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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임진년 하안거 결제법어
법문장소 동화사 (법문일자 : 2012.06.04 / 조회 : 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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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하안거 결제법어(녹취원본)
- 2012.06.04. 동화사 -

 


〔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

사람 사람의 면전(面前)에, 얼굴 앞에 그 말이여. 참나가 있음이나, 모든 대중은 참나를 보십니까?

 출입하는데 또한 보기가 어려움이요,
 차제 없는 참사람은 지척간에 있음이로다.
 길을 가는데 있어서는 나뭇잎사귀와 같이 가벼움이나
 그 이름은 높고 높아 무겁기가 천년 만년토록 산과 같음이로다.

참나 법문 : 밝은 정안(正眼)을 갖춘 이는 일용(日用)에 촌보도 참나를 여의지 아니하고 항시 수용함이나, 참나를 모르면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 항시 면문(面門)에 출입해도 보기가 어려움이로다.

금일은 임진년 하안거 결제일이라, 우리가 모든 반연과 습기에, 삼생의 습기에 놀아나지 않고, 오로지 각자 화두를 아주 뼈골에 사무치는 의정을 딱 지어갈 것 같으면 일념이 지속되기 마련입니다.
이 간화선 화두는 일념이 지속이 안 되면 깨달을 분(分)이 없습니다. 그러한 고로 모든 분들은 이 석 달 기간에 일거수 일투족 가운데 화두를 들되, 팔만사천 모공에 의심이 찔러야 됩니다.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화두를 딱 들고 하루 종일 천번 만번 의심을 미는 데 깨닫는 열쇠가 있습니다.
의심이 없는 이는 깨닫지를 못합니다. 이 간화선의 특징은, 천의심 만의심을 밀다 보면, 진의(眞疑)가 시동이 걸립니다. 참의심이 시동이 걸리면 종일 흐르는 시냇물과 같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흘러갑니다. 이 인자 깨닫는 열쇠가 여기 있는데, 신심이 없고 발심 못한 이는 온갖 습기에 시간을 다 낭비합니다. 그러니 이 법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생에 그나마 선근이 있어가지고 이 좋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진리를 만나서 바른 법문을 듣고 바른 수행을 한다는 이 인연, 정말 장하고 장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대중은 하안거 석 달 기간에 모든 반연을 다 끊고, 습기에 놀아나지 말고 오로지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화두의심에 몰두하면 자연히 모든 업식은 다 쉬어버립니다. 업식은 쉬어지고 아주 간절한 의심만 도도히 흘러갑니다.
이렇게만 화두공부를 지어가면 석 달 안에 다 도인이 됩니다. 그러면 안되는 원인이 어디 있느냐? 도를 깨닫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 있느냐? 철두철미한 의심에 몰두 안 한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대중은 이 석 달 기간에 화두와 씨름을 해서 모든 보고 듣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화두에 몰두할 것 같으면, 진의가 시동이 걸리면, 잠깐 앉아 있는데 며칠이 지나갑니다. 모든 보고 듣는 것을 다 잊어버립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갈 것 같으면 천사람 만사람이 대장부의 활개를 쳐서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으로 더불어 진리의 적멸 가운데 편안한 낙을 같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01년에 국제무차선법회를 해운정사에서 개최해야 되겠다는 원을 세우고 중국, 일본 안목자를 초청하기 위해서 나섰습니다.
음력 2월에 2002년도 국제무차선대법회 개최를 앞두고 중국의 선종 본산 9군데를 참방하였습니다.
참방하는데 있어서 20여 명의 비구, 비구니 스님이 동참을 해가지고 같이 갔는데, 제일 먼저 중국 남단에, 달마대사께서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처음 주석하셨던 광덕사(廣德寺)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그 광덕사를 방문하니, 달마대사께서 공양하고 발우를 씻으셨다는 수각으로 안내를 하였습니다.
참배를 한 후에 수백 리를 떨어진 이조사(二祖寺)를, 이조는 달마스님 법을 이은 이조 혜가 대사지요. 이조사를 방문하니 주인은 없고 절만 있기에 참배만 하고 나왔습니다. 그만치 거기는 사세(寺勢)가 없어가지고 모든 신도들도 없고 주지스님도 비어가 있더라 그 말이여.
그리고 삼조사(三祖寺)로 갔습니다. 삼조사. 삼조 승찬(僧璨) 대사가 주석한 삼조사를 가니, 연락은 미리 해놨지요. “한국에서 20여 명의 대중 스님네들이 같이 가서 참배를 하고자 하오니, 그렇게 알아주십시오.” 전화로 연락하고, 도착하니 수백 리가 돼가지고, 아주 시간이 날이 저물고 해서 10시에 도착했습니다. 10시에 도착하니, 그 30여 명의 스님네들이 일주문 앞에 쭉 좌우로 나열하셔가지고 기다리고 있고, 그 방장스님도 건강도 안 좋으신데, 의자에 딱 앉아 늦게까지 맞으려고 서 있어요. 그래서 중국 스님네의 거룩한 신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들어가서 차 한 잔 대접을 받으면서 20여 명의 스님네들과 방장스님과 같이 차를 마시는 도중에 산승이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삼조(三祖) 스님의 법문에,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음이나, 오직 가리는 데 허물이 있은지라. 다만 미워하고 사랑함이 없으면, 통연히, 확연히 명백하리라. 진리의 도 자체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 말이여.”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음이나, 오직 가리고 가리는 데 허물이 있다, 잘못이 있다 했는데, 허물{‘간택’을 잘못 말씀하심}이 없을 때는 그러면 어떠하십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 그 조실스님께서,
“내가 이 사조{‘삼조’를 잘못 말씀하심} 스님의 법어집을 번역을 해서 아주 널리 알리는 데 착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시더마는.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음이나, 간택하는 데 오직 허물이 있다‘ 했거든. “간택하지 아니할 때는 어떠합니까?” 하는데 있어서 한마디 척 나왔으면 내가 국제무차선 대표로 모실 수가 있었는데, “번역을 해가지고 널리 포교에 열중하겠다” 하시거든. 그래서 만약 산승이 삼조 선사가 돼가지고 그렇게 물음을 받을 때, “간택하는데 허물이 있다 하니, 간택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하면,
 
