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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91)향곡혜림
언론사 불교신문 (보도일 : 2010.04.24 / 조회 : 5589)
파일 20100424th.jpg  

1960~70년대 “북쪽에는 전강스님, 남쪽에는 향곡스님”이란 뜻의 ‘북전강 남향곡(北田岡 南香谷)’이란 말이 있었다. 향곡스님이 입적하자 성철스님이 형(兄)이라 부르며 애도했을 만큼 존경받는 우리 시대의 선지식이다. 경허-혜월-운봉스님의 정맥을 계승하여 청운납자(靑雲衲子)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 향곡혜림(香谷蕙林, 1912~1978)스님의 수행일화와 법문을 정리했다.


"무명이 눈 가려 생멸 없는 경계를 못 본다"


경허-혜월-운봉 스님의 법맥 계승
봉암사 결사 참여 한국불교 '초석'

 

 



[사진] 향상일구(向上一句)를 투과하여 한국 선의 안목을 진일보시킨 향곡스님 진영.



○…동화사와 묘관음사 등 제방선원에서 납자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한 향곡스님은 분심(忿心)과 신심(信心)을 내어 오직 수행정진에 몰두할 것을 당부했다. 스님은 “정법을 만나 공부하는 사람이면 먹고 입는데 팔려서는 안 된다”면서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것과 같이 간절히 공부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스님의 육성이다. “편하고 잘 먹는 것만 생각하면 도심(道心)이 일어나지 못하고 망상과 분별과 번뇌만 일어난다. 신심과 분심과 의심을 갖고 정진해야 성과가 있다.”


○…한국불교의 정맥을 계승한 향곡스님은 일제강점기에 수행풍토가 퇴색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불법의 진리를 바로 펴려면 출가정신의 회복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성철, 청담, 보문, 자운 스님 등과 함께 결사(結社)를 했다. 이것이 대한불교조계종의 반석이 된 봉암사 결사이다. 스님은 이때 도반들과 공주규약(共住規約)을 제정하고 치열하게 정진했다. 결사 대중의 수행규칙인 공주규약은 모두 18개 항목으로 되어 있으며, 공주강칙(綱則)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가운데 총칙에 해당하는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삼엄한 부처님 계율과 숭고한 조사의 유훈을 부지런히 닦고 힘써 실행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원만하고 빠르게 이를 것을 기약한다.” “어떠한 사상과 제도를 막론하고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 이외의 사견은 절대 배척한다.”


○…봉암사 결사 당시의 일이다. 하루는 성철스님이 향곡스님에게 물었다. “죽은 사람을 완전히 죽여야 산 사람을 볼 것이요, 죽은 사람을 완전히 살려야 죽은 사람을 볼 것이란 말이 있는데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이 말을 들은 향곡스님은 마음이 담벼락에 부딪힌 것 같았다. 이에 스님은 침식(寢食)을 잊고 정진했다. 어느 날 도량을 거닐다 양손을 보고는 확철대오(廓徹大悟)했다. 이 때 지은 게송을 한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홀연히 두 손을 보니 전체가 살아났네 / 삼세의 불조(佛祖)들은 눈 속의 꽃이요 / 천경만론(千經萬論)이 모두 무슨 물건이었던가 / 이로부터 불조들이 모두 몸을 잃었도다.”


○…향곡스님은 키가 180㎝나 되는 장신이었다. 목소리도 자못 호랑이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 건장한 체구의 스님이 말씀을 하면 보통사람들은 그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성품도 직선적이었다. 정진을 게을리 하는 모습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혼을 냈다. 납자들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때로는 장군죽비로 방심(放心)하는 마음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자비심으로 대중을 대할 때는 한 없이 부드러웠다. 공부에는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경책하면서도, 일상에서는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해주었다. 거구의 스님이 미소를 지을 때면 함께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1967년 여름 안거를 회향하는 해제법문을 향곡스님이 할 때 진제스님(현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이 앞으로 나와 질문했다. “불조가 아신 곳은 묻지 않거니와 불조께서 알지 못한 곳을 일러주십시오.” 이에 향곡스님이 답했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니라.” “그것은 불조가 다 아신 곳입니다.” “육육(六六)은 삼십육(三十六)이니라.” 진제스님은 예를 올린 후 물러났다. 다음날 진제스님이 다시 향곡스님에게 질문을 했다.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묻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입니까.”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 “오늘에야 비로소 큰스님을 친견하였습니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관(關)” “옳다. 되었도다.” 법거량이 있은 후 향곡스님은 법맥을 진제스님에게 전해 주었다.


○…원적에 들기 몇 해 전인 1976년 8월22일자 <대한불교(지금의 불교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는 향곡스님이 후학들에게 일러준 공부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화두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스님은 “예전의 조사(祖師)스님들이 모르는 게 화두”라며 의심(疑心)을 일으켜 주었다. 또 “안수정등(岸樹井藤) 이야기에 등장하는 ‘우물에 갇힌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냐”는 질문에 향곡스님은 “박장대소(拍掌大笑)하겠어”라고 말하고는 손뼉을 치고 크게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스님은 이 인터뷰에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육도윤회는 실제로 있는 게야. 현세가 분명한데, 왜 과거나 미래가 없겠어”라며 가르침을 전했다.



