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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법어집] 고담녹월(古潭漉月)
법문장소 admin (법문일자 : 1970.03.01 / 조회 : 8572)

 

 

 

自序


 

佛拈花하니 迦葉微笑에 傳心하고 神光三拜에 得髓라. 從此로 五宗이 現成이라.
有時에는 冰稜上走하고 全機電卷하며 大用天旋이라. 有時에는 拈金剛寶劍하여 掃除草木精靈하고 透頂透底하여 而乾坤獨露라.
全體卽用에 枯木花開하고 全用卽體에 芳叢不豔이라.
振佛祖權衡하여 開人天眼目하여 報答佛恩也라.

부처님께서 꽃을 드시니 가섭이 미소 짓는 데에 마음을 전하고, 신광이 삼배에 골수(骨髓)를 얻은지라. 이로 좇아 오종(五宗)이 현성하였도다.
때에 있어서는 빙판 위를 달리고 전 기틀[機]로 번개를 거두며 큰 용(用)으로 하늘을 두루함이요, 때에 있어서는 금강보검을 잡아서 초목정령(草木精靈)을 제거하고 이마 위를 뚫고 밑까지 뚫어서 하늘과 땅에 홀로 드러남이로다.
전 체(體)를 용(用)으로 삼음에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고, 전 용(用)을 체(體)로 삼음에 꽃다운 풀들이 곱지 아니한지라.
불조의 권형(權衡)을 떨치어서 인천의 안목을 열어 부처님 은혜에 보답함이로다.

丙戌年 立冬節
桐華寺·海雲精寺 祖室 眞際法遠

 

 목차

自 序 ․ 14

1.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 25
  을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9.2005)-禪社芳啣錄 登載
2.마조(馬祖)의 일할(一喝) - 임제정맥(臨濟正脈)의 가풍(家風) ․ 31
  병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50.2006)-禪社芳啣錄 登載
3.도화(桃花) ․ 39
  병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50.2006)-禪社芳啣錄 登載
4.조주(趙州)와 황벽(黃檗)·임제(臨濟)의 대담(對談) ․ 49
  병술년 동안거 결제중 동화사 금당선원 상당법어(2550.2006)
5.백양사 2차 무차선대법회 ․ 55
  경진년 8월 19일 백양사 2차 무차선대법회 상당법어(2544.2000)
6.해운정사 국제무차선대법회 ․ 77
  임오년 10월 20일 해운정사 국제무차선대법회 상당법어(2546.2002)
7.동화사 담선대법회 ․ 92
  갑신년 9월 4일 동화사 담선대법회 상당법어(2548.2004)
8.주장자(拄杖子) ․ 97
  갑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봉대식 및 결제법어(2538.1994)
9.운암(雲岩)의 대비수안(大悲手眼) ․ 99
  갑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38.1994)
10.위산(潙山)의 수고우(水牯牛) ․ 102
  갑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38.1994)
11.조주(趙州)의 진불주처(眞佛住處) ․ 105
  갑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38.1994)
12.임제(臨濟)의 사료간(四料揀) ․ 107
  을해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39.1995)
13.설봉(雪峰)의 삼처상견(三處相見) ․ 114
  을해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39.1995)
14.조주(趙州)의 바자감파(婆子勘破) ․ 118
  을해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39.1995)
15.조주(趙州)의 끽다거(喫茶去) ․ 122
  을해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39.1995)
16.현자(蜆子)의 신전주대반(神前酒臺盤) ․ 126
   병자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0.1996)
17.석공(石鞏)의 살활전(殺活箭) ․ 130
  병자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0.1996)
18.보화(普化)의 시성시범(是聖是凡) ․ 134
  병자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0.1996)
19.청원 행사(淸源行思)의 돌부자(돌斧子) ․ 137
  병자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0.1996)
20.암두(岩頭)의 말후구(末後句) ․ 142
  정축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1.1997)
21.기림(祇林)의 목검(木劒) ․ 147
  정축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1.1997)
22.파초(芭蕉)의 주장자(拄杖子) ․ 151
  정축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1.1997)
23.제일구 법문(第一句 法門) ․ 154
  정축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1.1997)
24.만상지중독로신(萬像之中獨露身) ․ 159
  무인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2.1998)
25.풍혈(風穴)의 철우지기(鐵牛之機) ․ 164
  무인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2.1998)
26.일러도 삼십 방[道得也三十棒]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道不得也三十棒] ․ 167
  무인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2.1998)
27.불조(佛祖)의 행리(行履) ․ 171
  무인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2.1998)
28.임제(臨濟) 선사와 왕상시(王常侍)의 문답  ․ 174
  기묘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3.1999)
29.단하 천연(丹霞天然) 선사 ․ 177
  기묘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3.1999)
30.남원(南院)의 일방(一棒) ․ 185
  기묘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3.1999)
31.무정설법(無情說法) ․ 188
  기묘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3.1999)
32.황벽(黃檗)의 주조(酒糟) ․ 192
  경진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4.2000)
33.동산(洞山)의 과자공양차(菓子供養次) ․ 196
  경진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4.2000)
34.삼성(三聖)의 불위인(不爲人) ․ 200
  경진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4.2000)
35.조과(鳥窠)의 포모(布毛)  ․ 204
  경진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4.2000)
36.위산(潙山)의 체(體)와 용(用) ․ 208
  신사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5.2001)
37.임제(臨濟)·보화(普化)의 공양청(供養請) ․ 211
  신사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5.2001)
38.위산(潙山)의 노자우(老牸牛) ․ 215
  신사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5.2001)
39.동산(洞山)의 한명(閑名) ․ 218
  신사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5.2001)
40.홀우금시조(忽遇金翅鳥) ․ 221
  임오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6.2002)
41.앙산(仰山)의 마설(魔說) ․ 227
  임오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6.2002)
42.용아(龍牙)의 선판(禪板) ․ 231
  임오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6.2002)
43.무위진인(無位眞人) ․ 235
  임오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6.2002)
44.여래어(如來語) ․ 238
  계미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7.2003)
45.삼성(三聖)·보수(保壽)의 호환지기(互換之機) ․ 241
  계미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7.2003)
46.능행파(凌行婆)의 거량(擧揚) ․ 244
  계미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7.2003)
47.불진법신(佛眞法身) ․ 251
  계미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7.2003)
48.임제(臨濟)의 빈주구(賓主句) ․ 255
  갑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8.2004)
49.혜충 국사(慧忠國師)의 무봉탑(無縫塔) ․ 257
  갑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8.2004)
50.당기일구(當機一句) ․ 263
  갑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8.2004)
51.산심수한(山深水寒) ․ 267
  갑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8.2004)
52.우두(牛頭)의 친견사조(親見四祖) ․ 273
  을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9.2005)
53.남전(南泉)·귀종(歸宗)·마곡(麻谷)의 원상법문(圓相法門) ․ 282
  을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9.2005)
54.마조(馬祖)의 완월일구(玩月一句) ․ 287
  을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9.2005)
55.일체(一切)를 불위(不爲)라! ․ 291
  병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50.2006)
56.기사회생(起死回生) ․ 298
  무진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2.1988)
57.마조(馬祖)의 전각(展脚) ․ 301
  기사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3.1989)
58.위산(潙山) 삼부자(三父子)의 해몽(解夢) ․ 304
  경오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4.1990)
59.천수천안(千手千眼) 중 정안(正眼) ․ 310
  경오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4.1990)
60.투자(投子)의 기봉(機鋒) ․ 315
  신미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5.1991)
61.오백나한(五百羅漢) 변작수고우(變作水牯牛) ․ 324
  임신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6.1992)
62.대수(大隨)의 수타거(隨他去) ․ 330
  임신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6.1992)
63.서경수검마(西京收劍麽) ․ 334
  계유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7.1993)
64.전법의부법(傳法衣付法) ․ 339
  갑술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해제법어(2538.1994)
65.장사(長沙)의 유산(遊山) ․ 343
  병자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40.1996)
66.수도등고(樹倒藤枯) ․ 347
  갑신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48.2004)
67.남전(南泉)의 주암시(住庵時) ․ 352
  갑신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해제법어(2548.2004)
68.만리무촌초거(萬里無寸草去) ․ 357
  갑신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48.2004)
69.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 ․ 361
  갑신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해제법어(2548.2004)
70.덕산(德山)의 오도(悟道) ․ 365
  을유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49.2005)
71.만덕공덕상(萬德功德像) ․ 371
  병술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해제법어(2550.2006)
72.백양사 1차 무차선대법회 ․ 375
  무인년 8월 18~22일 백양사 1차 무차선대법회 상당법어(2542.1998)
73.불교TV 무상사 초청대법회 상당법어 ․ 397
  병술년 불교TV 무상사 초청대법회 상당법어(2550.2006)
74.오종가풍(五宗家風) ․ 403
  병술년 추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소참법어(2550.09.26.음)
75.서옹당 대종사 각령 향전(西翁堂 大宗師 覺靈 香前) ․ 410
  계미년 12월 19일 전국 선원대표 동화사 조실 진제 분향(2547.2003)
76.노천월하 대종사 각령 향전(老天月下 大宗師 覺靈 香前) ․ 413
  계미년 12월 10일 전국 선원대표 동화사 조실 진제 분향(2547.2003)
77.월산 대종사 각령 향전(月山 大宗師 覺靈 香前) ․ 417
  정축년 9월 10일 전국 선원대표 동화사 조실 진제 분향(2541.1997)
78.대매(大梅)의 즉심즉불(卽心卽佛) ․ 419
  정축년 춘안거 동화사 기본선원 개원식 상당법어(2541.1997)
79.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 424
  정축년 추안거 동화사 기본선원 결제법어(2541.1997)
80.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433
  무인년 춘안거 동화사 기본선원 결제법어(2542.1998)
81.삼성(三聖)의 일할(一喝) ․ 436
  병술년 추안거 동화사 기본선원 결제법어(2550.2006)

전법(傳法)의 원류(源流) ․ 444

법계도(法系圖) ․ 473

後 記 ․ 477

 

1.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대중이 이 주장자 이 진리를 아실 것 같으면,

 堂堂氣宇走雷霆<당당기우주뢰정>하고
 凜凜威風掬霜雪<늠름위풍국상설>이라.
 將軍令下草木變<장군령하초목변>하고
 寶劍一揮千里血<보검일휘천리혈>이로다.

 당당한 기운은 우뢰를 달음박질케하고
 늠름한 위풍은 서리와 눈을 움켜쥠과 같음이로다.
 장군의 명령아래 초목이 빛을 잃고
 보검을 한 번 휘두르매 천 리가 피바다로다.


이러한 당당한 수완과 기봉(機鋒)을 갖춰야사 임운등등(任運騰騰)하고 등등임운(騰騰任運)하여 대장부 활개를 치리라.

석일(昔日)에 약산 유엄(藥山惟儼) 선사께서 회상을 열고 계실 적에 수개월간 법문이 없는지라. 하루는 대중이 법문 듣기를 간청하매, 상당(上堂)하시어 법상(法床)에 좌정(坐定)해 계시다가 홀연히 법상에서 내려오셔서 조실방으로 돌아가셨다.
원주(院主)가 뒤따라가서 여쭙기를,
“모처럼 법상에 오르셨는데 어찌 일언반구(一言半句)도 법을 설하시지 않고 내려오셨습니까?”하니, 약산 선사께서
“경(經)에는 경사(經師)가 있고, 논(論)에는 논사(論師)가 있음이로다.”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이 말의 낙처(落處)가 어디에 있는고?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만약 이러한 법문을 알지 못할진댄, 금년 동안거 석 달 안거 중에 각자 화두를 성성하게 들어서 화두가 일념이 지속되게끔 혼신의 노력을 경주할지어다.
이 견성대오(見性大悟)는 일념삼매(一念三昧)가 지속되어야 깨달음이 오나니, 선방에 앉아서 혼침과 망상에 시간만 낭비하면 삼생 육십겁(三生六十劫)을 닦아도 견성하지 못함이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국에서 제일가는 참선도량, 이 금당(金堂)에서 대오견성을 하게끔 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석일에 덕산(德山), 암두(岩頭), 설봉(雪峰) 3부자(父子)가 있었는데, 암두스님은 참선하여 깨달은 바도 없이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요, 설봉스님은 천오백 대중을 거느린 대선지식이로다.
덕산 선사는 참으로 훌륭한 두 분의 눈 밝은 제자를 둠이로다.

일일(一日)에 덕산 선사께서 공양 시간이 되기 전에 발우를 들고 식당으로 가시는데, 도중에 공양주인 설봉스님이 여쭙기를,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덕산 선사께서 고개를 숙이고 조실방으로 돌아가셨다.
그 광경을 설봉스님이 사형(師兄)되는 암두스님에게 말하니, 암두스님이 듣고는 대뜸,
“덕산 노인이 말후구(末後句) 진리를 알지 못하는구나!”
하였다.
그 말이 덕산 선사의 귀에 들어가니 암두스님을 불러서 물으시기를,
“네가 왜 내가 말후구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고?”
하시니, 암두스님이 덕산 선사의 귀에다 대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은밀히 속삭였다.
그런 후로 뒷날 덕산 선사께서 상당하시어 법문을 하시는데 종전과 판이하게 다르고 당당하게 법문하셨다.
법문을 다 마치시고 법상에서 내려오니, 암두스님이 덕산 선사의 손을 잡고,
“정말 반갑고 즐겁습니다. 스님의 법은 천하 사람이 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3년밖에 세상에 머물지 못합니다.”
하니, 덕산 선사는 과연 3년 후에 열반(涅槃)에 드셨다.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이 공안은 백천 공안 가운데 가장 알기가 어려운 법문이라, 천하 선지식도 바로 보기가 어려움이로다. 이 공안을 바로 보는 눈이 열려야 대오견성을 했다고 인정함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산승이 양팔을 걷어붙이고 이 법문을 점검해서 천하에 공개하리라.

 馬駒踏殺天下人<마구답살천하인>하니
 臨濟未是白拈賊<임제미시백염적>이로다.

 한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니,
 그 위대한 임제 선사도 백염적(白拈賊)이 되지 못함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을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9.2005)
〔禪社芳啣錄 登載〕

 

2.마조(馬祖)의 일할(一喝) - 임제정맥(臨濟正脈)의 가풍(家風)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全機大用不思議<전기대용부사의>라
 三世佛祖倒三千<삼세불조도삼천>이로다.
 有意氣時添意氣<유의기시첨의기>하고
 不風流處也風流<불풍류처야풍류>로다.

 온전한 기틀과 큰 용(用)은 생각하고 의논하지 못하는지라,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도 삼천 리 밖에 거꾸러짐이로다.
 뜻기운이 있는 때에 뜻기운을 더하고
 풍류가 없는 곳에 또한 풍류가 있게 함이로다.


 풍류(風流)가 없는 곳에 풍류가 있게 한다는 것은 살활종탈(殺活縱奪), 기용제시(機用齊示), 자재하고 멋진 풍류를 쓴다는 뜻이니, 이것이 바로 임제(臨濟)의 가풍(家風)이로다.

 금일은 병술년(丙戌年) 하안거(夏安居) 결제(結制)일이라. 모든 사부대중은 이 석 달 안거 중에 ‘어떻게 하면 대오견성(大悟見性)을 할 것인가’에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함이로다.
 금생에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어느 생에 또다시 이 고귀한 해탈법(解脫法)을 만나겠는가? 우리가 부모 형제를 여의고 부처님전에 출가한 것은 위없는 대도(大道)를 성취하기 위함이니,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됨이로다.
  그러니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 석 달 안거 동안에 어떻게든 일념삼매(一念三昧)를 이루어 대오견성(大悟見性)하여 천불 만조사와 어깨를 겨누는 그러한 도인이 되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위의(四威儀) 가운데 혼신의 정력을 쏟아 용맹정진할지어다.

석일(昔日)에 84인의 도인 제자(道人弟子)를 배출한 위대한 마조(馬祖) 선사 회상에 전국의 발심한 납자(衲子)들이 다 모여서 밤낮으로 용맹정진을 하고 있었다. 이때 백장(百丈)스님이 시자(侍者)로 있었는데, 하루는 마조 선사를 모시고 산골의 들을 지나는 차제에, 인기척이 나니 못에 있던 오리들이 푸르륵 날아가거늘, 마조 선사께서 이를 보시고 이르셨다.
“저것이 무엇인고?”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날아가는고?”
“저 산 너머로 날아갑니다.”
백장 시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조 선사께서 시자의 코를 잡아 비트니, 시자가
“아야!”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마조 선사께서
“어찌 날아갔으리오!”
하시었다.
  이에 백장 시자가 절로 돌아와서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는 일주일간 용맹정진하여 코잡아 비튼 도리를 알아냈다.
그리하여 마조 선사의 방 앞에 이르러,
“조실스님! 어제까지는 코가 아프더니 오늘은 코가 아프지 않습니다.”
하고 이르니, 마조 선사께서 다른 시자를 불러 운집종을 치게 하였다.
그리하여 수백 명 대중이 다 운집하고 마조 선사께서는 법상에 오르시어 좌정하고 계시는데, 문득 백장스님이 앞으로 나오더니 절하는 배석 자리를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나가버렸다. 이에 마조 선사께서는 즉시 법상을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백장스님이 배석 자리를 어깨에 메고 나간 뜻은 어디에 있으며, 마조 도인이 대중을 위해 법상에 오르셨다가, 백장스님이 배석 자리를 메고 나간 즉시에 법상에서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간 뜻은 또한 어디에 있음인고?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龍袖拂開全體現(용수불개전체현)이요
 須彌倒卓半空中(수미도탁반공중)이로다.

 어의의 소매를 떨치는데 전체가 드러남이요,
 수미산이 반 허공중에 거꾸로 꽂힘이로다.
 (*御衣: 임금이 조회 때 입는 법의)

백장스님이 다른 산중에 계시다가 수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마조 선사를 친견하게 됨이라. 마조 선사께서 백장스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시고는 법상 각에 걸어둔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셨다. 이에 백장스님이
“이를 바로 쓰십니까? 이를 여의고 쓰십니까?”
하고 물으니, 마조 선사께서 불자를 본래 자리에 걸어두고 하시는 말씀이,
“네가 장차 양편피(兩片皮: 입)를 열어서 후학을 어떻게 지도하려는고?
하니, 이에 백장스님이 법상 각에 걸어 둔 불자를 들어서 보이거늘, 마조 선사께서
“卽此用<즉차용>가? 離此用<이차용>가?
 - 이를 바로 씀인가? 이를 여의고 씀인가?”
하고 물으니, 백장스님이 불자를 본래 걸려 있던 곳에 다시 걸어두었다. 이에 마조 선사께서 벽력같이
“할(喝)!”
하고 ‘일할(一喝)’을 하시니 백장스님이 3일간 귀가 먹었다. 모든 의식을 다 잊고 3일 만에 귀가 뚫리니, 바로 여기에서 대오견성(大悟見性)하였다.

백장스님이 코를 비틂에 당해서는 어떠한 진리를 깨달았으며, 마조 선사의 일할에 3일간 귀가 먹음에 있어서는 어떠한 진리의 눈이 열렸는가를 바로 알아야 함이로다.
구경법(究竟法)의 최고의 향상일구(向上一句)의 눈이 열려야사 일을 다 해 마친 것이지, 법신변사(法身邊事)나 여래선(如來禪)에 있어서는 태산이 가려있음을 알아야 함이로다. 백장스님은 바로 두 번째 친견에 있어서 철벽이 무너진 것이로다. 
 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는 도저히 혼자서는 깨칠 수가 없음이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스승 없이 깨친 이는 천마외도(天魔外道)’라고 못을 박아 놓으셨으니, 조그마한 소견에 만족하지 말고 반드시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여 점검받아야 함이로다. 그래서 선지식께서 아니라고 점검을 하면, 즉시에 ‘알았다’하는 것을 다 놓고 다시 공부해야사 바른 안목(眼目)이 열리게 됨이로다.
 
세월이 흘러 마조 선사께서는 열반(涅槃)에 드시고, 백장 선사께서 회상을 열어 법을 선양하고 계셨다.
하루는 황벽(黃檗)스님이 백장 선사를 참배하여 하루를 머물고, 떠나기 위해 인사를 올리니, 백장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디를 가려는고?”
“마조 선사를 친견하러 가려합니다.”
“마조 선사께서 열반에 드신 지 이미 몇 년이 흘렀네.”
그러자 황벽스님이
“복의 인연이 엷어서 위대한 선지식을 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한탄하였다. 그러고는,
“마조 선사께서는 평소에 어떠한 고준한 법문을 하셨습니까?”
하고 청을 하니, 백장 선사께서 마조 선사와의 재참인연(再參因緣: 위의 ‘卽此用가? 離此用가?’)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벽력같은 마조 선사의 일할에 내가 3일간 귀가 먹었네.”
하시는 말에 즉시 황벽스님이 토설(吐舌: 혀를 쭈욱 내밈)하니, 백장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후일에 마조 선사의 법을 잇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선사님을 만남으로 인해 마조 선사의 큰 기틀의 작용은 보았으나 마조 선사는 친견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마조 선사의 법을 이으면 뒷날 저의 자손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전기대용(全機大用)의 임제가풍(臨濟家風)을 증득하여 일방지사(一方之師)가 되고자 할진대, 마조 선사의 일할의 낙처(落處)를 알아야 함이로다. 이 마조 선사의 일할을 좇아서 백장·황벽·임제로 이어지는 임제정맥(臨濟正脈)의 가풍(家風)이 형성됨이로다.

 금일 결제를 당하여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벽력같은 마조 선사의 일할의 낙처는 어디에 있으며, 마조 선사의 일할에 백장 선사가 3일간 귀가 먹은 그 살림살이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할(喝)!

〔일할(一喝) 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50.2006)
〔禪社芳啣錄 登載〕

 

3.도화(桃花)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建法幢立向上宗旨<건법당입향상종지>는
 錦上添花        <금상첨화>요
 透過荊棘林      <투과형극림>하고
 解開佛祖縛      <해개불조박>하면
 得隱密田地      <득은밀전지>리니
 諸天捧花無路    <제천봉화무로>하고
 外道潛窺無門    <외도잠규무문>이라.
 什麽人 恁麽來   <십마인 임마래>오?

 법의 깃발을 세우고 향상(向上)의 종지(宗旨)를 세움은
 비단 위에 꽃을 더함이요,
 가시덤불을 뚫어 지나가고
 부처님과 조사의 얽힘을 풀어 열면
 은밀한 땅을 얻으리니,
 모든 하늘 천신이 꽃을 올리려 해도 길이 없고
 외도들이 가만히 엿보려 해도 문이 없음이로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옴인고?
 이 뒤에 드는 것을 보라!


금일은 병술년(丙戌年) 동안거 결제일이라. 모든 사부대중은 석 달간 용맹정진을 해서 자기의 이 일을 해결해야 됨이로다. 이 일이라는 것은 생사(生死)에 자재(自在)의 분(分)을 갖추고 역겁세월이 지나도록 진리의 낙을 수용하는 일이로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매불망 간절히 뼈골에 사무치는 각자의 화두를 들어 일념이 지속되도록 혼신의 정력을 다 쏟아야 함이로다. 일념이 지속되는 과정이 오지 않을 것 같으면 수천 수만 생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이로다. 중생은 다겁생으로 중생의 습기만 익혀왔기 때문에, 대신심(大信心)과 대용맹심(大勇猛心)을 내어 화두를 챙기는 가운데 의심을 쭈욱 밀어주고, 또 밀어주고 해서 번뇌와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공부할지어다.
그렇게 정성껏 잡도리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익어져서 밤낮으로 화두가 흘러가다가 문득 참의심이 발동이 걸리게 되는데, 그때는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앉아있어도 밤이 지나가는지 낮이 지나가는지 모르게 되나니, 이러한 일념삼매(一念三昧)의 과정이 와야만 홀연히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게 됨이로다. 그리하면 어떠한 법문에도 석화전광(石火電光)으로 바른 답이 흉금(胸襟)에서 흘러나오게 되어 대장부의 활개를 치게 됨이로다.
이처럼 겨울 석 달 안거 중에 모든 대중이 활구참선으로 대오견성(大悟見性)하여 여탈자재(與奪自在), 살활종탈(殺活縱奪), 기용제시(機用齊示)의 이러한 자재의 수완을 갖출 것 같으면, 활구의 대종사(大宗師)가 되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리라.

2002년 10월 20일에 열린 국제무차선대법회 준비를 위해 2001년 봄에 20여 명의 비구·비구니 스님과 같이 중국대륙을 가게 되었다. 그 넓은 대륙에서 눈 밝은 선지식을 초빙하기 위해 선종본산(禪宗本山)의 9개 사찰을 참방하였다.
제일 먼저,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첫 번째 주석하신 중국 남단(南端)의 광덕사(廣德寺)를 방문하여 그 유래를 들은 후에, 이조사(二祖寺)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조사를 방문하니 주인은 없고 몇몇 객들만 있었다. 그래서 그 걸음으로 다시 삼조사(三祖寺)를 방문하니, 아주 넓은 대륙이라 밤 10시가 다 되어서 도착하였는데, 15~6명의 대중스님네들이 산문에서 마중하고 있고 방장스님도 의자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다. 안으로 들어가 참배하고 차 대접을 받는 좌석에서 방장스님에게 묻기를,
“옛날 삼조 선사께서

   至道無難<지도무난>이나
   唯嫌揀擇<유혐간택>이라.
   但莫憎愛<단막증애>하면
   通然明白<통연명백>하리라.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나
   오직 간택을 꺼림이로다.
   다만 증애가 없으면
   텅 비어 명백하리라. 

라고 법문을 하셨는데, 방장스님께서는 간택(揀擇)이 없을 때에는 어떻게 보십니까?”
하니, 그 방장스님이
“이 신심명(信心銘)을 잘 번역하여 포교에 주력하겠습니다.”
하고 답하기에, 일어서서 사조사(四祖寺)로 갔다.
사조사에 가서 방장스님을 찾아뵙고 묻기를,
“달마스님께서 소림굴에서 9년 면벽(面壁)하신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니, 방장스님이 답을 못하였다.
그 걸음으로 다시 오조사(五祖寺)를 방문하여 참배를 마치고 공양상을 받은 차제에 방장스님에게 묻기를,
“옛날 오조 선사께서는 때로는 점수법(漸修法)을 설하시고 때로는 돈오무생법(頓悟無生法)을 설하셨는데, 지금은 어떠한 법문을 설하십니까?”
하니, 이곳 방장스님 역시 물음에 답을 못하였다.
다시 그 걸음으로 육조(六祖) 선사께서 주석하셨던 보림사(寶林寺)를 방문하여 방장스님에게 묻기를,
“육조 선사께서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이라는 법문을 자주 하셨는데,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니, 이곳 방장스님 역시 명쾌한 답이 없었다.
그런 후로 운문(雲門) 선사께서 주석하셨던 운문사(雲門寺)를 방문하여 방장스님에게 물었다.
“옛날 운문 도인이 취암(翠巖) 선사 회상(會上)에 있을 적에, 취암 선사께서 해제시에 상당하시어 법문하시기를, ‘석 달 동안 모든 대중을 위해서 가지가지의 법을 설했는데, 시회대중은 산승의 눈썹을 보았느냐?’하고 대중에게 물으시니, 운문 선사가 여기에 ‘관(關)’이라 답을 했는데, 이 ‘관(關)’자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방장스님이 말하기를,
“불조(佛祖)의 밀전(密傳)의 경지를 우리가 어찌 논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그 걸음으로 나와서 임제원(臨濟院)을 방문하였다. 저녁예불을 같이 마치고 탑전에 나와서 방장스님에게 물었다.
“절 도량에 옛 탑만 우뚝하고 임제의 가풍은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질 않는구나!”
이곳 방장스님도 물음에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 걸음으로 다시 조주원(趙州院)을 방문하였다. 참배를 마친 후 조주원 방장스님이 일행 모두에게 차 대접을 하였는데, 응접실 벽에 ‘끽다거(喫茶去)’라는 문구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옛날 조주 선사께서는 일생토록 ‘喫茶去’ 법문을 많이 하셨는데, ‘喫茶去’ 법문은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방장스님에게 물으니, 방장스님이 찻잔을 들어 산승에게 내밀거늘,
“그 차는 산승이 먹거니와 산승의 차 한 잔도 화상(和尙)께서 먹어야 옳다.”
하고 산승이 말하였다.
이렇게 9군데 선종의 본산을 참방하여 각각 일구(一句)를 던졌으나 모두 빈 골짜기의 메아리였다. 그러나 조주원의 방장스님은 그나마 찻잔을 내미는 것을 보이기에, 국제무차선대법회에 중국의 대표선사로 초빙하기로 하고 차비와 청첩장을 전달하고 돌아왔다.

중국은 선종의 본산국(本山國)인데, 어찌 이렇게 안목(眼目)이 다 메말랐느냐?
공산화 50년 치하(治下)에 모든 수행법이 다 없어졌기 때문이로다.
일본 임제종(臨濟宗) 묘심사(妙心寺)는 오늘날까지 형식적으로 명맥(命脈)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서옹(西翁) 선사께서 젊은 시절에 일본 임제종의 대학에서 수료한 연고가 있으셨는지라, 서옹 선사의 서첩(書帖)을 가지고 일본의 임제종 총본산에 가서 청첩장을 보여주었다. 이에 허락을 받아 일본 임제종의 대표로서 종현(宗玄) 선사를 모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동양 삼국의 대표선사를 모시고 국제무차선대법회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막상 법문을 들어보니 중국이나 일본에 실다운 안목을 갖춘 이가 없음이라,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이 오직 한 가닥 한국에 머물러 있음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부대중은, 한 가닥 밝은 부처님의 심인법이 단절되지 않고 천추만대에 면면히 이어지도록 정진에 정진을 더하기를 간절히 바람이로다.

석일(昔日)에 위산(潙山) 선사 회상에서 영운(靈雲)스님이 30년간 지내면서 정진에 몰두하였는데, 30년 만에 봄에 도화(桃花)꽃이 만발해 있는 것을 보고 대오견성(大悟見性)하였다. 그리하여 위산 도인께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바치기를,

 三十年來尋劍客<삼십년래심검객>이여
 幾廻葉落幾抽枝<기회엽낙기추지>냐?
 玆從一見桃花后<자종일견도화후>로
 卽至如今更不疑<즉지여금갱불의>로다.

 삼십여 년 간 진리의 보검을 찾는 객이여,
 몇 번이나 잎이 떨어지고, 몇 번이나 가지가 빼어났던고?
 이로 좇아 도화꽃을 한 번 본 후로
 곧 이제에 이르도록 다시 일체법문에 의심이 없더라.

하니, 위산 도인께서 보시고는,
“자연인연(自然因緣)을 좇아 깨달은 자는 만년토록 매(昧)하지 아니함이라.”
하시며 극찬을 하셨다. 그 당시에 현사(玄沙) 선사께서는 그 오도송을 보시고 평(評)을 달리 하셨다.
 
 諦當하고 甚히 諦當<제당 심제당>함이나
 老兄이 堪保未徹在 <노형 감보미철재>로다.

 합당하고 심히 합당하나,
 나이 많은 형이 깨닫지 못한 것을 보존하고 있도다.

위산 도인은 천오백 인의 선지식으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을 하였는데, 현사 선사는 어째서 불긍(不肯)하였느냐?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只許老胡知<지허노호지>하고
 不許老胡會<불허노호회>로다.

 노호가 앎을 허락하고
 노호가 앎을 허락하지 아니함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50.2006)
〔禪社芳啣錄 登載〕

 

4.조주(趙州)와 황벽(黃檗)·임제·(臨濟)의 대담(對談)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識得拄杖子      <식득주장자>하면
 啐啄之機箭抽鋒  <줄탁지기전추봉>이니
 瞥然賓主刹那分  <별연빈주찰나분>이로다.
 不識拄杖子      <불식주장자>라도
 杖頭有眼明如日  <장두유안명여일>하여
  漢來漢現胡來胡現<한래한현호래호현>이로다.

     이 주장자 진리를 알 것 같으면
 줄탁의 기틀은 화살과 칼날을 잡음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손과 주인을 가림이로다.
 이 주장자를 알지 못하더라 해도
 주장자 머리 위에 해와 같은 밝은 눈이 있어서
 한인(漢人)을 만나면 한인을 나투고, 호인(胡人)을 만나면 호인을 나툼이로다.


석일(昔日)에 조주(趙州) 선사께서 행각차(行脚次)에 황벽(黃檗) 선사 회상에 들르시니, 황벽 선사께서 조주 선사 오시는 것을 보고는 방장실(方丈室)로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셨다. 이에 조주 선사께서 법당(法堂)에 들어가서,
“구화구화(救火救火)라!
 불이야! 불이야!”
 하시니, 황벽 선사께서 문을 열고 나와서 조주 선사를 붙잡고 말씀하셨다.
“도도(道道)하라!
 일러라! 일러라!”
 이에 조주 선사께서
“賊過後張弓<적과후장궁>이라.
 도적이 지나간 후에 활을 쏨이로다.”
하셨다.
  
일일(一日)에 조주 선사께서 임제사(臨濟寺)를 방문하여 발을 씻고 있는 차제에, 임제 선사께서 와서 물으시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시니, 조주 선사께서
“마침 노승이 발을 씻는 중이니라.”
하고 대답하셨다. 이에 임제 선사께서 가만히 다가가서 귀를 기울이고 들으시거늘, 조주 선사께서
“알면 바로 알 것이지, 되씹어서 무엇 하려는고?”
하심에 임제 선사께서 팔을 흔들며 가버리시니, 조주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30년간 행각(行脚)하다가 오늘에 처음으로 주각(注脚)을 잘 못 내렸도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조주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須具透頂透底之眼<수구투정투저지안>하야
 處處相逢善知識  <처처상봉선지식>하니
 當機一句千古輝  <당기일구천고휘>로다.

 조주 선사는,
 모름지기 위를 뚫고 아래를 뚫어보는 그러한 눈을 갖추어서
 처처에 선지식을 상봉하니,
 당기일구가 천고에 빛남이로다.

대중은 황벽 선사를 알겠느냐?

 龍虎相撲에 全身廻避難<용호상박 전신회피난>이라.
 雖然如是    <수연여시>나
 好手中에 呈好手      <호수중 정호수>하니
 天上人間能幾幾       <천상인간능기기>냐?
 
 용과 범이 서로 부딪힘에 전신을 회피하기가 어려운지라.
 비록 이와 같으나
 능란한 솜씨에 능란한 솜씨를 바치니,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 몇몇이나 될꼬?

대중은 임제 선사를 알겠느냐?

 臨濟全機格調高<임제전기격조고>라
 棒頭有眼辨秋毫<봉두유안변추호>로다.
 掃除狐兎家風峻<소제호토가풍준>이요
 變化魚龍電火燒<변화어룡전화소>로다.
  
 活人刀殺人劍  <활인도살인검>이여!
 倚天照雪利吹毛<의천조설이취모>로다.
 一等令行滋味別<일등령행자미별>이니
 十分痛處是誰遭<십분통처시수조>아.
 還會臨濟麽    <환회임제마>아?
 蒼天 蒼天     <창천 창천>이로다.

 임제 선사의 온전한 기틀은 격조가 정말로 높고 높은지라,
 주장자 머리에 눈이 있어서 가을철 털끝을 가림이로다.
 야호와 토끼를 쓸어 없애니 가풍이 준걸함이요,
 변화의 어룡을 번갯불에 사룸이로다.
 
 사람을 살리는 칼과 사람을 죽이는 검이여!
 하늘을 비껴 번쩍이니 날카로운 취모검이로다.
 일등의 령(令)을 행함은 그 맛이 특별함이니,
 십분 아픈 곳을 이 누가 만나리오.
 도리어 임제 선사를 알겠느냐?
 아이고! 아이고! 곡(哭)을 함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술년 동안거 결제중 동화사 금당선원 상당법어(2550.2006)

 

5.백양사 2차 무차선대법회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방금 산승이 들어 보인 이 주장자(拄杖子)는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의 생명의 뿌리요, 대대로 내려오는 모든 도인의 바른 눈이로다.
그러한 고로 모든 대중이 이 주장자를 바로 알 것 같으면 일을 다 해마친 요사인(了事人)이 됨이로다. 요사인이 됨은 참사람의 위치에서 진리의 스승이 되고 만인의 사표가 되어서, 주고 빼앗고 죽이고 살리는 이러한 자재의 수완을 갖추게 되는 법이로다.

앞으로 21세기에는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는데 있어 우리 모두가 저마다 큰 그릇이 되어야 하나니,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공포, 불안, 갈등 이러한 것들을 말끔히 씻어 없애야 하는데, 우리는 이미 선(禪)이라고 하는 훌륭한 수행법을 갖추고 있음이로다. 그러니 일상생활 중에 이 선 수행을 꾸준히 닦아 나가야 함이로다.
또한 우리가 나고 날 적마다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선 수행을 일상생활 중에 꾸준히 연마하여 만인(萬人)에 앞서는 지혜를 갖추어야 함이로다. “사람들이 빈한(貧寒)하게 삶은 지혜가 짧아 그렇다”라고 옛 고인들의 말씀하신 바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음을 알아, 바로 믿고 실천해야 할지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만인에 앞서는 지혜를 계발하고, 나고 날 적마다 출세와 복락을 누릴 수 있음인가?
생활 속에 활구참선(活句參禪)을 닦아야 함이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 활구참선을 하는 것인가?

사람 사람의 이 몸뚱이는 부모로부터 받아가지고 지금 이렇게 ‘나다’ 하며 살고 있음이로다. 그러나 이 몸뚱이는 백 년 이내에 썩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니, 이것은 ‘참 나’가 아님이로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이 몸을 받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일상생활하는 가운데 오매불망(寤寐不忘) 간절히 의심하고 챙기고, 챙기고 의심하여 노력하고 노력할 것 같으면 문득 참의심이 발동이 걸리게 되는데, 참의심이 일어나면 그때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보되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되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몸뚱이도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화두 한 생각으로 일념삼매(一念三昧)에 푸욱 빠지게 됨이로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보고 듣는 것을 다 잊었다가, 홀연히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화두가 타파되나니, 바로 이것이 활구참선의 깨닫는 과정이로다. 즉 완전한 ‘참 나’를 찾게 되는 것이로다.
그러면 천사람 만사람이 화두를 챙기고 참선을 하지마는 깨닫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두를 챙기지 아니함으로 인해, 일념이 지속되는 과정이 오지 않기 때문에 견성(見性)을 못하는 것이니, 즉 ‘참 나’를 찾을 수 없음이로다.
이 견성법이라는 것은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로다. 몸과 마음이 일치가 되어 선지식 스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여, 오매불망 자나깨나 뼈골에 사무치는 의정(疑情) 을 일으켜 끊어지지 않고 흘러가는 그 과정이 도래해야만 대오견성(大悟見性)을 할 수 있는 법이로다.

오늘 이렇게 여기 모인 대중들이 이와 같이 선 수행을 연마하여 깨달음을 얻고 ‘참 나’를 찾기를 바라는 뜻에서, 근세에 우리나라가 36년간 일본 사람 치하에 있을 때 크게 깨달으신 두 분, 혜월(慧月) 선사와 운봉(雲峰) 선사, 또 옛날 중국 당나라 때 방(龐) 거사 일가족 법문을 선사하고 내려갈까 하노니 잘 경청하길 바라노라.

혜월 선사는 동진(童眞)으로 출가하여 ‘혜명(慧明)’이라는 법명을 받고, 그 당시에 유명한 경허(鏡虛) 선사를 찾아뵙고 여쭙기를,
“저도 견성도인(見性道人)이 되고자 하오니 화두를 하나 내려 주옵소서.”
하고 지극정성 간청을 했다. 그래서 경허 선사께서 하도 기특해서 화두를 내리시기를,
“허공이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도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함이나, 고명(孤明)하고 뚜렷이 밝은 한 물건이 있어서 능히 법을 설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나니, 고명하고 뚜렷이 밝은 이 한 물건, 이것이 어떤 것인고?”
하는 이 화두를 내려주셨다.
그 화두를 받아가지고 일상생활 가운데 오매불망 화두와 씨름을 하다가, 하루는 짚신을 삼아서 망치로 신골을 치는데, ‘탁’하는 그 망치소리에 화두가 타파되어 ‘이 한 물건’ 의심이 환하게 해소되었다. 그 길로 점검을 받으러 경허 선사를 찾아갔다.
경허 선사께서 마루에서 정진을 하고 계시는 때에 한 사미승이 당당하게 들어오는데, 보니 화두를 타갔던 그 사미승이라. 선사께서 간파하시고 바로 물으시기를,
“고명한 한 물건이 어떤 것이냐?”
하시니, 혜명스님이 동쪽에서 서서 서쪽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가, 다시 서쪽에서 동쪽으로 몇 걸음 걸어가서 딱 섰다.
“어떠한 것이 혜명인고?”
경허 선사께서 재차 물으시니, 혜명스님이 대답하기를,
“저만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모든 성인들도 다 알지 못합니다.”
하니, 여기에서 경허 선사께서
“옳고, 옳다.!”
하고 혜명스님을 인가(印可)하시어, ‘혜월(慧月)’이라는 법호(法號)와 함께 상수제자(上首弟子)로 봉(封)하시고 법(法)을 전하셨다.

그런 후에 혜월 선사께서 남방에 내려오셔서 신도들과 모든 납자들에게 선(禪)을 지도하시고 계셨다.
당시 사중(寺中)에서 농사짓는 소를 한 마리 키웠는데, 혜월 선사께서 잠시 출타하신 틈을 타서 선방 스님들이 어디 가서 소를 팔아 잔뜩 포식을 해 버렸다. 선사께서 돌아오셔서 외양간에 소가 없어진 것을 아시고는, 뒷날 아침 공양 끝에 대중에게 호통을 치셨다.
“대중들은 어서 가서 사중 소를 가져오너라!”
그러자 소를 팔아 포식한 스님들 가운데 한 스님이 나와서 옷을 다 벗더니 큰 방을 기어 다니면서 소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니 혜월 선사께서 나가서 궁둥이를 ‘탁! 탁!’ 치면서,
“이것은 우리 사중 소가 아니다. 사중 소를 가져 오너라!”
하고 다시 호통을 치시고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살인이 났을 법한 일이다. 도인(道人)은 법(法)으로써 이렇게 회향을 하셨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불법이 전래된 이후로 무심도인(無心道人)하면 혜월 선사를 능가할 무심도인이 없다.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혜월 선사가 도인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으므로 신도들이 옥양목 바지와 적삼을 정성껏 지어다 올렸는데, 사중에 재(齋)가 들어와 재물을 살 일이 있어서 선사께서 그 옷을 입고 시장에 나가면, 거지들이 다가와서 부탁을 했다.
“스님, 그 좋은 옷 좀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혜월 선사께서 먼저 옷을 홀랑 벗어 놓고는 딱 기다리고 계시다가, 거지가 옷을 벗으면 그 옷을 입고 오곤 하시니, 신도들이 큰스님 옷을 해드리기가 바빴다.

이러한 생활을 하시다가 한해는 절에서 가장 좋은 호답(好畓) 다섯 마지기를 팔아 산중 논 개간을 하였는데 서마지기밖에 개간을 못했다. 일등 좋은 논 다섯 마지기를 팔면 산중 논을 한 칠팔 마지기는 개간할 수 있는데, 왜 서마지기밖에 개간을 못했느냐? 일꾼들이 일하기가 싫으면,
“스님 법문을 좀 해 주십시오”
하니, 법문을 시작하면 한나절이 다 가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일등 호답 다섯 마지기를 팔아 서마지기밖에 개간을 못했던 것이다. 그러자 상좌들이 하는 말이,
“스님, 이렇게 절 살림을 살아가지고는 대중이 다 굶어죽겠습니다.”
하니, 혜월 선사께서
“이 소견 없는 놈아! 다섯 마지기는 어디 없어졌어?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서마지기 더 불어나지 않았느냐!”
하며 오히려 나무라시니, 이와같이 넓은 세계를 사는 것이 무심도인의 세계이다.

36년간 일본 사람이 통치했던 그 시절에, 남방(南方)에 무심도인 혜월 선사가 유명하다 하니, 하루는 새로 부임한 남총독이 혜월 선사를 방문하러 왔다. 인사를 서로 나누고는 남총독이 하는 말이,
“스님께 한마디 묻고자 합니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가장 높고 깊은 진리입니까?”
하니, 혜월 선사께서
“부처님의 높고 깊은 진리? 귀신 방귀에 털이 났지.”
하셨다. 부처님의 진리를 묻는데, 어째서 귀신 방귀에 털이 났다고 하는가? 이같은 생각지도 못한 답에 남총독이 당황해서 두 말을 못하고 그만 물러갔다.
그런 후에 “남총독이 혜월 선사에게 방망이를 맞았다” 하는 소문이 우리나라는 말 할 것도 없고 일본에까지 전해지니, 남총독의 부하 하나가, ‘내가 그 혜월 선사를 혼을 내리라’하는 복수심에 일본에서 건너와, 장검을 차고 혜월 선사를 찾아왔다. 그러고는 무례하게 혜월 선사 계시는 방에 노크도 안하고 구둣발로 방에 들어서더니 그대로 혜월 선사 목에 칼을 들이대었다.

이때를 당해서 이 가운데 모이신 모든 대중은 뭐라고 해야 되겠는가?

산승이 만약 혜월 선사가 되었다면 곧장 한 마디 던질 것이다.
“시자야!”
그러면 밖에서 시자(侍者)가 “네” 할 것이고, 병사는 아마 혼비백산이 되어 뒤를 돌아볼 것이다. 바로 그 때,
“수건 가져오너라. 수건 가져오너라.”
산승은 바로 이와 같이 하겠다.
그러면 혜월 선사는 어떻게 하였는가? 칼을 목에 대고 있는 그때를 당해 즉시 손가락으로 병사의 뒤를 가리켰다. 그러니 도인에게 칼을 들이댔던 병사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순간 자기를 해칠 사람이 뒤에 있는가 싶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 찰나에 즉시 일어나셔서,
 “내 칼 받아라!”
하며 그 자의 어깨를 치셨다.  그러자 병사가 칼을 거두고는 큰절로 예를 올리며,
 “과연 위대하십니다.”
 하고 물러갔다.
선의 묘미(妙味)가 여기에 있다. 두려움에 다다라도 두려움이 없는 이러한 기봉을 갖춰야 비로소 대장부의 수완을 갖추는 법이다. 이러한 당당한 안목을 갖춘 분이 바로 혜월 선사이셨다.

