 방문하여 친견하고 며칠 머물다가 하직인사를 하였다.
“어디로 가려는가?”
“강서(江西)에 마조 선사를 친견하러 가고자 합니다.”
“마조 선사께서는 이미 천화(遷化) 하셨네.”
“저는 인연이 없어서 그 위대한 마조 선사를 한 번도 친견하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래도록 마조 선사를 모시고 지도 받으셨으니 저에게 마조 선사의 고준한 법문을 한 마디 설해 주십시오.”
그러자 백장 선사께서는 두 번째 마조 선사를 참예(參詣)하였을 때 불자(拂子)를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시고는 말씀을 덧 붙이셨다.
“내가 그 때 마조 선사께서 ‘할(喝)’ 하신 소리에 사흘 동안 귀가 먹었었네.”
황벽 스님은 이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는 결에 혀를 쑥 내밀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조 선사의 ‘일할(一喝)’에 두 분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황벽 선사는 백장 선사의 상수제자(上首弟子)가 되어 법을 이으셨다.
그러면 마조 선사의 이 ‘일할(一喝)’이 얼마나 위대하길래, 두 분 선사께서 그 아래에서 몰록 깨치셨을까?
이 ‘일할’ 가운데는 비춤[照]도 있고, 씀[用]도 있고, 줌[與]도 있고, 뺏음[奪]도 있고, 죽임[殺]도 있고, 살림[活]도 있다.
마조 선사의 이 ‘일할’을 좇아서 후손들이 ‘방(棒)ㆍ할(喝)’을 썼으니, 새로운 종풍(宗風)을 일으킨 위대한 분은 바로 마조 선사이다.
일러라. 마조 선사의 이 ‘일할(一喝)’의 낙처(落處)가 어디에 있느냐?

蒼天後更添怨苦(창천후갱첨원고)

곡(哭)을 한 후에 다시 원한의 괴로움을 더함이로다.

하루는 마조 선사의 제자, 남전(南泉)ㆍ귀종(歸宗)ㆍ마곡(麻谷) 선사 세 분이 남양 혜충(南陽慧忠) 국사를 친견하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당시는 마조(馬祖)ㆍ석두(石頭)ㆍ혜충(慧忠), 이 세 분 선사께서 삼각을 이루어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리시던 때여서, 누구든지 이 세 분의 도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중국 천하를 횡행(橫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용맹 있고 당당한 사자의 조아(爪牙)를 갖춘 분도 으레 이 세 분 도인을 친견해서 탁마(琢磨)하여 인증을 받아야 했다.
며칠을 걸어가다가, 남전 선사께서 길바닥에 커다란 원상(圓相)을 하나 그려놓고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이 원상에 대해서 한 마디씩 분명히 이를 것 같으면 혜충 국사를 친견하러 가겠거니와, 바로 이르지 못할 것 같으면 친견하러 갈 수 없네.”
이에 마곡 선사는 그 원상 안에 주저앉으셨고, 귀종 선사는 원상을 향해 여자 절[女人拜]을 한 자리 나붓이 하셨다.
그 광경을 지켜보시던 남전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그렇게 이른다면 국사를 친견하러 갈 수 없네. 도로 돌아가세.”
그러자 이 말 끝에 귀종 선사께서,
“이 무슨 심보를 행하는고?”
하고 한 마디 던지셨다.
참으로 귀종 선사는 불조(佛祖)를 능가하는 안목이 있다.

알겠는가?
만약 알았다고 한다면, 이러한 차별삼매(差別三昧)를 바로 보는 명철(明徹)한 지혜의 눈을 갖추었는지, 선지식은 그 진위(眞僞)를 점검한다.
세상 사람들은 다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불법정안(佛法正眼)을 갖춘 선지식은 속일래야 속일 수가 없다. 그 낙처(落處)를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입을 여는 순간에 바로 그 진위(眞僞)를 척척 가려내지 못한다면, 아직 정안(正眼)을 갖추지 못한 참학도중인(參學途中人)인 것이니, 마땅히 다시 참구해야 옳다.
그러면 남전 선사께서 귀종ㆍ마곡 선사의 답처(答處)를 보시고 혜충 국사를 친견하러 갈 수 없다고 하셨는데,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남전 선사를 알겠는가?

[대중이 아무 말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백주 대낮에 도적질을 하다가 도적의 몸이 드러나 간파(看破)당함이로다.

세 분의 도인들이 한가하게 사는 세계를 알겠는가?

相喚相呼歸去來(상환상호귀거래)
不覺露濕全身衣(불각로습전신의)

서로 부르고 부르며 오가다
전신이 이슬에 젖음을 깨닫지 못함이로다.

경오년(1990) 시월 조계사 수선회


39. 태고(太古)ㆍ나옹(懶翁) 선사의 수법기연(受法機緣)


當機一句千古輝(당기일구천고휘)
臨危不變是丈夫(임위불변시장부)

기틀에 합당한 일구는 천고에 빛남이요,
위태로움에 다다라 변치 아니함은 이것을 장부라 칭(稱)함이라.

기틀에 합당한 일구(一句)는 종사가(宗師家)의 안목(眼目)을 갖춘 이라야 석화전광(石火電光)과 같이 염출(拈出)한다. 종사가들이 상봉(相逢)하여 진리의 세계를 거량(擧揚)할 때, 그 한마디 한마디와 일거일동은 돌불보다도 빠르고 번갯불보다도 빠르다. 이렇게 빠르고 밝은 눈을 갖추신 분이야말로 천고(千古)에 귀한 분이다.
만일 이와 같은 기봉(機鋒)을 갖추지 못했다면 금일(今日)이 해제일(解制日)이라고 해도 해제일 수 없나니, 대중은 각자의 화두를 성성(惺惺) 하게 들어서 한 생각이 만 년 가도록 참구(參究)하고 참구할지어다.

우리나라 고려 말엽, 불법(佛法)이 쇠퇴일로를 걷고 있을 당시에 태고 보우(太古普愚) 스님이 각고정진(刻苦精進) 끝에 선지(禪旨)를 깨닫고 송나라로 건너갔다.
중국 천지의 명안(明眼) 선지식들에게 부처님의 정법정안(正法正眼)을 전수받아 와서 우리나라에도 바른 진리의 법을 펴야겠다는 큰 원[大願]을 세우고, 중국 땅에 들어가서 제방(諸方) 선지식들을 참방(參訪) 하셨던 것이다.
하루는 석옥 청공(石屋淸珙) 선사를 참방(參訪)하여 예배하고 말씀드렸다.
“고려국에서 스님의 높으신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그러자 청공 선사께서 물음을 던지시기를,
“우두 법융(牛頭法融) 스님이 사조 도신(四祖道信) 선사를 친견하기 전에는, 어찌하여 천녀(天女)들이 공양을 지어 올리고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왔는고?”
하니, 태고 보우 스님이
“부귀(富貴)는 만인이 부러워합니다.”
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우두 스님이 사조 선사를 친견한 후로는, 어찌하여 천녀들이 공양을 올리지도 않고, 새들도 꽃을 물어오지 아니했는고?”
“청빈(淸貧)함은 모든 분들에게 소외되기 쉽습니다.”
그러자 청공 선사께서 두 번째 물음을 던지셨다.
“공겁(空劫) 전에 태고(太古)가 있었는가?”
우주의 모든 세계가 벌어지기 전이 공겁(空劫)인데, 그 공겁 전에도 그대가 있었는가 하고 물으신 것이다.
“공겁의 세계가 태고로 좇아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청공 선사께서 주장자(拄杖子)를 건네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일생토록 이 주장자를 써도 다 쓰지 못한 고로, 이제 그대에게 부치노니 잘 받아 가져서 광도중생(廣度衆生)하기 바라노라.”
여기에서 태고 보우 스님이 부처님의 정법정안(正法正眼)을 부촉(付囑)받아 우리나라에 전해 와서, 그 법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태고 보우 스님과 동시대에 나옹 혜근(懶翁惠勤) 스님이 중국에 건너가 지공(指空) 선사를 친견하여 깨달음을 얻고 그 후, 평산 처림(平山處林) 선사를 참예하였다.
“대덕(大德)은 어디서 오는가?”
“연경(燕京)에서 옵니다.”
“거기서 누구를 만났는가?”
“서천(西天)의 지공(指空) 선사를 뵈었습니다.”
“지공의 일용사(日用事)가 어떻던고?”
“하루에 일천(一千) 검(劍)을 쓰십니다.”
“지공의 일일 천검(一日千劍)은 차치하고 그대의 일검(一劍)을 써 보이게.”
이에 나옹 스님이 즉시 좌복(座服)을 들어 처림 선사를 내려치니, 처림 선사께서 선상(禪床) 위에 거꾸로 넘어지면서 소리를 지르셨다.
“이 도적이 나를 죽이는구나!”
그러자 나옹 스님이 처림 선사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저의 검(劍)은 사람을 능히 죽이기도 하고 능히 살리기도 합니다.”
하니, 처림 선사께서 크게 기뻐하셨다.
“그대가 과연 불법정안(佛法正眼)을 갖추었네.”
여기서 처림 선사께서는 나옹 스님을 인가(印可)하시고, 법의(法衣)와 불자(拂子)를 주어 전법(傳法)하셨다.

대중은 두 분 선사를 알겠는가?
금일, 산승(山僧)이 두분의 답처(答處)에 대해서 한 마디 가(加)하여 시회대중(時會大衆)에게 공양하리니 잘 받아 가지소서.
“우두 스님이 사조 선사를 친견하기 전에는, 어찌하여 천녀들이 공양을 지어 올리고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왔는고?” 하는 청공 선사의 물음에, 태고 보우 선사께서는 “부귀는 만인이 부러워한다.”고 답하셨는데, 산승이라면 이렇게 답하리라.

相隨來(상수래)

서로 따라옴이라.

“우두 스님이 사조 선사를 뵌 후로는 어찌하여 천녀들이 공양을 올리지 않고, 새들이 꽃을 물어오지도 아니했는고?” 하는 물음에도 산승은 역시,

相隨來(상수래)

서로 따라옴이라.

하리라.
그리고 나옹 선사께서, “그대의 한 칼을 써 보이라.”는 처림 선사의 말씀에 좌복을 들어 한 번 내려치셨는데, 산승이 보건대는 나옹 선사께서 답을 멋지게 하시긴 하셨으나, 제 이두(第二頭)에 떨어졌음이라.

어떠한 것이 제일(第一)의 답이냐?

三皇塚裏草依依(삼황총리초의의)

삼황의 무덤 위에 풀이 무성함이로다.

경오년(1990) 동안거 결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40. 무심도인(無心道人) 혜월(慧月) 선사


부처님께서 영산회상(靈山會上)에 개고기를 달아놓으니 십대제자(十代弟子)와 문수(文殊)․보현(普賢) 큰보살들이 앞을 다투어 양고기를 팔았고,
달마 대사는 인도에서 신비로운 부적(符籍)을 가져와 중국 땅에 파셨음이라.

달마 대사께서 중국에 가져오신 천하에 신비로운 부적은 문자(文字)와 형상(形相)이 없는 부적이다.
“만약 이 부적을 가질 것 같으면, 나고 죽는 고통에서 영구히 벗어나고 많은 생(生)에 지어온 잘못된 인습(因習)이 당하(當下)에 소멸되어 억만 년이 다하도록 복락을 누리리니, 이 고귀한 부적을 살 자가 있느냐?”
하시니, 혜가(慧可) 가 얼른 샀다.
이 혜가 대사로 좇아서 삼조(三祖), 육조(六祖), 마조(馬祖), 임제(臨濟), 덕산(德山)에 이르렀다.
임제, 덕산은 북을 치고 징을 쳐서,
“이 부적을 살 자가 없느냐?”
하고 선전을 해 대니, 만사람이 사서 그 부적의 신비로움을 알고 금일에까지 전해왔다.
시회대중(時會大衆) 가운데 이 신비로운 부적을 살 자가 있거든, 금일에 산승(山僧)이 주리니, 분명히 받아 가지소서.

[잠시 묵묵히 계시다가 주장자(拄杖子)를 한 번 치셨다.]

근세에 우리나라에 위대한 무심도인(無心道人)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바로 혜월(慧月) 선사이시다.
선사께서는 근세 선불교의 중흥조(中興祖)이신 경허(鏡虛) 선사로부터 법을 전수받아, 남방을 두루 유력(遊歷)하시면서 납자(衲子)와 신심(信心) 있는 이들을 선법(禪法)으로 제도하시다 가셨다.
선사께서는 선방(禪房)에 고요히 앉아 좌정(坐定)하시기보다는 뙤약볕 아래에서 얼굴이 그을도록 논밭을 일구고, 장터를 오가고, 미투리를 삼고, 빗자루를 매는 등, 소박한 일상생활 가운데서 대적정(大寂定)의 무심(無心)을 수용하며 사셨던 분이다.
그래서 선사의 일생 행(行)은 무심(無心)의 행(行)이었다. 서너 살 먹은 어린아이들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남이 눈치하는 것도 모르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행하듯이, 그와 같은 천진행(天眞行)으로 일생을 사셨던 것이다.

부산 선암사(仙岩寺)에 계실 때, 일등 호답(一等好畓) 다섯 마지기를 팔아서 산중 논을 개간하셨는데, 여러 달 만에 겨우 세 마지기를 개간하신 적이 있었다.
다섯 마지기를 팔아서 개간을 했으면 적어도 일고여덟 마지기로 불어나야 하는데, 왜 겨우 세 마지기밖에 개간하지 못했느냐?
일꾼들이 일하다가 게으름이 나면,
“스님, 법문 좀 해 주십시오.”
하여, 법문을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법문을 하셨기 때문이다.
가난한 절 살림에 보탬이 되게 하기 위해서 벌인 개간사업이, 결과적으로 절 재산을 축낸 꼴이 되고 말았으므로, 사중 스님들은
“스님, 일등 호답 다섯 마지기를 팔아 가지고 산중(山中) 논 세 마지기밖에 개간하지 못했으니, 이렇게 하여 사중 운영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선사께서는,
“이런 소견머리 없는 놈들아, 논 다섯 마지기가 어디 갔더냐? 어느 누가 농사를 짓던간에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세 마지기가 더 불어나지 않았느냐?”
하고 호통을 치셨다.
이렇듯 도인의 세계에서는 ‘너’와 ‘나’의 분별(分別)이 없기 때문에, ‘네 것’ ‘내 것’이라는 소아적 이해타산이 없고 온 인류가 일가(一家)를 이루는 법이다.

선사께서는 연로(年老)하시도록 손수 시장을 보러 다니셨다.
하루는 시자를 데리고 시장보러 가시는 길에, 노변(路邊)에서 콩나물을 파는 아주머니가
“스님, 우리 콩나물 좀 사 주십시오.”
하니, 한 동이를 사셨다.
옆에 앉아 있는 이가,
“우리 것도 사 주십시오.”
해서 사고, 또 사고, 또 사고 하여 한꺼번에 너댓 동이를 사버리셨다. 그리하여 절에 콩나물이 일시에 여러 동이가 올라 왔던 적이 있었다.
거지들이 선사께 옷을 달라고 하면, 서슴없이 그 자리에서 홀랑 벗어 주셨다. 먼저 벗어주고 서 계시다가 거지들이 갈아입고 나면, 그 거지의 옷을 입고 돌아오셨다.
이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행(行)이다.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이 있고 ‘나’라는 상(相)이 있다면, 이렇게 할 수가 없는 법이다. 바로 이러한 행을 천진(天眞) 영아(嬰兒)의 행(行), 무심도인(無心道人)의 행이라고 한다.

하루는 큰 재(齋)가 들어서 49재 준비를 하기 위해 장을 보러 가시다가, 길가에서 어떤 부인이 아이를 안고 대성통곡하고 있는 것을 보시게 되었다.
그래서 다가가서 까닭을 물어보니, 그 부인의 말인즉, 집에 불이 나서 다 타버리고 오갈 데가 없어서 그런다고 했다. 혜월 선사께서는 그 자리에서 49재비를 다 내주시면서,
“이 돈으로 집을 다시 이루도록 하시오.”
하시고는 도로 절로 돌아오셨다.
절에서는, 큰 재가 들었기 때문에 장짐이 많이 올라와야만 되는데 날이 저물어도 장짐이 올라오지 않자, 재 준비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젊은 스님네들이 하는 수 없어서 혜월 선사께 여쭈었다.
“스님, 오늘은 무슨 일인지 장짐이 이렇게 늦도록까지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러자 혜월 선사께서는,
“재는 벌써 다 지내서 영가는 극락세계에 갔다.”
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잿집에서는 손님네들이 잔뜩 몰려왔는데 정작 절에는 아무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재주(齋主)가
“스님, 어찌된 연고(緣故)입니까?”
하고 여쭈니, 선사께서는 전날의 사정을 얘기하시며,
“재는 벌써 지내서 영가는 극락세계에 갔네.”
하셨다. 재주가 사정 얘기를 듣고는 아주 기뻐하며 다시 재비를 내어 대중공양을 잘 한 적이 있었다.
또 하루는, 혜월 선사께서 출타하시고 계시지 않는 틈을 타서, 고봉(高峰) 스님이 머트러운 수좌(首座) 몇 명과 함께 사중(寺中) 농우(豊牛)를 팔아서 포식을 해버렸다.
선사께서 돌아오셔서 농우가 없어진 것을 아시고, 다음날 공양 끝에 대중에게 호통을 치셨다.
“소를 판 놈 나오너라!”
그러자 고봉 스님이 일어나 나오더니 방을 기어다니면서 “음매, 음매!” 하고 소울음을 지었다.
이에 혜월 선사께서 고봉 스님의 등을 툭툭 치시면서,
“이것은 사중 소가 아니니 사중 소를 가져오너라.”
하고 다시 호통을 치셨다.
여기에 심오한 뜻이 있다. 도인이 아니면 이러한 경계에 다다라, 이렇게 부처님의 진리를 드러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당시는 일제치하였으므로 총독이 곧 왕이던 시대였는데, 남차랑(南次郞) 총독이 남방에 큰스님이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수하사람 몇몇을 데리고서 혜월 선사를 방문하였다.
총독이 인사를 올리고는,
“스님, 부처님의 아주 깊고 높은 진리를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하고 청법(請法)을 하자, 혜월 선사께서는
“부처님의 깊고 높은 진리? 귀신 방귀에 털난 게지.”
라고 말씀하셨다.
귀신도 허무한데 귀신이 방귀를 뀐다는 것, 더군다나 그 방귀에 털이 난 것이라고 하니, 대체 이 무슨 소리인고?
이 뜻은 총독 아니라 총독 할애비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남 총독은 여기에서 당황하여 그만 물러갔다.
일본이 임진왜란 당시에 우리나라를 송두리째 삼켜 버릴 야심이었으나, 서산(西山)․사명(四溟), 두 분 도인의 법력(法力)에 못 이겨서 물러갔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에게는 도인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니 우리나라를 점령하고서, 먼저 도명(道名) 높은 선사를 수소문하여 방문했던 것이다.
그런데 남 총독이 혜월 선사께 한 방 맞고는 당황해서 물러 갔으니, 그 소문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까지 전해져서 분분했다.
여기에 분개한 남차랑의 한 무사(武士) 제자가 혜월 선사를 단단히 혼내주리라는 보복심에 일본에서 당장 건너왔다.
그는 혜월 선사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선사의 목에 칼을 들이대었다.
“그대가 혜월인가?”
“그렇다. 내가 혜월이다.”
이와 동시에 혜월 선사께서는 손으로 등 뒤를 가리키셨다.뒤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해치려 하는 줄로 알고 무사가 급히 뒤를 돌아보는 찰나, 혜월 선사께서는 벌떡 일어나셔서,
“내 칼 받아라!”
하시며 그 자의 등을 쳤다.
무사는 칼을 거두고 큰 절로 예를 올리며,
“과연 위대하십니다.”
하고는 돌아갔다.
선사의 지혜의 기봉(機鋒)이 아니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부딪쳐 석화전광(石火電光)과 같은, 그러한 기틀을 쓸 수 없다.
만약 혜월 선사께서 그 상황에서 두려움을 일으키고 공포심을 냈던들 즉시에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사람 사람의 마음 가운데는 이 무사의 칼보다도 더 무서운 번뇌(煩惱)의 칼이 있다. 아만심, 교만심, 시기, 질투, 탐심, 애욕, 이러한 것들이 전신(全身)을 휘감아 ‘나’를 꼼짝 못 하게 한다.
참선(參禪)은 마음 가운데 있는 이러한 중중(重重)의 습기(習氣)를 없애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수행(禪修行)을 잘 해서,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무심(無心)의 경지를 수용하게 되면, 그 때는 백천 염라대왕이 백천 검을 휘두르고 오더라도 잡아갈 수가 없는 법이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무심도인 혜월 선사를 알겠는가?

[한참 묵묵히 계시다가 이르시기를,]

嘉女已歸霄漢去(가녀이귀소한거)
哀郞依舊守空房(애랑의구수공방)

아리따운 아가씨는 하늘나라로 가버린 지 오래인데
어리석은 총각은 빈 방만 지키고 있음이로다.

왜 마지막에 이 한 마디를 할꼬?
이 한 마디에 무한한 진리가 숨어 있으니, 여러 대중은 잘 생각하고 생각하기 바라노라.

경오년(1990) 십일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41. 운봉(雲峰) 선사의 안목(眼目)


불법(佛法)의 근본진리인 선(禪)의 참뜻을 논하건대는,

선(禪)을 선(禪)이라 이름할 것 같으면
목을 베고서 삶을 찾는 것과 같음이요,
또한 선을 선이라 하지 않더라도
뾰족함 위에 뾰족함을 더함이로다.

그러면 이러한 선(禪)의 진리를 어느 곳에서 찾을꼬?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흉금리(胸襟裏)에 깊이깊이 간직되어 있다. 깊이 간직되어 있는 이것을 밝힐 것 같으면, 한 팔을 내젓고 한 발을 내딛는 데 한량없는 참진리가 현출(現出)되는 법이다.
그러한 고로, 이 법을 뚜렷이 밝힌 이는 진리의 법에 법왕(法王)이 되어서 일만경계(一萬境界)를 임의자재(任意自在)하게 쓰고 수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한일합방 당시에, 운봉(雲峰) 선사께서 이 선(禪)의 진리를 깨달아 혜월(慧月) 선사께 인가(印可)받으시고 나서, 행각(行脚)을 나서셨다.
그 당시, 경기도 양주 망월사(望月寺)에서는 제방(諸方)에서 발심(發心)한 수좌(首座)들이 용성(龍城) 선사를 조실로 모시고 30년 결사(結社)를 맺어 용맹정진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운봉 선사께서 입승(立繩)을 한 철 보시는데, 하루는 용성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여 이러한 법문을 하셨다.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산승을 보지 못하고 역대(歷代)의 모든 조사(祖師)들도 산승을 보지 못하거늘,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어느 곳에서 산승을 보려는고?”
이 때 운봉 선사께서 일어나 답하시기를,
“유리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琉璃瓮裏藏身]”
하니, 용성 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즉시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아주 멋진 진리의 문답이다.
두 분 선사의 이 문답처(問答處)야말로 천불 만조사(千佛萬祖師)가 출세하여 점검하시더라 해도 흠잡을 곳이 없는 거량(擧揚)이다.
금일, 산승(山僧)이 이 두 분 선사의 문답에 한 몫 가세하여, 시회대중에게 진리의 인연을 맺고자 하니 잘 들어 가지소서.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나를 보지 못하고 역대(歷代)의 모든 조사도 나를 보지 못하거늘, 대중은 어느 곳에서 나를 보려는고?” 하는 물음에 운봉 선사께서 “유리옹리장신(琉璃瓮裏藏身)”이라고 답하시자, 용성 선사께서는 말 없이 하좌(下座)하셨는데, 산승이라면 이렇게 한 마디 하고 내려갔으리라.

眞獅子善能獅子吼(사자선능사자후)

참사자가 사자다운 사자후를 하는구나.

이 한 마디가 있었다면 그 법석(法席)은 더욱 빛났을 것이다.

운봉 선사께서 그 후 덕숭산 수덕사에서 만공(滿空) 선사를 조실로 모시고 공부하실 때였다.
하루는 만공 선사께서 ‘양생고자화(孃生袴子話)’를 들어 법문하시기를,

옛날에 운거(雲居) 도인께서 출세(出世)하여 회상(會上)을 여시니, 각처에서 운수납자(雲水衲子)와 단월(檀越)들이 모여들어 법문을 듣고 지도를 받았다.
당시에 운거 도인께서 주(住)하시던 산내(山內)의 어느 암자에는, 수십 년 동안 혼자 정진해 오던 한 스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암자승(庵子僧)은, 운거 도인께서 주산(住山)하여 여러 해 동안 법을 펴도, 한 번 내려와서 인사를 한다거나 법문을 듣는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운거 도인께서 그 암자승을 점검해보고자 시자에게 이르셨다.
“네가 암자에 올라가서 암자승이 참선하고 앉아 있거든, 동쪽에서 서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거동을 한 번 해 보여라.”
시자가 암자에 올라가 운거 도인께서 시키신 대로 행해 보였는데, 암자승은 좌선(坐禪) 상태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자가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는 물었다.
“산중 큰절에는 운거 도인께서 회상을 열어 여러 해 동안 대중을 위해 법(法)을 설하고 계시는데, 스님은 어찌하여 한 번도 내려오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암자승은,
“설령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서 온갖 법문을 설(說)하시더라도, 나는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시자가 내려와서 운거 도인께 사실대로 말씀드리니, 그 때가 마침 여름철인지라, 운거 도인께서는 잘 지은 삼베옷을 한 벌 싸주시면서 암자승에게 갖다주라고 하셨다.
시자가 다시 그 암자에 가서,
“이것은 큰절 조실 스님께서 주시는 옷입니다.”
하며 옷을 전하자, 암자승은
“부모에게 받은 옷만 해도 일생 입고 남는데, 어찌 이것을 입을까 보냐?”
하면서 옷을 내밀어 버렸다.
시자가 돌아와 사실대로 아뢰니 운거 도인께서 다시 이르셨다.
“그러면 네가 걸음을 한 번 더 해라. 가서 ‘부모에게 나기 전에는 무슨 옷을 입었습니까?’ 하고 물어 보아라.”
시자가 다시 또 암자에 올라가서,
“부모에게 나기 전에는 무슨 옷을 입었습니까?”
하고 묻자, 암자승은 여기서 그만 말문이 막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운거 도인께서 그 사실을 전해 들으시고는,
“내 일찍이 그 놈을 의심했노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암자승이 앉은 상태에서 몸을 벗어 버려, 산중(山中) 대중들이 화장을 했는데, 이 때 오색광명의 사리(舍利)가 나왔다.
이 일로 인하여 온 산중이 떠들썩하자, 운거 도인께서
“앉아서 이 몸을 벗어 버리고 사리가 나와서 오색광명을 놓더라해도, 내가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옷을 묻던 당시에 한 마디 바른답을 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만공 선사께서 이 법문을 설(說)하시고는 대중을 향해 물으셨다.
“일러라. 부모에게 나기 전에는 무슨 옷을 입었던고?”
이에 운봉 선사께서 일어나셔서,
“여름에는 안동포를 입고 겨울에는 진주 목화옷을 입습니다.”
라고 멋진 답을 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옷의 물음에, 무엇이라 답하겠느냐?
거기에 산승은,
앞으로 세 걸음 나아갔다가 뒤로 다시 세 걸음 물러가 서리라.

운봉(雲峰) 선사를 알겠는가?

하늘세계와 인간세계의 스승이 되는 진리의 안목(眼目)을 분명히 갖추셨음이로다.

경오년(1990) 십일월 보름 해운정사 원통보전


42. 상당전(上堂前) 도득일구(道得一句)


一片白雲海上來(일편백운해상래)
幾條綠水岩前過(기조녹수암전과)

한 조각 구름이 바다 위에서 피어나고
몇 갈래 푸른 물줄기는 바위를 감고 지나가네.

만약 사람이 있어서 산승(山僧)에게 어떠한 것이 부처님의 진리의 뜻이냐고 물을 것 같으면, 이 주장자(拄杖子)로 빗방울 쏟아지듯 때리고 벽력 같은 소리로 꾸짖으리라.
여기에서 전신자재(轉身自在)하여 크게 활개를 친다면, 대장부 할 일을 다해 마치고 억만 년이 다하도록 한가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살기가 무척 어려울텐데, 월급날만 되면 공양미를 한 가마니씩 팔아서 친히 가져오는 처사가 한 분 있다. 계속 말 없이 갖다 내려놓고 가곤 했는데, 한 번은 우연히 대면(對面)이 되어 산승(山僧)이 물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받아서 아들 딸 공부도 시키고 살림도 꾸려가셔야 할텐데, 어째서 이렇게 다달이 공양미를 한 가마니씩 팔아오십니까?”
“우리 선방 스님들이 공부를 잘 하셔서, 그 가운데 훌륭한 도인이 나서, 이 부처님 진리의 법을 면밀히 이어 천추만대(千秋萬代)에 빛내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공양미를 올립니다.”
참으로 그 신심(信心)이 장하다.
그러니 이러한 시주(施主)로 공양을 받는 우리 스님네들, 정말 마음가짐 단단히 해야 될 줄 안다.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께서, “이 진리의 법(法)을 밝히지 못한 분상(分上)에서는 시주쌀 한 톨의 뜨물조차도 녹이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시주밥 먹기가 어려운 것이다.

