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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터뷰] 중이 싸우지 스님은 싸우지 않는다
언론사 중앙일보 (보도일 : 1998.12.29 / 조회 : 4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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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큰스님 禪문답<6>-부산 해운정사 조실 진제선사

 


"중이 싸우지 스님은 싸우지 않는다"

 


 

 


현실 외면한 도피ㆍ은둔, 진정한 禪과는 거리 멀어

천 명이 먹고 남을 밥도 다투면 세 명에게도 부족

 

 

문 : 얼굴을 보니 이름을 듣던 것만 못하군요.

답 : 용전이나 좀 내놓게나.

문 : 귀만 가졌으니 화상(和尙)의 높은 뜻이나 들려주시구려.

답 : 절름발이 자라가 눈썹을 치키고 저녁 바람을 맞는다.

문 : 얼굴을 대해도 서로 알지 못하나 천리에 부는 바람은 역시 같은 바람입니다.

답 : 어억! (喝)


 

<선림(禪林)에서는 한번 겨뤄보고자 할 때 자못 이죽거리는 투로 상대방을 찔러본다. 자자한 명성을 걸고 들어가자 진제선사는 질문을 아예 무시해 버리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대답은 그 정도 수준이면 이 진제라는 산승(山僧)의 현존(現存)과 에너지의 장(場)을 볼 수 있을테니 진제의 영혼에 대해선 걱정 말고 먹고 살 돈이나 내놓으라는 반격이다.

 

문답의 클라이맥스인 두 번째 거량(擧揚: 禪理에 관한 문답)의 '화상'은 지혜와 덕을 갖춘 비구를 일컫는 존칭이다. 진제선사의 대답은 비록 산 속에 살고 있지만 결코 세속을 버리지 않겠다는 다부진 의지를 밝힌 상징적 표현이다. '절름발이 자라'는 현실을 망각하려는 백이ㆍ숙제(伯夷叔齊)의 은둔이나 극락을 앞세운 사후 내세관으로 현실속 고통을 호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선승들을 일단 '불구자(不具者)'로 비유한 것이다.

 

저녁 바람은 거센 세파의 상징이다. 흔히 비정상의 도피주의적인 삶처럼 보이는 동아시아 선불교의 낙천성과 안빈낙도는 지극히 내세관에 치우쳐 있는 인도불교와는 전혀 다른 현실 인식을 가지고 있다. 선방에서 유거(幽居)와 무소유의 삶을 즐기는 선승들의 낙도(樂道)는 언제나 현실세계와 연결돼 오늘의 이 현실을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진제선사가 갈파하고자 하는 선법(禪法)도 바로 이것이다.

 

맨 끝의 '할'은 눈과 귀, 높은 뜻과 얕은 뜻으로 구분하고 있는 질문자의 분별심(分別心)이 일으키고 있는 번뇌 망상을 단칼에 깨부수는 선가(禪家)전통의 단진법(斷盡法)이다.>

 


문 : 화상의 성씨는 무엇입니까?

답 : 이 때다.


 

<물음의 성씨는 통상의 속성(俗姓)이면서 진제선사의 뿌리, 곧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상징한다. 그런데 성씨가 '이 때'라니 참으로 엉뚱하다. '이 때'라는 성은 이 세상엔 없을 건만 같은데 말이다. 우선 정답부터 말하면 '한(韓ㆍ寒)'씨다. 이때(12월)는 날씨가 몹시 추운 겨울철이다. 겨울철은 추우니 한(寒)이고 이런 성은 없지만 성의 한(韓)도 발음은 같다. 원래 승려들의 성은 모두 석가모니를 따라 석(釋)씨다. 부모 형제도 다 버리고 출가하는 순간 승려의 속성은 자동으로 없어진다.

 

진제선사의 원래 성씨는 임(林)씨지만 자신의 행장(行狀)을 밝힌 저서에까지도 일체 속성(俗姓)을 쓰지 않는다. 따라서 한씨라는 성은 그가 성씨를 빗대 이 추운 겨울에도 봄이나 여름과 똑같이 지금(Now), 여기(Here), 주체적 자아(Self)로 실존하고 있다는 확고한 선의식(禪意識)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문 : 어떤 것이 세상에서 가장 고맙고 기쁜 일입니까?

답 : 부산 시내 청소부들과 김해 들판 농부들이다.


 

<선사들은 하나같이 대체로 우주가 선물하는 삼라만상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육체적 생명이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는 자신의 실존을 가장 고마운 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 홀로 대웅봉 꼭대기에 앉아 있다."고도 하고 "내가 여기에 있노라"고도 한다. 그러나 진제선사는 직접 화법을 피해 청소부와 농부의 실존적 삶을 제시하는 간접 화법을 택했다.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는 쓰레기를 기꺼이 치우는 일을 하지만 즐겁게 살면서 소년소녀 가장ㆍ불우 노인 등을 돌보는 청소부들을 적지 않게 본다.

 

또 농부와 청소부들은 그렇게 많은 호화 가구들을 탐하지도 않고 불행한 일을 맞아도 겸손히 자기 탓이라며 모든 권한과 책임을 자신에게로 귀결시키는 선적인 윤리관을 가지고 산다. 조사선(祖師禪)은 이처럼 도덕적 행위와 종교적 행위를 둘이 아닌 하나로 통일시킨다.>


 

문 : 어느 큰 부잣집에 쇠솥이 하나 있는데 그 솥의 밥은 세 사람이 먹어도 부족한 반면 천 명이 먹고도 남는다는데 어찌된 일입니까?

