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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대선사 계사년 동안거 해제 법문
법문장소 동화사 통일대불전 (법문일자 : 2014.02.14 / 조회 : 4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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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동안거 해제 법문


〔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

 

진리의 대도는 돈점(頓漸)이 없음이요,
오직 사람들의 근기에 점수(漸修)와 돈오(頓悟)가 있음이로다.  

 

마음, 마음, 마음이여! 

가히 찾기가 어려움이로다. 

찾으려 한 즉은 그대가 가히 보지 못함이로다.
무심(無心)히 앉아 있으니 

마음도 무심히 앉아 있음이로다. 

 

〔 주장자를 바로 들어 보이시면서, 〕 



대중은 보고, 볼지어다. 

 

금일은 동안거 해제일입니다. 모든 대중은 과연 지난 석 달 동안 부끄러움 없는 수행을 했는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우리가 세간을 떠나 머리를 깍고 부처님 법에 귀의한 것은 마음을 깨달아 만인을 부처님의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함인데, 이렇게 자기사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이 부족하고 원인이 무엇인지 잘 살펴서 더 이상 중생의 습기에 놀아남이 없어야 합니다.
이 공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의심으로 화두일념삼매(話頭一念三昧)에 들어 죽었다 살아나야 성취되는 것이라, 보는 것 듣는 것을 다 잊고 깊은 삼매에 들어 화두가 흐르는 물처럼 끊어짐 없이 흘러가야 되는 법인데, 그러지 못하고 문득 알았다하는 것은 정해정식(情解情識)에 떨어진 것이요, 사도(邪道)에 떨어진 것이니 알았다는 생각은 다 내려놓고 선지식의 바른 지도하에 실답게 정진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바른 자세부터 갖추어야 되는 것이니, 대오견성(大悟見性)하여 선지식께 인가를 받는 날이 바로 해제다는 굳은 다짐을 하고 바깥을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해제했다고 이 산중 저 산중 기웃거리고 이 스님 저 신도 만나고 다닌다면 이는 허송세월은커녕 중생의 습기만 더 키우는 일이요 죽음에 다다라서는 후회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대오견성으로 해제를 삼고 이 공부를 마치기 전에는 바랑을 짊어지고 산문 밖을 나서지 않으리라는 굳은 각오를 다져 정진에 정진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산승이 2011년도에 세계 개신교의 역사적 성지인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간화선대법회를 개최하였는데, 남북의 평화통일과 세계평화가 원만하고 화목한 가운데 성취되기 위해서는 지구촌 모든 인류가 마음을 수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음을 설파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부처님의 진리의 수행법이요, 동양정신문화의 골수인 간화선법을 이제 모든 사부대중이 널리 선양하여 온 지구촌이 종교를 초월하여 참나를 찾는 참선수행으로써 도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극락정토가 지금 이곳에 실현되는 것이니 이보다 더 큰 작복(作福)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인이 간화선법을 닦고 널리 선양하는 일로써 무량한 복을 짓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 날의 법문을 다시금 되새기고자 합니다.

 