 간택이 대천세계에 가득했다.

그렇게 답을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룻밤 자고는 사조사를 가서 방장스님을 찾아뵙고 또 묻기를,
“달마 대사가 중국에 오셔가지고 소림굴에서 9년 면벽(面壁)을 하셨는데, 9년 면벽하신 뜻을 어떻게 보십니까?” 사조사 방장스님에게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던지니 이 분이 거기 대해서 명백한 답을 못하세요. 묵묵히 가만히 계신다 그 말이여. 그래서 산승에게 만약 “9년 면벽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을 것 같으면,

 寂滅光中〈적멸광중〉에 自受用三昧〈자수용삼매〉라.
 적멸광 중에 자수용삼매를 수용한다.

이렇게 답을 한다 그 말이여. 그러고 일어나서 오조사(五祖寺)를 방문하여, 오조 선사가 주석하는 오조사를 방문하여 오조사 방장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옛날 오조(五祖) 홍인(弘忍) 대사는 때로는 점수법(漸修法)을, 점점히 닦아서 깨닫는 그 법을 설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생의 법을, 최고의 진리의 무생법을 설하였는데, 지금은 선사님께서는 어떠한 법을 설하십니까?” 하니 돈오무생법(頓悟無生法)을 설하셨는데, 지금은 어떠한 법문을 설하십니까?” 하니, 여기도 묵묵부답이다.
이 참 선구(禪句)를 문답하는데 있어서 석화전광, 돌불보다도 빠르고 번갯불보다도 빠르게 척척 나온다는 것은 이거는 천고에 귀한 것입니다.