예전에 어느 처사(處士)가 공부 잘 하는 스님네가 토굴에서 생활한다는 말을 듣고서 주먹만한 황금덩어리를 가지고 찾아 갔다.
“스님, 저를 위해서 이 금덩어리를 받아 써 주십시오.”
토굴 스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더니,
“저로서는 이것을 녹일 능력이 없으므로 받아 쓸 수가 없습니다.”
하고 받지 않았다.
“그러면 어디로 갈까요?”
“옆에 도랑 건너에 있는 토굴에서 공부하는 스님이 있으니 그리로 한번 찾아가 보시오.”
그래서 처사가 옆 토굴로 가서 정진(精進)하고 있는 스님에게 금덩어리를 내밀며,
“저의 소원입니다. 받아서 써 주십시오.”
하자, 그 스님은 흔연히 받았다.
그리하여 양식도 사고 옷도 해 입고 가지가지 생활에 썼는데,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서 그 스님이 세상을 떴다.
그 후 하루는, 전자(前者)에 금을 받지 않았던 토굴 스님이 우연히 시주의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시주집 마당가에 큰 황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토굴 스님이 보고는 옆 토굴에서 공부하던 도반(道伴) 스님인 것을 알았다. 도반 스님이 금덩어리를 받아 쓴 댓가로 황소가 되어, 그 처사의 집에 빚을 갚으러 가 있었던 것이다.
토굴 스님이 황소를 보고,
“이제도 능히 녹이고 녹이느냐?”
하자, 황소가 “엉!” 하고 소울음 소리를 내면서 소몸뚱이를 휘딱 벗어 버렸다.
우리가 이러한 법문을 듣고서 그냥 흘려버릴 일이 아니다. 전자의 토굴 스님은 “나의 수양의 힘으로써는 그 금덩어리를 녹일 능력이 없으므로 도저히 받아 쓸 수가 없습니다.” 하고 거절을 했고, 후자의 토굴 스님은 ‘나의 수양으로 능히 녹이고 녹인다.’ 하여 흔연히 받아서 생활에 다 썼다.
그러면 후자의 토굴 스님은 죽어서 왜 그 집에 소가 되어 왔느냐? 또, 도반 스님이 “소가 되어도 능히 녹이고 녹이느냐?” 하는데, 어떻게 “엉!” 하고서 소몸뚱이를 벗어버릴 수 있었느냐?
이것이야말로 일생 수양한 힘을 멋지게 과시한 대문이며, 우리가 크게 발심(發心)할 대문이다.
이렇게 고인네와 같이 능히 녹이고 녹일 수 있는 힘을 가진 분은 하루에 만 냥 황금을 써도 빚이 안 되지만, 그러한 힘이 없는 이는 쌀 한 톨, 뜨물 한 방울도 다 빚이 되는 법이다.
어느덧 겨울 안거(安居)가 다 지나가고 앞으로 열흘 남짓 남았다. 그동안 우리가 온갖 시주의 은혜로 생활하면서 공부 한다고 해왔다.
그렇다면 그동안 참으로 시은(施恩)에 빚이 안 되게 진실된 공부를 해왔던가?
그렇지 못했다면 앞으로 남은 열흘 동안이라도 모든 사량, 분별, 망상을 해운대 바닷바람에 다 날려 버리고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부를 짓고 지어라. 그리하면 수개월 이내에 다 대장부 활개를 칠 수 있으리라.

우리나라 근세에는 경허(鏡虛) 선사 밑에 많은 제자들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혜월(慧月)ㆍ만공(滿空)ㆍ침운(枕雲)ㆍ한암(漢岩) 네 분의 선사가 법을 전해 받아 이 땅에 선법을 크게 펼쳤다.
그 가운데 만공 선사 문하에서는 고봉(高峰) 선사, 금오(金烏) 선사 등이 인가(印可)를 받았는데, 이 분들이 해방전후에 선지식 역할을 담당했던 분들에 속한다.
수덕사에서 고봉 선사께서 법문을 하시려고 법상에 오르시려 하는데, 금오 선사께서 뒤따라와서 장삼자락을 잡고 늘어지면서 말씀하셨다.
“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마디 이르고 올라가시오.”
법문하기도 정말 어렵다.
한 마디 이르고 올라가라 하면, 거기서 우물쭈물할 것 없이 석화전광(石火電光)과 같이 한 마디 이르면 되는데 거기서 고봉 선사는,
“장삼자락 놔라!”
하셨다.
“한 마디 이르고 올라가시오!”
“놔라!”
“이르고 올라가시오!”
“놔라!”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향곡(香谷) 선사께서 이 장면을 들어 산승에게 물으셨다.
“네가 만약 그 당시의 고봉 스님이었다면, 뒤에서 장삼자락을 붙잡고서 ‘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마디 이르고 올라가라.’ 하면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고?”
“억!”
산승이 이렇게 벽력 같은 ‘할’을 하자 향곡 선사께서는
“너가 만약 그러한 소견으로 한 마디 할진대는, 부산 시민을 다 눈 멀게 할 것이다.”
라고 호통을 치셨다.
그래서 산승이,
“소승(小僧)의 허물입니다.”
하니, 향곡 선사께서는
“노승(老僧)의 허물이니라.”
라고 하셨다.

대중은 알겠는가?

향곡(香谷) 선사와 산승(山僧)의 살림살이를 알고자 할진대는, 이 대문을 바로 볼 줄 알아야 된다. 이러한 살림살이를 알아야 비로소 향곡(香谷) 문하(門下)의 가풍(家風)을 바로 보고,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신미년(1991) 정월 초사흘 해운정사 원통보전


43. 주장두상(拄杖頭上)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이 주장자 머리에서 훈훈한 광명이 나와 온 세계를 두루 비춤에
산과 들에는 백 가지 꽃이 만발하여 그윽한 향기를 삼보(三寶) 전에 공양하니
문수 동자(文殊童子)와 관음 동자(觀音童子)가 손뼉을 치며 웃음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주장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늘의 별들은 북두(北斗)를 향함이요,
인간세상에 흐르는 물은 동쪽을 향해 흐름이로다.

신미년(1991) 오월 초하루 선학원 이사장 취임 법어


44. 건봉 일구(乾峰一句)


坐斷十方(좌단시방)
千差路絶(천차로절)
一線放開(일선방개)
無非眞理(무비진리)

가만히 앉아 시방을 끊으니
천 가지 길이 다 끊어짐이요,
한 선을 놓아 여니
진리 아님이 없음이로다.

때로는 시방(十方)을 끊을 줄 알고 때로는 시방을 열 줄 아는, 자재(自在)의 수완을 갖추어야 진리의 지도자라 할 것이니, 이것은 최고의 향상(向上)의 일구(一句)를 투과(透過)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크게 쉬는 땅을 얻어, 윤회(輪廻)의 고통과는 영구히 불상관(不相關)이고, 만 년토록 한가한 대안락(大安樂)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참학인(參學人)은 모름지기 향상(向上)의 일구(一句)를 뚫어 지나가야 한다.

하루는 건봉(乾峰)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이렇게 이르셨다.
“법신(法身)에는 삼종병(三種病)과 일종광(一種光)이 있으니, 모름지기 이것을 낱낱이 뚫어내야 비로소 편안히 앉는 곳을 알리라. 그러나 여기에 다시 조용동시(照用同時)의 향상(向上)의 깊은 길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자 대중 가운데서 운문(雲門) 스님이 나와
“암자 안에 있는 사람이 어찌 암자 밖의 일을 보지 못합니까?”
하니, 건봉 선사께서 크게 웃으셨다.

대중은 건봉 선사와 운문 스님을 알겠는가?
여기에서 명백히 알아야 비로소 정안(正眼)을 얻었다고 할 것이니, 바로 아는 자가 있다면 금일에 산승(山僧)이 이 주장자(拄杖子)를 전(傳)하리라.

또 어느 날, 건봉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법문하시기를,
“가장 심오한 일구(一句)의 진리를 들어서 말할지언정, 이구(二句)의 진리를 들지 마라. 일착(一着)을 놓아 버리면 제이두(第二頭)에 떨어지느니라.”
하자, 대중 가운데서 또 운문 스님이 일어나 말하였다.
“어제 어떤 사람이 천태산(天台山)에서 와서 문득 경산(徑山)으로 갔습니다.”
이에 건봉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주야! 내일은 대중 스님들 운력을 시키지 마라.”
하고 곧바로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진리의 눈이 열리면 말 한마디 한마디와 일거일동(一擧一動)의 낙처(落處)를 분명히 안다. 그러한 고로 번갯불보다도 빠르고 돌불보다도 빠른 지혜의 기틀을 갖추어, 이렇게 척척 상응(相應)하는 법이다.
건봉ㆍ운문의 전신처(轉身處)를 알겠는가?

石人嶺上吹玉笛(석인영상취옥적)
木女溪邊亦作舞(목녀계변역작무)

돌사람이 산마루에서 피리를 부니
나무여자는 개울가에서 또한 춤을 춤이로다.

만약 산승(山僧)이 당시의 건봉 선사 입장에 있었더라면, 법상에서 즉시 내려와 주장자를 휘둘러 대중을 쫓아 보냈으리라.

그러면 일구(一句)의 진리는 어떠한 것이며, 이구(二句)의 진리는 어떠한 것이며, 삼구(三句)의 진리는 어떠한 것이냐?
고인(古人)들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구(一句)의 진리를 깨달을 것 같으면 부처님과 역대 조사(歷代祖師)의 스승이 되고, 이구(二句)의 진리를 깨달을 것 같으면 인간과 천상인(天上人)의 스승이 되고, 삼구(三句)의 진리를 깨달으면 자기도 구제하지 못한다.”
라고 하셨다.
그래서 건봉(乾峰) 선사께서도 일구(一句)의 진리를 들지언정, 그 외에는 들어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제일구(第一句)의 진리냐?

萬里起骨堆(만리기골퇴)

만 리에 뼈무더기가 즐비함이로다.

어떠한 것이 제이구(第二句)의 진리냐?

 棒如雨滴(봉여우적)

빗방울 쏟아지듯 방망이로 때림이로다.

어떠한 것이 제삼구(第三句)의 진리냐?

물음도 있고 또한 답도 있음이로다.

알겠는가?
[송(頌)하시기를,]

撒手無依全體現(살수무의전체현)
扁舟魚父宿蘆花(편주어부숙노화)

손을 놓아 의지함이 없으니 전체가 드러나고
조각배의 어부는 갈대밭에 잠들었네.

신미년(1991) 칠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45. 덕산 탁발(德山托鉢) 암두 밀계(巖頭密啓)


不立而自立(불립이자립)
不高而自高(불고이자고)
機出孤危(기출고위)
方見玄妙(방견현묘)

세우지 아니해도 스스로 서고
높이지 아니해도 스스로 높음이로다.
지혜의 기틀이 외롭고 위태로운 데로 나와야만
바야흐로 현묘한 세계를 능히 볼 줄 아느니라.

어떠한 분들이 이렇게 자재하게 살아옴인고?

덕산(德山) 선사 하면은, 임제(臨濟) 선사와 더불어 진리의 고준한 안목을 만천하에 드날려 천고(千古)에 빛낸, 조사(祖師) 가운데 영웅이다. 이 덕산 선사 밑에 두 분의 훌륭한 제자가 있었으니, 암두(岩頭) 스님과 설봉(雪峰) 스님이다.
덕산 선사께서 어느 날, 여느 때와 달리 공양(供養)이 늦어지자 손수 발우(鉢盂)를 들고 식당으로 내려오셨다.
공양주이던 설봉 스님이 덕산 선사를 보고는,
“종도 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아니했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자, 덕산 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방장실(方丈室)로 돌아가셨다.
설봉 스님이 사형(師兄)되는 암두 스님에게 이 광경을 이야기하자, 암두 스님이 듣고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보잘 것 없는 덕산 노사(德山老師)가 말후구(末後句) 진리를 알지 못했구나.”
이 말이 대중 사이에 분분하므로 덕산 선사께서 들으시고는, 암두 스님을 불러 물으셨다.
“네가 나를 긍정치 아니하느냐?”
그러자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귀에 대고 은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다음날, 덕산 선사께서 법상에 오르시어 법문을 하시는데 그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덕산 선사께서 법문을 마치고 법상에서 내려오시자, 암두 스님이 크게 기뻐하며 덕산 선사의 두 손을 잡고서 말하였다.
“선사께서 말후구 진리를 아셨으니 이후로는 천하 도인도 선사의 법을 당할 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3년밖에 세상에 머물지 못할 것입니다.”
덕산 선사께서는 과연 3년 후에 열반에 드셨다.

자고로 이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법문은 중국의 천하 총림(叢林)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법문이다.
이것은 아주 높고 깊은 법문이어서 참으로 알기가 어렵고, 어지간한 선지식(善知識) 스님네들도 동문서답(東問西答)을 하게 되는 법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이 ‘덕산탁발화’를 거량(擧揚)한 분들은 명안종사(明眼宗師)라야 거량을 했지, 소견이 얕은 이들은 감히 입을 대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에 선법(禪法)이 들어와 뿌리 내린 지 육백여 년이 되었지만, 근세 이전까지는 이 법문을 대중에게 거량(擧揚)한 이가 한 분도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세에 와서야 향곡(香谷)ㆍ성철(性徹) 두 분 선사께서 대중에게 처음 거량하신 것이니, 이 법문이 얼마나 고준한 것인가를 여러 대중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대중 가운데, 덕산 선사께서 머리를 숙이고 방장실로 돌아가신 뜻을 알고,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귀에 대고 비밀히 말한 진리를 아는 이가 있을 것 같으면, 금일에 산승이 이 주장자를 두 손으로 부쳐서 장수산(萇樹山) 제2의 주인으로 봉(封)하리라.

그러면 공양주 하던 설봉 스님이 “종도 치지 아니하고 북도 두드리지 아니했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는데, 덕산 선사께서 고개를 숙이고 방장실로 돌아가신 뜻은 무엇이냐?
뒷날 명초(明招) 스님이라는 이가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내가 만약 당시에 있었다면, ‘애석고, 애석다. 갈 곳이 없구나.’라고 했으리라.”
하였다가, 설두(雪竇) 선사께
“명초가 홀로 용의 눈을 갖추었다고 명성이 분분하더니 원래로 한쪽 눈뿐이로구나. 덕산 선사가 이빨 없는 호랑이인 줄은 알지 못했도다.”
라고 혼이 났다.

산승(山僧)이 월내에서 향곡 선사를 모시고 지낼 적에 하루는 이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공안(公案)을 논하게 되었다.
향곡 선사께서 물으시기를,
“명초 스님이 고인의 살림살이를 그릇 점검했다가 설두 선사께 혼쭐이 났는데, 너에게 만약 덕산 선사께서 고개를 숙이고 방장실로 돌아가신 뜻을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려는고?”
하여, 산승(山僧)이 이렇게 답하였다.

得便宜時失便宜(득편의시실편의)

편리함을 얻은 때에 편리함을 잃음입니다.

암두 스님이 덕산 선사의 귀에 대고 은밀히 말한 뜻에 대해서는 향곡 선사께서 제방(諸方)의 선사들에게 두루 물으셨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거기에 “방망이를 내리겠다.”는 등 천부당 만부당한 소리뿐이지 향곡 선사의 마음에 드는 답을 하는 이가 드물었다.
향곡 선사께서 그것을 들어 말씀하시면서 산승에게 물으셨다.
“암두밀계(岩頭密啓)의 의지(意旨)를 너는 어떻게 보느냐?”
그래서 산승이 답하기를,

馬駒踏殺天下人(마구답살천하인)
臨濟未是白拈賊(임제미시백염적)
 
마조 선사는 천하인을 밟아 죽였으나
임제 선사는 아직도 백염적이 못 됩니다.

하였더니, 선사께서 흡족하게 여기셨다.

신미년(1991) 구월 초하루 7일간 용맹정진 대법회 해운정사 원통보전


46. 부처님의 참모습


「금강경(金剛經)」에 이르기를,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
是人行邪道(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

빛깔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한다면
이는 사도를 행함이니
참부처를 볼 수 없음이라.

알겠는가?
어떻게 해야 음성(音聲)을 여의고 형상(形相)을 여읜, 부처님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가?
보려고 한즉 천리 만리 멀어짐이로다.

부처님의 어머니이신 마야(摩耶) 부인은 부처님을 출산(出産)하시고 일주일 후에 타계(他界)하셨는데, 천하 제일가는 성자(聖者) 부처님을 낳으신 인연으로 천상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셨다.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시고서 이 사바세계의 인연을 따라 교화하시다가, 어머니의 지중한 은혜를 갚기 위해서 90일 동안 도리천에 가셔서 설법(說法)하셨다.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계시는 동안에 우전왕(優塡王)은, 부처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그 나라의 일등 조각가들을 다 불러다가 부처님 형상(形相)을 조각하게 했다. 그리하여 일등 명장(名匠)들이 다 모여서 전단나무에 부처님의 모습을 조각하여 호리(毫釐)도 틀림이 없이 재현(再現)해 놓았다.
그런데 32상(相)과 80종호(種好), 부처님의 모습을 십분 다 나투었는데 한 가지 나투지 못한 것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설법(說法)하시는 음성상(音聲相), 그것을 나투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說)하시는 음성상이냐?

[주장자(拄杖子)를 한 번 치시고,]

옆 사람이 들을까 두렵다.

부처님께서 도리천(도利天)에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시고 인간세계에 내려오실 때, 천이백 대중이 다 마중을 나갔다.
이 때, 연화색(蓮花色) 비구니가 있어서 생각하기를, ‘나는 비구니의 몸이므로 큰스님들과 비구들 뒤에나 부처님을 뵙게 될 것이니, 신통(神通)을 써서 부처님을 가장 먼저 맞아 인사 드려야겠다.’ 하고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몸을 나투어서 부처님을 친견하였다.
연화색 비구니가 전륜성왕의 모습을 나투어 인사를 올리니, 부처님께서 크게 꾸짖으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대중의 순서를 어기고 제일 먼저 나를 보았지만, 나의 육신(肉身)만 보았지 나의 법신(法身)은 보지 못했느니라. 나의 제자 수보리(須菩提)는 산중 바위 밑에 안좌(安坐)해 있으면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도 오히려 나의 법신(法身)을 친견했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신통력을 보고 희유(希有)하다고 하고, 신통력이 있어야 도인인 줄 알지만, 그것은 몇 푼어치 안 되는 것이다.
그러한 형상(形相)을 좇아서 불법(佛法)을 아는 것은 바른 불법을 아는 것이 아니다. 형상을 여읜, 바른 눈이 열려야 불법을 바로 아는 것이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칠가식(七家食)을 하시어 공양을 마치신 후, 발을 씻으시고 말 없이 좌정(坐定)하고 계셨다.
이 때 대중 가운데서 수보리 존자가 일어나서 합장 예배(合掌禮拜)하고는,
“희유(希有)하십니다. 부처님이시여!”
하고 찬탄하였다.

대중은 알겠는가?
수보리 존자는 어떻게 바위 밑에 앉아서 부처님을 친견하였으며 또, 부처님께서 일언반구(一言半句)도 법을 설하시지 않고 가만히 앉아 계시는데,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희유하십니다.”라고 하였는가?

주장자(拄杖子)를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賊身已露(적신이로)

도적의 몸이 드러남이로다

신미년(1991) 시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47. 칠현녀(七賢女)의 오도(悟道)와 삼반물(三般物)


제불(諸佛)이 사바세계에 출세(出世)하시어 만중생들에게 병(病)에 따라 약(藥)을 베풂도 옳지 못함이요,
제불이 사바세계에 출현(出現)하신 바가 없다고 하여도 옳지 못함이로다.
또한, 제불이 사바세계에 출세하시어 만중생들에게 병에 따라 약을 베풂도 옳음이요,
제불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신 바가 없다고 하여도 옳음이로다.

옳지 못하고, 옳지 못함이여!
황금덩어리가 누른 빛을 잃고 나무와 풀들이 푸른 빛을 잃음이로다.
옳고, 옳음이여!
돌멩이와 부서진 기왓장에서 큰 광명(光明)을 발(發)하고, 마른 나무에서 꽃이 핌이로다.

알겠는가?

부처님 당시에 일곱 명의 아주 어진 여형제 신자들이 있었는데, 하루는 이들이 함께 시다림(屍陀林) 공원을 산책하던 중에 공원 가운데서 시체 한 구를 발견하였다.
한 현녀(賢女)가 그 시체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시신(屍身)은 여기에 이렇게 있거니와 참사람은 어디에 있는고?”
하자, 다른 현녀가 듣고는 대뜸 물었다.
“무어라 하고, 무어라 하느냐?”
이 말 끝에 일곱 여형제가 일시에 부처님 진리를 깨달았다.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천안통(天眼通)으로 이것을 보고는 크게 감동하여 하늘에서 꽃비를 내리고 내려와서 합장 예배를 하니, 현녀(賢女)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늘의 제석천왕입니다. 칠현녀(七賢女)께서 무생(無生)의 깊은 법문을 설(說)하는데 감화되어 이렇게 인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제석천왕이 이렇게 자신을 밝히고는 다시,
“거룩하신 현녀들이여, 소원이 무엇입니까? 천상에는 사사(四事)와 칠보(七寶)가 가득 있으니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일생토록 공양(供養)을 올리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한 것들은 다 필요 없습니다. 다만 세 가지 물건이 없으니 그것을 가져다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뿌리 없는 나무 한 그루요, 또 하나는 소리를 질러도 메아리가 울리지 않는 골짜기요, 나머지 하나는 음지(陰地)와 양지(陽地)가 없는 땅 한 뙈기입니다.”
“내가 인간의 복을 마음대로 줄 수 있고 온갖 것을 다 갖고 있지만, 그 세 가지만은 나로서도 어찌해 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자 현녀(賢女)들이 말하기를,
“제석천왕에게 그러한 물건이 없을진대, 어찌 세상 사람들을 제도(濟度)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니, 제석천왕이
“나로서는 능력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능히 법력(法力)으로 그대들의 원(願)을 들어주실 것이니 부처님께로 가십시다.”
하고 일곱 현녀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사뢰었다.
부처님께서 다 들으시고 나서 말씀하시기를,
“제석아, 그 세 가지 물건에 대해서는 나의 제자 대아라한(大阿羅漢)도 답을 할 능력이 없다. 오직 대보살(大菩薩)이라야만 여기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느니라.”
아라한과를 증득(證得)한 제자도 여기에 대해서는 알 능력이 없고, 문수․보현과 같은 대보살, 부처님과 같은 정안(正眼)을 갖춘 이라야 이 세 가지에 대해서 능히 답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 부처님의 법은 정말 심오한 것이다. 아주 심오하고 심오해서 최고의 고준한 향상(向上)의 진리가 열려야만 천차만별(千差萬別)의 법문을 다 알아, 석화전광(石火電光)과 같은 기틀을 갖춰 대장부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 부처님의 견성법(見性法)은 최고의 종안(宗眼)이 열려야 선지식 노릇을 할 수가 있고, 만인에게 선(禪)의 안목(眼目)을 지도할 수가 있는 것이지, 그러한 눈을 갖추지 못할 것 같으면 도저히 미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면 금일, 산승(山僧)이 한 팔을 걷어붙이고 이 삼반물(三般物)의 진수를 여러 대중에게 선사하고 내려갈까 한다.

어떠한 것이 뿌리 없는 나무인가?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보이시고,]

이 주장자는 원래로 뿌리가 없음이라.

어떠한 것이 소리를 질러도 메아리가 울리지 않는 골짜기인가?

[주장자를 한 번 치시고,]

장수산(萇樹山) 기슭의 해운정사(海雲精寺) 도량(道場)이니라.

어떠한 것이 음양(陰陽)이 없는 땅인가?

사해 오호(四海五湖)니라.

이 세 마디를 바로 알 것 같으면, 역겁(歷劫)을 두고 산승과 함께하는 도반(道伴)이 되리라.

신미년(1991) 동안거 결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48. 임제 탁발(臨濟托鉢)


사람 사람의 이마 위에 큰 광명(光明)을 놓으니
옛적에도 빛났고 이제에도 빛남이로다.
좌지우지(左之右之)에 한 진리를 더하니
다시 허다한 한가한 일이 있음이로다.

한가한 일이 있음이여!
해운대 앞바다의 저녁노을은 볼수록 아름답구나.

어째서 해운대 앞바다의 저녁노을은 볼수록 아름답다고 하느냐?

이 한 마디의 심심(深深)한 뜻을 알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과 더불어 무수 억겁토록 부처님 국토에서 진리의 낙을 누리겠거니와, 만약 여기에서 주저하고 우물쭈물하면 부처님 국토와는 멀고 먼 십만 팔천 리 밖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한 마디를 당하(當下)에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으면, 각자 참구하는 화두를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과 같은 급한 생각으로 참구(參究)하고 참구해서 결단코 자기사(自己事)를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스님네는 중노릇한 본의(本義)가 살고, 재가(在家) 불자님네 또한 이 법을 만난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임제(臨濟) 선사께서 발우(鉢盂)를 들고 탁발(托鉢)을 하시는데, 어느 집 문전(門前)에 이르러 탁발왔다고 하시니, 한 노파가 문을 열고 대뜸 소리를 질렀다.
“이 염치없는 중아!”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푼의 시주도 하지 않고서 어찌 염치없다 하는고?”
하니, 노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문을 왈칵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기에서 임제 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가셨다.

알겠는가?
만약 임제 선사께서 노파가 문을 닫을 적에 한 마디 이르셨더라면 문전박대를 면했을 것이다.
그러면 임제 선사는 번갯불보다도 빠르고 돌불보다도 빠른 기봉(機鋒)을 갖춘 위대한 도인이신데, 노파가 대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 데서는 왜 한 마디도 못 하고 걸음을 돌리셨느냐?
대중아, 임제 선사를 대신하여 한 마디 일러 보라.

대중이 아무 말 없자 이르시기를,

三十年來弄馬騎(삼십년래농마기)
今日却被驢子撲(금일각피여자박)

삼십 년 동안 당나귀를 타고 희롱해왔더니
금일에 당나귀에게 한 번 들어받힘이로다.

신미년(1991) 십이월 보름 해운정사 원통보전


49. 미륵(彌勒) 진미륵(眞彌勒)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
分身千百億(분신천백억)
時時示時人(시시시시인)
時人自不識(시인자불식)

미륵, 참미륵이여!
천백억으로 몸을 나툰다.
때때로 사람들에게 보이건만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네.

중생제도(衆生濟度)의 대서원(大誓願)을 세우신 대불보살들은, 이 부처님의 최고의 진리의 과(果)를 증득하시고는 지옥의 마지막 한 중생까지도 남김없이 다 제도하기 위해서, 무수히 몸을 나투어 가지가지 방편의 법(法)을 설하신다.
미륵 보살(彌勒菩薩) 역시, 부처님의 대도(大道)의 진리를 깨달으셔서 형형색색으로 천백억의 몸을 나투어 사바세계 중생들을 교화하셨다.
미륵 보살이 중국에 포대 화상(布袋和尙)으로 몸을 나투어서는, 점잖은 거동과 거룩한 위의(威儀)로 생활하시지 않고, 항상 자루에다 온갖 폐물을 주워 담아서 들쳐메고 다니셨다.
그러다가 장터에다 거적때기를 하나 깔고서 자루 속의 물건을 다 쏟아 늘어놓고는 사람들에게 물으시곤 하였다.
“이것이 무엇이겠느냐?”
구경하던 사람들이 말이 없으면 마른 생선조각을 집어들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도솔천(兜率天)에서 가져온 것이다.”
또, 마른 똥부스러기를 집어들고서,
“이것은 내원궁(內院宮)에서 가져온 값진 보물이다.”
하시며 그렇게 종일토록 선전을 하면서 소일하셨다.
세상 사람이 볼 때는 정신이 어찌 된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진리에 눈 뜬 사람이 보건대는 마른 똥부스러기가 내원궁에서 가져온 천하 제일가는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일체의 것이 보배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진리의 세계를 깨달으면 대지가 변해서 황금이 되고, 팔만 사천 번뇌(煩惱)가 그대로 보리(菩提)가 된다.
미륵 보살은 이 무한한 진리의 세계를 임의자재(任意自在)하게 써서, 끼니 때가 되면 신통력으로 천집 만집 문전에 일시에 똑같이 포대를 들쳐메고 발우를 든 모습을 나투셨다.
무수한 나날을 그렇게 생활하셨지만 세상 사람들은 미륵 보살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미륵 보살은 참모습을 드러내 보이셨건만, 세상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 한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사시다가 세상 인연(因緣)이 다하여 논두렁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서 그만 몸을 벗어 버리셨는데, 어느 누가 장사 지내주는 이도 없고 하니 그대로 썩어서 구더기가 와글거렸다. 그러더니 그 수천 수만 마리 구더기가 일시에 포대 화상(布袋和尙)으로 화(化)해서 제각기 흩어져 가버렸다.
그러면 이러한 위력(威力)은 어디서 나오느냐?
누구든지 참선수행을 잘 해서 자신의 참사람을 발견하여 진리의 과(果)가 익어질 것 같으면, 이렇듯 신통자재하게 되어, ‘너도 장부요, 나도 장부’며 ‘너도 포대 화상이요, 나도 포대 화상’이 되는 법이다.

또 한 번은 미륵 보살이 중국 양(梁)나라에 부 대사(傅大士)라는 분으로 출세(出世)하신 적이 있었다.
하루는 불심천자(佛心天子)인 무제(武帝)가 부 대사의 도명(道名)을 듣고서 경(經)을 강론(講論)해 주십사고 청했다.
부 대사가 그 청을 받아들이시고 법상(法床)에 올라가서는, 책상을 한 번 휘두르고 이내 내려와 버리셨다.
양무제가 어리둥절해 있으니 지공(誌公) 선사께서 물으셨다.
“폐하께서는 부 대사가 책상을 한 번 휘두르고 내려간 뜻을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지공 선사께서,
“부 대사는 경(經)을 다 강론(講論)해 마쳤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 진리의 세계에 눈이 열리면, 꼭 팔만 사천 경서(經書)를 한자한자 귀절귀절 설(說)하여야 부처님 법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사(日常事) 일거일동에서 부처님의 대법륜(大法輪)을 굴리는 법이다.
부 대사(傅大士)는 미륵 보살의 화현(化現)이요, 지공(誌公) 선사는 관음 보살의 후신(後身)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으니, 두 분이 다 중생교화를 위해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신 분들이라 하겠다.
그러한 고로, 지공 선사는 부 대사가 법상에 올라가셔서 책상을 한 번 휘두르고 내려오신 뜻을 척! 아셨던 것이다.

대중은 알겠는가?
산승(山僧)이 자세히 점검하건대는,

부 대사가 경(經)을 잘 강의(講義)하긴 하였으나, 반밖에는 강의하지 못하였음이라.

그러면 마지막 진리의 한 마디는 어떠한가?

一把柳條收不得(일파유조수부득)
和風搭在玉欄干(화풍탑재옥난간)

한 주먹 버들가지 잡아 얻지 못해서
봄바람에 옥난간 벽에다가 걸어둠이로다.

임신년(1992) 정월 초사흘 해운정사 원통보전


50. 혜충 국사(慧忠國師)의 무봉탑(無縫塔)


庭前楊柳春來靑(정전양류춘래청)
人生一去更來難(인생일거갱래난)
欲免生死輪廻苦(욕면생사윤회고)
聞得正法明此事(문득정법명차사)

뜰 앞에 버드나무는 봄이 오면 저절로 푸르지만
인생은 한 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렵도다.
누구든지 생사윤회의 고통을 면하고자 할진대는
정법(正法)을 듣고 이 일을 밝힐지니라.

어떠한 것이 이 일이냐?