혜월 선사께서 연로하셔서는 항상 뒷산에 올라가 자루에다 솔방울을 잔뜩 주워담아 가지고와서 군불을 넣으시며 소일(消日)을 하셨다. 절로 돌아오는 중간에 늘 쉬시는 자리가 있었는데, 하루는 선사께서 그 자리에서 쉬시다가 솔방울 포대를 지고 반쯤 일어나는 그 자세로 열반에 드셨으니,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도 이런 열반상을 보인 분이 없다. 이 참선 공부를 잘 해서 바른 진리의 눈이 열리면 이와 같이 힘이 충만하는 법이다.

 운봉 성수(雲峰性粹) 선사는 12세에 출가하여 부처님 경서(經書)를 다 달통(達通)하고 율(律)까지 달통해도 생사를 해결하는 데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참선을 해서 견성도인(見性道人)이 되어서 나고 죽는 고통에서 영구히 벗어나야 되겠다’ 작심을 하고 혜월 선사를 찾아가 그 밑에서 다년간 참선정진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하고 용맹정진을 해도 일념이 안 되었다. 그래서 오대산 적멸보궁(寂滅寶宮)에 가서 백일기도(百日祈禱)를 하였는데, 오직 ‘화두가 일념으로 지속이 되어서 대오견성(大悟見性)을 하여지이다’하고 매일 지극정성 일념으로 발원을 하였다. 백일이 지나 기도를 다 마치고는 곧장 백양사 운문암(白羊寺 雲門庵) 선방에 들어가 용맹정진을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드디어 일념이 지속되는 과정이 도래하여 화두가 타파되니, 그 걸음으로 혜월 선사를 찾아가서 예를 올리고 묻기를,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께서 어느 곳에서 몸을 편히 하고 명(命)을 세웁니까?”
하니, 혜월 선사께서 묵묵히 바로 앉으신 모습을 보였다. 이에 성수(性粹)스님이
“스님, 어찌 산 용(龍)이 죽은 물에 잠겨 있습니까?”
하고 호통을 쳤다.
“너는 그러면 어떻게 하려는고?”
혜월 선사께서 물으시니, 성수스님이 주장자를 들어 보였다. 그러니 혜월 선사께서
“옳지 못하고, 옳지 못하다!”
하시니, 성수스님이
“기러기가 창문 앞을 지나간 지가 오랩니다.”
하였다. 그러니 혜월 선사께서
“내가 너를 속일 수가 없구나.”
하시고, ‘운봉(雲峰)’이란 호와 함께 상수제자(上首弟子)로 봉하시고 전법게(傳法偈)를 내리시어 법을 전하셨다.

운봉 선사께서는 혜월 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으신 후로 제방(諸方) 선원을 두루 다니시면서 한 철 한 철 지내셨는데, 한번은 망월사(望月寺)에 “삼십 년 결사(結社)를 하자”하여 제방의 30~40여명의 발심한 스님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 당시에 조실(祖室)스님으로는 용성(龍城) 대선사를 모셨고, 또 선덕(禪德)은 비구 정화 이후 초대 종정(宗正)이셨던 석우(石友) 선사를 모셨고, 입승(立繩)은 운봉 선사께서 맡아 모든 대중이 주야(晝夜)로 정진에 몰두하였다.
하루는 용성 조실스님께서 법상에 오르셔서 법문하시기를,
“나의 참모습은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함이요, 대대로 내려오는 모든 도인 스님들도 보지 못함이니, 여기에 모인 모든 대중은 어느 곳에서 나를 보려는고?”
하고 이처럼 멋진 법문을 던지셨다. 만약 이렇게 법문을 던지실 것 같으면 여기에 모인 모든 대중 가운데 한마디 이를 사람이 있겠는가?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산승이 만약 그 당시에 있어서 그런 질문을 던져올 것 같으면,

 관(關)!
 
이라 하겠다. 그러면 운봉 선사께서는 어떻게 답을 하셨는가?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
라고 아주 멋진 답을 하셨다. 그러자 용성 조실스님께서 아무 말 없이 법상을 내려오셔서 조실방으로 돌아가셨다. 그러나 산승이 만약 당시의 조실이었다면, “유리독 속에 몸을 감췄다”라는 답에 대해 한마디 하고 법상을 내려가겠노라.


 獅子가 善能獅子吼<사자 선능사자후>로다.

 사자가 멋진 사자후를 하는구나.


운봉 선사께서 이렇게 멋지게 제방에서 사시다가 연로하셔서는 부산의 월내(月內) 묘관음사(妙觀音寺)에서 주석하셨는데, 운봉 선사께서 열반에 드시기 한 달 전에, 제자되는 향곡(香谷) 선사가 여쭈었다.
“스님, 언제 사바세계(裟婆世界)를 여의고 열반(涅槃)에 드시렵니까?”
그러니 운봉 선사께서 대뜸 말씀하시기를,
“토끼 꼬리 빠진 날 가지.”
하셨다.
그리하여 토끼달인 이월 달 마지막 그믐날이 되니, 선사께서 좌우에 가까이 시봉하는 이들을 다 모아놓고는,
“오늘은 내가 열반에 들리니, 너희들 의심처가 있거든 물어라.”
하시니, 제자되는 향곡 선사가 여쭈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진리의 도입니까?”
“진리의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님일세.”
“열반의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야! 아야!”
“선사님께서 입적(入寂)하시면 어느 선사를 의지해서 이 고준한 선법의 지도를 받아야 됩니까?”
이에 운봉 선사께서는
 “저 건너 갈비봉에 비가 묻어 오는데,
 우장삿갓을 둘러쓰고 논에 김을 매러 갈거나.”
하시며 육자배기를 한 수 장단을 치면서 읊으셨다.
그러고는 딱 누우셔서 입적을 하시려고 하니 좌우에서,
“스님, 스님!”
하고 부름에,
“나를 불러 무얼 하려고 하느냐?”
하시고는 그냥 그대로 열반에 드셨다.
근세에 혜월 선사, 운봉 선사와 같이 이렇게 멋진 열반상(涅槃相)을 보이고 간 분들이 드물 것이다.

그러면 무심도인(無心道人) 혜월 선사를 알겠느냐? 번갯불보다도 빠른 기틀을 갖춘 운봉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한 집안[一家]의 밝은 구슬이 옥소반에서 구르니
 철저히 티가 없어서 그 빛이 찬란함이로다.

이마 위 금강의 진리의 눈을 갖추지 못할 것 같으면, 혜월 선사와 운봉 선사를 친견(親見)하기가 어렵도다.

 龐居老         <방거노>여!
 龐居佳聲 震乾坤<방거가성 진건곤>이라.

 방 거사여!
 방 거사의 아름답고 심오한 법문 소리가 하늘과 땅을 진동했노라.

 沒絃彈琴 誰是彈<몰현탄금 수시탄>고?

 줄 없는 거문고를 튕길 자 과연 누구인고?

 龐居一家 彈得妙<방거일가 탄득묘>로다. 
 
  방 거사 일가족이 튕겨 그 묘음(妙音)을 얻음이로다.

방 거사(龐居士) 일가족이 묘한 소리를 얻었다 하니, 그럼 방 거사 일가족이 멋지게 살다간 그 법문을 할까 하노라.
방 거사가 하루는 신심이 아주 돈독히 나서 ‘나도 도인이 되어야겠다’ 하는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그 당시에 유명한 마조(馬祖) 선사와 석두(石頭) 선사, 두 분의 도인을 친견하러 갔다.
석두 도인 처소에 이르러서 예삼배를 올리고 여쭙기를,
“만 가지 진리의 법과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한 자, 과연 누구입니까?”
하고 고준(高峻)한 일문(一問)을 던졌다. 석두 도인께서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묻는 방 거사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묻는 입을 틀어막는 여기에서 방 거사는 진리의 눈이 팔부(八部)가 열렸다. 그래서 큰절을 올리면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하고는 그 걸음으로 마조 도인 처소를 찾아가서 예삼배를 올리고 종전과 똑같이 물었다.
“만 가지 진리의 법과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한 자, 과연 누구입니까?”
이에 마조 도인은 입을 틀어막지 않고,
“네가 네 입으로 서강수(西江水)를 다 마시고 나서 다시 올 때에 그대를 향해 일러주리라.”
하셨다. 방 거사는 이 멋진 한 마디에 대오견성을 하였다.
그런 후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조상 대대의 모든 가보와 재산을 마을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당신은 가족들을 데리고 개울가에 조그만 초막을 하나 지어서 생활하였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부인도 참선 공부로 견성을 하게 했고 딸도 시집을 안 보내고 견성을 하게 해서 온 가족이 견성도인 집안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하루는 방 거사가 딸의 안목을 시험하기 위해 한 마디 법문을 던지기를,
“일백 가지[枝] 풀끝에 불법의 진리 아님이 없구나.”
하니, 딸 영조(靈照)가 받아서 하는 말이,
“아버지, 이빨이 누렇고 백발이 되도록 수도를 하셔가지고 그러한 소견(所見)밖에 짓지를 못합니까?”
하고 자기 아버지에게 호통의 방망이를 놓았다. 그러니 방거사가
“그러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하니, 영조가
“일백 가지 풀끝에 불법의 진리 아님이 없습니다.”
하고 똑같이 나왔다. 영조의 기틀 쓰는 이것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하루는 세 가족이 한 방에 모여 있을 때, 방 거사가 한 마디 던지기를,
“어렵고 어려움이여, 높은 나무 위에 백 석이나 되는 기름을 펴는 것과 같다.”
하였다. 그러니 방거사 보살이 받아서 하는 말이,
“쉽고 쉬움이여, 일백 가지〔枝〕 풀끝에 불법의 진리 아님이 없구나.”
하니, 딸 영조가 하는 말이,
“어렵지도 아니하고 쉽지도 아니함이여, 곤한즉은 잠자고 목마른즉은 차를 마신다.”
하였다. 이 세 분의 설법이 부처님 49년 설법을 다 드러내 놓은 것이다.

그러면 “어렵고 어려움이여, 높은 나무 위에 백 석이나 되는 기름을 펴는 것과 같다” 한 것은 어떠한 진리의 한 모퉁이를 표현한 것이며, “쉽고 쉬움이여, 일백 가지 풀끝에 불법의 진리 아님이 없구나” 하는 것은 어떠한 진리의 한 모퉁이를 표현한 것이며, “어렵지도 아니하고 쉽지도 아니함이여, 곤한즉은 잠자고 목마른즉은 차를 마신다” 한 것은 또한 어떠한 진리의 한 모퉁이를 드러내 보인 것인가?
이것을 바로 아는 이가 있으면 산승이 가지고 있는 이 주장자를 두 손으로 부치겠노라.

하루는 방 거사가 몸뚱이가 낡아 바꿀 인연이 도래해서 방에 앉아있는데 딸 영조가 들어오니,
“오늘 정오에 내가 열반에 들리니, 정오가 되었는가 네가 밖에 가서 해를 한번 보고 오너라.”
고 하였다. 딸이 밖에 갔다 오더니,
“아버지, 오늘은 일식을 해서 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니, 방 거사가
“그러면 내가 나가서 한번 보지.”
하고 밖에 갔다 들어온 사이에 딸이 아버지 좌복에 앉아서 찰나지간에 몸뚱이를 벗어버렸다. 방 거사가 그 광경을 보고는,
“이 요망한 내 딸이 나를 속였구나. 장하다, 내 딸이여!”
하고 칭찬하였다. 여기에는 천불 만조사도 ‘장하다’ 안 할 사람이 없다. 밖에 갔다 들어오는 사이에 애착의 몸뚱이를 고통 없이 벗어버렸으니 칭찬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장하다, 내 딸이여! 너를 화장(火葬)하기 위해서는 천상 나는 일주일 후로 연기해야 되겠다.”
일주일 후에, 화장을 다 해 마치고 일생을 같이 도 닦았던 도반(道伴) 보살이 있지마는 간다 온다 말 안하고 조용히 앉아서 열반에 들었다. 때마침 이웃집 노파가 와서 문을 열고 불러도 전혀 말이 없으므로, 이를 보고는 그 옆 채소밭에서 풀을 매고 있는 방 거사 보살에게 가서
“거사님이 열반에 드신 것 같네.”
하니, 방 거사 보살이 한 손으로는 풀을 당기고 다른 한 손으로는 호미로 풀을 매는 세로 그대로 열반에 들어버렸다.

이는 참으로 위대한 열반상이로다.
이러한 저력이 오직 불교의 선을 통해서 있는 것이지 다른 종교에는 없음이로다. 그래서 불교는 깨달으면 너도 부처요, 나도 도인이 되는 것이다. 심성의 자체는 천사람 만 사람이 동일하지만, 진리의 눈이 열리지 아니하여 자기 심성의 바탕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쓰지 못하는 고로 범부(凡夫)라 하고 중생(衆生)이라 하는 것이지, 쓸 줄 알면 도인이고 부처라 이름하는 것이다.
방 거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법문, “어렵고 어려움이여, 높은 나무 위에 백 석이나 되는 기름을 펴는 것과 같다”, 방 거사 보살이 말한, “쉽고 쉬움이여, 일백 가지 풀끝에 불법의 진리 아님이 없구나”, 방 거사 딸 영조가 말한, “어렵지도 아니하고 쉽지도 아니함이여, 곤한 즉은 잠자고 목마른 즉은 차를 마신다” 하는 이 세 마디의 법문이 천불 만조사의 살림살이 그 자체이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방 거사 일가족의 그 살림살이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산승이 만약 세 분이 각각 한 마디씩 할 때 그 당시에 있었다면,
 주장자로 각각 이십 방씩 선물을 내리겠노라.

고준한 법문을 해서 천 년이 넘도록 만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의 눈을 열게 했는데, 어째서 이십 방씩 방망이를 내린다 하는고?

 二月寒食淸明節<이월한식청명절>에 
 黃金廣野油菜花<황금광야유채화>로다. 

 이월 한식 청명절에
 황금빛 넓은 들에 유채화가 만발했더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경진년 8월 19일 백양사 2차 무차선대법회 상당법어(2544.2000)

 

6.해운정사 국제무차선대법회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天地與我同根<천지여아동근>이요
 萬物與我同体<만물여아동체>로다.

 하늘과 땅은 나와 더불어 뿌리를 같이 함이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이로다.


설사 이렇다 하여도 진리의 한 관문(關門)이 가리어 있나니,


 春生夏長秋收冬藏<춘생하장추수동장>이로다.

 봄에는 만물이 나고, 여름에는 성장하고,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는 갈무리함이로다.


선(禪) 사상은 세계 정신문명의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대안사상으로 진지하게 부각되고 있음이니, 한국의 선 문화의 토양이 동ㆍ서양 문화의 종합적 자량(資糧)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세계 문화를 화해와 융합으로 포용함으로써 인류의 정신문명에 무한한 희망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바탕이 될 것이로다.
지구촌의 진정한 안락과 평화는, 모든 인류가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혜(智慧)가 증장되는 선 수행을 일상생활화 함으로써 가능함이로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일상생활 속에서 바르게 참선하여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혜를 증장하여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 일익을 담당할 수 있겠는가?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지금부터 바른 참선법을 설하리니, 생각을 다 비우고 잘 받아 가질지어다.

사람 사람의 몸뚱이는 백 년 이내에 썩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없음이로다. 그러니 이것은 ‘참 나’가 아니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참 나’인가? 지금 산승(山僧)의 법문을 듣고 있는 주인공, 그것을 바로 알아야 함이로다. 그것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일상생활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오매불망 챙기고 의심하고 챙기고 의심해서 모든 사량(思量), 분별(分別), 망념(妄念)이 일어나지 않게끔 간절히 화두를 들어 챙겨야 하나니, 바로 여기에 선의 묘미(妙味)가 있음이로다.
일상 중에 화두를 챙기는데 있어서는, 눈 앞 2미터 아래에다 화두를 두고 의심하면서 챙겨야 함이로다. 화두를 단전(丹田)에다 둔다던가, 호흡에다 둔다던가, 머리에다 둔다면 움직이는 시간이 많은 우리 인생이기에 일상생활 속에 일여(一如)하게 지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로다. 그러므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화두가 무르익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눈 앞에 2미터 아래에다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로다.
혼침(昏沈)과 망상(妄想)이 일어나는 것은 간절한 화두를 챙기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날 때는 ‘이 생각을 안 해야지’ 하지 말고, 오직 화두만 또록또록 챙기면 스스로 모든 생각은 다 없어짐이로다. 화두 참선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니, 가고 앉고 눕고 목욕하고 일하고 잠자는 그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하는 간절한 한 생각이 흘러가게끔 정진에 힘쓸지어다.
그렇게 노력하고 애쓰다 보면 참의심이 발동이 걸리는데, 그때는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줄도 모르고, 밤이 되어도 밤이 되는 줄도 모르게 되나니, 이러한 참의심이 지속되는 과정이 오게 되면 천사람 만사람이 다 진리의 눈이 열리게 됨이로다.

이러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야 일천 성인(一千聖人)의 이마 위의 일구(一句)를 투과할 수가 있음이로다.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뚫어 지나가지 못하면 죽이고 살리고 주고 빼앗는 이러한 자재의 살림살이를 갖출 수가 없도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투과하는 활구참선을 함으로써 금생(今生)에 견성대오(見性大悟)를 할 수가 있음이라. 이렇게 견성대오를 해야 나고 죽는 때에 이르러 자유자재의 수완을 갖추게 되나니, 그래서 바른 진리의 눈을 깨달은 이는 몸을 천번 만번 받더라 해도 그 깨달은 진리의 눈이 항상 밝아 있게 됨이로다.
이러한 최상의 지혜를 계발(啓發)하는 이 참선법을 모든 대중에게 자세히 밝히노니, 일상생활 속에 바르게 참구해서 큰 지혜를 증득하여 나고 날 적마다 출세와 복락을 누릴지어다.

 오늘날 선(禪)을 선이라 하면 시상가첨(屎上加尖: 똥 위에 똥을 더함)이요,
 선을 선이라 아니하여도 호여삼십봉(好與三十棒: 삼십 방을 맞음)이로다.

 如何卽是<여하즉시>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옳으냐?

 大冶精金이요 澄潭皎月<대야정금 징담교월>이로다.

 쇠를 녹이는 큰 솥에 정미(精微)로운 금이요, 맑은 못에 밝은 달이로다.


중국 당나라 때 조주(趙州) 선사는 10살이 채 되기 전에 암자를 찾아가 출가하여 삭발하고 사미승(沙彌僧)이 되었다. 암주(庵主)인 노승(老僧)이 일생토록 중노릇 잘했다고 자부하였는데 그 사미승을 가르쳐보니 하도 지혜가 밝아 자기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그 당시에 유명한 남전(南泉) 대선지식께 사미승의 지도를 부탁하고자, 남전 도인 처소를 찾아가서 사미승을 남전 도인이 계시는 방으로 인도하니, 남전 도인께서 누워계신 채로 물으셨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서상원에서 왔을진대 상서로운 상(像)을 보았느냐?”
“상서로운 상은 보지 못하였으나 누워 계신 부처님은 보았습니다.”
그러니 남전 도인이 벌떡 일어나 앉으셔서 다시 물으셨다.
“네가 주인이 있는 사미냐,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는 사미입니다.”
“어떤 것이 너의 주인이냐?”
“선사님, 정월달이 대단히 추우니 귀하신 법체(法體) 편안히 보존하옵소서.”
이렇게 사미승이 멋진 답을 하니, 남전 도인께서 원주(院主)를 불러,
“이 사미승을 깨끗한 방에 잘 모셔라.”
하시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이 사미승의 바른 답이 어디서 이렇게 척척 나왔느냐? 부처님의 진리의 견성법(見性法)이라 하는 것은 바른 진리의 안목이 열리면 만년토록 밝아있기 때문이로다.
대중은 남전 도인과 사미승의 문답처(問答處)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問在答處요 答在問處<문재답처 답재문처>로다.

 묻는 것은 답하는 데 있고, 답은 묻는 데 있음이로다.

지금부터 56년 전, 정해년 당시에 문경 봉암사(聞慶 鳳巖寺)에서 “종전에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다 덮어두고 대오견성을 하기 위해 용맹정진을 하자”고 하여 청담(靑潭) 선사, 성철(性徹) 선사, 향곡(香谷) 선사 세 분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발심한 납자(衲子)들이 20여 분 모여들어 정진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루는 성철 선사께서 청담 선사께 물으셨다.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여야 바야흐로 산 사람을 봄이요,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여야 바야흐로 죽은 사람을 본다〔殺盡死人方見活人 活盡死人方見死人〕’ 하는 옛 도인의 법문이 있는데 이 무슨 뜻이냐?”
청담 선사께서 이에 답을 못하시고, 향곡 선사께서도 명확하지 않으셨다. 여기에서 향곡 선사께서 크게 분심이 일어 그 화두를 들고 여름 석 달 동안 오매불망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셨다. 얼마나 열심히 정진을 했던지, 하루는 폭우가 쏟아지는데 탑 난간에 기대어 폭우가 쏟아지는 줄도 모르고 화두일념(話頭一念)에 푹 빠져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삼칠일 동안을 화두일념삼매에 푹 빠져 자기의 몸뚱이까지도 다 잊어버렸다가, 하루는 도량을 걷는 중에 당신 손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하셨다.
그리하여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기를,

 忽見兩手全體活<홀견양수전체활>하니 
 三世諸佛眼中花<삼세제불안중화>로다. 
 千經萬論是何物<천경만론시하물>인고? 
 從此佛祖總喪身<종차불조총상신>이로다. 

 홀연히 두 손 보고 전체가 드러나니,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눈[眼] 가운데 꽃이로다.
 일천 경과 만 가지 논문이 이 무슨 물건인고?
 모든 부처님과 도인이 이를 좇아 생명을 잃는도다.


이렇게 오도송을 읊으신 후에 즉시 성철 선사를 찾아가서,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여야 바야흐로 산 사람을 봄이요,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여야 바야흐로 죽은 사람을 본다’ 하는 법문의 뜻을 네가 물었으니 한번 일러 보아라!”
하고 물으시니, 성철 선사 본인도 우물쭈물 답을 못하셨다. 그래서 멱살을 잡고 흔들어 놓고는 다시 한 가지를 물으셨다.

중국 당나라 때 위산(潙山) 도인이라고 하는,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고 참선지도를 하셨던 위대한 선지식이 계셨다. 그 밑에 앙산(仰山), 향엄(香嚴)이라는 두 분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는데, 매일 아침 위산 도인께 문안인사를 드렸다.
하루는 상수제자(上首弟子)인 앙산 스님이 문안을 들어오니, 위산 도인께서 누워계시다가 몸을 한 바퀴 돌아누우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방금 꿈을 꿨는데 그대가 한번 해몽(解夢)을 해 보게.”
하셨다. 그 말을 듣고는 앙산 스님은 즉시 그릇에 물을 잔뜩 떠다가 위산 도인의 앞에다 놓고 나갔다.
다음에 향엄 제자가 들어오니, 또 종전과 같이 몸을 한 바퀴 돌아누우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방금 꿈을 꿨는데 그대가 해몽을 한번 해 보게.”
하셨다. 이에 향엄스님은 밖에 나가더니 차를 한 잔 잘 다려서 위산 도인 앞에다 놓았다. 그러니 위산 도인께서 일어나 앉아서 웃으시며,
“두 명의 나의 제자가 부처님 당시의 신통제일(神通第一) 목련존자의 신통보다 뛰어나구나.”
하고 칭찬을 하셨다.
 한 분은 해몽을 하라 하는데 그릇에다 물을 떠다 놓고, 한 분은 차를 한 잔 정성껏 다려 놓았다.

이 대문(大文)을 들어 향곡 선사께서 성철 선사께 물으니 또한 명확한 답을 못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멱살을 잡고 절 대문 밖으로 성철 선사를 끌어내시고는,
“이것을 답을 못하면 절 대문을 들어올 수 없다.”
이렇게 명을 내리고는 대문을 닫아버리셨다.
성철 선사께서는 절친한 십 년 도반의 서릿발 같은 명을 순수히 받아들이고는, 며칠간 먹고 자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밤낮으로 이 화두와 씨름해서 일념삼매(一念三昧)가 지속이 되어 화두를 타파하셨다. 그래서 밤중에 돌멩이를 가지고 절 대문을 치니 온 산이 쩌렁쩌렁 울렸다. 대중들이 공비가 내려온 줄 알고 다 잠을 깼는데, 향곡 선사께서는 바로 알아차리고 절 대문에 이르러 말씀하시기를,
“일러라!”
하니, 성철 선사께서 바로 답을 내놓으셨다. 이에 대문을 열어주고는 두 분이서 춤을 추시며 좋아하셨다.

 이처럼 선의 최고의 안목을 밝히는데 있어서는 두 분과 같은 순수한 마음자세를 갖추어야 부처님의 최고의 살림살이를 맛볼 수가 있는 법이다. 지금은 두 분 다 고인(故人)이 되셨지만 한국 선종사의 안목(眼目)에 위대한 진일보를 이루신 대선사들이셨다.


◀ 법 거 량 ▶

【질문자 1】
질    문 : 오늘 법회가 무슨 법회입니까?
진제선사 : 허물이 만천하에 가득합니다.
질    문 : 개구즉착(開口卽錯)이오. 입을 연즉은 그르쳤습니다. 내려오시오!
진제선사 : 차나 한 잔 드시오!
질    문 : 내려오시오!
진제선사 :
할(喝)! 〔일할(一喝) 하시다.〕

【질문자 2】
질    문 : 제가 ‘임제 사빈주(臨濟四賓主)’에 대해 묻겠습니다. 어떠한 것이 ‘임제 사빈주’ 가운데 주중주(主中主)의 도리입니까?
진제선사 : 구중궁궐리(九中宮闕裏)에 좌(坐)하니, 일천 부처님도 보기가 어려움이로다.
질    문 : 어떠한 것이 주중빈(主中賓)입니까?
진제선사 : 만리강상(萬里江上)에 백구(白鷗)가 훨훨 낢이로다.
질    문 : 빈주(賓主)의 상거(相距)는 얼마나 됩니까?
진제선사 : 명월(明月)이 비치니 청풍(淸風)이 붊이로다.
질    문 : 스님의 수중(手中) 주장자는 어디로 좇아 왔습니까?
진제선사 : 불시불시(不是不是)로다.
질    문 : 필경 그 주장자는 어디에 안심입명(安心立命) 합니까?
진제선사 : 구구(九九)는 삼십육(三十六)이로다.

【질문자 3】
질    문 : 만약 당시에 선사님께서 조주스님을 대신하셨다면 남전스님께서 “상서로운 상(像)을 봤느냐?” 할 때 뭐라고 한 마디 하시겠습니까?
진제선사 : 산승이 만약 당시에 조주 사미가 되었던들, 동쪽에서 몇 걸음 걸어 서쪽에 섰다가 다시 서쪽에서 몇 걸음 걸어 동쪽에 서리라.
질    문 : 어떠한 것이 향상(向上)의 진리입니까?
진제선사 : 만 리(萬里)에 기골퇴(起骨堆)라. 백골(白骨)이 만 리에 즐비함이로다.
질    문 : 그러면 향하(向下)의 진리는 어떤 것입니까?
진제선사 : 대지(大地)의 산과 물이로다.

【질문자 4】
질    문 : 스님께서 지금까지 하신 말씀의 소리는 어디에 담았습니까?
진제선사 : 한 마디도 담은 바가 없소.
질    문 : 그 소리가 어디서 오고 있습니까?
진제선사 : 한 바가 없는데 온 바가 있겠소?
질    문 : 지금 오고 있는 그 소리는 어디서 오고 있습니까?
진제선사 : 할(喝)! 〔일할(一喝) 하시다.〕
질    문 : 끝도 없고 가도 없는 무변광야(無邊廣野)에 시간세월 또한 무량광(無量廣)에 흔적도 없는 나는 무(無)입니다. 소리가 없는 자리에서 소리가 오고 그 소리를 만들어 쓰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만들어 써버리는데, 그 본래 소리를 말씀해 주십시오.
진제선사 : 쿵-!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다.〕

【질문자 5】
질    문: 부처와 중생과 마음, 이 셋이 차별이 없다 했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진제선사 : 차별이 없다 해도 삼십 방을 맞아야 돼!
질    문 : 예?
진제선사 : 차별이 없다 해도 삼십 방을 맞아야 돼!
질    문 : 스님께서 저에게 질문을 해 주십시오.
진제선사 : 아까 조주 도인께서 머리에 신을 이고 나간 뜻을 한번 일러 보게.
질    문 : 〔선사님께 큰절로써 예삼배를 올리다.〕
진제선사 : 옳지 못하고, 옳지 못해!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임오년 10월 20일 해운정사 국제무차선대법회 상당법어(2546.2002)

 

7.동화사 담선대법회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卽此見聞非見聞<즉차견문비견문>이요
 無餘聲色可呈君<무여성색가정군>하니
 箇中若了全無事<개중약요전무사>하면
 體用無妨分不分<체용무방분불분>하리라.

 이 보고 듣는 것이 보고 듣는 것이 아니요,
 남음이 없이 모든 소리와 형상 있는 것을 그대들에게 바치나니,
 이 소리와 빛깔, 모양 그 가운데 온전히 일이 없는 줄을 알 것 같으면,
 진리의 체와 진리의 용을 나누고 나누지 아니하는데 방해롭지 아니하리라.

 선(禪)을 선이라 하여도 시상가첨(屎上加尖: 똥 위에 똥을 더함)이요,
 선을 선이라 아니하여도 참수멱활(斬首覓活: 목을 베고 삶을 찾음)이로다.

 如何卽是<여하즉시>아?
 어떻게 해야 옳으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一片白雲江上來<일편백운강상래>하고
 幾條綠水岩前過<기조녹수암전과>로다.

 한 조각 흰 구름은 강 위에 떠 있고
 몇 줄기 푸른 물은 바위 앞을 지나감이로다.


마조(馬祖) 도인은 유사 이래 가장 많은 도인 제자를 두었는데 무려 84인의 도를 깨달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안목이 투철하고 날카로운 기틀을 갖춘 이가 귀종(歸宗) 선사, 남전 보원(南泉普願) 선사, 백장(百丈) 선사였다.
귀종 선사와 남전 선사는 한 도인 밑에서 법을 받아 사형·사제가 되어 30년 동안 행각(行脚)을 한 도반이었다.
하루는 두 분이 바랑을 잔뜩 짊어지고 행각을 하시다가 목이 말라 차를 한 잔 마시려고 바랑을 풀어 놓고는 차를 달이고 계시는 차제에, 사제인 남전 선사께서 사형인 귀종 선사께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종전에 인연사(因緣事)를 논한 것들은 오늘 다 놔두고, 어떠한 것이 진리의 가장 최고의 극치사(極致事)인가?”
하시니, 귀종 선사께서 손가락으로 앞의 땅을 가리키면서,
“저 자리에 암자(庵子)를 지으면 좋겠다.”
하셨다. 그러니 남전 선사께서 받아서 하시는 말씀이,
“암자 짓는 것은 놔두고, 어떤 것이 극칙(極則)의 진리인가?”
하시니, 귀종 선사께서 차물 달이던 화로를 발로 차버리셨다. 두 분이서 목이 말라 차를 마시려고 달이던 냄비를 차 버리니, 남전 선사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대는 차를 마셨지만 나는 아직 차를 못 마셨네.”
이렇게 나오셨다. 이에 귀종 선사께서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는 한 방울 물도 녹이기 어렵도다.”
이렇게 남전 선사의 살림살이를 점검하셨다.
그러니 남전 도인께서 더 이상 문답을 하지 않고 그만두셨다.

이와 같이, 가장 고귀한 것은 도인 스님네들이 만나서 진리의 세계를 논하고 서로 주고받는 법의 문답이로다. 이것은 천추(千秋)의 역사에 남음이로다.
발심한 스님네들이 이러한 법문을 듣고 진리의 눈이 열리면 그 이상 값진 것이 없도다. 또 이 법문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는 여기에서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고준한 진리의 눈이 열리어 만인이 우러러보는 진리의 스승이 됨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남전 선사와 귀종 선사의 이 문답의 살림살이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碁逢敵手難藏行  <기봉적수난장행>이요
 龍虎相搏難兄難弟<용호상박난형난제>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두 적수가 만나서 바둑을 두는데, 상대가 한 수를 놓으면 다음 수를 어디에 놓기 위해서 이 한 수를 놓는지를 서로가 다 꿰고 있음이로다.

 기봉(奇峰)의 적수를 만나면 감추어 행하기가 어려움이요,
 용과 범이 서로 부딪힘에 형이 되기 어렵고 아우 되기가 어려움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신년 9월 4일 동화사 담선대법회 상당법어(2548.2004)

 

8.주장자(拄杖子)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이 주장자(拄杖子)와 불자(拂子)는 모든 부처님의 생명의 뿌리이며 진리의 안목(眼目)이로다.
 생명의 뿌리와 진리의 안목을 논(論)하건대,
 석가와 달마는 삼천 리 밖에 거꾸러짐이니,
 야노(野老)들은 손뼉을 치며 ‘하하〔㰤㰤〕!’라고 웃음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鳳凰棲梧桐<봉황서오동>하고
 白鶴舞公山<백학무공산>이로다.

 봉황(鳳凰)은 오동(梧桐)나무에 깃들고,
 백학(白鶴)은 팔공산(八公山)에서 춤을 춤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봉대식 및 결제법어(2538.1994)

 

9.운암(雲岩)의 대비수안(大悲手眼)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放開日月明<방개일월명>이요
 把定乾坤黑<파정건곤흑>이라.
 一箚不廻頭<일차불회두>하면
 滿地生荊棘<만지생형극>이로다.
 龍宮海藏兮<용궁해장혜>여!
 非多    <비다>요
 電光石火兮<전광석화혜>여!
 未急      <미급>이로다.

 놓아 여니 일월이 밝음이요,
 잡아 정함에 건곤(乾坤)이 캄캄함이라.
 한 번 찌르는데 머리를 돌이키지 못하면
 땅에 가득히 가시덤불이 생기도다.
 용궁에 팔만 사천 법문을 감춤이여!
 많은 것도 아님이요,
 전광석화여!
 빠름이 아니도다.


석일(昔日)에 운암(雲岩) 선사께서 도오(道悟) 선사께 물으시기를,
“대비(大悲)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허다한 손과 눈을 써서 무엇함이닛고?”
하시니, 도오 선사께서 답하시기를,
“사람이 밤에 손을 등 뒤로 하고 목침(木枕)을 만지는 것과 같으니라.”
하시니, 운암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제가 그 말한 뜻을 압니다.”
“네가 어떻게 알았는고?”
“몸을 두루함이 이것이 눈입니다.”
이 말에 도오 선사께서
“이르기는 잘 일렀으나 다만 팔부(八部)만 일렀도다.”
하고 점검을 하셨다. 그러니 운암 선사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사형(師兄)은 그러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시니, 도오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전신(全身)을 통한 것이 이 눈이니라.”
하시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몸을 두루한 것이 옳으냐, 몸을 통한 것이 옳으냐?
편신(遍身)과 통신(通身)은 놔두고 어느 것이 바른 눈〔正眼〕인고?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거좌(據坐)해 보이시고 문득,〕
 
 할(喝)!

〔일할(一喝)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38.1994)

 

10.위산(潙山)의 수고우(水牯牛)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放去收來得自由<방거수래득자유>어니
 不堪憂處亦堪憂<불감우처역감우>로다.
 可憐滯句承言者<가련체구승언자>여!
 爭是爭非空白頭<쟁시쟁비공백두>로다.
 離却兩頭都放下<이각양두도방하>하고
 無邊廣野任閑遊<무변광야임한유>어다.

 놓아 가고 거두어 옴에 자유를 얻음이니,
 근심이 없는 곳에 또한 심히 근심함이로다.
 불쌍하다, 글귀에 막히고 말을 따르는 자여!
 옮음을 논하고 그름을 논하다가 공연히 머리가 희어지도다.
 양변(兩邊)을 여의어서 다 놓아 버리고
 가없는 넓은 들에 한가로이 놀지니라.


석일(昔日)에 위산(潙山) 선사께서 법상(法床)에 오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노승(老僧)이 백 년 후, 산 아랫마을의 단월가(檀越家)에 한 마리 물빛 암소[一頭水牯牛]가 되어 있으리니, 왼쪽 옆구리에 다섯 자를 쓰되 ‘위산승 아무개[潙山僧某甲]’라 하겠다. 그때를 당해서, 이 ‘위산승(潙山僧)’을 ‘수고우(水牯牛)’라 부르겠느냐, ‘수고우’를 ‘위산승’이라 부르겠느냐? 필경에 뭐라고 해야 되겠느냐?”
하시니, 앙산(仰山)스님이 나와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눈을 뜨고 바로 보라.

  一身兩名不思議 <일신양명부사의>라.
 有時遊溪邊孤峰上<유시유계변고봉상>이로다.
 
 한 몸에 두 이름 사의(思議)하기 어려운지라.
 때로는 시냇가에서 놀다가 때로는 고봉상(孤峰上)에 있도다.

 潙山父子能通變<위산부자능통변>하고
 具神通語黙自在<구신통어묵자재>로다.

 위산 부자(父子)는 통(通)과 변(變)에 능하고
 신통(神通)을 갖추어서 어묵(語黙)에 자재하도다.

 비록 이와 같으나,
 산승의 수중봉(手中棒)을 면치 못함이로다.

 할(喝)!

〔일할(一喝)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38.1994)

 

11.조주(趙州)의 진불주처(眞佛住處)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有無與奪俱拈却<유무여탈구념각>하고
 突出荒郊老大蟲<돌출황교노대충>하니
 哮吼一聲天地靜<효후일성천지정>인데
 自然颯颯起淸風<자연삽삽기청풍>이로다.

 유무여탈(有無與奪)을 함께 잡아 놓아버리고
 넓은 들에 늙은 범을 돌연히 드러내니
 사자의 울부짖는 한 소리에 천지가 고요한데
 자연히 시원한 맑은 바람이 붊이로다.


석일(昔日)에 조주(趙州) 선사께서 상당하시어 법문하시기를,
“금부처는 용광로를 건너지 못함이요,
목불(木佛)은 불〔火〕을 건너지 못함이요,
진흙부처님은 물을 건너지 못함이라.”
하시었다.

그러면 진불(眞佛)은 어느 곳에 있음인고?
대중은 속도속도(速道速道)하라!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구중궁궐리(九重宮闕裏)에 앉으니
 부처의 눈을 가진 이도 또한 보기 어려움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38.1994)

 

12.임제(臨濟)의 사료간(四料揀)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擬心開口隔山河<의심개구격산하>요
 寂黙無言也被呵<적묵무언야피가>라.
 舒展無窮又無盡<서전무궁우무진>이니
 卷來絶迹已成多<권래절적이성다>로다.

 마음을 일으켜 입을 열면 산하가 막힘이요,
 고요하고 고요해서 말이 없더라 해도 또한 꾸짖음을 입음이로다.
 펴고 폄이 다함이 없음이나 또한 다함이 없음이니
 걷어 옴에 자취가 끊어짐이나 이미 많은 것을 이룸이로다.
 

일일(一日)에 임제(臨濟) 선사께서 시중(示衆)할 때에 이르시되,
“내가 황벽(黃檗) 선사 처소에서 세 차례 불법의 적적대의(的的大義)를 묻다가 세 번을 육십(六十) 방망이를 맞았는데 쑥대로 두드리는 것 같았다. 이제 다시 한 방망이를 맞고 싶은데, 누가 나를 위해서 때릴런고?”
하시니, 이 때에 대중 가운데에 어느 수좌가 나와서 이르되,
“제가 때리겠습니다.”
함에, 임제 선사께서 주장자를 들어 수좌에게 내미니, 그 수좌가 잡으려고 하거늘 임제 선사께서 문득 때리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임제 선사의 응용처(應用處)를 잘 보라.

 與奪自在 照用同時<여탈자재 조용동시>로다.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함에 자유자재하며
 조(照)와 용(用)이 동시(同時)로다.

임제 선사는 종사(宗師) 중에 명안(明眼) 종사라.
사해오호(四海五湖)의 견성참구자(見性參究者)는 임제 선사의 활발발지(活鱍鱍地)를 잘 보라.

임제 선사는 사료간(四料揀)으로써 학자들을 제접(提接)함이라.

 奪人不奪境<탈인불탈경>이며
 奪境不奪人<탈경불탈인>이며
 人境兩俱奪<인경양구탈>이며
 人境俱不奪<인경구불탈>이로다.

 때로는 사람은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아니하며
  때로는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아니하며
 때로는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으며
 때로는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지 아니함이로다.

이와 같이 납자(衲子)를 제접하였다.

만약 산승에게,
“어떤 것이 사람은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 올 것 같으면,

 靑山有路無人到<청산유로무인도>로다.
 
 청산에 길은 있으되, 이르는 사람이 없도다.

또,
“어떤 것이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 올 것 같으면,

 牧童吹笛天地驚<목동취저천지경>이로다.

 목동이 젓대를 부니 천지가 놀램이로다.

또,
“어떤 것이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 올 것 같으면,

 萬里絶往來<만리절왕래>로다.

 만 리에 왕래가 끊어짐이로다.

또,
“어떤 것이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 올 것 같으면,

 江南三月花爭發<강남삼월화쟁발>이요
 野老相逢勸酒歌<야노상봉권주가>로다.

 강남 삼월에 꽃들이 다투어 핌이요,
 일 없는 늙은이들이 서로 만나 술을 권하며 노래하도다.

라고 하리라.

 如何是賓看主<여하시빈간주>이닛고?
“어떤 것이 손님이 주인을 보는 것입니까?”

 訪問知識辨來機<방문지식변래기>하야
 獨尊獨行無伴侶<독존독행무반려>로다.

 선지식을 방문하여 오는 기틀을 가려서
 홀로 높고 홀로 행하니 벗이 없음이로다.

 如何是主看賓<여하시주간빈>이닛고?
“어떤 것이 주인이 손님을 보는 것입니까?”

 坐觀雲起雲滅  <좌관운기운멸>하다가
 全機大用任自在<전기대용임자재>로다.

 앉아서 구름이 일어나고, 구름이 멸함을 보다가
 전기대용(全機大用)을 자재하게 씀이로다.

 如何是主看主<여하시주간주>이닛고?
“어떤 것이 주인이 주인을 보는 것입니까?”

 御殿乞命不容恕<어전걸명불용서>로다.

 어전에 꿇어 앉아 용서를 비나, 용서하지 못함이로다.

 如何是賓中賓<여하시빈중빈>이닛고?
“어떤 것이 손님 가운데 손님입니까?”

 韓獹逐塊<한로축괴>니라.

 한(韓)나라의 개가 흙덩이를 쫓아가도다.

산승의 문답공안(問答公案) 점검을 제방(諸方)에 일임(一任)하노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을해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39.1995)

 

13.설봉(雪峰)의 삼처상견(三處相見)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藏身須要無蹤跡<장신수요무종적>이면
 碧眼胡僧難辨白<벽안호승난변백>이요
 沒蹤跡處莫藏身<몰종적처막장신>하면
 門門廓達了諸塵<문문확달요제진>이로다.
 獨來將謂無儔侶<독래장위무주려>나
 鬧裏忽然逢古人<요리홀연봉고인>이라.
 柳錦含金猶畏冷<유금함금유외냉>이요
 梅花破雪已成春<매화파설이성춘>이라.
 阿儂手眼通身是<아농수안통신시>하니
 善應無方處處眞<선응무방처처진>이라.
 處處眞<처처진>이여!
 山是山<산시산>이요
 水是水<수시수>니라.

 몸을 감추되 모름지기 종적(蹤跡)이 없으면
 눈 푸른 호승(胡僧)도 가리기가 어려운 법이요,
 종적이 없는 곳에 몸을 감춤이 없으면
 문을 활짝 여니 모든 티끌이 없도다.
 홀로 옴에 장차 짝이 없다 하나
 번잡한 가운데 홀연히 고인(古人)을 만남이라.
 버들이 금(金)을 머금음에 오히려 차가운 것을 두려워함이요,
 매화꽃이 눈 속에서 피어나니 이미 봄이 왔음이라.
 너의 손과 눈이 몸을 통한다 하니
 잘 응(應)하되 모남이 없으면 처처가 진(眞)이라.
 처처진(處處眞)이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석일(昔日)에 설봉(雪峰) 선사가 계셨는데, 하루는 설봉 선사께서 마을에 들렀다가 절에 돌아와서 대중에게 법문하시기를,
“망주정(望州亭)에서 여러분들과 더불어 서로 만났고, 오석령(烏石嶺)에서도 여러분들을 서로 보았으며, 지금 승당(僧堂) 앞에서도 여러분들과 서로 만났다.”
라고 하셨다.
그런 후에 보복(保福) 선사가 설봉 선사의 법문을 들어 아호(鵝湖) 선사에게 묻기를,
“승당 앞에서 서로 본 것은 그만 두고, 망주정과 오석령에서 서로 본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고?”
하니, 아호 선사가 뛰어서 방장실로 돌아가거늘, 보복 선사는 문득 승당으로 들어갔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설봉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세 곳에서 다 서로 보았다 하니, 과연 천오백 인의 선지식이로다.

대중은 아호 선사와 보복 선사를 알겠는가?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투정투저(透頂透底)하신 종사(宗師)의 눈을 갖춘지라.

필경에는 어떠한고?

 官不容針 私通巨馬<관불용침 사통거마>로다.

 법(法)에는 바늘도 용납하지 못하나
 사사로이는 큰 말〔馬〕이 통하도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을해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39.1995)

 

14.조주(趙州)의 바자감파(婆子勘破)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至音絶韻    <지음절운>이요
 妙曲非聲    <묘곡비성>이라.
 通身不掛寸絲<통신불괘촌사>하여
 赤體全無忌諱<적체전무기휘>로다.
 諸人        <제인>이여!
 切莫拈饅舐指<절막염만지지>며
 直須截斷舌頭<직수절단설두>하여
 放下身心    <방하신심>하면
 自然快活    <자연쾌활>하리라.
 眼若不睡    <안약불수>면
 諸夢自除    <제몽자제>하고
 心若不異    <심약불이>면
 復名何物    <부명하물>이리오.
 快活快活    <쾌활쾌활>이로다.  