『 이제 세계는 종교와 사상을 넘어서 서로가 마음을 통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인간 내면세계의 정화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협력하는 우애로운 형제가 되고,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금일 산승이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하는 동양정신문화의 골수인 간화선은 모든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참나를 깨달아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는 훌륭한 수행법입니다.
인인개개(人人箇箇)가 스스로 참나를 깨달아 마음의 고향에 이르면, 어머니의 품과 같이 온갖 시비갈등과 시기와 질투가 끊어 없어져서 대안락과 대자유, 그리고 무량한 대지혜를 수용하게 됩니다.
참나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산승의 법문을 듣고 있는 주인공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주인공은 모든 곳에서 주인공이 되어, 무애자재(無碍自在)하게 수용합니다. 그래서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모든 가치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모든 종교와 정치제도, 문화적 제약에서 벗어난 절대자유인이 되는 것이니, 인류의 희망이 참나를 깨닫는데 있고, 미래가 여기에서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참나를 깨달아 마음의 고향에 이르러 다 같이 영원토록 대평화를 누릴 수 있는가?
우선, 먼저 참나를 깨달은 눈밝은 ‘참스승’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광대무변하고 심오한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눈 밝은 스승을 만나 대오견성의 발원을 확고히 하여 모든 분들이 각자 일상생활 속에,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하고 오매불망 간절히 의심해야 합니다. 이것을 일러 참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참선으로 일념(一念)이 지속되는 과정을 이루어야 마음의 고향에 이르게 되어 일월(日月)과 같은 밝은 지혜가 열리는 동시에 큰 자비와 사랑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 인류가 나와 더불어 한 몸이 되고, 온 세계, 유정무정(有情無情)이 다 나와 더불어 한 집이 되어 대평화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옛 성인들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빈한하게 사는 것은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하셨으니, 모든 인류가 나고 날 적마다 출세와 복락을 누리고자 한다면 이처럼 마음의 고향에 이르러 밝은 지혜의 눈을 얻어야 할 것 입니다. 

 

그러면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우선, 참선은 앉아서 익히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에 먼저 좌선을 익히도록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좌복 위에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 허리를 곧게 하고 가슴을 편 다음 두 손은 모아서 배꼽 밑에다 붙입니다. 눈은 2미터 아래에다 화두생각을 두고 응시하되, 혼침과 망상에 떨어지지 않도록 눈을 뜨고 의심에 몰두해야 합니다.
 

