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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제대선사 - 폴니터교수 인터뷰(부산일보,현대불교)
법문장소 해운정사 금장실 (법문일자 : 2011.01.02 / 조회 : 3966)

 

 

진제 대선사 - 폴니터 교수 인터뷰

(부산일보, 현대불교신문) - 녹취본


 

(2011. 1. 2. 15:30 , 해운정사 금장실)

 

진제스님= 폴니터 교수께서 귀한 시간을 내어서 오신 것은, 아시다시피 남북 대결, 종교 갈등이 있어서, 세상에 할 일도 많으신데 한국에 우선으로 오셔서 좋은 말씀을 해서 화해의 장을 열어주십시오 해서 초청을 한 것입니다.

 

부산일보= 한국에서 종교적ㆍ사회적 갈등이 심한데, 이런 상황에서 두 분의 대화가 갖는 의미를 좀 설명해주십시오.

 

진제스님= 그리스도교와 한국불교 지간에 이렇게 세계적인 교수님을 초청한 것은, 첫째, 종교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불교와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좋은 평화의 안을 제시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인식을 같이 해서 안락국토, 평화로운 데 머물러 가지고 지상을 부처님 국토, 안락국토를 만들기 위해서 초청했습니다. 세상 갈등을 푸는 데 있어서는 종교지도자의 역할이 대단하거든요. 그래서 초청하게 됐습니다.

 

폴니터교수=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절에 가서 한 행동들에 대해서 듣고 너무 놀랍고 민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기독교의 가르침은 이런 게 아닌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제스님이 초대를 하셨을 때 정말 가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가르침은 정말 이런 게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그러한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또 우리 기독교인들의 입장을 밝혀드리고 싶어서 초대에 응했습니다.

특히 1월 1일 동화사에서 법문이 있을 때 거의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선생님의 뿌리인 동화사에 와서 땅밟기를 하고 불교에 대해 무례하고 존중하지 않는 행동을 했는데, 거기에 대한 불교의 반응이, 바로 그 자리에 기독교 신학자를 초청해서 대화를 하고 싶다 하는 그런 불교의 자비스러운 마음, 그 이해, 그 지혜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부산일보= 갈등이 많지만, 갈등을 넘어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종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진제스님= 동양은 정신문화의 축입니다. 정신문화의 축은 한국의 간화선입니다. 전쟁, 시기, 질투,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여기에서 모든 전쟁과 갈등과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것을 잠재우는 데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생활 속에 참나를 밝히는 선 수행을 꾸준히 연마하는 여기에, 마음의 시기, 질투, 허세, 공포, 불안이 싹 없어집니다. 나만 위대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그런 게 없습니다. 모든 인류는 개개장부(箇箇丈夫)고, 다 평등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동양정신의 근본이, 마음을 밝혀서 마음 가운데 밝은 지혜가 있고, 마음 가운데 자비스러움만 가득해서 모든 세상과 모든 인류가 한 집이고 한 몸이거든. 여기는 투쟁과 갈등이 없고, 나만 위대하다는 허세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과 모든 세계인이 동양의 정신문화를 계발하고 지혜를 계발하는 이러한 참선수행을 꾸준히 연마하는 여기에, 그대로 극락세계고 아주 안락세계입니다. 그러한 지혜를 계발하고 마음의 고향에 이를 것 같으면, 팔만 사천 지혜가 갖춰져 있고 팔만 사천 덕이 다 갖춰져 있고, 그대로 부처님 세계요, 성인의 세계요, 안락의 세계인데, 그런 바른 수행 참선을 통해서 모든 갈등을 해소하고 나고 날 적마다 평화로운 생을 누리고 출세를 누리기를 바라는 뜻에서 개개인인 선을 해서 일상생활 가운데 꾸준히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오매불망 씨름을 하면 모든 갈등이 서서히 봄바람에 눈 녹듯이 제거되고, 평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지고, 너와 내가 따로 없고 온 세계가 한 집이요, 온 유정(有情)ㆍ무정(無情)이 나로 더불어 둘이 아닌 때문에 거기는 투쟁과 갈등이 없습니다.
이러한 좋은 선법을, 참선하는 이 선법은 종교가 아닙니다. 인인개개의 지혜를 계발하고 안락국토를 이룩하고 대자유를 얻는 그러한 수행법입니다.