 지극한 소리는 운율이 끊어짐이요,
 묘한 곡은 소리가 아닌지라.
 몸 전체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아니하여
 벌거벗은 몸에 온전히 싫어하고 꺼림이 없도다.
 모든 사람이여!
 만두를 잡고 손가락을 핥지 말 것이며,
 곧 모름지기 설두(舌頭)를 끊고
 몸과 마음을 놓으면
 자연히 쾌활하리라.
 만약 잠이 없으면
 모든 꿈이 스스로 없어지고
 마음이 만약 다르지 아니하면
 다시 무슨 물건이라 이름하리오.
 쾌활, 쾌활이로다.


석일(昔日)에 오대산(五臺山)으로 가는 길가에 한 노파가 있어 수좌들이 오다가 그 노파에게 묻기를,
“오대산은 어디로 가오?”하면, 노파는 대답하기를,
“곧장 가시오.”
하여, 수좌가 서너 걸음 내딛으면 노파는
“좋은 스님이 또 이렇게 가는구나!”
하였다.
나중에 어떤 수좌가 조주(趙州) 선사께 이 일을 이야기했더니,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노승이 그 노파를 감파(勘破)하리라.”
하셨다.
이튿날 선사께서 노파에게 가서 물으시기를,
“오대산은 어디로 가오?”
하시니, 노파가
“곧장 가시오.”
하여, 선사께서 서너 걸음 내딛으니 종전과 같이,
“좋은 스님이 또 이렇게 가는구나!”
하고 대답하는지라. 이에 선사께서 그대로 돌아와서 대중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그대들을 위해 그 노파를 혼내주었다.”
하셨다.

이에 산승(山僧)이 묻노니,
조주 선사가 오대산에 이르러 모든 스님네와 같이 오대산 가는 길을 노파에게 물었거늘, 어느 곳이 노파를 감파한 곳이냐?
감파한 곳을 분명히 살필지어다.

 산승이 보건대,
 조주 선사가 노파에게 감파당한 지가 오래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一勘破二勘破    <일감파이감파>여!
 將謂候白更有候黑<장위후백갱유후흑>이로다.

 일 감파, 이 감파여!
 장차 후백이라 이르더니 다시 후흑이 있음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을해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39.1995)

 

15.조주(趙州)의 끽다거(喫茶去)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宗師驗人端的處<종사험인단적처>는
 等閒開口便知音<등한개구변지음>이라.
 覿面若無靑白眼<적면약무청백안>이면
 宗風爭得到如今<종풍쟁득도여금>이리오.

 종사(宗師)가 사람을 시험하는 단적처(端的處)는
 한가로이 입을 엶에 문득 지음(知音)함이로다.
 바로 면전을 대하여 청백안(靑白眼)이 없으면
 어찌 종풍(宗風)이 오늘에 이름을 얻으리오.


석일(昔日)에 조주(趙州) 선사께서 어떤 수좌에게 물으시되,
“일찍이 여기에 이르렀느냐?”
하시니, 수좌가 대답하되,
“일찍이 이르렀습니다.”
하니,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喫茶去<끽다거>하라.
 차나 한 잔 마셔라.

하시었다.
또 한 수좌에게 물으시되,
“일찍이 여기에 이르렀느냐?”
하시니, 수좌가 대답하되,
“일찍이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니,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차나 한 잔 마셔라.”
하시었다. 이에 원주(院主)가 묻기를,
“어찌하여 일찍이 이르렀던 이도 ‘차나 한 잔 마셔라’하고, 일찍이 이르지 못했던 이에게도 ‘차나 한 잔 마셔라’하십니까?”
하니, 선사께서
“원주야!”
하고 부르시니, 원주가 대답하거늘,
“너도 차나 한 잔 마셔라.”
하시었다.

이에 산승(山僧)이 대중에게 묻노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조주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일찍이 이르렀다 해도 “차나 한 잔 마셔라” 하고,
 일찍이 이르지 못했다 해도 “차나 한 잔 마셔라” 하니,
 조주 선사의 법은 사의(思議)하기 어렵도다.

필경에 어떠한고?

 조주 선사의 안광(眼光)이 항사법계(恒沙法界)를 비추어 빛남이라.
 비록 이와 같으나,
 시자(侍者)야!
 차를 달여와서 조주(趙州) 선사께 올려라.

 할(喝)!

〔일할(一喝) 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을해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39.1995)

 

16.현자(蜆子)의 신전주대반(神前酒臺盤)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道泰不傳天子令<도태부전천자령>이요
 時人盡唱太平歌<시인진창태평가>로다.

 도(道)가 큼에 천자(天子)의 영을 전하지 아니함이요,
 때 사람[時人]이 모두 태평가를 부르도다.


모든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수행으로 생활화하면 몸과 마음이 평안하고 마음 가운데 번민과 갈등이 없어져서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음이로다.
수행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얼굴 앞에 모양 없는 참사람이 있어서 출입자재(出入自在) 하는데, 어떤 것이 형상 없는 참사람인고?”

하고 의심하여 일념이 지속되도록 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마음 가운데 일체 번민과 갈등이 쉬어지고 간절한 일념이 지속되면 마음이 맑아지고 서서히 자리가 잡힐 것이니 조급한 마음을 내지 말지어다.

석일(昔日)에 동산(洞山) 선사의 법제자(法弟子) 중에 현자(蜆子) 화상이 있었는데, 현자 화상은 동산 선사로부터 인가(印可)를 받은 후 의발(衣鉢)을 던져버리고 일정한 장소 없이 살면서, 계율을 지키지 않고 날마다 강가에서 새우와 조개를 잡아 끼니를 삼고 밤에는 백마묘(白馬廟) 안의 종이 돈〔紙錢〕 속에 묻혀 잤다.
화엄 휴정(華嚴休靜) 선사께서 이 말을 듣고 현자 화상을 찾아가니, 마침 자리에 없어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밤이 늦어 돌아오시기에 캄캄한데서 가만히 다가가 현자 화상의 허리를 껴안으시고는,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하고 물으니, 현자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神前酒臺盤<신전주대반>이라.
 신 앞의 술 소반이니라.

하셨다.
현자 화상의 답에 화엄 선사께서 감탄하시어, “동산 선사의 법제자 중에 이러한 고준(高峻)한 안목(眼目)을 가진 이가 있다니!”하고 예배하고 돌아가셨다.
그러면 불법의 도(道)란 과연 어떠한 것이기에 의발을 던져버리고 은거(隱居) 생활을 하는가?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로다.

이에 산승(山僧)이 묻노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현자 화상을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三世諸佛夢裏說<삼세제불몽리설>이요
 狸奴白牯恁麽來<리노백고임마래>라.
 四海五湖求道者<사해오호구도자>여!
 喫冷水盂休妄想<끽냉수우휴망상>하라.
 世上最佳人爲誰<세상최가인위수>오?
 神前酒臺盤道者<신전주대반도자>로다.

 삼세제불은 꿈속에서 설함이요,
 살쾡이와 흰 암소는 이렇게 옴이라.
 사해오호의 도를 구하는 자여!
 냉수나 한 그릇 마시고 망상을 쉬어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겠는가?
 ‘신전주대반’이라 이르는 자니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자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0.1996)

 

17.석공(石鞏)의 살활전(殺活箭)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좌선(坐禪)하는 가운데 한결같으면,
 행선(行禪) 중에도 일여(一如)하여
 어묵동정(語黙動靜)에도 한결같이 할지어다.
 이와 같이 정진(精進)한다면
 한 생각 지속됨이 만년토록 한결같을지니,
 이렇게 참구함으로써 참된 의심이 돈발(頓發)되어
 크게 쉬어가는 땅에 이를 것이니라.


석공 혜장(石鞏慧藏) 선사가 과거에 사냥꾼으로 있을 적에, 하루는 사슴을 쫓다가 마조(馬祖) 선사가 계시는 암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석공이 마조 선사께 묻기를,
“혹시 사슴 지나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하니, 마조 선사께서 도리어 물으셨다.
“그대는 무엇하는 사람이오?”
“저는 사냥꾼입니다.”
석공이 대답하니 마조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러면 그대는 활을 쏠 줄 아는가?”
“예, 압니다.”
“화살 하나로 몇 마리나 잡는가?”
“화살 하나로 한 마리씩 잡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활을 쏠 줄 모르는구나.”
마조 선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석공이 물었다.
“화상(和尙)께선 화살 하나로 몇 마리나 잡을 수 있습니까?”
“나는 화살 하나로 한 무리를 쏜다.”
“피차(彼此)가 서로 생명을 가졌거늘, 어찌 잔인하게도 한 무리씩이나 잡습니까?”
그러자 마조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이미 그러할진대 어째서 스스로 쏘지 못하는고?”
“저로 하여금 스스로 쏘라 하시지만 바로 쏠 곳이 없습니다.”
석공이 이렇게 대답하자 마조 선사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의 여러 겁(劫)에 쌓인 무명(無明)이 오늘에야 활짝 벗어지는구나.”
하시니, 석공은 바로 삭발을 하고 암자에 있으면서 마조 선사를 시봉하였다.

그런 후에 세월이 흘러 석공 선사께서 회상(會上)을 열어 삼십 년 동안 설법을 하셨는데, 상당하여서는 항상 활시위를 당기고는 이어 할(喝)을 하고 말씀하시기를,
“대중들은 이 화살을 보라.”
하셨다. 이와 같이 삼십 년을 똑같이 이 법문만 하셨는데, 하루는 삼평(三平)스님이 듣고 법상 앞에서 일어나 문득 가슴을 열어젖히니, 석공 선사께서 이내 활[弓]을 놓아 버리셨다.
이에 삼평스님이 말하기를,
“이것은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화살[殺人箭]이거니와, 어떤 것이 사람을 살리는 화살[活人箭]입니까?”
하니, 석공 선사께서 화살 시위를 세 번 튕기셨다.
이에 삼평스님이 절을 하니, 석공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삼십 년 동안 활 하나로 두 화살을 쏘았는데, 오늘에야 겨우 반 개 성인(聖人)을 쏘아 얻음이로다.”
하셨다.

삼평스님이 하루는 태전(太顚) 선사를 방문하여 석공 선사와의 문답처(問答處)를 말씀드리니, 태전 선사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미 사람을 살리는 화살일진대, 어찌 활시위 위에서 밝혔느냐?”
하셨다.

예부터 진리의 문답처(問答處)는 진리의 눈이 열린 성인들도 쉬운 일이 아니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석공 선사와 삼평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毘婆尸佛早留心<비바시불조유심>이나
 卽至如今不得妙<즉지여금부득묘>로다.

 과거 비바시불이 일찍이 이 법에 마음을 머뭄이나
 오늘에 이르도록 묘한 이치를 얻지 못함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자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0.1996)

 

18.보화(普化)의 시성시범(是聖是凡)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善財處處逢彌勒<선재처처봉미륵>하여
 彈指作聲樓閣開<탄지작성누각개>로다.
 森羅大千出方寸<삼라대천출방촌>하고
 照中之虛靜中動<조중지허정중동>이로다.
 衲僧分上常相共<납승분상상상공>하니
 目前便是長安路<목전변시장안로>로다.
 萬里平田無寸草<만리평전무촌초>하니
 無寸草兮草深長<무촌초혜초심장>이로다.

 선재동자가 처처에 미륵을 만나서
 손가락 튕기는 소리에 누각이 열림이로다.
 삼라만상 대천세계가 방촌(方寸)에서 나오고
 비치는 가운데 비움이요,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로다.
 납승(衲僧)의 분상(分上)에는 항상 서로 같이 함이니
 목전(目前)이 문득 장안(長安)의 길이로다.
 만 리나 되는 평전(平田)에 작은 풀 한 포기 없으니,
 작은 풀 한 포기도 없음이여, 풀이 무성함이로다.


석일(昔日)에 보화 존자(普化尊者)께서 임제(臨濟) 선사 계시는 절에 재(齋)가 있어 가시니, 때마침 하양(河陽)스님과 목탑(木塔)스님이 임제 선사와 승당(僧堂) 안에 같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즈음 보화 존자가 매일 거리를 헤매며 미치광이 짓을 하니, 그가 범부(凡夫)냐, 성인(聖人)이냐?”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보화 존자께서 밖에서 돌아와 문을 불쑥 열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한번 일러봐라. 내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하시니, 임제 선사께서 문득 할(喝)을 하셨다.
이에 보화 존자께서 세 스님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하양은 신부(新婦)와 같고, 목탑은 노파선(老婆禪)이라. 임제는 작은 아이〔小廝兒〕로서 다만 한 쪽 눈〔一隻眼〕을 갖추었구나.”
하심에,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이 도적놈아!”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
“도적, 도적이라!”
하시고 문득 나가버리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임제 선사와 보화 존자를 알겠는가?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相逢兩會家<상봉양회가>하여
 打鼓弄琵琶<타고농비파>라.
 個中誰是的<개중수시적>인고?
 白馬入蘆花<백마입노화>로다.

 두 작가가 서로 만나서
 북을 치고 비파를 뜯음이라.
  그 중에 누가 긴요한고?
 백마가 흰 갈대꽃에 듦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자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0.1996)

 

19.청원 행사(靑原行思)의 돌부자(돌斧子)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靑山綠水毘盧身<청산녹수비로신>이요
 海上波濤長廣舌<해상파도장광설>이로다.
 千聖萬祖今何在<천성만조금하재>오?
 拄杖頭上放毫光<주장두상방호광>이로다.

 청산 녹수는 비로자나 법신불이요,
 바다 위 파도는 부처님의 장광설이로다.
 일천의 성인과 일만의 조사시여! 지금은 어디에 계심인가?
 주장자 머리 위에서 백호 광명을 놓음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八公山色千古秀<팔공산색천고수>요
 海雲明月萬年明<해운명월만년명>이로다.

 팔공산 산색은 천년토록 수려하고
 해운대 밝은 달은 만년토록 빛나도다.

석일(昔日)에 육조(六祖) 선사 문하에 청원 행사(靑原行思) 선사와 남악 회양(南岳懷讓) 선사 두 분이 계셨는데, 당시에 선풍(禪風)을 드날리고 계셨다.
어느 날, 행사 선사께서 다년간 지도를 해 오던 제자 석두(石頭)스님을 불러 서신(書信)을 주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서신을 남악 회양 선사께 전해드리고 오면, 무딘 도끼〔돌斧子〕를 주어 산에 살게 하리라.”
하셨다.
석두스님은 그 서신을 가지고 여러 날을 걸어서 남악 회양 선사를 찾아갔는데, 서신은 전하지 않고 대뜸 여쭈었다.
“모든 성인(聖人)도 사모하지 않고 자기의 영식(靈識)도 중요시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는 어찌 향상사(向上事)만 묻고, 향하사(向下事)는 묻지 아니하는고?”
“영겁(永劫)토록 생사(生死)의 바다에 잠길지언정 제불(諸佛)의 해탈법(解脫法)은 구하지 않겠습니다.”
석두스님이 이렇게 대답을 드리니, 남악 회양 선사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돌아앉아 버리셨다.
이에 석두스님은 행사 선사께 다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서신은 잘 전했느냐?”
“서신도 전하지 못하고, 신(信)도 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는 석두스님이 다시 행사 선사께 말씀드리기를,
“스님께서 심부름을 다녀오면 무딘 도끼를 주어 분가(分家)시켜주신다고 하셨으니 무딘 도끼를 주십시오.”
하니, 행사 선사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한쪽 발〔一足〕을 들어올려 보이셨다. 이에 석두스님이 절을 올리고 물러났다.

이렇게 고인(古人)들은 법(法)을 전하는 과정에서 세밀하게 접인(接人)하셨다. 산승(山僧)이 금일 팔을 걷어붙이고 고인의 살림살이를 점검하리라.

“모든 성인도 공경하지 아니하고 기령(己靈)도 중히 여기지 않을 때는 어떠함이닛고?”
하고 묻는데 있어서 산승은 이렇게 점검하리라.

 비록 그렇더라도 삼십 방(三十棒)을 때리리라.

회양(懷讓) 선사가 석두스님을 보고,
“그대는 어찌하여 태고생(太高生)만 묻고, 향하사(向下事)는 묻지 아니하느냐?”
하니, 석두스님이
“영겁을 생사에 잠길지언정 모든 성인의 해탈법은 구하지 않겠습니다.”
한데 있어서는 이렇게 점검하리라.

 金銷須貴<금소수귀>나
 落眼成翳<낙안성예>로다.

 금가루가 비록 귀하다 하나
 눈〔眼〕 속에 떨어지면 가리움을 이루느니라.

석두 선사가
“선사님, 다녀왔습니다. 서신을 전하고 오면 무딘 도끼를 주어 산에 머물게 한다 하셨으니 무딘 도끼를 주십시오.”
함에 청원 선사가 한쪽 발을 드니, 석두 선사가 예배한 것에 대해서 산승이 점검하리라.

 千里同風<천리동풍>하고
 萬里知音<만리지음>이로다.

 천 리 밖에서도 바람을 같이하고
 만 리 밖에서도 소리를 아는도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자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0.1996)

 

20.암두(岩頭)의 말후구(末後句)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這箇拄杖子   <자개주장자>는
 三世佛祖命根 <삼세불조명근>이며
 列聖鉗鎚     <열성겸추>라.
 換斗移星     <환두이성>하고
 驚天動地     <경천동지>로다.
 什麽人 恁麽來<십마인 임마래>오?
 試擧看       <시거간>하라.

 이 주장자는
 삼세불조(三世佛祖)의 생명의 뿌리이며
 열성(列聖)의 불집게와 쇠망치라.
 북두(北斗)를 잡아 별을 옮기고
 하늘이 놀라고 땅이 진동함이로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옴인고?
 시험(試驗)해 드는 것을 보라.


석일(昔日)에 설봉(雪峰) 선사께서 주암시(住庵時)에 어떤 수좌(首座) 두 사람이 와서 예배(禮拜)하거늘, 설봉 선사께서 보시고 암자 문을 열고 나와 말씀하시되,
“是甚麽<시심마>오?
 이것이 무엇인고?”
하시니, 수좌도 역시 말하기를,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였다. 이에 선사께서는 고개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가셨다.
두 수좌가 나중에 암두(岩頭) 선사께 갔더니, 암두 선사께서 물으셨다.
“어디에서 오는가?”
“영남(嶺南)에서 옵니다.”
“설봉 선사를 보았느냐?”
“설봉 선사의 처소를 다녀오는 길입니다.”
“무어라 하던가?”
이에 한 수좌가 앞의 이야기를 했더니, 암두 선사께서 물으시되,
“달리 무어라 하던가?”
하시니, 그 수좌가 대답하기를,
“선사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가셨습니다.”
하였다. 이에 암두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噫[희]라!
 슬프도다!
내가 애초에 저를 향해 말후구(末後句)를 일러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노라. 만약에 내가 말후구를 일러주었던들 천하 사람이 설봉 노사(老師)를 어찌하지 못했으리라.”
하시었다.
그 수좌가 여름이 끝날 무렵에 다시 이 이야기를 들어 이익(利益)을 청하니, 암두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왜 진작 묻지 않았는가?”
“용이(容易)하지 못했습니다.”
수좌가 대답하니, 암두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나와 설봉은 비록 삶[生]은 같이 했으나 죽음〔死〕은 같이 하지 못함이로다. 말후구를 알고자 할진대,
 只這是<지저시>니라.
 다만 이것이니라.”
하시었다.

이 법은 천하 선지식(善知識)들도 알기가 어렵도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산승(山僧)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설봉, 암두 두 분의 살림살이를 점검해서 제방(諸方)에 일임하노라.

설봉 선사가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간 것을 알겠는가?

 雪峰 得便宜時 失便宜<설봉 득편의시 실편의>로다.

 설봉 선사는 편의(便宜)함을 얻은 때에 편의함을 잃었도다.

암두 선사를 알겠는가?

 암두 선사는 분명히 백염적(白拈賊)이로다.

 雖然如是  <수연여시>나
 末後句道底<말후구도저>는
 只道得八成<지도득팔성>이로다.

 비록 그러하나
 말후구는 일렀으되
 다만 팔부(八部)밖에 이르지 못함이로다.

如何道得十成去<여하도득십성거>오?
어떻게 일러야만 십부(十部)를 이름인고?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雲在嶺頭閑不撤<운재령두한불철>인데
 流水澗下太忙生<유수간하태망생>이로다.

 구름은 영(嶺) 마루에 한가로이 떠 있는데,
 흐르는 물은 개울 아래에서 유달리도 바쁘더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정축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1.1997)

 

21.기림(祇林)의 목검(木劒)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衆生諸佛不相侵<중생제불불상침>이요
 山自高兮水自深<산자고혜수자심>이라.
 萬別千差明底事<만별천차명저사>하니
 鷓鴣啼處百花香<자고제처백화향>이로다.

 모든 중생과 모든 부처님이 서로 침범하지 아니함이요,
 산은 스스로 높고 물은 스스로 깊도다.
 천차만별(千差萬別) 이 일을 밝히니
 자고새 우는 곳에 백 가지 꽃이 향기롭도다.


석일(昔日)에 호남(湖南)의 기림(祇林) 선사께서 항상 목검(木劒) 한 자루를 들고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군을 항복시킨다. 날마다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이 마구니가 되어서 온다.”
하시면서, 어느 스님이 와서 절을 하기만 하면,
“마구니가 왔도다!”
하고, 목검으로 몇 번을 휘두르시고는 방장실(方丈室)로 돌아가셨다.
이렇게 12년간을 법문하고 제접(提接)하시다가 어느 날 칼을 치워버리셨다.
그런 후에 어떤 스님이 묻되,
“12년 전에는 어째서 마구니를 항복시켰습니까?”
하니, 기림 선사께서 답하시기를,

  賊不打貧兒家<적불타빈아가>니라.
 도적은 가난한 집을 훔치지 아니한다.

하셨다. 스님이 다시 묻기를,
“그러면 12년 후에는 어째서 마구니를 항복시키지 않으셨습니까?”
하니, 기림 선사께서

 賊不打貧兒家<적불타빈아가>니라.
 도적은 가난한 집을 훔치지 아니한다.

라고 답을 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저 묻는 스님을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小兒撼鐵柱<소아감철주>로다.

 소아(小兒)가 쇠기둥을 흔듦이로다.

기림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信手拈來一一親<신수염래일일친>이요
 祇林劍下盡凡聖<기림검하진범성>이니
 賊賊          <적적>이로다.

 능숙하게 잡아 옴에 일일이 친함이요,
 기림(祇林)의 검 아래 범부와 성인이 흔적없으니
 도적, 도적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정축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1.1997)

 

22.파초(芭蕉)의 주장자(拄杖子)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要平不平兮    <요평불평혜>여!
 臨濟德山正令行<임제덕산정령행>이요,

 불평(不平)을 평평하게 요함이여!
 임제 선사와 덕산 선사의 정령(正令)을 행함이요,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倚天照雪兮    <의천조설혜>여!
 血海滔滔須彌頂<혈해도도수미정>이로다.

 하늘을 비낀 보검의 빛이 눈〔雪〕을 비침이여!
 피바다가 수미산정(須彌山頂)에 넘실거림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또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賊賊兮        <적적혜>여!
 衲僧鼻孔曾拈得<납승비공증염득>이로다.
 什麽人 恁麽來 <십마인 임마래>오?

 도적, 도적이여!
 납승의 비공(鼻孔)을 일찍이 잡아 얻음이로다.
 어떤 분이 이렇게 걸어옴인고?


파초 혜청(芭蕉慧淸) 선사께서 법상(法床)에 오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주장자(拄杖子)가 있으면 주장자를 주고, 너에게 주장자가 없으면 주장자를 빼앗으리라.”
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에게 묻노니,
어째서 “너에게 주장자가 있으면 주장자를 주고, 없으면 주장자를 빼앗는다”하는고?
이 법문 아래 분명히 얻을 것 같으면 백천 삼매(百千三昧)의 법문을 알아 가리라.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與奪臨時自在用<여탈임시자재용>하니
 娑婆人間能幾幾<사바인간능기기>냐?

 주고 빼앗는 것이 때에 다다라 자재하게 쓰니
 사바세계 인간 가운데 몇몇이나 이 진리를 알꼬?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정축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1.1997)

 

23.제일구 법문(第一句 法門)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刀不自割      <도부자할>이요
 指不自觸      <지부자촉>이라.
 鵠白烏玄      <곡백오현>이요
 松直棘曲      <송직극곡>이라.
 纔有纖塵帶影來<재유섬진대영래>이니
 脫體全抛無朕迹<탈체전포무짐적>이라.
 肯不存  諾不立<긍부존  낙불립>이니
 一片淸光射斗牛<일편청광사두우>하야
 天上人間得自由<천상인간득자유>니라.

 칼로서는 스스로 베지 못하며
 손가락으로는 스스로 촉(觸)하지 못함이라.
 고니는 희고 가마귀는 검으며
 소나무는 곧고 가시는 굽음이라.
 겨우 조그마한 티끌이라도 있으면 그림자를 가져 옴이니
 체(體)를 벗어나서 온전히 버려야만 자취가 없으리라.
 긍정도 두지 못하고 허락함도 서지 못하니
 한 조각 맑은 빛이 북두성[斗牛]을 쏘아
 천상과 인간 세계에 자유를 얻으리라.
  

일일(一日)에 수산(首山) 선사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제일구(第一句)를 알아 얻을 것 같으면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됨이요, 제이구(第二句)를 알아 얻을 것 같으면 사람과 하늘의 스승이 됨이요, 제삼구(第三句)를 알아 얻을 것 같으면 자기 구원도 마치지 못하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산승(山僧)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하면,

 三皇塚上草依依<삼황총상초의의>니라.

 삼황(三皇)의 무덤에 풀이 무성하니라.

“어떤 것이 제이구입니까?”
하면,

 棒切이라도 不放汝<봉절 불방여>니라.

 몽둥이가 부러져도 너를 놓지 않으리라.

“어떤 것이 제삼구입니까?”
하면,

 繫驢橛<계려궐>이니라.

 나귀를 매는 말뚝이니라.

“그러면 스님은 어느 구(句)에 알아 얻음입니까?”

 掬水月在手<국수월재수>하고
 弄花香滿衣<농화향만의>로다.

 물을 움켜쥐니 달은 손에 있고
 꽃을 만지니 옷에 향기가 가득함이로다.

“스님의 가풍(家風)은 어떠한 것입니까?”

 選佛道場淸風起<선불도량청풍기>요
 海裏水中寶月輝<해리수중보월휘>라.

 부처를 가리는 도량에 맑은 바람이 일어남이요
 바다 속 가운데 보배달이 빛남이니라.

“만 사람이 오면 무엇으로 접대(接待)합니까?”

 家常茶飯萬般足<가상다반만반족>하니
 四海萬人敎化歸<사해만인교화귀>로다.

 집안이 떳떳해서 차와 밥이 만 가지가 족하니
 사방의 만 사람을 교화해 돌아감이로다.

“필경에 한 마디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四五百條花柳巷<사오백조화류항>이요
 二三千處管絃樓<이삼천처관현누>로다.

 사오백이나 되는 즐비한 화류항(花柳巷)이요,
 이삼천 곳에 피리 불고 거문고 타는 누각이더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정축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1.1997)

 

24.만상지중독로신(萬像之中獨露身)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極盡目前義路  <극진목전의로>하고
 截斷古今誤訛  <절단고금오와>하여
 直下透頂透底  <직하투정투저>하야
 一向破塵破的  <일향파진파적>이어다.
 離相離名人不稟<이상이명인불품>이니
 吹毛用了急須磨<취모용요급수마>어다.

 목전(目前)에 뜻 길을 다하고
 고금의 잘못됨을 끊어
 직하에 이마 위를 뚫고 아래를 뚫어서
 일향(一向)에 티끌을 파(破)하고 밝음도 파할지니라.
 상(相)을 여의고 이름을 여의면 사람들이 본받으려 아니함이니,
 취모검(吹毛劍)을 쓰려거든 모름지기 급히 연마할지어다.


석일(昔日)에 법안(法眼) 선사께서 오래도록 장경(長慶) 선사 회상(會上)에서 지내시다가, 후에 지장(地藏) 선사의 법(法)을 이었는데, 어느 날 장경 선사 회상의 자소(子昭) 수좌(首座)가 찾아와 항의하여 묻기를,
“장로(長老)가 개당(開堂)하시니 법(法)을 어느 분에게 이음이닛고?”
하니, 법안 선사께서
“지장 선사이니라.”
하셨다. 이에 자소스님이 말하기를,
“크게 장경 선사를 저버림이로다.”
하니, 법안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모갑(某甲)이 장경 선사의 일전어(一轉語)를 알지 못함이라.”
하셨다. 자소스님이 묻기를,
“어째서 물어 오지 아니함이닛고?”
함에 법안 선사께서 되물으시기를,
“만상(萬像) 가운데 홀로 드러난 몸은 그 뜻을 어떻게 생각하는고?”
하셨다. 이에 자소스님이 불자(拂子)를 들거늘, 법안 선사께서
“이는 장경 선사께 배워 얻음이니, 수좌 분상(分上)에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하고 물으시니, 자소스님이 말이 없으매 법안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저 만상 가운데 홀로 드러난 몸이라 하니, 이것이 만상을 해침[撥]인가, 해치지 아니함인가?”
이에 자소스님이
“만상을 해치지 아니함입니다.”
하니, 법안 선사께서
“두 개(個)로다. 좌우(左右)가 다 만상을 해침이라. 만상가운데 홀로 드러난 몸은, 시(  )라.”
하시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자소스님은 만상을 해치지 아니한다고 답을 하니,
 과연 눈 먼 한(漢)이로다.

산승(山僧)에게 당시에 법안 선사가
“만상 가운데 홀로 드러난 몸이라 하니, 이것이 만상을 해침인가, 해치지 아니함인가?”
하고 물어 올 것 같으면,

 할(喝)!

문득 일할(一喝)하고,

 瞎漢이 道什麽<할한 도십마>오?
 눈 먼 한이 무어라 함인고?

 看看<간간>!
 보고 보아라!

하리라. 도리어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萬像之中獨露身<만상지중독로신>은
 只許佳人獨自知<지허가인독자지>니라.

 만상 가운데 홀로 드러난 몸은
 다못 가인(佳人)이라야 홀로 앎을 허락함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무인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2.1998)

 

25.풍혈(風穴)의 철우지기(鐵牛之機)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大冶에 精金     <대야 정금>이요
 澄潭에 皎月     <징담 교월>이라.
 南北東西誰分優劣<남북동서수분우열>이리오.
 昨夜春風一陣來  <작야춘풍일진래>하니
 掃盡千山萬山雪  <소진천산만산설>이로다.

 큰 담금질에 정미로운 금(金)이요,
 맑은 못에 밝은 달이로다.
 남북동서에 누가 우열을 나누리오.
 어젯밤 춘풍이 한바탕 불어오매
 천산 만산(千山萬山)에 눈들이 다 녹음이로다.


풍혈 연소(風穴延昭) 선사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조사(祖師)의 심인(心印)은 모양이 철우(鐵牛)의 기틀과 같은지라, 간즉 인〔印〕에 머무르고〔去則印住〕, 머무른즉 인을 파(破)함이니〔住則印破〕, 다못 가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을 것 같으면 인(印)이 옳으냐, 인이라고 하지 아니하는 것이 옳으냐?”
하시었다.

작가종사(作家宗師)는 일기일경상(一機一境上)에 높이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잡아서 철(鐵)을 점(點)쳐서 금(金)을 이루며, 금을 점쳐서 철을 이룸이니, 천하 총림(天下叢林)에 불조 가풍(佛祖家風)을 떨침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鴛鴦繡了從君看<원앙수료종군간>이나
 莫把金針度與人<막파금침도여인>이라.

 원앙새 수 놓음은 그대를 좇아 봄이나
 금침(金針)을 잡아 사람에게 주지는 못하니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무인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2.1998)

 

26.일러도 삼십 방[道得也三十棒]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道不得也三十棒]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千差萬別解投機<천차만별해투기>는
 明眼宗師自在時<명안종사자재시>로다.
 北斗藏身雖有語<북두장신수유어>나
 出群消息小人知<출군소식소인지>로다.

 천차만별의 기틀을 던질 줄 앎은
 명안종사의 자재하게 쓰는 때로다.
 북두에 몸을 감춤은 비록 말은 있음이나
 무리에서 뛰어난 소식은 아는 이가 드물도다.


일일(一日)에 덕산(德山) 선사께서 대중에게 법문하시기를,
“이르고, 일러라! 일러도 삼십 방(三十棒)을 맞고,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을 맞음이라.”
하셨다. 이 법문을 임제(臨濟) 선사께서 전해 들으시고는 시자(侍者)를 불러 영(令)을 내리시기를,
“네가 덕산 선사 회상에 가서, 덕산 선사가 ‘일러도 삼십 방을 맞고,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을 맞음이라’하거든 문득 묻되, ‘바로 일렀는데 어째서 삼십 방을 때림이닛고?’하여, 저가 때림을 기다려 네가 주장자를 잡아서 한 번 밀어버려라.”
하셨다. 시자가 가서 지시대로 하니, 덕산 선사께서 시자에게 한 번 밀려 거꾸러짐을 당하고는 문득 방장실(方丈室)로 돌아가서 문을 닫으셨다.
시자가 돌아와서 임제 선사께 들어 말씀드리니,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옴으로 좇아 저 늙은이를 의심했노라. 비록 이와 같으나 네가 도리어 덕산을 봤느냐?”
하시니, 시자가 우물쭈물하거늘, 임제 선사께서 문득 때리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여기에 분명히 알아가지 못하면 다시 제방 선지식(諸方善知識)을 참례(參禮)해 방문(訪問)하여야 옳다.
그러므로 이르건대,

 不可以有心求<불가이유심구>하며
 不可以無心得<불가이무심득>하며
 不可以言語做<불가이언어주>하며
 不可以寂黙通<불가이적묵통>이니라.

 가히 유심(有心)으로도 구하지 못하며
 가히 무심(無心)으로도 얻지 못하며
 가히 언어로도 짓지 못하며
 가히 적묵(寂黙)으로도 통하지 못하니라.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임제 선사와 덕산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龍虎相搏에 難兄難弟<용호상박 난형난제>로다.

 용과 범이 서로 부딪힘에
 형이 되기도 어렵고 아우 되기도 어렵도다.

  雖然如是나 一狀領過<수연여시 일장영과>로다.

 비록 그러하나 한바탕 허물을 받음이로다.

허물이 어느 곳에 있음인고?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一坑埋却<일갱매각>하리라.

 한 구덩이에 묻어버리리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무인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2.1998)

 

27.불조(佛祖)의 행리(行履)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車不橫推요 理無曲斷<차불횡추 이무곡단>이라
 古人須則全機據令   <고인수즉전기거령>이나
 要且勞而無功       <요차노이무공>이로다.
 何故               <하고>냐?
 不見道             <불견도>아?
 得力이 不如逢時    <득력 불여봉시>로다.

 수레는 옆으로 밀지 못함이요, 이치는 굽게 끊지 못함이라.
 옛 도인들이 비록 온전한 기틀로 정령(正令)을 잡음이나
 종요로이 수고로울 뿐 또한 공(功)이 없음이로다.
 어째서 그러하냐?
 이름〔道〕을 보지 못했는가?
 힘을 얻음이 때를 만남과 같지 못함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나고 날 적마다 일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할진대 탐·진·치(貪嗔癡) 삼독(三毒)을 제거할지니, 탐·진·치를 뿌리째 제거하지 못하면 이로 좇아 팔만 사천 번뇌(煩惱)가 머리를 다투어 일어나나니 한량없는 세월에 나고 죽는 근본이 됨이로다.
모든 분들이 일상생활 속에 ‘참 나’를 밝히는 선 수행(禪修行)을 하면 자연히 탐·진·치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돌아와서, 역겁다생(歷劫多生)의 무명(無明)이 소멸되고 대원경지(大圓鏡智)가 현전(現前)하여 자재무애(自在無碍)의 경지를 수용하게 됨이로다.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 스님들께서는 이러한 행리(行履)와 용심(用心)을 하나니, 다음에 드는 것을 보라.

 鴈過長空 影沈寒水<안과장공 영침한수>나
 鴈無遺蹤之意     <안무유종지의>요
 水無留影之心     <수무유영지심>이로다.

 기러기가 높은 허공을 날아감에 그림자가 찬물에 잠기되
 기러기는 그 자취를 남길 뜻이 없음이요,
 물은 기러기의 그림자를 머무르게 할 마음이 없음이로다.

모든 대중들도 이와같이 행할지어다. 이와같이 용심(用心)하면,

 火裏蓮花處處開에 終不壞<화리연화처처개 종불괴>로다.
 彈指圓成八萬門         <탄지원성팔만문>하니
 刹那滅却恒沙業         <찰나멸각항사업>이로다.

 불 속에 연화가 처처에 핌에 마침내 무너지지 아니하리라.
 손가락 튕기는데 팔만 사천 법문을 뚜렷이 이루니
 찰나지간에 항하사강 모래 숫자와 같은 업을 소멸함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무인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2.1998)

 

28.임제(臨濟) 선사와 왕상시(王常侍)의 문답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非心非佛亦非物<비심비불역비물>이요
 一二三四五六七<일이삼사오육칠>이로다.
 困思天竺雨前茶<곤사천축우전다>요
 渴憶南海霜後柚<갈억남해상후유>로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  
 일이삼사오육칠(一二三四五六七)이로다.
 곤한즉, 천축(天竺)의 우전다(雨前茶)를 생각함이요,
 목마른즉, 남해(南海) 서리가 온 뒤의 유자를 생각함이로다.


석일(昔日)에 임제(臨濟) 선사 회상에 왕상시(王常侍)가 찾아와서 함께 승당(僧堂) 안을 돌아보다가 임제 선사께 물었다.
“이 승당 안의 스님들은 경(經)을 봅니까?”
“경을 보지 않습니다.”
“좌선(坐禪)은 합니까?”
“좌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경도 보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합니까?”
“모두가 부처가 되고, 조사(祖師)가 되려고 합니다.”
이에 왕상시가 말하기를,
“금가루가 귀하기는 하나, 눈에 들어간즉 가리우니라.”
하니,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아무리 그래도 너는 속한(俗漢)이니라.”
하시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왕상시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將謂候白<장위후백>터니
 更有候黑<갱유후흑>이로다.

 후백(候白)인 줄 알았더니
 다시 후흑(候黑)이 있음이로다.

임제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임제 선사는 일용(日用)에 번개와 같은 기틀을 갖추어서 바람을 치고 달을 치나, 속한(俗漢)의 한 물음에 얼음이 녹고 기왓장이 풀어짐이로다.
 그러나 마지막 한 마디로 인해서, 하나 반(半)을 구제(救濟)해 얻음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기묘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3.1999)

 

29.단하 천연(丹霞天然) 선사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三界無法하니 何處求心<삼계무법 하처구심>인고?
 日明夜暗하고 山高海深<일명야암 산고해심>이라.
 三界本因心所現       <삼계본인심소현>이니
 無心三界自平沈       <무심삼계자평침>이라.

 삼계(三界)에는 진리의 법이 없으니 어느 곳에서 마음을 구할꼬?
 낮은 밝고 밤은 어두우며 산은 높고 바다는 깊음이라.
 삼계는 본래 마음으로 인하여 나타난 바이니,
 무심하면 삼계가 스스로 평평하게 잠김이로다.


불교의 깨달음의 세계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 진공묘유를 알면 쌍차쌍용(雙遮雙用)을 자재하게 씀이로다. 쌍차쌍용을 자재하게 쓰는 안목을 갖춰야사 선지식(善知識)이라 칭함이로다.  
이 불법의 진리는 한 번 밝혀 놓으면 억겁이 다하도록 대안락(大安樂)을 누릴 수 있음이로다. 싱그러운 빛이 온 우주를 비추니, 마음의 번뇌와 갈등이 다하여 가는 곳마다 불국토(佛國土)를 이루기 때문이로다.

석일(昔日)에 단하(丹霞) 선사가 출가하기 이전, 과거를 보러 가는 도중에 어느 스님을 만난지라. 스님이 물으시기를,
“어디로 가는 길인고?”
하시니, 단하가 대답했다.
“과거보러 가는 길입니다.”
“選官이 不如選佛<선관 불여선불>이라.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부처를 가리는 것만 못하니라.”
 한 마디 그 말을 듣고는, 단하가
“그럼 어디를 가면 부처를 가릴 수 있습니까?”
하니, 스님께서
“강서(江西)의 마조(馬祖) 도인을 찾아가라.”
하셨다.
이에 곧장 마조 선사를 찾아가 인사를 올리고 두 손으로 복두건(幞頭巾: 머리에 두른 수건)을 벗으니 마조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 남악(南岳)의 석두(石頭) 선사를 찾아가라.”
단하는 다시 석두 선사를 찾아가서 전과 같이 머리에 두른 복두건을 벗으니, 석두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후원 방앗간에 가서 일이나 하라.”
하셨다. 그리하여 행자가 되어 생활하던 어느 날, 석두 선사께서 대중들에게,
“보청(普請: 운력)하여 법당 앞에 풀을 깎게 하라!”
하시었다. 이에 대중들은 호미와 낫을 들고 나섰는데, 단하 행자는 머리를 감고 대야와 삭도를 들고 석두 선사 앞에 꿇어앉았다. 이에 석두 선사께서
“왜 그러하느냐?”하시니, 단하 행자가
“스님께서 풀〔無明草〕을 깎아 주십시오.”
하였다. 석두 선사께서 웃으며 머리를 깎아주시고 나서, 이름을 지어주고 사미계법(沙彌戒法)을 설하려 하니, 단하 행자가 귀를 막고 달아났다.
그 길로 다시 강서의 마조원(馬祖院)으로 가서 성상〔羅漢像〕의 목에 올라타고 있으니, 대중들이 놀라 마조 선사께 고하였다. 마조 선사께서 직접 나와서 보시고는,
“나의 아들 천연(天然)이로구나!”
하시니, 단하 행자가 내려와서 절을 하고는 말하였다.
“스님께서 ‘천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에 마조 선사께서 물으셨다.
“어디를 갔다가 왔는가?”
“석두 선사께 갔다 왔습니다.”
“석두의 가는 길은 미끄러운데 엎어지지 않았는가?”
“미끄러졌다면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조 선사와 석두 선사를 친견하여 문답을 주고받고 왕래한 단하 천연 선사를, 후래에 원오 극근(圓悟克勤) 선사가 극찬(極讚)하였다.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하고
 간다고 말하면 올 줄을 안다.
 용이 달리고 범이 뛰며
 옥이 구르고 구슬이 돈다.
 말을 꺼내자마자 벌써 알아듣더니
 툭 툭 털고 떠나니 얼마나 준수한가.
 풀 깎는단 말부터가 괴팍했는데,
 이름을 지어준다 한 것 더욱 익살맞구나.
 두 늙은이가 검고 누름[玄黃]을 대충 알기에
 천리마(千里馬)의 골격을 구경하고 있었네.
 참 규격은 진중하고 의젓하나니
 마주보면 가치와 격조를 안다.
 구름을 박차고 한 번 달리면
 해와 바람도 어리둥절하리라.

하루는 단하 천연 선사께서 행각을 하실 때에 암자에서 쉬어 가는데 때가 겨울철이라, 방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법당에 모신 목불(木佛)을 도끼로 패서 군불을 때시었다. 암주(庵主)가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려고 보니 부처님이 안 계시므로, ‘이 어찌된 일인고?’하고 도량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부엌 아궁이 속에서 불타고 있는 부처님을 보고는, 객실 문을 열어젖히고 호통을 쳤다.
“이런 무례한이 어디에 있는가?”
“어째서 무례한인가?”
“부처님을 패서 불을 때니 무례한 아닌가?”
“나는 불을 때서 사리를 얻으려 함이었다.”
“어찌 목불에서 사리가 나온단 말인가?”
“그럼 진불(眞佛)이 아니지.”
그런 후에 암주가 눈썹이 다 빠져버렸다.

여기 모인 모든 대중은 알겠느냐?
목불을 패서 군불을 땐 이는 눈썹이 빠지지 않고, 왜 암주가 눈썹이 빠졌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禍福無門이나 有人自召<화복무문 유인자소>로다.

 화와 복은 들어오는 문이 없음이나
 사람이 스스로 부름이로다.

일일(一日)에 단하 천연 도인께서 방(龐) 거사 집을 방문하니, 방 거사는 출타하고 딸 영조(靈照)가 사립 앞 우물에서 채소를 씻고 있는지라, 단하 천연 선사께서
“거사 있느냐?”
하시니, 영조가 채소를 씻다가 정중히 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있거늘, 재차
“거사 있느냐?”
하시니, 영조가 가슴에서 손을 내리고 나물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에 단하 도인께서도 즉시 돌아가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단하 천연 도인을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周行天下에 獨步丹霄<주행천하 독보단소>로다.

 천하를 주행하니
 홀로 높은 하늘에 걸음함이로다.

영조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掣電之機로 收放自在<체전지기 수방자재>하니
 仙陀婆中 仙陀婆    <선타바중 선타바>로다.

 번갯불 긋는 기틀로 놓고 거두는 것을 자재하게 쓰니
 과연 선타바 중 선타바로다.  
 (仙陀婆: 큰 도인스님을 시봉하는 보살인데 눈만 봐도 척척 알아 행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기묘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3.1999)

 

30.남원(南院)의 일방(一棒)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堂堂坐斷千差路<당당좌단천차로>하고
 倒騎鐵馬入重城<도기철마입중성>이라.
 蓮花朶朶火中開<연화타타화중개>요
 靑山步步水上行<청산보보수상행>이로다.

 당당히 앉아서 천차로(千差路)를 끊고
 철마를 거꾸로 타고 중성(重城)을 들어감이라.
 연꽃은 송이송이 불 가운데 핌이요,
 청산은 걸음걸음 물 위를 행함이로다.


옛 도인들이 이르시기를,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니라” 하심이로다. 활구 아래 알아 얻으면 길이 의심하여 막힘이 없음이요, 사구 아래 알아 얻으면 자기 자신도 구제하지 못함이로다. 모든 대중은 활구참선을 하여 일념(一念)이 지속되게끔 노력할지어다.

석일(昔日)에 남원(南院) 선사께서 제자인 풍혈(風穴)스님에게 물으시되,
“남방에서는 한 방(棒)의 주장자를 어떻게 헤아리던가?”
하시니, 풍혈스님이 대답하기를,
“기특(奇特)하다고 헤아립니다.”
하였다 그러고는 도리어 남원 선사께 묻기를,
“이 지방에서는 어떻게 헤아립니까?”
하니, 선사께서 주장자를 가로 끼고 말씀하시되,
“방망이 아래 무생법인(無生法忍)이여, 기틀에 다다라서는 스승도 사양치 않느니라.”
하시었다.