脚下三尺(각하삼척)

다리 아래 석 자로다.
여러 대중들은 이 말의 뜻을 알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성품을 바로 보아서 정법정안(正法正眼)을 갖춘 이라야만 이 말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각자가 지니고 있는 성품(性品)을 바로 볼 수 있느냐?
여기 모인 여러 대중은 33인 큰스님 초청 법회에 참여하셔서 오늘까지 20일이 넘게 대덕 스님네의 법문을 들어왔다. 초청 큰스님마다 평생 수행하신 각자의 장처(長處)가 있고 또, 공부 지시하시는 법도 각기 다르다.
그렇다면, 그 여러 방법들 가운데서 가장 힘을 덜 들이고 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진리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일까?
이 견성법(見性法)이라고 하는 것은 화두(話頭)를 들어서 바로 참구하는 데 묘리(妙理)가 있다.
요즘 제방(諸方)에는 ‘염불선(念佛禪)’을 주장하는 이도 있고, ‘무심무상(無心無想)’ 즉, 생각 없이 무심(無心)을 지켜서 견성(見性)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의 법을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중생(衆生)은 마음 가운데 이생각 저생각 온갖 망념(妄念)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또,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하기 때문에, 아무리 무심(無心)하려고 해야 무심할 수가 없고, 생각을 없애려고 해야 없앨 수가 없는 법이다.
이러한 중생의 업(業)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화두참구(話頭參究)이다.
화두 한생각을 오매불망(寤寐不忘) 간절하게 참구하다 보면, 무수히 일어났다가 없어지는 기멸심(起滅心)은 점점 차단 되어 간다. 이를 좇아서 참의심[眞疑心]이 돈발(頓發)할 것 같으면, 기멸심은 완전히 끊어지고, 화두일념(話頭一念)만이 현전(現前)되어 보고 듣는 것을 다 잊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부처님께서도 보리수 나무 밑에 좌정(坐定)하셔서 6년의 세월이 지나간 줄을 모르셨고, 머리 위에 새가 집을 짓는 것까지도 모르셨다.
이와 같은 삼매(三昧)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생의 업(業)인 온갖 망념(妄念)은 빙소와해(氷消瓦解) 되어지고, 홀연지간(忽然之間)에 마음땅이 드러나는 법이다.

선법(禪法)이 크게 흥성했던 중국 당대(唐代)의 역사를 잠깐 보면, 3대(代) 고종이 죽고 나서 고종의 왕후인 측천왕후가 중종과 예종을 폐위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그리하여 덕 높은 큰스님을 국사(國師)로 모셔서 사심 없는 지혜의 안목(眼目)으로써 선정(善政)을 펴려고, 당시에 명성이 자자하던 혜충(慧忠) 선사와 신수(神秀) 대사 두 분을 청(請)했다.
혜충(慧忠) 선사께서는 백애산(白崖山)에서 40년 동안 내려 오시지 않고 수도(修道)에만 전력하셨는데, 왕후가 세 번이나 사신을 보내서 간청하므로 하는 수 없어 내려오셨다.
왕후는 이 두 큰스님 가운데 도(道)가 장한 한 분을 추대해 모셔야겠는데, 자신은 식견(識見)이 얕아 두 분의 지혜의 안목을 판가름할 수가 없는지라,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묘책을 냈다. 시녀를 시켜서 두 큰스님의 목욕시봉을 들게 한 것이다.
시녀들이 목욕시봉을 다 해드리고 나서 그 과정을 사실대로 말하자 측천왕후가 듣고는,
“물에 들어감으로 인해 장한 분을 보았도다.”
하고 혜충 선사를 국사(國師)로 모셨다.
그리하여 혜충 선사는 측천왕후 때부터 현종, 숙종, 대종에 걸쳐 국사가 되셔서 널리 교화(敎化)를 베푸셨다.
세 천자(天子)가 다 신심(信心)이 돈독했는데, 특히 숙종은 그 신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아침 조회 때마다 국사를 모셔와서 사신들과 함께 법문을 들었는데, 이 때 항시 친히 가서 예를 올리고 손수 말고삐를 몰아서 모시고 왔다 한다.

하루는 숙종(肅宗) 황제가 혜충 국사 처소를 방문하여 한 가지 청(請)을 드렸다.
“서천(西天)에서 온 대이삼장(大耳三藏)이 타심통(他心通)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하니 스님께서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그래서 국사께서 대이삼장을 불러 물으시기를,
“그대가 타심통으로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했는가?”
하니, 대이삼장은 그러하다고 답했다.
국사께서는 잠시 동안 가만히 계시다가 물으시기를,
“노승(老僧)의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고?”
“스님께서는 일국(一國)의 스승이시거늘, 어찌하여 촉천(蜀川) 강 위에 배들이 경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시옵니까?”
국사께서 또 잠시 가만히 계시다가,
“지금은 노승(老僧)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고?”
“스님께서는 일국(一國)의 스승이시거늘, 어찌하여 천진교(天津橋) 위에서 원숭이들이 서로 희롱하는 것을 보고 계십니까?”
국사께서 또 잠시 계시다가 물으셨다.
“지금은 노승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고?”
대이삼장이 이번에는 아무리 찾아도 마음 있는 곳을 찾지 못하여,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습니다.”
하자, 국사께서 큰 소리로
“타심통(他心通)이 어디에 있는고?”
하고 꾸짖으셨다.
그러면 두번째까지는 정확히 알아 맞췄는데, 세 번째 물음에서는 왜 알지 못했을까?
대이삼장(大耳三藏)뿐만 아니라,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도, 충 국사께서 마음 두신 곳을 바로 보기가 어렵다. 수행(修行)이 깊어 무심(無心)의 삼매(三昧)에 들 것 같으면, 귀신도 보지 못하고 모든 부처님과 도인이 다 보지 못하는 법이다.

후일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선사께 여쭙기를,
“국사께서 세번째는 어디에다 마음을 두셨기에 대이삼장이 보지 못했습니까?”
하니, 조주 선사께서는
“삼장의 콧구멍 위에 있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후에 다시 현사(玄沙) 선사께 여쭈었다.
“삼장의 콧구멍 위에 있었을진대는 어찌 보지 못하였습니까?”
“너무 가까운 까닭에 보지 못하였느니라.”

깨달은 이는 이렇게 척척 나온다. 이것이 가장 멋이 있는 법문이요, 고준한 법문이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대이삼장과 혜충․조주․현사 선사의 용심처(用心處)를 알겠는가?

三箇四箇漢(삼개사개한)
弄泥團漢(농니단한)

세분 네분이 모두
진흙덩어리를 만지는 이들이로다.

시자야! 네 분에게 차나 한 잔씩 대접하여라.

또 어느 날, 숙종 황제가 혜충 국사를 참방(參訪)하여 여쭙기를,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무엇을 해드리리까?”
하자, 혜충 국사께서 대답하셨다.
“노승(老僧)을 위해서 무봉탑(無縫塔)을 조성(造成)해 주십시오.”
그러자 숙종 황제가 다시 여쭙기를,
“그러면 탑의 모양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혜충 국사께서 아무 말 없이 한참 앉아 계시다가 물으셨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숙종 황제가 그 뜻을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이렇게 대답하자, 혜충 국사께서 다시 이르셨다.
“그러면 이후에 나의 제자 탐원(耽源)을 청해서 물어 보시오.”

무봉탑(無縫塔)의 모양을 묻는데, 아무 말 없이 앉아 계신 도리(道理)가 무엇인가?
후에 설두(雪竇)선사께서 여기에 대해서 송(頌)하시기를,

無縫塔見還難(무봉탑견환난)
澄潭不許蒼龍蟠(징담불허창룡반)
層落落影團團(층낙낙영단단)
千古萬古與人看(천고만고여인간)

무봉탑은 보기가 어려운지라
맑은 못에는 푸른 용이 사리고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음이로다.
층층이 우뚝하고 그림자 둥글고 밝으니
천만년토록 만인에게 보게 하누나.

참으로 멋진 점검이다.
“꿰맨 흔적이 없는 탑은 육안(肉眼)으로써는 보기가 어려운 지라, 맑은 못에는 푸른 용이 사리고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 하는 여기에 묘(妙)한 살림살이가 있다.
어찌해서 무봉탑(無縫塔)은 보기가 어렵다고 하며, 맑은 못에는 창룡이 사리고 있는 것을 허락치 아니한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여기에서 확연명백한 눈이 열린다면, 불법진리(佛法眞理)의 안목(眼目)을 온전히 갖추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시회대중은 혜충 국사와 설두 선사를 알겠는가?

하늘과 땅을 꿰뚫고, 홍파(洪波)가 치고 쳐서 백랑(白浪)이 하늘까지 치솟는, 그 가운데서 전신(轉身)하여야 두 분을 바로 보리라.

임신년(1992) 이월 33인 큰스님 초청 대법회 중 해운정사 원통보전


51. 남전 참묘(南泉斬猫)


白鷺下田千點雪(백로하전천점설)
黃鶯上樹一枝金(황앵상수일지금)

백로들이 밭에 앉으니 점점이 눈송이요
노랑꾀꼬리 나무에 오름에 한 가지 황금이로다.

이 어떠한 진리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냐?

여기에서 확연명백(確然明白) 할 것 같으면, 불조(佛祖)께서 베풀어놓으신 백천삼매(百千三昧)의 법문을 다 밝혀 당당하게 수용할 것이다.
그리하여 범부(凡夫)가 오면 범부를 나투어 대담을 하고, 성인(聖人)이 오면 성인을 나투어 대담을 하고, 어린 아이들이 오면 어린아이를 나투어서 천진하게 한가히 놀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심성(心性)을 뚜렷이 밝혀서 이와 같은 자재(自在)의 분(分)을 갖추고자, 이번 여름 안거(安居)에도 이렇게 많은 대중이 참여한 것이다.
그러면 대중이 이렇게 함께 모여서 수행(修行)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느냐?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천이백 대중을 모아놓고 물으시기를,
“대중이 얼마나 공부를 시켜 주느냐?”
하니, 아난 존자(阿難尊者)가 일어나서 말씀드렸다.
“대중이 반을 시켜줍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네가 잘 알지 못했다. 대중이 전체를 시켜주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대중의 힘이라는 것은 무섭다. 게으름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대중이 모여서 공부를 하게 되면, 그 가운데는 용맹(勇猛)과 신심(信心)을 내어 애쓰고 애쓰는 이나, 화두일념삼매(話頭一念三昧)에 들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참구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러한 분들을 보고 자기자신을 반성하여, 다시 신심(信心)을 내고 발심(發心)을 해서 공부를 다져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대중이 공부를 전체 다 시켜 준다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이 많은 대중이 모여 함께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각자가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느냐?
여기에는 ‘나’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
개개인이 각자 대중의 뜻을 편안하게 받드는 자세에서 임해야 대중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이지, 대중에게 내 뜻을 따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대중생활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많은 대중이 함께 살아가는 데는 화합이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행자(修行者)의 기본 자세는 하심(下心)이다. 이 공부는 ‘나’라는 것을 다 놓아 버려야 한다. ‘나만 잘났고, 나만 위대하고, 나만 똑똑하고’하는 등의 아만이 마음 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면, 그 사람은 공부와는 천리 만리 밖에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무조건 하심(下心)하고 서로서로가 부처님을 모신다는 자세로 존중하면서 공부를 지어간다면, 시비(是非)도 끊어지고 화두공부가 날로 새로워질 것이다.

남전(南泉) 선사께서 회상(會上)을 여니 각처에서 스님네와 신도들이 모여들었는데, 하루는 한 노승(老僧)이 10세 미만의 동자승(童子僧)을 데리고 남전 선사를 친견하러 왔다.
노스님이 먼저 남전 선사를 친견하고 청(請)을 드리기를,
“제가 데려온 아이가 아주 영특한데, 저로서는 저 아이를 훌륭한 인재로 키울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스님께서 크신 법력(法力)으로 잘 지도해 주십시오.”
하고는 물러 나와서 동자승을 조실방으로 들여보냈다.
동자승이 인사를 올리니, 남전 선사께서는 누워 계시던 채로 인사를 받으며 물으셨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서상원에서 왔을진대는, 상서로운 상(像)을 보았느냐?”
“상서로운 상은 보지 못했지만, 누워 계시는 부처님은 뵈었습니다.”
남전 선사께서 누워 계시니 하는 말이다.
남전 선사께서 이 말에 놀라, 그제서야 일어나 앉으시며 다시 물으셨다.
“네가 주인이 있는 사미(沙彌)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너의 주인이 누구인고?”
“스님, 정월이 대단히 추우니 스님께서는 귀하신 법체(法體) 유의하시옵소서.”
그대로 아이 도인이 한 분 오신 것이다.
남전 선사께서 기특하게 여겨, 원주를 불러 이르셨다.
“이 아이를 깨끗한 방에 잘 모셔라.”
부처님의 이 견성법(見性法)은 한 번 확철히 깨달을 것 같으면, 몸을 바꾸어 와도 결코 매(昧)하지 않고, 항상 밝아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이다.
이 사미승이 바로 조주(趙州) 스님인데, 이렇듯 도(道)를 깨달은 바 없이 10세 미만인데도 다 알았던 것이다.
조주 스님은 여기에서 남전(南泉) 선사의 제자가 되어 다년간 모시면서 부처님의 진안목(眞眼目)을 갖추어 남전 선사의 법(法)을 이었다.

당시에 남전 선사 회상에는 육칠백여 명의 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고 있었다.
마침 사중(寺中)에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동서(東西) 양쪽 선원(禪院)의 대중들이 서로 자기네 선원의 고양이라고 주장하여 설왕설래(說往說來) 분분한 시비가 벌어졌다. 그리하여 남전 선사께서 운집종(雲集鍾)을 치라고 명령하시기에 이르렀다.
대중들이 모두 모이자, 남전 선사께서는 법상(法床)에 오르시면서 시자에게 이르셨다.
“고양이와 칼을 가져오너라.”
시자가 그것들을 가져와 법상 위에 올려놓으니, 남전 선사께서 고양이를 치켜들고 말씀하셨다.
“이 고양이로 인하여 늘 시비가 생기니, 오늘 이 고양이를 두고 한 마디 바로 이르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고양이를 살려 두겠거니와, 만약 바로 이르지 못하면 단칼에 두 동강을 내버리겠다.”
“속히 일러라!”
하시며 세 번을 거듭하여 대답을 재촉하였는데도 아무도 이르는 자가 없었다. 그 칠백여 명의 대중 가운데 남전 선사의 뜻을 헤아리는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남전 선사께서는 미리 말씀하셨던 대로, 고양이를 두 동강 내고는 방장실(方丈室)로 돌아가 버리셨다.
방장실에서 쉬고 계시자, 그동안 출타 중이었던 조주(趙州) 스님이 돌아와서 인사를 올림에, 남전 선사께서 이 일을 들어 말씀하셨다.
“그대라면 무엇이라 답하겠는고?”
그러자 조주 스님은 즉시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가 버렸다.
남전 선사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는,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렸을 것을.”
하고 혼잣말을 하셨다.

옛 조사(祖師) 스님네께서, “열반심(涅槃心)은 알기 쉬우나 차별지(差別智)는 밝히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바로 이러한 공안(公案)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 부처님의 진리의 세계는 아주 세밀하다.
지금 이 법상(法床) 위에는 꽃도 있고 녹음기도 있고 찻잔도 있고 가지가지가 놓여 있는데, 눈 먼 봉사는 이것을 가리지 못한다. 이 법당리(法堂裏)에 있는 눈 뜬 이는 ‘이것은 녹음기다, 꽃이다, 찻잔이다.’ 하고 다 가릴 수 있지만, 맹인(盲人)은 눈이 어두우니 가릴 수가 없는 것이다.
진리의 세계도 이와 똑같다.
그러므로 종사가(宗師家)가 되려면 차별의 낱낱 법문에 밝아야 한다. 만일 차별지(差別智)에 밝지 못할 것 같으면 만인의 눈을 멀게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식(善知識) 스님네는 자칭 선지식이라 해서 선지식이 되는 게 아니고, 이러한 차별(差別)의 법문을 다 투과(透過)하여 스승으로부터 인증(印證)을 받아야지 선지식이다. 그 분만이 만인의 눈을 멀게 하지 않을 점검의 눈을 갖추어, 만인에게 최고의 진리를 지도할 수 있는 법이다.

대중은 알겠는가?
남전 선사께서 고양이를 들고 “이르라!”고 하신 뜻은 어디에 있으며, 조주 스님이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간 뜻은 또 무엇인가?

眞際奪得連城璧(진제탈득연성벽)
秦主相如總喪身(진주상여총상신)

산승이 연성의 보배구슬을 빼앗아 가지니
진나라 임금과 상여가 다 몸을 상함이로다.

임신년(1992) 하안거 결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52. 마조 서신(馬祖書信)


綠樹靑山毘盧身(녹수청산비로신)
海上波濤廣長說(해상파도광장설)
若人問我解何宗(약인문아해하종)
金剛般若定慧力(금강반야정혜력)

푸른 나무 푸른 산은 비로자나 전신(全身)이요,
바다 위의 파도소리는 모든 부처님의 법문이라.
만약 어느 사람이 나에게 어떤 종지(宗旨)를 아느냐
고 물을 것 같으면
금강반야의 정(定)과 혜(慧)의 힘이라 하리라.

정(定)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면, 모든 산란심(散亂心)이 다 끊어지고 적적(寂寂)의 일념(一念)이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 가운데는 온갖 망상(忘想)이 일초일각(一秒一刻)을 쉼없이 기멸(起滅)하는데, 우리가 선수행을 해서 금강(金剛)과 같은 불괴(不壞)의 정(定)을 얻으면, 모든 기멸심이 다 끊어지게 된다.
이 금강과 같은 불괴(不壞)의 적정삼매(寂定三昧)를 일용(日用)중에 항시 수용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경지요, 부처님의 살림살이이다.
이러한 적적(寂寂)의 정(定)이 이루어지면 자연히 밝은 지혜가 현전(現前)하게 된다. 금강(金剛)과 같은 정(定)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밝은 혜(慧)가 드러날 수 없다. 또한, 이 혜(慧)가 뚜렷이 밝을 것 같으면, 금강(金剛)과 같은 정(定)이 지속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定)과 혜(慧)는 이름은 둘이지만 실상으로는 하나이다. 정(定)이 곧 혜(慧)이고, 혜가 곧 정인 것이다.
정(定)과 혜(慧)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수레가 외바퀴로는 굴러갈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둘이 항상 같이 굴러가야 한다. 정(定)을 여의고는, 혜(慧)가 있을 수 없고 또, 밝은 혜(慧)를 여의고는, 정(定)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이 둘을 균등하게 갖추지 못할진대는, 불조(佛祖)께서 베풀어놓으신 백천삼매(百千三昧)의 법문을 당당하게 수용할 수가 없다. 낱낱 법문에 밝은 눈이 열리지 못할 것 같으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만인을 지도할 수 있는 안목(眼目)을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둘을 함께 갖추어야만,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歷代祖師)의 심심미묘(深深微妙)한 경계와 살림살이에 이를 수 있는 법이다.

당대(唐代)에 마조(馬祖)ㆍ석두(石頭)ㆍ혜충(慧忠) 선사, 이 세 분이 삼각을 이루어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리시던 때가 있었다.
하루는 마조 선사께서 친히 혜충 선사께 보내시는 글을 써서 제자인 지장(智藏) 스님을 시켜서 전하게 하셨다.
지장 스님이 편지를 지니고 몇 달 동안 걸어서 혜충 선사를 찾아가 인사드리니, 혜충 선사께서 물으셨다.
“근래에 마조 도인께서는 만인에게 무슨 진리의 법(法)을 펴는고?”
그러자 지장 스님이 즉시 일어나 동(東)쪽에서 서(西)쪽을 향해 걸어가서 말 없이 차수(叉手)하니, 혜충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것 외에 달리 또 있느냐?”
이에 지장 스님은 서쪽에 서 있다가 다시 동쪽으로 와서 말없이 차수하였다.
“그것은 마조 도인의 살림살이이고 그대의 살림을 드러내보게.”
“일찍이 스님께 저의 살림살이를 다 드러내 보였습니다.”
여기에서 혜충 선사는 쉬었다.

이 진리의 살림살이는 세상의 어떠한 보배로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천신만고(千辛萬苦)의 참선정진으로 자신의 마음밭을 계발(啓發)해야만, 이렇게 진리의 살림살이를 자재하게 쓸 수가 있는 법이다.
금일에 산승이 혜충 선사의 자재한 용심처(用心處)를 점검해 보건대는,

혜충(慧忠) 선사는 종사가(宗師家)의 안목(眼目)을 분명히 갖추어서 납자(衲子)를 훌륭하게 다루었다 하겠다.

마조․지장 선사의 살림살이를 보건대는,

獅子窟裏無異獸(사자굴리무이수)

사자 굴 속에는 다른 짐승이 살 수 없음이라.

그러면,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산승(山僧)을 알겠는가?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남북(南北)이 십만 리요,
동서(東西)가 팔천 리라.
그 가운데 하나가 있어서
호로호로 소로소로 훔이로다.

임신년(1992) 오월 보름 해운정사 원통보전


53. 황벽 삼장(黃檗三掌)


향상(向上)의 진리의 큰 기틀을 온전히 가지니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들도 몸을 감출 곳이 없음이요,
향상의 진리의 큰 용(用)을 자재하게 쓰니 번갯불도 그 앞에서는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

알겠느냐?

桃紅梨白薔薇紫(도홍리백장미자)
問著東君也不知(문저동군야부지)

복숭아꽃은 붉고 배꽃은 희고 장미꽃은 붉은 것을
동쪽 사람에게 그 뜻을 물으니 또한 알지 못하더라.

이러한 법문(法門)은 바로 알기가 무척 어렵다.
여기에서 바로 안다면 제불(諸佛)의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를 얻을 것이며, 낱낱 진리의 법문에 확연명백해서 호인(胡人)이 오면 호인으로 나투고, 한인(漢人)이 오면 한인으로 나투어서 접인(接人)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와 같은 자재한 제접(提接)을 못 할 것 같으면, 아직 대도(大道)의 문(門)을 활짝 열어 젖히지 못한 것이니, 다시 참구(參究)하고 참구하라.

황벽(黃檗) 선사 하면은, 우리 임제문중(臨濟門中)에서 마조(馬祖) 선사 아래 백장(百丈), 백장 선사 밑에 황벽 선사인데, 바로 그 아래가 또 임제 선사이다. 모두 도인 가운데 으뜸가는 도인이요, 밝은 도안(道眼)을 갖추신 분들이다.
하루는 황벽 스님이 백장 선사께 여쭙기를,
“종상종승사(從上宗乘事)를 장차 만인에게 어떻게 지시하시렵니까?”
하니, 백장 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계셨다.
말 없이 앉아 있는 여기에 심오한 진리가 숨어 있는 법이다.
그러자 황벽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 후인(後人)으로 하여금 끊어져 가게끔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하니, 그 말 끝에 백장 선사께서는
“너가 이 낱 사람인지라.”
라고 말씀하시고는 곧장 조실방으로 돌아가셨다.
사람인데 왜 이 낱 사람이라고 하느냐?
여기에도 큰 뜻이 숨어 있다.
우리가 이러한 법문을 바로 받아들이는 눈을 갖추어야 세세생생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아주 당당하게 진리의 낙(樂)을 누리며 영겁(永劫)토록 열반의 극락세계에서 생활하게 되는 법이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황벽 선사께서 출세(出世)하신 당대(唐代)는, 무수 도인이 배출되어 선법(禪法)을 크게 선양(宣揚)하던 때였다.
당시 헌종(憲宗)이라는 임금이 있어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한 사람은 목종(穆宗)이고 한 사람은 선종(宣宗)이다. 맏이인 목종이 왕위를 계승하고 또 아들 셋을 두어, 경종(敬宗)ㆍ문종(文宗)ㆍ무종(武宗)이 차례로 왕위를 이었다.
목종이 재위(在位)하던 당시에, 후에 선종이 된 대중(大中)이라는 아우는 열 살 남짓 되었던 때다.
그 아이가, 형이 신하들을 모아놓고 용상(龍床)에 앉아 조회를 하고 국사를 논할 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조회가 끝나면 궁중에 있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용상에 올라가서 형이 정사(政事)하던 것을 그대로 흉내내곤 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 반복하므로, 신하들이 그 광경을 보고는 목종에게 아뢰었다.
“임금님의 아우가 용상에 올라가서 정사(政事)를 흉내내는 것은, 필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바람이니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목종이 그 말을 듣고는 아우에게 가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주 영특한 내 아우로구나.”
하며 칭찬을 하였다.
그러나 목종이 죽고, 세 아들이 차례차례 왕위를 계승해서 마지막 셋째가 왕위에 오르자, 숙부 대중(大中)을 종으로 부리고 타살(打殺)하려 했다. 이유인즉, 아버지 목종이 나라를 다스릴 때 용상에서 아버지를 희롱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행히 천명(天命)으로 살아나 산으로 피신하여, 향엄 지한(香嚴志閑) 선사의 회상(會上)으로 가서 사미승(沙彌僧)이 되었다.
하루는 향엄 선사께서 사미 대중을 데리고 여산(廬山) 폭포를 구경가셨다. 거기에서 수십 길 되는 벼랑에서 쏟아지는 짚둥 같은 폭포를 보고 향엄 선사께서 글을 두 구(句) 지으셨다.

穿雲透石不辭勞(천운투석불사로)
地遠方知出處高(지원방지출처고)

구름을 뚫고 돌을 뚫으며 쏟아지는 물이 수고로움을 모르니
그 근원이 멀고 멀어서 출처가 아주 높은 줄을 앎이로다.

향엄 선사께서 그렇게 두 구를 지으시고는, 사미 대중에게 이르셨다.
“네가 뒷 글귀를 한 번 이어 보아라.”
그릇을 떠보기 위해서 시험을 던지신 것이다.
그러자 대중이 척 받아서,

溪澗豈能留得住(계간기능류득주)
終歸大海作波濤(종귀대해작파도)

어찌 산골짝 개울에 머무르리오
마침내 큰 바다에 돌아가 파도를 일으키리라.

하고 아주 멋진 대구(對句)를 하였다.
향엄 선사께서 들어보시고는,
“됐다. 시절인연(時節因緣)만 기다려라.”
하셨으니, 장차 세상에 돌아가 큰 파도를 일으킬 그릇임을 간파하셨던 것이다.
그런 후로 사미 대중은 염관(鹽官) 선사 회상으로 갔다. 그곳에서 시절인연을 기다리고 지내는데, 당시 염관 선사 회상에는 황벽 선사께서 유나(維那) 소임을 맡고 계셨다.
스님네는 항시 조석(朝夕)과 사시(巳時)에 부처님 전에 예배를 드리는데, 하루는 대중이 예불(禮佛)을 올리고 계시는 황벽 선사를 보고 다가가서 여쭈었다.
“부처님 경(經)에, ‘부처님에게도 집착해서 구하지 말 것이며, 부처님의 진리의 법에도 집착해서 구하지 말 것이며, 부처님의 진리의 법을 수행하는 스님네에게도 의지해서 구하지 말라.’는 법문이 있는데, 스님께서는 예불을 올리는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황벽 선사께서 그 말을 받아서,
“부처님께 집착해서 구하는 바 없이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고, 부처님의 진리의 법에 집착해서 구함이 없이 부처님 진리의 법에 예배를 올리고, 부처님의 진리의 법을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집착함이 없이 스님들께 예(禮)하노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할진대는 예배드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대중(大中)이 이렇게 반문하자, 황벽 선사께서 대중의 뺨을 한 차례 갈겨 버리셨다.
“대단히 머트러운 스님이시군요.”
“이 부처님 진리 가운데 무슨 머트럽고 세밀함이 있을 수가 있느냐?”
하시며 황벽 선사께서 연거푸 대중의 뺨을 두 대 더 올려치셨다.
그러고서 세월이 흐른 후에, 당나라 궁중에서는 대중(大中)을 임금으로 추대해 모셨다.
대중은 임금이 되고 나서, 과거 수행하던 시절에 황벽 선사께 뺨을 세 차례 맞았던 사실이 생각나서, 황벽 선사에게 추행사문(麁行沙門)이라는 호를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당시에 조정에는 배상국(裴相國)이라는 이가 있어 그것을 만류했다.
배상국은 신심(信心)이 아주 대단하여 일생 황벽 선사 회상에서 수행하여 진리의 안목(眼目)을 갖춘 분이다. 그래서 노령에는,
“스님,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그 고귀한 진리의 법을 저에게 전(傳)하지 않으시렵니까?”
라고까지 하신 분이다. 거사(居士)로서 그렇게 훌륭한 안목을 갖추셨던 것이다.
상국(相國)이라는 벼슬이 요즘의 국무총리쯤 되다 보니, 임금이 황벽 선사께 머트러운 수행을 한 분이라고 추행사문(序行沙門)이라는 호를 내리려고 하니, 간언(諫言)을 했던 것이다.
“폐하께서는 그 말씀을 거두십시오. 황벽 도인께서 폐하의 뺨을 세 번 때리신 그 인연으로 폐하의 삼생(三生)의 업(業)이 다 소멸된 고로, 오늘날 이렇게 왕위에 오르시게 된 것입니다.”
선종(宣宗)이 그래도 신심(信心) 있는 왕인지라, 듣고 보니 배상국의 말이 옳으므로, 추행사문이라는 호를 거두고 대신 단제(斷際) 선사라는 호를 내렸다. 삼생(三生)의 업을 다 끊어주신 위대한 선사라고 그렇게 호를 내린 것이다.

이와 같이 선지식(善知識)에게 법방망이를 맞는 데서는 중생의 한량없는 업(業)이 일시에 소멸되는 법이다. 또, 선지식이 설(說)하는 고준한 진리의 한 마디는 귓전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다겁다생(多劫多生)에 지어온 업이 소멸되고, 그 한 마디를 마음 가운데 깊이 새길 것 같으면, 필경에 불과(佛果)를 이룬다고 했다.
그러니 이 법석(法席)이라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자리인가?
그러므로 세상 일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이 고귀한 법문 한 마디 잘 들어서 마음 가운데 있는 가지가지의 번뇌를 제거하는, 이 일에 지나가는 것이 없다.

마지막 진리의 한 마디는 어떠한 것이냐?

一曲兩曲無人會(일곡양곡무인회)
無限雲山碧層層(무한운산벽층층)

진리의 곡조를 한곡 두곡 읊어야 아는 이 없고
한없는 구름산만 겹겹이 푸르도다.

임신년(1992) 유월 보름 해운정사 원통보전


54. 취암 미모(翠巖眉毛)


이 주장자(拄杖子)를 세우면,
나라는 부흥함이나 시골 노인들은 얼굴을 찌푸림이요,
이 주장자를 세우지 아니하면,
나라는 쇠퇴함이나 시골 노인들은 손뼉을 치며 웃음이로다.

