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예전 선지식들께서는 화두를 주실 때, 상대방의 근기(根機)에 맞게끔 고려해 주셨던 것 같은데, 요즈음 스님들께서는 상대방에 대한 고려 없이 그냥 천편일률적으로 주시는 것 같습니다. 마치 기계화되어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의심도 크게 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자에게 맞지 않는 화두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스님, 옛날 그 천 칠백 공안 외에 의심이 굉장히 많이 갈 수 있는 것으로 상대방의 근기에 맞게끔 다른 것을 창조해 주시면 안 되는지, 그것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 의심이 나고 안나고, 의심의 강도가 강하고 약하고 하는 것의 원인을 화두에서 찾는 것은 분별입니다. 선지식이 참학자(參學者)에게 천칠백 공안 중의 한 화두를 주나, 의심을 물어서 한 마디 던져주나, 상대방이 얼마만큼 온전히 받아들이고 십분 신(信)을 갖고 참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공부가 "화두"나 "선지식이 이것 저것 일러주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도 고인들께서 납자(衲子)를 제접(提接)하셨던 것과 같이, 참학인이 와서 부처님의 근본대의(根本大意)를 묻는다든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묻는다든가 하면, 응당 한마디 일러줍니다. 그러면 그것을 참구의 분(分)으로 삼으면 되는데, 그러한 자세로 공부하려는 이가 없거든요. 다들 "화두 타러 왔습니다" 하니 계제따라 화두를 일러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참구하는 데 있어서 의심이 일고 일지 않고의 문제는, 일러주는 화두가 어떤 화두인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신심(信心)있게 받아들이고 실답게 참구하느냐, 여기에 있는 것이지 절대 화두에 비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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