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왜 많은 사람들이 참선수행을 하는데도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까?
[답변] 이 참선법은 참구하는 한생각만 지속된다면 깨달음이 저절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과거생에 지어온 무수 반연(攀緣)과 습기(習氣)로 인하여 온갖 기멸심(起滅心)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고로 깨달음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여러분의 목에다 장검(長劍)을 들이대면서 "화두를 내놓으려느냐, 네 목을 내놓으려느냐?"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거기에서 흔연히 목을 내밀 수 있는 신심(信心)과 용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귀히 여기는 것보다도 화두참구하여 기필코 견성(見性)하리라는 신심(信心)이 더 크면, 누구든지 화두일념이 순숙(純熟)하여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이와 같은 확고한 신념이 정립되지 않고는 화두일념(話頭一念)이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신념 없이 어떻게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쌓아온 중중(重重)의 죄업(罪業)의 산을 넘을 수가 있겠습니까?
암탉은 병아리를 까기 위해서 21일 동안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다 참아가며 알을 품습니다. 배가 고프면 아주 잠깐 모이를 주워 먹고는 온기(溫氣)가 식기 전에 다시 둥지로 올라가서 얼른 또 알을 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어야 겠다고 들락날락한다면, 365일을 품고 있어도 병아리를 깔 수가 없는 법입니다. 따뜻한 기운이 지속되어야만 그 안에서 병아리가 형성되어 삼 칠일 만에 "쫄"하고 소리를 내는데, 그 때 어미닭이 "탁" 쪼아 주어야 병아리가 나옵니다.
화두일념(話頭一念)을 지어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나고 죽는 괴로움에서 영구히 벗어나고자 한다면 이번 생(生)은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오로지 화두참구에만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화두참구(話頭參究)를 할 때는 화두를 의심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의심하여, 화두 전체가 분명한 가운데 의심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화두일념이 현전(現前)되어서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고, 그러다보면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여 가을 바람에 밤송이 벌어지듯 홀연히 화두가 타파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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