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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이작 뉴턴 - 엄청난 집중력의 소유자
등록일 2013.07.14 (조회 : 3534)

 

 

아이작 뉴턴(Isac Newton:1642~1727)
-영국의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역사의 체계를 확립한 근대 정밀 과학의 아버지.
-울즈소프의 농가에서 태어나, 166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했으나 1665년 페스트가 번져 귀향. 이때 세 가지 큰 발견(빛의 스펙트럼, 만유인력, 미적분)에 착안함. "광학"(1704),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 등의 저서가 있다. 런던에서 조폐국 감사와 국장을 거쳐 1703년에는 왕립 협회 회장을 지냈다. 과학계의 최고의 천재로 손꼽히며 특히 엄청난 집중력으로 유명하다. 

 

■ 초인적인 집중력

  영국의 물리학자인 동시에 수학자요, 17세기의 과학 혁명을 이룩해 낸 인물 뉴턴은, 그야말로 과학계의 최고의 천재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하고는 완전히 거리가 먼 사람,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하고는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으로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험이나 견해로 뉴턴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해도 소용이 없다. 이는 어떤 전기 작가가 한 말이다.
  이 말은 마치 뉴턴은 다른 사람들과의 공통점을 전연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말이다.
  그렇지만 뉴턴 역시도 한 사람의 인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말하자면 신이라든가 초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뉴턴은 그렇듯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또한 물리학 및 수학의 연구로 말하자면 과학의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큰일을 할 수 있었을까.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그는 다음처럼 대답했다고 한다.
  "그것은 발견해 낼 때까지 언제까지고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와 같은 문제를 앞에 제시해 놓고 새벽에 한 줄기 빛이 비쳐 들어와 그것이 점차 밝아져서 정말로 분명해질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습니다."
  한마디로 바꾸어 말하면 계속해서 집중력을 쏟아 넣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떤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모든 정신력을 집중해 언제까지고 생각하는 일, 그것이 뉴턴이 천재가 될 수 있었던 비밀이었던 것이다.
  어떠한 하나의 일을 하면서, 이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이 해놓은 일의 결과란 허술한 것이 되거나 몹쓸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일이든지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부실한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는 그러한 집중력을 어느 정도로 계속해서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는 길어 봤자 2시간 내지 3시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뉴턴의 경우는 보통 4시간  이상 지속시킨 점으로 봐서 특수했던 것이다.
  뉴턴의 생애 가운데 집중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었던 시기가 두 번 있었다.
  그의 최초의 절정기는 22, 23세경이었다. 이때 집중력의 절정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 무렵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생이었는데, 다시 런던의 중심으로 그 주변에 페스트가 크게 유행해 대학이 잠정으로 폐쇄되기 때문에 뉴턴은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 쉴 수밖에 없었다.
  그 휴가는 약 18개월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 휴가 동안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영원히 남길 만한 세 가지의 큰 발견을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18개월 동안 몇 가지 일에 대해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 끝내는 자신이 목적했던 일을 이룩해 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 세 가지의 큰 발견

  세 가지의 큰 발견이란 만유 인력의 법칙을 비롯해서 미적분학과 태양 광선의 성질에 관계되는 발견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위대한 업적이었다는 점은, 그 중 어느 한 가지만 보더라도 다른 과학자로서는 평생을 다 소비한다고 해도 될까말까하는 내용이었다는 데 있다.
  그 세 가지 위대한 발견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먼저 태양 광선에 관한 연구로는, 그가 프리즘을 통해서 본 태양의 빛이 일곱 가지 색으로 나누어진다는 것과, 이것이 다시 프리즘에 이르게 되면 당초의 흰빛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렇듯 따지고 보면 대단히 간단한 일 같지만, 뉴턴 이전에는 그 누구도 실험해 본 일이 없었던 일이다. 후에 그는 이와 같은 실험을 중심으로 빛의 각종 성질에 관한 연구서인 "광학"을 저술해 냈다.