산승에게 “선사님은 점수법을 설하십니까, 돈오무생의 최고의 진리를 설하십니까?” 이렇게 물을 것 같으면,

 冬至寒食〈동지한식〉이 百五日〈백오일〉이로다.
 동지와 한식, 절후입니다. 동지일이 있고 이월 한실 절후입니다. 동지 한식이 백오일이로다.

하겠다 그 말이여.
육조(六祖) 혜능(慧能) 선사가 주석한 보림사(寶林寺)를 방문해가지고 물음을 던지시기를,
“육조 선사께서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이라, ‘본래 한 물건도 없음이라’ 법문을 자주 하셨는데,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고 보림사 방장에게 물었어요. “원래 한 물건도 없다는 법을 자주 설했는데, 원래 한 물건도 없다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니 또 묵묵부답이다. 척 나와야 되는데.
산승에게 만약 그렇게 물을 것 같으면,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고 물을 것 같으면,

 好與三十棒〈호여삼십봉〉이라.
 이 주장자로 삼십봉을 맞아야 된다.

그러고 나서 일곱 번째는 운문(雲門) 선사가 주석한 운문사(雲門寺)를 방문해서 방장스님을 친견했습니다. 친견하고는,
“방장스님에게 한 가지 묻고자 합니다. 옛날 취암(翠巖) 선사라고 유명한 도인이 있었습니다. 결제를 하고 해제일에 법상에 오르셔가지고 법문을 하시기를, ‘석 달 동안 모든 대중을 위해서 가지가지의 법문을 했는데, 모든 대중은 노승의 눈썹을 보았느냐?’ 하시거든요. 운문 선사가 답을 하시기를 빗장 관자 ‘관(關)’ 하셨습니다. 빗장 관자 ‘관(關)’ 했는데 운문 선사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그 방장스님이 하시는 말이,
“불조(佛祖)의 깊은 살림살이를 우리가 어찌 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는 기여.
산승에게 운문의 ‘관(關)’자를 물을 것 같으면,

 캄캄한 석굴 속에 머물러 있으니, 세월을 가는 줄 모르고 지냄이로다.

인자 여 이런 법문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러고 여덟 번째 임제원, 임제 그 위대한 임제 가풍을 선양한 임제 스님이 주석한 임제원(臨濟院)을 방문을 하니, 마침 저녁예불 시간이라, 그래서 들어가가지고 쭉 대중에 인사를 하고 나와서 그 방장스님을 보고 하는 말이,
“임제원을 도달해서 도량을 둘러보니, 옛 탑만 우뚝했지, 임제 선사의 탑이, 아주 높은 탑이 웅장하게 하나 조성을 해 있더마는요. 임제 선사의 주석한 도량에 옛 탑만 우뚝했고, 사방을 돌아봐도 임제의 가풍은 보이지를 않구나.”
해도 그 방장스님이 일언반구 대꾸가 없어요.
그리 하면, ‘사방을 돌아봐도 임제의 가풍은 보이지 않구나’ 하면 한 마디 척 해야되는데, 나오지를 못해요. 그래서 산승 같으면 벽력같은 할을 하겠다.
 
 억[喝]!

