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제 선사님의 일화(속가와의 인연을 지혜롭게 이끌어간 이야기) - 진제 선사님은 경남 남해군이 고향입니다. 어느 날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고 고향으로 갔지만, 고향 사람들은 불심도 없고 불교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선사님은 커다란 삿갓을 쓰고 장 삼을 갖추어 입고 목에다 커다란 목탁을 매고서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마침내 집에 당도하자 마을 사람들은 초상집에 목탁을 두드리며 들어오는 스님을 유심히 살폈고, 스 님이 그 집 아들임을 알아차린 마을 사람들은 한 마디씩 거들었습니다. “아무개가 왔구나.”
“어서 오너라.” “그동안 어디서 지냈느냐?” 누가 뭐라고 하건 선사님은 대꾸도 하지 않고 ‘나무아미타불’만 계속 부르면서 제상 앞으로 갔 습니다. 그리고 목탁을 두드리며 쉴 새 없이 나무아미타불만 불렀습니다. 아무개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이 름을 부르며 집으로 쫓아 들어온 동네 친구들까지도 나무아미타불만 계속 부르는 선사님에게 말을 붙일 수 없어 멍하니 구경만 할 뿐이었습니다.
삼일장을 지내는 동안 선사님은 쉬지 않고 계속 염불을 했습니다. 졸리면 앉은 채로 잠깐 눈을 붙 이고, 다시 깨어남과 동시에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을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동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선사님을 따라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 시작했고, 차 츰 불심도 전혀 없고 불교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젊은 사람들과 어린이들까지 덩달아서 ‘나무아 미타불’을 따라 외쳤습니다. 마침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나무아미 타불을 외웠습니다.
상여가 나갈 때에도 상여꾼들이 ‘어기야 영차’ 소리도 한 번 해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상여 앞 에서 뒤에서 나무아미타불만 계속 합창으로 염하면서 장지까지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장례가 끝날 때까지 그저 염불만 계속한 진제선사님은 무덤 앞에서 마지막으로 크게 한 번 절하고 돌아와 버렸습니다. ‘잘 계시오, 잘 가시오’ 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절에 돌아와 있으니까 불교를 믿지 않던 식구들이 떼를 지어 절에 와서는 49재를 지 내자고 하였고, 그래서 함께 49재를 잘 모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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