  그의 미적분학은 쉽게 말하면 변화의 정도 내지는 곡선으로 둘러싸인 면적을 구하는데 필요한 수학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에는 수학에 국한하지 않고 물리학에 있어서도, 예를 들면 물체의 운동 등을 설명하는 데는 빼놓을 수 없는 법칙이 되어 있으며, 말하자면 과학 전반에 대해서 크게 공헌했던 것이다.
  뉴턴이 이를 발견해 낸 것은 1665년 여름경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후에 독일의 철학자인 라이프니츠와 누가 먼저 발견했는가의 논쟁이 벌어져 쌍방이 서로 상대방을 비방 혹은 중상한 모양이며, 성질이 급한 뉴턴은 자신의 명예가 상당히 손상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이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에 이를 각각 발견해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호칭에 있어 미적분이라고 한 것은 라이프니츠였으며 뉴턴은 이를 '유율법'이라 불렀다.
  또한 만유 인력의 법칙에 대해서는, 철없는 어린이들이, "야, 너 사과가 왜 떨어지는지 아니?"하고 질문하면, 또 한 아이가, "그것도 모를 줄 알고. 땅에는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서 사과가 떨어지는 거야"하고 대답하듯이 간단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뉴턴이 당시를 회상하며 친구에게 한 이야기를 단순화한 것으로 그렇듯 간단히 처리해 버릴 내용이 아니다. 그 무렵 뉴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행성이나 달 같은 것의 운동에 관계되는 문제가 있었다. 사과는 지구의 인력으로 떨어진다고 하고, 그렇다면 달도 역시 지구에게 끌리지 않는가. 그런데도 어째서 달은 지구를 향해서 떨어져 내려오지 않는가?
  행성의 운동에 대해서는 이미 케플러(J. Kepler)의 법칙을 비롯해, 지상에서의 물체의 운동에 대해서는 갈리레오(G. Galilei)의 연구가 있었다. 그렇지만 뉴턴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계기로, 이들 선인들의 연구를 발판으로 해서 이 지상의 물체에도 행성과 똑같이 해당되는 법칙이 무엇일까 하고 찾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발견해 낸 것이 바로 두 개의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인력이란, 두 개의 물체의 질량의 곱에 정비례하며, 두 개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하는 그 유명한 만유 인력의 법칙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뉴턴이 두 번째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절정기는 언제였을까?
그 시기는 최초의 절정기로부터 약 20년 후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그 무렵 영국에는 1660년에 만들어진 왕립 협회라는 명칭의 협회가 있었는데, 뉴턴도 그 회원의 한 사람이었으며 나중에 회장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 협회의 사무국장인 후크(R Hooke;후크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는 과학자)가, 왕립 협회의 회장인 렌(C. Wren)과 또한 천문학자인 핼리(E. Halley;핼리 혜성을 명명한 과학자)도 동석한 자리에서, 인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법칙에 따라 운동한다는 말을 했다. 즉 뉴턴이 발견한 것을 그 역시도 발견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후크는 이를 수학적으로는 증명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미적분학 등 수학에 있어 탁월한 뉴턴이라면 그 문제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뉴턴을 방문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뉴턴은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일반적으로는 프린키피아(Principia)라 부름)를 저술해, 이미 발견한 만유 인력의 법칙을 필두로 운동의 법칙 및 천체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한 수학적인 방법 등에 대해 서술했다. 이에는 18개월이 소요되었다. 이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쉽게 독파하기 어려운 동시에 이해하기 힘든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인류에게 새로운 과학의 시대를 열어 준 그와 같은 대작을 불과 18개월 만에 완성한 것이다.
  이는 다른 과학사가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렇듯 단기간에 그처럼 방대한 양을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초인적인 집중력을 경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그 내용은 복잡했으며 또한 치밀하기도 했다.

 