이렇게 할을 했으면 다시 어떻게 나오는가 또 볼건대, 말이 없었다 그 말이여.
아홉 번째 조주원(趙州院), 조주 선사가 주석한 조주원에 가니, 임제원도 촌 마을 가운데 있고, 조주원 그 조주 선사가 주석한 절도 마을에 있더마는요. 가운데. 마침 가니 날이 저물어가지고 가서 숙소를 정해줘서 뒷날 아침에 밥을 먹고 응접실에 초대를 해서 가니, 차를 한 잔씩 쭉 대중에게 돌리시더마는요. 차를 먹으면서 돌아보니, 방을 돌아보니 벽에다가 ‘끽다거(喫茶去)’라 차를 먹어라는 이러한 조주 도인의 법문 한 마디를 글씨로 써서 걸어놨어요.
“저 글씨는 조주 선사의 법문입니다.” 방장스님을 보고 하는 말이.
“조주 선사는 누구든지 방장실에 들어오면,
‘그대가 여기에 이르렀느냐?’
그렇게 법문을 한마디 던지면,
‘이르렀습니다.’ 하면
‘차 한 잔 먹게.’ 하셨거든.
또 한 수좌가 들어와서 인사를 하니,
‘그대가 여기에 이르렀는가?’ 하니,
‘이르지 못했습니다.’ 해도
‘차 한 잔 먹게.’ 하거든.
그러니 원주(院主)가 그 광경을 보고,
‘조실스님! 어째서 이르렀다 해도 차 한 잔 먹으라 하고, 이르지 못했다 해도 차 한 잔 먹으라 합니까?’
하니, ‘그대도 차 한 잔 먹게.’
이러한 법문을 남기셨는데, 그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방장스님에게 물었어요.
그러니 차를 한 잔 내밀어. 내 앞으로.
그래서 산승이
“그 차는 내가 받아먹지만, 내 차도 한 잔 화상(和尙)께서 먹어야 옳다.”
그랬어요.
그래서 여덟 군데를, 아홉 군데를 다녔지만, 그 차 한 잔 내미는 그게, 여덟 군데 방장에게 다 한 마디를 던졌지마는, 조주원 방장이 흉을 좀 내길래, 그 선사를 모셨습니다. 국제무차선 2002년 10월 20일에 모셔가지고 차비도 주고 그날 오시라 하고.
일본에는 일본 임제종이 자고로 명맥을 내려온다 해서 서옹 선사에게 서신을 받아가지고, 밑에 사람 수좌를 둘이 보내가지고 참여하게끔. 그래가지고 삼국의 선사들이 모여가지고, 서옹 선사, 산승, 중국의 정혜 선사, 일본의 선사하고 네 분이 무차선법회를 열어가지고 많은 대중에게 선의 진미를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부처님의 심인법이 오늘날 한 가닥 한국에 있지, 일본에도 있지 않고, 동남아에도 있지 않고, 중국에도 있지 않습니다. 왜 중국의 전성시대의 선풍이 온 천하를 덮는 그러한 시기였는데, 어째서 그 거국에, 큰 나라에, 이러한 선의 안목자가 다 말랐느냐?
공산화 50년에 이 바른 수행 정진도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또 일본은 형식적인 그러한 참선에 몰두해 내려온 때문에 그 진미의 바른 안목이 유지하지를 못했다 그 말이여.
일본에 임제종의 대표 선사 이름은 종현 선사라 합니다. 그래서 중국, 일본, 한국 선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가지고 세계 무차선의 진미를 과시를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바른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는 바른 정안의 바른 눈을 가진 이를 만나지 못하면 일생 그만 헛수고입니다.
대도를 알고 싶어도 바른 지도자를 못 만나면 그거는 바른 수행을 할 수도 없고, 바른 안목이 열릴 수도 없고, 설사 안목이 열렸다 해도 소승의 안목이 열렸는가, 대승의 안목이 열렸는가, 최상승의 안목이 열렸는가 이거 점검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한국은 한가닥 부처님의 심인법이 면면히 내려오는 그 가풍이 오늘날 살아있습니다.
그러니 금일 모든 대중은 이러한 좋은 인연을 만난 김에 아주 생사를 떼놓고 화두와 씨름을 해서 일념삼매만 지속이 되면 피장부 아장부가 됩니다.
그래서 무한히 정진에 몰두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옛날 위산(潙山) 도인은 천오백 대중을 거느린, 위대한 지혜와 복을 갖춘 대도인입니다. 그래서 발심한 스님이, 영운 스님이 30년간을 위산 도인 회상을 여의지 않고 오로지 이 견성을 해야 되겠다는 그 일념에 아주 불탔습니다.
이 대도라는 것이 한 철, 두 철에 되는 게 아니여. 적어도 10년의 생애를 걸어야 됩니다. 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 영운 선사는 30년을 그 도량을 여의지 아니하고 대도를 증득해야 되겠다. 스승님 밑에 깨달아서 법을 이어야 되겠다는 그 철두철미한 그 자세에서 30년간 정진하다가, 봄에 매화{‘도화’를 잘못 발음}꽃이 만발해가 있는 것을 보고 대오견성을 했습니다. 매화꽃은 년년이 피는데, 왜 30년 만에 처음 본 게 아니거든. 29년간은 일념삼매에 화두가 들지 못하고 본 때문에 그 진미가, 화두 당처가 깨달음을 열리지 못했어요. 30년만에 일념삼매가 됨으로 인해서 홀연히 만발해 있는 매화나무 꽃을 보고 대오견성(大悟見性)을 해가지고 오도송(悟道頌)을 읊기를,

