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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42)운봉성수
언론사 불교신문 (보도일 : 2008.12.24 / 조회 : 5474)
파일 [1]20081224th.jpg  

한국불교 중흥조인 경허-혜월스님의 법맥을 계승한 운봉성수(雲峰性粹,1889~1946)스님은 임제정맥(臨濟正脈)의 법등(法燈)이 이 땅에 활짝 꽃 피도록 했다. 금강산,오대산,묘향산,지리산,백암산 등 명산명찰(名山名刹)에서 정진하며, 깨달음의 향기로 후학들에게 환희심을 안겨준 운봉스님 행장을 손(孫) 법제자 진제스님(원로의원.동화사 조실)의 증언과 <운봉선사법어집>및 비문을 참고해 정리했다.

 

"목마를 때 샘 파려면 힘드니 지금 노력하라"

경허-혜월스님의 법맥 계승

'조리운봉'으로 두루 존경받아

 

 

  [사진] 임제정맥의 법등을 이어 한국불교 선맥을 중흥시킨 운봉스님 진영

 

○…운봉스님은 1925년 도봉산 망월사에 개설된 만일선회(萬日禪會)에 참여했다. 전국에서 운집한 30여명의 눈 푸른 납자들이 용성스님을 조실로, 석우스님을 선덕으로 모시고 용맹정진의 원력을 냈다. 운봉스님은 입승 소임을 맡았다. 반결제 무렵 용성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어를 했다. “나의 참모습은 삼세제불도 보지 못함이요, 역대조사 또한 나를 보지 못함이니, 오늘 여기 모인 대중들은 어떻게 나를 보려는가?” 이때 운봉스님이 일어나 답했다.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 범부의 눈으로 선지식의 법담(法談)을 논할 수 없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스님들의 문답은 그 자체로 후학들의 공부에 도움이 된다.

 

○…운봉스님이 망월사에서 정진할 당시 절집 살림은 곤궁했다. 대중은 여럿이고, 먹을 것은 변변치 않았다. 소금에 절인 김치 한 가지가 반찬의 전부였다. 공양을 책임진 스님은 고민 끝에 평소보다 소금을 잔뜩 넣어 김치를 만들었다. 아주 짜게 만들어 조금이라도 반찬을 아끼려는 의도였다. 그렇지만 결제 한 철을 보내기에는 아무래도 모자랐다. 고민 끝에 공양주 스님이 조실 용성스님을 찾아 상의를 드렸다. 조실스님은 “그래, 모자란다고? 그러면 소금을 더 갖다 넣어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수좌들이 “그러면 걸망을 싸고 떠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 했다고 한다. 수좌들이 먹을 것에 집착했다는 것은 아니고, 그만큼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운봉스님을 비롯한 수좌들은 이런 고비를 넘기며 더욱 공부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지혜의 눈이 밝고 빈틈이 없어 사리를 정확하게 판단했던 운봉스님에게 다른 스님들이 지어준 별명이 ‘조리운봉(調理雲峰)’이다. 그만큼 스님의 말과 행동이 여법했고, 지혜를 갖추고 있어 참선 공부를 하는 이판(理判)뿐 아니라 절집 살림을 맡아보는 사판(事判)들도 존경심을 가졌다고 한다. 운봉스님이 남긴 법어와 어록을 모아놓은 <운봉선사법어집>에는 ‘조리운봉’의 면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글이 다수 있다.