 침식을 잊고 연구에 몰두

  그는 26세 때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가 되었지만, 그렇듯 위대한 세 가지 발견을 '평상시 늘 생각하고 있음으로 해서' 이룩해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온 정력을 투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들 위대한 발견을 공표할 의사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들 미적분학과 광학에 대해서는 얼마 후 논문도 썼으며 대학에서 강의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만유 인력의 법칙에 대해서는 자그마치 20년 동안이나 공표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세상 사람이 일반적으로 원하고 있는 명예 같은 것에는 전연 무관심했던 것 같다.
  라이프니츠와의 논쟁에서 크게 화가 난 것은 라이프니츠한테서 미적분학을 표절했다는 부당한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집필하고 있는 동안, 그가 어느 정도로 열중했는가에 대해서는 그의 비서라든가 친구들의 증언이 여럿 있다.
  그 무렵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구내에 있는 교수 사택에서 살고 있었으며, 청소라든가 식사 시중은 가정부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가정부가 침대를 바로잡기 위해 들어가 보면, 전날의 저녁 식사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그런데 뉴턴의 건강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 비서로서는, 어떻게 뉴턴으로 하여금 식사에 대해서 생각나게 해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게 하는가 하는 문제가 커다란 고민거리였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고 일에만 몰두하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일에 열중했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고 뉴턴의 일상 생활 그 자체였다. 물론 뉴턴 역시도 사람이므로 공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런 경우에는 결코 앉아서 서서히 하지 않고, 선 채로 해치우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한시도 잊은 적이 없으며, 정원을 산보하다가도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내 자기 방으로 달려가 책상 앞에 선 자세 그대로 메모를 하곤 했다. 또한 때로 친구들이 찾아오는 경우에도 일에만 정신이 팔려 친구가 찾아와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먹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위대한 발견을 하자면 당연히 그만한 집중력과 노력이 필요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이는 보통 사람이 쉽게 체험할 수 없는 노력이다. 게다가 혼자 있어야 되는, 즉 고독의 조건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경우는 역시 위대한 발견을 한 아인슈타인에게도 적용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사색을 하는 한편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메모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는 종일토록 서재에 파묻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식사까지 서재로 가져오게 해 먹고 지내는 시간이 2주일이 지났다.
  그런 어느 날 그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서재에서 뛰어 내려와, "자, 바로 이거야" 하며 종이 쪽지를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그 것이 바로 상대성이론이었다고 한다. 이는 채플린이 쓴 자서전 속에 아인슈타인 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뉴턴 역시도 아인슈타인처럼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아인슈타인의 경우 피아노와 같이, 극도의 정신 집중에 대한 기분 전환이 필요했던 것이다.
뉴턴에게 있어 기분 전환이 되는 것은 화학 실험이었다.
  이런 점에서는 "자본론"을 저술한 마르크스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는 피로한 머리에 휴식을 주기 위해서 고등 학교 수학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그런데 뉴턴이 기분 전환을 위해 한 화학 실험이란 사실 연금술이었다고 한다.
이 연금술은 중세 이후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서, 그가 죽은 후에 보니, 방대한 양의 노트에 연금술에 관계되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케인스 같은 경제학자는 그를 가리켜 '최후의 마술사'라 명명했을 정도다.
  뉴턴은 후에 조폐국장이 되었으므로 연금술이 좋지 않은 소문을 낳게 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 두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열등생이었던 중학 시절

  그는 그 밖에도 신학과 성서에 관한 노트도 많이 남겼으며, 그 쪽 방면에 물리학 이상으로 많은 정력을 소모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이 뉴턴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대상에 철저하게 집중할 수 있는 특성을 갖춘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특성은 어릴 적에 이미 나타나 있었다.
말하자면 넋을 잃은, 즉 방심 상태에 사로잡히는 기묘한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 학교를 말을 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가파른 언덕길이 앞에 나타나자, 말에서 내려 끌고 갔다. 그런데 가파른 길이 다 끝나고서도 그는 말을 타는 것을 잊어버렸을 뿐 아니라 고삐줄을 쥐고 있다가 고삐줄이 말에서 벗겨진 것도 모르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달걀인 줄 알고 그만 시계를 냄비에 집어넣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뭔가 하나의 일에 골몰하면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리는 방심 상태가 되는 모양이었다. 이를 옆에서 목격하게 되면 그야말로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중학 시절에는 침착성이 없으며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으로 간주되어, 학급에서의 성적도 최하위급이었다고 한다.
어린이용 위인전에서는 열등생이라고 주위에서 구박을 받던 뉴턴이 어느 날 자신을 구박하는 상대방을 때려눕히고, 그때부터 자신이 생겨 공부도 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를 강조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 것 같다.
  이렇듯 학교의 성적과 천재로서 이룩해 낸 업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그가 지닌 남다른 집중력은 유년 시대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한 그의 두뇌도 한때 이상이 초래된 적이 있었다. 그의 나이 50세경의 일로서 친구들에게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혔다고 여겨지는 기묘한 내용의 편지를 썼기 때문에 정신 착란이라는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그 후 조폐국장으로서 훌륭하게 직무를 수행해 낸 것을 보면, 병은 분명히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그의 정신이 착란의 시련에 노출된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었다.
  발병의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문제의 "프린키피아"를 완성시킨 지 얼마 후부터 시작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지닌다. 아마도 뉴턴이 지나치게 두뇌를 혹사했기 때문에 정신의 균형을 잃었던 것 같다. '초인적인 집중력'이라고 했지만 초인이 되려면 인간으로서의 뭔가를 잃지 않으면 안 되었던 모양이다.