여기에서 밝게 알면 금일이 곧 해제일(解制日)이라, 처처(處處)가 불국토며 진진(塵塵)이 해탈삼매(解脫三昧)가 되리라.
부처님의 이 법은 해탈의 법이다.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서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자는 것이다.
인인개개인(人人箇箇人)이 가지고 있는 참사람을 바로 보면 대해탈인(大解脫人)이 되어서 다시는 구속받지 아니하고, 다시는 억압받지 아니하며, 모든 고통에서 영구히 벗어나게 된다.
중국의 취암(翠巖) 선사께서 어느 해 여름에, 몇백 명 대중을 거느리고 여름 안거(安居)를 지내시고서 해제일에 다다라 대중에게 물으셨다.
“노승(老僧)이 여름 석 달 동안, 대중을 위하여 가지가지 법문을 설(說)하였는데, 대중은 노승의 눈썹을 보았느냐?”
대뜸 이렇게 말씀하시니, 대중이 다 무슨 소리인 줄 몰라서 눈이 둥그레져 있을 뿐, 아무도 답(答)하는 이가 없었다.
후에 보복 전(保福展) 선사께서 여기에 대해서,
“도적을 짓는 마음이 허(虛)하다.”
라고 하셨고, 장경(長慶) 선사라는 분은,
“생야(生也).”
무엇이 났다는 말인지 이렇게 답하셨다.
그리고 운문(雲門) 선사께서는,
“관(關).”
빗장관 자(字), ‘관’이라 하셨다.

중국 천하의 무수 도인들께서 운문 선사의 이 답을 듣고서,
“천고(千古)에 불법(佛法)의 투철한 안목을 갖춘 분은 오직 운문 선사다.”라며 아주 칭찬을 많이 하셨다.
이 부처님 법은 천리 만리 떨어져 있어도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법문 한 마디만 들어보면, 그 안목의 깊고 얕고 높고 낮음을 다 식별(識別)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면 운문 선사께서는 왜 “관(關).”이라 하셨을까?
이 문제를 화두(話頭)로 삼아 오매불망(寤寐不忘) 생각하면서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생각할 것 같으면, 마음 가운데 가지가지의 번민, 갈등이 다 없어진다.
화두를 챙길 때는 아주 분명히 또렷또렷하게 화두를 챙기고 의심을 짓고 또, 챙기고 의심을 지어가고 해야 가지가지의 생각이 침범하지 못하고 혼침(婚沈)도 달아나 버린다. 거기에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다거나 게으른 생각이 있을 것 같으면, 화두는 벌써 십만 팔천 리 밖에 달아나 있고, 과거의 습기(習氣)로 인한 다른 생각이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게 된다.
이 수행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구(參究)를 해야되지, 참선하는 흉내나 내고 앉아 있는 껍데기 수행은 아무 가치가 없다. 한 번을 생각해도 뼈골에 사무치는 화두를 챙겨야지, 공부에 진취가 있고 소득이 있는 법이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결제(結制) 석 달이 지겨워서 벌써 바랑을 싸놓고서 해제(解制)만 기다렸던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을 가도 도처에 서홉밥이고 전국 절들이 다 대동소이하다.
옛날 영운(靈雲) 선사는 전생애를 이 일 밝히는 데 걸고, 위산(潙山) 선사 회상을 30년 동안 여의지 않고 참구하셔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다. 또, 약산(藥山) 선사는 석두(石頭) 선사 회하(會下)에서 40년 동안 수도(修道)하여 깨달아 석두 선사의 상수제자(上首弟子)가 되었다.
이 견성법(見性法)이라는 것은 1,2년 내에 성취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금생에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금생에는 모든 습기(習氣)에 놀아나지 않겠다.’, ‘모든 허영에 떨어지지 않겠다.’, ‘모든 반연(攀緣)에 얽히지 않겠다.’ 하는 작심(作心)을 하고, 전생애를 화두참구에 걸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눈 밝은 종사(宗師)와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광대무변한 대도(大道)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중도(中途)에 머무르지 않고 구경법(究竟法)에 이를 수 있다.
이 대도(大道)의 견성법(見性法)을 배우고자 한다면, 이러한 마음자세를 확립해야만 세세생생(世世生生) 외변(外邊)에 떨어지지 않고 바른 진리의 법에 머무를 수가 있는 법이니, 대중은 명심하고 명심하기 바란다.

그러면 취암 선사께서 “노승(老僧)의 눈썹을 보았느냐?”고 물으신 뜻이 어디에 있느냐?

鐵圍山萬重圍(철위산만중위)

철위산이 만 겹이나 둘렸음이로다.

임신년(1992) 하안거 해제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55. 석인목녀(石人木女)


石人樹下吹玉笛(석인수하취옥적)
木女溪邊亦作舞(목녀계변역작무)
若人問我佛法意(약인문아불법의)
石人木女醉扶歸(석인목녀취부귀)

돌사람이 나무 아래에서 옥피리를 부니
나무여자가 개울가에서 또한 춤을 춤이로다.
만약 사람이 있어 산승에게 불법의 뜻을 물을 것 같으면,
돌사람 나무여자가 술에 취해 서로 안고 돌아감이로다.

여기에서 밝게 얻을 것 같으면 대도(大道)에 상응(相應)하리라.
부처님의 정법(正法)은 만나기도 어렵고 또한 바르게 배우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정안(正眼)을 갖춘 이를 만나기가 어렵고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고인(古人)은,
“부처님 정법(正法)의 정안(正眼)을 갖춘 이를 만나는 것은 사선천(四禪天) 이상의 하늘에서 바늘을 떨어뜨려 항하(恒河)의 모래밭에 있는 한 점의 겨자씨에 꽂히는 것과 같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정안(正眼)을 갖춘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는 것이 어렵고, 올바른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인연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법정안(正法正眼)을 갖춘 이가 보건대는,

長安萬里千萬戶(장안만리천만호)
鼓門處處眞釋迦(고문처처진석가)

마음의 고향의 많은 집에
문을 두드리니 나오는 이가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이더라.

깨달은 사람이 볼 때는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일월성신(日月星辰), 일체의 것이 진리 아님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업(業)의 그림자가 철위산(鐵圍山)과 같이 가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이 신심(信心)을 내어 용맹정진해서 철위산과도 같은 이 업(業)의 그림자를 녹여버릴 것 같으면, 광탄무변(廣坦無邊)의 진리의 세계가 그대로 여러분의 목전(目前)에 드러 나게 된다. 부처님의 참면목이 다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에 이르려면, 불법(佛法)의 정안(正眼)을 갖춘 선지식을 만나서 올바른 지도를 받아 그대로 온전히 실천해야 한다.

옛날에 위산(潙山) 스님은 백장(百丈) 선사 회상에서 다년간 정진(精進)하면서, 백장 선사의 법방망이 아래 백장 선사의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진리를 증득하여 불법정안(佛法正眼)을 인가(印可) 받았다.
그리하여 대위산(大潙山)의 주인이 되어 천오백 대중을 지도하셨는데, 이 위산 선사 회상에 유철마(劉鐵磨)라는 비구니가 큰절 아래에다 조그마한 토굴을 지어놓고 법문 들으러 올라 다니면서 지도를 받다가 지견(知見)이 열렸다.
이 소문이 중국 천지에 자자하니, 하루는 자호(子湖) 선사께서 철마 비구니를 방문하셨다.
“그대가 철마인가?”
“그렇습니다.”
비구니의 이름이 쇠 ‘철(鐵)’자 갈 ‘마(磨)’자, 쇠를 항시 맷돌 갈 듯 간다는 뜻이 되는지라, 자호 선사께서 이 이름자의 뜻을 들어 다시 물으셨다.
“왼쪽으로 돌리는가, 오른쪽으로 돌리는가?”
그러자 철마 비구니가 답하기를,
“화상(和尙)은 거꾸러지지 마소서.”
하니, 자호 선사께서 호통을 치셨다.
“멀리서 듣기로는 철마 비구니가 알았다고 분분하더니, 와서 보니 듣던 바와 같지 못하구나.”
여기서 철마 비구니는 자호 선사로부터 한 방망이 맞고, 다시 각고의 정진을 하여 마침내 정지견(正知見)이 열리게 되었다.
그런 후, 일일(一日)에 스승 위산(潙山) 선사를 방문하였다.
위산 선사께서 철마 비구니가 오는 것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늙은 암소가 오느냐?”
하자, 철마 비구니가 그 말을 받아서
“내일 대비원(大悲院)에 대중공양이 있는데 스님께서는 공양하시러 가시렵니까?”
라고 하였다.
그러자 위산 선사께서는 아무 대꾸 없이 드러누우셨고, 이에 철마 비구니는 즉시 나가 버렸다.

참으로 굉장한 문답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철마 비구니는 자호 선사의 방망이를 맞은 인연으로 이렇듯 훌륭한 기틀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 불법은 눈 밝은 선지식의 방망이를 맞지 않고서는 그러한 훌륭한 안목을 갖출 수가 없는 법이다. 불법(佛法)의 진리는 허공보다도 넓고 커서 끝이 없으므로 혼자서 공부하여 정안(正眼)을 갖춘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참학인(參學人)은 항시 선지식(善知識) 회하(會下)에서 바른 지도를 받으면서 공부를 지어나가야만,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필경(畢竟)에 대도(大道)에 상응(相應)하게 되는 법이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위산 선사와 철마 비구니의 법거량처(法擧揚處)를 알겠는가?

縱奪自在用(종탈자재용)
宗師家眞寶(종사가진보)

놓고 뺏는 자재의 수완은
모든 도인 가문의 참보배로다.

임신년(1992) 팔월 지장재일 해운정사 원통보전


56. 달마(達磨) 대사 행장(行狀)


少林九年會也麽(소림구년회야마)
恒沙諸佛恁麽來(항사제불임마래)
兒孫自有兒孫福(아손자유아손복)
莫與兒孫作馬牛(막여아손작마우)

소림굴 구 년 면벽을 알겠는가
항사제불도 이렇게 오심이라.
아손은 스스로 자신의 복을 타고 나는 것이니
공연히 아손을 위한다고 말이 되고 소가 되지 말지니라.

달마 대사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왕자로 태어나 출가 수도하셔서,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로부터 법을 받아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면밀히 이으신, 28대(代) 조사(祖師)이시다.
그런데 인도 땅에는 법(法)을 전해줄 만한 인연이 없고, 멀리 중국 땅에 최상승(最上乘) 진리법의 인연이 많고 불법(佛法)의 큰 그릇이 될 인물이 많은 것을 혜안(慧眼)으로 보시고, 인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오셨다.
그리하여 제일 먼저 양(梁)나라 임금 무제(武帝)를 찾으셨다.
양무제는 신심이 아주 돈독(敦篤)하여 곳곳에 절을 짓고, 탑을 조성하고, 모든 스님네들이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게끔 갖은 공양 뒷바라지를 했다. 또, 신심이 하도 돈독하다 보니 스님네가 수(垂)하는 가사를 수하고서 법상(法床)에 올라가 경(經)을 설했는데, 이 때 방광(放光)을 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백성들이 양무제를 가리켜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하였다.
달마 대사께서 양무제를 방문하니 양무제가 여쭈었다.
“짐(朕)이 일생토록 절을 짓고, 탑을 조성(造成)하고, 온 백성이 부처님의 법을 믿어 행하게끔 하고, 수행하시는 스님들의 뒷바라지를 해왔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조그마한 공덕도 없느니라.[小無功德]”
복(福)을 짓는 것과 공덕(功德)을 쌓는 것은 다르다. 절을 짓고 탑을 조성하고 스님네 뒷바라지를 하는 것 등은, 복은 될지언정 공덕은 될 수가 없는 법이다.
양무제가 자신은 큰 공덕이 되는 줄로 생각하고 물었는데, 달마 대사께서는 소무공덕(小無功德)이라고 하시니,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여쭙기를,
“어떠한 것이 성인(聖人)의 법의 가장 제일가는 진리입니까? [聖諦第一義]”
하니, 달마 대사께서 이렇게 답하셨다.
“확연무성(廓然無聖)이니라.”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해서 거기에는 성인도 없다는 것이니, 성인도 없는데 어디 범부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말 역시 이해가 안 되니 세 번째 여쭙기를,
“짐(朕)을 대하고 말하는 자, 이 누구입니까?”
하자, 달마 대사께서는 간단히 답하셨다.
“알지 못하느니라.”
비록 지극한 신심(信心)으로 수많은 불사(佛事)를 해온 불심천자(佛心天子)이지만, 진리의 안목을 갖추지 못한 양무제이고 보니, 달마 대사와 문답이 상통(相通)되지를 않았다. 한분은 범부(凡夫)의 견지에서 물었고, 한 분은 고준한 진리의 세계에서 답했으니, 서로 통할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달마 대사께서는 여기에서 곧바로 궁궐을 나와 강을 건너 위(魏)나라로 가셨다.
한편 양무제는 지공(誌公) 선사를 청(請)하여서 달마 대사와 문답했던 것을 자세히 말씀드리니, 지공 선사께서 물으셨다.
“폐하(陛下)께서는 그 분을 아십니까?”
“알지 못합니다.”
“그 분은 관음대사(觀音大士)의 후신(後身)으로,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을 이 중국 땅에 전(傳)하기 위해 인도에서 오신 분입니다.”
위대한 성인이 친히 찾아오셨는데도 성인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양무제가 후회막급(後悔莫及)하여 사람을 시켜서 달마 대사를 모셔오려고 하자, 지공 선사께서 말리셨다.
“폐하께서는 대사를 모셔오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분은 양나라 백성이 다 모시러 간다고 해도 결코 돌아오시지 않을 것입니다.”
뜻이 서로 통하지를 않는데 돌아오실 리가 있겠는가.
강을 건너 위나라로 가신 달마 대사께서는 소림굴(少林窟)에서 9년 동안 묵언면벽(黙言面壁)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달마 대사께서 양무제에게 하신 말씀의 뜻을 알겠는가?
만약 그 뜻을 아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달마 대사께서 기뻐하시며 오늘 이 곳에 오실 것이니, 대중은 일러 보라.
확연무성(廓然無聖)을 알겠는가?

[대중이 아무 말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千聖不同途(천성부동도)

일천 성인도 길을 같이하지 못함이로다.

“짐을 대하고 말하는 자, 이 누구냐?”는 물음에, 도리어 “알지 못하느리라.”고 하신 뜻을 알겠는가?”

將錯就錯(장착취착)

그르침을 가지고 그르침에 나아감이로다.

그러면, 달마 대사께서 9년 동안 면벽(面壁)하신 뜻은 어디에 있는가?

板齒老漢鬚三尺(판치노한수삼척)

판치노한의 수염이 석 자이니라.

달마 대사께서는 9년 면벽 끝에 비로소 법을 전해줄 큰 그릇을 하나 만나셨는데, 그 분이 바로 혜가(慧可) 스님이다.
달마 대사께서 하루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르셨다.
“너희들이 이제까지 정진(精進)하여 증득(證得)한 바를 각자 말해 보아라.”
그러자 도부(道副) 스님이 일어나서 말씀드리기를,
“제가 보는 바로는, 문자에도 국집(局執)하지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아니하는 것으로 도(道)의 용(用)을 삼아야겠습니다.”
하니, 달마 대사께서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라고 점검하셨다.
다음에 총지(總持)라는 비구니가 말씀드리기를,
“제가 아는 바로는 경희(慶喜)가 아촉불국(阿閦佛國)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보려고 한 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또, 도육(道育) 스님은,
“이 몸뚱이는 본래 공(空)한 것이고 오음(五陰)이 본래 있지 아니하니, 한 법도 마음에 둘 것이 없습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혜가(慧可) 스님이 나와서 아무 말 없이 예 삼배(禮三拜)를 올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달마 대사께서
“너는 나의 골수(骨髓)를 얻었다.”
하시고,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면밀히 전해 내려오는 심인법(心印法)을 혜가 스님에게 부촉(付囑)하셨다.
달마 대사께서 제자들의 진리의 소견(所見)을 이렇게 낱낱이 점검하셨는데, 대중은 이 점검의 심심(深深)한 뜻을 알겠는가?

[주장자를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得皮得肉得骨得髓(득피득육득골득수)
不許老胡會(불허노호회)
只許老胡知(지허노호지)

가죽을 얻고 살을 얻고 뼈를 얻고 골수를 얻음이여!
남방에서 온 눈푸른 늙은이가 부처님의 진리를 앎을 허락하지 아니함이요,
남방에서 온 눈푸른 늙은이가 진리를 앎을 허락함이로다.

중국은 달마 대사께서 오시기 삼백여 년 전부터 교리(敎理) 불교가 전래되어, 달마 대사 당시에는 매우 융성해 있었다.
그런데 달마 대사께서 중국에 오셔서는,
“모든 교리(敎理)와 중생의 상(相)에 집착한 행(行)으로는 나고 죽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깨달을 수 없다. 오직 심성(心性)의 바탕을 바로 보아야만 부처를 이룰 수 있다.”
라고 가르치셨다.
달마 대사께서 이렇게 율(律)과 교리(敎理)로 공고해져 있던 당시의 불교사상을 공박(攻駁)하고 들어오니, 기존의 불교 세력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달마 대사를 해(害)하려고 공양물에 여섯 차례나 몰래 독약을 넣는 비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달마 대사께서는 무심(無心)으로 드신 고로, 그 독약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는데, 다섯 번째는 어찌나 독했던지 머금었다가 뱉어 내시니 돌이 갈라졌다는 일화(逸話)가 있다.
여섯 번째에는 독약이 들어 있는 줄을 아셨지만, 이 몸뚱이 인연이 다한 것을 아시고 그대로 받아 잡수시고 열반에 드셨다.
정말 범인(凡人)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법력이 아주 장한 과상도인(果上道人)의 경계가 되어야만 가능한 법이다.
달마 대사의 육신(肉身)은 그대로 석관(石棺)에 모셔져서 웅이산(熊耳山)에 묻혔다.
그 후 3년이 지나, 위나라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인도와 중국의 경계가 되는 총령산(葱嶺山) 고개에서, 주장자에 신발 한 짝을 꿰어메고 총령고개를 넘고 계시는 달마 대사를 만났다.
“스님,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고국 인도로 돌아가는 길이네.”
“왜 우리나라에 더 머무시면서 고준(高峻)한 법을 널리 펴시지 않고 벌써 돌아가십니까?”
“중국 땅에는 이제 인연이 다했네.”
송운이 달마 대사와 작별을 하고 위나라로 돌아와서 임금에게 이 일을 아뢰었다.
“3년 전에 열반에 드셔서 웅이산(熊耳山)에 잘 모셨는데, 그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
“아닙니다. 제가 분명히 총령고개에서 뵙고 대화를 나누고 왔습니다.”
참으로 희유(希有)한 일이라, 묘를 파서 석관을 열어보니 과연 거기에는 신발 한 짝만 남아 있었다.
도인이 되어도 과상도인(果上道人)이 될 것 같으면 이렇게 장벽(障壁)이 없는 법이다.
우리가 참선을 통해서 각자의 심인(心印)을 분명히 밝히고, 세월이 흐르면 이러한 법력이 충만해진다. 그렇게 되면 달마 대사와 같이 당당한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는 법이다.

그러면, 이렇게 멋지게 살다가신 달마 대사는 지금 어느 곳에 계시는고?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법상을 한 번 치시고,]

달마 대사께서 여기에 오셨으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보고, 보라!

임신년(1992) 구월 보름 선학원


57. 즉심즉불(卽心卽佛) 비심비불(非心非佛)


佛祖場中不展戈(불조장중부전과)
後人剛地起嚆訛(후인강지기효와)
道泰不傳天子令(도태부전천자령)
時淸休唱太平歌(시청류창태평가)

부처님과 조사가 계시는 곳에는 다툼이 없거늘
후인이 공연히 옳고 그름을 논함이로다.
진리의 도가 넓어지면 천자의 법령을 전할 것도 없음이요,
세상이 깨끗하고 깨끗한 시절에는 태평가를 부를 필요조차 없음이로다.

우리가 불법(佛法)의 진리에 눈이 열리게 되면 누구나 이러한 좋은 시절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인인개개인(人人箇箇人)이 각자 화두를 타파(打破)하여 크게 쉬는 땅에 이르면, 진대지(盡大地)가 그대로 황금땅으로 변하는데, 한 번 황금땅이 된 후로는 억만 년이 다하도록 변하지 않는 법이다. 그 때는 가는 곳마다 황금의 세계, 부처님의 열반(涅槃)의 세계를 이루는 고로, 거기에는 모든 고통과 가지가지의 번민, 갈등을 볼래야 볼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필경(畢竟)에 이 열반의 국토에 당도해야만 투쟁도 없어지고 가지가지의 고통도 다 없어지는 법이다. 이 열반의 국토에 이르지 않고서는 행복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조(馬祖) 선사께서 항시 대중에게 법문하시기를,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하셨는데, 이것은 만인이 다 갖고 있는 심성(心性)의 바탕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다.
천사람 만사람이 다 마음 없는 사람이 없건마는,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고로 중생(衆生)놀음을 한다. 성인(聖人)의 용심(用心), 성인의 행(行)을 행하지 않고 중생의 업(業)에 놀아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선수행을 잘 해서 마음의 번뇌가 다하고 참부처를 보게 되면, 그대로 도인이 되고 부처가 되어서 다시는 나고 죽는 고통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바로 이것이 부처님 진리의 근본원리이다.
마조 선사의 제자 남전(南泉) 선사께서는 출세(出世)하셔서 이렇게 법문하셨다.
“마조 대사께서는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라고 법문을 하셨지만 왕노사(王老師)는 달리 이르리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님이라[不是心不是佛不是物].’ 이렇게 말하는 것에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
이에 대중 가운데서 조주(趙州) 스님이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예배(禮拜)하고 물러갔다.
여기에 큰 진리가 숨어 있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에 허물이 있는냐, 없느냐?” 하는데, 큰 절을 한자리 하고 나간 뜻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이러한 법문을 바로 볼 줄 알아야 대자유인이 된다. 어디를 가도 부처님의 열반국토 아닌 곳이 없고, 백천 염라대왕이 와서 잡아가려 해도 붙잡히지 않는 당당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마조 선사의 ‘즉심즉불(卽心卽佛)’이 옳으냐, 남전선사의 ‘비심비불(非心非佛)’이 옳으냐?

春來草自靑(춘래초자청)

봄이 옴에 풀이 스스로 푸름이로다.

남전 선사께서 “불시심(不是心) 불시불(不是佛) 불시물(不是物)”이라고 말씀하고는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데, 조주 스님이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예배하고 물러갔으니, 대중은 두 분 도인을 알겠는가?

과연, 그 스승의 그 제자로다.

마조(馬祖)ㆍ남전(南泉)ㆍ조주(趙州) 일가(一家)의 가문을 알겠는가?

不是寃家不聚頭(불시원가불취두)

원수의 집이 아니면 머리를 모으지 아니함이로다.

임신년(1992) 시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58. 구지(俱胝) 일지두선(一指頭禪)


모든 부처님께서 이 진리의 법(法)을 설(說)함이 없이 설하셨고
이것을 바로 듣는 자는 모두 듣는 바 없이 들음이로다.

금일 산승(山僧)이 설함이 없이 이 법을 설하노니, 모든 대중도 역시 듣는 바 없이 들어야 대도(大道)의 진리에 계합되리라.

구지(俱胝) 선사는 누가 무엇을 묻든지간에 일생 손가락만 하나 세워 보이셨다.
사람이 찾아와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49년간 설법(說法)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도 손가락을 하나 세워 보이시고, “달마 대사께서 서역에서 중국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도 손가락만 하나 세워 보이시고, “불법(佛法)의 가장 높고 깊은 진리가 무엇입니까?” 해도 손가락만 하나 세워 보이셨던 것이다.
구지 선사에게는 곁에서 시봉하던 동자(童子)가 한 명 있었는데, 누가 물어오면 자기도 손가락을 세우곤 했다.
구지 선사께서 이것을 아시고 하루는, 칼을 몰래 소매 속에 숨기시고서 동자에게 물음을 던지셨다.
“어떤 것이 불법(佛法)인고?”
그러자 동자가 손가락을 세우니, 구지 선사께서 얼른 그 손가락을 붙잡아서 칼로 끊어 버리셨다. 동자가 아파서 소리를 지르면서 달아나는데 구지 선사께서 동자를 부르셨다.
“아무개야!”
동자가 고개를 돌리자 구지 선사께서는 재빨리,
“어떤 것이 불법인고?”
하고 물으셨다.
동자는 자신도 모르는 결에 손을 들어 손가락을 세우려다가 손가락이 없는 것을 보고, 거기에서 크게 깨쳤다.
이것이 세상인이 쓰지 못하는 선사의 지혜의 기틀이다.
과거생에 수승(殊勝)한 인연이 있는 이는 이렇게 진리의 인연이 도래하면 석화전광(石火電光)으로 열리는 법이다.
구지 선사께서 임종(臨終)시에 대중을 모아놓고,
“내가 천룡(天龍) 선사의 일지두선(一指頭禪)을 얻어서 일생 동안 써도 다 쓰지 못하였으니, 금일에 제자에게 이 일지선(一指禪 )을 부치고 가노라.”
하시고는 열반에 드셨다.

구지 선사께서 일생 손가락 하나만을 세워 보이셨던 뜻을 알겠는가?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의 명근(命根)이로다.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의 생명의 뿌리여!
마른 똥이로다.

어째서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의 생명의 뿌리여!” 해놓고서 “마른 똥이로다.” 하는고?
이 한 마디를 마음 가운데 잘 새겨 의심하고 의심해서 홀연히 깨칠 것 같으면, 장부(丈夫)의 할 일을 다해 마친 요사인(了事人)이 될 것이니, 대중은 잘 받아 가지소서.

계유년(1993) 정월 초사흘 해운정사 원통보전


59. 천태 삼성(天台三聖)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이 주장자의 진리를 알면 제불(諸佛)로 더불어 동참하고 또한, 이 주장자의 진리를 알면 지옥(地獄)에 들어가기를 화살과 같이 함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 두 마디 가운데 어느 한 마디를 취하여 자신의 살림살이로 삼으려는고?

한산(寒山)은 문수 보살의 화현(化現)이요, 습득(拾得)은 보현 보살의 화현이며, 풍간(豊干) 선사는 미륵 보살의 화현이라고 전(傳)해오고 있는데, 이 분들은 수억만 년 전부터 천차만별(千差萬別)의 몸을 나투어 불법을 펴고 중생을 교화해온 큰보살들이다.
이 법은 한 번 깨달으면 무수억겁(無數億劫)이 지나도 그 깨달은 경지를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고로, 형상(形相)을 바꾸어 와도 마음광명은 항시 백일(白日)과 같이 밝아 있는 법이다.
한산과 습득은 세세생생(世世生生) 도반(道伴)이 되어 중생을 교화해왔다. 그런데 어느 때 서로 만난 지가 오래되어 한산이 지혜로써 관(觀)을 해보니, 습득이 촌가(村家)에 돼지몸으로 나투어 여러 마리 새끼를 거느리고 돼지우리 속에 있었다.
그래서 한산이 편지를 적기를,
“세간의 진중(塵中)에 오래 머무를 것 같으면 본래광명(本來光明)을 잊어 버리기 쉬우니 속히 청산(靑山)으로 돌아오는 것이 어떻느냐?”
하여, 사람을 시켜서 그 돼지에게 전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편지를 가지고 한산이 일러준 대로 찾아가 보니, 과연 동구 앞에 돼지우리가 있는데 거기에 큰 암퇘지 한 마리가 새끼를 잔뜩 거느리고 누워 있었다. 그래서 편지를 그 돼지에게 던져주니, 돼지는 그것을 받아서 씹어먹고 그 자리에서 돼지몸을 벗어 버렸다.
만중생의 업(業)이 천태만상인 고로 큰보살들도 이렇게 가지각색의 몸을 나투어서 중생들을 제도하시는 것이다.

어느 때, 한산과 습득이 천태산(天台山)에 국청사(國淸寺)라는 풍간(豊干) 선사 회상에서 살았다. 한산은 한산(寒山)의 바위 틈에서 우연히 몸을 화현(化現)했고, 습득은 풍간 선사께서 출타하셨다가 길에 부모 없는 아이가 하나 있는 것을 주워오셨다고 하여 이름이 습득(拾得)이 되었다.
하루는 습득이 국청사 마당을 쓸고 있는데 주지(住持) 스님이 다가와서 묻기를,
“그대는 풍간 선사께서 주워오신 까닭에 이름을 습득이라고 하였는데, 본래 성(姓)은 무엇인가?”
하니, 습득은 청소하던 빗자루를 놓고 차수(叉手)하고 서 있었다.
주지 스님이 다시,
“그대의 본래 성(姓)은 무엇인가?”
하고 물으니, 습득은 놓았던 빗자루를 들고 돌아가 버렸다.
한산(寒山)이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는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哭)을 하니, 습득이 듣고는 물었다.
“어찌하여 곡(哭)을 하는가?”
“동쪽 집 사람이 죽으니 서쪽 집 사람이 슬퍼함이네.”
한산이 이렇게 답하고서, 두 사람이 서로 웃었다 울었다 하면서 가버렸다.

부처님의 큰 지혜를 개발하면 처처(處處)가 불국토(佛國土)라서 항시 부처님의 세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법을 쓰는 데 이렇게 걸림이 없다.
그러면 풍간 선사 회상의 주지 스님이 습득에게 “너의 본래 성(姓)이 무엇이냐?” 하니 습득은 빗자루를 놓고 차수(叉手)하고 있다가, 재차 “너의 성이 무엇이냐?” 하자 놓았던 빗자루를 들고 가버렸으니, 이것이 어찌된 연고(緣故)냐?

若人收放自在用(약인수방자재용)
歷劫不昧安穩樂(역겁불매안온락)

만약 사람이 있어서 이 진리의 법을 거두고 놓기를 자재로이 한다면
역겁에 어두워지지 않고 편안한 낙을 누리리라.

하루는 한산이 풍간 선사에게,
“옛 거울을 닦지 아니한 때, 어떻게 해야 빛을 발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풍간 선사는 이렇게 답하셨다.
“얼음 덩어리는 원래로 형상이 없거늘, 원숭이가 공연히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 함과 같도다.“
그러자 한산이,
“그것은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니 다시 이르십시오.“
라고 말하였다. 자신의 묻는 뜻에 맞지 않으니, 다시 이르라고 한 것이다.
이에 풍간 선사께서,
“만 가지 덕(德)도 가져오지 아니했거늘 나에게 무엇을 이르라고 하는고?“
라고 말씀하셨다.
이 문답이야말로 천고(千古)에 빛나는 문답이다.
금일, 산승(山僧)이 풍간 선사의 살림살이를 점검하여 시회대중(時會大衆)에게 선사할까 하노라.
풍간 선사를 알겠는가?