이에 산승(山僧)이 말하노니,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양대(兩大) 선사의 문답처를 잘 보라!
두 사람이 눈멂을 면치 못하도다. 왠 일이냐?
풍혈스님이 이르기를, “기특하다고 헤아립니다”하니,

 好與三十棒赶出<호여삼십봉간출>이로다.

 좋게 삼십 방을 때려서 내쫓으리라.

그러나 남원 선사는,

 臨濟門下嫡子<임제문하적자>로다.

 임제 문하의 적자(嫡子)로다.

 할(喝)!

〔일할(一喝)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기묘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3.1999)

 

31.무정설법(無情說法)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乾坤盡是黃金國<건곤진시황금국>이요
 萬有全彰淨妙身<만유전창정묘신>이라.
 玉女皆風無巧拙<옥녀개풍무교졸>이요
 靈苗花秀不知春<영묘화수부지춘>이로다.

 건곤(乾坤)이 다 이 황금국(黃金國)이요,
 만 가지 있는 것은 정묘신(淨妙身)이 온전히 빛남이라.
 옥녀는 공교롭고 졸함이 없는 것을 풍류(風流)함이요,
 신령한 싹에서 꽃이 핌이나 봄을 알지 못함이로다.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는 당(唐)·송(宋)의 8대 문장가(文章家)의 한 사람으로 문학사상 찬연한 빛을 던진 대가이다.
소동파가 형남에 있을 때, 하루는 근방에 있는 옥천사(玉泉寺) 승호(承皓) 선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변복(變服)을 하고 승호 선사를 만나니, 승호 선사께서
“대관(大官)의 존함은 어찌되오?”
하고 물으셨다.
“나의 성(姓)은 칭(稱)가요.”
소동파가 대답하니, 승호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칭가라니? 그럼 제방(諸方)을 저울질하러 다니오?”
“그렇소이다.”
이에 승호 선사께서 대뜸 ‘일할(一喝)’을 하고 나서,
“이 할(喝)이 몇 근이나 되오?”
하고 물으시니, 소동파가 그만 꽉 막혀버렸다. 여기에서 일생동안의 공부와 재치, 식견이 빙소와해(氷消瓦解)가 되어 기고만장한 위세가 다 꺾여버렸다. 그런 후로는 세상의 문장과 재주, 변재는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선지식이 있다는 곳을 다 찾아가서 법문 듣기를 좋아하였다.

하루는 명성이 높고 도법(道法)이 고준한 대선지식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노산 흥룡사에 주석하고 계시는 상총(常聰) 선사를 찾아가 인사를 올리고,
“선사님의 법문을 들으러 왔습니다.”
하니, 상총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어째서 유정설법(有情說法)만 들으려 하고 무정설법(無情說法)은 들으려 하지 않는고?”
하시었다.
소동파는 난생 처음으로 듣는 ‘무정이 설법한다’는 말에 의심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의심삼매(疑心三昧)에 들었다. 수십 리 먼 길을 말을 타고 달리다가 길을 잃고 다시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순간, 산골짜기 폭포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대오(大悟)하였다.
그리하여 게송(偈頌)을 짓기를,

 溪聲自是廣長舌<계성자시광장설>인데
 山色豈非淸淨身<산색기비청정신>이리오.
 夜來八萬四千偈<야래팔만사천게>를
 他日如何擧似人<타일여하거사인>하리오.

 산골짜기 흐르는 물소리가 문득 이 광장설(廣長舌)인데
 산색이 어찌 청정신이 아니겠는가.
 밤이 옴에 팔만 사천 법문을
 타일(他日)에 어떻게 사람에게 들어서 보일꼬.

소동파는 이처럼 여생(餘生)을 불법의 낙을 누리며 잘 살았다.
우리 모든 대중들은 소동파의 깨달음을 잘 살펴야 함이로다.
선지식을 만나 방망이를 맞음으로써 의정(疑情)이 돈발(頓發)하여 깨닫게 되었음이로다.

필경에 어떠함이닛고?

 妙明一句威音外<묘명일구위음외>어니
 折角泥牛雪裏眠<절각니우설리면>이로다.

 묘하고 밝은 일구(一句)는 위음왕불(威音王佛) 밖이니
 뿔이 끊어진 진흙소는 눈 속에서 졸더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기묘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3.1999)

 

32.황벽(黃檗)의 주조(酒糟)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目前便是長安路<목전변시장안로>요
 萬里平田無寸草<만리평전무촌초>로다.
 尋聲逐迹數如麻<심성축적수여마>로다.
 到頭辜負老山僧<도두고부노산승>이여!

 눈앞이 문득 이 장안로(長安路)요,
 만 리 평전(平田)에 풀 한 포기 없도다.
 소리를 찾고 자취를 좇음이 수가 삼〔麻〕과 같도다.
 마침내 노산승(老山僧)을 배반함이여!


석일(昔日)에 황벽(黃檗) 선사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모두가 술찌꺼기를 먹는 무리로다. 그렇게 행각(行脚)해서 어찌 오늘이 있었겠는가? 큰 당(唐)나라 안에 선사(禪師)가 없는 것을 알겠느냐?”
하시니, 그때 어떤 수좌가 나서서 말하되,
“지금 제방(諸方)에서 대중을 거느리고 지도하는 이는 어찌합니까?”
하였다. 이에 황벽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선법(禪法)이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못 지도할 스승이 없느니라.”
하셨다.

황벽 선사의 이 말씀이 천이백여 년이 지난 지금 이때에 유달리 귀에 쟁쟁하게 사무침이라.

사해오호(四海五湖)에 말만 좇아 행하는 자여!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흉내만 내지 말고, 각자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정액상(頂額上) 일구(一句)가 나와 하늘을 덮고 땅을 덮어야사 비로소 옳다. 지금 우리의 현실도 그 당시와 비교해 보면 가히 슬프고, 가히 통탄함이로다.
선법(禪法)은 있어도 스승이 없도다.

만약 어떤 이가 있어서,
“제방(諸方)에 회상(會上)을 열어 대중을 거느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산승에게 묻는다면,

 有老婆禪    <유노파선>하니
 瞎却天下人眼<할각천하인안>이로다.

 노파선(老婆禪)만 있어서
 천하 사람의 눈을 멀게 하도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황벽 선사를 알겠는가?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獅子哮吼振一聲<사자효후진일성>하니
 遠近聞者喪膽魂<원근문자상담혼>이로다.

 사자(獅子)의 울부짖음이 한 번 진동하니
 멀리서 가까이서 듣는 자, 간담이 서늘하여 혼(魂)을 잃었도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경진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4.2000)

 

33.동산(洞山)의 과자공양차(菓子供養次)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淨名居士呵善現<정명거사가선현>하고
  金牛和尙勘龐老<금우화상감방노>하니
  彼此不相饒    <피차불상요>라.
  峻機無處討    <준기무처토>로다.
  雲行雨施      <운행우시>요
  雷奔電掃      <뇌분전소>로다.
  虎殺虎陷      <호살호함>하려면
  出草入草      <출초입초>해야사
  始得也        <시득야>로다.

 정명(淨名) 거사는 선현(善現)을 꾸짖고
 금우(金牛) 선사는 방(龐) 거사를 감험(勘驗)함이니
 피차가 서로 넉넉하지 못한지라,
 준걸한 기틀을 토론할 곳이 없도다.
 구름을 움직여 비를 내림이요,
 우뢰가 달리어 번개를 쓸도다.
 범을 잡아 함정에 빠뜨리려면
 풀에 나오고 풀에 들어가야만
 비로소 옳다.


결제에 임한 지 어느덧 석 달이 다 지나가고 해제일이라. 일념삼매(一念三昧)가 도래하지 않았거든 직하에 모든 갈등을 놓고 이 공부를 마칠 때가 해제임을 굳게 다짐하여, 각자 참구하는 화두를 다시금 성성히 잡아 일념(一念)이 지속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경주할지어다.

석일(昔日)에 동산(洞山) 선사께서 태(泰) 수좌를 청해 물으셨다.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받쳤다. 검기는 칠(漆)과 같고 밝기는 일월(日月)과 같아서 항상 동용(動用) 가운데 있으나, 동용 가운데 거두어 얻지 못한다’ 했으니,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라.”
이에 태 수좌가 말하되,
“허물이 동용(動用) 가운데 있습니다.”
하니, 동산(洞山) 선사께서 문득 ‘할(喝)’을 하시고 과자상(菓子床)을 치우게 하셨다.

이에 산승(山僧)이 묻노니,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어떻게 일러야사 과자를 얻어먹을 수 있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這僧      <저승>은
 貪著一粒米<탐착일립미>하여
 失却半年糧<실각반년량>이로다.

 태(泰) 수좌는
 한 톨의 쌀을 탐하다가
 반 년(半年)의 양식(糧食)을 잃어버림이로다.

“‘한 물건이 있어,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받친다. 검기는 칠과 같고 밝기는 일월과 같아서 동용 가운데 있으나, 동용 가운데 거두어 얻지 못한다’ 하니, 허물이 어디에 있는고?”
하고 산승에게 물어 올 것 같으면,

 시자야!
 차(茶) 한 잔 가져와서 동산(洞山) 선사께 올려라.

하리라.
어째서 그러하냐?

 當斷不斷<당단부단>하면
 返招其亂<반초기란>이라.

 끊어야 함을 당하여 끊지 아니하면
 도리어 어지러움을 부르리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경진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4.2000)

 

34.삼성(三聖)의 불위인(不爲人)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諸人法眼藏<제인법안장>은
 千聖莫能當<천성막능당>이라.
 爲君通一線<위군통일선>하니
 光暉滿大千<광휘만대천>이로다.
 須彌走入海<수미주입해>하고
 六月降嚴霜<유월강엄상>이로다.

 모든 사람의 법안장(法眼藏)은
 천성(千聖)도 능히 당하지 못함이라.
 그대를 위해서 한 선(線)을 통하나니
 광명이 대천세계에 가득찬지라.
 수미산이 달아나 바다에 들어가고
 유월에 된서리가 내림이로다.


석일(昔日)에 진주(鎭州)의 삼성 혜연(三聖慧然)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말씀하시되,
“나는 사람을 만나면 곧 나가리니, 나가는 것이 곧 사람을 위하지 않는 것이니라.”
하셨다. 흥화(興化) 선사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시기를,
“나는 사람을 만나면 나가지 않으리니, 나가는 것이 곧 사람을 위하는 것이니라.”
하셨다.

이에 산승(山僧)이 묻노니,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임제(臨濟) 선사 문하에 두 분의 선사가 출세하여 임제 가풍을 천하에 선양했다.
  
 一人高孤頂上坐<일인고고정상좌>로
 視雲起雲滅    <시운기운멸>하고
 一人十字街頭  <일인십자가두>로
 灰頭土面去    <회두토면거>로다.

 한 사람은 고봉정상(孤峰頂上)에 앉아서
 구름이 일어나고 구름이 멸함을 보고,
 한 사람은 십자가두(十字街頭)에서
 머리에는 재요, 얼굴엔 흙먼지를 쓰고 감이로다.

 逢人卽出  <봉인즉출>하리니
 出卽不爲人<출즉불위인>이
 是        <시>냐?
 逢人卽不出<봉인즉불출>하리니
 出卽便爲人<출즉변위인>이
 是        <시>냐?

 사람을 만나면 곧 나가리니,
 나간즉 사람을 위하지 아니함이 옳으냐?
 사람을 만나면 곧 나가지 아니하리니,
 나간즉 문득 사람을 위함이 옳으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필경에 어떠함이닛고?

 白雲乍可來靑嶂<백운사가래청장>이나
 明月那敎下碧天<명월나교하벽천>이리오.

 흰 구름은 잠깐 푸른 산봉우리에서 옴이나
 밝은 달이 어찌 푸른 하늘에서 내림이리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경진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4.2000)

 

35.조과(鳥窠)의 포모(布毛)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密移一步六門曉 <밀이일보육문효>요
 無限風光大地春 <무한풍광대지춘>이로다.
 當明中有暗  <당명중유암>이니
 勿以暗相遇  <물이암상우>라.
 當暗中有明  <당암중유명>이니
 勿以明相覩  <물이명상도>라.
 一切法盡處 了了常在 <일체법진처 요요상재>요
 一切法生時 空空常寂 <일체법생시 공공상적>이로다.

 은밀히 한 걸음 옮기니 육문(六門)이 밝음이요,
 한없는 풍광(風光)이 대지의 봄이로다.
 밝은 가운데를 당해 어둠이 있으니
 어둠으로써 서로를 만나다고 하지 말라.
 어두운 가운데를 당해서 밝음이 있으니
 밝은 것으로써 서로를 본다고 하지 말라.
 일체법이 다한 곳에 분명한 모양이 항상 있음이요,
 일체법이 나는 때에 비고 비어서 항상 적적(寂寂)함이라.

 
석일(昔日)에 항주(杭州) 땅에 조과 도림(鳥窠道林) 선사가 계셨는데, 어느 날 시자 회통(會通)이 떠나려 하기에 조과 선사께서 물으셨다.
“네가 지금 어디로 가려 하는고?”
“회통은 불법(佛法)을 위해 출가했는데, 화상(和尙)께서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니, 이제 제방(諸方)에 가서 불법을 배우고자 하나이다.”
“그와 같은 불법이라면 나에게도 약간은 있느니라.”
“어떤 것이 화상의 불법입니까?”
이에 선사께서 몸에서 포모(布毛 : 실보푸라기)를 들어 입으로 불어 날리니, 회통이 비로소 현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조과 선사께서 포모를 들어 입으로 붊에 시자 회통이 깨달았으니, 불법이란 사의(思議)하기 어렵도다.
  
 布毛吹起兮<포모취기혜>여!
 四十九年說<사십구년설>이로다.
 一毛頭上兮<일모두상혜>여!
 識得根源去<식득근원거>로다.

 실보푸라기를 불어 일으킴이여!
 사십구 년 설(說)이로다.
 한 터럭 끝 위여!
 근원을 알아 얻어감이로다.

필경의 진리의 일구(一句)는 어떠한 것인고?

 千峯寒色<천봉한색>이요
 雨滴岩花<우적암화>로다.

 일천 봉우리는 차가운 빛이요,
 빗방울은 바위에 꽃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경진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4.2000)

 

36.위산(潙山)의 체(體)와 용(用)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雪霜才泮自然春<설상재반자연춘>이라
 相逢盡道君行早<상봉진도군행조>하니
 誰知更有夜行人<수지갱유야행인>이오.
 夜行人兮      <야행인혜>여!
 去年貧兮未是貧<거년빈혜미시빈>이로다.

 눈서리 얼음이 녹으니 자연히 봄인지라
 서로 만나 말하기를, 그대가 일찍이 행한다 하니
 누가 다시 밤에 행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리오.
 밤에 행하는 사람이여!
 지난 해에 가난한 것은 이 가난함이 아니로다.


석일(昔日)에 위산(潙山) 선사와 앙산(仰山)스님이 있었는데, 어느 날 위산 선사께서 앙산스님과 더불어 찻잎을 따다가 말씀하시기를,
“종일 찻잎을 따고 있으나, 그대의 소리만 들리고 그대의 형상은 보이지를 않는구나.”
하시니, 앙산스님이 그 말을 듣고 차나무를 흔들거늘, 위산 선사께서
“그대가 용(用)을 얻고, 체(體)는 얻지 못함이로다.”
라고 하셨다. 이에 앙산스님이 말하기를,
“살피지 못합니다만, 화상(和尙)께서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위산 선사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앙산스님이 말하기를,
“화상께서는 체를 얻고, 그 용은 얻지 못했습니다.”
하니, 위산 선사께서
“그대에게 삼십 방(三十棒)을 때리노라.”
하시었다. 이에 앙산스님이 말하기를,
“화상의 방(棒)은 모갑(某甲)이 맞거니와 모갑의 방은 누가 맞아야 됩니까?”
하니, 위산 선사께서
“그대에게 삼십 방을 때리노라.”
하시었다.

이에 산승(山僧)이 묻노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위산, 앙산 두 부자(父子)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莫謂潙山父子體用家風<막위위산부자체용가풍>하라.
 他家曾踏上頭關      <타가증답상두관>이로다.

 위산 부자의 체(體)와 용(用)의 가풍이라 이르지 말라.
 타가(他家: 위산,앙산 두 父子)가 일찍이 상두관(上頭關)을 밟았음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신사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5.2001)

 

37.임제(臨濟)·보화(普化)의 공양청(供養請)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箭穿紅日碧波心<전천홍일벽파심>이나
 不動機輪猶落草<부동기륜유락초>로다.
 飽喫飯兮和衣倒<포끽반혜화의도>하니
 對面淸談終不道<대면청담종부도>로다.
 棒下豁開金剛眼<방하활개금강안>이나
 不許夜行投明到<불허야행투명도>로다.

 화살이 푸른 파도 속 깊숙이 붉은 태양을 뚫으나,
 기륜(機輪)을 움직이지 않더라도 오히려 초초(草草)에 떨어지도다.
 밥을 배불리 먹고 옷을 차려 입고 거꾸러지니,
 얼굴을 맞대고 청담(淸談)을 나누나 마침내 이르지 못하도다.
 방하(棒下)에 금강안(金剛眼)이 활짝 열림이나
 밤에 행(行)하는 것은 허락지 아니함이요, 모름지기 밝거든 이를지니라.


석일(昔日)에 보화(普化) 존자께서 임제(臨濟)와 선사 같이 시주집에 공양청(供養請)이 있어 가셨는데, 임제 선사께서
“毛呑巨海하고 芥納須彌<모탄거해 개납수미>라.
‘한 터럭이 큰 바다를 삼키고 겨자 속에 수미산이 들어감이라’하니, 이것이 신통묘용(神通妙用)인가? 이 법(法)이 또한 그러한가?”
하고 물으시니, 보화 존자께서 차려놓은 공양상을 발로 차서 엎어버리셨다.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매우 머트럽구나!”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
“이 속에 무엇이 있길래 머트러움〔麤〕을 말하고, 세밀함〔細〕을 말하는고?”
하고 물으시니, 임제 선사께서 쉬셨다.
다음날, 또 다른 집에 공양청이 있어 같이 가셨는데,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금일(今日) 공양이 어찌 어제와 같으리오.”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 또 한 번 밥상을 걷어차서 엎어버리셨다.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크게 머트럽구나!”
하시니, 보화 존자께서
“눈 먼 놈아! 불법에 무슨 추(麤)와 세(細)를 말하는고?”
하고 호통을 치시니, 임제 선사께서 토설(吐舌: 혀를 쭈욱 내밈)하시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兩介惡賊相逢<양개악적상봉>이
 如水入水    <여수입수>요
 如金博金    <여금박금>이나
 鄕關萬里    <향관만리>로다.

 두 분의 악한 도적이 서로 만남은
 물이 물에 들어가는 것 같고,
 금에다 금을 입히는 것 같으나
 자세히 점검컨대, 고향이 만 리나 멀도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신사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5.2001)

 

38.위산(潙山)의 노자우(老牸牛)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大抱沙界非爲有<대포사계비위유>요
 細入微塵豈是無<세입미진기시무>오.
 昔年靈照親携處<석년영조친휴처>에
 明月淸風徧五湖<명월청풍변오호>로다.

 크게는 사계(沙界)를 포용함이나 있음이 되지 아니함이요,
 가늘기는 티끌 속에 들어가나 어찌 이 없으리오.
 옛적에 영조(靈照)가 친히 잡은 곳에
 밝은 달 맑은 바람, 오호(五湖)에 두루함이로다.


석일(昔日)에 위산(潙山) 선사께서 유철마(劉鐵磨) 비구니가 오는 것을 보고 말씀하시되,
“늙은 암소야, 네가 왔는가?”
하시니, 철마(鐵磨) 비구니가 말하기를,
“내일 오대산에 큰 재(齋)가 있는데 화상(和尙)께서도 가시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위산 선사께서 몸을 벌렁 드러누우시니, 유철마 비구니는 문득 나가버렸다.

위산 선사는 천오백 인의 선지식이라. 만인(萬人)을 대함에 응기응변(應機應變)의 선지(禪旨)로써 궁(窮)한즉 통(通)하고 통한즉 변(變)하는 수안(手眼)을 갖추어서 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을 여셨도다.

이에 산승(山僧)이 묻노니,
위산 선사와 철마 비구니를 알겠는가?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放去收來得自由<방거수래득자유>하니
 天上人間無等匹<천상인간무등필>이로다.

 놓아 가고 거두어 옴에 자유로우니
 천상 인간에 같이 짝할 이가 없도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신사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5.2001)

 

39.동산(洞山)의 한명(閑名)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木人石女共歡呼<목인석녀공환호>하니
 信手拈來用拾好<신수염래용습호>로다.
 靑山無盡意無窮<청산무진의무궁>이어늘
 何須更覓來時道<하수갱멱내시도>리오.

 목인(木人) 석녀(石女)가 같이 환호하여
 신수(信手)로 잡아 옴에 씀이 만족함이로다.
 청산도 다함이 없고 뜻도 다함이 없거늘,
 어찌 다시 내시(來時)의 도를 찾으리오.


동산(洞山) 선사께서 입적하실 때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부질없는 이름이 세상에 남았으니, 누가 나를 위해 그 부질없는 이름을 없앨꼬?”
하시니, 대중이 아무도 대답이 없거늘, 때마침 시자가 있다가 말했다,
“화상(和尙)께 법호(法號)를 청하나이다.”
이에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나의 부질없는 이름이 이미 사라졌도다.”
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동산 선사의 명성이 오호(五湖)에 충만하고 그 고준한 기봉(機峰)이 여탈수방(與奪收放) 자재(自在)해 무수의 제자를 배출함이요, 그 후에 조동종(曹洞宗)을 세움이라. 동산은 대선사(大禪師)이어니 어째서 “나의 한명(閑名)의 제거(除去)”를 청함인고?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동산 선사는,
 可知禮也<가지예야>로다.

 가히 예를 아는 분이로다.

 法法本無名 那裏何有名<법법본무명 나리하유명>이냐.
 昨日恁麽來 今日恁麽去<작일임마래 금일임마거>라.
 去來都放下 月落穿市過<거래도방하 월락천시과>로다.

 법법(法法)이 본래 이름이 없거늘 이 속에 어찌 이름이 있을까보냐.
 어젯날에 이렇게 옴이나 금일에 이렇게 가도다.
 거래(去來)를 다 놓으니 달이 떨어짐에 저자를 꿰어 지나감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신사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5.2001)

 

40.홀우금시조(忽遇金翅鳥)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산승이 가지고 있는 이 주장자를 들어 보임에,

 相見不揚眉<상견불양미>이나
 君東我亦西<군동아역서>로다.

 서로 보고 눈썹도 깜짝하지 않더라도
 그대는 동(東)을 향하는데, 산승은 서(西)를 향함이로다.


이 한 마디의 낙처(落處)를 바로 알 것 같으면, 대장부(大丈夫)의 활개를 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극락세계(極樂世界) 연화대(蓮花臺) 위의 모든 부처님과 동참하게 됨이로다.
극락세계 연화대 위에는 오직 이 심성(心性)의 천진불(天眞佛)을 분명히 본 자만이 가서 앉을 수가 있음이로다. 극락세계는 언설(言說)로 표현하기 어려운 중중 장엄(莊嚴)의 세계가 이루어져 있는데, 범인(凡人)으로서는 설사 극락세계에 간다고 할지라도 하품(下品)세계나 중품(中品)세계에는 갈 수 있을지언정, 상품(上品)의 연화장 장엄세계(蓮花藏莊嚴世界)에는 참여할 수 없도다. 연화대 위에 모셔다 놓는다 해도 있을 수가 없도다.
모든 부처님께서 앉아 계시는 연화장 세계는 우리가 공부를 잘 해서 견성(見性)을 해야만 수용할 수 있는 것이지, 조그마한 덕(德)이나 복(福)을 지은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로다.
그래서 산승이 항시 여러 대중에게 법문하기를, 개개인인(箇箇人人)이 각자 가지고 있는 심성을 밝혀야만 세세생생 부처님과 동일한 낙(樂)을 누릴 수 있다 함이로다.

산승이 월내(月內)에서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화두를 들고 애쓰다가 홀연히 심안(心眼)이 열려 향곡(香谷) 선사께 글을 지어 올렸다.

 這箇拄杖幾人會<자개주장기인회>아?
 三世諸佛總不識<삼세제불총불식>이로다.
 一條拄杖化金龍<일조주장화금룡>하야
 應化無邊任自在<응화무변임자재>로다.

 이 주장자의 진리를 몇 사람이나 알꼬?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다 알지 못함이로다.
 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룡(金龍)으로 화(化)해서
 한량없는 조화를 자유자재하는구나.

그러자 향곡 선사께서 문득,
“홀연히 용(龍)이 금시조(金翅鳥)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려는고?”
하시며 아주 벽력(霹靂)같은 물음을 던지셨다.
금시조라는 새는 구만 리 장천(九萬里長天)을 날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삼백육만 리(里)나 되는 두 날개로 바닷물을 내리쳐서 물이 갈라지면 그때 거기에 드러난 용을 잡아먹는다는 전설의 새다.
그런데 ‘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룡(金龍)으로 화(化)해서 한량없는 조화를 자유자재한다’하니, 그렇듯 위력(威力)을 지닌 금시조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려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선지식(善知識)이 아니면 이러한 물음을 던질 수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 산승(山僧)이 답하기를,
“바로 몸을 움츠리고 세 걸음 물러가겠습니다.”
했더니, 향곡 선사께서
“옳고, 옳다!”
하셨다.

석일(昔日)에 어느 선사께서 상당하시어 대중에게 물으시기를,
“문득 금시조를 만나서는 어떻게 하려는고?”하니, 등은봉(鄧隱峰) 선사는 가사(袈裟)를 둘러쓰고 법상 밑으로 들어가 숨어 버리셨다.

똑같은 물음에도 답처(答處)는 다르다.
“문득 금시조를 만나서는 어떻게 하려는고?” 하는 물음에, 한 사람은 몸을 굽히고 세 걸음 물러간다고 했고, 한 사람은 가사를 둘러쓰고 법상 밑으로 들어가 숨었다.

심안(心眼)이 열리면 물음에 이렇게 자재하게 응수(應酬)하게 되는 법이로다. 이러한 자재의 용처(用處)를 갖추지 못할 것 같으면 아무 쓸 곳이 없음이로다.
이 주장자의 진리를 알면 그 같은 자재의 용처를 갖추어 억만년이 다하도록 수용해도 다함이 없게 됨이로다. 모든 불조(佛祖)가 이 주장자의 진리를 일생을 써도 다함이 없으셨으니, 그래서 이 주장자를 제자들에게 부치고 가시는 것이로다.
참학인(參學人)이 ‘알았다’고 하면, 선지식은 불조께서 베풀어 놓으신 백천 관문(百千關門)을 던져보아 그 살림살이를 점검한다. 여기에 자재의 수완을 갖추어서 어떠한 물음에도 척척 답을 하되,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빠른 혜안(慧眼)의 기틀이 있어야 인증(印證)을 하는 법이로다.
이러한 전광석화와 같은 기틀이 없다면, 그 사람은 사자(獅子)의 조아(爪牙)를 갖추지 못한 이로다. 사자가 조아를 날카롭게 갖추지 못할 것 같으면, 토끼 한 마리도 제대로 잡아먹지를 못하나니, 사자가 사자 구실을 못한다는 말이로다.
마찬가지로 선지식이 사자의 조아를 날카롭게 갖추지 못하면, 선지식의 위력을 십분(十分) 발휘하지 못해 만인에게 진리의 눈을 열어줄 수가 없음이로다.
그러므로 이 주장자의 진리를 바로 알아서 응화무변(應化無邊)의 자재로움을 갖추어야사 비로소 종사(宗師)가 될 수 있음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사방팔면(四方八面)이 영롱하고 영롱해서
 해와 달보다 더욱 밝으며,
 넓고 넓어서 아는 사람이 없으니
 비밀히 전해 오는 불조의 법을
 누구에게 부칠꼬?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임오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6.2002)

 

41.앙산(仰山)의 마설(魔說)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識得平常心是道  <식득평상심시도>니
 平常不住道方玄  <평상부주도방현>이라.
 遇茶喫茶遇飯喫飯<우다끽다우반끽반>이니
 千重万匝四海一家<천중만잡사해일가>라.
 解却黏去却縛    <해각점거각박>하면
 言無言作無作    <언무언작무작>이라.
 廓然本体等虛空  <확연본체등허공>하여
 風從虎兮雲從龍  <풍종호혜운종용>이라.

 평상심을 알 것 같으면 이것이 도이니,
 평상에 주하지 아니하야사 도가 바야흐로 현현함이로다.
 차를 만난 즉은 차를 먹고 밥을 만난 즉은 밥을 먹음이니,
 천중만잡과 사해가 일가라,
 첩첩이 접은 것을 풀고 얽고 얽힌 것을 버리면
 말을 하되 말한 바가 없고 짓되 지은 바가 없음이로다.
 확연한 본체는 허공과 같음이니,
 바람은 범을 좇아 오고 구름은 용을 좇아 일어남이로다.


석일(昔日)에 위산(潙山) 선사께서 앙산(仰山)스님에게 물으시기를,
“부처님께서 설하신 열반경(涅槃經) 사십 권 중에 얼마만큼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며, 얼마만큼이 마구니가 설한 것인고?”
하시니, 앙산스님이 답하기를,
“다 마구니가 설한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위산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후의 사람들이 그대를 어찌하지 못하리라.”
하셨다. 이에 앙산스님이
“모갑(某甲)이 한 번 기약하는 일이거니와 행리(行履)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함에, 위산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못 그대의 눈 밝은 것을 귀히 여김이요, 그대의 행리는 말하지 않노라.”
하심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무렵에 설하신 열반경 법문(法門)이어니 어찌하여 앙산스님이 마설(魔說)이라 하였는고?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여기에 분명히 알아갈 것 같으면
 일가견(一家見)을 갖추어서 홀로 단소(丹霄)에 걸음하거니와,
 그러하지 못할진댄,
 죽음에 다다라 염라대왕이 그대를 그냥 두지 아니하리라.

 앙산스님이 말한, “부처님께서 설하신 열반경 사십 권이 마설이라”하는 것을 필경에 어떻게 생각하는고?

 앙산스님의 안목이 옛적에도 빛났고 지금도 빛남이나
 자세히 점검컨대,
 삼십 방(三十棒)을 면치 못하리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임오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6.2002)

 

42.용아(龍牙)의 선판(禪板)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打鼓看來君不見<타고간래군불견>이라.
 百花爭發爲誰開<백화쟁발위수개>아?
 莫然轟起振天雷<막연굉기진천뇌>하니
 百草頭頭春色回<백초두두춘색회>로다.

 북을 쳐서 와서 보게 하나 그대가 보지 못함이라.
 일백 가지 꽃이 다투어 핌이 누구를 위함인고?
 막연히 하늘에서 우뢰를 쳐 굉음(轟音)을 일으키니
 일백 가지 풀마다 봄빛이 완연하도다.


석일(昔日)에 용아산(龍牙山) 거둔(居遁) 선사께서 처음 취미(翠微) 선사를 참예하여 물으시되,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시니, 취미 선사께서 대답하시되,
“선판(禪板)을 나에게 가져 오너라.”
하셨다.
용아 선사께서 선판을 가져와 취미 선사께 드리니, 취미 선사께서 잡아서 문득 때리시거늘, 용아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때리기는 마음대로 때리나, 아직 조사의 뜻은 없도다.”
하셨다.
또, 임제(臨濟) 선사의 처소에 가서 물으시되,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시니, 임제 선사께서
“나에게 저 포단(蒲團)을 가져 오너라.”
하시거늘, 용아 선사께서 포단을 가져와 임제 선사께 드리자 문득 받아서 때리시니, 용아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때리기는 마음대로 때리나, 아직 조사의 뜻은 없도다.”
하셨다.

후에 용아 선사께서 절의 주지가 되어 회상(會上)을 여신 때에, 어느 수좌(首座)가 있어 묻기를,
“화상(和尙)이 행각(行脚)할 때에 취미 선사와 임제 선사에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셨다는데, 두 분의 선사가 도안(道眼)이 밝던가요?”
하니, 용아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도안이 밝기는 하나, 아직 조사의 뜻은 없음이로다.”
하시었다.

이에 설두(雪竇) 선사가

 龍牙山裏龍無眼<용아산리용무안>하니
 死水何曾振古風<사수하증진고풍>인가?
 禪板蒲團不能用<선판포단불능용>하니
 只應分付與盧公<지응분부여노공>이라.

 용아산의 용이 눈이 없나니
 죽은 물에서 어찌 옛 가풍을 떨칠쏘냐?
 선판, 포단을 능히 쓰지 못하니
 다만 노공(盧公: 설두 자신)에게나 주어야 하리.

라고 송(頌)하였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설두 선사는,
 다못 그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도다.
 가사(假使) 선판, 포단으로 정령(正令)을 행하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들 쓸 곳이 없음이라.

 산승(山僧)이 삼 개, 사 개 한(漢)을 자세히 점검컨대,

 조사의(祖師意)가 없음이로다.


필경에 어떠한고?

〔주장자(拄杖子)를 던지신 후,〕

 看看<간간>하라!

 대중(大衆)은 보고 보아라!

〔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임오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6.2002)

 

43.무위진인(無位眞人)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應現縱橫總不虧<응현종횡총불휴>하니
 動用施爲收不得<동용시위수부득>이로다.
 活鱍鱍黑洨洨  <활발발흑효효>라.
 且問時人知不知<차문시인지부지>오?
 不知直待問彌勒<부지직대문미륵>하라.

 종횡(縱橫)으로 응현(應現)함에 모두 다 이지러지지 아니함이라.
 동용(動用)에 베풀어도 거두어 얻지 못함이로다.
 활발발하고 빠르고 날쌘지라.
 때에 사람에게 묻노니,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
 알지 못하거든 기다리어 미륵불(彌勒佛)에게 물어라.


일일(一日)에 임제(臨濟) 선사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시되,
“한 위없는 참사람[無位眞人]이 있어서 항상 여러분들의 얼굴문〔面門〕으로 드나든다. 증거를 잡지 못한 이는 살펴보라.”
하시니, 어떤 수좌가 나서서 묻기를,
“어떤 것이 위없는 참사람입니까?”
하였다. 이에 선사께서 법상(法床)에서 내려와 멱살을 잡고 말씀하시되,
“일러라, 일러라!”
하시니, 그 수좌가 망설이거늘, 선사께서 멱살을 놓고 이르시되,
“무위진인이 무엇이냐! 마른 똥막대기〔乾屎橛〕니라.”
하셨다.

임제 선사는 수좌가 위없는 참사람을 묻는데 멱살을 잡고, 천장(天章) 선사는 문득 때리니, 대중(大衆)은 두 분의 대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두 선사의 용처(用處)가
 좋은즉 아주 좋음이요, 아름다운즉 아름다우나
 자세히 점검컨대,
 멀고 멀도다.

필경에 어떠함인고?

 姹女而歸霄漢去<차녀이귀소한거>어늘
 獃郞猶在守空房<애랑유재수공방>이로다.

 아리따운 처녀는 하늘나라로 갔거늘
 어리석은 총각은 빈 방만 지키도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임오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6.2002)

 

44.여래어(如來語)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살인도(殺人刀), 활인검(活人劍)은
 예로부터 불조(佛祖)의 가풍(家風)이요,
 또한 때사람〔時人〕들의 추요(樞要)로다. 
 진리의 살활검(殺活劍)을 자재하게 쓰면
 종사(宗師)의 수완을 갖추어서
 문득 가히 자유자재하여 줄탁지기(啐啄之機)를 폄으로써
 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을 열어감이로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옴인고?


일일(一日)에 복주(福州) 장경 혜릉(長慶慧稜)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차라리 아라한(阿羅漢)에게 삼독(三毒)이 있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에게 이종어(二種語)가 있다고 말하지 말 것이며, 여래가 말이 없다고도 말하지 말라. 다못 이종어가 없을 뿐이니라.”
하시니, 보복(保福) 선사께서 물으셨다.
“어떤 것이 여래(如來)의 말인가?”
이에 장경 선사께서 대답하시되,
“귀먹은 사람이 어찌 들을 수 있으리오.”
하셨다. 보복 선사께서 다시 말씀하시되,
“그대가 제 이(二)의 문턱에서 말하는 줄 짐작은 했었느니라.”
하시니, 장경 선사께서 물으셨다.
“어떤 것이 여래의 말인가?”
이에 보복 선사께서 대답하시되,
“차나 마시라.”
하셨다.

이에 산승(山僧)이 묻노니,

시회대중(時會大衆)아!
두 분 대선사(大禪師)의 문답처를 보라.

 龍虎相搏<용호상박>하니
 難兄難弟<난형난제>로다.

 용(龍)과 호랑이[虎]가 서로 싸움에
 형 되기도 어렵고 아우 되기도 어렵도다.

 그러나 자세히 점검컨대,
 양대선지식(兩大善知識)이 여래어(如來語)는 꿈에도 보지 못함이로다.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瞎驢逐隊過西天<할려축대과서천>하고
  吃嘹頭三千里外<흘료두삼천리외>로다.

 눈먼 나귀는 무리를 쫓아 서천(西天)을 지나가고
 혀를 놀려 지껄임도 삼천 리 밖이로다.
.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계미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7.2003)

 

45.삼성(三聖)·보수(保壽)의 호환지기(互換之機)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枯木龍吟眞見道<고목용음진견도>요
 髑髏識盡眼初明<촉루식진안초명>이라.
 消息盡時喜息盡<소식진시희식진>이어늘
 當人那辨濁中淸<당인나변탁중청>할꼬?

 마른 나무에 용이 소리를 내니 참으로 도(道)를 봄이요,
 해골 뼈다귀에 분별(分別)이 다하여야만 진리의 눈이 처음 밝음이라.
 소식(消息)이 다한 때에 기쁜 소식이 다했거늘,
 마땅히 사람들이 어찌 이 탁한 가운데 맑은 것을 가릴꼬?


이렇게 몸을 굴리는데 자재(自在)하면 진리를 참구하는 일을 마치리라. 여름 석 달 안거 가운데 이렇게 자재한 눈을 갖추지 못하였을진댄, 결제 해제에 일체 상관하지 말고 일상 중에 각자의 화두를 들고 한 생각[一念]이 지속되도록 혼신의 정력을 쏟을지어다. 그리하여 문득 진리의 문에 들어갈 것 같으면, 종지(宗旨)도 통하고 설법(說法)도 통하리라.

석일(昔日)에 보수(保壽) 선사께서 회상(會上)을 열어 법상에 오른 차제에, 삼성(三聖) 선사께서 법상 앞에 나아가 한 수좌(首座)를 보수 선사 앞에 데려와 멱살을 잡아 일으키거늘, 보수 선사께서 그 수좌를 주장자로 한 번 때리니 삼성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만약 이렇게 납자(衲子)들을 제접(提接)할진댄, 진주(鎭州) 사람을 다 눈멀게 하리라.”
하시니, 보수 선사께서 말없이 법상을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두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사자(獅子)가 울부짖고
 상왕(象王)이 몸을 비틀면서 소리를 지르도다.

 비록 그러하나 자세히 점검컨대,
 두 분의 선사가 이로움을 잃음〔失利〕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계미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7.2003)

 

46.능행파(凌行婆)의 거량(擧揚)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無雲生嶺上<무운생령상>하고
 唯月落波心<유월낙파심>이라.

 구름이 없으니 산마루가 드러나고
 밝은 달은 물속에 잠겨 있음이로다.


알겠느냐?

당대(唐代)에 부배(浮盃) 화상의 명성이 세간에 유명해지자, 하루는 능행파(凌行婆)가 찾아와서 절하고 물었다.
“힘을 다해 말한다 해도 이르지 못한 진리를 누구에게 부치려 하십니까?”
그러자 부배 화상이 말하기를,
“나는 그것에 대하여 말할 수 없노라.”
하니, 능행파가
“멀리서 듣기로는 부배라는 이름이 자자하더니, 와서 보니 듣던 바와 같지 못하구나!”
하고 부배 화상에게 한 방망이를 내렸다.
“달리 장처(長處)가 있다면 그대가 드러내 보라.”
부배 화상이 이렇게 말하자, 능행파가
“아이고, 아이고!”
곡(哭)을 하면서,
“이 가운데 원수의 고통이 더욱 깊도다.”
라고 하였다.
이에 부배 화상이 묵묵히 있자, 능행파가
“말의 바르고 치우침도 알지 못하고, 이치의 옳음과 그릇됨도 모르면서 남을 위한다고 한다면 재앙이 생긴다.”
라고 말하였다.
부처님의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면서 법문을 한다든가 남을 지도한다는 것은, 정법(正法)을 그르치고 만인(萬人)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므로 허물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한 승(僧)이 부배 선사와 능행파의 이 문답을 남전(南泉) 선사께 말씀드리니, 남전 선사께서 들으시고는 이렇게 평(評)을 하셨다.
“슬프도다! 부배가 그 노파에게 한 차례 꺾였구나!”
능행파가 이 말을 전해 듣고 웃으면서,
“남전 노사가 그래도 조그마한 기틀을 갖추었구나!”
라고 하였다.
그런데 거기에 마침 징일(澄一)이라는 선객(禪客)이 있다가, 그 말을 듣고는 물었다.
“어째서 남전 선사께서 조그마한 기틀을 갖추었다고 하는가?”
그러자 능행파가 곡(哭)을 하면서,
“슬프고 애통하도다!”
하니, 그 선객이 어리둥절해 하였다. 다시 능행파가
“알겠느냐?”
하고 다그치자, 선객은 속수무책으로 합장하고 서 있기만 하였다.
그러자 능행파가 탄식하며,
“죽은 송장과 같은 선객이 부지기수(不知其數)로다.”
라고 하였다.
후에 징일이 조주(趙州) 선사를 찾아가서 능행파와의 이 문답을 말씀드리니, 조주 선사께서 듣고는 말씀하셨다.
“내가 당시에 그 구린내 나는 노파를 보았더라면 한 마디 물어서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징일이 그 말을 듣고 여쭙기를,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그 노파에게 어떻게 물으시렵니까?”
하자, 조주 선사께서 별안간 징일을 때리셨다.
“어째서 저를 때리십니까?”
“이 송장 같은 선객을 이때에 때리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느냐?”
능행파가 이 일을 전해 듣고서 말하였다.
“조주 선사가 나의 방망이를 맞아야 옳다!”
조주 선사께서 이를 전해 듣고 곡을 하시며,
“슬프고, 슬프도다!”
하셨다. 능행파가 다시 이것을 전해 듣고 탄식하며 일렀다.
“조주 선사의 눈빛이 사천하(四天下)를 비춤이로다.”
조주 선사께서 이 말을 전해 들으시고는 능행파에게 사람을 보내 물으셨다.
“어떤 것이 조주의 눈이냐?”
이에 능행파는 주먹을 내밀었다.
조주 선사께서 이것을 전해 듣고 송(頌)을 지어 보내시기를,

 當機覿面提<당기적면제>하니
 覿面當機疾<적면당기질>이라.
 報你凌行婆<보이능행파>하니
 哭聲何得失<곡성하득실>이리오.

 기틀에 당해 보는 찰나를 잡으니
 보는 찰나에 기틀을 당함이 쏜살같더라.
 그대 능행파에게 답하노니,
 곡하는 소리에 어찌 얻고 잃음이 있으리오.

하시니, 이에 능행파가 회답하였다.

 哭聲師已曉<곡성사이효>하니
 已曉復誰知<이효부수지>리오.
 當時摩竭令<당시마갈령>에
 幾喪目前機<기상목전기>던고.

 곡(哭)하는 소리를 이미 아셨나니
 이미 아신 뜻을 다시 누가 알리오.
 당시 마갈타국 설법에
 목전의 기틀을 잃음이 얼마였던고.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남전, 조주 두 분 선사를 알겠느냐?

 남전, 조주 선사는 천하 선지식(善知識) 중의 선지식이로다.

능행파를 알겠느냐?

 선지식을 능가하는 고준한 안목을 갖추었으니,
 보살 가운데 으뜸이로다.

부배 선사를 알겠느냐?

 이름만 분분했지, 실속 없는 허수아비로다.

대중아! 네 분의 문답처(問答處)에 대해서 한 마디 일러보아라.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三箇四箇漢<삼개사개한>을
  一坑埋却  <일갱매각>이로다.
  噓 噓!    <허 허>!

 세 분, 네 분을
 한 구덩이에 매장함이로다.
 허! 허!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계미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7.2003)

 

47.불진법신(佛眞法身)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深深處細細行    <심심처세세행>하고
 隱隱時密密覰    <은은시밀밀처>라.
 若能恁麽徹根徹源<약능임마철근철원>하면
 旁參回互完轉虛玄<방참회호완전허현>하여
 不觸尊貴句裏明宗<불촉존귀구리명종>하고
 宗中辨的        <종중변적>하라.
 什麽人 恁麽來   <십마인 임마래>오?

 깊고 깊은 곳에 자세히 행하고
 은은한 때에 밀밀히 볼지니라.
 만약 능히 이렇게 근원(根源)을 사무치고 사무치면
 널리 참례하고 회호(回互)하며 완전히 허현(虛玄)을 굴리어,
 존귀(尊貴)함에 촉(觸)하지 아니하며 글귀 속에 종지(宗旨)를 밝히고
 종중(宗中)에 밝고 밝은 이치를 가릴지니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오는고?


석일(昔日)에 동산 양개(洞山良价) 화상의 법을 이어받은 조산 탐장 본적(曹山耽章本寂) 선사가 있었는데, 하루는 조산 선사께서 덕 상좌(德上座)에게 물으시되,
“부처님의 참 법신〔眞法身〕은 허공과 같아서 물건(物件)에 응(應)하여 형상이 나타나기를 마치 물 속에 달과 같다 하니, 어떤 것이 물건에 응하여 나타나는 도리(道理)인가? 한 번 말해보게.”
하시니, 덕 상좌가 답하기를,

  如驢覷井<여려처정>이로다.
  나귀가 우물을 엿보는 것 같습니다.

