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파릇파릇한 잔디가 무성한 미국 뉴욕 맨하튼 유니언신학대 교정에 장삼과 가사를 걸쳐 입은 한국 스님이 찾아왔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참선을 지도하는 조실 진제 스님(7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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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스님-폴 니터 교수 뉴욕대담 "자신 바꿔 세상 바꿀 수 있나요" "깨달으려면 눈밝은 스승 있어야" 기사입력 2011.09.18 19:20:00
[사진] 진제 스님과 폴 니터 교수가 16일(현지시간) 뉴욕 유니언신학대 교정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파릇파릇한 잔디가 무성한 미국 뉴욕 맨해튼 유니언신학대 교정에 장삼과 가사를 걸쳐 입은 한국 스님이 찾아왔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참선을 지도하는 조실 진제 스님(77)이다. 한국 대표 선지식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뉴욕에 온 까닭은 무엇일까.
"스님, 이번엔 제가 홈팀입니다." 스님을 뉴욕으로 초청한 폴 니터 유니언신학대 교수(72)가 가벼운 농으로 맞았다. 뉴욕에서의 만남이 일종의 `리매치(rematchㆍ재대결)`라는 말이다.
지난해 12월 31일 니터 교수는 한국 선(禪)불교의 매력에 이끌려 천년고찰 동화사를 찾아 스님을 친견했다. 흰눈이 소복히 내린 동화사 경내에서의 만남은 이례적이고 묵직한 종교 간 대화로 이어졌다.
그 만남의 주인공이 부처의 정통 법맥을 잇고 있는 대선사와 세계적인 신학자였기에 더욱 관심을 끌었다.
그때 첫 만남이 무르익어 둘은 다시 만났다.
▶폴 니터 유니언신학대 교수=스님,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난해 말 제게 주신 `부모에게 나기 전 어떤 것이 참나던고`라는 화두를 계속 열심히 잡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걸 계속 수행하다가 그 화두를 서서히 기독교 화두로 바꾸게 됐습니다. `내가 그리스도교라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심으로요.
▶진제 스님=바른 수행이라 하는 것은 첫째, 안목을 가진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혼자 사견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은 시간 낭비죠. 인생은 오늘 왔다 내일 가는 것인데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오늘도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결과는 생사의 고통을 영구히 떨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니터 교수=스님께 이런 소리를 들을 줄 알았습니다(웃음). 저는 티베트 불교 전통에 따라 은혜를 베푼 스승을 상상하면서 명상을 합니다. 스님께서는 수행을 하시면서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진제 스님=진리의 세계를 수행하면 개인과 사회적 삶은 두 개가 아닙니다. 중생의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꿈에서 깨면 그 꿈이 진실이 아닌 줄 알게 되죠. 그 꿈에 머무를 이유가 없습니다.
▶니터 교수=깨달음에 이르려면 눈 밝은 스승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스승이 없지 않았습니까.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인가 제도 역시 꼭 필요한 건가요.
▶진제 스님=비유를 하나 들겠습니다. 세계적인 도시하면 뉴욕을 꼽지요. 안 가본 사람들은 그 전모를 알 수가 없죠. 그와 똑같은 이치입니다. 진리의 고향에 이르지 못하는 이는 장님과 같아서 동을 가지고 금이라고 하고, 은을 가지고 금이라 할 수 있어요. 금ㆍ은ㆍ동을 가리는 것은 눈 밝은 스승의 몫이죠.
▶니터 교수=세상을 바꾸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자신을 바꾼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나요. 한국 사회 여러 갈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제 스님=세상은 항상 대립각입니다. 지배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요. 도를 닦는 사람들은 정치에 초연해야 합니다. 시비에 말리는 것은 일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도 닦는 근본취지는 깨닫는 게 우선입니다.
▶니터 교수=여러 갈등이 혼재하고 있지만 이미 이 사회는 조화된 세계라는 말씀인가요.
▶진제 스님=진리의 세계는 모든 시비가 끊어진 세계입니다.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자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냉수를 마실 때 물을 마셔봐야 알지 마시지 않으면 무슨 맛인지 모르지요.
(뉴욕=매일경제)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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