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속으로 걸어나온 선불교…백양사 무차선회
## 서옹스님등 고승 3명, 신자들과 선문답...5개국 학자33명 토론 ##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법회, 무차선회 가는 길. 18일 오후 전남 장성 백양사 초입엔 폭포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만 낭자하다. 서울을 떠날 때 쏟아붓듯 내리던 폭우가 이날 오전부터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끔하게 개고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다. 절에 모인 큰스님들의 법력때문일까. 사천왕문을 들어서자 신자 수천명이 대웅전 주변을 가득 메우고 앉아 있다. 이날 백양사에서 준비한 도시락만 4천7백개.
무차선회 첫날 고승들의 법문에 귀를 기울이는 승려와 신자들.
절 마당에 세워진 대형 스크린에서는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낸 고불총림백양사 방장 서옹(86) 스님의 설법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현대 문명의 위기를 한국의 조사선에 의해 극복할 수 있다.".
'한국선 국제학술대회' 개막행사로 열린 고승대법회. 서옹 스님을 비롯,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혜암(78) 스님, 해운정사 금모선원 조실 진제(64) 스님 등의 법문이 끝난 뒤 신자들과 선문답을 나누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곳에서 부처님도 스님도 보지 못했습니다. 고불총림 임제 스님이 참석하셨다는데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나의 모습이어도 30방, 나의 모습을 투과해도 30방이다.".
중국 임제종을 연 임제 선사의 선풍을 따르려는 서옹 스님에 대해 진면목이 무엇이냐고 묻자 나를 제대로 알아봐도 몽둥이질 서른번, 나를 초극해도 몽둥이질을 하겠다는 뜻인 듯 하다. 힘있게 답변하는 스님에게 신자들은 우레같은 박수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도에 대해 많은 선지식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다운 도는 무엇
입니까.
"미혹과 깨달음을 쳐부수니 하늘과 땅이 밝도다.".
혜암 스님은 1천7백 가지 화두 가운데 일반인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택했다. 진리는 간단하다는 투였다.
--법당 뒤의 백합이 아름답습니다.
"차나 한잔 마시고 가시지요."
진제 스님은 유명한 조주 선사의 화두를 내놓았고, 대중을 향해 큰 소리로 "할"을 했다. 깨우침은 글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을 풀이해달라는 사람들이 답답하다는 듯이.
어둠이 찾아드는 산사의 선방에서도 선문답이 재현됐다. "정신세계를 도외시하고 물신만 숭배한 것이 오늘날 인류 생존의 위기와 IMF 체제를 불러왔어요." 서옹 스님은 차분한 어조로 서두를 뗀다음 "한국 선의 전통을 재정립해 국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대안도 마련하고 인류에도 이바지할 수 있게 하기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왜 한국선인지 궁금했다. "서양 과학문명이 벽에 부딪치면서 동양사상, 특히 선의 붐이 구미에서 일고 있지만, 중국은 선 전통이 없어졌고 일본은 지나치게 학문화했어요. 작년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하와이대의 칼루파하나 교수가 살아있는 한국의 조사선을 세계에 알리자고 제안을 해서 이번에 열리게 됐지요."
손자에게 하나하나 가르쳐주듯 하는 노스님에게 그러면 스님의 경지는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속인의 심사는 어쩔 수 없나보다. 갑자기 방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할."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그래 알아들었어?"
무차선회는 22일까지 한국, 일본, 미국 등 5개국 학자 33명이 참가해 '동북아시아의 조사선 전통', '불성에 관한 견해들' 등을 주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학술대회는 인터넷(http:indra.indranet.net/kobul)으로 생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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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선회: 비구 비구니 신자는 물론 일반인이 남녀노소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만민평등하게 참여하는 불교법회를 말한다. 인도에서 널리 행해진 이 대회는 아쇼카왕과 같은 국왕들이 선사들을 초청해 차별없이 재법을 보시하는 자리에서 비롯됐다. 중국으로 건너와 교단의 중대문제를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토론에 부쳐 결정하는 논쟁으로 발전했다. 한국에서는 1912년 방한암 스님이 금강산 건봉사에서 마지막으로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일보 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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