 

○…운봉스님이 한 수좌에게 보낸 글을 보면 따뜻한 자비심을 지녔던 선지식임을 알 수 있다. “지난 봄에 떠난 뒤로 거처를 알 수 없어 궁금한 생각 금할 수 없었는데, 지금 편지를 받아 비로소 금정산에 있음을 알았으니 그 반가움을 어떻게 말로 다하랴.” 이 글에서 운봉스님은 수좌가 병마에 굴하지 말고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몸에 병이 있어 공부를 못한다고 하지만 병이란 별스러운 것이 아니다. 정녕 진정한 신심만 있다면 병이 공부를 방해하지는 못하느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병의 바탕은 본래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즉 오직 참다운 신심이 없는 것을 한탄할지언정, 어떻게 병을 핑계 삼을 수 있겠는가?…”

 

○…운봉스님의 법제자 향곡스님은 계축년(1973년) 2월 그믐에 은사에 대해 글을 썼다. <또 어떤 때는 ‘이와 같고 이와 같다’ 하시고 어떤 때는 ‘이와 같지 않고 이와 같지 않다’ 하시며, 어떤 때는 ‘아이고 아이고’ 하시고 어떤 때는 ‘허허’ 하시며, 어떤 때는 자비를, 어떤 때는 위엄을 베푸셨으니, 마치 금강왕의 보검 같고 걸터앉은 사자 같고 전광석화 같아, 머뭇거렸다가는 목숨을 잃게 되고 입만 열면 도둑이 지나간 다음 활을 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귀신 굴속에 살지 말라’ 하셨으니, 마음으로 생각하고 따져 보는 분별로는 발붙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고인이 말씀하셨다. ‘팔각형의 磨盤(마반)이 허공으로 날아가니, 금빛 털 난 사자도 문득 개가 되는구나, 북두칠성 그 속으로 숨으려고 하거든 ‘남쪽 하늘 십자성에 합장한 뒤에 하라’ 바로 이것이 선사의 뜻이라고나 할까.’>

 

○…경봉(鏡峰,1892~1982) 스님의 <삼소굴 일지>에는 운봉스님을 언급한 대목이 여럿이다. 1928년 3월7일 일기에는 “이 날은 선은사(先恩師, 성해스님)의 칠재(七齋) 입재날이기에 모든 불공을 준비하고 신혜월(申慧月) 정운봉(鄭雲峰) 두 스님의 설법과 서로 법담이 있었다”고 적혀 있어, 당시 선지식들의 교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오전 11시에 (통도사) 백련암에 가서 조실 정운봉 스님께 좀더 오래 살라고 만류하다. 차담을 준비해서 대중과 함께 공양했다.(1938년 8월4일 일기)” “오전 10시에 대웅전에서 정운봉 스님의 설법이 있었는데, 설법중에 법화문답(法話問答)하다(1938년 8월15일)” 등의 내용도 기록돼 있어, 운봉스님의 구체적인 행장이 확인 가능하다. 경봉스님은 1935년 9월 통도사 주지 취임후 백련암 선원 조실로 운봉스님을 추대하고, 매년 공양미를 후원하는 등 각별한 사이였다.

 

○…운봉스님 수행일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원적에 들 무렵 이야기다. 스님은 언제 사바와 인연을 놓을지 미리 예고했다. 오고 감이 자유로운 수좌로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생사에 자재(自在)했음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묘관음사에 주석하며 미질(微疾, 가벼운 질환)을 보일 때 법제자 향곡스님이 법은사와 법담을 나누었다. “스님께서는 돌아가신 다음 어느 곳으로 나가시렵니까” “동쪽 마을 시주네 집에 물소가 되어 가리라” “그러면 소라고 불러야 합니까? 스님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풀을 먹고 싶으면 풀을 먹고 물을 먹고 싶으면 물을 먹느니라.” 법은사와 법제자의 대화가 이어졌다. “스님께서 입적하시는 날은 언제 입니까” “토끼 꼬리가 빠지는 날이다.” 그렇게 법제자에게 원적에 드는 날을 전한 운봉스님은 과연 ‘토끼 달 묘월(卯月)’인 2월 그믐 세연(世緣)을 다했다. 마지막 순간 제자들이 “저희는 누구를 의지합니까” 라고 하자 스님은 육자배기 한곡을 부른 다음 편안히 누웠다고 한다. 또한 향곡스님이 다급하게 “스님”이라고 부르자, 운봉스님은 “나를 불러 뭣 하려는가” 라며 온화한 표정으로 시적(示寂)했다.