天然有作家(천연유작가)

천연의 작가의 안목이 있음이로다.

계유년(1993) 삼월 보름 해운정사 원통보전


60. 정법안(正法眼)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이르시기를,]

은밀히 한 걸음을 옮기니 육문(六門)이 밝아지고
한없는 풍광(風光)에 온 천지가 봄[春]이로다.

이 어떠한 시절인고?

모든 부처님의 안락처(安樂處)요, 역대 조사(歷代祖師) 스님네들의 수용처(受用處)로다.

어떤 분들이 이렇게 걸어옴인고?

밀암(密庵) 스님이 응암(應庵) 선사를 모시고 있을 때, 응암 선사께서 물으셨다.
“어떤 것이 정법안(正法眼)이냐?”
“깨진 질그릇입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밀암 스님의 답처(答處)를 알겠는가?
만약, 사람이 있어 산승(山僧)에게 정법안(正法眼)을 묻는다면, 산승은 이렇게 답하리라.

千年田八百主(천년전팔백주)

밭이 천 년이 되면, 주인은 팔백이 되느니라.

대중아, ‘깨진 질그릇’이 옳으냐, ‘천년전팔백주(千年田八百主)’가 옳으냐?

[한참 묵묵히 계시다가 이르시기를,]

無限落花隨水去(무한낙화수수거)
夕陽春色滿江湖(석양춘색만강호)

한없는 낙화는 물을 따라 흘러가고
석양의 봄빛은 강호에 가득함이로다.

계유년(1993) 오월 초하루 해운정사 원통보전

 


제3부
소참 법어(少參法語)

 


1. 대도(大道)의 길

 

대도(大道)의 진리를 구하려면, 무엇보다도 마음가짐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이 대도의 진리는 헤아릴 수 없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하고, 거기에는 온갖 시비(是非)장단과 가지가지 형형색색(形形色色)의 것이 다 끊어지고 없다. 그렇듯 다 끊어진 그 자리를 잡으려고 하고 알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허공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힘든 일이다.
그러면, 그렇게 힘든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증득(證得)할 수 있는냐. 이것은 대신심(大信心)과 하늘을 찌를 듯한 용맹심(勇猛心)을 갖춘 이에게는 세수하다가 코 만지는 것과 같이 쉽거니와, 신심(信心)이 없고 정법정안(正法正眼)의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이 어렵다.
누구라도 대신심을 갖추어서, 먼저 깨달은 이가 지도하는 것을 몰록 받아들여 옆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대로 행해 나간다면, 어려움 없이 바로 진리의 문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사견(邪見)에 빠져서 독불장군(獨不將軍)으로 공부를 지어간다면, 일생을 닦고 여러 생을 닦는다 해도 아무 진취가 없는 법이다.
이 대도의 진리는 모든 언어와 사량(思量), 분별(分別)이 다 끊어진 자리인 만큼, 그와 같은 사견(邪見)에서 진일보(進一步)해야만 대도의 무심경계(無心境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대도의 무심경계에 들어갈 수가 있느냐?

달마 대사께서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오셔서 이 선법(禪法)을 펴려고 하시는데, 상응(相應)하는 자가 없고 따르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 묵언면벽(黙言面壁)하시다가, 9년 만에야 법(法)을 전해줄 그릇을 만나셨으니, 그 분이 바로 신광(神光) 스님이다.
신광이 발심출가(發心出家)하여 대도의 진리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 넓은 중국 천지를 아무리 찾아 헤매야 도를 아는 이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한 곳을 찾아가니,
“소림굴에 9년 동안 벽만 관(觀)해온 한 바라문(婆羅門)이 계시는데 그 분이 아마 도를 아시는 것 같으니, 그리로 한번 찾아가 보시오.”
하고 달마 대사께로 인도해 주는 이가 있었다.
그래서 소림굴을 찾아갔는데, 달마 대사께서는 인기척이 있어도 돌아보시는 바도 없고 오로지 벽만 관(觀)하고 계셨다.
신광이 예배를 올리고는,
“부처님의 대도의 진리를 알고자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는데, 달마 대사께서는 그래도 돌아보지를 않으셨다.
오늘이 납월(臘月) 팔일 이니, 그 때가 바로 요즘 이 시기라, 온 산천에 눈보라가 치고 살을 에이는 듯한 한풍이 몰아쳤다. 그러한 가운데 신광이 소림굴 앞에서 합장을 하고 서있었는데, 눈이 밤새도록 와서 허리까지 쌓였다.
눈이 허리까지 쌓였을 정도면 보통 사람 같으면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혹한이다. 그러나 신광 스님은 그 모든 고(苦)를 능히 신심(信心)으로 극복하고, ‘대도의 진리를 알아야겠다’는 간절한 일념(一念)에서 그렇게 몸뚱이를 내던지고 서 있었던 것이다.
달마 대사께서는 하룻밤 하루낮이 지나고 나서야 한 번 돌아보시고, 신광이 허리까지 눈이 쌓였는데도 합장을 하고 요지부동으로 서 있는 것을 보셨다. 그제서야 정면으로 돌아 앉으셔서,
“그대가 어찌 왔는고?”
하고 물으셨다.
“부처님의 대도의 진리를 알고자 해서 왔습니다.”
“부처님의 대도의 진리? 부처님의 대도의 진리는 광대겁(廣大劫)의 한량없는 세월을 두고 부지런히 정진해서,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행하고 무한 고통을 이긴 가운데 성취하는 것인데, 너희같이 신심(信心) 없는 무리가 어찌 얻을 수 있겠느냐?”
부처님의 대도의 진리를 알려면, 설사 하룻밤 하루낮을 합장한 채로 눈이 허리까지 쌓이도록 서 있었다 해도, 그만한 신심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말이다.
그 말 끝에 신광이 옆구리에 차고 있던 단도를 빼서 한 쪽 팔을 끊어 바쳤다. ‘신명(身命)을 내던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진리의 법을 구합니다.’하는 발심(發心)을 표시한 것이다.
달마 대사께서 ‘그만하면 됐다’ 싶으신지 그 때는,
“너의 의심처가 있으면 물어라.”
하셨다. 그러자 신광이 말씀드리기를,
“제 마음이 항시 불안하오니, 이 불안한 마음을 좀 편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불안한 마음은 신광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이 다 갖고 있다.그것이 바로 중생의 업(業)이다.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달마 대사께서 대뜸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신광은 불안한 마음을 아무리 찾으려고 해야 찾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찾아도 불안한 마음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하니, 달마 대사께서 큰 소리로 이르셨다.
“마음을 이미 편안케 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신광의 마음이 활짝 열렸다.
이렇게 해서 상통(相通)이 되어 달마 대사는 신광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정안(正眼)의 지혜를 인정한다’하여 ‘혜가(慧可)’라는 법호(法號)를 내리셨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바로 이 혜가 스님이 달마 대사의 법을 이어 동토(東土)의 전등(傳燈) 제2조(祖)가 되신 분이다.

이와 같이 신명(身命)을 내던지고 간절한 일념(一念)에서 진리를 구할 것 같으면, 다 대도(大道)의 문에 들어갈 수가 있는 법이다.
우리가 일생 동안 참선을 해도 안 되는 원인은 간절한 일념(一念)에서 구하지 않는 데 허물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앉아 있으면 온갖 쓸데없는 궁상, 망상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결국, 허송세월만 하게 되는 것이다.
‘금생에 결정코 이 일을 해결해야겠다’는 각오로 간절한 일념에서 화두를 참구할 것 같으면, 시간이 흘러도 흐르는 줄을 모르고, 옆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며,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것까지 잊어 버리게 된다. 오직 화두 한생각뿐이다.
그 한생각, 화두일념(話頭一念)이 흐르는 물과 같이 지속될 것 같으면 천사람 만사람이 다 진리의 눈을 뜨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이 대도(大道)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 자세부터 확고히 정립해야 한다.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모든 반연(攀緣)을 다 끊어 버리고, 몸뚱이에 병이 있고 없고, 잘 먹고 못 먹고 하는, 그러한 소소한 관심도 다 버리고 전생애(全生涯) 전(全)생각을 오로지 화두에 쏟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다른 생각이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고 붙을래야 붙을 것이 없다. 모든 잡념은 다 끊어져 버리고, 바늘로 살을 찌르면 온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듯이 화두가 아주 강도 있게 집중되고, 다른 사람이 봐도 ‘저 사람 등신 같다’, ‘혼이 나간 사람 같다’고 할 정도로 화두에 푹 빠지게 된다.
이러한 시간이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간단(間斷)없이 흐르다가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면 화두가 타파된다. 만사를 잊은 가운데 화두일념이 흐르는 물과 같이 지속되다가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면 화두당처(話頭當處)가 드러나게 된다는 말이다.
지금은 소한(小寒) 대한(大寒)이 닥쳐와 혹한 한풍(寒風)이 불지만, 이 시기가 지나가고 훈풍(薰風)이 불어오면, 그 혹독하던 추위는 자취조차 없어지고 훈훈한 봄바람에 만물이 생장하게 된다.
화두공부도 진실하게만 지어가면 이러한 자연이치와 똑같은 것이다.
그런데 참학인(參學人)들이 그렇게 진실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구를 하지 않는 고로, 10년을 하고 30년을 해도 일념현전(一念現前)이 되지 않고 견성(見性)을 못 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두를 뼈골에 사무치도록 챙길 것 같으면, 지겨운 것도 없고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는 가운데 결제 석 달이 어느새 지나가게 된다.
그런데 내가 이 곳에서 선방 수좌(首座)들을 데리고 살다보면, 어떤 이들은 석 달이 지겨워서 발광을 한다.
그것은 공부인의 자세가 아니다. 앉아서 화두참구 한다고 해보아야 껍데기 흉내나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발심수행(發心修行)으로는 백발이 되도록 해도 아무 소득이 없다. 그래서 결국, 시은(施恩)만 잔뜩 지고는 죽음에 다다라서 한탄만 하게 된다.
그러니 여러 대중은, 진짜 발심(發心)을 해서 견성(見性)하기 위한 중노릇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고 하루하루 밥만 축내는 중노릇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마음자세를 점검해 보고 발심(發心) 또, 발심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 일을 다 저버리고 절집에 와서 중노릇을 하는 것은, 부모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요, 남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요, 오로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택한 것이다.
그러니 마음 가운데 가지가지의 반연(攀緣)과 갈등은 다 놓아 버려야 한다. 그러한 거짓된 것을 벗어 던지지 못할 것 같으면, 이 공부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법이다.
금생(今生)에는 ‘반드시 견성(見性)하리라‘는 작심(作心)을 하여, 사람노릇하는 것을 포기하고 일체처(一切處)에 바보가 되어야 한다.
일체처에 바보가 되어 버리면 걸음걸음 생각생각이 화두뿐이다. 마음 가운데 화두 한생각뿐이면 힘들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때는 결제 해제에 불상관(不相關)이고, 먹고 사는 것도 관여치 않고, 자기 몸뚱이까지도 다 잊어 버리게 된다.
이러한 시간이 흘러야 대도(大道)의 문에 가까이 갈 수 있고, 필경에 대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다.
그러니 공부인은 먼저 마음자세부터 선을 분명하게 그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0년 중노릇을 하나, 30년을 하나, 백발이 될 때까지 하나, 그 장단이 그 장단이다.
보살님네, 처사님네도 마찬가지다. 이절 저절 전국 방방곡곡을 헤맨다고 해서 복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공부가 잘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할 일은 오로지 마음광명을 찾는 이 일뿐이다.’는 절대 부동(不動)의 마음자세에서 모든 허세는 다 벗어 던지고, 모든 반연(攀緣)은 다 끊어 버리고, 화두참구하는 법을 바로 배워서 일상생활 가운데 꾸준히 익혀가야 한다.
어쨌든 가정을 가졌으니 아들 딸 뒷바라지는 해야 할 것이고 가정을 거두어야 하니, 그러한 세간살이 가운데서라도 화두를 놓치는 바 없이 간절하게 참구해야 한다. 그리하면 마음 가운데 모든 습기(習氣)와 헛점이 소멸되어 갈 것이다.
‘가고 오고 말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이 몸뚱이를 지배하는 참 주인공이 있어서, 일상의 생활 가운데 가고 오고 말하고 부르면 대답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법문(法門)을 듣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있으면서도 거두어 얻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참으로 분하고 어리석은 노릇이 아닌가.
해서 이것을 알아야겠다는 간절한 일념(一念)에서, 뼈골에 사무치고 오장육부를 찌르는, 그러한 의심을 짓고 화두를 챙길 것 같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부가 무르익어진다. 모든 잡념은 물러가고 화두 한생각만 또렷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가나 오나 밥을 지으나 청소를 하나 직장일을 하나 잠을 자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이 무엇인고?’ 하는 화두 한생각만 또렷해지게 되면, 다겁다생(多劫多生)에 지어온 모든 습기(習氣)가 다 녹아 없어져 버린다.
이러한 경계가 오면 스님네도 깨달을 수 있고, 보살님네도 깨달을 수 있고, 처사님네도 깨달을 수 있다. 깨닫지 않을래야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부처님법은 어디 달세계나 천상세계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인인개개인(人人箇箇人)의 흉금리(胸襟裏)에 본 마음자리가 다 있어서, 중생의 마음자리나 천불 만조사(千佛萬祖師)의 마음자리나 호리(毫釐)의 차(差)도 없이 똑같다. 그런데 미(迷)한 중생이 알지 못하는 고로 쓰지 못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음자리를 보게 되면, 부처님과 똑같은 경지를 수용하게 된다. 그리 되면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들께서 베풀어놓으신 중중(重重)의 공안(公案)법문에 막힘이 없다.
그래서 선지식(善知識)은, 참학인들이 ‘알았다’고 점검받으러 오면, 고인들의 공안법문을 들어서 시험해 본다. 이 때, 바로 깨친 이라야 동쪽을 물으면 동을 가리키고, 서쪽을 물으면 서를 가리키는 법이다.
법문을 물었을 때, 동문서답(東問西答)을 하는 이는 진리의 문에 들지 못한 것이다. 진리의 눈이 열리지 못한 사람은 동서남북을 가릴 수 없기 때문에, 문답이 상통(相通)되지 않고 항시 혼돈이 되어 딴 소리를 한다.
그러한 소견(所見)은 사견(邪見)일 뿐, 이 대도(大道)의 길에는 아무런 힘이 안 된다. 사견에 떨어져 버리면 금생만 낭비하는 것이 아니고 나고 날 적마다 사견의 굴택(窟宅)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법이다.
그렇게 때문에 참학인은 항시 먼저 깨달은 선지식을 의지해서 탁마(琢磨)받고 지도받아 바른 지견(知見)을 정립해야만 한다. 만약 잘못된 사견(邪見)이 있어서 선지식이 아니라고 한다면, 즉시 놓을 줄 아는 큰 그릇이어야 대도(大道)에 가까운 인연(因緣)이 되는 법이다.
그러면, 오늘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부처님 성도(成道)하신 날을 맞아, 혹여 이 대도(大道)를 향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마음자세에 헛점이 없는지 한 번 점검해 보고, 밤새 뼈골에 사무치게 화두를 참구해 보라.

무진년(1988) 성도재일 철야용맹정진 소참 해운정사 하선원

 


2. 참선법(參禪法)

 

오늘은 참선(參禪)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참선수행을 통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의 세계는 어떠하며 또, 수행의 실참(實參) 방법인 참선하는 자세와 화두참구법에 대해서 쉽게 설명을 해볼까 한다.

 

1)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마음의 고향에 이르는 수행법이다.
마음은 모든 부처님이나 모든 중생이나 조금도 차별이 없다. 다만, 부처님은 마음광명이 뚜렷이 밝아 있는 분이요, 중생은 번뇌의 구름에 가리워져 마음이 어둡고 미(迷)한 자다.
이 마음은 만 중생이 다 갖고 있어 일상생활에 쓰고 있다. 그러나 쓰고 있지만 그 광명을 밝히지 못한 고로, 각자의 업(業)을 좇아서 천갈래 만갈래의 번뇌가 휘몰아친다. 아만심, 교만심, 시기심, 질투심, 탐심, 애정, 공포, 불안……, 이러한 등등의 잡된 생각이 마음 가운데 쉴 날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참선법을 익혀서 꾸준히 정진(精進)해 나가면 중생의 온갖 악조건인 마음의 번뇌가 다하고, 마음의 번뇌가 다한 거기에서 마음광명이 뚜렷이 밝아지는 법이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항시 밝아서 즐겁고, 온갖 업(業)의 장애(障碍)가 다 소멸된 고로 세상사 모든 것이 원(願)대로 이루어진다.
이 참선법은 누구라도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서 선지식이 지도하는 대로 행(行)해 나간다면, 금생에 다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여 나고 날 적마다 멋진 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2)
우리가 참선수행을 통해서 마음의 고향에 이를 것 같으면, 그 곳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하여 가히 수로써 표현할 수 없는 무진세계(無盡世界)가 펼쳐져 있다. 마음의 고향은 ‘장안만리천만호(長安萬里千萬戶)’라, 장안이 만 리만이 아니라, 수억만 리,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이 넓다.
그러한 장안에 무진제불(無盡諸佛), 불가설(不可說) 불가설(不可說) 숫자의 불보살(佛菩薩)이 주거(住居)하는 고로, 그 수 또한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만큼 광대무변한 세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집에 가서 “계십니까?” 하고 대문을 똑똑! 두드리는데, 나오는 이가 다 석가모니 부처님이요, 미륵 보살이더라. 저 집에 가서 또 대문을 똑똑! 두드리면서 “계십니까?” 하니, 나오는 사람이 문수 보살이요, 보현 보살이더라. 또, 다른 집에 가서 “계십니까?” 하고 물으며 대문을 두드리니, 나오는 이가 아미타불이요, 지장 보살이더라. 처처(處處)가 다 그러하다.
이 선법(禪法)이라는 것은 이렇게 묘한 것이다. 이 법은 깨닫고 보면, 육도(六道)의 세계가 따로 있지 않고,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둘이 아니다. 깨닫고 나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가 그대로 부처님 국토로 화(化)해 버린다. 그러니 팔만사천 번뇌를 볼래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선수행(禪修行)을 통해서 마음의 고향에 돌아가면, 이렇게 좋은 법을 누리게 된다. 마음의 고향에 이르면, 온 우주가 황금대지(黃金大地)를 이루어서 산하대지(山河大地) 초목총림(草木叢林)이 항시 광명을 발하고 있고, 그 가운데서 온갖 새들이 항시 반야(般若)를 설한다.
이것이 깨달은 세계의 살림살이이다. 우리가 이러한 살림살이를 수용해야만 나고 죽는 데 영구히 불상관(不相關)이게 된다.
‘죽는다’는 것은 단지 그 형(形)이 낡아서 옷갈아 입듯이 몸을 바꿀 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은 이들은 죽음에 다다라서도 가니 오니 죽니 사니 하는, 그러한 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 깨달은 이의 눈으로 볼 때, 진리 자체에는 본래 생(生)도 없고 사(死)도 없기 때문이다.
맑은 가을 하늘을 보면, 거기에는 한 점 티끌이 없다. 가림도 없고, 그런데 눈을 되게 비빈다든가 한 번 쥐어박으면, 눈에 불이 번쩍 하면서 환화(幻化)가 보이고 모든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중생은 이와 같은 허공 꽃에 가리워 바로 보지 못하는 고로 생(生)이 있고 사(死)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선수행을 통해 마음의 고향에 돌아가게 되면, 이러한 환화(幻化)를 탈피하고 진리의 체성(體性)을 바로 보게 된다.
이렇게 진리의 체성을 본 이는 세상법에 물드는 법이 없다. 진리의 체성은 어디 비유할 데 없이 항시 밝고 깨끗해서 그것을 수용하는 이는, 어느 곳에 처해도 물드는 바가 없고 홀로 당당한 법이다.

중국에 나찬 화상(懶瓚和尙)이라는 도인(道人)이 계셨다.
당시에 국왕이 이 나찬 도인의 수양이 장하다는 소문을 듣고, 나찬 도인을 왕궁으로 초청하여 법문을 듣고자 사신을 보냈다.
그리하여 사신이 나찬 도인 처소를 찾아가 보니, 나찬 도인께서는 마른 소똥 말똥들을 잔뜩 주워다가 불을 피워놓고 거기에다 토란을 구워 드시고 계셨다. 사신이 그 앞에 가서 예 삼 배(禮三拜)를 올리고는,
“임금님의 명을 받들어 모시러 왔습니다.”
했는데, 나찬 도인은 들은 체도 않고 시커먼 토란만 열심히 드시고 계셨다.
사신이 별수없이 돌아와서 국왕에게 사실대로 아뢰니 왕이,
“다시 가서 모셔 오너라.“
하고 명하였다.
그래서 사신이 다시 나찬 도인을 찾아가 왕의 명을 전하니, 이번에도 들은 체도 안 했다. 옷은 남루하고 얼굴은 씻지를 않아서 코가 줄줄 흐르고 때가 꼬질꼬질한 데다, 소똥 말똥에 토란을 구워 드시고 계시니, 사신이 보고는 기가 차서 한 마디 했다.
“스님, 잡수시는 것은 좋은데 코나 좀 닦고 잡수십시오.”
그러자 나찬 도인이 그 사신을 보고,
“실없는 놈, 너를 위해서 코를 닦을까.”
하시고는 상대도 하지 않으셨다.
사신이 돌아와 왕에게 그대로 고하니, 왕은 한 번 더 가서 모시고 오라고 하였다.
세 번째 국왕의 명을 어기면 그 때는 목이 달아나는 것이 국법이다.
사신이 세 번째 가서 또,
“모시러 왔습니다.”
하니, 나찬 도인이 토란을 드시고 계시다가 목을 쑥 내미셨다. 세 번째 거역하면 목이 달아난다는 것을 아시고, ‘자, 내 목 가져 가거라.’ 하는 뜻에서 목을 내미신 것이다.

이 나찬 도인과 같이 생사(生死)에 완전히 무심할 수 있는 도인의 기틀이야말로 우리 수행인에게는 큰 귀감(龜鑑)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나고 죽는 것에 초연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
우리가 선수행(禪修行)을 잘해서 몰록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게 되면, 천사람 만사람이 다 나찬 도인과 같이 눈에 보이는 형상에 초탈하고 생사(生死)에 초연할 수 있는 법이다.
요즈음 세정(世政)에서는 ‘마음을 비운다, 비운다.’ 하는데, 그것은 빨간 거짓말이다. 마음은 절대 생각이나 말로 ‘비운다’고 해서 비워지는 것이 아니다.
중생은 다겁(多劫)의 많은 생(生)에 지어온 습기(習氣)에 중중(重重)으로 얽혀 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를 보면 아름답게 보이고, 여자들은 또 잘난 남자를 보면 좋게 느껴지고 또, 돈을 보면 욕심이 생기고, 좋은 물건 보면 가지고 싶고, 시기, 질투, 공포, 불안 등등.
이러한 것들은 무수 생(生)을 사람으로도 태어나고 축생으로도 태어나고, 육도(六道)를 돌고 돌면서 익히고 익혀온 습기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고질적인 습기(習氣)를 어찌 생각으로써 ‘안 해야지’ 한다고 없앨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한량없는 신고(辛苦)의 정진(精進)을 통해서만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참구(參究)하는 화두일념이 현전(現前)되어 모든 외경계(外境界) 내경계(內境界)를 몰록 다 잊어 버리는 사심경계(死心境界)가 된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고 흘러야 된다. 죽은 송장과도 같고 돌사람과도 같은 사심(死心)의 경계가 되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좋은 경계를 대하든 나쁜 경계를 대하든 무심(無心)하게 되는 법이다.
이것은 무한한 수행 끝에 얻어지는 결과이지, 세상 사람들이 쉽게 말하듯이 생각이나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3)
우리가 이 참선 수행법을 익히는 데 있어서는 먼저, 좌선시(坐禪時)에 참구하는 이 몸가짐 자세가 반듯해야 한다.
참선하는 바른 자세는 어깨를 활짝 펴고, 허리를 반듯이 하고, 눈은 보통으로 뜨고, 화두는 눈 앞 1미터 아래에다 두어야 한다.
만약 앉는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 허리가 구부정하게 되거나 가슴이 오므라지거나 하면, 앉아서 여러 시간 참구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화두참구는 맑은 생각에 무한한 정신 집중이 되어야 하는데, 자세가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정신집중이 될 수가 없다. 앉아서 1시간 보내는 것조차도 아주 지겹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부좌를 하고 반듯하게 앉는 자세가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
그 다음에는 화두를 눈 앞 아래에다 두고 참구해야 한다.
머리에다 두고 화두를 참구하다 보면 힘이 들어가서 상기(上氣)가 되는데, 기(氣)가 위로 올라가게 되면 머리가 무거워져서 참선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화두를 눈 앞 아래에다 두고, ‘가고 오고 말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이 화두를 챙기든가, ‘만 가지 진리의 법은 하나로 돌아간다 하니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이 화두를 든다든가, ‘달마 스님이 서역에서 오신 뜻을 묻는데 어째서 뜰 앞에 잣나무라 했는고?’ 한다든가, 각자가 선지식께 받은 화두를 간절히 챙겨야 한다.
홀연히 비명(非命)에 간 삼대독자 외아들 생각하는 부모의 심정과도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챙기면, 혼침(惛沈)도 없어지고 이생각 저생각도 나지 않게 된다.
혼침이 오고 망상(妄想)이 떠오르는 것은 화두 참구하는 한 생각이 간절하지 않고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이 고귀한 법을 만난 김에 금생에 결정코 견성(見性)을 해야 되겠다.’하는 작심(作心)을 단단히 하고 간절하게 화두를 챙길 것 같으면, 혼침과 망상과 온갖 보고 듣는 것에 끄달리지를 않는다.
가족이 함께 한방에서 밥을 먹는다든가 한화잡담(閑話雜談)을 하고 있는 중이라도,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할 때는 옆 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보다도 더 강도있게 화두를 챙기면서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챙길 것 같으면, 보고 듣는 것이 다 마비되어 버린다. 그러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아주 간절한 한생각만 흐르는 물과 같이 끊이지 않고 흐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법의 진수(眞髓)인 선(禪)을 참구하는 참선 수행법이다.
그러니 참선한다고 앉아서 아들 딸 생각하고, 살림살이 생각하고, 온갖 망상을 짓는다면, 그것은 시간만 죽이고 있는 것이지 참선하는 것이 아니다.
스님네도 마찬가지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먹는 것, 입는 것, 편한 것, 이러한 것들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두게 되면 절대 일념(一念)이 지속될 수 없다.
오직 참구(參究)하는 화두 한생각, 앉아 있으나 걸어가나 공양주를 하나 도량청소를 하나 채소를 가꾸나, 이 몸뚱이는 자기 소임을 하면서 마음은 항시 화두와 씨름해야 한다. 그렇게 노력을 하고 애를 쓰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 망상, 이생각, 저생각이 다 잠자게 된다. 간절한 한생각을 챙기는 거기에 다른 생각이 붙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간절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남이 하니까 덩달아서 ‘나도 한번 해보자.’ 하는 경우라면, 화두는 천리 만리밖에  있고, 앉아 있기가 힘들고, 그 시간이 지겨워서 도저히 안 된다.
우리가 참선수행을 하는 것은 나고 죽는 고통을 영구히 여의고자 함이 아닌가. 또, 이 수행의 비중을 따라서 내생(來生)의 인연이 이루어진다.
그러니 함부로 게으름을 부리지 말고 촌음(寸陰)을 다투어 정진해야 한다.
금생에 이 일을 결정코 해결하기 위해서는, 항시 조석(朝夕)으로 부처님전에 예불할 때 발원(發願)을 해야 한다. ‘화두일념이 현전(現前)되어 어서 견성대오(見性大悟)하게 하여지이다.’
항시 이렇게 발원을 하면 모든 습기와 헛점이 다 차단되게 된다.
예전 도인 스님들께서도 수행하실 때 항시 원(願)을 세우셨다.
“우선지식(遇善知識)하여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돈망생사(頓忘生死) 활연대오(豁然大悟)해서 속불혜명(續佛慧命) 광도중생(廣度衆生)하여지이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이러한 발원(發願)을 항상 해서 불과(佛果)를 이루셨고, 역대 조사 스님들께서도 그러하셨고, 지금 대도(大道)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젊은 납자(衲子) 스님네들도 그렇게 해야 대도를 성취할 수 있고, 처사님네, 보살님네도 역시 마찬가지다.
신심(信心)과 용맹(勇猛)과 발원(發願)이 항시 공부와 일치 되어서 모든 헛점을 다 씻어 없애 버려야 공부가 순일(純一)되어 일념(一念)이 지속되게 된다. 일념이 지속되기만 하면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다 마음광명을 볼 수 있다.
마음의 문만 열어젖히면, 그 마음 가운데에 팔만 사천 지혜가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나 다 부처가 되고 부처님과 동일한 위력을 발(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참선하는 바른 자세, 바른 화두 참구법을 익혀서 바르게 정립되면, 좌선(坐禪)에 국집(局執)하지 말고 앉으나 서나 일을 하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에 항시 화두를 참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공부는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무르익어져야지, 앉아 있을 때는 화두가 있는 듯하다가 서면 달아나고 한다면, 그러한 경우는 공부를 바르게 지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공부는 팔풍(八風)이 불어닥칠 때, 죽음에 다다라 사지(四肢)가 찢어질 때 써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안하고 고요할 때만이 아니라 지극히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순일(純一)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좌선법(坐禪法)을 익히는 것은, 앉아서 참구하는 것이 참선을 익힐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좌선(坐禪)에 익어지면 다음에는 동중(動中)에 무르익어져야 한다. 가고 오고 말하고 일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익어져서, 화두 한생각이 24시간, 365일, 흐르는 물과 같이 지속되는 여기에 실다운 정진의 힘이 있는 것이다.
인생은 잠시라, 어느새 칠팔십이 되어 병고가 닥쳐오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보통 그 때 가서야 일생사를 돌이켜 보고 ‘헛살았구나 !’하고 후회를 한다. 그러나 그 때 가서 후회해야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지금부터 한시간 한시간 화두참구에 열(熱)과 성(誠)을 다해, 정진의 신심(信心)을 쌓고 쌓아서, 의심을 짓고 지어 보라.
그리하여 일념(一念)이 현전(現前)하여 지속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고 듣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시간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일 년이고 흐르는 여기에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면 활연(豁然)히 열리게 된다.
이 선법(禪法)은 천생 만생 인신(人身)을 받더라 해도 만나기가 어렵고, 바른 지도를 받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인들께서도, “중생은 다겁생(多劫生)에 지어온 잘못된 습기에 중중(重重)으로 얽혀 있어서, 이 정법(正法)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렵다.”고 하셨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렇게 귀한 법을 만난 김에, 금생에 각고정진(刻苦精進)하여 나고 날 적마다 진리의 법 가운데서 복락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오늘은 산승(山僧)이 공부하는 법에 대해서 법문을 했으니, 대중은 모두 벽을 향해 돌아앉아 각자 앉는 자세가 바른가, 바르지 못한가 점검을 해 보라. 그러고 나서 눈은 보통으로 뜨고 눈 앞 2미터 아래에다 화두를 두어 온 정신을 화두에 쏟아 화두를 챙기면서 의심을 지어 보라.
화두를 챙길 때는 화두 전체를 분명하게 들어놓고 의심을 지어가고, 의심을 지어가다가 화두가 희미해지고 이생각 저생각이 떠오르게 되면, 다시 화두를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다 챙겨놓고 의심을 지으면 된다.
이렇게 애쓰고 애쓰다 보면 참의심이 돈발(頓發)하여 발동이 걸리는 때가 있는데, 그 때는 한생각이 성성(惺惺)하게 흐르게 된다.
한생각이 성성하게 흐르는 그 가운데 의심이 철두철미해야 되고, 의심이 철두철미한 가운데 화두 전체가 분명한 상태로 흐르는 물과 같이 흘러가야, 보고 듣는 데 끄달림이 없게 된다.
이렇게만 화두일념이 순일(純一)되면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이니, 여러분도 여기에 이르도록 정진에 정진을 더하기 바란다.