이렇게 앉아서 무르익어지고 나면, 일상 생활속에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일을 하나, 산책을 하나, 잠을 자나 오매불망 간절히 화두의심에 몰두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루에도 천번 만번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하고 오매불망 의심을 쭉 밀고 또 밀고 또 밀 것 같으면 모든 산란심이 일어날 틈이 없게 됩니다. 비유하자면, 촌에 방아찧는 기계는 시동이 안 걸리면 방아를 못 찧는데, 한 번 시동이 걸리면 종일 방아를 찧을 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루에도 천번 만번 의심을 밀어주라고 하는 이유는, 그렇게 천번 만번 의심하여 단련이 되면 문득 참의심이 시동걸리게 되어 화두의심 한 생각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과정이 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흐르는 시냇물과 같이 밤낮으로 한 생각이 흐르고 흐르게 되는데, 앉아 있어도 밤이 지나가는지 낮이 지나가는지 모르게 되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화두일념에 푹 빠져서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밝은 지혜의 눈이 열리어 억만년이 다하도록 항상 밝아 있게 되므로, 만인의 진리의 지도자, 하늘세계와 인간세계의 사표(師表)가 되어 자유자재하게 활개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마음의 고향에 이르면 멋진 자유와 행복과 세계평화를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 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 참나 속에 변치 않는 정의가 있으며, 참나 속에 영원한 행복이 있으며, 참나 속에 걸림 없는 대자유가 있으며, 참나 속에 밝은 지혜가 있으며, 참나 속에 모두가 평등한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정의와 행복과 대자유와 지혜와 평등은, 아무리 학식이 풍부하고, 아무리 부유하고, 아무리 지위와 명성이 높고 성스럽게 산다 할지라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참나를 깨달은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비록 이번 생에 화두일념삼매가 지속되는 과정을 이루지 못한다 할지라도, 온 인류가 생활 속에 꾸준히 참선수행을 닦아 행한다면 마음에 모든 분별과 시비 갈등이 사라지게 되어 자연히 마음이 안정될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에 다다라서도 밝은 마음 맑은 정신으로 이 몸뚱이를 옷 갈아입듯 벗게 되고 다음 생에는 반드시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참선수행을 등한시 한다면, 온갖 분별과 시비 갈등에 하루뿐만이 아니라 일생을 헛되게 보내게 될 것이니, 결과는 고통뿐이고 갈등뿐이라서 죽음에 다다라 후회한들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분들이 간화선(看話禪)이라는 훌륭한 수행법을 꾸준히 닦으셔서 아이가 울면 자장가를 하는 가운데 화두를 챙기시고, 남편이 꾸짖을 적에도 화두를 챙기시고, 부인이 시비를 걸 때는 처사가 화두를 들고, 이러한 생활을 하면 화목한 집안이 되고 좋은 가정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화목한 사회와 나라를 이루며, 마침내 세계평화에 큰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께 간화선 수행법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드리고자, 산승이 참선수행에 입문하고 수행하여 깨달은 기연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산승이 20세가 되던 정월 초에 친척 어른과 함께 해관암을 찾아가 석우(石友)선사를 친견하게 되었는데, 선사께서 산승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
“이보게 청년, 세상에 사는 것도 좋지만, 이번 생은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중놀이를 해보지 않겠는가?”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놀이를 하면 어떠한 좋은 점들이 있습니까?” 하고 여쭈니,
“범부가 위대한 부처 되는 법이 있네.” 하셨습니다.
‘범부중생이 위대한 부처가 된다’는 이 말에 이상하게 마음이 쏠렸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계시니, 가서 허락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는 스님들 생활을 두루 살펴보니까, 세상 사람과 같이 밥을 먹고 살지만 판이하게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들이 손수 빨래하고, 밥짓고, 나무하고, 그 가운데 참선수행을 하고 있는데 세상 밖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생의 인연인지 산승의 눈에는 수도하는 청정한 삶이 아주 아름답게 비춰졌고, ‘범부가 위대한 부처된다’는 선사님의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허락을 얻은 후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승려가 되어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화두를 받아 열심히 정진하던 중 견처(見處)가 생겨, 당시에 선지식으로 가장 이름이 높았던 묘관음사의 향곡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찾아가니, 향곡선사께서 대뜸 물으시기를
“바른 답을 해도 삼십봉(三十棒)을 맞고, 바른 답을 못해도 삼십봉을 맞을 것이니, 어떻게 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산승이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였는데다시 몇 가지를 물어도 답을 못하니, 향곡선사께서
“아니다. 공부를 다시 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2년여 동안 제방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다시금 큰 분심을 내어 향곡선사를 찾아갔습니다.
“화두를 하나 내려주십시오. 화두를 타파하기 전에는 바랑을 지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팔풍(八風-이익, 손해, 비방, 찬탄, 꾸지람, 칭찬, 괴로움, 즐거움)이 불어 닥친다 해도 거기에 동요가 안 된다는 말이니,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약조가 아닙니다. 그러니 향곡선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려운 진리의 관문을 네가 어찌 해결할 수 있겠느냐?”
“생명을 떼어 놓고 한 번 해보겠습니다. 화두를 하나 내려주십시오.”
이렇게 간청을 드리니, 산승의 참학의지(參學意旨)를 간파하시고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라는 화두를 내려 주셨습니다. ‘향엄상수화’는 중국 당나라 때 위산도인의 제자인 향엄선사의 법문입니다.

 

어떤 스님이 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거나 발로 밟지도 않고 오직 입으로만 물고 매달려 있는데, 때마침 나무 밑을 지나가던 스님이 물었습니다.
“달마스님이 서역에서 중국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답을 하려니 수십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몸이 박살이 날 것이고, 가만히 있으려니 묻는 이의 뜻에 어긋나고, 이러한 때를 당해서 어찌해야 되겠는가? 

 

이 화두를 받아서 2년 5개월 동안 결제해제를 잊고 산문을 나가지 않고 일구월심 화두와 씨름을 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부처님 전에 예불을 하러가는데, 도량이 어두워서 돌부리에 받혀 넘어졌다 일어나는 순간 홀연히 화두가 타파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깨달은 경지를 글로 써서 향곡선사께 올렸습니다. 

 

這箇拄杖幾人會<자개주장기인회>오. 