 

폴니터교수= 저도 진제스님이 말씀하신 것과 거의 같은 대답입니다. 그러나 저는 좀 철학적으로 대답해드리고 싶습니다.
세계 인류가 철학적으로 갈등해온 문제는, 우리 이 세계에 있는 다양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저는 로마의 철학자의 말을 인용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로마의 철학자는 “인류는 서로에게 늑대들이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싸워서 가장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게 다양성과 다름에 대한 한 가지 반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철학적 전통은 “인류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에게 형제자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갈등하고 싸워서 이기기보다는, 협동함으로써 인류의 문화의 다름을 극복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진제스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종교인들이 해야 될 역할은 ‘우리가 서로에게 늑대다’ 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에게 형제자매이고, 협동함으로써 이 다름을 더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 종교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법구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증오를 사랑으로 극복하라.”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 바로 이것이 종교가 이 세계에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미움과 증오를 사랑으로 극복하는 것이 종교의 메세지라고 생각합니다.

 

부산일보= 기독교는 불교로부터, 불교는 기독교로부터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점은 어떤 부분입니까?

 

진제스님= 불교는 내실(內實)을 위주로 해서 수양을 합니다. 밝은 지혜를 증득해서 일체 모든 분들을 안락국토에 인도하고, 또 생활 속에 밝은 지혜와 자비를 계발하는 이 선 수행을 꾸준히 지도를 해가지고 자기의 자아(自我)가 뚜렷이 인격을 갖추는 그러한 수행을 합니다. 자아는 밝은 지혜와 밝은 덕을 갖춤으로 인해서 모든 인류가 말하기 전에 다 감화를 받아가지고 지도를 받아들이고 그럽니다.

그리고 예수교는 특히 ‘사랑’으로 인해서 헌신, 봉사를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불교의 자비나 기독교의 사랑이나 내막은 똑같은데, 모든 지구상에 우치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가지고 테러와 전쟁이 그치지 아니하니, 앞으로는 우리 불교의 대표들과 그리스도 종교인 대표들 간에 자주 만나가지고 어리석은 마음을 송두리째 녹여버리는 그러한 교화를 하시고, 또 생활 속에 지혜를 계발하는 이러한 수행을 서로 연마하고 닦아 행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나 우리 불교나 동심일체(同心一體)가 됩니다. 동심일체가 돼서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이 환희심을 내어가지고 존중하고 받들고 따르고 해서 그렇게 하면 세계는 자연히 안락국토가 되고 투쟁이 없는 그러한 세계가 되리라 봅니다.

 

통역자(정현경교수)= 스님이 말씀하신 기독교에서 배울 점은 ‘사랑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폴니터교수=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불교도에게 배울 점, 특히 세계 평화를 위해서 사회 변혁을 위해서 일하는 기독교인이 배워야 할 점은, ‘네가 깨달아야 정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계에 좋은 일을 하려고 하고 세상을 변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진정한 평화와 깨달음이 없다면 그것을 효과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기독교인으로서 볼 때,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좋은 사회변혁의 운동을 하면서도 자기 에고(ego), 자기의 자아성에 붙잡혀서 자기 에고를 더 크게 만들려고 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에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진정한 변화는 올 수 없습니다. 이 에고를 버리는 가장 큰 가르침을 불교에서 배우게 됩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들이 ‘우리는 세상의 평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나 불교는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 평화를 만들려면 너 자신이 평화가 되라. 너 자신이 평화로워야 이 세상에 평화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가르침을 줍니다.

 

진제스님= 우리 교수님이 아주 좋은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평화를 지도하고 유포하려면 자기의 평화를 알아야 된다. 그것이 동양 정신의 골수입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가 한국의 간화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내면세계를 계발해가지고 거기서 밝은 지혜를 얻거든요. 그게 부처님의 깨달은 살림살이입니다. 그런 때문에 동양의 간화선 유포는 종교가 아니고 인인개개(人人箇箇)가 가지고 있는 그 심성(心性), 마음의 고향에 이르는 법인데, 마음의 고향에 이르는 수행법이 바로 참선입니다. 모든 분들이 다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바탕을 보지 못한 때문에 지혜가 계발이 되지 않고 자비스러운 용심과 행동을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가 일상생활 속에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오매불망 씨름을 할 것 같으면 삼생의 업이,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중생의 악습이 싹 소멸이 되고, 너와 나가 둘이 아니고, 온 세계가 한 집이요, 온 유정ㆍ무정이 나로 더불어 둘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평화로운 나날의 세계를 이뤄가지고 멋진 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폴니터교수= 제가 진제스님의 말씀에 정말 “아멘, 아멘, 아멘!” 이렇게 말씀하고 싶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맞으면 “아멘, 아멘, 아멘 맞습니다.” 그러잖아요. 세 번 ‘아멘’하고 싶은데, 그러면서 한 가지 첨가드리고 싶습니다.
스님 말씀에 정말 동의합니다. ‘내 마음의 평화가 있어야 세계의 평화가 있다.’ 그런데 기독교의 해방신학에서 하는 얘기는, 평화를 만드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겁니다. 내 마음의 평화가 있어도 이 세계의 평화를 만들려면 세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경제ㆍ정치적인 불평등의 문제. 이 세상에는 경제적ㆍ정치적 시스템에 의해서 우리 지구가 함께 나눠야하는 그 자원들을 너무도 차이나게 불평등하게 나누는 경제제도, 정치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극복해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세밀하고 치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경제ㆍ정치 분석에 의해서 이것을 더 정의로운 제도로 만들려는 중요한 준비된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의 평화가 생겼다고 자동적으로 세계평화가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또 생각하면서 그 구조적인 분석, 힘의 불평등을 극복해서 우리의 불평등을 평등으로 나누는 운동을 하는 것.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일보= 해방신학을 신봉하시는 입장인가요?

