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자리
9/11 테러는 자기 믿음만 옳고 다른 믿음은 모두 틀렸다는 몇 안되는 광신도들의 확신에서 잉태되었습니다. 불교 초기 경전인 앗타가바가를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눈먼 믿음을 가진 극단주의적 시각의 유해함을 한탄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오직 나의 믿음, 나의 수행, 나의 인식만 전적으로 옳다는 전제하에 다른 사실은 모두 틀린 논쟁거리로만 치부하는 것입니다.
극악한 종교 테러의 행위인 9/11 테러 10주년을 맞아 저명한 종교 지도자의 이번 뉴욕 방문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것입니다. 이분은 종교적 가르침과 실천의 핵심에 바로 ‘의심’을 놓는 한국선의 큰 스승이신 진제 대선사이십니다.
불교에서는 ‘자기(atman)’라는 개인적 관점을 버림으로써, 적과 친구, 전통과 이단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게 되고 인연으로 조건지어진 세상에 매달릴 것이 없다는 경험에 이르게 됩니다.(무위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진실한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 에 대한 애착조차 버려야 한다고 설법하셨습니다. 한 관점에 대한 애착은 바로 이 집단과 저 집단이라는 분별심의 뿌리가 되어 9/11 테러와 같은 극단적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편견, 증오, 오해의 관점은 테러리스트들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도 우리의 이해와 행동에 영향을 주는 본인의 생각과 감정의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의심’을 통하여 이러한 가치 판단의 벽을 넘어서고자 한다면 우리는 모든 이분법과 불평등을 초월하는 근본 바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국선의 전통은 믿음보다는 ‘의심’을 중시하며 선사님께서도 참구하고 의심하는 자세가 인증된 참선법의 핵심임을 항상 강조하시고 가르치십니다.
선지식들이 말씀하셨던 불경스럽다기 보다는 화려한(다채로운) 다음 말씀들은 기억하십니까? “부처가 무엇입니까?” “꼬챙이에 말라붙은 똥이다.” (운문 선사)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임제 선사)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뜰앞의 잣나무” (조주 선사)
역대 선사들의 불가사의한 말씀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점에 대한 애착을 버리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불교” 또는 “부처님”에 대한 관점조차도 버려야 하는 애착입니다. 한국 선불교에서는 이러한 말씀들을 ‘화두’라고 하며 의심을 키우기 위해, 다시 말해 의정을 일으키기 위해 사용합니다.
한국의 선불교가 서구에 널리 알려진 일본의 임제종의 공안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한국의 간화선은 일본에 앞서 독자적으로 확립된 전통입니다. 진제 선사께서 보여주신 간화선의 참구는 아주 탁월하며 한국선의 스타일은 비파사나(관법)같은 다른 불교 명상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의심을 일으키는 이 화두는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는 갖가지 믿음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의정은 더욱 커지게 되어 마음에 온통 화두가 가득하게 됩니다. 참선인은 모든 것을 잊고 이 의심만이 있으며 결국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이 노력없이도 항시 마음에 화두가 흐르게 됩니다.
선사께서는 초심자들에게 간화선을 가르칠 때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본래 자신의 참모습이 무엇인가?” 화두를 주십니다. 우리가 어머니 배속에 잉태되기도 전에 무엇이 “우리”인가라는 근본 존재의 질문은 더많은 질문을 일으킵니다. 만약 우리의 육체, 생각, 감정, 경험이 없다면 무엇이 자신인가? 우리 마음에서 질문의 강도가 점점 커지고 결국은 의심이 깨어지게 됩니다. 그곳에 자신이라는 제한된 관점이 사라지고 제한없이 무한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9/11 테러 10주년에 ‘의심’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근본 믿음, 우리 자신과 남에 대한 자신의 생각, 옳고 그름, 정통과 이단, 적과 친구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는 한국의 간화선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과 자신의 관점에만 집착하는 방식을 벗어난 또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입니다.
한국 선의 가름침에 따르면 이는 종교의 파라독스입니다 : 진실로 확신을 가진 자는 반드시 먼저 의심을 가져야 한다.
진제선사의 뉴욕방문에 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 jinj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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