향곡스님 어록


“법문이라는 것은 입을 열어서 이야기 하는 것만이 법문이 아니다. 언어의 이전에 알아버리면 더 설할 것이 없는 것이니 더 설할 것이 있다면 도리어 시원찮은 일이 된다.”

“공부는 마음 가운데 미진(微塵)만한 것이라도 걸리는 것이 있으면 다 틀려버린다. 그리고 공부해서 해결한다는 그 길만을 밟아 가야지 그렇지 않고는 미륵이 하생(下生)하도록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입을 열어서 뭐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아무 말 없이 있는 이것을 바로 알고 바로 투과하면 대장부사를 다 마치게 되는 것이다.”

“불법은 누구든지 깨달음으로써 아는 것이지 깨닫지 못하면 천경만론(千經萬論)을 외우고 쓰더라도 큰 힘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오고 가는 것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명이 중생의 눈을 가려서 생멸이 없는 경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의 애도시


향곡스님과 성철스님은 매우 가까운 도반이었다. 향곡스님이 세수 67세로 사바세계와 인연을 다했다는 소식을 들은 성철스님은 한 걸음에 달려왔다. 성철스님은 ‘哭香谷兄(곡향곡형)’이란 애도시를 지었다. 형이라 칭할 만큼 향곡스님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겼던 성철스님의 마음이 담긴 시이다.


         哀哀宗門大惡賊(애애종문대악적)    슬프다 이 종문의 악한 도적아,

         天上天下能幾人(천상천하능기인)    천상천하에 너 같은 이 몇일런가.

         業緣已盡撒手去(업연이진살수거)    업연이 벌써 다해 훨훨 털고 떠났으니

         東家作馬西舍牛(동가작마서사우)    동쪽 집에 말이 되든 서쪽 집에 소가되든.

         ? ? (돌 돌)                                  애닯다!

         甲乙丙丁戊己庚(갑을병정무기경)    갑을병정무기경


         道友(도우) 성철(性徹)




향곡스님 수행이력


선암사, 동화사 조실 역임
진제스님이 법맥 이어받아


1912년 1월18일(음력) 경북 영일군 신광면 토성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원묵(金元) 선생, 모친은 김적정행(金寂靜行) 여사. 속명은 김진탁(金震鐸).

어려서부터 절에 다니길 좋아했으며, 16세에 둘째형을 따라 천성산 내원사에 입산했다. 18세에 성월(性月)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혜림(蕙林)이란 법명을 받았다. 20세에 금정산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운봉(雲峯)스님에게 구족계를 수지했다.

1930년 내원사 조실 운봉스님 회상에서 정진하다 활연대오(豁然大悟)한 후 인가를 받았다. 경허(鏡虛)-혜월(慧月)-운봉스님의 정맥(正脈)을 계승했다. 법호 향곡(香谷)도 이때 받은 것이다. 전법게송은 다음과 같다. “西來無文印(서래무문인) 無傳亦無受(무전역무수) 若離無傳受(약리무전수) 烏兎不同行(오토부동행)” 뜻은 이렇다. “서쪽에서 전래 된 무늬 없는 인장은 / 전할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는 것일세 / 전하느니 받느니를 모두 떠나면 / 해와 달은 함께 동행하지 않으리라.”


 


[사진] 향곡스님과 진제스님이 함께 찍은 사진.



1947년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지키고, 오직 운수납자로 살아갈 것을 발원하며 ‘봉암사 결사’를 주도했다. 봉암사에서 활연대오한 이후 스님은 제방선원에서 수좌들을 바른 길로 인도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노법은사(老法恩師) 혜월스님이 불법을 폈던 부산 선암사 조실로 추대되었다. 이때 스님의 세수 40세였다. 세수 44세에는 정화불사에 동참하여 경주 불국사 주지 소임을 맡았고,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를 중창했다. 정화불사 당시 중앙종회의장으로 한국불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헌신했다. 이어 스님은 48세에 묘관음사에 길상선원(吉祥禪院)을 개원하고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어 사자후를 전했다. 또한 선학원 이사장과 중앙선원 조실,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로 추대되어 명등(明燈)을 밝혔다.

1967년 진제(眞際)스님에게 법맥을 잇도록 한 후, 후학을 지도했으며, 묘관음사에에 머물다 원적에 들었다. 이때가 1978년 12월18일(음력)이다. 세수 67세, 법납 57세. 입적 3일전에 지은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목인(木人)은 고개 위에서 옥피리를 불고 / 석녀(石女)는 시냇가에서 춤을 추도다 / 위음왕불 이전으로 한 걸음 나아가라 / 영원히 밝고 밝아 언제나 수용하리.” 향곡스님의 장례는 전국선원장(全國禪院葬)으로 엄수됐다. 장의위원장은 도반 성철스님이 맡았다. 부도와 비는 부산 묘관음사에 모셨다.


부산=이성수 기자
출처 : [불교신문 2617호/ 4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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