 

폴니터교수= 해방신학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엘 살바도르의 해방신학자들과 아주 오랜 시간 엘 살바도르의 민중들의 해방을 위해서 같이 노력해왔습니다. 요즘 노력하는 것은, ‘불교적-기독교 해방신학자다’ 이렇게 발전돼 가고 싶습니다.

 

부산일보= 부산시민들에게 종교를 초월해서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진제스님= 우리가 세(勢)를 확장한다는 것은 우스운 겁니다. 그 말 자체가. 진정한 기독교인이고 진정한 수행인이면, 세를 확장한다는 것은 중생심(衆生心)입니다. 참으로 만인(萬人)을 위하고 부산시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 종교라는 것은, 순수하게 자기를 계발해가지고 모든 인류를 안락국토에 인도해서 같이 동거동락하는 것이 종교의 뜻이거든요. 우리가 거기다가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허세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이 다 된다고 해도 내실(內實)이 없으면 그것은 값어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불교인이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내면세계의 수양을 위주로 해서 하루하루 살아가서 모든 인류의 사바세계가 극락세계가 되고 지상극락이 되도록 거기다가 촛점을 맞춰야 되지, 세(勢)만 과시한다는 것은 우치하기 짝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한 생각을 돌려가지고 크게 시야를, 눈을 떠야 됩니다.

 

폴니터교수= 물론 스님 말씀에 정말 동감합니다. 인간의 에고, 욕심이 이런 모든 상황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거기서 벗어나야 됩니다. 하지만 저는 또 이러한 종교를 만들어내는 종교 뒤에 있는 신학, 철학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알카에다라든지 소위 말해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이 모든 이러한 분쟁 속에는 신학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 신학적인 문제의 핵심은 바로 ‘내 종교만’ 하는 ‘만(only)’ 자에 있습니다.
내 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만’ 진짜 하나님이다. 내 종교의 깨달음‘만’ 진짜 깨달음이다. 그리고 내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만’ 진리다.
우리가 이 ‘만’자를 계속 쓰는 한 우리에게 평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이것을 전쟁의 방식으로, 옳은 사람이 틀린 사람을 이겨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평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오직 ~만’ 이라는 신학과 철학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의 여러 종교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진화되어가는 방향을 다원주의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그 진화의 방향은 이렇습니다.
여태까지는 내 종교만, 내 진리만 구원이 있고 옳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나는 내 종교의 특수성, 그 가치에 대해서 충분히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의 특수성과 가치에 대해서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그 마음자리, 개방성,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러한 여유와 개방성이 생겨나야, 이런 다원주의적인 입장이 생겨야 우리가 평화가 있을 수 있지, ‘내 종교만’ 이란 게 들어갈 때는 항상 배타주의가 되고 폭력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일보= 두 분이 처음 만나셨는데, 이후에 만남을 어떻게 가져갈 계획이신지요?