 三十年來尋劍客〈삼십년래심검객〉이여
 삼십 년 동안 그 위대한 위산 도인의 회상을 여의지 아니하고 아주 진리의 보검을 찾는 객이여
 幾廻葉落幾抽枝〈기회엽낙기추지〉냐
 얼마나 가지가 빼어나고 얼마나 나뭇가지 잎이 떨어졌는고? 30년 만에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성장하고, 가을에는 낙엽이 되는 거 아닙니까? 몇 번이나 잎이 떨어지고 몇 번이나 봄에 가지가 빼어났는고?
 玆從一見桃花后〈자종일견도화후〉로
 한 번 도화꽃을 봄으로 인해서
 卽至如今更不疑〈즉지여금갱불의〉로다.
 다시 모든 부처님과 도인의 심오한 법문에 의심이 없다. 한꼬챙이에 다 꿰어버렸다 그 말입니다. 모든 법문을 다 알았다 그 말이여.

이래 해가지고 깨달은 경지를 게송을 천오백 대중을 거느리는 위산 방장에게 갖다 올리니, 그 게송을 보고는 춤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습니다. 위산 도인이.
“자연인연(自然因緣)을 좇아 깨달은 자는 천년 만년토록 매(昧)하지 아니한다.”
그 뚜렷이 밝은 깨달은 그 살림살이는 천년 만년토록 지속이 된다 그리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사(玄沙) 선사는 그 오도송을 보고는 달리 평(評)을 했어요.
 
 諦當 諦當 甚諦當〈제당 제당 심제당〉이나
 심히 합당하고 심히 합당함이나, 깨달은 것이. 도화꽃을 보고 대오견성한 그것이, 살림살이가 심히 합당하고 심히 합당함이나

 老兄이 堪保未徹在〈노형 감보미철재〉라.
 나이 많은 형이 깨닫지 못한 것을 보존하고 있다.

한 분은 천오백 인의 선지식이요, 한 분은 유명한 현사 선사인데, 두 분의 평이 각각이다 그 말이여.
그러면 현사의 평하는 뜻이 어디에 있느냐 그 말이여. 이것을 인자 바로 보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내가 백련암을 방문해서 성철 선사에게 가니 이 대문을 묻는 거야. 그러니 성철 선사 같은 이는 이 대문을 바로 보는 위대한 선지식이구마는.

그러면 시회대중은 현사의 그 살림살이를 아시겠습니까 그 말이여.
그 영운 선사의 깨달은 그 깨달은 살림살이를 점검을 했거든.
‘심히 합당하고 심히 합당함이나, 나이 많은 형이 깨닫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랬거든.
그 점검한 살림살이를 알겠느냐 그 말이여.

 노호가 앎을 허락하지 않고
 노호가 앎을 허락함이로다.

산승이 점검한 대문입니다.

그리고 작금의 이 종단에 불미스러운 어지러운 일이 있어서 세상에 많은 국민에게 허탈감을 줬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산승이 한 마디 하고자 합니다.
산승이 오늘 작금의 종단사태에 대한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하니, 모든 사부대중께서는 유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작금의 종단사태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태수습은 사부대중이 다같이 지혜를 모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읍시다.
모든 대중들은 화합하고 수행정진하여 불조의 은혜를 갚아야 하겠습니다.

〔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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