이 주장자 이 진리를 몇 사람이나 알꼬. 

三世諸聖總不識<삼세제성총불식>이라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성인들도 다 알지 못함이로다. 

一條拄杖化金龍<일조주장화금룡>하니 

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빛 용이 되어서 

應化無邊任自在<응화무변임자재>로다. 

한량없는 용의 조화를 마음대로 부립니다.

 

一棒打倒毘盧頂<일봉타도비로정>하고 
한 몽둥이를 휘둘러 비로정상을 쳐서 무너뜨리고
一喝抹却千萬則<일할말각천만측>이라. 
벽력같은 고함을 질러 천만 성인이 설한 설교를 다 문대버림이로다.
二間茅庵伸脚臥<이간모암신각와>하니
두 칸 띠암자에 다리를 펴고 누웠으니 

海上淸風萬古新<해상청풍만고신>이로다.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구나. 

 

이렇게 적어서 향곡선사께 갖다 바치니 용의 조화를 들어서 물으셨습니다. 용의 조화는 산을 떠 오기도 하고 산을 없애기도 하고 비를 내리기도 하고 비를 거두기도 하는 것입니다.
“너 문득 용 잡아먹는 금시조를 만나서는 어떻게 하려는고?”
이렇게 물으시니, 산승이 즉시
“전신을 굽히고 움츠려가지고 당황하여 몸을 세 걸음 물러갑니다. (屈節當胸退身三步)”
하니 향곡선사께서
“옳고, 옳다. 모든 성인의 진리의 가풍(家風)이 이 게송 중에 다 있구나. 장차 너로 인해 참선법이 크게 흥하리라.” 하시며, 만 사람을 지도할 안목을 갖췄다는 법을 전하는 인증서를 내리셨습니다.

 

佛祖大活句<불조대활구>는
부처님과 도인의 산 진리는
無傳亦無受<무전역무수>라
전할 수도 없고 또한 받을 수도 없나니
今付活句時<금부활구시>에
이제 그대에게 산 진리를 전하노니
收放任自在<수방임자재>로다
만인 앞에 진리의 전[廛,가게]을 펴거나 거두거나 그대에게 맡기노라.
  

이때가 산승의 나이 33세였습니다. 이렇게 참선 공부를 해서 진리를 깨달아 먼저 깨달은 스승에게 인증을 받는 가풍이, 석가여래로부터 2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

 

석일(昔日)에 암두(巖頭) 선사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혜안(慧眼)을 갖춘 생이지지(生而知之)셨는데, 덕산(德山) 선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일여(一如)하게 지냈습니다. 하루는 덕산 선사를 친견하기 위해 조실채에 가서는, 조실스님 방문을 열고 한 발은 방 안에 드려놓고 다른 한 발은 마루에 딛고 서 있으면서 물었습니다.
“선사님 제가 성인(聖人)입니까, 범부(凡夫)입니까?”
이에 덕산 조실스님께서 문득 할(喝)을 하시니, 암두스님이 절을 올리고 돌아갔습니다.
이 같은 거량을 동산(洞山) 선사께서 전해 듣고 평(評)하시기를,
“암두전활(巖頭全豁) 상좌가 아니고는 덕산의 할을 알아듣기 어렵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암두스님이 그 말을 전해 듣고는,
“동산 노인이 좋고 나쁜 것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을 하는구나. 내가 그 당시에 한 손은 들고, 한 손은 내렸었노라.”하였습니다.  

 

금일 해제에 임하는 모든 대중, 어느 곳이 한 손은 들고, 한 손은 내린 곳입니까? 이 낙처(落處)를 바로 아는 이는 참학사를 마친 것이라. 이러한 법문을 바로 보는 눈이 열려야사 모든 도인의 눈을 점검하는 바른 눈을 갖추게 됨이요, 그러지 못하면 진리의 도와는 십만 팔천 리 멀어진 것입니다. 

 

〔 拄杖子로 法床을 한 번 치고 下座하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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