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새 종정 진제스님
"참 나는 누구인가, 하루 천만 번 의심하라"
한국 현대불교 대표 선승… 20분 만에 만장일치 추대
14일 조계종 제13대 종정에 추대된 진제 스님이 부처님께 추대 사실을 알리는 고불식(告佛式)을 올리기 위해 다른 스님들과 조계사 대웅전으로 걸어가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큰 지혜를 가진 이는 어리석어 보임이나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함이요. 만인에게 진리를 베풀고 거두는 데 또한 걸림이 없음이로다."
14일 대한불교조계종 13대 종정에 추대된 동화사 조실 진제(眞際·77) 스님은 추대를 받아들이며 이 같은 법어를 내놓았다. 그러면서 "오늘날 세계는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점점 혼탁해가고 있다"며 "어려운 이웃과 고통받는 중생이 있는 곳에 우리 모두가 아픔을 함께하며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를 실천함으로써 오늘 이 시대 정신사의 향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종 최고 어른으로서 앞으로 종단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이같이 강조한 것이다.
이날 진제 스님을 조계종 새 종정으로 추대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여분.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20명과 총무원장, 종회의장, 호계원장 등 23명이 참석한 이 회의에선 진제 스님 한 사람만 후보로 추천됐고, 다른 의견이 없어 만장일치로 추대에 합의한 것. 한 참석자가 "다들 놀랐다"고 하는 분위기였다.
진제 스님은 한국 현대 불교의 대표적 선승(禪僧) 중 한 명이다. 1934년 경남 남해 출생인 스님은 1953년 "이생에는 사바세계에 나오지 않은 셈치고 범부(凡夫)가 부처되는 중놀이 한번 해보지 않겠는가"라는 은사 석우(石友) 스님의 말씀을 듣고 해인사로 출가했다. 그에게 여러 화두(話頭)를 주고 깨달음의 길로 이끈 이는 향곡(香谷) 스님. '입으로만 나뭇가지를 물고 벼랑에 매달렸을 때 아래를 지나던 다른 스님이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었을 때 어찌 해야 하는가'라는 뜻의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라는 화두를 받아 타파하는 등 용맹정진한 끝에 1967년 향곡 스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았다고 한다.
선승이지만 스님은 선방에만 머물기보다는 전법(傳法)에도 활발히 나서 1971년 부산 해운대에 해운정사를 창건해 현재 부산의 대표적 도심사찰로 키웠다. 한편으로는 해운정사와 대구 동화사, 조계종 기본선원의 조실(祖室)을 맡아 끊임없이 수행자들을 지도했다. 요즘도 "내가 시어머니 노릇 해야 스님들이 본을 받는다"며 새벽 2시 반에 기상해 새벽 3시 예불에 참석하는 그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참나를 찾으라"이다. 외국의 수행자·학자들과의 만남도 거침이 없다. 지난 8월 동화사를 찾은 서구 불교학자들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묻자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이던고'. 이 화두를 들고 하루에도 천만 번 의심을 밀고 나가야 한다. 방앗간 기계도 시동이 걸려야 곡식을 빻듯이 이 일념이 지속돼야 한다"고 했다. 지난 9월엔 뉴욕을 찾아 폴 니터 교수 등 세계적 종교학자들과 선문답(禪問答)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렇듯 승속에 구분을 두지 않고 참선 수행을 지도하며 간화선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위해 노력해온 그는 인천 용화선원 선원장 송담(松潭·82) 스님과 함께 불교계에선 '남(南) 진제, 북(北) 송담'으로 불린다.
진제 스님은 '돌사람 크게 웃네(石人大笑)', '石人(석인)은 물을 긷고 木女(목녀)는 꽃을 따네' 등의 법문집이 있으며, 지난달 영문 법어집 '마음을 열고 빛을 보라(Open the Mind, See the Light)'도 펴냈다. 새 종정의 임기는 내년 3월 26일 시작된다.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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