임신년(1992) 유월 직장인을 위한 참선 법회 해운정사 원통보전

 


3. 경오년(庚午年) 동안거 중 상선원 정진대중과의 문답

 

큰스님 : 공부하는 중에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이 자리를 통해 다 물어라.

수좌1 :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의 길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큰스님 : 돈오돈수니 돈오점수니 하는 것은 오조 홍인(五祖弘忍) 대사 회상(會上)에서부터 전개가 되었지.
돈오돈수 사상은 오조 대사, 육조 대사로 전개되어 육조(六祖) 문하에 오종(五宗)이 벌어졌는데, 이 오종이 모두 돈오돈수다. 돈오점수 사상은 오조 대사 밑에 교수사(敎修師)로 있던 신수(神秀), 육조 대사 밑에 하택(荷澤), 이후 규봉 밀(圭峰密) 로 전개 되었는데, 이 점수 사상은 선종(禪宗)의 정안종사(正眼宗師)의 안목이 아니다.
오조 대사는 신수를 문 밖의 사람이라 하셨고, 육조 대사는 하택을 지해인(知解人)이라 하셨거든.
이 최상승(最上乘) 선법(禪法)은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이다. 한 번 뛰어넘어 여래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궁극에 가서 구경법(究竟法)은 하나이니, 그 구경의 여래지에 이르면 다시 더 닦을 것도 깨달을 것도 없는 돈오돈수(頓悟頓修)인 것이다.
수좌1 : 스님께서 상당(上堂)법문 하실 때, ‘한 번 깨치고 또 깨쳤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로, 향곡(香谷) 큰스님께서 어린 나이에 출가하셔서 행자(行者) 시절에 한 번 깨치셨는데, 그 후 봉암사에서 정진하실 때 또 한 번 깨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 말씀만 들을 때는 혼돈이 옵니다. 한 번 깨치면 바로 여래지(如來地)인데, 다시 또 깨쳤다고 하시니까요.
저희들도 화두를 참구하고 있는데, 만약 화두를 한 번 타파(打破)한 뒤에 다시 또 참구해서 깨쳐야 할 분(分)이 남아 있다면,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이 성립될 수 없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큰스님 : 그래, 그것도 의심이 날 수가 있는 것이지.

육조 대사도 두 번 깨치셨는데, 처음 한 번은 시장에서 탁발승이 금강경(金剛經) 독송하는 것을 듣고 홀연히 깨달으셨다.
그러고 나서 오조(五祖) 대사 회상을 찾아가서 행자(行者)로 있었는데, 하루는 오조 대사께서 대중에게 이렇게 공포하셨다.
“모두 공부한 바 소견(所見)을 글로 지어 바쳐라. 만약 진리에 계합(契合)하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법(法)을 전해서 육대조(六代祖)로 봉(封)하리라.
그러니 신수(神秀) 상좌가 되지도 않는 소리를 적어서 벽에 붙여놓았다. 오조께서 그것을 보시고,
“이 게송대로 닦으면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큰 이익이 있으리라.”
하시며 향 피워 예배하게 하고 모두 외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온 대중이 신수 상좌를 칭찬하며 그 게송을 외웠는데, 마침 한 사미승이 그 게송을 외우면서 노 행자(盧行者)가 방아를 찧고 있던 방앗간 앞을 지나갔다.
노 행자가 그 게송을 들어보고, 그것은 견성(見性)한 사람의 글이 아니니,
“나에게도 한 게송이 있는데, 나는 글자를 모르니 나를 위해서 대신 좀 적어다오.”
하고 게송을 읊었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밝은 거울 또한 대가 아닐세.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리오.

이 게송(偈頌)이 신수 상좌 글 옆에 붙으니 대중이 모두 놀라 서로들 웅성거렸다.
오조 대사께서 그 소란스러움 때문에 나오셔서는 그 게송을 보시게 되었다. 보시니 그것은 진리의 눈이 열린 이의 글귀라, 대중이 시기하여 해칠 것을 염려하셔서 손수 신짝으로 문질러 버리면서 말씀하셨다.
“이것도 견성한 이의 글이 아니다.”
다음날, 오조 대사께서 가만히 방앗간에 오셔서 방앗대를 세 번 치고 돌아가셨는데, 노 행자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대중이 다 잠든 삼경(三更)에 조실방으로 갔다.
오조 대사께서는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가사(袈娑)로 방문을 두르시고는 금강경(金剛經)을 쭉 설해 내려가시는데,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어다[應無所住而生其心].’하는 구절에 이르러서, 노 행자가 다시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오조 대사께 말씀드리기를,

何期自性本自淸淨(하기자성본자청정)
何期自性本不生滅(하기자성본불생멸)
何期自性本自具足(하기자성본자구족)
何期自性本無動搖(하기자성본무동요)
何期自性能生萬法(하기자성능생만법)

어찌 제 성품이 본래 청정함을 알았으리까
어찌 제 성품이 본래 나고 죽지 않음을 알았으리까
어찌 제 성품이 본래 구족함을 알았으리까
어찌 제 성품이 본래 흔들림 없음을 알았으리까
어찌 제 성품이 능히 만법을 냄을 알았으리까

하니, 오조께서 노 행자가 크게 깨달았음을 아시고 법(法)을 전하셨다.

이렇듯 육조 대사는 행자 시절에 두 번 열리셨던 것이다.
그 분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를 보면 두 번 세 번 깨달으신 분이 부지기수다. 설봉(雪峰) 선사도 암두(岩頭) 선사께 혼이나 다시 깨치셨고, 임제(臨濟) 선사도 두 번 그런 적이 있었고…….
물론 구경법(究竟法)은 하나이니, 최상승(最上乘)의 향상구(向上句)가 열리면 다시 더 깨달을 것이 없는 돈오돈수(頓悟頓修)이지. 향상구를 알면 그것이 바로 구경법이기 때문에, 모든 법이 그 가운데 전개되어 있으므로 자연히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어 있다.
그런데 향상구 밑에 여래선(如來禪)이 있고 법신변사(法身邊事)가 있어서, 우리가 공부를 하여 그러한 경계에 소견(所見)이 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스승 없이 공부하는 이 중에는 법신변사를 알아 가지고 그것을 견성(見性)이라고 착각하여 구경법(究竟法)으로 삼는 이가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향상(向上)의 진리의 법을 설해놓은 것에는 도저히 앙망불급(仰望不及)이다.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또 향상의 진리를 깨쳐야만 구경법에 이른다.
자고로 고인네들이 두 번 세 번 깨달았던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향상구만 해결이 되면 모든 공안(公案)을 다 알게 되어 있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산 상봉에 올라서면 동서남북 상하가 다 내려다 보이는 것과 같이, 향상구를 투과(透過)하면 모든 공안이 다 그 아래에 있다.
그러니 향상구를 모르면 견성이 아니고, 부처님과 조사의 전지(田地)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향상구를 알아야만 비로소 부처님과 조사의 전지에 이르러 대자재인(大自在人)이 된다. 수방자재(收放自在)․여탈자재(與奪自在)․살활자재(殺活自在), 거두고 놓고 주고 빼앗고 죽이고 살리는, 이러한 자재의 수완을 갖춘다는 말이다. 이러한 향상의 안목을 갖춘 연후에야 제불제조(諸佛諸祖)께서 안주(安住)하는 무념무심(無念無心)의 경지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수좌1 :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그렇다면 조실 스님께서는 향곡 큰스님께 전법게(傳法偈)를 받으실 때, 향상구를 아시고 받으셨습니까?
큰스님 : 허허. 몰랐다면 어찌 법을 전하셨겠느냐.
내가 스물네 살 때 선산 도리사에서 첫철을 났다. 그 때 일곱 분이 함께 지냈는데, 그 분들 중에서 지금 학산 스님이라는 노장님이 전라도 어느 토굴에 계시고, 나머지 분들은 타계(他界)하시거나 속가(俗家)에 가고 안 계시지.
공부인은 본시 모든 반연(攀緣)이 다 끊어져야 하고, 방선(放禪)을 했다고 해서 한화잡담(閑話雜談)을 해서도 안 되고, 항시 화두와 씨름하여 자나 깨나 그 일념(一念)에 잠겨야 된다. 그래야만 화두가 무르익어져서 흐르는 물과 같이 끊이지 않고 지속이 된다. 일념삼매(一念三昧)에 푹 빠져서 모든 분별(分別)을 다 잊어버린 가운데, 흡사 돌사람[石人]과도 같고 나무사람[木人]과도 같이 되었다가, 거기에서 문득 살아나야 대용전창(大用全彰)이 된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 곳에서 공부를 애쓰다가 사견(邪見)으로 ‘알았다’는 한 생각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것을 점검받겠다고 제방(諸方) 선지식들을 두루 참방(參訪)해 보았는데, 그 분들 대부분이 문답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옳다’, ‘그르다’ 하는 점검을 바로 해주시지를 못하더라. 그런데 월내(月內) 향곡(香谷) 선사께서는, 물음에 답을 하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것이 옳은 답인가, 그른 답인가 척척 칼질을 하셨다. 그래서 ‘제방 선지식들이 쓰지 못하는 칼을 쓰시는구나.’ 싶어 어느 선지식보다도 신망(信望)이 많이 갔지.
그러나 ‘알았다’는 이 고집덩어리 하나 들게 되면, 그것을 놓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엊그제도 몇 년 전에 여기서 살았던 수좌 한 명이 자기 딴에는 ‘알았다’고 점검받겠다고 왔더라. 그래서 쉬운 공안(公案)을 하나 던져보았는데, 엉뚱한 소리만 하길래, “그것은 잘 못 안 것이니 다시 공부해라.” 하고 바로 일러 주었거든. 그런데도 자기 고집만 세우고 가던데, 그 병이 아주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 3년 허송세월을 했었지. 만약 그 때 가는 곳마다 ‘아니다’라고 방망이를 내렸었더라면, 아닌 줄을 알고 즉시 놓아버렸을 것인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안하무인이 되어 세월을 헛보냈던 게지.
그러다가 스물여섯 살 때,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안거 정진을 하게 되었다.
그 때는 마을이건 절집이건 생활이 몹시 어려웠던 때라 모든 것이 귀했다. 그 추운 곳에 이불도 없고 좌복도 근근히 하나였는데, 잘 때는 그 좌복때기를 배에다 얹고 잤었다. 그런데 그 곳이 얼마나 추웠느냐면, 방에 숭늉을 놔두면 그 숭늉이 꽁꽁 얼더라. 문단속도 허술하고 나무도 풍족하질 않고 하니.
그 당시에 그 곳에서 한 열 명 남짓 지냈는데, 지금 해인사 부방장이신 혜암 스님, 활안 스님, 월현 스님이 지내셨고 그리고, 젊은 우리 또래들이 살았다. 한 번은 일주일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는데, 그 때는 다들 40대 전이라서 장군죽비를 때리면 한쪽 어깨가 기울어지는 판이라. 어떻게나 때리던지. 모두 그렇게 애를 쓰면서 살았다.
하루는 유달리 겨울날씨가 푸근해서 선방 옆마루에 혼자 앉아 햇볕을 벗하고 있다가 문득 자기사(自己事)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내가 참으로 견성을 해서 고인네와 같이 낱낱 법문에 당당한가?’ 하고 내가 나 자신에게 묻는데, 거기는 조작과 거짓이 통할 리가 없지. 그래서 ‘내가 이것을 가지고 견성했다고 한다면, 나를 속이고 모든 사람을 속이는 것이요, 세월 낭비요, 말이 아니니, 백지로 돌아가서 다시 출발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 어느 선지식을 찾아가서 지도받아야 되겠는가?
언하(言下)에 흑백을 칼질해 주는 선지식을 찾아가서, 나의 전생애를 걸고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해제하자마자 바랑을 짊어지고 도반 스님 몇몇과 함께 월내 향곡 선사 회상을 다시 찾아갔다.
그 곳에서 향곡 선사로부터 새로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화두를 받았다. 그 화두를 한 2년 들었을 게야. 그 2년 동안은 모든 반연과 가고 오는 것을 다 잊어 버리고 해제도 상관하지 않고 화두와 씨름했지. 그러다가 그 화두가 해결되니, 종전에는 문답하면 허튼 소리만 나오던 것이 그 때야 비로소 바른 소리가 나오더라.
그러나 비로소 바른 답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마조(馬祖) 선사의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 공안에는 막혔다.
그래서 그 화두를 들고 다시 5년 동안 신고(辛苦)하다 해결해냈지. 그리하여 마침내, 고인들께서 베풀어놓으신 중중(重重)의 차별법문(差別法門)에 걸리는 바 없이 상통(相通)되게 되었다.

수좌2 : 제 경우는 ‘삼서근[麻三斤]’ 화두를 참구하고 있는데 만일, ‘삼서근’ 화두가 타파되지는 않았으니까 만약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입니다만, 타파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면불 월면불’ 화두에 걸릴 수 있다는 것입니까?
큰스님 : 그것은 화두 참구하는 심천(深淺)에 달렸다.
화두일념이 지속되고 의심이 아주 철두철미해서 온 대지가 의심덩어리가 되는 일념무심삼매(一念無心三昧)에 깊이 들어가서 깨닫게 되면, 그 때는 향상구(向上句)가 열린다. 그렇지 않고 홀연히 아는 수가 있다. 홀연히. 그것은 힘이 미약해서 모든 공안을 바로 보기가 어렵다.
그러니 무심삼매에 며칠이고 몇 달이고 푹 빠진 그 가운데서 해결이 되어야 진리의 최고봉(最高峰)에 올라서게 되는 법이지.
수좌2 : 무심삼매(無心三昧)라는 말씀하고 오매일여(寤寐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라는 말씀하고는…….
큰스님 : 다 자나 깨나 일념(一念)이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도 내가 말했던 것처럼, 흡사 석인(石人), 목인(木人)과 같이 모든 분별이 다 마비된 상태다. 전후지분별(前後之分別)이 다 끊어져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자신이 어디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 몸뚱이까지도 다 잊어 버리는 상태라는 거지. 그 상태에서는 온 천지가 화두가 되어 오로지 화두 한생각, 의심뿐이다.
수좌2 : 스님의 첫 오도송(悟道頌)인 ‘자개주장기인회(這箇拄杖幾人會) 삼세제불총불식(三世諸佛總不識)……’ 하는 그 오도송은 확철대오(廓撤大悟)한 오도송입니까?
큰스님 : 허허허허. 그것은 내가 ‘확철대오한 오도송이다.’, ‘아니다.’ 하는 것보다 안목이 열린 이는 보면 다 안다. 그것은 ‘향엄상수화’ 화두가 열려 견처(見處)가 나서 지은 것이고, ‘일면불 월면불’을 깨닫고는 ‘일봉타도비로정(一棒打倒毘盧頂)’으로 시작되는 오도송을 지은 것이다. 두 오도송이 그러한 기연(機緣)이 있지.

수좌3 : 스님께서는 ‘일면불 월면불’ 화두를 참구하실 때 오매일여(寤寐一如)가 5년 동안 지속되셨습니까?
큰스님 : 아니, 그리 지속된 것은 아니다.
수좌3 : 화두일념에 간단(間斷)이 있게 되면 화두가 해결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큰스님 : 그렇지, 그렇지. 일념(一念)이 간단없이 지속되어야만 깨달음이 온다는 것은 철칙이다. 그런데 지속되는 그 기간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거든. 며칠이거나 몇 달이거나 몇 년이거나,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른데, 내 경우는 그렇게 장기적으로 지속되지는 않았다.

수좌4 : 예전 선지식들께서는 화두를 주실 때, 상대방의 근기(根機)에 맞게끔 고려를 해서 주셨던 것 같은데, 요즈음 스님들께서는 상대방에 대한 고려 없이 그냥 천편일률적으로 주시는 것 같습니다. 마치 기계화되어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의심도 크게 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자에게 맞지 않는 화두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스님, 옛날 그 천칠백 공안 외에 의심이 굉장히 많이 갈 수 있는 것으로 상대방의 근기에 맞게끔 다른 것을 창조해 주시면 안 되는지, 그것 좀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 의심이 일고 일지 않고, 의심의 강도가 강하고 약하고 하는 것의 원인을 화두상에서 찾는 것은 분별이다.
선지식이 참학자(參學者)에게 천칠백 공안 중의 한 화두를 주나, 의심을 물어서 한 마디 던져주나, 상대방이 얼마만큼 온전히 받아들이고 십분 신(信)을 갖고 참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공부가 화두나 선지식이 이것 저것 일러주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고인들께서 납자(衲子)를 제접(提接)하셨던 것과 같이, 참학인이 와서 ‘부처님의 근본대의(根本大意)’를 묻는다든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묻는다든가 하면, 응당 한 마디 일러주지. 그러면 그것을 참구의 분(分)으로 삼으면 되는데, 그러한 자세로 공부하려는 이가 없거든. 없고 다들 “화두 타러 왔습니다.” 하니, 계제따라 화두를 일러주는 것이지.
그러나 참구하는 데 있어서 의심이 일고 일지 않고의 문제는, 일러주는 화두가 어떤 화두인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만큼 신심(信心)있게 받아들이고 실답게 참구하느냐, 여기에 있는 것이지 절대 화두에 비중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수좌4 : 그래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의심이 돈발(頓發)하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기연(機緣)이 없겠습니까?
큰스님 : 그것은 정말 의심이 나서 찾아와 물으면 그렇게 한마디 던질 거 아니냐. 그러면 받아 가지면 되지.
이 공부는 무슨 요행을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대도(大道)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선지식이 던지는 법문 한 마디가 금쪽 같은 법이야. 그러한 신심(信心)에서 묻는다면, 한 마디 던졌을 때 몰록 의심삼매(疑心三昧)에 들 수 가 있다.
수좌4 : 잘 알겠습니다.

수좌5 : 조실 스님께서는 ‘향엄상수화’ 화두를 타파하시고 다른 공안에는 다 막힘이 없으셨는데, ‘일면불 월면불’ 공안에 막혀 다시 5년 동안을 참구하셔서, 그 화두를 해결해 내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일면불 월면불’ 화두를 해결하시기 전에 다른 공안(公案)들에 대해서 아셨다는 공부 분상이, 혹시 ‘일면불 월면불’을 해결하시고 난 후에 달라지지는 않으셨습니까?
큰스님 : 달라진 것은 없지.
백천공안(百千公案)에는 고인네들이 여래선(如來禪)을 알아서 여래선 도리를 베풀어놓은 것이 있고, 법신변사(法身邊事)를 알아서 법신의 변사를 베풀어놓은 대문도 있고, 최초구(最初句)․말후구(末後句)를 알아서 그것을 베풀어놓은 것이 있고, 향상구(向上句)ㆍ향하구(向下句)를 베풀어놓은 것이 있고, 일구(一句)ㆍ이구(二句)ㆍ삼구(三句)를 베풀어놓은 것이 있다.
진리의 최고봉(最高峰)인 향상구가 해결되면 다른 것은 다 자연히 알게 되어 있지만, 최고봉에 올라서기 전이라도 앞에서 열거한 작은 봉우리들에 올라서서 진리의 부분 부분들을 볼 수가 있다.
수좌5 : 향상구라는 것이 천칠백 공안 중에 어떤 공안이 아니고…….
큰스님 : 그렇지. 진리의 최고봉(最高峰)이다.
수좌5 : 공안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시지요?
큰스님 : 그렇지, 아니지. 진리의 최고 봉우리라는 말이다.
수좌5 : 잘 알겠습니다.

 수좌6 :교리(敎理)에서 말하는 십지보살지위(十地菩薩地位), 등각(等覺), 묘각(妙覺)과 관련지어 볼 때, 향상구는 어떤 것을 제창한 것입니까?
큰스님 : 향상구는 부처님의 구경열반법(究竟涅槃法)이니 묘각의 경계로 보면 정확하다.

수좌7 : 과거 육조 혜능(六祖慧能) 대사까지의 삽삼조사(卅三祖師)들께서는 여래선 도리로 인가(印可)를 하시고 전법(傳法)을 해오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조사선(祖師禪)을 제창하시고 향상구를 타파해야만 진리의 최고봉에 이를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과거 삽삼조사들께서 깨치신 살림살이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큰스님 : 그것은 그렇지도 않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세 번 특별한 법문을 하셨다.

한 번은 인천(人天) 백만 대중이 법문을 듣기 위해 좌정(坐定)하고 있을 때,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부처님께 우담바라꽃을 올리니 부처님께서 그 꽃을 받아서 아무 말 없이 대중에게 보이셨고.
한 번은 또, 법회일에 모든 대중이 법문을 듣기 위해서 다 운집(雲集)해 있었는데 맨 마지막으로 가섭 존자(迦葉尊者)가 들어오니,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시기 위해서 법상에 좌정해 계시다가 자리의 반을 비켜 앉으셨다.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그 뜻을 알고는 선뜻 그 자리에 가서 앉으니, 부처님께서 가사를 같이 두르시고 대중에게 말없이 보이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일주일 후에, 교화(敎化)를 위해 타방(他方)에 가 있던 가섭 존자가 돌아와, 부처님의 시신을 향하여 위요삼잡(圍繞三匝) 하고 합장 예배를 올리며,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 사생(四生)의 자비스런 아버지시여! 우리에게 항상 법문하시기를,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원래 없다.’ 하시더니, 이렇게 가신 것은 모든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니, 칠 푼 두께의 금관 속에서 두 발이 쑥 나왔다. 그래서 가섭 존자가 다시 합장 예배를 올리니, 두 발은 관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관이 그대로 중천(中天)에 떠올랐는데 이 때, 지혜삼매(智慧三昧)의 불이 일어 허공 중에서 화장(火葬)되었다.
이것이 삼처전심(三處傳心)이다.
꽃을 들어보인 뜻은 무엇이며, 자리를 나누어 가사를 같이 두르고 앉으신 뜻은 무엇이며 또, 두 발을 내미신 뜻은 무엇이냐?
모든 후손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 살림살이를 깨달아, 거기에서 백천공안(百千公案)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 삼처전심 외에 또 특이한 것을 보이셨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설법을 마치시자 청법(聽法)대중이 모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는데, 한 여인이 부처님 근좌(近座)에 좌정한 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문수 보살이 그 광경을 보고 부처님께 여쭙기를,
“대중들이 모두 돌아갔는데, 어찌하여 저 여인은 자리를 뜨지 않고 저렇게 앉아 있습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이르셨다.
“저 여인이 정(定)에 들어 있으니, 문수 너의 신력(神力)으로 저 여인이 정에서 나오도록 한번 해 보아라.”
말씀이 떨어지자 문수 보살이 신통으로 백천 문수를 허공중에 나투고, 위요삼잡(圍繞三匝)을 하고, 탄지(彈指)를 해보았는데, 여인은 정에서 나오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그 광경을 지켜보시고는,
“문수야, 네가 비록 백천 신통묘용(百千神通妙用)을 나투어도 너의 신력(神力)으로는 저 여인을 정(定)에서 나오게 할 수 없다. 하방(下方) 42국토를 지나가면 망명 초지보살(罔明初地菩薩) 이 있는데, 그이라야 저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할 수 있다.”
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망명 보살이 땅에서 솟아나와 부처님께 예배를 올렸다. 부처님께서 입정(入定)한 여인을 가리키시며,
“저 여인이 정에 들어 있으니, 망명 네가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해 보아라.”
하시니, 망명 보살이 여인을 향하여 손가락을 세 번 튕기자, 여인이 바로 정에서 나왔다.

또 하루는, 부처님께서 상당(上堂)하시어 말 없이 앉아 계시니, 문수 보살이 나와서 예(禮) 삼배(三拜)를 올리고는
“자세히 법왕법(法王法)을 보니 법왕의 법이 이와 같습니다.”
하니, 부처님께서 즉시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그러면, 문수 보살은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스승이며 백천신통을 나투었는데도 무엇이 부족하여 그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끔 하지 못했으며, 어찌하여 망명은 초지 보살인데도 탄지(彈指) 세 번에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할 수 있었느냐?
그리고 문수 보살은 무엇을 보았기에 부처님께서 가만히 앉아 계시는데 “법왕법(法王法)을 보니 법왕의 법이 이와 같다.”고 하였느냐?
부처님 당시에도 이러한 공안(公案)이 벌어졌는데, 삼처전심(三處傳心)은 알기 쉬워도 이 ‘여인출정화(女人出定話)’나 ‘관법왕법여시(觀法王法如是)’는 알기 어려운 공안이다.
이것을 알면 향상구(向上句)를 알게 된다. 중국의 위대한 도인들도 이러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바로 알았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법을 써서 백천 공안(百千公案)을 베풀어놓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 향상구가 제창되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 견성법(見性法)이라 하는 것은, 내 살림이 따로 있고 고인네 살림살이가 따로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불 만조사(千佛萬祖師)의 견성이나 모든 후래인(後來人)의 견성이나 모두다 성품, 즉 마음땅을 본 것을 말한다. 백천 공안은 모두 이 가운데서 베풀어진 것이므로, 우리가 성품을 바로 보게 되면, 한 번 봄으로 인해서 모든 공안을 다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백천 공안의 낙처(落處)를 척척 꼬집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방중(房中)에 봐라. 다 같은 출가승(出家僧)인 비구, 사미로 이렇게 한방에서 참선수행을 하고 있지만 한사람 한사람이 다 모습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다. 백천 공안도 그와 같이 모양이 다 다르고 이름도 다 다르다. 우리가 어떤 사람 이름을 “아무개야 !” 하고 부르는데 다른 사람이 “제가 아무개입니다.” 한다면 통하지 않는다. 백천 공안도 이치가 그와 똑같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일념삼매(一念三昧)에 푹 빠졌다가 일기일경상(一機一境上)에 홀연히 개오(開悟)하면 고인과 더불어 동일한 안목(眼目)을 갖추게 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해서 고인네 살림살이를 내 살림으로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수좌7 : 그런데 제가 어리석어서 가닥을 제대로 못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조사선(祖師禪)과 여래선(如來禪)은 어떻게 다릅니까?
큰스님 : 조사선(祖師禪)이 곧 여래선(如來禪)이고 여래선이 곧 조사선인 것이니, 그것은 고인들의 자재처(自在處)를 식파(識破)하면 된다.

수좌8 : 건강문제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깨닫기 전에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셨으며 깨달은 후에는 어떻게 하시고 계시는가, 지금도 화두를 들고 계시는가 궁금합니다.
큰스님 : 이 몸뚱이라는 것은 제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병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다 소소한 병은 있기 마련이니, 그렇게 알고 이 몸뚱이에 착(着)을 두지 말아야 한다.
몸은 배탈이 날 수도 있고 신경통도 생길 수가 있고 감기도 앓을 수 있는 것인데, 그 가운데서 우리가 착실히 화두를 챙기면서 소일을 하면, 위장병도 나을 수 있고 신경통도 나을 수 있고 또, 감기도 나을 수 있는 법이다.
수좌들에게 생기는 위장병은 대체로 잔뜩 먹고 조는 데서 온다. 적당히 한 칠부 팔부 먹고 어깨와 허리를 쭉 펴고 반듯하게 앉으면, 설사 졸음이 오더라도 고개만 끄떡하다 말지 허리가 구부정한 자세는 되지 않는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고개가 앞으로 많이 수그러지게 되면 오장육부에 부담을 줘서 병을 만들게 된다. 그러니 항상 바른 자세를 취하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 몸뚱이라는 것은 ‘내가 약하다’, ‘무슨 병이 있다’고 하여 거기에 집착하면 더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몸이 약하다거나 조그마한 병이 있는 것은 아예 마음에 두지 말고 무심(無心)으로 돌려 버리고 화두에 안주(安住)할 것 같으면, 고요한 일념이 지속되는 데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소소한 병은 자연히 잊어 버리게 된다. 병에 대한 집착에서 생각이 떠나 버리기 때문에 자연히 좋아지게 되는 것이지.
그리고 좌선하는 자세가 바르면 건강상의 장애뿐만 아니라, 화두 참구할 때 오는 장애들도 다 사라져 버리게 된다. 망상도 사라져 버리고, 혼침도 달아나 버리고 그렇다.
그래서 이 공부하는 이는 자세가 아주 중요하다. 처음 한 철만 잘 길들여서 바른 자세를 갖추어놓으면 일생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다. 오래 앉아 있어도 끄떡 없고, 앉아 있을 때 다리 아프면, 아래 위 다리 바꾸는 것은 아무 상관 없다.
식생활에 있어서는 좋은 것만 취하지 말고 고루고루 먹고 과식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견성지인(見性之人)은 공부를 마쳤다고 하여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경계를 일상생활에 항시 수용하는 것이다. 깨달은 살림이 그대로 생활화된다는 말이지.
수좌8 : 특별히 화두를 드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
큰스님 : 그렇지. 화두를 드는 것이 아니고 깨달은 경계가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살림살이가 되어 버리지.