 

○…이처럼 운봉스님의 기이한 입적은 이미 법은사 혜월(慧月)스님이 세인들에게 보여준 바 있다. 부산 선암사에 주석하며 대중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했던 혜월스님은 언제나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논밭을 일구고, 짚신을 삼는 등 일상에서 무심(無心)의 경지에 있었다. 노년에 혜월스님은 매일 산에 올라 솔방울을 주워 큰 자루에 담아 내려왔다. 입적에 드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여느날 처럼 솔방울을 주워 내려오다, 항상 쉬는 자리에서 자루를 지고 반쯤 일어난 자세로 열반에 들었으니, 희유(稀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운봉스님이 남긴 시 가운데는 명문(名文)이 많다. 특히 ‘출가(出家)’라는 제목의 시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의 수행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원문과 한글풀이는 다음과 같다. “割斷恩愛處(할단은애처) / 利氣衝天極(이기충천극) / 轄開胸襟時(할개흉금시) / 傾寶施群生(경보시군생)” “모든 은혜 모든 사랑 끊어 버릴 때 / 용맹심은 하늘까지 사무쳤도다 / 가슴속 활짝 열어 해탈하는 날 / 가장 좋은 보배를 중생들에게 보시하리”

 

행 장...향곡스님 등 제자 20명, 한국불교 선맥 중흥

1889년 12월 7일(음력)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정씨(丁氏)였다. 어려서 지혜가 총명하고 사람을 대하는데 마음이 어질어, 어른들의 칭송을 받았다. 13세에 영천 은해사 일하(一荷)스님에게 출가했고, 15세에 사미계를 받은 후 대강백 회응(晦應)스님 문하에서 교학을 공부했다. 23세 되던 해에 부산 범어사에서 대율사 만하(萬下)스님에게 구족계를 수지했으며, 25세 때는 상주 원적사에 주석하던 율사 석교(石橋)스님 회상에서 계율을 익혔다.

 

 

[사진] 운봉성수 스님의 법맥도

 

 

이후 10여 년간 금강산과 오대산 등 명산의 도량을 순력(巡歷)하며 정진에 몰두한 운봉스님은 1923년 장성 백암산 운문암에서 분발심을 내고 공부에 더욱 집중했다. 밤을 낮 삼아 잠 자지 않았고, 공양 하는 시간도 잊은 채 정진한 스님은 마침내 12월 15일 새벽녘에 모든 의심이 사라지는 경계에 도달했다.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스님은 더욱 눈 밝은 선지식을 찾았는데, 이때 부산 선암사의 혜월(慧月)을 만났다. 경허(鏡虛)스님의 상수제자인 혜월스님은 천진무애한 도인으로 선풍(禪風)의 기상을 세상에 널리 펴고 있었다. 선암사에 머물던 어느 날 혜월스님과 법담(法談)을 나눈 뒤 혜월스님이 “나로서는 너를 속일수가 없구나”라며 법을 인가 했다.

그 뒤로 운봉스님은 행각(行脚)에 올라 도봉산 망월사 만일선회(萬日禪會)에 참여해 용성스님과 법거량을 나누었으며 덕숭산 정혜사를 거쳐, 양산 통도사, 부산 범어사, 선산 도리사 등에서 20여 년간 정법의 깃발을 세우고 후학들을 인도했다.


1943년에 부산 기장의 묘관음사로 주석처를 옮긴 운봉스님은 법제자 향곡(香谷)스님에게 법을 전한 후, 1946년 4월14일(양력) 원적에 들었다. 세수 58세, 좌납(座臘) 45세였다. 상수제자 향곡스님을 비롯해 20여명의 제자를 두어, 한국불교 선맥의 새로운 중흥을 이룩했다. 운봉스님의 비는 1977년 부산 기장 묘관음사에 모셔졌다.

 

 

부산=이성수 기자
출처 : [불교신문 2487호/ 12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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