답 : 다투면 부족하고 양보하면 남는다.(爭卽不足 讓卽有餘)


 

<마음을 완전히 비워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허공과 같은 융통성을 갖는 상태가 역설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심족(心足)이다. 이러한 심족의 경지에서는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욕심을 적게 갖는 것(少慾知足)이다. 우리는 흔히 선사들의 심지법문(心地法門)을 패배주의적인 자포자기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선은 현실을 버리고 이상에 떠도는 은둔이나 도피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래서 번뇌를 보리(菩提)로 만들어 쓰고자 하는 선의 윤리관은 세속 사회를 구원하는 하나의 훌륭한 제도(濟度)방법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진제선사가 말하는 '소욕지족'의 생활철학도 바로 이러한 선적 윤리관이며 오랜 선방의 전래 덕목인 음덕(陰德: 주어진 자원이나 물품을 낭비하지 않는 절약정신)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행동지침이다.>


 

문 : 유(有)를 깨달은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답 :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유를 깨친 사람이란 일체 사물의 본질이 공이라는 사실을 철견(徹見)하고 현실로 돌아와 만물의 실상을 진리당체로 보되 현상계에 집착하지 않는 도인을 말한다. 그런 사람을 부모와 아라한을 살해하거나, 승단의 화합을 깨거나, 부처의 몸에 유혈 상처를 입힌 5역죄(五逆罪)를 범한 자들이 가는 미세한 틈도 없는 영원한 지옥으로 가라니...

 

이는 불도(佛道)와 하나가 된 사람이면 그가 없는 곳이 없어야 한다는 '도무소부재(道無所不在)'를 설파한 비유법이다. 무간지옥의 중생도 원천적으로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佛性)을 가지고 있다. 진정 도가 높다면 이들부터 구제해야 한다. 선은 가장 비천한 것을 빌려 가장 고귀한 것을 드러내는 역설적 상징법을 전매 특허품처럼 사용한다. 부처가 '마른 똥막대기'라는 화두도 이같은 상징법의 하나다.>


 

문 : 스님이 속하신 조계종단의 종권분규와 관련한 승단 폭력사태가 외국언론에까지 보도돼 세계화했는데...

답 : 중이 싸우지 스님은 싸우지 않는다.


 

<중(衆)은 부처님을 따르는 무리를 뜻한다. 구약시대의 기독교에서도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오클로스(무리)라 했다. 그러나 이 고상한 의미의 '중'이 조선시대 승려들을 천시하는 비하어(卑下語)로 둔갑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진제선사의 대답은 참으로 부처님을 따르는 승려라면 폭력행위는 있을 수 없다는 단호한 부정이다.>


 

문 : 세상 모든 소리가 부처님 설법 소리라는데 똥ㆍ오줌 누는 소리도 부처님 소립니까?

답 : 그렇다.


 

<돌과 바위 같은 무정물도 설법을 한다는 이른 바 '무정설법(無情說法)'이라는 화두를 묻자 그는 역시 비천한 것을 빌려 고귀한 것을 나타내는 선의 상징법을 그대로 긍정했다.>


 

문 : 해운정사 식사공양에 빠지지 않는 밑반찬은 무엇입니까?

답 : 방(棒)과 할(喝)이다.


 

<질문은 진제선사의 가풍(家風)을 물은 것이다. '방할'은 특히 임제선(臨濟禪)의 사가(師家)들이 제자를 교육시키는데 전통적으로 사용해오고 있는 제접(諸接)방법이다. 방은 '몽둥이 찜질'인데 지금도 선방에서 규칙을 어기면 장군죽비라는 큰 대나무 판대기로 등짝을 사정없이 내려친다. 할은 고막이 터질 정도의 고함소리다.

 

동아시아 선림은 1천2백년 동안 방할의 고성이 산천을 울려왔다. '방'은 덕산선감선사(서기 782~865)가 "옳게 말해도 30방, 틀리게 말해도 30방을 때리겠다"고 한 데서부터 유명해졌고, '할'은 임제의현선사(?~866)가 제자들의 물음에 고함을 지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데서 비롯했다.

 

'덕산방 임제할(德山棒 臨濟喝)'이라는 성구로 선가에 회자돼 오는 이 교육방법은 제자들의 상대적인 분별심을 일거에 박살내 유와 무라는 이변(二邊)을 버리고 일체사물의 본질인 공의 한 가운데 서 있도록 하는 효과를 갖는다.

 

요사이 학생들을 때리는 스승의 매를 금지시키자 논란을 빚고 있는 세태속에서 아직도 방할절류(棒喝截流)를 자랑하는 진제선사로부터 야릇한 아이러니를 느꼈다. 조실방을 나와 상선당(上禪堂 : 승려들 참선방)과 하선당(下禪堂 : 신도들 참선당)을 둘러보고 해운정사를 나왔다.

 

 

대담=이은윤 종교전문위원
출처 : [중앙일보 1998년 12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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