수좌9 : 스님께서는 화두를 목전(目前)에 두라고 하셨는데, 목전에 둔 화두 있고 화두 드는 사람 따로 있고 하면 둘로 쪼개지는 것 아닙니까?
큰스님 : 둘로 어떻게 쪼개져?
수좌9 : 화두를 목전에 두라고 하셨으니까, 목전에 둔 화두 따로 있고 또, 참구하는 나 자신이 따로 있게 되니, 둘로 쪼개지는 것 아닙니까?
큰스님 : 아니, 온 정신을 목전에다 두라는 말이지. 목전에 두는 것이 숙달되면 앉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걸어갈 때도 그렇고, 누울 때도 그렇고, 일할 때도 그렇고, 어느 때건 화두 한생각 모으기가 쉽다.
그렇지 않고 생각을 머리에 두면 상기(上氣)되어 참선을 할 수가 없고 또, 시야를 다른 데 두면 견문(見聞)에 끄달려 화두 한생각 모으기가 어렵다.
수좌9 : 제 소견으로는 화두가 어디 머무는 바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큰스님 : 응?
수좌9 : 어디 한 군데 주(住)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큰스님 : 아니, 그렇지 않아. 항시 화두를 목전에 두어 생각을 모아야 된다.
수좌9 : 그리고 또, ‘생각하면서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생각하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의리선(意理禪)이 되는 것 아닙니까?
큰스님 : 아니지. 내가 ‘생각하면서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생각하라’고 할 때의 ‘생각하라’는 말의 의미는, 사량(思量)으로 화두를 헤아리거나 이치로 따지라는 것이 아니라, 화두 전체를 분명하게 챙기라는 말이다.
“조사(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뜰 앞에 잣나무니라.”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느니라.”
이러한 화두 제목이 분명하면서 의심이 쭉 지속되면 다시 화두를 챙길 필요가 없다. 그러나 화두가 희미해지고 혼침(惛沈)이 오고 이생각 저생각이 떠오르면 화두를 다시 챙겨야 한다. 분명하게 챙겨야 다른 번뇌, 망상, 혼침이 달라들지 않는다.
그렇게 화두를 챙기고 의심을 짓고, 챙기고 의심을 짓고, 그렇게 계속 애쓰다 보면 진의심(眞疑心)이 발동걸릴 때가 있다. 그 때는 한 번 화두를 챙겨들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흐르게 되므로 굳이 다시 챙길 필요가 없다. 이렇게만 화두를 든다면 공부를 바로 지어가는 것이다.
수좌9 : 한생각이 지속되면 화두를 다시 챙길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시지요 ?
큰스님 : 그렇지. 다시 챙길 필요가 없지. 그대로 지속이 되니.

수좌10 : 그것이 ‘화두를 관(觀)하라’ 하는 것과 같은 말씀이신가요 ?
큰스님 : 아니지. ‘관하라’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화두는 고요히 관(觀)하는 대상이 아니라 의심이 생명이다. 몰록 진의심이 돈발(頓發)하여 일념무심삼매(一念無心三昧)에 들게 되면 모든 바깥 경계뿐만 아니라 참구하는 나 자신까지도 없어지고, 온통 의심덩어리뿐이게 되는 것이다. 대상도 주체도 없는 의심덩어리 그 자체다.
수좌10 : 그런데 이것이 분별심(分別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화두일념이 지속되는데도 자꾸 ‘이것이 진짜 의정(疑情)이 아니지 않나?’ 하는 의심이 일어 다시 반성하곤 하는데,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면 되는 것입니까 ?
큰스님 : 혼침, 망상 없이 화두가 분명하면서 의심이 지속될 것 같으면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다.

수좌11 : ‘의심하고 생각하라’고 하시는데, 그러면 의심과 생각은 어떻게 다릅니까 ?
큰스님 : 생각은 화두 전체를 떠올리는 것을 말하고, 의심은 그 내막의 뜻을 몰라서 그것을 알고자 간절히 의심하는 것이다.
“달마 대사께서 서역에서 동토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 하고 묻는데, 조주 선사께서 “뜰 앞에 잣나무니라.” 하셨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묻는데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한 화두 전체가 분명해야 하고, 분명한 그 가운데 ‘어째서 뜰 앞에 잣나무라 했는고 ?’ 하는 의심이 뒷받침 되어야 하지.
그 두 가지가 상반(相伴)되지 않으면 수레의 외바퀴와 같이 아무 활로가 없다. 제목이 분명하지 않고 의심만 지으면 나중에는 멍하게 되어 아무 것도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생기가 없지. 마찬가지로 화두 제목만 있고 의심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부에 힘이 없고 아무 진척이 없게 된다. 그래서 고인들께서도 의심이 크면 클수록 깨달음도 크다고 하셨다.
그러니, 모두 해운정사 금모선원(金毛禪院)에서 실답게 정진하여, 몰록 활연대오(豁然大悟)해서 한국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키게끔 한 번 열심히 해보자.

 

4. 신미년(辛未年) 동안거 중 선방 소참

 

대장부 의지(意旨)를 발(發)해서 대도(大道)를 깨치고자 하는 이는,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들께서 베풀어 놓으신 심심삼매(深深三昧)의 가시덤불 숲을 투과(透過)하고, 불조(佛祖)께서 얽어놓으신 굴레를 풀어서 안온(安穩)한 진리의 세계를 얻어야 한다.
그러한 온밀전지(穩密田地) 를 얻은 분은 모든 천상인(天上人)이 꽃을 바치려 해도 바칠 길이 없고, 외도(外道)가 엿보려고 해도 볼 문이 없다.
종일토록 말을 해도 말한 바가 없고 종일 걸어도 걷는 바가 없음이니, 이렇게 자유자재의 수완을 갖출 것 같으면 줄탁지기(啐啄之機) 를 펴며 살활검(殺活劍)을 쓸 줄 알리라.

모름지기 학인(學人)을 지도함에 있어서, 석화전광(石火電光)과 같은 줄탁기(啐啄機)를 갖추어야 하고, 때로는 만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만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살활검(殺活劍)을 쓸 줄 알아야만 대선지식(大善知識)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줄탁의 기틀과 살활의 검을 자재하게 갖추지 못할진대는, 선지식 노릇을 할 수가 없고 조실(祖室) 노릇을 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줄탁의 기틀을 갖추고 살활의 검을 자유자재하게 쓸 수 있으려면, 견성대오(見性大悟)하고 나서 밝은 스승 밑에서 많은 세월을 지내야 한다. 거기에서 연마(鍊磨)되어 아주 무르익어져야 크게 종풍(宗風)을 떨칠 수가 있는 것이지, 화두가 타파(打破)되었다고 해서 당장에 어디가서 전(廛)을 벌린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백련진금(百鍊眞金)이 불변색(不變色)이라, 순금(純金)이지만 백 번이나 녹여서 털끝만큼이라도 하자(瑕疵)가 없는 진금(眞金)이 되어야만 처처에 대광명(大光明)을 발한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회상(會上)을 열 수가 있고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경지가 되어 화두를 알았다고 해서, 공부를 다 마쳤다고 여겨 어디 가서 한가히 산다든가, 토굴에서 소일을 한다든가 하는 경우는 반 일밖에는 못 한다. 온전한 일을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선종(禪宗)의 역사를 보더라도 크게 종풍(宗風)을 드날렸던 종사(宗師)들은 스승 밑에서 무수히 방망이를 맞고 탁마(琢磨)를 받았던 분들이지, 깨닫고서 거기서 그쳐 버리고 놓아 버린 이는 종풍을 드날렸던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자 같은 놈도 새끼를 낳으면 물어다가 천길 만길 벼랑 밑에 던져 버리고는, 거기서 기어 올라오는 놈만 살리고 못 올라오는 놈은 ‘내 새끼가 아니다.’ 하여 다 물어죽여 버린다. 또, 고양이도 새끼를 키우는 과정에서 쥐를 잡아다가 사냥하는 법을 가르친다.
동물들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는 이 일이, 어찌 혼자의 힘으로 되겠느냐는 말이다. 밝은 선지식 밑에서 단련되고 또 단련되어야 비로소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선지식의 수완을 갖추게 되는 법이다.

 

1.
부처님 당시에 유마 거사(維摩居士), 마조(馬祖) 도인 밑에 방 거사(龐居士), 이 두 분은 출가승이 아닌 재가자(在家者)의 신분이지만, 유사이래 이 두 분의 거사를 능가할 안목자(眼目者)가 없다.
유마 거사는 부처님과 동일한 안목을 갖추신 분인데 지혜와 변재(辯才)와 신통, 그리고 중생을 교화하는 데 있어서 그 법기틀을 씀이 참으로 자유자재하였다.
유마 거사가 교화(敎化)의 한 방편으로써 몸에 병이 났다고 하여 앓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 십대제자와 여러 보살들에게 병문안을 가라고 이르셨는데, 모두 갈 수 없다고 물러섰다. 참으로 뛰어난 안목과 훌륭한 기틀을 갖추셨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유마 거사를 자신있게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의 상수(上首)로 최상의 지혜와 부사의(不思議)한 도력(道力)을 갖춘 문수 보살에게 병문안을 가라고 지시하시니, 문수 보살이 자신마저 사양할 수가 없어서 부처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니 부처님 회상의 팔천 보살과 오백 성문(聲聞)과 석ㆍ범천왕(釋梵天王)들은 문수 보살과 유마 거사가 만나면 묘한 법문이 펼쳐질 것으로 여겨, 문수 보살을 앞뒤 좌우로 옹호하고 유마 거사 처소로 갔다.
유마 거사는 문수 보살이 많은 대중과 함께 올 것을 미리 알고 방을 치워놓고 누워 있다가 문수 보살을 맞았다.
두 안목자(眼目者)가 만났으니 서로 문답이 오가고 온갖 미묘한 법문이 펼쳐졌다. 그러다가 유마 거사가 여러 보살들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보살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냐?”
하니, 32보살이 다 각각 자기 소견대로 한 마디씩 했다.
마지막으로 문수 보살이 말하기를,
“일체 법에는 말이 없고 말할 것도 없으며 보일 것도 없고 또한 알 것도 없음이니, 일체 문답을 여읜 것이 불이법문입니다.”
하고는 유마 거사를 향하여 물었다.
“우리들은 모두 각자의 소견을 말하였으니 당신도 한 말씀해 주십시오. 무엇이 보살의 불이법문입니까?”
이에 유마 거사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문수 보살이,
“과연 훌륭하십니다. 언어와 문자까지도 여읜 이것이 참으로 불이법문입니다.”
하고 찬탄하였다.

아는 이는 이와 같이 척척 상통(相通)이 되는 법이다. 아는 이가 보건대는, 문수 보살의 답처나 유마 거사의 답처나 차별이 없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바로 볼 줄 알아야 되는데, 이것은 향상구(向上句)가 해결되어야만 고인의 살림살이를 바로 보고 바로 평(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지, 향상구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면 산승(山僧)이 문수 보살과 유마 거사의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대해서 점검을 하건대는, 두 분이 참으로 멋진 불이법문을 하시긴 하셨으나 제2두(第二頭)에 떨어졌다 하리라.
어찌 된 연고(緣故)냐?

萬古碧潭空界月(만고벽담공계월)
再三撈漉始應知(재삼노록시응지)

만고의 푸른 못에 비친 공계의 달을
두서너 번 건져봐야 비로소 알리라.

만약 여러분이 이 말의 낙처(落處)를 안다면 유마 거사, 문수 보살과 동참할 안목을 갖추었다 하리라.

 

2.
우리가 이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무심(無心)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남녀색에 무심해야 되고, 돈에 무심해야 되고, 먹는 것에 무심해야 되니, 이 세 가지 것에 끄달리면 화두와는 거리가 멀다. 발심(發心)한 이는 이 세 가지 것에 초연해야 오로지 화두와 씨름하여 일념(一念)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지, 한 마음 가운데 한 생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생각 저생각으로 나누어지면 10년을 참구하고 30년을 참구해도 아무 진취가 없다.
저 해인사 어느 노비구니가 그러더라. 해인사 큰마당에서 법당 올라가는 계단이 높지. 그런데 연세가 많으신 어느 노장님이 법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내려오시는데, 그것이 하도 힘들어 보여서 옆에서 부축을 해 드렸더니 벌벌 떨더라는 게야.
그러니 마음의 습기(習氣)라는 것은 수천 수만 생 동안 육도(六道)를 돌고 돌면서 익히고 익혀온 것이기 때문에, 연세가 많다고 해서 덜하다거나 젊다고 해서 더하다거나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수행을 잘 해서 모든 형상 있는 것이 허망한 것을 바로 알고, 삼세(三世)의 업(業)이 다 탕진되는 진리의 법을 안 이에게는, 천하 홍련이와 같은 미인이 다가와도 그것이 별게 아니다. 사대육신(四大肉身)은 피고름으로 이루어진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러니 이러한 무상(無常)을 체득한 이는 관계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고 그 근본은 모르고서 형식에만 얽매어 있을 뿐 발심(發心)을 제대로 못한 이는, 백발이 되도록 절집 밥을 먹어도 마음의 습기가 그대로 있다.
공부인이 이러한 것들에 초연하지 않으면 절대 화두일념이 지속되지 않는다. 한마음 가운데 공부생각보다 더 끄달리는 것이 있는데 화두가 순일(純一)될 수가 없지.
그러니 대장부의 뜻을 발(發)한 이는 대장부의 기틀을 갖추어야지, 이러한 소소한 지엽에 끄달리면 안 된다는 말이다.
요즘 절집의 생활은 세간의 중류 이상이다.
내가 스물아홉 살 때 동화사에서 여름 한 철을 지냈는데, 지금 불국사 조실이신 월산 선사께서 그 당시 동화사 주지이셨고, 고인이 되신 전강 선사께서 조실이셨다. 그 철에 큰절 대중이 아마 사오십 명 모였을 게다.
그런데 보름이 지나도 두부 한쪽이 안 올라오니 수좌들이 공양 끝에,
“일주일에 한 번씩 두부 한쪽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제의를 하더라. 그러니 주지 스님께서는 마음이야 잘 해주고 싶으셨겠지만 아무 할 말이 없으신 거라. 빈 손인데 어쩌겠느냐?
거기에다 요즘의 절집생활을 한 번 비교해 봐라. 두부 한번 빠지는 날이 없을 게다.
우리 클 때는 흉년이 들어 이루 말할 수 없이 생활이 어려웠다. 일본 사람 밑에서 배급을 탔는데, 콩깻묵까지 타먹어야 하는, 그러한 비참한 생활을 온 국민이 다 겪고 살았다. 그런데 절집에 오니까 생활이 조금 낫더라. 그런데도 서홉밥, 그것도 될둥말둥 근근히 먹었다. 처음 계(戒)받고 중이 되면 공양시켜 준다고 하는데, 국수 몇 다발 사다가 국수공양 시켜 주더라. 국수. 그래도 우리는 투정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오직 견성(見性)해야겠다는 일념(一念)뿐이었지.
그런데 요즘에 보면, 우리가 여기 상선원(上禪院)에 이삼십명 모여 사는데, 한 철 살면서 소화제를 몇 가지나 청구한다. 소화제가 왜 필요한지 한 번 생각해 봐라. 허둥지둥 온갖 것을 잔뜩 먹으니 그것을 억지로 소화시키기 위해서 청구하는 거 아니냐. 그러니 몸뚱이가 더 망가지는 것이다.
이 몸뚱이는 살이 찌고 기름이 붙어놓으면 혼침(혼沈)만 더하지 도(道) 닦는 데 이로울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 먹는 것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많이 먹게 되면 혼침에 끄달려서 화두와 씨름을 못한다. 살이 쪄놓으면 도(道)에는 생각이 없고 온갖 습기에 놀아난다는 말이다. 그 마음의 장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대도(大道)를 향하는 이는 일상생활에서부터 모든 것을 넘치지 않게 절제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생활을 정화(淨化)하고서 화두와 씨름할 것 같으면, 간절한 생각이 마음 가운데 자리잡혀서 무수히 일어나던 온갖 생각들이 다 수그러들게 되어 있다. 그러니 정진 대중은 각자 자신의 일상생활부터 철저히 돌이켜보길 바란다.

날마다 아침으로 한두 사람씩 참문(參問)하러 오면, 화두 참구하는 법을 자세히 일러주곤 하는데도 또 와서는 엉뚱한 소리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처음 하는 일이 되어, 설어서 그런 모양이다.
이 공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두를 챙길 것 같으면, 힘들 것이 하나도 없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두를 챙기지 않기 때문에 힘이 들고, 몸이 틀리고, 혼침(혼沈)에 빠지고 그렇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화두를 들면 이생각 저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혼침도 사라져 버리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이쯤 되어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념(一念)이 현전되어 보고 듣는 것이 다 마비되어 버린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어 일주일이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가도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다가 문득, 종소리를 듣는다든가, 목탁소리를 듣는다든가, 자기 몸뚱이까지도 잊어 버렸다가 몸뚱이를 본다든가 하는 찰나에 화두가 해결된다.
그런데 내가 보니 금년 겨울 석 달도 아마 밥만 축내는 선방(禪房)이 되었지 싶다. 수좌(首座)가 혼침, 망상에 시간을 낭비하면 선방 밥 먹을 자격이 없는 법이다. 여러분이 이렇게 석 달 동안을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앉아 있는데도 화두가 순일(純一)되지 않는 까닭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화두를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공부는 간절한 한생각이 가장 큰 힘인 것을, 대중은 명심하기 바란다.

오늘 한 비구니가 남원 어느 토굴에서 공부한다고 오랫동안 독살이를 하다가 찾아와서는 ‘알았다’고 온갖 소리를 늘어놓는데, 내가 “그것은 안 것이 아니니 다시 공부해야 한다.” 했더니 받아들이더라. 그러나 바로 일러 주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는 선지식도 도리가 없다.
공부인은 법(法)을 아는 이를 만나서 자기 살림살이를 드러내 보일 때, 아는 이가 ‘아니다’라고 하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의아심을 갖거나 자기 고집을 세우면, 결국 세월만 헛되이 보내고 아무 소득이 없게 된다.
그러니 이 곳에 찾아왔으면, 종전의 알음알이는 다 놓아 버리고 순수한 자세에서 지도하는 것을 받아들여 실답게 참구해야만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 ‘마음을 비운다, 비운다’ 하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렇게 모든 생각을 다 놓아 버리고 순수하게 참구하면 나날이 공부가 새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이 자리를 빌어서 의심처(疑心處)가 있거든 다 물어 보아라.

수좌1 : 저는 지금까지 이 참선공부는 어떤 화두를 들든지간에 밑바닥까지 완전히 깨닫는 상태가 온다면 확철대오(廓徹大悟)까지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향곡(香谷) 큰스님께 찾아가셔서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화두를 타 2년 만에 해결해 내셨는데,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 공안에 막혀 다시 5년을 참구하셔서 비로소 막히는 바 없이 상통(相通)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화두로 완전히 깨치지 못하신 원인은, 화두상에 심천(深淺)이 있기 때문입니까?
만일 화두상에 깊고 얕음이 있기 때문이라면, 참학자(參學者)가 애초부터 얕은 것보다는 깊은 것을 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 싶습니다.
큰스님 : 화두에는 법신변사(法身邊事)의 화두가 있고, 여래선(如來禪)의 화두가 있고, 향상구(向上句)ㆍ향하구(向下句)의 화두가 있고, 최초구(最初句)․말후구(末後句)의 화두가 있고, 일구(一句)․이구(二句)․삼구(三句)의 화두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분종사(本分宗師)들은 항시 최고의 진리의 화두를 간택해 주지, 법신변사와 같은 것은 화두로 간택(揀擇)해 주지 않는다.
우리가 역대 조사 스님네들을 보건대, 두 번 세 번 깨달은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그것은 왜 그러하냐면, 일념무심삼매(一念無心三昧)에 들어가서 삼 칠일이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일 년이고 흐르는 그 가운데서 해결이 되면 더 깨달을 것 없이 여지없이 깨닫게 되는데, 일념무심삼매가 안 되고 홀연히 깨닫는 수가 더러 있다.
그런데 그것은 힘이 미약해서 낱낱 법문을 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참구해야 된다. 두 번 세 번 깨닫게 되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향상구ㆍ향하구를 들어서 일념무심삼매에서 해결이 된다면, 그것은 여지없이 깨달아 더 깨달을 것이 없다.

수좌2 : 스님께서는 일념삼매(一念三昧)를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되셨습니까?
큰스님 : 일념삼매나 오매일여나 다 일념(一念)이 지속된다는 그 말이다. 진의(眞疑)가 돈발(頓發)하여 화두일념이 현전(現前)되면 그대로 삼매(三昧)에 들어 자나 깨나 흩어지지 않고 지속된다. 표현만 다르게 되었을 뿐이지.

수좌3 :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천오백 년 전에 새벽별을 보고 깨치신 그 경지와 스님께서 깨치신 경지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만일 이 물음에 대한 답에 털끝만큼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스님께서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빠져서 헤어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큰스님 : 허허허허.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
견성(見性)이라 하는 것은 성품을 보았다는 것 아니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성품을 보셔서 각(覺)을 이루신 것이고, 역대 도인들께서도 다 자기 심성을 보셔서 깨달으신 거고. 견성(見性)자리에 차별이 있을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무사자오(無師自悟)는 천마(天魔), 외도(外道)라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면밀히 정법(正法)을 이어온 선사로부터 인증(印證)을 받으라고 하셨던 것이고. 독불장군(獨不將軍)으로 ‘내가 견성했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견성법 문중에서는 조작이 없고 거짓이 없게 하기 위해서 먼저 깨달은 선사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하는 가풍(家風)이 서 있는 것이다.
수좌3 : 스님께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셨으면 대기대용(大機大用)하고 자유자재(自由自在)하셔서 걸림이 없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옛 조사 스님네들이 뱉어놓은 찌꺼기들,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니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 하는, 그러한 것들이나 주창(主唱)할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이 시대 상황에 맞고 이 시대 근기(根機)에 맞는 화두를 창안(創案)하셔서, 그것을 가지고 참구케 하여 빨리 눈 밝은 납자(衲子)들을 많이 나오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큰스님 : 허허. 그래서 법문(法門)할 때 내 말 안 하더냐.
화두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제불제조(諸佛諸祖)께서 깨달으신 경계를 만인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신 것이 이 공안(公案)이다. 그러면 그 깨달은 진리의 세계에 옛이 있고 이제가 있는가?
그리고 한 번 생각해 봐라.
부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셔서 가섭존자(迦葉尊者)같은 훌륭한 제자를 많이 못 만드셨겠느냐. 일생 데리고 다니셨던 아난 존자(阿難尊者)는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는 바가 없이 그렇게 총명했는데, 위대한 부처님이 무엇이 부족하셔서 아난을 견성도인(見性道人)으로 못 만드셨겠느냐?
네 논리대로라면, 아난은 부처님으로부터 깨달음의 기연(機緣)을 얻지 못했고 가섭 존자의 방망이를 맞고 깨달았으니, 가섭 존자가 부처님보다 낫겠네?
그러면 이것은 어찌 생각하느냐?
부처님께서 그러셨다. 가섭 존자에게 법을 전하실 적에는 자신과 똑같은 심안(心眼)이 열렸기 때문에, “정법안장 열반묘심(正法眼藏涅槃妙心)을 가섭에게 부친다.” 하셨다. 가섭 존자는 또 왜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난 존자에게 법을 부치셨겠느냐? 서로 상통(相通)이 되니까 그런 것이지.
그것이 쭉 연달아 내려오는 것이 법맥(法脈) 아니냐. 왜 아무한테나 법을 전하지 않고 하필 그 사람 그 사람에게 쭈욱 전해내려 왔겠느냐?
사조(四祖) 선사도 상통하는 이가 없어서 법을 전하지 못하고 계시다가, 80대 노인이 와서 상통되었는데 너무 연로(年老)한지라 몸을 바꿔오라 하여 법을 전하신 것 아니냐. 그리하여 오조(五祖) 선사는 육조(六祖) 행자시절에 상통이 되니 법을 전한 거 봐라.
우리나라는 태고 보우(太古普遇) 선사께서 고려 말에 송(宋)에서 법을 이어오셔서 쭉 전해내려 왔는데, 조선 중후기 이후 근 백여 년 간 단절되었다가 경허(鏡虛) 선사께서 다시 이어내셨다. 그 후대에 와서 향곡(香谷) 선사로부터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안목(眼目)을 갖추게 되었지.
이것은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면 호리(毫釐)도 착오가 없을 것이다.
수좌3 : 거기에 대해서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향곡 큰스님으로부터 향상구가 다시 신장(伸張)되었다고 하셨는데, 원래 부처님 정법(正法)이 돈오돈수(頓悟頓修) 아닙니까? 향곡 스님대에 와서 다시 펼쳐지게 되었다는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안목이 바로 부처님의 정법 돈오돈수일텐데,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부처님 정법을 바로 잇지 못했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향상구가 돌아가신 향곡 큰스님에게 펼쳐졌다고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큰스님 : 그렇지. 향상구(向上句)에 이르러야 돈오돈수인데, 근세에 이르기까지의 우리나라 선사들은 향상구를 모르고 법신(法身)의 경계나 여래선(如來禪)만 알았다. 태고 보우 선사나 환암 혼수 등 몇 분은 중국에서 직접 전해져서 안목이 있었지만, 그 후로 제대로 전수되지 못해 고준한 안목이 단절되었고, 돈오점수 사상에 침체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향곡ㆍ성철 두 분 큰스님께서 향상구를 깨달으신 이후에, 다시 돈오돈수 사상으로 전환되고 부처님의 근본살림이 재현된 것이다.
그리고 아는 이는 한 마디 들어보면 천 리 밖에서도 그 사람 견처(見處)를 환하게 안다. 모르는 이는 아무리 손에 쥐어주어도 알 턱이 없지만.
요즘 우리나라 근세 선사(禪師)들의 법어집이 많이 나왔지만, 들춰보면 향상구를 제창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덕산탁발화’나 ‘일면불 월면불’, 이러한 고준한 법문을 들어서 제창한 이는 아무도 없거든. 그것은 향상구를 모르기 때문에 제창하지 못한 것이다.
알았나?
그러니 너는 지금부터 바보가 되어 참구하되, 다른 사람이 한 번 바보가 되면 너는 열 번 바보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화두를 타파하고 보면 환하게 알게 된다.
수좌3 : 책에서 보니 성철(性徹) 큰스님께서 무엇을 물으셨는데 향곡 큰스님께서 거기에 막혀 탑전에서 삼칠 일간 정진 하셔서 깨치시게 되었고, 거기서 깨치고 보니 방장 스님 자신도 모르시는 것을 물으셨더라고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큰스님 : 그것은 그대로다.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여야 바야흐로 산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여야 바야흐로 죽은 사람을 본다[殺盡死人方見活人 活盡死人方見死人].” 하는 법문이 있다. 방장 스님께서 그것을 물으셨다.
거기에 향곡 스님께서 막히셔서 몰록 화두일념(話頭一念)에 들어 밤이 가는지 낮이 가는지를 모르고 정진하셨는데, 어떤 날은 탑 난간에 기대어 참구하시던 중에 장대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는데도 모르고 서 계셨다는 게야. 그렇게 삼칠 일 동안을 무심삼매(無心三昧)에 빠져 영 등신(等神)이 되어 자신의 몸뚱이까지도 잊어 버리셨다가, 도량을 걷는 중에 문득 자신의 양손이 흔들리는 것을 보시고 활연대오(豁然大悟)하셨던 것이다.
깨달으시고 보니 질문하셨던 방장 스님께서 확실히 아시는 것이 아님을 아시고 방망이를 놓으셨다. 이렇게 두 분이 서로 주고 받으시면서 힘을 얻게 되고 깨닫게 되셨다. 그리하여 이 두 분의 깨달음으로부터 한국 선종사(禪宗史)에 다시 임제(臨濟) 골수의 안목(眼目)이 재현(再現)된 것이다.

수좌4 :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만인을 상대해서 설하셨기 때문인지 알아듣기가 조금 쉬운 것 같은데, 이 공안법문(公案法門)에 들어와서는 도무지 깜깜해 알 길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의심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얘기는 제가 부처님 말씀 중에서 깨달음에 대한 것을 착안(着眼)해 본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눈에 있으면 보는 것이요
귀에 있으면 듣는 것이요
손에 있으면 잡는 것이요
다리에 있으면 걷는 것인데
사람이 다만 욕심에 눈이 가리워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하셨는데, 스님의 법문 중에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 공안법문들을 다 뚫어서 진리의 세계를 환히 볼 수 있겠습니까?
큰스님 : 나뿐만 아니라 조사(祖師) 스님네의 법문은 아주 화살과 같이 찌른다.
부처님께서 대자대비(大慈大悲)로 방편(方便)을 가지고 울어 대는 어린아이들 달래시는 것이어서, 49년 설법(說法)이 모두 방편이지 법이 아니다.
반면 조사(祖師) 스님들 법문은 날카로운 화살촉과 같이 아주 아프게 찌르는데, 여기에서 참학자(參學者)가 의심이 일어서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들게 되고 업(業)이 소멸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부를 하는 이는 도인 스님네, 조사 스님네의 일언반구(一言半句)를 금쪽같이 여겨야 한다. 온전히 믿고, 온전히 따르고, 온전히 행하고, 지도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되지, 무슨 야호(野狐) 의심이 있을 것 같으면 선방에서 백 년을 살아보아야 아무런 소득이 없다.
그러니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을 만났으면 철저한 신심(信心)으로 지도하는 대로 받아들여서, 하늘을 찌를 듯한 용맹과 태산과 같은 부동(不動)의 자세에서 일여(一如)하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된다.
만약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저렇게 해서 될까?’ 하는 의심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천불 만조사(千佛萬祖師)가 출세(出世)해도 이 일을 성취할 수 없다.

부처님을 일생 따라다니면서 모셨던 아난 존자(阿難尊者)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제자였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부처님의 참법문을 들을 수 없으니 가섭 존자에게 가서 물었다.
“부처님께서 금란가사(金襴袈裟) 외에 따로 전하신 법이 있습니까?”
이에 가섭 존자가 아난을 부르자 아난이 대답하니,
“문 앞의 찰간(刹竿)을 거꾸러뜨려라.”
하고 가섭 존자가 한 마디 던졌다.
그래서 아난 존자가, 졸다가는 떨어져 죽게 되는 아주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서 용맹정진하여 그 도리를 깨달았다.