하였다. 조산 선사께서 다시 말씀하시되,
“이르기는 재빨리 일렀으되, 겨우 팔부(八部)만 일렀도다.”
하시니 덕 상좌가
“화상(和尙)께서는 어떠함이닛고?”
함에, 조산 선사께서

  如井驢覷<여정려처>로다.
  우물이 나귀를 엿보느니라.

하시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두 분의 문답처(問答處)를 잘 보라.
세밀하게 문답을 잘 함이로다.

“‘부처님의 참 법신은 오히려 허공과 같되, 물건에 응하여 형상을 나투는 것이 물 가운데 달과 같다하니, 어떻게 생각하는고?’”함에, 한 사람은
“나귀가 우물을 엿보는 것 같다” 하고, 한 사람은
“우물이 나귀를 엿보느니라” 하니,

 두 분의 문답처를 자세히 보건대,
 온전하게 십부(十部)를 이르지 못함이로다.

만약 산승에게 묻는다면,

 風吹樹枝自動<풍취수지자동>이라.
 
 바람이 불매 나뭇가지가 스스로 움직임이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계미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7.2003)

 

48.임제(臨濟)의 빈주구(賓主句)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經行坐臥不相妨<경행좌와불상방>이니
 日用何嘗有差惑<일용하상유착혹>인가?
 此生若不究根源<차생약불구근원>하면
 直向當來見彌勒<직향당래견미륵>하라.

 가고 행하고 앉고 눕는데 서로 방해롭지 아니하나니
 일상생활 중에 어찌 착오가 있겠는가?
 만약 이번 생에 진리의 근원을 깨닫지 못하면
 앞으로 미륵불이 오시거든 바로 가서 물어라.


옛날 중국 당나라 때 임제(臨濟) 선사 회상에 양당(兩堂)의 두 수좌(首座)가 문을 열고 나오는 즉시 서로 동시에 ‘할(喝)’을 하였다.
한 수좌가 임제 선사께 묻기를,
“양당 수좌가 동시에 할을 하니 손님〔賓〕과 주인〔主〕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니, 임제 선사께서 이르시되,
“손님과 주인이 분명함이로다.”
하시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임제 빈주구(臨濟賓主句)’를 알면 참학사필(參學事畢)이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8.2004)

 

49.혜충 국사(慧忠國師)의 무봉탑(無縫塔)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擧直措枉    <거직조왕>은
 佛祖門風    <불조문풍>이요
 絶跡亡蹤    <절적망종>은
 衲僧命根    <납승명근>이로다.
 縱使同聲相應<종사동성상응>하고
 同氣相應    <동기상응>이라도
 點着不來    <점착불래>면
 白雲萬里    <백운만리>로다.

 곧은 것을 들고 굽은 것을 둠은
 부처님과 조사의 가풍이요,
 자취가 끊어지고 자취가 없음은
 납승의 생명의 뿌리로다.
 비록 같은 소리로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으로써 서로 응하더라도
 점쳐 부딪치고 오지 아니하면
 백운이 만 리나 뻗침이로다.


갑신년 하안거에 들어간 지 90일이 경과하여 금일이 해제일이로다.
대중은 90일간 실답게 참구하고 실답게 깨달았는가 스스로 돌이켜 봐야사 옳다. 각자 화두를 또록또록 참구하였는가, 분별시비(分別是非)에 시간을 많이 허비하지 않았는가 반성하는 시간이 꼭 필요함이로다. 다시는 이러한 망상(妄想)과 습기(習氣)에 허송세월하는 일이 없게끔 할지어다.

석일(昔日)에 당(唐)나라 숙종 황제가 혜충(慧忠) 선사를 국사(國師)로 모셨는데, 하루는 국사께 찾아와서 부탁드리기를,
“서천(西天)에서 온 대이 삼장(大耳三藏)스님이 타심통(他心通)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하니, 스님께서 한번 시험을 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하니, 혜충 국사께서
“데리고 오시오.”
하셨다.
숙종이 삼장스님과 함께 와서 혜충 국사께 인사를 드리니, 혜충 국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타심통을 얻었다 하니 그러한가?”
하시니, 삼장스님이 말하기를,
“감히 그러하지 못합니다.”
하고 사양하였다.
혜충 국사께서 잠시 동안 가만히 계시다가 물으시기를,
“네가 한번 일러보라. 노승(老僧)이 지금 어느 곳에 있음인고?”
하시니, 삼장스님이 말하기를,
“선사님은 일국(一國)의 스승이시거늘 어찌 수천 리 떨어진 촉국(蜀國) 서천(西川)강 위에 배들이 경주함을 보고 계십니까?”
하였다. 혜충 국사께서 조금 있다가 또 물으셨다.
“네가 한번 일러보라. 노승이 지금은 어느 곳에 있음인고?”
“선사님은 일국의 스승이온데 어찌 천진(天津)땅 다리 위에 원숭이들이 희롱함을 보고 계십니까?”
국사께서 또 잠시 계시다가 물으셨다.
“지금은 노승이 어느 곳에 있음인고?”
하시니, 세 번째 묻는 데는 삼장스님이 아무리 찾아도 거처를 알지 못하였다.
이에 혜충 국사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이 여우같은 놈! 타심통이 어느 곳에 있음인고?”
하시니, 삼장스님이 아무런 대꾸도 못하였다.

그러면 앞의 두 질문은 알아맞혔는데 세 번째 질문에는 어째서 거처를 알지 못했는고?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혜충 국사는 적적삼매(寂寂三昧)를 수용한 고로 삼장스님이 보지 못함이로다.

혜충 국사의 임종시에 숙종 황제가 찾아와 물었다.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무엇을 해드리리까?”
“노승을 위해 무봉탑(無縫塔)을 지어 주소서.”
“국사님, 탑의 모양을 청합니다.”
이에 국사께서 잠시 가만히 계시다가 이르셨다.
“알겠습니까?”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면 이후에 나의 법제자 탐원(眈源)이 있어 ‘무봉탑’의 일을 앎이니 그에게 청하여 물어 가소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국사께서는 열반에 드셨다.

세월이 흘러 설두(雪竇) 선사께서 출현하시여 혜충 국사의 무봉탑 법문에 송(頌)을 하시기를,

 無縫塔見還難  <무봉탑견환난>이라
 澄潭不許蒼龍蟠<징담불허창룡반>이로다.
 層落落影團團  <층낙낙영단단>하여
 千古萬古與人間<천고만고여인간>이로다.

 꿰맴이 없는 탑은 보기가 도리어 어려운지라,
 맑은 못에는 푸른 용이 사리고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함이로다.
 층층이 우뚝하고 그림자는 단단해서
 천년 만년토록 사람으로 더불어 보게 함이로다.

시회대중은 혜충 국사와 설두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혜충 국사는,
 선의 구경(究竟)의 경지를 오득(悟得)하시어 천추만세(千秋萬歲)에 만인의 스승이 됨이요,
 설두 선사는,
 천하 대종사의 깨달은 법문을 정안(正眼)으 로 직시(直視)하여 한 꼬챙이에 꿰어 적나라하게 만인 앞에 드러내 보이시니, 설두 선사와 같은 밝은 눈을 갖춘 이가 이 세상에 몇몇이나 있을꼬?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8.2004)

 

50.당기일구(當機一句)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不動如如萬事休<부동여여만사휴>요
 澄潭徹底未曾流<징담철저미증류>로다.
 個中正念常相續<개중정념상상속>이면
 月皎天心雲霧收<월교천심운무수>로다.

 움직임이 없는 여여함은 만사를 쉼이요,
 맑은 못에 철저히 밑까지 사무치니 일찍이 흐르지 아니함이로다.
 이 가운데 바른 생각 항상 이을 것 같으면
 달은 하늘에서 빛나고 운무는 걷힘이로다.


기틀에 다다라 척척 나오는 일구(一句)!
이것이 가장 소중하도다. 당기일구(當機一句)가 석화전광(石火電光)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음이로다.
당대(當代)의 선지식들인 조주(趙州)·운문(雲門)·임제(臨濟)·덕산(德山) 선사 같은 분들을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봉(機鋒)을 갖추었기 때문이로다.
글〔文章〕, 송(頌), 염(拈), 평(評) 등은 시간을 두고 사량(思量)하여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면전(面前)에서 즉시에 하는 문답은 사량이나 조작(造作)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이라. 그러기에 당기일구의 기틀을 갖추지 못했다면 접인(接人)할 능력도 없을뿐더러, 알았다고 하는 것도 모두 망령된 사견(邪見)에 지나지 않음이로다. 고인들의 전지(田地)에는 꿈에도 이르지 못한 것이로다.
요즈음의 선지식들이 당기(當機)에 다다라 주저하게 되는 것은 견처(見處)나 살림살이도 다 고인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로다.
이 무변대도(無邊大道)의 불법의 진리를 바로 알려면 고인들의 법문 하나하나를 다 바로 볼 수 있어야 함이로다. 고인들의 살림살이가 따로 있고 현재 우리가 공부한 살림살이가 따로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로다. 예나 지금이나 견성법(見性法)이란 항상 동일한 것인데, 만일 서로 다름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어느 한 쪽에 허물이 있음이로다.
그간 무수한 도인들이 각자가 깨달은 경지(境地)를 기량(機量)대로 써왔음이니, 제 아무리 약삭빠른 이라도 엿볼 수 없고 사량, 분별을 붙일 수 없게끔 무진삼매(無盡三昧)의 공안을 베풀어 놓았도다. 이러한 수많은 공안에 대하여 확연명백하지 못할 것 같으면 크게 쉬는 땅을 얻었다고 할 수가 없고, 고인들과 같은 경지를 수용할 수도 없음이로다.
그러니 모든 참학인(參學人)들은 고인의 경지에 근간(根幹)을 두어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베풀어져 있는 공안(公案)의 그물을 다 뚫어 지나가야 함이로다.

석일(昔日)에 조주(趙州) 선사께서 노파에게 물으셨다.
“어디를 가는가?”
“조주의 죽순(竹筍)을 훔치러 갑니다.”
이에 조주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갑자기 조주를 만나면 어찌하려는고?”
이에 노파가 얼른 한 대를 때리거늘, 조주 선사께서 그만 두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조주 선사와 노파를 알겠느냐?

 노파는,
 氣勢萬丈이나 得便宜時失便宜<기세만장 득편의시실편의>요
 기세가 만 길이나 높음이나 편의를 얻은 때에 편의를 잃음이요,
 조주 선사는,
 無言而立이나 魏魏當當如高山<무언이립 위위당당여고산>이로다.
 말없이 서 있음이나 위위당당해서 높은 산과 같음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8.2004)

 

51.산심수한(山深水寒)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이 일을 논하건대
 도독고(塗毒鼓)와 같음이니
 한 번 치는 소리에
 멀거나 가깝거나
 다 몸을 상함이로다.

치지도 아니하고 듣지도 아니 할 때는 어떠한고?

 山深水寒<산심수한>이로다.

 산이 깊으면 물이 차가움이로다.


이 선(禪)이라는 것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정안(正眼)이요, 역대 조사의 명근(命根)이로다. 불법에 있어서 선은 그만치 고귀한 진리인 것이다.
그래서 문수보살(文殊菩薩)께서도 말씀하시기를,

 若人靜坐一須臾<약인정좌일수유>하면
 勝造恒沙七寶塔<승조항사칠보탑>이라.
 寶塔畢竟化爲塵<보탑필경화위진>이나
 一念正心成正覺<일념정심성정각>이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잠시라도 고요히 앉아 참구(參究)할 것 같으면
 항하의 모래 수만큼 칠보탑을 쌓는 것보다 공덕이 더 수승(殊勝)함이라.
 보배탑은 필경에 티끌이 되지만
 한 생각 바른 수행은 정각을 이룸이로다.

하셨으니, 가장 보람 있고 값진 일은 선을 참구하는 일이로다.
선을 참구하여 마음 바탕을 뚜렷이 밝힌 자는 진리의 법왕이 되어서 일만(一萬)경계를 임의자재(任意自在)하게 수용하고 쓸 수 있음이로다.
마음의 바탕에 팔만 사천의 지혜가 다 구족되어 있는 고로 망념(妄念)이 다한 곳에 홀연히 지혜의 눈이 열리면 팔만 사천 지혜를 다 자재하게 쓸 수 있게 되는 법이로다.

문수보살이 하루는 동자(童子)를 한 명 데리고 산에 약초를 캐러 가셨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며 약초를 캐다가 동자에게 이르시기를,
“약 아닌 풀을 캐어 오너라.”
하시니, 동자가 말하기를,
“약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며 풀 한 포기를 뜯어 바쳤다. 문수보살이 그 풀을 받아 들으시고,
“이 약은 천하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천하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무한한 뜻이 있음이로다.
어째서 “약이 아닌 풀을 캐어 오라”하는데, 동자는 풀 한 포기를 뜯어다 바쳤느냐? 이것을 알 것 같으면, “이 약은 천하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천하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있음이로다.
이러한 것에 확연명백(確然明白)해야 진리의 법왕이 되어 팔만 사천 지혜를 자유자재로 염출(拈出)해 낼 수 있게 됨이로다.

석일(昔日)에 방 거사(龐居士)가 약산(藥山) 선사를 방문하여 거기에서 며칠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그 곳 선객 몇몇이 전송을 나왔다. 마침 눈이 내리므로 방 거사가 허공을 쳐다보며,
“송이 송이 날리는 눈이여, 별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네.”
라고 하자, 뒤따르던 한 선객이 물었다.
“별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으면 어느 곳에 떨어집니까?”
그러자 방 거사가 묻는 선객의 뺨을 올려 치면서,
“이런 소견(所見)을 짓고도 어찌 선객이라 하느냐?”
하고 호통을 쳤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송이 송이 날리는 눈이 별다른 곳에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며, 또 거기에 무어라고 응수(應酬)해야 뺨 맞음을 면하겠는가?

훗날 설두(雪竇) 선사께서 여기에 대해서 착어(着語) 하시기를,

 雪團打雪團打  <설단타설단타>언들
 龐老機關沒可把<방노기관몰가파>로다.

 눈을 뭉쳐 때리고 때려 주었던들
 방 거사의 날카로운 기봉도 별 수 없었으리.

안목이 있고 없음의 차이가 이와 같음이로다.
“송이 송이 날리는 눈이 별다른 곳에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에, 그 당시의 선객은 “눈이 별다른 곳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어느 곳에 떨어집니까?”하였고, 설두 선사께서는 “눈을 뭉쳐서 때리고 때린다” 하였다.

대중은 설두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雪竇老雪竇老<설두노설두노>여!
 賊過後張弓  <적과후장궁>이로다.

 설두노여, 설두노여!
 도적이 지나간 후에야 활을 쏘셨구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8.2004)
 


52.우두(牛頭)의 친견사조(親見四祖)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眼中無瞖休挑括<안중무예휴조괄>하고
 鏡中無塵不用磨<경중무진불용마>어다.
 信足出門行大路<신족출문행대로>에
 橫按拄杖唱山歌<횡안주장창산가>로다.
 唱山歌兮      <창산가혜>여!

 눈 가운데 티끌 없으니 긁으려 하지 말고
 거울 가운데 먼지 없으니 닦으려 하지 말라.
 발을 딛어 문을 나가 큰 길을 행함에
 주장자를 횡으로 메고 산 노래를 부름이로다.

 저 건너 인봉(印峰)에는 비가 묻어오는데
 우장 삿갓을 둘러쓰고 소를 먹이러 갈꺼나.


불조(佛祖)의 살림살이는 어떤 것이냐?
법신변사(法身邊事)의 진리도 아니요, 여래선(如來禪)의 진리도 아님이로다. 오로지 불불조조(佛佛祖祖)가 비밀히 전한 향상(向上)의 정안(正眼)을 갖춰야사 옳다. 법신변사나 여래선의 진리로써 ‘알았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음이나 동문서답하고 막힘이 있음이라. 여기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음이니 직하에 놓고 다시 참구하여야 함이로다. 부처님의 진리는 법신변사나 여래선에 있는 것이 아님이라. 최고의 향상의 일구를 투과해야사 바른 정안을 갖추어 만인의 눈을 멀게 하지 않음이로다. 이러한 향상의 정안을 갖추지 못하면 자기의 살림살이도 중간에 있고 만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멀게 하여 진흙 속에 빠지게 함이니, 이 도를 알고자 하는 이는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 바른 지도와 탁마를 받은 연후에 자기사(自己事)를 마칠 수 있음을 깊이 새겨서 이러한 법문에 눈을 뜰지어다.

옛날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모친(母親)인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하시려고 도솔천궁(兜率天宮)에 가셔서 90일간 머물러 계셨다. 이 육신을 그대로 도솔천궁에 나투시니 부처님의 신통은 가히 사의(思議)하기 어려운지라. 이렇듯 부처님께서 90일간 도솔천궁에 계시다보니, 인간세계의 모든 대중이 부처님을 흠모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간절하였다.
그 당시에 우전국왕이 부처님의 제자들 중 신통제일(神通第一) 목련존자(目連尊者)를 청하여 부탁하기를,
“이 나라의 일등 조각가를 다 불러 모았으니, 존자께서 그들을 데리고 지금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고 계시는 도솔천에 올라가 부처님의 32상(相)의 모습을 똑같이 조각해 올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이에 목련존자가 신통력으로써 조각가들을 데리고 이 육신을 그대로 도솔천에 올라가니, 목련존자의 신통도 가히 사의하기 어렵도다.
그리하여 목련존자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모습을 두 번, 세 번 조각하였으나, 31상의 모습은 원만히 조각하였지만 32상 중 범음상(梵音相)은 도저히 조각하지 못하였다.

그럼 시회대중(時會大衆)에게 묻노니,
어느 것이 부처님의 설법하는 음성상(音聲相)이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소리를 낮추고 소리를 낮추어라.

어째서 소리를 낮추고 소리를 낮추라 함이냐?
이것을 알아야 함이로다.

부처님께서 도솔천궁에서 법문을 마치고 내려오시는 차제에, 모든 비구들과 사부대중들이 차서(次序)를 갖추어 마중을 나와 있는데, 연화색(蓮花色) 비구니는 ‘내가 신통묘용(神通妙用)으로써 모든 비구와 대중들을 앞서서 부처님을 맞으리라’ 하여 신통으로 제일 먼저 부처님을 맞으니, 부처님께서 연화색 비구니를 꾸짖음이라.
“연화색 비구니야! 네가 대덕(大德) 비구스님의 차서를 어기고 먼저 부처님을 맞이함은 바른 행이 아니니라. 비록 네가 큰 비구에 앞서서 나를 맞음이나 너는 나의 색신(色身)만 보고 법신(法身)은 보지 못함이로다. 수보리(須菩提) 존자는 산 바위 밑에 편안히 앉아 있어도 이미 나의 법신을 친견하였음이로다.”
 
우리 모든 대중은 대중생활을 함에 있어서 상하질서(上下秩序)가 분명해야 함을 명심해야 함이로다. 그래야 대도(大道)에 바르게 다가감이니, 각자의 판단분별로써 질서를 어김은 대중의 화합을 어지럽히는 일이요, 자신의 공부를 어긋나게 하는 길이니 조심하고 조심할지어다.

석일(昔日)에 우두(牛頭)스님이 정진을 잘 하고 있는 도중에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 와서 공양을 올리고, 밥시간이 되면 천상(天上)의 동녀(童女)들이 밥을 지어 올리는지라. 그래서 하루는 우두스님이 사조(四祖) 도신(道信) 선사를 친견하러 가서 이를 사실대로 아뢰니, 도신 선사께서
“그대가 그러한 공부를 지어 어디에다 쓰려는고? 모든 짐승과 모든 천신들이 엿보게  하는 그러한 공부는 쓸 곳이 없음이니, 공부를 바로 잘 지어가야 함이로다.”
하시며 경책하셨다.
사조 선사로부터 방망이를 맞은 후로 우두스님이 정진에 정진을 더하니 종전과 같이 꽃을 물어오고 밥을 지어 바치는 그러한 일이 없었다. 
눈 밝은 선지식의 방망이 아래 진일보한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이 법문을 들어 어느 학인(學人)이 남전(南泉) 도인께 묻기를,
“우두스님이 사조 선사를 뵙기 전에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 오고 하늘의 동녀들이 공양을 올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니, 남전 도인께서 답하시기를,
“부처님의 계단을 밟고 밟음이다.”
하시었다. 이에 학인이 또 묻기를,
“우두스님이 사조 선사를 친견한 이후로는 어째서 백 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 오지 않고, 하늘의 동녀들이 공양을 바치지 아니합니까?”
하고 물으니, 남전 도인께서
“설사 꽃을 물어 오지 않더라 해도 나의 살림살이에 비교컨대, 실 한 올의 길〔道〕밖에 안 됨이로다.”
하고 이렇게 남전 도인이 멋진 답을 하심이로다.

40년 전에 월내(月內) 묘관음사(妙觀音寺)에서 향곡(香谷) 선사께서 산승(山僧)에게 물으셨다.
“우두(牛頭)스님이 사조(四祖) 선사를 친견하기 이전에 백 가지의 새들이 꽃을 물어 온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에 산승이 답을 하기를,
“삼삼(三三)은 구(九)입니다.”
하니, 다시 향곡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럼 우두스님이 사조 선사를 친견한 이후로 백 가지의 새들이 꽃을 물어 오지 아니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육육(六六)은 삼십육(三十六)입니다.”
“그럼 필경에 일구(一句)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렇게 향곡 선사께서 물으심에, 산승이 답을 하기를,

  橫按拄杖不顧人<횡안주장불고인>하고
 卽入千峰萬峰去<즉입천봉만봉거>로다.
 
 주장자를 횡으로 메고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천 봉과 만 봉 속으로 들어감입니다.

하였다.

남전 도인의 임종시(臨終時)에 유나(維那)스님이 묻기를,
“선사님, 백 년 후에 어디로 가시렵니까?”
하니, 남전 도인께서
“산 아래 단월가(檀越家)에 물빛 암소[水牯牛]가 되어 가리라.”
하시었다. 이에 유나스님이 재차 묻기를,
“저도 동행(同行)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남전 도인께서
“풀을 한 다발 물고 오너라.”
하시었다.

시회대중(詩會大衆)은 “풀을 한 다발 물고 오너라”한 뜻을 알겠느냐? 위대한 남전 도인이어니 어째서 물빛 암소가 되어간다 하느냐? 남전 도인의 이 말씀을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泥牛耕破琉璃地<니우경파유리지>하고
 玉馬飮乾明月泉<옥마음건명월천>이라.
 載角皮毛異中來<재각피모이중래>하니
 天上人間能幾幾<천상인간능기기>냐?

 진흙소가 유리의 세계를 갈아 없애고
 옥말〔玉馬〕은 밝은 달이 비친 샘물을 마셔 말림이로다.
 뿔을 지고 가죽옷을 입고 축생이 되어 오니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 몇몇이나 이 진리를 알꼬?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을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결제법어(2549.2005)

 

53.남전(南泉)·귀종(歸宗)·마곡(麻谷)의 원상법문(圓相法門)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虎驟龍飛恁麽來<호취용비임마래>하니
 忽然天地起風雷<홀연천지기풍뇌>로다.
 棒頭有眼明如日<봉두유안명여일>하니
 凜凜淸風遍大千<늠름청풍변대천>이라.

 범이 달리고 용이 날아 이렇게 오니
 홀연히 하늘과 땅에 큰 바람과 우뢰가 일어남이로다.
 주장자 머리에 눈이 있어서 밝기가 해와 같으니
 늠름한 맑은 바람 대천세계에 두루함이로다.


방금 산승이 들어 보인 이 주장자의 진리를 알아 갈 것 같으면 참학사(參學事)를 다 마침이니, 부처님의 진리를 다 깨달은 요사장부(了事丈夫)라, 일을 다 해 마친 장부로다.
오늘은 결제(結制)에 임한 지 석 달이 지나 어느덧 해제일이로다. 모든 대중이 견성대오(見性大悟)를 하여 자기사(自己事)를 밝히기 위해서는 남달리 큰 용맹심(勇猛心)과 큰 신심(信心)을 가져야 해결할 수가 있으니, 일체 결제 해제에 상관하지 말고 오로지 이 고귀한 법과 지도자를 만난 김에 결정코 이 일을 해결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함이로다.

사해오호(四海五湖)의 수행자들이여!
자기사를 밝히지 못하고 고귀한 사사시주(四事施主: 음식·의복·탕약·방사)를 수용하면서 허둥지둥 세월만 보낼 것 같으면 갈 곳은 지옥뿐이요, 염라대왕에게 끌려가 가지가지의 고통으로 신음하며 처분을 받으리니 정신을 바짝 차려 화두일념삼매(話頭一念三昧)가 지속되어 도(道)를 증득하도록 혼신의 정력을 쏟을지어다.

남전(南泉)·귀종(歸宗)·마곡(麻谷) 세 분의 선사는 위대한 마조(馬祖) 선사의 법제자(法弟子)라. 일일(一日)에 남양 혜충 국사(南陽慧忠國師)를 친견하러 가는 도중에 남전 선사께서 길 위에 원상(圓相)을 그려놓고 이르시기를,
“이 원상에 대해 바른 답을 하면 남양 혜충 국사를 친견하러 갈 것이고, 만약 바로 이르지 못할 것 같으면 남양 혜충 국사를 친견하러 가지 않으리라.”
하시니, 귀종 선사께서는 원상을 향해 정중히 여자 절을 하셨고, 마곡 선사께서는 원상 안에 정좌(正坐)하고 앉으셨다.

그러면 귀종 선사는 어째서 정중히 여자 절을 하셨으며, 마곡 선사는 어째서 원상 안에 앉으셨는가? 이 두 분의 답처(答處)를 분명히 보는 눈이 있어야 함이로다.

이에 남전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사형들이 그렇게 이를진대, 남양 혜충 국사를 친견하러 갈 수 없으니 다시 돌아갑시다!”
하시니, 귀종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무슨 심보를 행함인가?”
하시고, 세 분 모두 혜충 국사를 친견하지 않고 돌아오셨다.

이 공안은 백천 공안 가운데 가장 보기가 어려우니, 오조 법연(五祖法演) 선사도 ‘백천 법문 가운데 왕삼매(王三昧)’라고 칭함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 세 분의 법 쓰는 용심처(用心處)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동두철안(銅頭鐵眼)을 갖춰서 심심묘용(深深妙用)을 자재하게 씀이나,
 자세히 점검컨대, 각각 산승의 주장자를 삼십 방(三十棒)씩 맞아야 옳다.

필경에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來年更有新條在<내년갱유신조재>하야
 惱亂春風卒未休<뇌란춘풍졸미휴>로다.

 내년에 다시 새 가지가 있어서
 봄바람에 어지러이 또한 쉬지 못함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을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9.2005)

 

54.마조(馬祖)의 완월일구(玩月一句)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激電光中看變動<격전광중간변동>하라.
 在我也能遣能呼<재아야능견능호>요
 於彼也能擒能縱<어피야능금능종>이라.
 如磨手腕亦具備<여마수완역구비>하야사
 正法眼藏受持  <정법안장수지>하리라.

 번갯불이 치는 가운데 변하는 것을 보라.
 나에 있어서는 능히 보내기도 하고 능히 부르기도 하며
 저에 있어서는 능히 잡기도 하고 능히 놓기도 함이라.
 이와같은 수완을 갖출 것 같으면
 정법안장을 받아가지리라.


석일(昔日)에 마조(馬祖) 선사께서 세 명의 제자와 같이 달 밝은 밤에 달을 구경하는 차에 달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시기를,
“각자 소견을, 본 바를 드러내 말해 보라.”
하시니, 지장(智藏)스님이 이르기를,
“正好供養時<정호공양시>로다.
바로 공양하는 때로다.”
하였다. 백장(百丈)스님이 이르기를,
“正好修行時<정호수행시>로다.
바로 닦아 행하는 때로다.”
하였다.
남전(南泉)스님은 손을 흔들며 가버렸다.〔拂手而去〕
이에 마조 선사께서 점검하여 이르시되,
“지장은 경(經)으로 돌아가고, 백장은 선(禪)으로 돌아가고, 오직 남전은 홀로 형상 밖에 뛰어남이로다.”
하셨다.

산승(山僧)이 만약 동참했던들,

 明月下에 伸脚臥<명월하 신각와>하니
 淸風萬年新     <청풍만년신>이로다.

 밝은 달 아래 다리 뻗고 누웠으니
 맑은 바람이 만년토록 새로움이로다.

산승의 이 일구(一句)는 경으로 돌아감인가, 선으로 돌아감인가, 형상 밖에 뛰어남인가?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속히 이르고 속히 일러보라!
마조 선사께서 세 분의 제자를 일일이 점검하시니, 대중은 마조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三介四介閑道人<삼개사개한도인>이
 月下步行道場中<월하보행도량중>에
 馬祖道將一句來<마조도장일구래>하니
 各自呈神通妙用<각자정신통묘용>이라.
 天龍八部皆合掌<천룡팔부개합장>하고
 三世佛祖心點頭<삼세불조심점두>로다.
 祖師家風最堂堂<조사가풍최당당>이라
 東湧西沒不思議<동용서몰부사의>라.

 세 분, 네 분 한가한 도인들이
 밝은 달 아래 도량을 거니는 중에
 마조 도인께서 일구(一句)를 일러오라 하니,
 각각 스스로 신통묘용을 바침이라.
 천룡팔부가 다 합장하고
 삼세불조는 마음으로 점두(點頭)함이로다.
 조사가풍이 가장 당당함이라,
 동쪽에서 솟고 서쪽에서 빠지니 사의하기 어렵도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을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9.2005)

 

55.일체(一切)를 불위(不爲)라!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四威儀內不曾虧<사위의내부증휴>요
 今古初無隔斷時<금고초무격단시>로다.
 地獄天堂無異變<지옥천당무이변>하니
 春回楊柳綠如絲<춘회양유녹여사>로다.

 사위의〔行·住·坐·臥〕내에 일찍이 이지러짐이 없음이니,
 지금과 옛적이 처음부터 가리고 끊어짐이 없는 때로다.
 지옥과 천당이 이변이 없음이니
 봄이 됨에 버드나무는 푸름이 실과 같도다.
  


석일(昔日)에 약산(藥山)스님이 앉아있는 차제에 석두(石頭) 선사께서 보고 물으시되,
“네가 여기서 무얼 함인고?”
하시니, 약산스님이
“일체(一切)를 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그러니 석두 선사께서
“이러한 즉은 한거이 앉음이로다.”
하심에, 약산스님이
“한거이 앉은 즉은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니 석두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럼 네가 말해보아라.”
“不爲<불위>입니다.”
“네가 ‘불위’라 하니, ‘불위’는 이 무엇인고?”
“일천 성인(一千聖人)도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약산스님이 답하니, 석두 선사께서 게송으로써 칭찬하여 가로되,

 옴으로 좇아 같이 머묾이나 이름〔名〕을 알지 못함이요,
 되는대로 어울려서 이렇게 가노라.
 자고로 예부터 뭇 성인들도 오히려 알지 못함이어니,
 하찮은 범부가 어찌 밝힐꼬?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약산 선사께서 “일체를 하지 아니한다”하니, 하지 않는다는 이 뜻을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여기에서 알아갈 것 같으면 삼세의 업이 다 소멸되고 부처님 국토에서 억만년이 다하도록 부처님의 낙을 누리게 될 것이로다. 대중이 답이 없으니 산승(山僧)이 말하리라.

 ‘일체를 하지 아니한다’함이여!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명근(命根)이요,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명근이로다.

80여 년 전 운봉(雲峰) 선사께서 제방 회상(會上)을 행각하시다가 만공(滿空) 선사 회상에서 한 철을 보내시는 차에, 하루는 만공 선사께서 ‘운거(雲居) 선사의 법문’을 들어 대중에게 물으셨다.

운거 선사께서 출세(出世)하니 사방에서 사부대중이 운집하였다. 다달이 대중을 위해 법문을 하셨는데, 그 산중에 조그마한 토굴(土窟)을 지어놓고 수십 년을 주(住)하고 있는 스님이 있는지라. 몇 년이 지나도 토굴 스님이 큰절 조실스님께 와서 인사도 드리지 않고 법문도 듣지 않거늘, 운거 조실스님께서 하루는 시자(侍者)를 불러 시키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시자가 가서 그 토굴 스님에게,
“조실스님께서 출세하시어 법문을 설하시는데, 어째서 내려와서 법문도 듣지 아니하고 인사도 올리지 않습니까?”
하고 물으니, 토굴 스님이
“설사 석가모니 부처님이 화현(化現)하여 왔다 할지라도 나는 법문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였다. 시자가 물러나와 그대로 조실스님께 아뢰니, 조실스님께서
“네가 걸음을 한 번 더 해라.”
하시며 잘 만든 여름옷을 한 벌 시자에게 주시고 하시는 말씀이,
“토굴 스님에게 갖다 드려라.”
하셨다. 시자가 다시 토굴에 가서 조실스님께서 주시는 여름옷이라고 드리니, 토굴 스님이
“부모님께 받은 옷도 일생을 다 수용(收用)하지 못했는데, 내가 어찌 이것을 받겠느냐? 가져가라!”
하며 거절하니, 시자가 도로 가져와 조실스님께 아뢰었다. 이에 조실스님께서
“네가 한 번 다시 가서 ‘그럼 부모님에게 나기 전에는 무슨 옷을 입었습니까?’ 하고 물어 봐라.”
하시니, 시자가 다시 가서 토굴 스님에게 묻기를,
“스님, 그럼 부모님께 나기 전에는 무슨 옷을 입었습니까?”
하니, 토굴 스님이 말을 못함이라.
그런 뒤 며칠 후에 토굴 스님이 앉은 채로 입적(入寂)하였다. 그리하여 산중 스님들이 다 모여서 화장준비를 해놓고 불을 지르니, 오색광명(五色光明)이 하늘을 뻗치고 무수히 많은 사리(舍利)가 나왔다. 이에 산중이 떠들썩하므로 운거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앉아서 이 몸을 벗고 사리방광(舍利放光)을 한다 하여도 당시에 내가 묻는 말 에 한 마디 바른 답을 하는 것만 못하니라!”
하시니, 오색 무지개가 싹 없어졌다.

만공 선사께서 이 법문을 들어 대중에게 물으시기를,
“그 토굴 스님이 바른 진리의 눈이 열렸으면 어째서 질문에 답을 못했으며, 바른 진리의 눈이 열리지 않았을진대, 어째서 앉아서 몸을 벗고 사리방광을 하였는고? 한번 말해 보아라!”
하시니, 대중이 아무 말이 없는데 운봉 선사가 일어나서 답을 하기를,
“여름에는 안동포를 입고, 겨울에는 진주 목화옷을 입습니다.”
하고 이렇게 멋진 답을 하니, 전국 선원에서 운봉 선사를 조실로 모시려 하였다.

석일(昔日)에 수유(茱萸) 선사께서 법당 안에서 좌선(坐禪)을 하고 계시는 차제에, 조주(趙州) 선사께서 법당에 들어와 온 법당을 더듬고 계시거늘, 수유 선사께서
“무엇을 그리 찾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시니, 조주 선사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물을 찾고 있소.”
“이 법당 안에는 물이 한 방울도 없소.”
이에 조주 선사께서 일어나 벽을 등지고 더듬으며 문에 다다라 나가버리셨다.

시회대중아!
“법당 안에 한 방울의 물도 없다”함에 조주 선사가 벽을 등지고 문에 다다라 나가버리니, 조주 선사의 뜻이 어디에 있음인가?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그럼 산승이 답을 하리라.

 茱萸禪師의 拄杖子가 泛泛歸大海<수유선사 주장자 범범귀대해>로다.
 
 수유 선사의 주장자가 뜨고 떠서 바다로 흘러감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술년 하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50.2006)

 

56.기사회생(起死回生)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聲前一句千聖難會<성전일구천성난회>어늘
 若人識得參學事畢<약인식득참학사필>하리라.

 말하기 전 일구(一句)는 일천 성인도 알기 어렵거늘
 사람이 만약 이것을 안다면 참학사(參學事)를 마치리라.


중생은 탐(貪)하는 마음이 한량없어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형형색색의 것들을 보면 탐착심(貪着心)이 나고, 또 온갖 경계에 다다라서는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고, 어리석은 마음이 그칠 날이 없음이로다. 이 세 가지를 좇아서 팔만 사천가지의 미세한 번뇌가 생기고, 이 번뇌로 말미암아 윤회의 고통이 있고, 살아가는데 온갖 장애가 생김이로다.
그러한 고로 탐·진·치(貪瞋癡) 이 세 가지 근본업을 제거하게 되면 팔만 사천 가지의 번뇌가 일시에 소멸되나니, 그리하여 일월(日月)과 같은 밝은 지혜가 생기므로, 지옥에 가면 그곳이 곧 불국토로 변하고 도산(刀山)지옥과 화탕(火湯)지옥이 그대로 연화장(蓮華藏)세계로 화(化)하느니라.
이것은 마음을 밝히는 선 수행(禪修行)을 하루하루 실답게 쌓아가는 데에서 얻어질 수 있음이로다.
우리가 수행을 잘 해 나가면 탐·진·치 삼독(三毒)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됨이로다. 계를 잘 지킴으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고, 거기에다 참선 수행을 잘 익히면 대정(大定)을 성취하여 진리의 삼매락(三昧樂)을 누리게 됨이로다. 대정이 지속되면 일월과 같은 큰 지혜가 열리는 법이니, 여기에 이르러야사 대법왕(大法王)이 되리라.

산승이 월내(月內)에서 다년간 향곡(香谷) 선사를 모시고 지냈는데, 하루는 향곡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이러한 법문을 하셨다.
“여기에 크고 큰 송장이 하나 있는데, 머리는 비비상천(非非想天) 꼭대기에 닿아 있고, 발은 아비지옥(阿鼻地獄) 밑바닥에 버티고 있으며, 몸뚱이는 시방세계(十方世界)에 가득 차 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 송장을 살릴 수 있겠느냐? 살릴 사람이 있거든 한번 살려 보아라.”
대중이 아무도 답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만 있으니, 산승이 나아가서
“큰스님!”
하고 한 번 불렀다. 그러자 향곡 선사께서
“왜 그러느냐?”
하시는데, 산승이 큰절을 하고 법당(法堂)을 나왔다. 이에 향곡 선사께서는 즉시 법상(法床)을 내려오셨다.

이러한 법문을 바로 들을 줄 아는 안목(眼目)을 갖추어야만 진리의 스승이 될 수 있는 법이니, 대중은 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무진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2.1988)

 

57.마조(馬祖)의 전각(展脚)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妙峯孤頂許誰登<묘봉고정허수등>인고?
 佛祖悲懷向此興<불조비회향차흥>이라.
 遊子急須廻首看<유자급수회수간>하라.
 老猿啼處碧層層<노원제처벽층층>이로다.

 묘봉고정(妙峯孤頂)을 누가 오름을 허락할꼬?
 불조가 슬픔을 품고 이를 향하여 흥성케 함이로다.
 노는 자여! 급히 모름지기 머리를 돌려 보라.
 늙은 원숭이가 우는 곳에 푸른 암벽이 층층이로다.


일일(一日)에 등은봉(鄧隱峰)스님이 운력 중에 흙 나르는 수레를 밀면서 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마조(馬祖) 선사께서 길 가운데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쉬고 계셨다. 마조 선사께서 길에 다리를 펴고 앉으신 뜻은 등은봉 제자의 수행을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등은봉스님이 말했다.
“스님, 다리 좀 오므리십시오.”
“이미 폈으니 오므릴 수 없다.”
“이미 가고 있으니 물러나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수레를 굴리며 지나가니 마조 선사의 다리를 다치게 하였다. 그러자 마조 선사께서는 법당으로 돌아와 도끼를 들고 말씀하셨다.
“조금 전에 수레를 굴려 내 다리를 다치게 한 놈은 나오너라.”
등은봉스님이 나와 마조 선사 전(前)에 목을 쑤욱 빼자, 마조 선사께서는 도끼를 치우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양대선사(兩大禪師)의 용심처(用心處)를 보라!

 대경(對境)에 일보(一步)도 양보 없이 보검(寶劍)을 겨누니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도다.
 
 마조 선사는,
 제자를 접함에 순경(順境)과 역경(逆境)으로 자재하게 점검함이라.
 과연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이로다.
 등은봉 선사는,
 일용(日用)에 일향삼매(一向三昧)를 수용(受用)하니 생사(生死)의 굴레를 영구히 벗어나 천상천하에 무등필(無等匹)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기사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3.1989)

 

58.위산(潙山) 삼부자(三父子)의 해몽(解夢)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碧海神珠<벽해신주>요
 荊山寶玉<형산보옥>이라.
 照耀乾坤<조요건곤>하니
 知者是誰<지자시수>인가?

 푸른 바다의 신령스러운 구슬이요,
 형산(荊山) 땅의 보옥(寶玉)이라.
 명주(明珠)와 보옥이 하늘과 땅에 빛나니
 아는 자, 이 누구인고?


누구든지 이 명주와 보옥을 바로 알 것 같으면 금일(今日) 결제가 곧 해제일이요, 일체가 해탈법(解脫法)이며, 곳곳마다 상적광토(常寂光土)로다.

위산(潙山)스님이 백장(百丈) 선사 문하(門下)에 있을 때의 일이로다.
어느 날 백장 선사께서 물으시기를,
“화로(火爐)에 불이 있느냐?”
하시니, 위산스님이 화로를 뒤져 보고는 말씀드렸다.
“불이 없습니다.”
그러자 백장 선사께서 몸소 화로를 헤쳐보시더니 조그마한 불씨 하나를 꺼내들고,
“불이 이렇게 있는데 어째서 없다고 하느냐?”
라고 하셨다.
이 말씀 끝에 홀연히 위산스님의 마음 광명이 활짝 열렸다.

하루는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잘 보는 사람이 백장 선사를 찾아와서 대위산(大潙山)에 무수 도인이 배출될 좋은 절터가 있으니, 대위산의 주인이 될 스님을 천거해 달라고 청했다.
그래서 백장 선사께서 시자(侍者)를 시켜 운집종(雲集鐘)을 치게 하니, 대중이 다 모여들었다. 법상(法床)에 오르신 백장 선사께서는 유리병을 하나 대중에게 보이면서 이르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 가운데 누가 이 유리병에 대해서 한 마디 일러 보겠는가? 만약 한 마디 분명히 이르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대위산의 주인(主人)으로 봉(封)하겠다.”
그러자 대중 가운데 제 일좌(第一座)인 화림(華林)스님이 나와서,
“유리병을 목침(木枕)이라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라고 말씀드리니, 백장(百丈) 선사께서 수긍치 않으셨다.
“옳지 못하고, 옳지 못하다! 달리 이를 자 없느냐?”
이에 위산스님이 앞으로 나와서 유리병을 발로 차버리고 들어가자, 백장 선사께서
“옳고, 옳다!”
하시며 위산스님을 대위산의 주인으로 봉하셨다.

그렇게 해서 위산 선사께서 대위산에 주(住)하시게 되었는데, 십 년을 지내도 찾아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위산 선사께서, ‘내가 이 대위산에 인연이 없는 거로구나’ 생각하고 그곳을 떠나려고 산을 내려가시는데 수많은 산짐승들이 몰려와서 길을 가로막았다. 이것을 보고 위산 선사께서, ‘이제야 인연이 도래(到來)하는구나’하고 다시 처소로 올라가셨다.
그 후로 사방에서 참학인(參學人)들이 모여드니 상주수행(常住修行) 대중이 천오백 명에 이르렀다.
하루는 위산 선사께서 제자들의 문안(問安)을 받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누워 계신 적이 있었다.
앙산(仰山)스님이 들어와 문안을 드리자, 위산 선사께서는 벽을 향해 돌아 누워버리시므로 앙산스님이 여쭈었다.
“제가 스님의 제자이온데, 어찌하여 일어나지 않으십니까?”
이에 위산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대가 나를 위해 해몽(解夢)을 좀 해 보게.”
하시자, 앙산스님은 즉시 밖에 나가서 대야에 물을 가득 떠다가 위산 선사 옆에 놓고 나갔다.
그런 다음에 향엄(香嚴)스님이 들어와 문안을 드렸다.
“밤새 존후(尊候)가 어떠하십니까?”
“내가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대가 나를 위하여 해몽을 해 주게.”
그러자 향엄스님이 즉시 밖에 나가서 정성껏 차(茶)를 달여와 바치니, 위산 선사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나의 두 제자가 사리불(舍利佛)과 목련존자(目連尊者)의 지혜를 뛰어 넘는구나!”
하고 칭찬하시었다.

대중은 앙산스님이 물을 떠오고, 향엄스님이 차를 달여 온 뜻을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금일 산승이 앙산스님과 향엄스님의 해몽에 대하여 점검해 보건대,
 두 분께서 해몽을 멋지게 하시긴 했으나 팔부(八部) 밖에는 못하셨다고 하겠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온전한 십부(十部) 해몽이냐?

 煙籠竹林山含玉<연롱죽림산함옥>이요
 露滴黃花地涌金<로적황화지용금>이로다.

 연기가 죽림(竹林)을 덮으니 산(山)은 옥(玉)을 머금음이요,
 이슬방울이 국화(菊花)에 맺히니 땅에서 금(金)이 솟아나도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경오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4.1990)

 

59.천수천안(千手千眼) 중 정안(正眼)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산승이 들어 보인 이 주장자가
 진리의 묘(妙)한 법을 설함이 없는 가운데 설하니,
 모든 부처님과 큰 보살들이 합장하시고
 들음이 없는 가운데 듣고 계심이로다.