 

진제스님= 오늘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인류를 구제하려면 좋은 점은 서로 항시 실천에 옮겨야 됩니다. 지상평화와 지상극락에 인도하려면 모든 무지한 사람들을 잘 선도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보더라도 “왼손이 좋은 일을 할 때는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그 명답입니다.
그런 가운데 불교도들은 “모든 보시를 다하되, 티끌만큼도 보시했다는 상(相)이 있으면 안 된다” 했거든요.
항하사 모래알 숫자와 같은 생(生)을 나오고 나오면서 가지가지 선행을 한다 하더라도, 이 부처님의 심성을, 개개인의 심성을 보는 것과 같지 못하다 했습니다.
그러니 모든 인류가 ‘나만이’, ‘만이’ ‘만이’만 할 게 아니라, 나만이 위대하다고 할 게 아니라, 이 부처님 동양정신의 밝은 지혜를 계발함으로 해서 중생의 그 못난 습기(習氣), 그것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또 선행을 하되,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왼손이 좋은 일을 할 때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그 맑은 정신사상, 이 두 가지가 결합이 되어 온 세계 방방곡곡에 이렇게 인식이 변화하면 서서히 ‘만이(only)’가 다 뿌리 뽑아질 것이고 안락국토에 이르게 하는 좋은 지름길이 되리라 봅니다.

 

정현경교수= 스님, 폴 선생님하고 앞으로 뭘 하실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으신가요?

 

진제스님= 몇 번을 ‘미국에 오셨으면’ 그러대요. 오셔서 동양의 정신세계의 수행을 온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면 투쟁 없고 다툼 없는 세계가 되지 않나, 그러한 뜻에서 동양 정신을 세계 속에 유포하기 위해서 초대를 하는 겁니다. 몇 번을.
그리고 정신세계를 십분 계발을 해서 마음의 고향에 이르면 모든 시비ㆍ갈등이 싹 없어집니다. 이것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하고, 그대로 극락세계ㆍ안락국토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거기다 촛점을 맞춰가지고.
(한국에) 오시면 해운정사에 오시게 하고, 또 앞으로도 이러한 모든 악습의 중생을 뿌리째 뽑아서 평화로운 세상을 건립하기 위해서 초대를 하면 내가 몇 번이고 갈 겁니다. 그래서 좋은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십시다.

 

정현경교수= (폴니터교수님이)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거 하나도 못 알아듣지만, 목소리 그 말씀하시는 톤을 듣는 게 너무 즐거우시대요.

 

진제스님= 네, 감사합니다.

 

폴니터교수= 지금 진제스님을 만남으로써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확신이 더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불교와 기독교가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제가 아주 깊이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저희가 스님을 미국의 우리학교 유니언 신학교에 초대해서 서양인들에게 스님의 법문을 들려드리는 그런 것도 마련할 수 있고, 또 여기에 우리만 올 게 아니라 우리 신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여기서 하안거를 한다든지, 정말 깊이 들어가서 불교의 핵심에 대해서 배우게 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만남이 더 발전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부탁 하나 하고 싶습니다.
진제스님은 이제 저의 스승입니다. 제게 진아(眞我)라는 불명도 주시고,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라는 화두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계속 생각을 했는데 처음으로 화두에 대해 대답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스님의 화두를 계속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자비명상을 하면서 스님이 주신 화두에 대해 떠오르는 답은 ‘자비’였습니다. 맞습니까?

 

진제스님= 하하하. ‘자비’는 거리가 멉니다. (대중 박장대소) 그 생각은 놓으시고 간절히 간절히 일념이 지속이 되어서,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일년이고 일념 상태에서 모든 보고 듣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삼매에 들어야 된다는 이걸 명심하셔야 됩니다.

 

폴니터교수= 계속 노력하겠습니다만 나이가 71살이라서 걱정이 됩니다.

 

진제스님= 이것은 나이와 관계가 없습니다.

 

폴니터교수= 좋습니다. 지금부터 노력해서 스님이 뉴욕에 오시면 그때 다시 한 번 시험보겠습니다. (대중 웃음)

 

현대불교= 폴 니터 교수님께서는 미국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요?

 

폴니터교수= 미국 유니언 신학교에서 정현경 교수와 같이 하는 일은, 미래의 젊은이들이 목회일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하면 포용적이고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목회자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을 준비시키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르침, 그런 수업을 하고 있는 게 제가 중요하게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또한 미국에 있는 많은 평화 기관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서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뉴욕에 가서 할 일은 유엔 안에 종교 NGO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엔에 모인 세계에서 온 여러 대표자들에게 바로 종교를 통해서 세계평화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NGO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특히 정현경 교수와 저는 세계종교평화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위원회에서 하는 일은 세계 여러 분쟁지역을 다니면서 그 분쟁을 화해로 이끄는, 분쟁을 종식시키는 그러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최근에 한 일은, 강원도 화천에 우리 세계평화위원회가 전부 와서 평화의 종을 만드는 일에 같이 동참할 수 있는, 우리 한반도의 평화를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중일동=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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