“금란가사 외에 따로 전한 법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문전의 찰간을 거꾸러뜨려라.” 했다.
이것이 바로 조사(祖師)의 말씀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大慈大悲)로 방편을 가지고 어루만져 주셨지 아프게 찌르지 않으셨거든. 바로 이 한 마디가 해결되어서 아난 존자는 가섭 존자의 법을 전수받았다.
이 법은 천불 만조사(千佛萬祖師), 모든 도인의 살림살이가 다 동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법이 계속 전해져서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이 선법이 삽삼조사(卅三祖師) 이후로 더 흥하게 되었던 것은 마조(馬祖) 선사의 독특한 일미(一味), 모든 조사 스님네들이 토하지 못했던 독특한 일미가 있었기 때문에 그밑으로 무수 도인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이 법은 소인지배(小人之輩)는 안 되고 신심(信心)이 있고 그릇이 큰 사람, 도(道)를 구하는 간절한 일념에 불타는 사람이 들을 것 같으면, 선지식의 한 마디에 마음이 척! 열리게 되어 있다.
지금 다들 참선한다고 앉아 있지만, 마음 가운데는 야호(野狐)가 수십 마리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법문을 해 주어도 순수하게 들어가지 못한다. 이 대도(大道)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텅텅 비워서 선지식의 지도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그것이 그대로 자기 살림이 된다. 그래서 이 대도의 문에 들어서려면 모든 지견(知見), 일체의 알음알이를 다 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말을 이야기로 흘려 버리지 말고 마음에 바로 새겨서 실천에 옮긴다면, 아주 큰 소득이 있을 것이다.

수좌5 : 해운정사 법당에는 지금 주세불(主世佛) 로 천수천안 관세음 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이 모셔져 있고, 양쪽으로 보현보살․문수보살․아미타불․약사여래가 모셔져 있는데, 제가 듣기로는 이 주세불 때문에 해운정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왜 주불(主佛)로 천수천안 관세음 보살을 모셨습니까?
그리고 오분향례(五分香禮)에서 영산(靈山) 당시의 아라한(阿羅漢)에 대한 예는 올리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또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큰스님 : 천수천안 관세음 보살을 주세불로 모셨다고 하는데, 그 관세음 보살 머리 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지 않느냐.
십대제자와 모든 보살들이 다 석가모니 부처님 응화신(應化身) 이다. 교화(敎化)하기 위한 방편(方便) 응화신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교화하는 분상에서 모든 응화신을 모시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봉안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방편으로 삼는 것 아니냐. 그것을 모르고, 못 보니까 다들 야호(野狐) 소견으로 사견(邪見)에 떨어져서 그러는 게야.
그리고 사판들이 예불문을 지을 때, 소승(小乘) 나한(羅漢)들을 조사(祖師) 스님들 앞에 두었다. 앞에 둔 그것이 잘못된 것이지. 그래서 차서(次序)에 맞지 않아서 내가 빼버렸다. 그리고 소승들은 승가(僧伽)에 속하면 되는 것이다.
수좌5 : 잘 알겠습니다.
수좌6 : 저는 새벽에 일어나면 바로 화두가 챙겨지고 그렇긴 합니다만, 공부를 하다보면 자꾸 여자 생각이 나게 됩니다. 항상 화두를 놓지 않고 열심히 참구하려고 노력하고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화두를 챙기다가 잠이 드는데, 잠결이라든지 저 자신도 모르는 결에 여자 생각이 일어나 마음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것만 끊으면 화두가 일념(一念)으로 나갈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이것을 끊어낼 수 있겠습니까?
큰스님 : 젊었을 때는 여색에 시간을 다 뺏긴다. 그것은 과거 다겁다생(多劫多生)에 지어온 습기(習氣)로 인해서 사람이나 축생이나 다 그렇다. 중생(衆生)은 이 마음의 습기로 인해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서, 보면 마음이 동(動)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앞에서 내가 대발심자(大發心者)는 돈과 여색에 무심해야 된다고 했지. 이것은 철칙이다. 돈과 여색에 무심하지 않으면 이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가 없다.
이 몸뚱이 사대육신(四大肉身)은 피고름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무리 천하일색 미인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많은 생(生)을 그 허망한 것에 빠져서 오늘날까지 성불(成佛)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
그러니 금생에는 그러한 헛된 꿈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그 허망한 몸뚱이에 초연하리라.’는 작심을 하고 생각생각 화두참구에 열을 올려 봐라. 그렇게 해서 힘을 얻어 일념이 현전(現前)되기만 하면, 그 때는 그러한 잡된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게 된다. 그러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아직 화두 참구 하는 데 있어서 힘을 못 얻었기 때문에, 과거생에 지어왔던 습기(習氣)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떠오르는 것이지.
그러니 내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진심(眞心)에서 우러나오는 화두를 챙기면 이생각 저생각이 다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렇게 한 번 잘 해 봐라.

수좌7 : 제가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화두 두는 방법에서, 스님께서는 화두를 목전(目前)에다 두라고 하시는데, 상단전(上丹田)이나 하단전(下丹田)에 두면 안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큰스님 : 화두를 머리에다 두게 되면, 애를 써서 노력하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기(氣)가 위로 올라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머리가 천근 만근이 되어 화두참구하는 데 큰 장애가 와버린다.
그러나 힘을 다 놓아버린 상태에서 눈 앞 1미터 아래에다 화두를 두고 생각으로만 참구하면, 상기(上氣)되지 않고 편안하다.
또, 어떤 이들은 하단전(下丹田)에다 화두를 두고 참구하라고 가르치는데, 물론 앉아 있을 때는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24시간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거든. 이 화두참구라는 것은 사위의(四威儀) 가운데 무르익어져야 일념(一念)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지, 사위의 가운데 무르익어지지 않으면 일념이 지속되지 않는다. 일념이 지속되지 않으면 깨달음이 올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한 고로 일상의 모든 생활 가운데서 화두를 목전(目前)에다 두고 참구(參究)하라는 것이다. 이 방법이 숙달만 되면 아주 간편하고 좋다.
그렇게 알고 실천에 옮겨 열심히 하도록 하고. 더 묻고 싶은 이는 또 아침으로 독참(獨參)을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자.

 


경허(鏡虛) 문하의 전법기연(傳法機緣)

 

선(禪)은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歷代祖師)들께서 깨치신 바인 불법(佛法)진리의 골수(骨髓)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나서 삼칠일간(三․七日間)을 깊이 생각하시고는,“제법(諸法)의 적멸상(寂滅相)은 가히 말로써 베풀 수 없는 것이니, 차라리 법(法)을 설(說)하지 않고 빨리 열반에 드는 것이 나으리라.” 하셨다.
선(禪)은 그 어떠한 언어나 문자로도 설할 수 없는 것이어서 개구즉착(開口卽錯)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조사(祖師)께서는 부처님의 일대장교(一代藏敎)와 역대 조사들의 설법(說法)을 ‘양머리를 매달아 놓고 개고기를 파는 것[縣羊頭賣狗肉].’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셨던 ‘정법안장 열반묘심(正法眼藏 涅槃妙心)’의 선의 진리는 교(敎) 밖에 따로 전하여, 오직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해져 왔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밀전(密傳)되어 왔으니, 이렇게 상속(相續)하는 도리야말로 종문(宗門)의 생명이요, 불조(佛祖)의 명맥(命脈)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마하가섭(摩詞迦葉), 가섭 존자로부터 아난(阿難), 아난 존자로부터 상나화수(商那和修), 이렇게 전전상승(傳傳相承)하여 온 불조정전(佛祖正傳)의 선은 28조(祖)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다.
중국에 전파된 선법(禪法)은 육조 혜능(六祖慧能) 선사에 이르러 크게 융성했고, 혜능 선사 이후로 계속 분파(分派)되어 임제종(臨濟宗), 위앙종(潙仰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의 오종(五宗)을 이루었다. 이 오종 가운데 위앙ㆍ법안ㆍ운문 삼종(三宗)은 차츰 쇠퇴하여 그 법통(法統)이 단절되었으나, 임제ㆍ조동 이종(二宗)은 후대에 더욱 번성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법맥(法脈)도 임제종의 법맥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선법(禪法)이 전래된 때는 통일신라 시대로, 사조 도신(四祖道信) 선사로부터 법(法)을 부촉(付囑)받은 조사(祖師)를 비롯하여, 오종(五宗)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법을 전수받아 와 구산선문(九山禪門)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구산선문 법계(法系)는 신라 시대에 잠시 흥성하다가 고려 시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쇠퇴되어 갔다.
이렇듯 선가(禪家)의 침체기였던 고려 말엽에, 태고 보우(太古普遇) 스님이 각고정진(刻苦精進) 끝에 선지(禪旨)를 깨닫고 송(宋)으로 건너갔다. 거기에서 임제정맥(臨濟正脈)의 법등(法燈)이신 석옥 청공(石屋淸珙) 선사로부터 인가(印可)받고 법을 부촉받아서, 불조정전(佛祖正傳) 57조(祖)로 우리나라 종조(宗祖)가 되셨다.
태고 보우 선사께서 조선 초에 환암 혼수(幻庵混修) 선사에게 전법(傳法)하시니, 이로부터 우리나라 선종은 임제정맥을 면밀히 이었다. 그러나 조선 시대는 숭유배불(崇儒排佛) 정책으로 불교의 수난시대였고, 선법(禪法)은 조선 중후기 이후로 크게 위축되어 근 백여 년 동안 동면(冬眠)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때 출세(出世)하셔서, 이 땅에 다시 선법(禪法)을 부흥시키고 실낱같이 이어져오고 있던 선맥(禪脈)에 활로(活路)를 여신 분이 경허(鏡虛) 선사이시다. 경허 선사 밑에서 훌륭한 제자들이 배출되어 네 분이 법을 전해 받았으니, 혜월(慧月)ㆍ만공(滿空)ㆍ침운(枕雲)ㆍ한암(漢岩) 선사이시다.
그 가운데 혜월 선사의 법맥(法脈)이 운봉(雲峰)․향곡(香谷) 선사로 이어져 내려와 현재, 태고 보우 선사의 22세 손(孫)이며 불조정전(佛祖正傳) 79조(祖)이신 진제(眞際) 선사에 이르렀다.

 

경허 성우(鏡虛惺牛 : 1849~1912) 선사는 9세의 어린 나이에 출가하셔서, 23세에 벌써 대중의 요청으로 동학사(東鶴寺) 강원의 강단에 섰던 탁월한 강백(講伯)이셨다.
어느 날 은사(恩師) 스님을 뵈러 가시던 길에 우연히 폭우를 만나서 비를 피하시려다, 호열자로 인해 사람들이 다 죽어 가고 있는 참혹한 죽음의 현장을 만나시게 되었다. 여기에서 무상(無常)이 빠르고 생사(生死)가 신속함을 느껴, 그 길로 동학사로 돌아와 학인(學人)들을 흩어보내고 폐문좌선(閉門坐禪)하시게 되었다.
대부분의 공안(公案)이 학습하던 습성으로 인하여 알음알이로 이해되어 버리고 의심이 일지 않는데, ‘나귀 일이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도래한다[驢事未去馬事到來].’는 영운(靈雲) 선사의 법문만은 알음알이를 붙일 수가 없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을 참구의 분(分)으로 삼으셨다. 두문불출(杜門不出)하시고, 졸음이 오면 날카로운 송곳으로 살가죽을 찌르고 칼을 갈아 턱에 괴어서 수마(睡魔)를 물리치며 용맹정진하셨다.
그렇게 정진하시기를 석 달째,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경계가 다 물러가고 무시부절(無時不絶) 화두 한생각만이 또렷해 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바깥에서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이 들려오는 순간, 깨달음을 얻으셨으니 그 때가 1879년, 선사의 연세 31세였다.
오도(悟道) 후 장문(長文)의 오도가(悟道歌) 속에 송(頌) 하시기를,

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六月燕岩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野人無事太平歌(야인무사태평가)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 뚫을 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깨닫고 보니 삼천대천세계가 다 나의 집일세.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 일이 없어 태평가를 부르네.

그리고 자신이 이으신 법(法)의 전등연원(傳燈淵源)을, 용암(龍巖) 화상에게서 법을 이어와 청허 휴정(淸虛休靜) 선사의 12세 손(孫)이며 환성지안(喚醒志安) 선사의 8세 손이라고 밝히셨다.
이때부터 제방(諸方)에 선풍을 진작(振作)시키시니, 각처에 선원이 개설되고 걸출한 선객(禪客)과 수행납자(修行衲子)들이 무수하여, 적막하기만 하던 조선의 선불교는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
오도(悟道) 후, 참으로 의발(衣鉢) 전할 이 없음을 탄식하더니, 1885년 선사 세수(世壽) 37세 때, 비로소 눈 밝은 납자를 얻으셨으니 그 분이 바로 혜월 혜명 스님이다.

 

혜월 혜명(慧月慧明 : 1862~1937) 스님은 12세에 출가하여 글 한 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가, 은사(恩師) 스님의 퇴속(退俗)으로 경허 선사와 인연이 되어서 참선의 관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경허 선사께서 일러 주시기를,
“사대(四大)는 본래 거짓으로 이루어져서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허공도 또한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느니라. 다만 눈 앞에 뚜렷이 밝은 한 물건이 있어서 능히 법을 설하고 듣나니, 고명(孤明)한 이 한 물건이 무엇인고?”
하시더니 재차 다그쳐 물으셨다.
“알겠느냐? 대체 어느 물건이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느냐? 형상은 없되 뚜렷이 밝은 그 한 물건을 일러라!”
혜명 스님은 앞이 캄캄하여 이 순간부터 오로지 이 화두일념(話頭一念)에 몰두했다. 앉으나 서나 일할 때나 잠잘 때까지도 ‘대체 이 한 물건이 무엇인가?’하는 일념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일념에 잠겨 참구하는 가운데 3년이라는 세월이 언뜻 지나가고 어느 날, 혜명 스님은 짚신 한 켤레를 다 삼아놓고서 그것을 잘 고르기 위해 신골을 치는데, ‘탁’하는 그 망치 소리에 ‘이 한 물건’ 의심이 환하게 해소되었다.
혜명 스님이 그 길로 경허 선사를 찾아가니, 선사께서 간파 하시고 물음을 던지셨다.
“목전(目前)에 고명(孤明)한 한 물건이 무엇인고?”
“저만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천성인(一千聖人)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자 경허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어떠한 것이 혜명(慧明)인가?”
이에 혜명 스님은 동쪽에서 걸어 서쪽에 가 섰다가, 다시 서쪽에서 걸어 동쪽으로 가 섰다.
경허 선사께서는 여기에서,
“옳고, 옳다.”
하시며 혜명 스님을 인가(印可)하셨다.
그 후 1902년, 경허 선사께서는 혜명 스님에게 혜월(慧月)이라는 법호(法號)와 전법게(傳法偈)를 내리셨다.

 

付慧月慧明(부혜월혜명)
了知一切法(요지일체법)
自性無所有(자성무소유)
如是解法性(여시해법성)
卽見盧舍那(즉견노사나)
依世諦倒提唱(의세제도제창)
無文印靑山脚(무문인청산각)
一關以相塗糊(일관이상도호)

水虎中春下澣日(수호중춘하한일)
萬化門人鏡虛說(만화문인경허설)

 

혜월 혜명에게 부치노라

일체법 깨달아 알면
자성에는 있는 바가 없는 것.
이같이 법성을 깨쳐 알면
곧 노사나 부처님을 보리라.
세상법에 의지해서 그릇 제창하여
문자없는 도리에 청산을 새기니
고정된 진리의 상에 풀을 발라 버림이로다.

임인년 늦봄에 만화 문인 경허 설하다.

 

혜월 선사께서는 24세 때 깨달음을 얻으신 후, 27년 동안 덕숭산에 주(住)하시다가 51세 이후로는 남방의 제선방(諸禪房)을 두루 유력(遊歷)하시면서 납자를 제접(提接)하셨다. 당시에 선사의 법기를 쓰심은 ‘신(申)혜월 미투리 방망이에 남방 선지식이 다 빙소와해(氷消瓦解)되었다.’는 유행어가 생겼을 만큼 독특했다.
혜월 선사께서 부산 선암사(仙岩寺)에서 주석하고 계시던 중 1923년에, 운봉 성수 스님이 깨달은 바를 점검받고자 선사를 참방(參訪)하였다.

 

운봉 성수(雲峰性粹 : 1889~1944) 스님은 13세에 출가하여 경율론삼장(經律論三藏)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진리의 본체(本體)에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것임을 통감하여 참선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그리하여 전국의 명산제찰(名山諸刹)을 두루 행각(行脚)하며 선지식을 참예(參詣)하고 공부에 혼신을 기울였다.
 그렇게 참선정진에 전력(全力)하기를 10여 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두일념(話頭一念)이 현전(現前)되는 경계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스님의 세수 35세 되던 1923년, 심기일전(心機一轉)하기 위해 부처님전에 대발원(大發願)을 세워 백일기도를 한 후, 사생결단(死生決斷)의 각오로 백양사 운문암에서 동안거 정진에 들어갔다. 밤낮의 구별이 있을 수 없는 대분심(大墳心)이었던 터라 자연히 화두 한생각이 뚜렷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섣달 보름이 되어 우연히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에 문밖에 나서는데 그 순간, 홀연히 마음 광명이 열려 가슴에 막혀 있던 의심이 완전히 해소되었다.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기를,

出門驀然寒徹骨(출문맥연한철골)
豁然消却胸滯物(활연소각흉체물)
霜風月夜客散後(상풍월야객산후)
彩樓獨在空山水(채루독재공산수)

문을 열고 나서자 갑작스레 찬 기운이 뼈골에 사무침에
가슴 속에 막혔던 물건 활연히 사라져 버렸네.
서릿바람 날리는 밤에 객들은 다 돌아갔는데
단청 누각은 홀로 섰고 빈 산에는 흐르는 물소리만 요란하더라.

그리하여 깨친 바를 점검받고자 당시 남방 제일의 선지식으로 알려져 있던 혜월(慧月) 선사를 참예(參詣)하여 여쭈었다.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 스님들은 어느 곳에서 안신입명(安身立命)하고 계십니까?”
이에 혜월 선사께서 양구(良久)하시므로, 스님이 냅다 한 대 치면서 다시 여쭈었다.
“산 용(龍)이 어찌하여 죽은 물에 잠겨 있습니까?”
“그럼 너는 어쩌겠느냐?”
스님이 문득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니 혜월 선사께서는 짐짓,
“아니다.”
라며 부정하셨다.
이에 다시 응수(應酬)하기를,
“스님, 기러기가 창문 앞을 날아간 지 이미 오래입니다.”
하자, 혜월 선사께서는 크게 한바탕 웃으시며
“내 너를 속일 수가 없구나.”
하고 매우 흡족해 하셨다.
여기에서 혜월 선사께서는 성수(性粹) 스님을 인가(印可)하시고 임제정맥(臨濟正脈)의 법등(法燈)으로 부촉하여 운봉(雲峰)이라는 법호와 전법게를 내리셨다.

付雲峰性粹(부운봉성수)

一切有爲法(일체유위법)
本無眞實相(본무진실상)
於相若無相(어상약무상)
卽名爲見性(즉명위견성)

諸相本非相(제상본비상)
無相亦無住(무상역무주)
卽用如是理(즉용여시리)
此是見性人(차시견성인)

운봉 성수에게 부치노라
 
일체 함이 있는 법은
본래로 진실한 상이 없는 것,
모든 현상이 실상 없는 줄을 알면
곧 그대로가 견성이니라.

모든 현상은 본래로 상이 아닌 것,
모양이 없고 또한 머무름도 없나니
이와 같은 이치를 바로 쓴다면
이것이 바로 견성한 사람이니라.

 

이후 제방에서 납자를 제접하시며 선(禪)의 종지(宗旨)를 크게 펼치시니, 도법(道法)의 성황함이 당대의 으뜸이었다.
선사께서 내원사(內院寺) 조실로 계시던 중 1929년에, 훗날의 법제자인 향곡 혜림 스님을 만나셨다.

 

향곡 혜림(香谷蕙林 : 1912~1978) 스님은 16세에 내원사로 출가하여, 그 곳에서 조실(祖室)이신 운봉(雲峰) 선사의 법문을 접하고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에 한시도 의심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과를 마치면 밤잠을 물리치고 정진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늦가을 어느 날 정진하던 중에 갑자기 산골짝 돌풍이 몰아쳐서 문짝을 때리는 소리에 홀연히 마음의 눈이 열렸다.
그 때가 아직 삭발도 하지 않은 행자시절이었는데, 행자(行者)는 곧장 조실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행자의 거동이 사뭇 다르므로, 운봉 선사께서 간파(看破)하시고 대뜸 목침을 가리키시며,
“한 마디 일러라!”
하시니, 행자는 즉시 발로 목침을 차버렸다.
“다시 한번 일러라.”
“천마디 만마디가 모두 꿈 속에 꿈을 설(說)한 것이니, 모든 불조(佛祖)께서 나를 속이신 것입니다.”
이에 운봉 선사께서 크게 기뻐하셨다. 이 때부터 혜림 스님은 줄곧 운봉 선사를 시봉(侍奉)하면서 탁마(琢磨)받으며 정진하셨다.
운봉 선사께서는 1944년, 열반에 드시기 전에 혜림 스님에게 향곡(香谷)이라는 법호와 전법게(傳法偈)를 내려서 임제정맥(臨濟正脈)을 부촉하셨다.

付香谷蕙林丈室(부향곡혜림장실)
 
西來無文印(서래무문인)
無傳亦無受(무전역무수)
若離無傳受(약리무전수)
烏兎不同行(오토부동행)
 
향곡 혜림 장실에 부치노라

서쪽에서 건너온 문자 없는 법인은
전할 것도 받을 것도 없는 것,
만일 전하고 받음 없는 것조차 뚝 떠나면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리느니라.

향곡 선사께서는 그 후 1947년에, 문경 봉암사에서 제방의 발심선객(發心禪客)들과 함께 “과거에 안 것은 다 접어두고 참으로 부처님과 조사의 경지에 이르도록 다시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을 내어 멋지게 공부하여 보자.”며 용맹정진에 들어가셨다.
하루는 도반(道伴) 스님이,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여야 산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여야 비로소 죽은 사람을 볼 것이다.’하는 법문의 뜻이 무엇인가?”
라고 묻자, 선사께서는 여기에 막혀 몰록 화두일념삼매(話頭一念三昧)에 드셨다. 완전히 대사인(大死人)이 되어 삼 칠일간(三․七日間)을 일념삼매에 빠지셨다가, 하루는 도량을 걷는 중에 문득 자신의 양손이 흔들리는 것을 발견하고 대사각활(大死却活), 활연대오(豁然大悟)하셨다.
오도송을 읊으시기를,

 

忽見兩手全體活(홀견양수전체활)
三世佛祖眼中花(삼세불조안중화)
千經萬論是何物(천경만론시하물)
從此佛祖總喪身(종차불조총상신)

 

鳳岩一笑千古喜(봉암일소천고희)
曦陽數曲萬劫閑(희양수곡만겁한)
來年更有一輪月(내년갱유일륜월)
金風吹處鶴戾新(금풍취처학려신)

 

홀연히 두 손 보고 전체가 드러나니
삼세의 불조가 다 눈병에 헛꽃일세
천 경전과 무수 법문, 다 무슨 물건인가
이로 좇아 불조사가 다 상신실명 하였도다.

 

봉암사에 한번 웃음 천고에 기쁨이요
희양산 구비구비 만겁에 한가롭네.
내년에도 또 있겠지, 수레같이 둥근 달
금풍이 부는 곳에 학의 울음 새롭도다.

 

이로부터 천하 노화상(老和尙)들의 공안(公案) 법문에 속지 않고 걸림없이 임의자재(任意自在)로 대사자후(大獅子吼)를 하셨다.
이렇게 봉암사에서 향상(向上)의 진리를 깨치신 후 제방 선지식들을 두루 참방하여 거량(擧揚)하시니, 비로소 불조(佛祖)의 정문정안(頂門正眼)이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 선종사에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정안(正眼)의 장(場)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제방 선원의 조실 초청을 받아 각 곳에서 납자를 지도하시고 또, 동해안 월내 묘관음사(妙觀音寺)에 선원을 개설하여 주(住)하시면서 향상일로의 종풍(宗風)을 크게 선양하셨다.
그러던 중에 선사의 세수 56세이던 1967년, 하안거(夏安居) 해제 법회시에 제자 진제(眞際) 스님과 법거량이 있었다.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묵좌(黙坐)하고 계시는데 진제 스님이 나와 여쭈었다.
“불조(佛祖)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스님께서 일러 주십시오.”
“구구는 팔십일이니라.”
“그것은 불조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
“육육은 삼십육이니라.”
이에 진제 스님이 예배드리고 물러가니, 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다음날 진제 스님이 다시 여쭙기를,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입니까?”
하니, 향곡 선사께서 답하셨다.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師姑元來女人做]”
그러자 진제 스님이,
“오늘에야 비로소 큰스님을 친견하였습니다.”
하니, 향곡 선사께서 물으셨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관(關).”
“옳고, 옳다.”
 여기에서 향곡 선사께서, 전법게(傳法偈)를 내려 태고․경허․혜월․운봉․향곡 선사로 이어져온 임제정맥(臨濟正脈)을 진제 스님에게 부촉하셔서 오늘에 이르렀다.

 

付眞際法遠丈室(부진제법원장실)

佛祖大活句(불조대활구)
無傳亦無受(무전역무수)
今付活句時(금부활구시)
收放任自在(수방임자재)

 

진제 법원 장실에 부치노라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라
지금 그대에게 활구법을 부촉하노니
거두거나 놓거나 그대 뜻에 맡기노라.

 

 

전법원류(傳法源流)

 

초 조 마하가섭(摩訶迦葉)
제2조 아난존자(阿難尊者)
제3조 상나화수(商那和修)
제4조 우바국다(優婆掬多)
제5조 제다가(提多迦)
제6조 미차가(彌遮迦)
제7조 바수밀다(婆須密多)
제8조 불타난제(佛陀難提)
제9조 복타밀다(伏馱密多)
제10조 협존자(脇尊者)
제11조 부나야사(富那夜奢)
제12조 마명대사(馬鳴大師)
제13조 가비마라(迦毘摩羅)
제14조 용수대사(龍樹大師)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제16조 라후라다(羅喉羅多)
제17조 승가난제(僧伽難提)
제18조 가야사다(伽倻舍多)
제19조 구마라다(鳩摩羅多)
제20조 사야다(闍夜多)
제21조 바수반두(婆修盤頭)
제22조 마나라(摩拏羅)
제23조 학륵나(鶴勒那)
제24조 사자존자(師者尊者)
제25조 바사사다(婆舍斯多)
제26조 불여밀다(不如密多)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중화조사(中華祖師)

제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
(중화초조)
제29조 이조 혜가(二祖慧可)
제30조 삼조 승찬(三祖僧璨)
제31조 사조 도신(四祖道信)
제32조 오조 홍인(五祖弘忍)
제33조 육조 혜능(六祖慧能)
제34조 남악 회양(南嶽懷讓)
제35조 마조 도일(馬祖道一)
제36조 백장 회해(百丈懷海)
제37조 황벽 희운(黃檗希運)
제38조 임제 의현(臨濟義玄)
제39조 흥화 존장(興化存獎)
제40조 남원 도옹(南院道옹)
제41조 풍혈 연소(風穴延沼)
제42조 수산 성념(首山省念)
제43조 분양 선소(紛陽善昭)
제44조 자명 초원(慈明楚圓)
제45조 양기 방회(楊岐方會)
제46조 백운 수단(白雲守端)
제47조 오조 법연(五祖法演)
제48조 원오 극근(圓悟克勤)
제49조 호구 소융(虎丘紹隆)
제50조 응암 담화(應庵曇華)
제51조 말암 함걸(密庵咸傑)
제52조 파암 조선(破庵祖先)
제53조 무준 원조(無準圓照)
제54조 설암 혜랑(雪巖惠朗)
제55조 급암 종신(及庵宗信)
제56조 석옥 청공(石屋淸珙)

 

아국조사(我國祖師)

제57조 태고 보우(太古普愚)
제58조 환암 혼수(幻庵混修)
제59조 구곡 각운(龜谷覺雲)
제60조 벽계 정심(碧溪淨心)
제61조 벽송 지엄(碧松智嚴)
제62조 부용 영관(芙蓉靈觀)
제63조 청허 휴정(淸虛休靜)
제64조 편양 언기(鞭羊彦機)
제65조 풍담 의심(楓潭義諶)
제66조 월담 설제(月潭雪霽)
제67조 환성 지안(喚惺志安)
제68조 호암 체정(虎巖體淨)
제69조 청봉 거안(靑峰巨岸)
제70조 율봉 청고(栗峰靑苦)
제71조 금허 법첨(錦虛法沾)
제72조 용암 혜언(龍岩慧彦)
제73조 영월 봉율(永月奉律)
제74조 만화 보선(萬化普善)
제75조 경허 성우(鏡虛惺牛)
제76조 혜월 혜명(慧月慧明)
제77조 운봉 성수(雲峰性粹)
제78조 향곡 혜림(香谷蕙林)
제79조 진제 법원(眞際法遠)

 


후기(後記)


따닥 딱딱딱!
새벽 두 시의 졸음을 쫓는 장군죽비 소리로 시작되는, 선방의 하루.
큰스님께서 해운정사를 창건하시고, 수행납자들의 정진공간인 상선원(上禪院)과 재가불자들을 중심으로 사부대중이 함께 정진하는 하선원(下禪院)을 열어, 참선지도를 해오신지 30여 년.
때로는 법상에서 주장자를 내려치시면서 사자후(獅子吼)를 하시고, 때로는 분주한 일 가운데서 동중(動中)공부를 경책하시고, 누구든 법을 물으러 오면 제접(提接)하기를 기꺼이 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이 선법(禪法)을 널리 펴고 안목자(眼目者)를 얻기 위해, 30년을 하루같이 노심초사(勞心焦思)하시며 자비를 아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오래전부터, 그간에 큰스님께서 수시로 설하셨던 법어(法語)들을 모아 출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법(法)의 인연을 심어주자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역부족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주위의 신심(信心)어린 도움에 힘입어 미력이나마 정리작업에 나서보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70년대 자료는 보존 되어 있지 않아서, 부득이 8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사부대중에게 설하셨던 상당(上堂)ㆍ소참(小參) 법문들을 모아서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큰스님께서 자비로 설하셨던 무수 법문의 편린(片鱗)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참으로 아쉽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정법(正法)이란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들께서 비밀히 전해오신 진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큰스님의 수행과 전법(傳法)과정, 태고 보우 선사로부터 경허․혜월․운봉․향곡 선사 그리고 큰스님으로 이어져온 법통(法統)과 전법기연(傳法機緣)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천오백 년 전의 부처님의 정법(正法)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오늘의 이 땅에서도 빛을 발(發)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아무쪼록 이 법어집이 널리 읽혀져서 여러 불자(佛子)들에게 정법(正法)의 인연이 닿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서문을 써주신 숭산 큰스님, 그리고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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