이와 같은 심오한 법문은 눈으로 듣고, 귀로 볼 줄 아는 기틀을 갖추어야만 바로 알 수가 있고, 상응(相應)할 수가 있음이로다.
이러한 고준(高峻)한 법문은 여러 수 천생 만생 사람의 몸을 받더라도 듣기가 어려움이로다. 이것은 불교를 믿는다고 해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 전생에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수승(殊勝)한 인연을 지어놓은 사람만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로다.
고인(古人)들께서는, 이 고준한 법문이 귓전을 스쳐가기만 해도 숙세(宿世)에 지어온 중생의 한량없는 죄업(罪業)이 소멸된다고 하셨으니, 이러한 진리의 법문 한 마디를 마음 가운데 깊이 새긴다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서 필경에는 진리의 과(果)를 얻게 됨이로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지혜의 눈이 천 개요, 자비의 손이 천 개로다.
관세음보살이 성불(成佛)하여 서원(誓願)하시기를,
“나의 명호(名號)를 지극정성으로 부를 것 같으면, 한 중생도 빠짐없이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하셨다.
천(千)의 눈으로 만중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천의 손으로 자비(慈悲)를 베푸시는 위대한 법력(法力)을 갖추셨으니, 지극정성으로 명호를 부르고 발원(發願)한다면, 그것을 다 헤아려서 이루어 주심이로다.
그런데 다 같은 기도를 하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은 소원을 성취하고, 어떤 사람은 성취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것은 각자가 지극정성으로, 간절한 일념(一念)으로 기도를 하였는가, 그렇지 못하였는가에 있음이로다. 설사 기도하는 이가 하루에 몇 천배씩 절을 하고 입이 닳도록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더라도, 간절한 한 생각이 이어지지 않고 생각이 흩어져서 다른 데 있으면 소원이 성취될 수 없도다. 그러므로 지극한 마음에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일념으로 소원을 발원해야만 성취할 수 있음이로다.

석일(昔日)에 임제(臨濟) 선사께서 법문을 설하시려고 법상(法床)에 좌정(坐定)하고 계시던 차제에, 마곡(麻谷) 선사께서 나와 물으셨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의 일천의 눈〔眼〕 중 어느 것이 관세음보살의 정안(正眼)이냐?”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도리어,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 가운데 어느 것이 정안이냐? 속히 일러라!”
하고 다그치셨다. 이에 마곡 선사께서 임제 선사를 법상에서 끌어내리시고 자신이 올라가 앉으셨다.
임제 선사께서 몸을 추슬러서 마곡 선사께 다가가 말씀하시기를,
“의심스럽도다!”
라고 하자, 마곡 선사께서 미처 응수(應酬)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셨다.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마곡 선사를 당장 끌어내리고 다시 자신이 법상에 올라가 앉으시니, 마곡 선사께서는 즉시 법당에서 나가버리셨다.

이 두 분의 법거량(法擧揚)에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정안을 나투는데 묘한 이치가 있음이로다.

 그러나 산승이 보건대,
 두 분 도인께서 “천 개의 눈 가운데 어느 것이 정안이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멋지게 주고받긴 하셨지만, 관세음보살의 정안을 바로 보지는 못하였다 하리라.

그러면 관세음보살의 천 개의 손에 있는 천 개의 눈 가운데 어느 것이 정안이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撒塵撒沙<살진살사>라.  

 모래를 뿌리고 티끌을 뿌림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경오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4.1990)

 

60.투자(投子)의 기봉(機鋒)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불법(佛法)의 진리인 선(禪)의 묘한 이치는
 모든 부처님의 생명의 근원이며,
 역대 모든 도인(道人)들의 바른 눈이로다.


오늘은 하안거 결제일(結制日)이라.
이 구순안거(九旬安居) 동안 각자가 자기의 마음 광명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반연(攀緣)을 다 끊고 오로지 정진(精進)에만 몰두하여야 함이로다. 이 일을 밝히는데 조금이라도 미루는 마음이 있다면 벌써 십만 팔천 리나 어긋나버림이로다. 만약,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이 달에 못하면 다음 달에 하지’ 또 ‘금년에 못하면 다음 해에 하지’하는 생각이 마음 가운데 조금이라도 있을 것 같으면, 일생을 허송세월로 보내게 됨이로다.
그러니 모든 대중은 이 한 철에 결정코 견성(見性)하리라는 각오로 일 분, 일 초를 허비하지 말고 화두와 씨름해야 함이로다.
이 귀중한 시간, 오늘이라는 날은 다시는 오지 아니함이로다.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곧 시시각각 죽음의 문턱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니, 누구라도 마음 광명을 밝히는 이 일을 소홀히 한다면 염라대왕의 추심(推尋)을 피할 길이 없음이로다.
그러나 이 일을 분명히 밝혀서 자기의 마음 광명을 본 이에게는 생사(生死)의 괴로움이라는 것이 없는 법이로다.
그러니 모든 대중은 이 여름 석 달 동안에는 온갖 번민과 갈등과 누겁(累劫)에 쌓아온 애착(愛着)을 모두 놓아버리고, 기어코 자기의 마음 광명을 찾으리라는 대발심(大發心)으로 정진에 정진을 더하기 바라노라.

석일(昔日)에 투자(投子) 선사께서 고암(高庵)에서 지내실 적에, 조주(趙州) 선사께서 친견하러 가신 적이 있었다. 암자(庵子)를 찾아 올라가던 도중에 기름병을 잔뜩 챙겨들고 내려오는 한 스님을 만나게 되어 물으셨다.
“스님이 투자이십니까?”
“그렇소.”
“어디를 가십니까?”
“기름을 팔러 가오.”
그러고 투자 선사께서는 산 아래로 내려가셨다.
조주 선사께서 암자에 올라가 기다리고 계시다가, 투자 선사께서 기름을 다 팔고는 돌아오시니 곧장 물으시기를,
“어떤 것이 투자입니까?”
하시니, 투자 선사께서 기름병을 들어 보이시며,
“기름이고 기름이다.〔油油〕”
라고 하셨다.
이에 조주 선사께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계시자, 투자 선사 역시 아무 말이 없으셨다.

어째서 “어떤 것이 투자입니까?” 하는 물음에, 기름병을 들어 보이시고 “기름이고 기름이다”라고 하셨느냐?
삼라만상(森羅萬象) 일체의 것이 자신의 세계와 둘이 아닌 고로, “기름이고 기름이다” 하신 것이다.
그러면 “기름이고 기름이다” 하신 것에 대해서, 조주 선사께서는 한 마디 할 수가 있었는데 왜 묵묵히 가만히 계셨느냐?
가만히 계신 그 가운데 묘한 진리가 숨어있음이로다.
그러나 산승이 만약 당시의 조주 선사였다면, “기름이고 기름이라” 할 때에 묵묵히 있지 않고 한 마디 했을 것이로다.
뭐라고 한 마디 이를 것인가?

 “기름이고 기름이라[油油]” 함도 옳긴 옳으나
 진투자(眞投子)는 아님이로다.

조주 선사께서 그렇게 묵묵히 계시다가 곧 돌아가셔서 몇 년 후에 다시 투자 선사를 참방(參訪)하여 물으셨다.

  大死底人却活時如何<대사저인각활시여하>오?
 크게 죽은 사람이 문득 살아날 때 어떠합니까?

이렇게 고준(高峻)한 일문(一問)을 던지시니, 투자 선사께서 즉시,
 
 不許夜行이요, 投明須到<불허야행 투명수도>니라.
 밤에 행(行)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니
 모름지기 밝거든 이를지니라.

라고 답하였다.
물음의 낙처(落處)를 명료하게 꿰뚫어서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답을 하신 것이다.
그러면 크게 죽은 사람의 경계는 어떠한 경계이며, 또 죽은 사람의 경계에서 문득 살아난다는 것은 어떠한 경계를 말하는 것이냐?

우리가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의지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데, 간절한 마음에서 애를 쓰고 애를 써서 화두를 참구하다 보면 일념이 현전함이로다. 그리하여 가고, 오고, 보고, 듣는 것을 다 잊고 시간이 흘러도 흐르는 줄 모르는 일념삼매(一念三昧)에 푹 빠지게 되어, 그때는 흡사 석인(石人)과도 같고 목인(木人)과도 같은 사심(死心)의 경계가 되나니, 바로 이때가 사중경계(死中境界)로다.
이렇게 며칠이고 몇 달이고 있다가 홀연히 의심덩어리가 타파(打破)되는데, 이 때 비로소 죽은 사람이 문득 살아나는 경계가 나타나는 법이로다.
여기에 이르면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道人)들께서 베풀어 놓으신 백천 법문(百千法門) 가운데 어느 것을 들어 묻더라도 바로 이 투자 선사, 조주 선사와 같이 전광석화로 척척 답할 수 있게 됨이로다.

산승이 40여 년 전에 어느 조실(祖室)스님을 방문하여 이 법문을 들어 고인(古人)과 똑같이 여쭈었다.
“스님, 크게 죽은 사람이 문득 살아날 때 어떠합니까?”
그러자 그 조실스님은
“죽기는 왜 죽어!”
라고 하셨다. 그래서 산승이
“스님, 그것은 고인의 문답처를 살피지 못한 것입니다.”
하여, 여기에서 대화가 단절되었다.
산승이 월내(月內)로 돌아와 이 문답 과정을 향곡(香谷) 선사께 말씀드렸더니, 향곡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러면 만약 너에게 ‘크게 죽은 사람이 문득 살아날 때 어떠하냐?’고 묻는다면, 너는 뭐라고 한 마디 하겠느냐?”
이에 산승이

 不許老胡會<불허노호회>요
 只許老胡知<지허노호지>로다.

 노호(老胡)가 앎을 허락하지 아니함이요,
 노호가 앎을 허락함입니다.

라고 답하였다.

투자 선사의 명성이 높아지자 제방(諸方)에서 납자(衲子)와 단월(檀越)들이 많이 참방(參訪)하였다.
어느 날 소산(疎山)스님이 찾아와서 인사를 올리니, 투자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연평(延平)에서 왔습니다.”
연평은 지명(地名)인데, 옛날에 신선(神仙)이 천하에 둘도 없는 보배 칼[寶劍]을 가지고 있다가 분실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선객(禪客)이 바로 그 연평 땅에서 왔다고 하니, 투자 선사께서 물으시기를,
“연평에서 왔을진댄 연평의 보검을 가져왔는가?”
하시자, 그 선객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그러던 차제에 시자(侍者)가 점심 공양상을 들고 들어오니 선객은 조실 방에서 물러갔다. 투자 선사께서 공양을 다 드신 후에 시자에게 물으셨다.
“객(客)이 객실(客室)에 있느냐?”
“조실스님 방에서 나간 즉시 갔습니다.”
그러니 투자 선사께서 그제서야,

 三十年來弄馬騎<삼십년래농마기>러니
 今日却被驢子撲<금일각피려자박>이로다.

 삼십여 년 간 말을 타고 희롱해 왔더니
     금일 당나귀에게 크게 받힘을 입음이로다.

하시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투자 선사께서는 왜 그 선객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킬 때 이 말씀을 하시지 않고 떠난 후에야 하셨는가?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賊過後張弓<적과후장궁>이로다.
 
 도적이 지나간 후에 활을 쏨이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서 산승에게,
“연평의 보검을 가져 왔느냐?”
하고 묻는다면, 산승은 이렇게 답하리라.

 珊瑚枝枝撐著月<산호지지탱저월>이로다.

 산호나무 가지가지에 밝은 달이 영롱함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신미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5.1991)

 

61.오백나한(五百羅漢) 변작수고우(變作水牯牛)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마음의 청정(淸淨)한 그 자체를 깨달으면 그것이 곧 부처요,
 마음의 청정한 광명(光明)을 임의자재(任意自在)하게 쓴다면
 그것이 곧 법(法)이요, 승(僧)이니라.


마음을 깨달으면 진리가 그 가운데 다 있으니, 삼보(三寶)가 하나이고, 하나가 삼보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마음, 바로 이것을 깨달아 알 때에 팔만 사천 진리가 사람 사람의 마음속에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중국 오대산(五臺山)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상주(常主)하고 계시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하루는 조주(趙州) 선사께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오대산을 향해 행각(行脚)에 오르셨다.
수백 리 길을 가다가 하룻밤 머물고자 어느 암자에 들르시니, 그 암자에 계시던 백발 노승(老僧)이 물었다.
“젊은 스님은 어디로 가는고?”
“오대산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가는 길입니다.”
이 말 끝에 노승이 게송을 읊기를,

 何處靑山非道場<하처청산비도량>인데
 何須策杖禮淸凉<하수책장예청량>인고.
 雲中縱有金毛現<운중종유금모현>이나
 正眼觀時非吉祥<정안관시비길상>이니라.

 어느 곳 청산(靑山)과 도량(道場) 아닌 곳이 없거늘
 하필 책장(策杖)을 짚고 청량산(淸凉山)까지 예(禮)하러 가려는가.
 가사 구름 가운데 금빛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나타난다 해도
 바른 눈으로 보건댄 길상(吉祥)한 것이 못되느니라.

하고, 조주 선사를 경책하였다.
노승의 게송을 다 듣고 난 조주 선사께서
“어떤 것이 바른 눈〔正眼〕입니까?”
하고 물으시니, 노승은 그만 말이 막혀버렸다.
조주 선사께서 노승의 암자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다시 오대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도중에 또 어떤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이 물었다.
“그대는 어느 곳을 향해 그렇게 가는고?”
“오대산 오백 나한승(五百羅漢僧)에게 예배하러 갑니다.”
“어젯밤 오백 나한이 다 물빛 암소가 되어 갔다.”
이 말 끝에 조주 선사께서
“아이고, 아이고!”
곡(哭)을 하셨다.

이것이야말로 천추만대(千秋萬代)에 귀감이 되는 진법문(眞法門)이로다. 우리가 이러한 법문에 확연명백(確然明白)한 법안(法眼)이 열려야만 비로소 사람 도리를 할 수가 있는 법이로다.
이와 같은 삼매(三昧)를 보인 법문이 또 있다.

남전(南泉) 선사께서 천태산(天台山)의 한산(寒山), 습득(拾得)께 예배드리러 와서 며칠 머물다가 하직 인사를 올리자, 한산께서 물으셨다.
“어디를 가려 하시오?”
“마을 아래 돌다리에 놀러 가고자 합니다.”
“거기 가서 무엇을 하시려오?”
“가서 오백 나한승에게 예(禮)를 올리려 합니다.”
그러자 한산께서 하시는 말씀이,
“어젯밤에 오백 나한이 다 물빛 암소가 되어 가버렸소.”
하시는 것이었다.
여러분들은 이 말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소승과(小乘果)를 증득(證得)한 신통자재(神通自在)한 나한승들이 물빛 암소가 되어 가버렸다고 하니, 그 말에 남전 선사께서
“아이고, 아이고!”
하고 곡을 하시니, 한산께서
“비록 몸은 뒤에 받았지만 큰 종사(宗師)의 눈을 갖추었도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남전 선사께서는
“허허!”
라고 허허성(噓噓聲)을 하시었다.

여기에 큰 뜻이 있음이로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화두를 타파(打破)하여 자신의 성품을 바로 보게 되면, 왜 “아이고, 아이고!”하고 곡을 하며, 또 왜 “허허성”을 하는 것인지를 바로 알게 됨이로다.
그렇게 되면 조주, 남전 선사를 바로 알고, 한산, 습득의 살림살이를 다 알아서 그 분들과 척척 상통(相通)하게 되리라.
그러면 남전 선사께서 “허허!” 하시는 데는 한산, 습득 두 분 다 아무 말씀이 없으셨는데, 산승(山僧)이 만약 그 자리에 있었던들,

 손뼉을 치면서 “하하!”라고 한바탕 큰 웃음을 치리라.

여기에도 또한 큰 뜻이 있음이로다.
손뼉을 치면서 “하하!”라고 웃는 이 뜻을 안다면 모든 부처님의 은혜와 사사공양(四事供養), 시주(施主)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으리라.

마지막 진리의 한 마디는 어떠한 것인고?

 衝落碧開松千尺<충락벽개송천척>이요
 截斷紅塵水一溪<절단홍진수일계>로다.

 푸른 하늘을 찔러 여는 것은 천 길 푸른 소나무요,
 세간의 먼지를 끊어내는 것은 흐르는 물이더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임신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6.1992)

 

62.대수(大隨)의 수타거(隨他去)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醉中勸盞增昏昧<취중권잔증혼매>요
 錦上添花亂紫紅<금상첨화난자홍>이라.
 水母若無蝦作眼<수모약무하작안>이면
 隨流何處認東西<수유하처인동서>리오.
 
 술에 취한 가운데 술을 권함은 혼매(昏昧)만 더함이요,
 비단 위에 꽃을 더함은 어지러이 붉고 붉은지라.
 수모(水母)가 새우의 눈을 갖지 않으면
 흐름을 따라 어느 곳이 동서(東西)인 줄 알리오.


부처님께서 설법(說法)하시기를,
“겁화통연(劫火洞然)에 대천(大千)이 구괴(俱壞)나 - 겁화(劫火)가 활활 타서 대천세계(大千世界)가 다 무너짐이나 - 한 물건은 길이 신령(神靈)하여 무너지지 아니한다.”
하시었다.
 남쪽에 기거하는 한 스님이 북방에 대선지식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대수 법진(大隨法眞) 선사를 찾아가서,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들어 묻기를,
“‘겁화가 활활 탐에 대천세계가 다 무너짐이라’ 하나 살피지 못합니다. 자개(這箇)도 도리어 무너집니까?”
하니, 대수 선사께서
“무너지느니라.”
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대수 선사께서는 ‘무너진다’고 하니, 다시 만 리(萬里)를 걸어와서 남방(南方)의 수산(修山) 선사를 찾아가 묻기를,
“‘겁화가 활활 탐에 대천세계가 다 무너진다‘ 하니, 자개(這箇)도 무너집니까, 아니 무너집니까?”
하니, 수산(修山) 선사께서 답하시기를,
“무너지지 않는다.”
라고 하셨다.
또다시 대수 선사를 찾아 몇 년이 걸려서 만 리나 찾아가니 대수 선사께서 열반에 드신 후였다.
부처님께서는 “대천(大千)이 다 무너져도 이 한 물건은 무너지지 않는다” 했는데, 어째서 대수 선사는 “무너진다” 했는가에 의심이 사무쳐 참구하다가 도를 깨쳐 대수 선사의 법을 전해 받았다.

그러면 시회대중(時會大衆)아!
대수 선사의 “무너진다〔壞〕”가 옳으냐?
수산 선사의 “무너지지 않는다〔不壞〕”가 옳으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蹡蹡萬里亦往返<장장만리역왕반>하니
 爲法忘軀幾幾人<위법망구기기인>이오?
 大千壞不壞且置<대천괴불괴차치>하고
 只這箇        <지자개>
 還會麽        <환회마>?

 장장 만 리를 또한 되돌아가니
 법(法)을 위해 몸을 잊는 이가 몇몇이던고?
 대천세계가 무너지고 무너지지 않고는 그만두고
 또한 이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주장자(拄杖子)를 던지신 후,〕

 看看<간간>하라!

 대중(大衆)은 보고 보아라!

〔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임신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6.1992)
 


63.서경수검마(西京收劍麽)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이 주장자 속에는 모든 부처님의 바른 진리의 눈이 있음이로다. 이 주장자를 바로 알아 향상(向上)의 정안(正眼)을 갖출 것 같으면,

 問在答處<문재답처>요
 答在問處<답재문처>로다.

 물음은 답하는 곳에 있고
 답은 묻는 곳에 있음이로다.


이러한 수완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만인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법이로다. 이러한 수완을 갖추지 못하고서 만인에게 법을 편다면, 천사람 만사람의 눈을 다 멀게 함이로다. 비유하건대, 눈먼 장님이 앞에 서서 뒤에 눈먼 사람들에게 손을 잡게 하여 이끌고 나가는 것과 같도다. 앞에 천길 만길 벼랑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가다가 앞선 사람이 그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뒤따라오던 사람들 또한 그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수천 수만 명이 모두 고통을 받게 되나니, 그야말로 동타지옥(同墮地獄)이 됨이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이 진리는 향상의 정안을 갖추지 않고서는 만인을 지도하는 종사(宗師)가 될 수 없는 법이로다.

일일(一日)에 암두(岩頭) 선사께 한 행각승(行脚僧)이 찾아와서 인사를 올리니, 암두 선사께서 물으셨다.
“어디서 오는고?”
“서경(西京)에서 옵니다.”
“서경에서 왔다면 황소(黃巢)의 난(亂) 후에 칼은 거두어졌던가?”
“거두어졌습니다.”
이에 암두 선사께서 고개를 내밀어 그 행각승 앞에 가까이 대고,
“와(  )!”
하고 칼을 내려치는 소리를 흉내 내셨다. 그러자 행각승이 말하기를,
“스님의 목이 떨어졌습니다.”
하니, 암두 선사께서 웃으셨다.

어째서 “스님의 목이 떨어졌습니다” 하는데 웃음을 짓느냐?
이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런 후에 그 행각승이 설봉(雪峰) 선사 회상(會上)을 찾아가니, 선사께서 물으셨다.
“그대가 어디서 오는고?”
“암두스님 회상을 거쳐서 옵니다.”
“암두 선사가 무슨 말을 하던가?”
행각승이 암두 선사와 문답했던 것을 그대로 말씀드리자, 설봉 선사께서 들으시고는 그 행각승을 주장자(拄杖子)로 삼십 방(三十棒)을 때려서 내쫓아버렸다.

이 행각승에게 무슨 허물이 있길래 주장자로 삼십 방을 때려서 내쫓았느냐?
이러한 것을 바로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만 모든 도인(道人)들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으리라.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암두 선사와 설봉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생(生)을 같이하고 사(死)를 같이하는 안목을 갖춘 분들이로다.

행각승을 알겠는가?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설사, 설봉의 삼십 방 아래에서 진리의 안목(眼目)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둔한 물건은 쓸 곳이 없음이로다.

필경에 고준한 한 마디는 어떠한 것인가?

 橫擔拄杖不顧人<횡담주장불고인>하고
 卽入千峰萬峰去<즉입천봉만봉거>로다.

 주장자를 비껴 메고서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고
 천봉 만봉 심산유곡(深山幽谷)으로 들어감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계유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37.1993)

 

64.전법의부법(傳法衣付法)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垂萬里鉤  <수만리구>하야
 駐千里烏騅<주천리오추>요
 布縵天網  <포만천망>하야
 收衝浪巨鱗<수충랑거린>이라.

 만 리나 되는 갈고리를 던져서
 천 리를 달리는 오추(烏騅)를 머무르게 함이요,
 하늘 끝까지 넓은 그물을 쳐서
 물결을 뿜어대는 거린(巨鱗)을 거둠이로다.


달마대사(達磨大師)께서 처음 동토(東土)에 오셔서 양무제(梁武帝)를 방문하시니, 무제가 말하기를,
“짐이 일생토록 절을 짓고 탑을 조성하고 스님들께 공양을 올렸는데, 얼마만큼 공덕이 있음이닛고?”
하니, 달마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조그마한 공덕도 없다.”
하심이라. 이에 무제가 말하기를,
“짐을 대하는 자, 이 누구입니까?”
하고 물으니, 달마대사께서
“알지 못한다.〔不識〕”
하심에 무제가 뜻을 모르니, 달마대사와 무제는 서로 의사가 상통하지 아니한지라. 이에 달마대사께서는 소림굴에 가서 9년 동안을 면벽(面壁)하셨다.

세월이 흐른 연후에 달마대사께서 문인(門人)들을 다 모아놓고 물으시기를,
“내가 이제 세상에 머무를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희들 공부한바 소견을 일일이 말해보아라.”
하셨다. 이에 도부(道副)스님이 말하기를,
“제가 본 바로는 문자에 국집하지도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아니하는 것으로 도의 씀〔道用〕을 삼음입니다.”
하니, 이에 달마대사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의 가죽을 얻음이로다.”
하셨다. 총지(摠持) 비구니가 말하되,
“제가 지금 아는 바로는 경희(慶喜)가 아섬불국토(阿閃佛國土)를 한 번 보고는 두 번 다시 보려하지 않습니다.”
하니, 이에 달마대사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의 살을 얻음이로다.”
하셨다. 도육(道育)스님이 말하되,
“사대(四大)가 본래 공(空)하고 오음(五陰)이 있는 것이 아닌지라. 또한 제가 본 것은 한 법도 가히 정(情)에 합당함이 없음입니다.”
하니, 달마대사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나의 뼈〔骨〕를 얻음이로다.”
하셨다. 마지막에 혜가(慧可)스님이 나와 예삼배를 올리고 본 자리에 들어가 서니, 달마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의 골수〔骨髓〕를 얻음이로다.”
하시고, 혜가스님에게 법의(法衣)를 전하고 법(法)도 부치셨다.

時會大衆 還會麽<시회대중 환회마>?
시회대중은 도리어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得皮得肉門外客<득피득육문외객>이요
 無言禮拜合密志<무언예배합밀지>로다.
 慧可得髓受衣法<혜가득수수의법>이여!
 옴 호로호로

 가죽을 얻고 살을 얻음은 문 밖의 객이요,
 말없이 예배함은 은밀한 뜻에 합함이로다.
 혜가가 골수를 얻어서 의법(衣法)을 받음이여!
 옴 호로호로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술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해제법어(2538.1994)

 

65.장사(長沙)의 유산(遊山)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三千刹海露此身<삼천찰해로차신>이요
 疑生情動見疎親<의생정동견소친>이라.
 釜山港浦貿易多<부산항포무역다>하니
 市民日常足四隣<시민일상족사린>이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에 이 몸을 나툰지라,
 의심(疑心)을 내고 정(情)을 움직이면 성글고〔疎〕, 친(親)함을 보리라.
 부산항에 무역이 많아서
 일상생활이 이웃과 함께 만족하리라.

 心淸淨是佛        <심청정시불>이요
 心光明是法        <심광명시법>이요
 心處處無礙淨光是道<심처처무애정광시도>라.
 三卽一            <삼즉일>이니
 皆空而無實有      <개공이무실유>라.
 如眞正道人        <여진정도인>은
 日用亦不爲        <일용역불위>로다.

 마음이 청정하면 이것이 부처요,
 마음의 밝은 빛 이것이 법(法)이요,
 마음이 처처에 걸림이 없는 깨끗한 빛, 이것이 도(道)이니라.
 삼(三: 佛·法·道)이 곧 하나〔一〕이니,
 다 공(空)해서 실로 있음이 없음이라.
 진정한 도인은
 일용(日用)에 함이 없음이라.

 萬法歸一 一歸何處<만법귀일 일귀하처>오?

 만법(萬法)은 필경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는고?


이 화두를 생활 속에 간절히 챙겨서 한 생각〔一念〕이 흐르는 물과 같이 지속되어 밤낮을 모르고 지내는 가운데 문득 삼매(三昧)에 들 것 같으면 홀연히 화두가 해결될지니, 노력하고 또 노력할지어다.

석일(昔日)에 장사(長沙) 선사께서 산을 돌고 와서 문앞에 이르시니 수좌가 묻되,
“화상(和尙)께선 어디를 다녀오십니까?”
하니, 장사 선사께서
“산을 돌고 온다.”
하셨다. 수좌가 다시 묻되,
“어디까지 갔다가 오십니까?”
하니, 장사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처음에는 고운 풀밭을 따라 나섰다가, 나중에는 낙화(落花)를 따라 돌아왔느니라.”
하셨다. 이에 수좌가
“마치 봄소식 같습니다.”
하니,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가을 이슬이 연꽃 위에 떨어지는 것보다 나으리라.”
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장사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芳草落花無限意<방초낙화무한의>여!
 遊山消息付與誰<유산소식부여수>할꼬?

 부드러운 풀, 떨어지는 꽃, 다함 없는 뜻이여!
 유산소식(遊山消息)을 누구에게 부칠꼬?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자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40.1996)

 

66.수도등고(樹倒藤枯)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三界無法하니 法求何處<삼계무법 법구하처>며
 四大本空하니 佛依何住<사대본공 불의하주>냐?
 身上着衣는   方免寒  <신상착의 방면한>이라
 口邊說食은   無能飽  <구변설식 무능포>로다.

 삼계 가운데는 진리의 법이 없으니 진리의 법을 어느 곳에서 구할 것이며
 사대(四大)가 본래 비어 없음이니 부처는 어디를 의지해서 머뭄인고?
 몸 위에 옷을 입음은 바야흐로 차가움을 면하게 함이라,
 입으로 밥을 말한들 배부름이 없음이로다.


일상생활 속에 실답게 참구해서 실지(實地)에 이르러야 되나니, 허둥지둥 시간만 낭비하고 시은(施恩)만 소모하면 조그마한 공덕(功德)도 없나니라.
人生難得이요 佛法難逢<인생난득 불법난봉>이라, 금생에 허송하면 만생에 불법을 만나기 어려움이로다.

석일(昔日)에 남전(南泉) 선사 회상(會上)에 황벽(黃檗) 선사가 수좌(首座)로 있을 때에, 공양시간이 되었는데 발우를 가지고 제 일좌(第一座)인 조실스님의 자리에 앉아 있으니, 남전 선사께서 들어와서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언제부터 도를 닦아 행했는고?”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입니다.”
“그러하더라도 나의 아손(兒孫)밖에 안 된다.”
그러자 황벽스님이 본 자리인 제 이좌(第二座)에 물러나 앉았다.

만약 산승이 남전 선사가 되었던들,

 황벽스님이 제 일좌에 앉아 있을 적에 제 이좌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으리라.

만약 이렇게 했던들, 황벽 선사가 하늘을 찌를 기틀과 지축을 흔들 묘수(妙手)가 있더라 하여도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 대문(大文)을 자세히 살필지어다.

일일(一日)에 위산(潙山) 선사께서 법상에 오르시어 법문하시기를,
“유구(有句)와 무구(無句)는 등나무〔藤〕가 나무를 의지함과 같음이다.”
하시니, 소산(踈山)스님이 묻되,
“나무가 넘어지고 등나무가 마른 때에 구(句)가 어느 곳에 있음이닛고?”
하였다. 이에 위산 선사께서
“㰤㰤 大笑〔하하!〕”
라고 크게 웃음이로다.

오조 법연(五祖法演) 선사께 원오 극근(圓悟克勤) 선사가 묻기를,
“유구 무구가 등넝쿨이 나무를 의지한 때에 그 시절은 어떠함이닛고?”
하니, 오조 선사께서 이르시기를,

 描也描不成이요 畵也畵不也<묘야묘불성 화야화불야>로다.
 모방할래야 모방할 수가 없고 그릴래야 그릴 수 없음이로다.

하시었다. 원오 선사가 다시 묻기를,
“나무가 쓰러지고 등넝쿨이 마르는 시절은 어떠함이닛고?”
하니, 오조 선사께서

 相隨來也<상수래야>라.
  서로 따라옴이로다.

하시었다.

만약 사람이 있어 산승(山僧)에게 묻되,
有句無句가 如藤倚樹時如何<유구무구 여등의수시여하>닛고?
“유구 무구가 등넝쿨이 나무를 의지한 때에 어떠합니까?” 하면,

 釣竿上岸<조간상안>이라.

 낚싯대는 언덕에 있음이니라.

“樹倒藤枯時如何<수도등고시여하>닛고?
나무가 넘어지고 등넝쿨이 마르는 때에는 어떠합니까?” 하면,

 水漲船高<수창선고>니라.

 물이 들면 배는 높음이로다.

“위산 선사께서 ‘㰤㰤〔하하!〕’라고 크게 웃은 뜻은 어떻게 생각함이닛고?” 하면,

 笑裏有刺<소리유자>니라.

 웃는 가운데 가시가 있음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신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48.2004)

 

67.남전(南泉)의 주암시(住庵時)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茶飯家事不爲精<다반가사불위정>이로다.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상의 생활이
 정미(精微)롭지 못함이로다.

왜 밥을 지어 먹고, 차를 달여 마시는 일이 정미(精微)로운 것이 되지 못하다고 하는가? 그것을 지나가는 참으로 정미로운 일이 따로 있다는 말이로다.

〔다시 주장자를 들어 법상을 한 번 치시고 이르시되,〕

 손으로 취모검(吹毛劍)을 잡아 쥐고
 세상의 불평지사(不平之事)를 다 끊어 없앰이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정미로운 일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若以祖師門下客  <약이조사문하객>이나
 忽然拈來十萬八千<홀연염래십만팔천>이로다.

 만약 조사의 문하인이라도
 홀연히 잡아오는데 십만 팔천 리 멀어지리라.


이러한 법문은 바로 알기가 무척 어렵도다.
우리가 이러한 법문의 낙처를 바로 알고자 할진댄, 자신의 마음 광명을 밝히는 수행을 쌓고 또 쌓아야 함이로다.

석일(昔日)에 마조(馬祖) 도인의 84인 제자 가운데 기봉(機鋒)이 가장 날카로운 분이 남전(南泉) 선사였다.
남전 선사께서 마조 도인께 인가(印可) 받으신 후에, 어느 고암(高庵)에서 지내면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을 기다리시던 때가 있었다.
고암에서 한가로이 생활하고 계실 때, 하루는 객승(客僧)이 찾아와서 하룻밤 머물기를 청했다.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아침 공양을 지어 드시고는, 남전 선사께서 객승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
“나는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밭에 가서 일을 하리니, 점심공양 때가 되거든 스님이 밥을 지어 드시고 나에게도 한 그릇 갖다 주시오.”
그러고는 남전 선사께서는 밭에 가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점심공양 시간이 한참 지나도 객스님이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래서 남전 선사께서 암자로 돌아와 보니, 그 객승이 암자 안에 있는 살림살이를 모조리 부숴 놓고는 평상(平床)에 태연히 누워 있었다.
남전 선사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 객승이 누워 있는 평상으로 가서 나란히 누우시자, 객승은 벌떡 일어나서 그만 가버렸다.
여기에 불법의 고준(高峻)한 안목(眼目)이 있다.
남전 선사께서 후에 출세(出世)하셔서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암자에서 살 때에 어떤 영리한 객승이 한 분 왔었는데, 오늘에 이르도록 그 객승과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하고 그 객승을 두고 크게 칭찬하셨다.

시회대중아!
암자 안의 살림살이를 다 부숴버리고는 평상에 누워 있다가, 남전 선사께서 옆에 와 누우시니 벌떡 일어나서 가버린 그 객승의 용심처(用心處)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불조(佛祖)와 더불어 동행하는 안목을 갖추었음이로다.

남전 선사께서 살림살이가 다 부셔져 있는 광경을 보시고, 객승이 누워 있는 평상에 가서 나란히 누우셨던 뜻을 알겠느냐?

 구름이 허공 가운데 일어났다가 멸하는 것을
 스스로 관찰(觀察)하는 눈을 갖추셨도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신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해제법어(2548.2004)

 

68.만리무촌초거(萬里無寸草去)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妙藥何曾過口  <묘약하증과구>하며
 神醫莫能捉手  <신의막능착수>로다.
 若存也渠本非無<약존야거본비무>요
 至虛也渠本非有<지허야거본비유>로다.
 不滅而生      <불멸이생>이요
 不亡而壽      <불망이수>로다.
 全超威音之前  <전초위음지전>하고
 獨步空劫之後  <독보공겁지후>로다.
 成平也天蓋地擎<성평야천개지경>이며
 運轉也烏飛兎走<운전야오비토주>로다.

 묘약(妙藥)이 어찌 일찍이 입을 지나가며
 신의(神醫)는 능히 손을 잡지 아니함이로다.
 있다고 해도 저가 본래 없지 아니함이요,
 지극히 비었으나 저가 본래 있지 아니한지라.
 멸하지 아니한 생(生)이요,
 없어지지 않은 수명(壽命)이라.
 온전히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을 뛰고
 홀로 공겁(空劫) 뒤를 걸음한지라.
 평평함을 이룸에 하늘을 덮고 땅을 떠받치며,
 운행(運行) 변전(變轉)함에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리도다.


각자 참구하는 화두를 성성하게 잡아 일으키어 일념(一念)이 백일 천일 지속되게끔 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만약 금생에 이 일을 마치지 못하면 어느 생에 견성대오(見性大悟)하리오. 금일은 있음이나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도다. 일체 시비장단(是非長短)을 다 놓아버리고 이 일을 밝힐지니라.

석일(昔日)에 동산 양개(洞山良价) 선사께서 시중(示衆)하시되,
“형제들이여, 가을 첫머리, 여름 끝에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되 곧장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향해 가야 옳다.”
하시고는 또 말씀하시되,
“그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어떻게 가는가?”
하셨다. 나중에 어떤 이가 석상(石霜) 선사께 이야기했더니, 석상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문을 나서면 곧 바로 풀이로다.”
하셨다. 동산 선사께서 이 말을 전해 듣고 말씀하시기를,
“당나라 안에 이러한 안목을 갖춘 이가 능히 몇이나 될까?”
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한 사람은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으로 가라” 하고,
또 한 사람은 “문을 나서면 곧 바로 풀이로다” 하니,

 산승이 점검컨대,
 두 선사가 풀 속을 행함을 면치 못하도다.

필경에 진리의 일구(一句)는 어떠한 것인고?

 無事中也無事<무사중야무사>로다.

 일 없는 가운데 또한 일 없음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신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48.2004)

 

69.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大智如愚      <대지여우>며
 大巧若拙      <대교약졸>이라.
 用盡工夫參不徹<용진공부참불철>이니
 莫於平地上增堆<막어평지상증퇴>하고
 休向虛空裏釘橛<휴향허공리정궐>이어다.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으며
 크게 공교로움은 졸(拙)함과 같은지라.
 공부를 써서 다함에 참구(參究)해도 사무치지 못함이니
 저 평지 위에 무더기를 더하지 말고
 허공을 향해서 말뚝박음을 쉴지니라.


일일(一日)에 법안(法眼) 선사께서 수산주(修山主)에게 물으시되,
“‘호리(毫釐)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만큼 벌어짐이라’ 하니,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하시니, 수산주가 말하기를,
“호리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만큼 벌어짐입니다.”
하였다. 이에 법안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이러할진대 어찌 얻었으리오?”
하심에 수산주가 말하기를,
“모갑(某甲)은 이와 같이 답을 했거늘, 화상(和尙)은 어떠함이닛고?
하였다. 이에 법안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호리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만큼 벌어짐이로다.”
하시니, 수산주가 예배(禮拜)를 올리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법안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電光裏轉機    <전광리전기>하니
 善知識中善知識<선지식중선지식>이로다.

 번갯불 속에 기틀을 굴리니
 선지식 중 선지식이로다.

수산주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知恩하야사 方解報恩<지은 방해보은>함이니
 果然嫡子       <과연적자>로다.
 
 은혜를 알아야만 은혜를 보답함이니
 과연 맏아들이로다.

필경에는 어떻게 생각하는고?

 落霞與孤鶩齊飛<낙하여고목제비>요
 秋水共長天一色<추수공장천일색>이로다.

 저녁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더불어 가지런히 낢이요,
 가을 물은 긴 하늘과 같이 일색(一色)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신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해제법어(2548.2004)

 

70.덕산(德山)의 오도(悟道)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順水使船猶自可<순수사선유자가>어니와
 逆風把柁世間稀<역풍파타세간희>라.
 雖然好箇擔板漢<수연호개담판한>이나
 到頭未免落便宜<도두미면낙편의>로다.
 什麽人  恁麽來<십마인  임마래>오?

 흐르는 물에 배를 띄움은 오히려 쉽거니와
 바람을 거슬러 키〔柁〕를 잡음은 세간에 드묾이로다.
 비록 이 좋은 담판한(擔板漢)이나
 마침내 편의(便宜)에 떨어짐을 면치 못함이로다.
 어떤 분이 이렇게 옴인고?


덕산(德山)스님은 중국 북방지역 사찰에 거주하면서 일생 금강경(金剛經)을 독송(讀誦)하고 금강경 주(註)와 소(疎)로 일관하여 금강경에 달통한 스님이었다.
하루는 덕산스님이
“남방(南方) 선지식들로부터 들려오는 말들이, ‘직지인심(直旨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곧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룸이라 하니, 이러한 말이 어찌 있을 수 있느냐? 내가 남방에 가서 모든 남방 선지식들을 일봉(一棒)으로 때려서 벙어리가 되게끔 하리라.”
굳게 다짐하고 북방을 출발하여 남방으로 향하였다.
여러 달을 걷고 걸어서 남방의 용담사(龍潭寺) 부근에 이르르니, 점심때가 되어 요기(療飢)를 하려고 사방을 살피던 중 노변(路邊)에 빵을 구워 파는 노보살이 있기에 다가가서,
“점심 요기를 좀 합시다.”
하니, 그 빵 굽는 노보살이 물었다.
“스님 바랑 속에 무엇이 그리 가득 들어 있소?”
“금강경 소초(疎秒)입니다.”
그러니 노보살이 말하기를,
“내가 금강경의 한 대문(大文)을 물어서 답을 하시면 점심을 그냥 대접할 것이고, 만약 바른 답을 못하면 다른데 가서 요기를 하십시오.”
하니, 덕산스님이 자신만만하게 물으라고 하였다.
노보살이 금강경 한 대문을 들어 묻기를,
“금강경에 이르기를, ‘과거심(過去心)도 얻지 못하고, 현재심(現在心)도 얻지 못하고, 미래심(未來心)도 얻지 못한다’ 하니, 스님은 과거심에다 점을 치시렵니까〔點心〕, 현재심에다 점을 치시렵니까, 미래심에다 점을 치시렵니까?”
하니, 그 물음에 덕산스님이 벙어리가 되어 답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이에 노보살이 말하기를,
“약속과 같이 바른 답을 못했으니 다른데 가서 요기를 하십시오. 그리고 10리쯤 올라가시면 용담사(龍潭寺)라는 큰 절이 있으니 용담(龍潭) 선사께 가서 불법(佛法)을 물으십시오.”
하였다.
그러면 이 보살은 어떤 보살이냐? 큰 용기와 신심으로 남방 마구니들을 한 방망이 때려서 벙어리로 만들겠다는 북방 덕산스님의 그 용기와 큰 그릇됨〔器〕을 아시고 문수보살이 빵 굽는 보살로 나투시어 접인(接引)한 것이다.
요기도 못하고 노보살에게 방망이를 맞고는 곧장 용담사를 찾아가 용담 선사 방문 앞에 이르러 말하기를,
“용담이라 해서 찾아왔더니, 못〔潭〕도 보이지 않고 용도 나타나지 않는구나!”
하니, 용담 선사께서 그 말을 듣고 문을 열고 나오시면서,
“그대가 친히 바로 용담(龍潭)에 이르렀네.”
하고 방으로 맞으셨다.
밤이 늦도록 대담을 나누다가 덕산스님이 객실(客室)로 가기 위해 방을 나오니, 밖이 칠흑같이 캄캄하여 한 걸음도 옮길 수가 없으므로 다시 방에 가서,
“사방이 칠흑 같습니다. 불을 좀 주십시오.”
함에 용담 선사께서 용심지에 불을 붙여 주니, 덕산스님이 그것을 받는 순간 용담 선사께서 입으로 불어 불을 꺼버리셨다. 불을 끄는 이 찰나에 덕산스님이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이후로는 천하 도인의 언설(言說)을 의심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거기서 크게 진리의 눈이 열린 것이다.
뒷날 아침에 용담 선사께서 대중방(大衆房)에 이르러 말씀하시기를,
“우리 대중 가운데 이빨은 칼날과 같고 입은 피를 담는 항아리와 같은 이가 있나니, 그가 몽둥이로 때리면 머리를 돌이키지 못하느니라. 이후에 고봉정상(孤峰頂上)에서 나의 가풍(家風)의 도를 세워 가리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조심하고 조심하라!”
하셨다. 그런 후에 덕산스님이 법당 앞 뜰에서 금강경 소초에다 불을 댕기면서 말하기를,
“모든 현현(玄玄)한 웅변으로써 진리의 법을 설한다 해도 한 터럭을 허공중에 날리는 것과 같음이요, 모든 세상의 요긴한 기틀을 다하더라도 한 방울 물을 큰 골짜기에 던지는 것과 같음이라.”
하고 금강경 소초를 불살라 버리고 용담 선사께 예배하고 떠났다.

시회대중은 덕산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万仞峯頭坐     <만인봉두좌>하여
  呵佛罵祖         <가불매조>나
  脚下數三尺 會也麽<각하수삼척을 회야마>?

 만 길이나 되는 높은 산봉우리에 앉아서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꾸짖음이나
 다리아래 두 자, 석 자가 됨을 아느냐?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을유년 동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결제법어(2549.2005)

 

71.만덕공덕상(萬德功德像)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淨不涉緣           <정불섭연>하고
 照不對物           <조부대물>하야
 用無去來之相       <용무거래지상>하며
 混無彼我之心       <혼무피아지심>이라
 若能恁麽去         <약능임마거>하면
 隱隱密密田地를 受用<은은밀밀전지수용>하리라.

 아주 깨끗해서 연(緣)에 섭(涉)하지 않고
 비치되 물(物)을 대하지 아니하며
 쓰되 가고 오는 상이 없으며
 섞여 있으되 너와 나의 마음이 없음이라.
 만약 능히 이렇게 갈 것 같으면
 은은밀밀전지(隱隱密密田地)를 수용(受用)하리라.


석일(昔日)에 천황 도오(天皇道悟) 선사께서 평생동안 “즐겁고, 즐겁다!”라고 부르짖으셨다. 그러다가 임종에 다다라서는 “괴롭고, 괴롭다. 염라대왕이 잡으러 온다!”라고 부르짖으셨다. 이에 원주가 옆에 와서 묻기를,
“선사님께서는 평상시에는 ‘즐겁다, 즐겁다’ 하시더니, 지금에 와서는 어째서 ‘괴롭다, 괴롭다’ 하십니까?”
하니,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말해보라! 그때가 옳으냐, 지금이 옳으냐?”
하심에 원주가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니, 베고 있던 목침을 밀쳐버리고 열반에 드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즐겁다”하는 것이 옳으냐? “괴롭다”하는 것이 옳으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명사(名詞: 즐겁다, 괴롭다)는 둘이나 실로 둘이 아님이로다.
 홀연히 목침을 밀치고 열반에 드니, 장부의 기틀이 있음이로다.

일일(一日)에 장자광(長髭曠)스님이 석두(石頭) 선사를 방문하니, 석두 선사께서 물으셨다.
“어디서 오는고?”
“영남(嶺南)에서 옵니다.”
“영남에 대불(大佛) 조성 공덕상(功德像)은 다 완성이 되었는가?”
“완성이 된 지는 오래이나 점안(點眼)을 못했을 뿐입니다.”
이에 석두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럼 점안해주기를 바라는가?”
“그렇습니다.”
그러자 석두 선사께서 한쪽 다리를 평상 아래로 드리우니, 장자광스님이 큰절을 올렸다. 이에 석두 선사께서
“어째서 절을 하는고?”
하고 물으시니, 장자광스님이 대답하기를,

 紅爐上에 一點雪<홍로상 일점설>이로다.
 불이 활활 거리는 화로 속에 한 점의 눈입니다.

하였다.

시회대중아!
대불 조성 점안을 부탁하는데 어째서 한쪽 다리를 드리웠으며, 다리를 드리움에 큰절을 하니 그 뜻을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萬德功德像이 在什麽處<만덕공덕상 재십마처>오?
 看看                 <간간>하라!

 만덕공덕상이 어느 곳에 있음인고?
 눈을 크게 떠서 보고 보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술년 하안거 해운정사 금모선원 해제법어(2550.2006)

 

72.백양사 1차 무차선대법회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欲識佛祖解脫道<욕식불조해탈도>인댄
 萬法縱來不相到<만법종래불상도>라.
 眼見耳聞總而絶<안견이문총이절>이요
 聲色堆裏浩浩也<성색퇴리호호야>로다.
 四海五湖參究者<사해오호참구자>여!
 日用參究活句禪<일용참구활구선>이어다.

 모든 부처님과 천하 도인의 해탈의 도를 알고자 한다면,
 비록 만 가지 법이 온다 해도 서로 통하지 못하는지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음이 다 끊어짐이요,
 소리와 빛깔의 무더기 속에 넓고 넓은 진리의 도가 가득하도다.
 사해오호(四海五湖)에 부처님의 최고의 진리를 참구하는 자여!
 일상생활 속에 활구선(活句禪)을 참구할지어다.


부처님께서 2500여 년 전에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6년 고행 끝에 일념삼매(一念三昧)가 지속이 되어 새들이 머리에 집을 지어도 모르셨다. 이것을 일러 선정삼매(禪定三昧)라 한다. 새들이 머리에 집을 지어도 모르고, 그렇게 세월이 흐른 줄도 모르다가, 납월 팔일(음.12월8일) 동쪽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하셨으니, 제일 먼저 일성(一聲)을 토하시기를,
“삼칠일(三七日)동안 사유(思惟)하고 사유해 보아도, 내가 깨친 법을 설하는 것이 법을 설하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만 못하도다.”
하셨다.
천신만고 끝에 대도(大道)를 성취하셨는데 왜 이 말씀을 제일 먼저 하셨겠는가? 여기에 부처님의 살림살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옆에서 문수보살이 지켜보고는,
“부처님이시여, 깨달은 진리의 법은 비록 그러하오나 방편으로써 하근(下根)중생을 위해서 얕은 법을 설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간청을 드렸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너의 말도 일리가 있구나.”
하시고 인연을 따라, 그릇을 따라 49년간 팔만 사천 가지가지의 법문을 설하셨다. 그렇게 49년간 팔만 사천 법문을 설하시다가 마지막 열반(涅槃)에 드실 즈음에 다다라서 인천(人天) 대중을 모아 놓고 하시는 말씀이,
“내가 비록 49년 동안 팔만 사천 법문을 설했으나 실로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
하시고는 49년 설법을 다 거두어 버리셨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머리와 꼬리를 분명하게 선을 그어놓은 멋진 법문을 하셨는데, 이 49년 설법 외에 특별히 세 가지의 관문(關門)을 베풀어 놓으셨다.

한 번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인천(人天) 백만 대중이 법문을 듣기 위해 좌정(坐定)하고 있을 때,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우담바라 꽃을 부처님께 올리니, 그 꽃을 받아서 백만 대중에게 말없이 들어 보이셨다. 백만 인천 대중이 눈 뜬 봉사요 귀머거리라, 부처님의 그 뜻을 헤아린 이가 한 사람도 없었는데 오직 가섭 존자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른 진리의 법안장[正法眼藏], 열반의 묘한 체(體)를 금일에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
하시었다.
또 한 번은 다자탑전(多子塔前)에 모든 대중이 법문을 듣기 위해 운집(雲集)해 있었는데 맨 마지막으로 가섭 존자가 들어오니,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시기 위해서 법상에 좌정해 계시다가 자리의 반을 비켜 앉으셨다. 이에 가섭 존자가 뜻을 알고 선뜻 그 자리에 가서 앉으니, 부처님께서 가사를 같이 두르시고 대중에게 말없이 그 모습을 보이셨다.
그리고 세 번째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일주일 후에, 교화(敎化)를 위해 멀리 다른 지방에 가 있던 가섭 존자가 돌아와 부처님 법신(法身)이 모셔진 칠 푼 두께의 금관을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는 합장 예배를 올리고 말하기를,
“삼계(三界)의 대도사(大道師), 사생(四生)의 자비스러운 아버지시여! 우리에게 항상 법문을 하시기를,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원래 없다’ 하시더니 금일에 모든 대중에게 이렇게 열반상을 보인 것은 온 인류를 기만한 것이 아닙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칠 푼 두께의 관 밖으로 두 발을 쑤욱 내미셨다.

이것이 삼처전심(三處傳心)이다. 꽃을 들어 보이셨고, 자리를 나누어 앉으셨고, 두 발을 내미신 이 세 가지 관문이 바로 부처님의 살림살이다. 이 독특한 세 가지의 살림살이를 투과해야 부처님의 바른 살림살이를 보는 법이지, 49년 설법을 부처님의 살림살이로 본다면 크게 그르치고 그르치는 것이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꽃을 들어 보이셨고, 자리를 나누어 앉으셨고, 두 발을 내미신 그 뜻을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麗天高日 萬物成長  <여천고일 만물성장>이요  
 成長中 生歡喜      <성장중 생환희>로다.  
 雖然歡喜나 仔細點檢<수연환희 자세점검>컨대  
 枝槾上 更生枝槾    <지만상 갱생지만>이로다.  

 아주 높은 해가 하늘에서 빛을 내니 만물이 그 빛을 좇아서 성장하는구나.
 성장하는 그 가운데 만물이 환희심을 내네.
 비록 그처럼 즐거워하나 내가 자세히 점검을 해 보건대,
 가지 위에 다시 가지를 더함이로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 가지 살림살이 밖에 독특한 한 법을 더 베풀어 놓으셨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설법을 마치시자 모든 대중이 각각 처소로 다 돌아갔는데, 한 여인은 부처님 법상(法床) 앞에서 정좌(正坐)한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문수보살이 그 광경을 보고 부처님께 여쭙기를,
“모든 대중은 법문이 끝나서 다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갔는데, 저 여인은 어찌하여 부처님 가까운 자리에서 저렇게 앉아있습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저 여인이 정(定)에 들어 있으니, 문수 네가 신통력으로 저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해 보아라.”
하시니,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수보살이 백천 신통(百千神通)을 허공중에 나투고, 위요삼잡(圍繞三匝)을 하고, 탄지(彈指)를 해 보았건만 끝내 여인이 정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그 광경을 지켜보시고는,
“문수야, 네가 비록 백천 신통을 놓고 온갖 묘용(妙用)을 나툰다 하더라도 너의 신력(神力)가지고는 저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하방세계(下方世界) 42국토를 지나는 곳에 이르면 망명(罔明)이라는 초지보살(初地菩薩)이 있는데, 그이라야 능히 저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할 수 있느니라.”
하셨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망명보살이 땅에서 솟아나와 부처님께 합장 예배를 올리니, 부처님께서 정에 들어있는 여인을 가리키시며,
“저 여인이 정에 들어 있으니, 망명 네가 한번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해 보아라.”
하시니, 망명보살이 정에 들어있는 여인 앞에 이르러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데 여인이 정에서 나왔다.

그러면 문수보살은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위대한 스승인데 무엇이 부족해서 그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하지 못하였으며, 망명은 이제 초지보살인데 어떠한 장처(長處)가 있어서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데 여인이 정에서 나왔는가?

시회대중은 부처님의 이 심오한 관문의 살림살이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海枯終見底<해고종견저>나
 人死不知心<인사부지심>이로다.

 바다가 마르면 마침내 바다 밑은 볼 수가 있어도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은 알지 못함이로다.

그럼 마조(馬祖), 백장(百丈), 임제(臨濟), 덕산(德山) 선사는 어떤 분인가?
부처님 이후로 마조 선사를 능가할 도인이 없는데, 그 법이 참으로 위대하여 무려 84인의 도인 제자를 두신 분이로다. 그 도인 제자들 가운데 백장(百丈), 남전(南泉), 귀종(歸宗) 선사는 도인 중의 도인이로다. 그 밑으로 황벽(黃檗), 임제(臨濟), 덕산(德山) 선사 등 기라성 같은 도인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러한 분들이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꿰뚫고 중국 천하를 횡행함으로 인해 선종이 크게 흥하게 되었으며 무수한 도인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부처님 살림살이가 이 도인들을 좇아서 중국에 재현이 되었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선법(禪法)은 중국에 와서 새롭게 창조되었다고 하지만 실은 부처님 살림살이가 다시 재현된 것이로다.
그러니 중국의 그 위대한 도인들의 살림살이를 귀감으로 삼아 우리 모두가 정진에 정진을 더하여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고, 부처님의 살림살이와 마조, 백장, 임제, 덕산 선사와 같은 천하 도인의 살림살이를 꿰뚫어 볼 때에 비로소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의 대자유인이 되는 법이로다. 이러한 대자유의 안목(眼目)을 갖추지 못하면 할 일을 다 마친 장부〔了事丈夫〕라 말할 수 없음이로다.
그러므로 이러한 법문을 듣고 여생을 자기의 참모습을 바로 보는 이 참선 수행에 몰두한다면, 삼생(三生)의 업(業)이 다 소멸될 뿐만 아니라 다겁다생에 지은 중생의 업 또한 다 소멸되리라. 그리하여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과 같은 동등한 눈을 갖추게 된다면 나고 날 적마다 행복을 누리는 대자유인이 될 수 있으리라.

임제 선사께서 하루는 탁발(托鉢)을 하러 마을에 내려가셨다. 한 집에 가서 대문을 똑똑 두드리면서,
“동냥하러 왔습니다.”
하시니, 한 노파가 나오더니 대뜸 말하기를,
“염치없는 중이다.”
하였다. 그러니 임제 선사께서
“한 푼 시주도 주지 아니하고 어째서 염치없는 중이라 하는고?”
하고 반문을 하시니, 노파는 대문을 왈칵 닫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기에서 임제 선사께서는 한 마디 대꾸도 안하고 절로 돌아오셨다.

임제 선사는 번갯불보다도 빠르고 돌불보다도 빠른 기봉을 갖춘 천하의 도인인데, 어찌하여 한 마디 대꾸도 안하고 절로 돌아왔는가?
만약 여기에 모인 대중이 당시의 임제 도인이었다면 노파가 대문을 왈칵 닫고 들어 갈 때 뭐라고 한 마디 하겠는가?

〔대중 가운데 한 비구니 스님이 일어나 합장 예배하고는 답하기를,〕

 “산호나무 가지에 밝은 달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그 달을 마음대로 쓰면서도 스님이 다시 구걸을 하니 그런 것 같습니다.”

〔진제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하하하! 설사 그렇게 하더라 해도 한 푼 시주도 받지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하리라.”

그러면 산승이 임제 선사를 대신해서 한 마디 하노니,

 三十年來弄馬騎<삼십년래농마기>러니
 今日却被驢子撲<금일각피려자박>이로다.

 삼십여 년 간 말을 타고 희롱해 왔더니
 금일 당나귀에게 크게 받힘을 입음이로다.

이 말의 낙처(落處)가 어디에 있는지 잘 참구할지어다.

그러면 이 선문(禪門)에 있어서 돈오돈수(頓悟頓修)가 바른 수행법인가, 돈오점수(頓悟漸修)가 바른 수행법인가?
옛날 달마(達摩)스님의 오대손(五代孫)인 홍인(弘忍) 선사께서 회상(會上)을 열어 많은 대중에게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을 지도하고 계셨는데, 연로하도록 지음자(知音者)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하루는 선사께서 대중을 불러 모아놓고는 말씀하시기를,
“일생 동안 깨달은 바를 글로 지어서 바쳐라.”
이렇게 영(令)을 내리셨다.
그러자 대중들에게 생활법도와 교학을 지도하던 신수(神秀)스님이 여러 날을 생각하고 생각해서 글을 하나 지었다.

 身是菩提樹<신시보리수>요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로다.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하야
 莫使惹塵埃<막사야진애>어다. 

 이 몸은 보리수 나무와 같고
 마음은 밝은 거울의 대와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와 티끌이 앉지 않게끔 할지어다.

이렇게 지어서 오조(五祖) 선사께서 자주 다니시는 복도 벽에다 붙여놓으니, 오조 선사께서 복도를 지나다가 그 게송을 보시고는,
“이 게송을 의지해서 모든 대중이 수행을 할 것 같으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짐을 면하리라.”
하시니, 모든 대중이 다 신수스님의 게송을 외우고 다녔다.
하루는 노 행자(盧行者)가 대중 공양미 방아를 찧고 있다가, 한 나이어린 사미승이 그 게송을 외우며 방앗간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그 어떤 글이냐?”
하고 물으니, 사미승이
“오조 스님께서 명령하시기를, ‘깨달은 바가 있거든 글을 지어 바치라’ 해서 신수 교수사스님이 게송을 지어서 바쳤는데, 오조 선사께서 ‘이 게송을 의지해서 닦아 행할 것 같으면 삼악도에 떨어짐을 면한다’ 하심에 모든 대중이 외우고 있습니다.”
하니, 노 행자가 부탁하기를,
“그러면 나에게도 게송이 하나 있으니, 나를 대신해서 써서 그 옆에다 붙여다오.”
하였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요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라.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이어니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리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밝은 거울 또한 대(臺)가 아니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번뇌가 있으리오.

이렇게 갖다 붙여 놓았는데, 오조 선사께서 지나가다 그 글을 보니, 진리의 눈이 열린 이의 글귀라. 누구의 글인지 이미 알고 계시건만 대중이 시기할까 걱정되어,
“이것도 견성하지 못한 글이다.”
하고는 신발짝으로 지워버리셨다. 그러고는 오후에 한가로울 때 아무도 모르게 방아 찧는 방앗간을 찾아가서,
“방아를 다 찧었느냐?”
하고 노 행자에게 물으시니,
“방아는 찧은 지가 오랩니다마는 아직 택미(擇米)를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법의 간택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오조 선사께서 짚고 갔던 작대기로 방앗대를 세 번 ‘딱 딱 딱’ 두드리고는 당신 처소로 돌아가셨다. 방앗대를 세 번 두드린 것은, 오늘 밤 삼경(三更)에 찾아오라는 뜻이다.
노 행자가 그 뜻을 알고는 삼경에 대중이 다 자는데 조실방을 찾아가니, 혹여 다른 대중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오조 선사께서 가사로 문을 가리고 불빛이 밖에 새 나가지 못하게 하고 기다리고 계셨다. 이처럼 오조스님이 조심하고 조심하는 것은 지음자(知音者)를 만난다는 것이 천고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노 행자가 들어가니 오조선사께서 금강경(金剛經)을 설하시는데,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
 응당히 주(住)하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

하는 여기에 노 행자가 여지없이 대오(大悟)를 하였다. 이에 바로 게송을 읊기를,

 何期自性本自淸淨<하기자성본자청정>하며
 何期自性本不生滅<하기자성본불생멸>하며
 何期自性本自具足<하기자성본자구족>하며
 何期自性本無動搖<하기자성본무동요>하며
 何期自性能生萬法<하기자성능생만법>이리오.
 
 자성이 본래 청정한 줄 어찌 알았으며
 자성이 본래 생멸이 없는 줄을 어찌 알았으며
 자성에 본래 만법이 구족함을 어찌 알았으며
 자성은 본래 동요가 없는 줄 어찌 알았으며
 자성을 좇아 만법이 나는 것을 어찌 알았으리오.

이렇게 게송을 지어 바치니, 여기에서 오조 선사께서는 노 행자가 크게 깨달은 것을 아시고 의발(衣鉢)을 전하시며 육대조(六代祖)로 봉(封)하셨다. 그리고나서,
“시절인연이 도래하거든 법을 전하라.”
하고 당부하시며 밤에 대중 모르게 산을 벗어나게 하였다.

오조 선사께서는, 신수가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마음 거울에 먼지와 티끌이 앉지 않게끔 하라” 하는데 있어서는 법을 전하지 아니하셨다. 진리의 바른 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벅머리 노 행자가 “깨닫고 보면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과 번뇌가 있으리오” 하는 여기에서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심인법을 전한 것이다. 오조 선사께서는 이렇게 돈오돈수법과 점수법에 대해서 분명히 선을 그어 법을 전하고 전하지 아니하고 하신 것이다.

그런 후에 세월이 흘러 육조 선사께서 개당(開堂)을 하여 사방에서 모인 무수한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법을 크게 선양하셨는데, 하루는 법문하시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받치고, 밝기는 일월보다도 밝고 검기는 옻칠보다도 검다.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일상생활 속에 만 사람이 쓰고 있으면서 거두어 얻지 못하고, 잡아 가지지 못하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렇게 대중에게 물음을 던지셨다.
그러니 신회(神會)라는 스님이 일어나서 답을 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신회의 불성입니다.”
하니, 육조 선사께서 호통을 치셨다.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했는데, 제불(諸佛)의 근원이며 신회의 불성이 무슨 소리냐? 너는 일생 수도를 해도 야호(野狐)의 알음알이를 벗어나지 못하리라.”
그런 후에 세월이 흘러서 남악 회양(南嶽懷讓) 선사가 고암(孤庵)에서 용맹정진으로 깨달음을 투득(透得)하여 육조 선사를 친견하러 왔다. 육조 선사께서 방안에 앉아 계셨는데 들어오는 모습이 아주 당당하므로,
“무슨 물건이 이렇게 오는고?”
하시니, 남악 선사가 즉시 답을 하였다.
“설사 한 물건이라도 맞지 않습니다.”
바른 심안(心眼)이 열린 이는 이같이 바르게 답이 나오는 법이다. 횡설수설하는 법이 아니다. 그러니 육조 선사께서 재차 물으셨다.
“그러면 닦아 증득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고?”
“닦아 증득하는 것은 없지 아니하나, 더러운데 물듦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한번 견성해서 여래지(如來地)에 몰록 이를 것 같으면 다생의 업이 그 자리에서 다 소멸이 되고 번뇌의 업이 남아 있질 않는 법이다. 모든 진대지(盡大地) 시방세계 중생의 팔만 사천 업이 다 부처님의 대지혜(大智慧)로 돌아와 버리니, 중생의 업의 그림자를 볼래야 볼 수가 없으며 더러운데 물듦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육조 선사께서
“모든 부처님도 호념(護念)하는 바이고 나도 이미 그렇고 너도 그러하니 잘 두호(斗護)해 가지거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과 조사와 도인들이 똑같은 한 길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돈오돈수의 견성법(見性法)은 오조 선사, 육조 선사께서 이렇게 분명히 선을 그어 놓으심이로다. 그러면 점수를 주장해서 후학을 지도한 분은 오조 선사 회상에 신수(神秀)스님, 육조 선사 회상에 하택(荷澤)스님, 또 그 200년 후에 규봉(圭峰) 선사가 있으며, 그리고 우리나라의 근세에까지 이 점수사상으로 참선을 지도하는 이가 더러 있음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바른 심인법을 면밀히 이은 그러한 종사(宗師)들은 점수법을 선양한 이가 없도다. 중국에서 마조 선사 이후로 오종(五宗)이 벌어졌지만 다 돈오견성법, 즉 돈오돈수를 제창해서 후학을 제접(提接)한 것임을 알아야 함이로다.
바른 법문을 듣고 바른 사상〔頓悟見性法〕을 마음 가운데 정립해야 금생(今生)에 다 견성할 수 있음이로다. 금생에 닦지 못하면 다음 생에 닦고, 다음 생에 못 닦으면 그 다음 후생에 닦는다고 하는 이런 얕은 생각을 가지고 이 견성법을 행하는 이는 여러 생을 지내도 견성을 못하리라.
‘人身難得이요, 佛法難逢<인신난득 불법난봉>이라.’
참으로 사람 몸 받기 어려움이요, 불법 만나기 어려움이로다.
우리 모든 출가 스님네는 출가한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견성성불(見性成佛)이로다. 견성성불을 하기 위해서 출가했지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주지하고 소임 살며 가지가지의 출세를 위해 출가한 게 아니로다. 부처님의 지혜를 증득해서 나고 날 적마다 열반의 낙을 누리기 위한 출가이고, 모든 도인의 살림살이를 꿰뚫어서 임의자재하게 법을 쓰기 위한, 인천(人天)의 사표(師表)가 되기 위한 출가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천의 스승이 되기 위해서, 견성대오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됨인가? 일상생활 속에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여야 함이로다. 그럼 활구참선이란 또 어떤 것이냐? 일천 성인(一千聖人)의 이마 위의 일구(一句)를 투과해야 알 수 있는 것이라,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그 일구를 투과하지 못하면 활구의 진리를 알 수 없음이로다. 그래서 옛날 도인 스님들도 말씀하시기를,
“활구를 투득할 것 같으면, 활구하에서 진리의 눈이 열릴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의 스승이 된다.”
하셨으니, 무한한 자유의 큰 바른 안목을 갖추게 됨이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一句)이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三世諸佛 遭倒炭<삼세제불 조도탄>이라.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들이 검은 흙탕물 속에 거꾸러짐이로다.

필경에 진리의 일구는 어떠한 것인고?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답하여 이르시기를,〕

  천언만어무인회<千言萬語無人會>하니
  향하문장부내일<向下文章付來日>하리라.

 심오한 진리를 천 번을 말하고 만 가지를 말해야 아는 이가 없으니,
 향하는 아래 문장이 길어서 내일에 있어 부치리라.

 

◀ 법 거 량 ▶

【질문자】
질 문 자: 만나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스님의 진면목이 무엇입니까?
진제선사 : 冬至寒食 百五日<동지한식 백오일>이니라.
질 문 자 : 옳지 않으니 다시 이르십시오!
진제선사 : 할(喝)! 〔일할(一喝) 하시다.〕 어디서 야호(野狐)가 왔구나!
질 문 자 : 법당 뒤에 백일홍이 참 아름답습니다.
진제선사 : 하하하. 차나 한 잔 마시고 쉬시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무인년 8월 18~22일 백양사 1차 무차선대법회 상당법어(2542.1998)

 

73.불교TV 무상사 초청대법회 상당법어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世與靑山何這是<세여청산하자시>냐?
 春成無處花不開<춘성무처화불개>로다.

 세상과 청산 중 어느 것이 좋으냐?
 봄이 오니 꽃피지 않는 곳이 없도다.


처처에 이러한 아름다운 봄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분들이 부처님과 같은 진리의 눈이 열려야 함이로다. 그리하면 진리의 법과 세상법이 따로 있지 아니해서 온 대천세계가 부처님 국토가 됨이로다.
그래서 옛 도인들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빈한하게 삶은 지혜가 짧기 때문이요, 말이 여위면 털이 길다” 하셨으니, 지혜는 만복(萬福)의 근원이 됨이로다. 이 지혜는 마음을 닦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어서 이로 인해 온갖 출세와 복락을 마음대로 누리게 됨이나, 이로써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부처님의 낙(樂)이 있으니, 견성대오(見性大悟)를 통해서만이 누릴 수 있는 적적삼매(寂寂三昧)의 낙이 바로 그것이로다. 이러한 선정삼매(禪定三昧)의 낙을 얻기 위해서는 금생(今生)에 깨달아 마쳐야겠다는 확고한 신심으로써 일체 모든 시비분별과 애착을 끊고,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어 오매불망 간절히 참구하되, 흐르는 물이 근원이 마르기 전에는 밤낮으로 끊이지 않고 흘러가듯, 일상생활하는 그 가운데 챙기고 챙겨서 일념삼매(一念三昧)가 현전하도록 무한한 노력을 쏟아야 함이로다. 그리하여 참의심이 발동이 걸리면 일체처, 일체시, 일체경계에 바보가 되고 송장이 되어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하게 되나니, 이로 인해 영원히 멸하지 않는 부처님의 적적삼매의 낙을 누리게 되리라.
이 공부는 “의심이 크면 깨달음도 크다”고 모든 도인들이 한결같이 말씀하셨나니, 관법(觀法: 비파사나)이나 염불선(念佛禪) 등의 다른 수행들은 그 힘이 미약하여 큰 깨달음을 이룰 수 없고, 설사 진리의 눈이 열린다 할지라도 법신(法身)의 진리나 여래선(如來禪)의 진리는 얻을 수 있을지언정 최고의 향상(向上)의 진리는 불가능함이로다. 오로지 일념삼매가 되어 화두 의심이 삼천대천세계, 온 우주에 가득 차서 일천 성인의 이마위의 일구(一句)를 투과(透過)할 때에 향상의 일구의 세계가 활짝 열리게 되고,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이 베풀어 놓은 백천 법문을 한 꼬챙이에 꿰어 대자유의 분(分)을 갖추게 됨이니, 이것을 일러 견성(見性)이라 함이로다.
산승의 스승이 되는 향곡(香谷) 선사께서도 봉암사 결사 당시, 도반인 성철(性徹) 선사께서 던진 화두에 의심이 돈발하여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탑 난간에 기대어 비를 맞는 줄도 모르고 화두일념삼매에 드셨다, 그렇게 삼칠일간 모든 의식분별이 끊어져 온 몸이 등신이 되어 도량을 거닐다가 문득 흔들리는 자신의 손을 보고는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하셨으니, 이를 귀감삼아서 이러한 일념삼매가 현전(現前)하도록 무한한 노력을 쏟고 쏟을지어다.

암두(岩頭) 도인은 전생에 대오견성한 큰 도인이었다. 그래서 입태(入胎)·출태(出胎)에 매하지 않고, 남으로 인해 전생에 깨달은 눈이 항시 밝아 있어서 그대로 생이지지(生而知之)였다.
암두 도인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삼십여 년 전부터 항시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몸을 버리고 갈 때에 큰 소리를 지르고 가리라.”
하시었다.
하루는 암두 도인께서 암자에 앉아 정진 중에 계시는데, 산적이 와서 큰 장검을 빼어들고 암두 도인의 목을 쳤다. 그 순간 암두 도인께서 큰 고함을 쳤는데 그 소리가 삼십 리 밖에까지 울려 퍼졌다. 이미 다 알고 계셨기에 피할 수 있었지만 전생에 살생한 빚을 갚고 가기 위해서 그대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지은 업은 성인(聖人)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같이 위대한 도인 암두(岩頭) 선사께서 불법사태(佛法沙汰)를 당하여 속복(俗服)을 입고 머리를 길러서 뱃사공을 하면서 사셨던 적이 있었다.
양쪽 강둑에 각각 목판(木板)을 하나씩 걸어놓고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와서 그 목판을 치면, 초막에서 노를 잡고 춤을 추며 나와서 강을 건네주곤 하시었다.
어느 날 한 보살이 아이를 업고 와서 목판을 치니, 암두 선사께서
“누구요?”
하고 나와 여느 때처럼 춤추며 와서 배에 보살을 태워 강을 건너는데, 보살이 갑자기 아이의 멱살을 잡아 쳐들고서 물었다.
“노를 잡고 춤추는 것은 묻지 아니하거니와, 이 아이가 어디로 좇아 왔느냐?”
이에 암두 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노를 가지고 뱃전을 세 번 치셨다.
그러자 보살은
“내가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으나 여지껏 지음자(知音者)를 만나지 못해 아이를 구하지 못했는데, 일곱 번째 이 아이마저 역시 똑같구나!”
하면서 들고 있던 아이를 강에 던져버렸다.
그런 후로 암두 선사께서는 뱃사공 일을 걷어치워 버리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보살이 귀한 아이를 강에 던져버린 까닭은 무엇이며 또, 어떻게 답을 했어야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었겠는가?
그러면 암두 선사가 뱃전을 세 번 친 그 답이 잘못된 것인가?
아이를 강물에 던진 보살은 어떠한 용심(用心)을 한 것인가?
이것이 가장 알기 어려운 법문이다. 능히 이러한 관문을 통과해야만 인증(印證)을 받아 비로소 만인에게 불법의 진리를 펼 수 있는 사표(師表)가 될 수 있음이로다.

대중은 암두 선사와 보살을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兩個惡賊相逢  <양개악적상봉>에
 各者有陷虎之機<각자유함호지기>로다.

 사나운 두 도적이 서로 만남에
 각자 범 잡는 함정을 가지고 있음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술년 불교TV 무상사 초청대법회 상당법어(2550.2006)

 

74.오종가풍(五宗家風)


 佛祖位中無影跡<불조위중무영적>이니
 人間那得有閑名<인간나득유한명>가?
 九年面壁已多事<구년면벽이다사>요
 立雪神光亦强求<입설신광역강구>로다.

 불조의 위중(位中)에 영적(影跡)이 없음이니,
 어찌 인간의 한명(閑名)이 있으리오?
 구 년 면벽도 일이 많음이요,
 눈에 선 신광도 또한 억지로 구함이로다.


우리 정진대중이 이러한 법문의 낙처를 알고자 할진대, 각자 화두를 또록또록 챙겨서 일념이 지속되어 천성(千聖)의 정액상(頂額上)의 일구(一句)를 투과해야사 활구(活句)의 눈을 갖추어서 불조(佛祖)의 스승이 됨이로다.
활구(活句)는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뚫어 지나가는데 있는 것이지 의심(疑心)에 있는 것이 아니로다. 혹자는 의심이 있으면 활구요, 의심이 없으면 사구(死句)라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로다.
사구는,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투과하지 못하면 항시 정해정식(情解情識)이 따르는 고로 사구가 됨이로다.
우리 모든 대중은 산철기간에 가슴에 와 닿는 화두를 챙길지니, 산승의 말을 믿고 한 3년만 뼈골에 사무치게 화두를 들어 일념이 지속되게끔 노력할지어다. 그리하면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어 대장부의 활개를 치게 되리라.

오늘 법문은 이것으로 마칠 터이니 누구든지 의심처가 있으면 물어라.

한 수좌가 나와서 예삼배를 올리고 물었다.
“어떤 것이 최초구(最初句)이닛고?”

 하루살이가 코끼리를 삼킴이로다.

“어떤 것이 말후구(末後句)이닛고?”

 木人이 火裏舞<목인 화리무>로다.

 나무사람이 불 속에서 춤을 춤이로다.


또 한 수좌가 나와서 예삼배를 올리고 물었다.
“어떤 것이 임제종(臨濟宗)이닛고?”

 一棒打倒毘盧頂<일봉타도비로정>하고
 一喝抹却千萬則<일할말각천만측>이라.
 二間茅庵伸脚臥<이간모암신각와>하니
 海上淸風萬古新<해상청풍만고신>이로다.

 한 몽둥이 휘둘러 비로정상 거꾸러뜨리고
  벽력같은 일할로써 천만 갈등 문대버림이로다.
  두 칸 띠암자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어떤 것이 위앙종(潙仰宗)이닛고?”

 体用自在臨時用<체용자재임시용>이로다.

 체와 용을 때에 다다라 자재하게 씀이로다.

“어떤 것이 조동종(曹洞宗)이닛고?”

 這箇拄杖幾人會<자개주장기인회>아?
 三世諸佛總不識<삼세제불총불식>이로다.

 이 주장자 이 진리를 몇 사람이나 알꼬?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다 알지 못하누나.
  이 주장자 가운데 오미(五味)가 다 갖추어져 있음이로다.

“어떤 것이 운문종(雲門宗)이닛고?”

 一條拄杖自在用<일조주장자재용>이라.

 한 가지 주장자를 자재하게 씀이로다.

“어떤 것이 법안종(法眼宗)이닛고?”

 大地山河是祖心<대지산하시조심>이요
 鸚吟鳥啼是心印<앵음조제시심인>이로다.
 
 대지산하 이것이 조사의 마음이요,
  앵무새 읊고 새 우는 소리 이것이 심인이로다.

“선사께서는 어느 가풍(家風)을 씀이닛고?”
 
 手中在五味禪이 있어 臨時自在用<수중재오미선 임시자재용>이라.

 수중에 오미선(五味禪)이 있음이니, 때에 다다라 자유자재로 씀이로다.

또 한 수좌가 나와서 선사님께 예삼배를 올리고 물었다.  
“어떤 것이 법신(法身)의 진리이닛고?”

 대천세계가 청정한 땅 아님이 없음이로다.

“어떤 것이 여래선(如來禪)의 진리이닛고?”

 여래선은 법신변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청정도 끊어지고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명자(名字)와 자취가 다 끊어졌다.

또 한 수좌가 나와서 선사님께 예삼배를 올리고 물었다.
“조실스님께서는 상당하시어 항시 부처님 이후에 가섭 존자로부터 은밀하게 전한 밀전(密傳)인 ‘향상(向上)의 일구(一句)’를 말씀하시는데, 그럼 어떤 것이 향상의 일구이닛고?”

 萬里에 起骨堆<만리 기골퇴>로다.

 만 리에 백골이 즐비함이로다.

“영겁토록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았으며 모든 부처님과 조사스님의 진리의 법을 뛰어 넘은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이닛고?”

 吾亦不知<오역부지>로다.

 나 또한 알지 못하느니라.

“어째서 알지 못한다 하심이닛고?”

 이 야호(野狐)가 낙처(落處)를 알지 못하는구나!
 
“동서남북이 없는 곳에 이르니 삼라만상이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경계이닛고?”

 冬至寒食百五日<동지한식백오일>이라.

 동지와 한식 사이가 백오일이니라.

“모든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진리의 법이 바람 없는 허공중에 나뭇가지가 스스로 흔들림을 입었다고 하겠습니다. 허물이 많습니다.”

또 한 수좌가 나와서 선사님께 예삼배를 올리고 물었다.
“스님,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서 한 말씀 해 주십시오.”

 五九盡日에 又逢春<오구진일 우봉춘>이라.

 오구가 다한 날에 또한 봄을 만남이로다.

 이것이 목구멍과 입술을 닫은 것인가, 목구멍과 입술을 연 것인가?
 속도속도(速道速道)하라!

“다음날 조용할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모든 대중은 견성해탈법(見性解脫法)을 성취하기 위해 출가하였음이니, 향상(向上)의 정안(正眼)을 갖추어 부처님의 정법정안(正法正眼)을 천추만대에 바로 전하도록 혼신의 정력을 다하여 정진에 몰두할지어다.


병술년 추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소참법어(2550.2006)

 

75.서옹당 대종사 각령 향전
   西翁堂 大宗師 覺靈 香前


부처님과 조사의 깨달은 신령한 성품은 비롯함이 없이 오므로, 가고 옴도 없으며 나고 멸함도 없음이로다.
서옹 대종사도 이와 같이 걸어옴이로다.
진인(眞人)의 참 살림살이는 무념무위(無念無爲)로써 살림살이를 삼음이니, 서옹 대종사도 이와 같이 일상생활을 수용하였으니 홀로 높고 홀로 귀해서[獨尊獨貴] 외외낙낙(巍巍落落)함이로다.
90평생을 후학지도에 노심경책(勞心警策)하시다가 오온(五蘊)의 포대(布袋)를 홀연히 벗어던지고 좌탈(坐脫)하시니, 만 사람으로 하여금 환희의 법열(法悅)을 느끼게 하심이로다.

이러한 조사(祖師)의 열반(涅槃)의 모습을 보이시고 가신 이가 몇몇이나 되던고?

장하고 장하십니다.
선지식 스님네들이 일찍이 다 가시고 서옹 대종사마저 가시니 조정(祖庭)이 너무나 허전합니다. 부디 대원력을 세우셔서 다시 사바세계에 오시어 부처님의 정법정안(正法正眼)으로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시어 불조(佛祖)의 심인법(心印法)을 선양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복원(伏願)하나이다.

時會大衆 西翁 大宗師 會麽<시회대중 서옹 대종사 회마>아?

 一喝雷聲天地壞<일할뇌성천지괴>하고
 寶刃電光血海滔<보인전광혈해도>로다.
 初冬寒風縮形相<초동한풍축형상>이요
 庭前落葉隨風轉<정전낙엽수풍전>이로다.

여기에 모이신 모든 대중은 서옹 대종사를 아시겠습니까?

 일할 벽력소리에 천지가 무너지고
 보배칼날 번개 빛에 피바다가 넘침이로다.
 초겨울 찬바람에 만 사람의 모습이 움츠러듦이요,
 뜰 앞에 떨어진 낙엽들은 바람을 따라 구름이로다.
 
불기 2547년 12월 19일
전국 선원대표 동화사 조실 진제 분향
全國 禪院代表 桐華寺 祖室 眞際 焚香

 

76.노천월하 대종사 각령 향전
   老天月下 大宗師 覺靈 香前


老天月下 大宗師 覺靈          <노천월하 대종사 각령>이시여!

恁麽也 是 不恁麽也 是         <임마야 시 불임마야 시>여!
處處開花 香拂拂               <처처개화 향불불>이요
恁麽也 不是 不恁麽也 不是     <임마야 불시 불임마야 불시>여!
三世諸佛 火裏氷               <삼세제불 화리빙>이로다.

容萬義而不亂                  <용만의이불난>이요
同一心而混融                  <동일심이혼융>이로다.
神用自在 應化無邊             <신용자재 응화무변>이로다.
恁麽來 恁麽去                 <임마래 임마거>하니
問取露柱燈籠                  <문취노주등롱>하소서!

老天月下 大宗師 覺靈          <노천월하 대종사 각령>이시여!

萬里無雲天有過                <만리무운천유과>요
碧潭似鏡月不來                <벽담사경월불래>로다.
取不得 捨不得                 <취부득 사부득>인데
如何卽是                      <여하즉시>아?
靈鷲山峰 萬年閒               <영취산봉 만년한>이나
岩下流水 太忙生               <암하유수 태망생>이라.

 喝(一喝)!                 <할 (일할)>!


全國 禪院代表 桐華寺 祖室 眞際 焚香

 

노천월하 대종사 각령 향전
老天月下 大宗師 覺靈 香前


老天月下 大宗師 覺靈이시여!

이렇게 하여도 옳고 이렇게 아니 하여도 옳음이여!
처처에 꽃이 피니 향기가 가득함이요,
이렇게 하여도 옳지 못하고 이렇게 하지 아니하여도 옳지 못함이여!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불 속의 얼음이로다.

만물을 수용하여도 어지럽지 않고
일심(一心)과 같이 하여 혼융(混融)함이로다.
신용(神用)은 자재하고 응화(應化)는 무변(無邊)이로다.
이렇게 오시고 이렇게 가시니
이러한 소식, 가시는 길에 노주(露柱)와 등롱(燈籠)에게 물으소서.

老天月下 大宗師 覺靈이시여!

만 리에 구름은 없음이나 하늘에 지나감이 있고
푸른 연못은 맑은 거울과 같으나 달은 오지 않음이로다.
가져도 가질 수 없고 버려도 버릴 수 없으니
이렇게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영취산 봉(峰)은 만년 동안 한가한데
바위 아래 흐르는 물은 유난히도 바쁘게 흐름이로다.

 할 (一喝)!


불기 2547년 12월 10일
전국 선원대표 동화사 조실 진제 분향
全國 禪院代表 桐華寺 祖室 眞際 焚香

 

77.월산 대종사 각령 향전
   月山 大宗師 覺靈 香前


월산 대종사 영결식전에

월산 성림(月山聖林) 대종사(大宗師)의 정액상(頂額上) 일구(一句)의 진리는 옛적에도 빛남이요, 이제도 등등(騰騰)함이라. 좌지우지(左之右之)에 일구를 더하니 한가한 일이 있음이로다.

 閑事在兮<한사재혜>여!

 한가한 일이 있음이여!

 토함산(吐含山) 초목들은 주야로 대광명을 놓고,
 동해(東海) 물 속 둥근 달은 밝게 빛남이로다.

월산(月山) 대종사의 명성(名聲)이 세간에 분분하니,
금일 모든 대중이시여!
월산 대종사의 한명(閑名)을 없앨 자가 있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富嫌千口少<부혐천구소>요
 貧恨一身多<빈한일신다>로다.

 부자(富者)는 입이 천 개라도 적다고 함이요,
 가난한 자는 한 몸도 많다고 한탄함이로다.


불기 2541년 9월 10일
전국 선원대표 동화사 조실 진제 분향
全國 禪院代表 桐華寺 祖室 眞際 焚香

 

78.대매(大梅)의 즉심즉불(卽心卽佛)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靈山會上拈花兮    <영산회상염화혜>여!
 三千刹海優曇開    <삼천찰해우담개>로다.
 趙州雲門全機大用兮<조주운문전기대용혜>여!
 屍山蘶蘶血海濤濤  <시산위위혈해도도>로다.

 영산회상(靈山會上)의 꽃 한 송이를 듦이여!
 삼천대천세계에 우담바라화(花)가 만개(滿開)함이로다.
 조주(趙州)와 운문(雲門)의 전기대용(全機大用)이여!
 송장산[屍山]이 높고 높고, 피바다가 출렁거림이로다.


금일은 팔공산(八公山) 동화사(桐華寺)에서 처음 개설되는 초발 선객(初發禪客)의 기본선원(基本禪院) 교육 법회일이라.
여러분은 한국 불교의 미래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으니 장차 정진(精進)을 잘 해서 한국 불교를 전 지구촌에 선양하는 역군이 되어야 할 것이며, 부처님의 적자(嫡子)가 되기 위해서 바른 신심(信心)을 내어서 바른 선지식(善知識)의 지도를 받아야 함이로다. 그리하여 일천 성인(聖人)의 정액상 일구(頂額上一句)를 투과(透過)할 것 같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어서 천상 인간에 독보(獨步)의 존재가 될 뿐만 아니라, 세세생생 사람의 할 일을 다 해 마치리라.

천성(千聖)의 정액상 일구를 투과하려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야 됨이로다. 요즈음 참선하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출판된 책자를 보고 가지각색으로 참선을 하고 있는데, 혹자는 묵조선(黙照禪)을 하기도 하고, 혹자는 관법(觀法)을 하기도 하고, 혹자는 염불선(念佛禪)을 하기도 하니, 이러한 참선법들은 여러 생(生)을 지나야 대오견성(大悟見性)을 할 수 있음이로다. 그러나 눈 밝은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활구선(活句禪)을 참구(參究)할 것 같으면 일념삼매(一念三昧)가 되고, 그 삼매가 지속이 되면 홀연히 여래지(如來地)에 이르게 됨이로다. 이렇게 여래지에 이른 후에는 더 닦는다거나 습기(習氣)를 제거 할 것이 없나니, 이러한 깨달음이라야 임제선(臨濟禪)의 골수(骨髓)를 바로 얻게 됨이로다.
이렇게 참구하고 참구할지니 견성대오를 해서 순금(純金)을 이룰 것 같으면 만년이 지나도 순금이 변질되지 않나니, 자성(自性)의 바탕을 이와 같이 수용하면 불조(佛祖)와 다름이 없게 됨이로다.

석일(昔日)에 한 납자(衲子)가 마조 선사를 참방(參訪)하여 묻기를,

 如何是佛<여하시불>이닛고?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니, 마조 선사께서 대답하시길,

 卽心卽佛<즉심즉불>이니라.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하셨다. 그 납자는 언하(言下)에 곧 깨달아 대매산(大梅山)에 들어가서 삼십여 년간 머물고 있었는데, 회상(會上)을 열었다는 소식이 없으니 마조 선사가 수좌를 시켜서 대매산 법상(法常)스님한테 전하기를,
“마조 선사께서 전에는 ‘마음이 곧 부처라’ 하셨는데, 요즘엔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법문을 하십니다.”
라고 말하니, 대매 법상(大梅法常)스님이 말하기를,
“그 노장이 망령이 들었구나. 그래도 나는 ‘마음이 곧 부처다’ 하리라.”
하였다.
수좌가 돌아와서 마조 선사께 대매스님의 말을 전하니, 마조 선사께서
“대매산의 매실(梅實)이 익었구나.”
라고 인가(印可)를 하셨다.

중국 천하에 이 소문이 분분하니 하루는 방(龐) 거사가 대매 선사를 찾아가서 대뜸 묻기를,
“매실이 익었느냐?”
하니, 대매 선사께서 되물으셨다.
“어느 곳을 향해 입을 벌리려 하느냐?”
“백 번이나 씹어 부셔버렸다.”
“씨나 돌려다오.”
이렇게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문답을 전개하니, 과연 진리의 안목(眼目)을 갖춤이로다.

시회대중(時會大衆)아!
두 분의 문답처(問答處)에 우열(優劣)이 있느냐, 없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설령 우열이 있다 해도 삼십 방(三十棒)을 맞음이요,
 우열이 없다 해도 삼십 방을 맞음이로다.

말후(末後)의 일구(一句)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馬面夜叉才稽首<마면야차재계수>하고
 牛頭獄卒須擎拳<우두옥졸수경권>이로다.

 말의 얼굴을 가진 야차(夜叉)는 머리를 조아리고
 소의 머리를 가진 옥졸(獄卒)은 주먹을 불끈 쥠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정축년 춘안거 동화사 기본선원 개원식 상당법어(2541.1997)

 

79.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우리가 출가한 본래의 뜻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이로다. 견성성불을 하기 위해서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야 됨이로다.
요즈음 제방에서 ‘활구(活句)’와 ‘사구(死句)’를 잘못 인식하여 그릇되게 지도하는 바가 있음이로다. 화두상에 의심이 있으면 ‘활구’라 하고, 화두상에 의심이 없으면 ‘사구’라고 하니, 이는 후학들을 그릇 지도하여 눈을 멀게 함이라. 눈 밝은 선지식을 의지하여 바르게 깨달아 마치면 도저히 이 같은 잘못된 견해가 나올 수 없음이로다.
선법(禪法)은 있으나 바르게 지도할 스승이 없으니, 참으로 슬프고 슬프도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활구냐?
일천 성인(一千聖人)의 정액상(頂額上)의 일구(一句)를 투과해야사 활구의 세계를 알고 활구의 눈을 갖추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됨이요, 일천 성인의 정액상의 일구를 투과하지 못하면 일일법문(一一法門)에 정해정식(情解情識)의 시비분별(是非分別)이 항시 따라다님이니, 이것을 일러 사구라 함이로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활구하에 알아갈 것 같으면 불조의 스승이 됨이라”했고, “사구하에 알아갈 것 같으면 자기도 구원하지 못한다”했으니, 활구와 사구의 차이가 이와 같음이라. 일천 성인의 정액상의 일구를 투과하지 못한 데에 그릇 지도하게 되는 원인이 있음이니, 응당히 다시 참구하여 투과해야사 옳도다.
그러니 우리 기본선원(基本禪院)의 모든 대중은 이러한 법문을 듣고 천성(千聖)의 정액상의 일구를 투과해서 인천(人天)의 사표(師表)가 될 수 있도록 혼신의 정력을 쏟을지어다.
다겁다생(多劫多生) 동안 중생놀음만 익혀왔기 때문에 이 견성법(見性法), 화두법(話頭法)을 처음 접하는 이는 화두가 천리 만리 멀리 가 있어서 화두 참구하기가 어렵도다. 과거 생에 익혀온 습기(習氣)와 혼침(昏沈), 망상(妄想)이 자리 잡고 있으니 평범한 발심(發心)으로는 이 공부를 지어나가기가 어려운 것이로다. 하늘을 찌를 듯한 대장부 용맹의 기틀을 가진 자만이 다겁다생에 익혀온 습기를 모두 놓아버리고 이 견성법을 쟁취할 수 있음이로다.
그러한 용맹(勇猛)과 대신심(大信心)이 없는 사람은 이 화두 공부를 할 수가 없음이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대용맹과 대신심을 가지고 공부를 지어나갈 것인가?
오직 눈 밝은 지도자인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바르게 참구하는 법을 배워 화두를 간택(揀擇)한 뒤, 일상생활 속에 자나깨나 화두에 혼신의 정력을 쏟아야 되나니, 이렇게 혼신의 노력을 할 것 같으면 자연히 습기는 잠자고 간절한 한 생각이 물 흐르듯이 쭈욱 흘러가게 되는데, 이렇게 화두가 끊이지 않고 흘러가서 깊이 들어가면 일념삼매(一念三昧)가 현전(現前)하여 밤이 되는지 낮이 되는지 모르고, 나중에는 몸뚱이까지 잊은 상태에서 홀연히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화두가 타파됨이로다.
우리도 제불제조(諸佛諸祖)와 똑 같은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추고 있는데 대용맹,대신심을 가진다면 못할 것이 없음이로다. 그래서 옛 도인들이 말씀하시기를,
“의심이 크면 클수록 깨달음도 크다.”
하였으니, 의심이 크다 보면 진의(眞疑)가 발로(發露)가 되어서 온 천지가 의심덩어리가 되며, 그렇게 되어야만 화두가 해결이 되는 것이로다.
요즈음 참선하는 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화두를 챙기고 있는지, 잠을 자는 건지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도다. 화두를 들고 뼈골에 사무치는 의정(疑情)을 지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니 그만큼 생각이 죽었음이로다.
어느 산적이 와서 부모 형제를 한 칼에 다 베어버리고 혼자만이 그 광경을 보는 심정, 그러한 심정에서 화두를 챙길 것 같으면 혼침·망상이 어른거리지 못함이로다. 이렇게 화두를 챙길 것 같으면 3년 이내에 모두 다 화두를 타파할 수 있으리라.
공부 한 철 지어 가는데 있어서 지겹다는 생각이 있으면 출가인으로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로다. 어서 석 달이 지나갔으면..., 어서 또 바랑을 짊어지고 산천 구경을 갔으면..., 이런 등등의 생각들이 있다면 납자(衲子)로서는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로다. 모든 반연(攀緣)을 놓아버리고 오로지 화두가 지속이 되어 일념삼매(一念三昧)가 현전하도록 정진하고 또 정진해 나간다면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홀연히 화두가 타파되리라. 이렇게 화두가 타파되면 앉은 자리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여래지(如來地)에 이르게 되나니, 이것이 최고의 견성법이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깨달으신 후에, “삼칠일 동안 사유(思惟)해도 내가 법을 설하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하셨나니, 부처님의 첫 살림살이로서 참으로 위대한 말씀이로다. 천성 만불(千聖萬佛)도 토(吐)하지 못하는 말씀이로다.
이때에 문수보살이 옆에 있다가,
“부처님이시여, 깨달으신 법은 그러하나 방편(方便)으로써 하근 중생(下根衆生)을 위하여 얕은 법을 설하여 주옵소서.”
하고 간절히 청하니, 할 수 없이 그 수순을 밟기 위해서 사십구 년 동안 설법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열반(涅槃) 당시에 대중을 모아놓고 하시는 말씀이,
“내가 사십구 년 동안 사람의 그릇을 따라, 분(分)을 따라 법을 설하였으나 실로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
라고 하셨다. 이 멋진 일성(一聲)을 바로 들을 줄 알아야만 사십구 년 설법이 어린아이들 울음달래기 위한 방편설(方便說)인 줄을 알 것이로다.

마조(馬祖) 선사께서는 84인의 도인 제자를 두었는데 그 가운데 천성(千聖)의 정액상(頂額上)의 안목(眼目)을 갖춘 도인이 두 서너 분 계신다. 남전(南泉), 백장(百丈), 귀종(歸宗) 선사와 같은 분들인데, 하루는 어느 납자(衲子)가 귀종 도인을 찾아가서,
“어떤 것이 보림(保任)입니까?”
하고 여쭈니,

 一翳在眼 空花亂墮<일예재안 공화난타>로다.
 눈에 한 티가 가리면 허공 꽃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하셨다.

이러한 안목을 갖춰야 비로소 선지식이라고 할 수 있음이로다. 그래야 천하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지 않는다. 보통 정안이 바로 열리지 못한 이들에게 ‘보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토굴(土窟)에 가서 습기(習氣)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지 귀종 선사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알았다’ 하는 많은 눈먼 이들이 헛된 소리를 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일천 성인(聖人)의 정액상의 일구(一句)를 투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로다.
우리나라의 태고 보우(太古普愚) 선사 같은 분은 중국의 석옥(石屋) 선사를 찾아가서 당당히 겨루어 살림을 주고받고 하여 법을 받아오셨다. 그 주고받은 살림살이가 온 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에 달마(達磨) 조사와 같은 위상으로 존경받고 그 아손(兒孫)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대중은 삼 년 혹은 십 년 이내에 견성대오(見性大悟)를 해야 되겠다는 각오로써 정진에 몰두해야 됨이로다. 조석(朝夕)으로 예불할 때마다 ‘화두가 일념으로 지속되어 활연대오(豁然大悟)하여지이다’ 하면서 큰 발원을 세워야 하나니, 역대 제불조사가 발원 없이 깨친 이가 아무도 없음을 알아야 함이로다. 이렇게 간절한 발원을 세워가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심으로 정진해 나간다면 하루하루가 새로워지리라.
이러한 신심과 용기를 갖추지 아니하면 조그마한 태풍이 불어와도 다 쓰러져 버리나니, 견성하기 위해 출가하여 절집에 왔음을 잊지 말고 새로운 각오를 가져야 됨이로다. 이 몸뚱이에 집착하여 먹고 자고 하는 일에 마음을 쓰다보면 공부를 지어 나갈 수가 없도다. 사문(沙門)으로서 절집에서 불평이나 하고 잘 먹고 잘 자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이로다. 그저 앉으나 서나 화두와 씨름해 가지고 견성해야겠다는 생각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됨이로다.

우리 기본선원 대중은 이와 같은 못난 소견부터 버릴지니, 옛날 백장(百丈) 선사께서 수도인의 일상생활 가풍을 내린 법문이 있는데 오늘날 수도인에게 적절한 법문이다.

 一日不作 一日不食<일일부작 일일불식>이라.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을 먹지 아니한다.

이 경구(警句)는 우리 수도인에게 좋은 귀감(龜鑑)이 된다. 이 참선공부는 동정(動靜)에 일여(一如)하게 지어 가는데 있는 것이지 앉아 있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대중은 각자 소임에 성실한 가운데 화두를 또록또록 들어서 일념이 지속되게끔 노력할지어다.
사람마다 심성(心性) 가운데 제불 만조사(諸佛萬祖師)와 더불어 똑같이 불성이 갖추어져 있는데 단지 알지 못하는 고로 쓰지 못하고 있도다. 그러니 자재하게 쓰기 위해서는 일생을 걸고 열심히 이 공부를 지어나가야 됨이로다.
화두와 씨름을 하다 보면 어느새 무르익어져 바보처럼 되어 버리는데, 사람들이 옆에서 볼 때 저 사람은 혼이 나간 사람이다 하게끔 그렇게 일념에 푹 빠져야 한다. 거기서 타파되면 사자후(獅子吼)가 나오는 법이로다. 사자후가 나오면 석가모니 부처님 살림부터 다 알게 되고, 모든 조사의 살림살이를 한 꼬챙이에 꿰어버리나니, 이것이 견성(見性)이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이로다.

그러면 필경에 어떠한 것이 ‘정액상(頂額上)의 일구(一句)냐’고 물으면,

 三世諸佛이 遭塗炭<삼세제불 조도탄>이로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진흙탄〔塗炭〕을 만남이로다.

 할(喝)!

〔일할(一喝) 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정축년 추안거 동화사 기본선원 결제법어(2541.1997)

 

80.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불조(佛祖)의 명맥(命脈)과 열성(列聖)의 겸추(鉗鎚)는 주장자(拄杖子)를 알아 얻음으로써 사자(獅子)의 조아(爪牙)를 갖추어, 어느 때에는 금강왕 보검(金剛王寶劍)으로 일체의 갈등을 끊고, 어느 때에는 대사자후(大獅子吼)로 백수(百獸)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하고, 어느 때에는 일 할(一喝)을 짓지 않고 일할을 씀이로다.
이러한 기봉(機鋒)을 갖추어야 대종사(大宗師)가 되어 호래호현(胡來胡現)하고 한래한현(漢來漢現)하여 자재로운 수안(手眼)으로 물음은 답처(答處)에 있음이요, 답은 물음처〔問處〕에 있음이로다.


이곳에 모인 모든 대중은 참선 지도를 잘 받음으로써 부처님의 적자(嫡子)가 되어 이 나라 불교의 동량(棟梁)이 될 것이로다.
견성법(見性法)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여야 대오(大悟)를 하나니 사구(死句)에선 깨닫지 못함이로다. 사견(邪見)에 떨어지면 시간만 허비하니 견성대오(見性大悟)를 하려면 첫째, 명안 선지식(明眼善知識)을 만나야 함이로다.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허송세월하나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정진할지어다.
이 활구참선법은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이니 대장부로서 한번 할 일이로다. 일초직입여래지 하면 다생의 번뇌와 습기가 당하에 소멸되고 대원경지(大圓鏡智)를 갖추어서 역겁(歷劫)토록 삼매(三昧)를 수용함이로다.

필경에 여하(如何)오?
  
 水流落花去何處<수유낙화거하처>오?
 洞口桃源別是春<동구도원별시춘>이라.

 흐르는 물에 떨어진 꽃은 어느 곳으로 가는고?
 동구(洞口)엔 복사꽃 만발하니 달리 이 봄이더라.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무인년 춘안거 동화사 기본선원 결제법어(2542.1998)

 

81.삼성(三聖)의 일할(一喝)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一條拄杖橫靑天<일조주장횡청천>하니
 敎外別傳一乘傳<교외별전일승전>이라.
 正法妙心眞實相<정법묘심진실상>은
 描也描不成    <묘야묘불성>이요
 畵也畵不也    <화야화불야>로다.

 한 막대기 주장자가 푸른 하늘을 비끼니
 49년 설한 밖에 달리 일승법(一乘法)을 전함이로다.
 바른 진리의 법, 묘한 마음, 참되고 실다운 모습은
 모방할래야 모방할 수가 없고
 그릴래야 그릴 수 없음이로다.


고인(古人)이 이르시기를, “가지가지 망령된 생각을 하지 말고 쉼을 얻을지니라” 하심이로다.
모든 분들은 쉼을 얻었는가, 못 얻었는가?
모든 분들이 매일 스스로 눈을 뜨고 눈을 감음에 짓는 바 하는 바가 망령된 생각이 아님이 없으며, 저 꿈 가운데 이르러도 또한 이 망상을 함이라.
망령된 생각이 한 번 일어나면 만 가지의 끝이 전도(顚倒)가 됨이로다. 번뇌 티끌의 문을 열어서 청정계(淸淨界)를 어둡게 한지라.
만약 능히 망상의 근원을 깨달아 얻을 것 같으면 직하(直下)에 쉬고 쉬어 가서, 위로는 부처를 구함도 없고 아래로는 마구니에게 두려움도 없으며, 가운데는 또한 생의 애착도 없으며 또한 죽음의 두려움도 없는지라, 문득 청정본원(淸淨本源) 천진묘도(天眞妙道)니라.
만약 이 망상의 근원을 알지 못하면 삼계(三界)에 돌고 사생(四生)에 빠져서 여기에서 나와 저곳으로 들어가나니, 쉬고 쉼이 없으리라.

산승이 온 뒤로부터 대중에게 말이 많으니, 금일 아침에 좁은 길에 서로 만나서 널리 모든 사람에게 권하노니, 이 생각 저 생각을 하지 말고 각자 화두를 잘 참구하라.

알겠는가? 종일토록 누구를 위해서 바쁨인고?

 한 송이 연꽃이 끓는 물에서 피어남이로다.
 쉼을 얻는 것이 문득 좋은 쉼이로다.
 인생 백 년, 뜬 환(幻)이며 물 가운데 거품인지라.
 자기의 집 속에 천진불(天眞佛)이 있으니
 쓸데없이 밖을 향해 구함을 잊을지어다.

고준한 견성법(見性法)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서 바른 지도를 받아야 되나니,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일생동안 허송세월을 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한한 세월 속에 고통을 받으리니, 법문을 잘 받아들여 마음에 바른 수행법을 정립할지어다.
법신변사(法身邊事)나 여래선(如來禪)은 지견(知見)이 난 것이지 대오견성(大悟見性)이 아니로다. 산승이 절집에 오니 점수(漸修)사상을 제방의 선사들이 많이 전수하셨는데 이것은 중간의 반도(半途)에 있음이니, 향상(向上)의 경지를 투과해야사 대오견성(大悟見性)이요, 일체 모든 법문을 다 뚫어지나감이로다.

중국 당(唐)나라 때 임제(臨濟) 선사는 도인 가운데 으뜸가는 도인이어니, 임제 선사 회상에 발심한 삼성 혜연(三聖慧然)스님이 있었는데, 수십 년간 임제 선사 아래에서 정진하여 이 일을 마침이로다. 그런 후에 회상(會上)을 열지 않고 제방 회상을 다니면서 정진하였다.
일일(一日)에 위산(潙山) 도인께서 천오백 대중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그 대중 가운데 삼성스님도 동참하였다.
하루는 앙산 혜적(仰山慧寂)스님께서 삼성스님에게 물으시되,
“수좌의 이름이 무엇인고?”
하시니, 삼성스님이 대답했다.
“혜적(慧寂)입니다.”
“혜적은 내 이름일세.”
“예, 제 이름은 혜연(慧然)입니다.”
앙산스님과 삼성스님이 이렇게 멋진 거량을 하셨다.

이처럼 삼성스님이 삼년간 일여(一如)하게 정진을 잘 지어갔는데, 하루는 위산 선사께서 시자(侍者)를 시켜 물어보셨다.
시자가 삼성스님의 문 앞에 이르러 조그마한 막대기를 들어 보이면서,
“스님께서 이 막대기를 들 수 있겠습니까?”
하니, 삼성스님이
“조실스님이 일이 있구나!”
하고 답을 하였다. 시자가 돌아가서 위산 도인께 아뢰니 위산 도인께서,
“다시 가서 종전과 같이 말을 해 보아라.”
하시니, 시자가 삼성스님의 문 앞에 가서 다시 조그마한 막대기를 들어 보이면서,
“이것을 들 수 있겠습니까?”
하니, 삼성스님이
“再犯不容<재범불용>이라.
다시 범한즉 용서치 않음이로다.”
하였다. 시자가 돌아가서 위산 도인께 아뢰니 크게 좋아하셨다.
며칠이 지나서 삼성스님이 위산 도인께 하직 인사를 드리니, 위산 도인께서 법을 부치시기 위해,
“시자야, 주장자(拄杖子)와 불자(拂子)를 가져오너라.”
하시니, 삼성스님이 말했다.
“저의 스승은 있습니다.”
“누구인가?”
“임제(臨濟) 선사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제자를 두었으니, 임제 선사는 복도 많으시구나.”
그런 후에 삼성스님이 바랑을 짊어지고 임제 선사 회상에 돌아와서 지내는데, 임제 선사께서 열반에 드실 즈음에 임제 선사께서 삼성스님에게 물으셨다.
“너에게 장차 불법(佛法)의 대의(大意)를 물어 올 것 같으면 너는 어떻게 제접하려는고?”
이에 삼성스님이
“할(喝)!”
하고 벽력같은 일할(一喝)을 하니,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눈먼 노새한테 불법(佛法)이 절단남을 누가 아리오.”
하시고 제자에게 법을 전하고 열반에 드셨다.

여기에 모인 기본선원(基本禪院) 대중은 삼성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踏破草鞋數十年<답파초혜수십년>에
 與奪自在臨時用<여탈자재임시용>이라.
 臨濟末後問一句<임제말후문일구>하니
 佛祖命根一喝中<불조명근일할중>이로다.

 짚신을 신고 수십 년을 행각(行脚)함에
 주고 빼앗는 것을 자재하게 씀이 때를 다다라 씀이로다.
 임제가 열반시(涅槃時)에 일구를 물으니,
 부처님과 조사의 생명이 삼성의 일할 중에 있음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병술년 추안거 동화사 기본선원 결제법어(2550.2006)

 

전법(傳法)의 원류(源流)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심인법(心印法)이 한 가닥 우리나라에 남아있으니, 한국 선맥의 중흥조(中興祖)이신 경허(鏡虛) 선사로부터 혜월(慧月) 선사, 운봉(雲峰) 선사, 향곡(香谷) 선사 그리고 산승(山僧)에 이르기까지의 전법게(傳法偈)와 전수(傳受)했던 과정을 밝히노라.

혜월 혜명(慧月慧明)스님은 동진으로 출가하여 경허(鏡虛) 선사로부터 화두를 타서 불철주야 공부를 지어가길 3년이란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짚신 한 켤레를 다 삼아놓고서 잘 고르기 위해 신골을 치는데, ‘탁’하는 소리에 화두가 타파되었다.
그 길로 경허 선사를 찾아가니, 경허 선사께서 물음을 던지셨다.
“목전(目前)에 고명(孤明)한 한 물건이 무엇인고?”
이에 혜명스님이 동쪽에서 몇 걸음 걸어서 서쪽에 가서 서니, 경허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어떠한 것이 혜명(慧明)인가?”
“저만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천 성인(聖人)도 알지 못합니다.”
이에 경허 선사께서
“옳고, 옳다!”
하시며 인가(印可)하시고, ‘혜월(慧月)’이란 법호(法號)와 함께 상수제자(上首弟子)로봉(封)하시고 전법게(傳法偈)를 내리셨다.〔壬寅年,西紀 1902年〕

付 慧月慧明 <부 혜월혜명>

 了知一切法  <요지일체법>하면
 自性無所有  <자성무소유>라.
 如是解法性  <여시해법성>하면
 卽見盧舍那  <즉견노사나>라.
 依世諦倒提唱<의세제도제창>하여
 無文印靑山脚<무문인청산각>하며
 一關以相塗糊<일관이상도호>로다.

   水虎 仲春 下澣日
   萬化門人 鏡虛 說

혜월 혜명에게 부치노니,

 일체법(一切法)을 요달해 알 것 같으면
 자성에는 있는 바가 없는 것.
 이같이 법성을 깨쳐 알면
 곧 노사나불을 보리라.
 세상법에 의지해서 그릇 제창하여
 문자와 도장이 없는 도리에 청산을 새겼으며
 고정된 진리의 상에 풀을 발라 버림이로다.

         수호 중춘 하한일
         만화문인 경허 설함

운봉 성수(雲峰性粹)스님은 동진(童眞)으로 출가하여 경율(經律)을 모두 섭렵하였는데 거기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대오견성법(大悟見性法)이 있다는데 나도 도인(道人)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남방의 위대한 선지식이신 혜월 선사를 찾아가서 열심히 참구(參究)하였지만, 10여 년이 지나도 순일(純一)함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오대산 적멸보궁(寂滅寶宮)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리며, ‘화두일념이 현전하고 견성대오하여 종풍을 드날려 광도중생하여지이다’ 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을 드렸다.
백일기도를 회향하고 백양사(白羊寺) 운문암(雲門庵)에서 불철주야 정진한 끝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을 이루어, 어느 날 새벽 선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밝은 달에 온 산하대지(山河大地)가 환하게 밝은 것을 보고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그리하여 오도송을 읊기를,

 出門驀然寒徹骨<출문맥연한철골>하니  
 豁然消却胸滯物<활연소각흉체물>이라. 
 霜風月夜客散後<상풍월야객산후>에
 彩樓獨在空山水<채누독재공산수>로다.  

 문을 열고 나서자 갑작스레 찬 기운이 뼈골에 사무침에
 가슴 속에 막혔던 물건 활연히 사라져 버렸네.
 서릿바람 날리는 밤에 객들은 다 돌아갔는데
 단청 누각은 홀로 섰고 빈 산에는 흐르는 물소리만 요란하더라.

하였다. 그리하여 그 당시 부산 선암사에 계시던 혜월(慧月) 선사를 참예(參詣)하여 여쭈었다.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는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하고 계십니까?”
이에 혜월 선사께서 양구(良久)하시므로, 스님이 냅다 한 대 치면서,
“산 용이 어찌 죽은 물에 잠겨 있습니까?”
하니, 혜월 선사께서 도리어 물으셨다.
“그러면 너는 어찌 하겠느냐?”  이에 성수스님이 문득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니, 혜월 선사께서는
“아니다!”
하시며 부정하셨다. 그러니 스님이 다시 응수하기를,
“스님, 기러기가 창문 앞을 날아간 지 이미 오래입니다.”
라고 하자, 혜월 선사께서 크게 한바탕 웃으시며,
“내 너를 속일 수가 없구나!”
하시고 매우 흡족해 하셨다.
그리하여 을축년에 ‘운봉(雲峰)’이라는 법호와 함께 상수제자로 봉하시고 전법게를 내리셨다.〔乙丑年,西紀 1925年〕

付 雲峰性粹 <부 운봉성수>
  
 一切有爲法<일체유위법>은
 本無眞實相<본무진실상>이니
 於相若無相<어상약무상>이면
 卽名爲見性<즉명위견성>이라.

    世尊應化 二九五一年 四月
      鏡虛門人 慧月 說
 
운봉 성수에게 부치노니,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본래 진실된 모양이 없으니
 저 모양 가운데 모양이 없으면
 곧 이름하여 견성(見性)이라 함이라.

     세존응화 2951년 4월
     경허문인 혜월 설함

이후 제방에서 납자(衲子)를 제접(提接)하시며 선의 종지(宗旨)를 크게 펼치시니, 도법(道法)의 성황함이 당대의 으뜸이셨다.

향곡 혜림(香谷蕙林)스님은 16세 때, 스님이었던 형님을 만나러 어머니와 함께 운봉(雲峰) 선사께서 조실로 계시는 천성산(千聖山) 내원사(內院寺)에 가게 되었다. 그 때 많은 스님들이 모여서 참선(參禪)을 하는 광경을 보고는 모친(母親)만 집으로 되돌아가시게 하고는 운봉 선사로부터 화두를 타서 공양주를 2년간 하면서 공부하였다.
그러다가 하루는 봄에 산골짜기에서 바람이 불어와 열어놓은 문이 왈카닥 닫히는 소리에 마음의 경계가 있어, 운봉 선사를 찾아갔다. 조실방을 들어서는 그 모습이 당당하니, 선사께서 이미 가늠하시고 목침(木枕)을 내밀어 놓고,
“한 마디 일러라!”
하시거늘, 혜림스님이 즉시에 목침을 발로 차버리니, 선사께서
“다시 일러라!”
하셨다. 이에 혜림스님이
“천언만어(千言萬語)가 다 몽중설몽(夢中說夢)이라. 모든 불조(佛祖)가 나를 속였습니다.”
하였다. 이에 운봉 선사께서 크게 기뻐하시었다.
그리하여 신사년 8월에 ‘향곡(香谷)’이란 법호와 함께 상수제자로 봉하시고 전법게를 내리셨다.〔辛巳年,西紀 1941年〕

付 香谷蕙林 丈室<부 향곡혜림 장실>

 西來無文印<서래무문인>은
 無傳亦無受<무전역무수>라
 若離無傳受<약리무전수>하면
 烏兎不同行<오토부동행>이라.

        世尊應化 二九六七年
         慧月門人 雲峰 說 

향곡 혜림 장실에게 부치노니,

 서쪽에서 온 문인(文印)이 없는 진리는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나니,
 만약 전하고 받을 수 없는 것조차 여의면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리느니라.

      세존응화 2967년
        혜월문인 운봉 설함

그리하여 임제정맥(臨濟正脈)의 법등(法燈)을 상속 부촉하여 가시니, 즉 임제(臨濟), 양기(楊岐), 밀암(密庵), 석옥(石屋), 태고(太古), 환성(喚惺), 율봉(栗峰), 경허(鏡虛)의 적전(嫡傳)이다.
향곡 선사께서는 그 후 정해년(丁亥年,1947年)에 문경 봉암사(鳳巖寺)에서 도반들과 정진하던 중,

 殺盡死人하야사 方見活人<살진사인 방견활인>이요
 活盡死人하야사 方見死人<활진사인 방견사인>이라.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여야만 산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여야만 비로소 죽은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고인(古人)의 법문을 들면서 “일러보라!”는 한 도반의 말에 삼칠일 동안 침식을 잊고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들었다가, 홀연히 자신의 양손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활연대오(豁然大悟)하셨다.

 忽見兩手全體活<홀견양수전체활>이라.
 三世佛祖眼中花<삼세불조안중화>로다.
 千經萬論是何物<천경만론시하물>인고?
 從此佛祖總喪身<종차불조총상신>이로다.

 홀연히 두 손을 보니 전체가 드러났네.
 삼세제불도 눈〔眼〕 속의 꽃이로다.
 천경만론(千經萬論)은 이 무슨 물건인가?
 이로 좇아 불조(佛祖)가 모두 몸을 잃어버렸도다.

 鳳巖一笑千古喜<봉암일소천고희>요
 曦陽數曲萬劫閑<희양수곡만겁한>이로다.
 來年更有一輪月<내년갱유일륜월>하야
 金風吹處鶴唳新<금풍취처학려신>이로다.

 봉암사에 한 번 웃음은 천고의 기쁨이요,
 희양산 굽이굽이 만겁에 한가롭도다.
 내년에 다시 한 수레바퀴 밝은 달이 있어서
 금풍(金風: 가을바람)이 부는 곳에 학의 울음 새롭구나.

이후부터 천하 노화상(天下老和尙)의 설두(舌頭)에 속임을 입지 않고 임운등등(任運騰騰), 등등임운(騰騰任運)하여 제방(諸方)에 대사자후(大獅子吼)를 하시었다.

산승〔眞際法遠〕은 불공(佛供) 드리러 절에 자주 다니던 친척을 따라서 동네에서 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던 해관암(海觀庵)이라는 조그마한 사찰에 우연히 갔다가, 석우(石友) 선사를 친견(親見)한 것이 출가의 인연이 되었다.
그리하여 1954년에 석우 선사께서 해인사 조실로 추대되심에 모시고 같이 가서 시봉하다가 그 해 사미계를 받았다.
그런 후로 다시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시니, 동화사로 거처를 옮기어 모시게 되었다. 1957년(세수 24세)에 석우 선사께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화두를 받아 선문(禪門)에 들어서 운수행각(雲水行脚)의 길에 올랐는데, 일거일동 화두와 씨름해서 ‘일념삼매(一念三昧)만 되면 대오견성한다’는 그 확신을 받아들여 밤낮으로 씨름하였다.
한철은 선산 도리사에서 일고여덟 분의 수좌(首座) 스님들과 동안거(冬安居)를 나게 되었는데, 밤 9시가 되어 방선하면 잠시 누웠다가 대중이 모두 잠든 후에 조용히 일어나 두 세 시간 포행정진하며 하루하루를 빈틈없이 정진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곳에서 참선 도중에 반짝 떠오르는 조그마한 지견(知見)을 가지고서 '알았다'는 잘못된 소견을 갖게 되어, 참구하던 것을 다 놓아 버리고는 해제일만 기다렸다.
그러던 중 초대 종정이시던 석우 선사께서 열반(涅槃)에 드셨다는 부고(訃告)가 날아오니, 동화사로 가 다비(茶毘)를 치르고, 경남 월내(月內) 묘관음사(妙觀音寺)에 주석하고 계시던 향곡(香谷) 선사를 찾아갔다.
찾아가니, 향곡 선사께서 대뜸,
“일러도 삼십 방(三十棒)이요,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이니 어떻게 하려느냐?”하셨다. 산승이 말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향곡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다.
“남전(南泉) 선사의 참묘(斬猫)법문 가운데 ‘조주(趙州) 선사께서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가신 것’에 대해서 한 마디 일러 보아라.”
산승은 여기서도 바른 답을 하지 못하였다.
이에 곧장 물러나와 2년 여 세월이 흐른 26세 때,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에서 7,8명 선객스님들과 동안거(冬安居) 정진을 하던 중, 유달리 포근한 날이 있어 남쪽 마루에 앉아 문득 자신을 반조(反照)해 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로 견성을 했느냐? 견성을 했으면 일일법문(一一法問)에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바로 바른 답이 나와야 되거늘 왜 그렇지 못하는가? 내가 나를 속여서야 되겠느냐! 이것은 큰 잘못됨이 있으니 내가 이 소견을 가지고 만족을 한다면 아무 쓸 곳이 없도다. 백지 상태에서 다시 출발해야겠다. 나를 속이고 모든 이를 속이면 죄가 이만저만 아니다.’하고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알았다’하는 것을 모두 놓고, 해제하자마자 문답 과정에서 언하(言下)에 ‘옳다, 그르다’ 칼질하셨던 향곡 선사 회상(會上)을 찾아갔다. 그리하여 향곡 선사께 예를 올리고,
“이 일을 마칠 때까지 스님을 의지해서 공부하려고 왔습니다. 화두를 하나 내려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리니, 향곡 선사께서
“이 어려운 관문(關門)을 네가 어찌 해결할 수 있겠느냐? 못한다!”
하시니, 다시 분명히 선을 그어 말씀드렸다.
“신명(身命)을 다 바쳐서 해보겠습니다. 이 관문을 뚫기 전에는, 다시는 바랑지고 산문(山門)을 나가지 않겠습니다.”
이에 향곡 선사께서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화두를 하나 내려주시니, 일체 산문을 벗어나지 않고 공부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아주 높은 나무 위에서 입으로만 나뭇가지를 물고 손으로 가지를 잡거나 발로 가지를 밟지도 않고 매달려 있을 때, 나무 밑에서 지나가는 이가 달마스님이 서역에서 중국으로 오신 뜻[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을 묻는데 있어서, 대답하지 않으면 묻는 이의 뜻에 어긋나고, 만약 대답한다면 수십길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자기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찌해야 되겠느냐?

그리하여 이 화두를 들고 2년 여 동안 생사를 떼어 놓고 공부하였는데, 드디어 28세 때 가을에, 새벽에 예불 드리러 올라가다가 마당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일어나는 차제에 화두가 해결되니, 동문서답(東問西答)하던 종전의 미(迷)함이 걷혀지고 비로소 진리의 세계에 문답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향곡 선사께 바치기를,

 這箇拄杖幾人會<자개주장기인회>아?
 三世諸佛總不識<삼세제불총불식>이로다.
 一條拄杖化金龍<일조주장화금룡>하야
 應化無邊任自在<응화무변임자재>로다.

 이 주장자 이 진리를 몇 사람이나 알꼬?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알지 못함이로다.
 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룡으로 화해서
 한량없는 조화를 자유자재함이로다.
하니, 향곡 선사께서 앞 구절은 묻지 아니하고 뒷 구절을 들어서 물음을 던지셨다.
“용이 홀연히 금시조(金翅鳥)를 만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당황하여 몸을 움츠리고 세 걸음 물러가겠습니다.〔屈節當胸退身三步〕”이렇게 산승이 답하니, 향곡 선사께서는
“옳고, 옳다!”
하시며 크게 기뻐하셨다. 이로 좇아 모든 법문의 문답을 척척 주고받음이 막힘이 없었는데, 오직 마조(馬祖) 선사의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 공안에만 다시 막혔다.

 마조 선사께서 편찮으셔서 원주(院主)가 아침마다 문안을 드리기를,
 “큰스님, 밤새 존후(尊候)가 어떠하십니까?”
 하고 말씀드리니, 하루는 대뜸,
 “일면불 월면불이니라.”
 하셨다.

그래서 또다시 5년여 동안 전력(全力)을 다 쏟아 참구함으로써 해결되어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一棒打倒毘盧頂<일봉타도비로정>하고
 一喝抹却千萬則<일할말각천만측>이라.
 二間茅庵伸脚臥<이간모암신각와>하니
 海上淸風萬古新<해상청풍만고신>이로다.

 한 몽둥이 휘둘러 비로정상을 거꾸러뜨리고
 벽력같은 일할로써 천만 갈등을 문대버림이로다.
 두 칸 띠암자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그 후 산승이 33세이던 정미년 하안거 해제법회일에 묘관음사 법당에서 향곡 선사께서 법문을 하시기 위해 법상(法床)에 오르셔서 좌정(坐定)하시고 계시는 차제에, 산승이 나아가서 예삼배(禮三拜)를 올리고 여쭈었다.
“불조(佛祖)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선사님께서 일러 주십시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니라.”
“그것은 불조(佛祖)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  “육육(六六)은 삼십육(三十六)이니라.”이에 산승이 아무 말 없이 선사께 예배드리고 물러가니, 향곡 선사께서도 아무 말 없이 법상(法床)에서 내려오셔서 조실방(祖室房)으로 돌아가셨다.
뒷날 선사님을 찾아가서 예를 갖추고 다시 여쭈었다.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眼目)입니까?”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師姑元來女人做〕”
“금일에야 비로소 선사님을 친견하였습니다.”이에 향곡 선사께서 물으셨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는고?”
“관(關)!”
산승이 이렇게 답하자, 향곡 선사께서
“옳고, 옳다!”하시며, 임제정맥(臨濟正脈)의 법등(法燈)을 부촉(付囑)하시고 ‘진제(眞際)’라는 법호와 함께 전법게를 내리셨다.〔丁未年,西紀 1967年〕
〔釋迦如來付囑法 第 79法孫〕

付 眞際法遠 丈室 <부 진제법원 장실>

 佛祖大活句<불조대활구>는
 無傳亦無受<무전역무수>라.
 今付活句時<금부활구시>에
 收放任自在<수방임자재>로다.

 世尊應化 二九九三年 八月 十日
   雲峰門人 香谷 說

진제 법원 장실에 부치노니,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라.
 지금 그대에게 활구법을 부촉하노니
 거두거나 놓거나 그대 뜻에 맡기노라.

         세존응화 2993년 8월 10일    
          운봉문인 향곡 설함


서천조사(西天祖師)

佛祖正脈(釋迦如來 咐囑)
제 1조 마하가섭
제 2조 아난존자
제 3조 상나화수
제 4조 우바국다
제 5조 제 다 가
제 6조 미 차 가
제 7조 바수밀다
제 8조 불타난제
제 9조 복타밀다
제10조 협 존 자
제11조 부나야사
제12조 마명대사
제13조 가비마라
제14조 용수대사
제15조 가나제바
제16조 라후라다
제17조 승가난제
제18조 가야사다
제19조 구마라다
제20조 사 야 다
제21조 바수반두
제22조 마 나 라
제23조 학 륵 나
제24조 사자존자
제25조 바사사다
제26조 불여밀다
제27조 반야다라
제28조 보리달마

중국조사(中國祖師)

제28조 보리 달마(菩提達磨)
(중국초조)
제29조 이조 혜가(二祖慧可)
제30조 삼조 승찬(三祖僧璨)
제31조 사도 도신(四祖道信)
제32조 오조 홍인(五祖弘忍)
제33조 육조 혜능(六祖慧能)
제34조 남악 회양(南嶽懷讓)
제35조 마조 도일(馬祖道一)
제36조 백장 회해(百丈懷海)
제37조 황벽 희운(黃檗希運)
제38조 임제 의현(臨濟義玄)
제39조 흥화 존장(興化存獎)
제40조 남원 도옹(南院道顒)
제41조 풍혈 연소(風穴延沼)
제42조 수산 성념(首山省念)
제43조 분양 선소(紛陽善昭)
제44조 자명 초원(慈明楚圓)
제45조 양기 방회(楊岐方會)
제46조 백운 수단(白雲守端)
제47조 오조 법연(五祖法演)
제48조 원오 극근(圓悟克勤)
제49조 호구 소융(虎丘紹隆)
제50조 응암 담화(應庵曇華)
제51조 밀암 함걸(密庵咸傑)
제52조 파암 조선(破庵祖先)
제53조 무준 원조(無準圓照)
제54조 설암 혜랑(雪巖惠朗)
제55조 급암 종신(及庵宗信)
제56조 석옥 청공(石屋淸珙)

아국조사(我國祖師)

제57조 태고 보우(太古普愚)
제58조 환암 혼수(幻庵混修)
제59조 구곡 각운(龜谷覺雲)
제60조 벽계 정심(碧溪淨心)
제61조 벽송 지엄(碧松智嚴)
제62조 부용 영관(芙蓉靈觀)
제63조 청허 휴정(淸虛休靜)
제64조 편앙 언기(鞭羊彦機)
제65조 풍담 의심(楓潭義諶)
제66조 월담 설제(月潭雪霽)
제67조 환성 지안(喚惺志安)
제68조 호암 체정(虎巖體淨)
제69조 청봉 거안(靑峰巨岸)
제70조 율봉 청고(栗峰靑杲)
제71조 금허 법첨(錦虛法沾)
제72조 용암 혜언(龍岩慧彦)
제73조 영월 봉율(永月奉律)
제74조 만화 보선(萬化普善)
제75조 경허 성우(鏡虛惺牛)
제76조 혜월 혜명(慧月慧明)
제77조 운봉 성수(雲峰性粹)
제78조 향곡 혜림(香谷蕙林)
제79조 진제 법원(眞際法遠)

 

後  記


부처님의 팔만 사천 법문의 근본 종지(宗旨)를 여실히 밝혀 놓으신 법어들. 때로는 알 것 같고 때로는 전혀 알 수 없는 말씀들. 이렇게 부족한 소승(小僧)에게 도인의 고준한 법어들을 맡기심에 그 복은 한량이 없다 하나 여기저기 숨어있을 부족함을 생각하면 한없이 조심스러워집니다.
금차 법어집은 지난 「염화인천(拈花人天)」을 출판한 이후로 선사님께서 내리신 법어들 중 가장 고준한 법문만을 모아서 구성하였습니다. 선사님께서 살아생전 ‘마지막 어록(語錄)’으로 정하시고 내 놓으신 최상승(最上乘)의 법어들로써 하나하나 선사님께서 직접 선별하시고 내용을 정리하셨기에, 간화선(看話禪)을 참구하는 납자들과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을 앙망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법어집이 될 것입니다.
 
선사님께서는 불기2474(1934)년 음력 1월 12일에 경남 남해군 삼동면 금송리 1224번지에서 아버지 임종음(林鐘音), 어머니 조월막(趙月莫)씨의 3남 4녀 중 넷째로 탄생하셨습니다. 모친께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태양을 치마폭으로 받아내는 매우 상서로운 꿈을 꾸시고 선사님을 얻으셨습니다.
태몽으로 보건대, 과거 2500여 년 전 마야부인께서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백상(白象)이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신 것은 진리(眞理)의 교주(敎主)가 출현하심을 예시한 것이요, 대혜(大慧) 선사의 모친께서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검은 얼굴에 코가 높은 스님 한 분을 모시고 침실에 들어오는 꿈을 꾸신 것은 운봉열(雲峰悅) 선사의 후신임을 예시한 것입니다. 진제 선사님의 태몽은 불법문중(佛法門中)의 대도인(大道人)이 출현하심을 예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사님은 청년시절,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선비인 오촌당숙을 따라 석우(石友) 선사께서 주석하고 계시던 해관암(海觀庵)에 불공을 드리러 같이 간 것이 인연이 되어, 부모님의 허락을 얻은 후 출가하시게 되었습니다. 행자시절에 석우 선사께서 해인사(海印寺) 조실로 추대되심에 해인사로 가서 1년 여 동안 모시면서 석우 선사를 은사로 사미계(沙彌戒, 21歲)를 받았는데, 다시 조계종 초대 종정(曹溪宗初代宗正)으로 추대되시어 동화사(桐華寺)로 거처를 옮기시게 되자, 시자(侍者)로 공양주를 하면서 다시 모셨습니다. 이때(24세) 은사스님으로부터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화두를 받아 여름 해제(解制) 후 허락을 얻어 걸망을 짊어지고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시게 되었습니다.
이후 선산 도리사(善山 桃李寺)에서 한 철을 지내는 중 공부에 지견(知見)이 생겨 남방(南方)의 향곡(香谷) 선사를 참방한 것이 인연이 되어, 훗날 다시 향곡 선사 회상에서 수학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수년간의 신고(辛苦) 끝에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 화두를 타파하시고 확철대오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향곡·성철(性徹) 선사께서 1947년 봉암사 결사를 통하여 다시금 제창하신 불조(佛祖)의 향상(向上)의 정안(正眼)을 갖추셨으니, 한 가닥 실낱같이 내려오던 불조의 정맥(正脈)을 이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법시대라 불리는 이 시대에 불조의 살림살이를 다시금 온전히 드러내 보이고 계시니, 참으로 희유하고 다행스러우며,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복 받은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사님께서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제방의 선지식을 점검하기 위한 행각(行脚)을 하셨으니 한국 선종사의 대장부이시며, 33세의 젊은 나이에 법을 인가(印可)받아 불조의 정전(正傳)을 이으신 것 또한 어찌 한 생(生)의 일이라 할 수 있으리까. 육조대사(六祖大師)께서 과거 80생을 선지식으로 사셨다 하듯이 진제 선사님 또한 그러하실 것입니다. 향곡 선사께서 법을 전하시면서 ‘진제(眞際)’라 법호를 내리셨는데, 훗날 조주(趙州) 선사의 호가 ‘진제’임을 아셨다 하고, 진제 선사께서도 유달리 남전(南泉) 선사와 조주 선사 두 분의 고준한 법문을 많이 제창하시니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선사님께서 법을 전해 받으신 이후 1971년에 부산 해운대 장수산(萇樹山) 자락에 창건하신 ‘해운정사(海雲精寺)’는 상왕(象王)이 감싸 안고 있는 적멸보궁(寂滅寶宮)과도 같아,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바라보며 선불장(選佛場)으로서의 면모를 완연히 갖추고 상·하 선원에서 언제나 200여 명의 발심대중이 운집하여 용맹정진하고 있으니, 수천  수만 년 주인을 기다린 터였으며 전 인류에게 대사자후(大獅子吼)를 포효할 터인 것입니다. 또한 1994년에 선사님께서 동화사(桐華寺) 조실(祖室)로 추대되어 자리하신 이후, 그 이전에는 1~2년을 넘기지 못했던 조실자리를 벌써 13년째 맡으시며 동화사를 안정되게 하셨으니, 이 또한 대선지식의 덕화(德化)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수행도량에서 상당(上堂)하셔서는 항시 역대 제불제조(諸佛諸祖)의 최고의 법문만을 들어 일일이 점검하여 보이시니, 과연 불조의 적자(嫡子)이시며, 언제나 문을 활짝 열고 수많은 수행 납자들을 제접하심은 참으로 당당한 요사장부(了事丈夫)의 살림살이를 여실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과거 향곡 선사께서 진제스님의 오도송을 보시고 난 후, “네 대에 선풍이 크게 흥하리라.”하고 예언을 하셨는데, 진제 선사님의 회상에 항시 300여 명의 발심 납자들이 운집하여 정진하는 것과, 이번 불교TV를 통하여 선법을 널리 선양하시고 계시는 것은 그 예언이 인연을 만나 꽃망울을 틔우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선사님께서는 근 시대에 향곡·성철 대선사들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이후 서옹(西翁) 선사마저도 열반에 드심에,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조정(祖庭)을 항상 걱정하시며 후학들을 위해 온전한 깨침, 즉 대오견성(大悟見性)의 바른 기준을 제방에 제시하시니, 바로 부처님의 ‘여자출정화(女子出定話)’와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법문이었습니다. 이 법문들은 하도 고준하고 알기가 어려워 역대 고승들도 여기에 평(評)을 한 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향상(向上)의 일구(一句)’를 투과하고서도 기틀에 당해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답을 내 놓는 그러한 ‘당기일구(當機一句)’가 해결되어야만 이 법문들을 바로 볼 수 있고, 이 법문들을 바로 볼 때에라야 ‘견성(見性)’이라 할 수 있으며, 제불제조께서 중중무진으로 베풀어 놓으신 일일차별법문(一一差別法門)에 조금의 걸림도 없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수행 납자들을 위해 꺼지지 않는 법등(法燈)을 밝혀 주시니 확연명백한 깨달음의 기준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불조의 정안(正眼)을 바로 잇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학들에게 공부의 큰 지침서가 될 수 있도록 이 같은 최상승의 법어들을 남겨주셨으니, 부처님의 삼처전심(三處傳心),「육조단경(六祖壇經)」,「벽암록(碧巖錄)」과 함께 진제 대선사님의 「고담녹월(古潭漉月)」은 언제나 후학들을 향상의 정안으로 인도할 가르침이 될 것이며, 또한 공부에 의문이 있고 막힘이 있으나 선지식께 인연이 닿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 가장 귀중한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한때 소승이 선사님을 모시다가 여쭙기를,
“중·하근기 중생들이 깨침을 얻기 위해서는 망상과 습기가 제거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까?”
하니, 선사님께서는 가느다랗게 혼잣말을 하시고,
“이 공부는 선지식(善知識)이 가장 중요하다. 육조 혜능(慧能) 선사는 80생을 선지식으로 살았다.”
하시며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진제 대선사님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겁생에 만나기 어려운 귀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처가 중생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부처를 멀리한다.” 하였으니, 또다시 만나기 어려운 이 소중한 인연을 부디 저버리지 마시고 다 같이 이번 생에 ‘참 나’를 찾아 대안락(大安樂)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제불제보살님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드리옵나니,
진제 대선사님의 법광명(法光明)이 널리 퍼져서 법을 구하는 자에게는 일념삼매(一念三昧)가 현전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케 하며, 만인으로 하여금 대안락의 해탈도(解脫道)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하여지이다.


丙戌年 冬安居 結制에 들어가면서
桐華寺 拈花室 侍者 金 城  禮三拜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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