 

고독은 천재의 학교

  고독감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노인들만의 일이 아니다. 소년 역시도 고독하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어린 나이에 뉴턴이 그 얼마나 고독에 시달렸는가 하는 것은 20세기경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죄를 고백한 기록에서 알아낼 수가 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죽여 버리고 그 집 또한 불살라 버리겠다고 위협하려 한 일."
  "누군가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뉴턴은 어떻게 해서 '초인적인 집중력'을 몸에 익히게 된 것일까.
  최초의 유력한 계기는 그의 고독했던 유년 시대이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3개월 전에 사망했으며, 어머니는 그의 나이 3세 때 목사와 재혼하여 집을 버리고 떠났다. 어린 뉴턴은 외할머니와 단둘이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고독한 생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뉴턴을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은 목사가 아이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목사가 8년 후에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그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동안 어린 뉴턴은 어머니하고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놀이 친구도 없이 외할머니와 단둘뿐인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뉴턴의 어린 시절 8년 동안을 함께 지낸 외할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외할머니가 어린 뉴턴으로 하여금 어리광을 부리게 했는지, 혹은 엄격히 키웠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것 전하는 내용이 없다.
  3세부터 11세까지라는 기간은 인간의 개성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아마 그는 외할머니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받은 거 같지 않다. 그의 인간성 형성, 특히 그 '초인적인 집중력'을 갖추는 데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그의 유년 시대의 고독의 체험이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재혼해 살고 있던 교회는 뉴턴이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집으로부터 약 2.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그 교회의 탑을 집에서 볼 수가 있었다. 그 탑을 바라볼 때마다 죽여 버리고 싶다고 하는 험악한 생각이 용솟음쳤다는 심리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는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어머니와 함께 자신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 간 사나이에 대해서도 미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이다. 참아내기 어려운 고독 속에서 그렇듯 험악한
생각은 더욱더 강해지기만 했던 것 같다.
  고독이란 인간에게 있어 하나의 시련인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키워 주게 되는 다시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가 태어나 자라온 집, 여기저기에 그가 새겨 놓은 해시계가 많이 남아 있다. 집 안으로 비쳐 들어오는 태양의 빛의 각도가 미묘하게 변화하는 일에 흥미를 느껴 계속 새겨 놓은 것으로, 이와 같은 어릴 적 관심이 후에 광학의 대한 연구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그는 또한 수차 등의 모형을 조립하는 일을 좋아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혼자서 언제까지고 싫증을 느끼지 않고 손끝을 사용하는 놀이에 몰두하는 어린 뉴턴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훈련된 재치 있는 손놀림이 후에 렌즈나 프리즘을 다루는 일에서는 런던의 모든 장인의 우두머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솜씨로 자라게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고독이라는 시련 속에서 그런대로 지루해하는 일없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발견하고 공부하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집중력을 키우게 된 것이다.
  목사와의 사이에 태어난 3명의 제매를 데리고 어머니가 돌아왔으므로 집안은 갑자기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지만, 이미 형성된 뉴턴의 개성과 행동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초등 학교 시절부터 대학 시절에 이어 대학 교수 시절에 이르도록 같은 시대의 사람들은 그를 친구 한 사람도 없는 가운데 말이 없고 생각이 깊은 형의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음의 안쪽으로 눈을 쏟아, 그곳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특별히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가장 행복한 경우란 자기 혼자 있으면서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는 시간이다.
  뉴턴은 유년 시대에 강요된 고독을 견뎌내기 위해서 그와 같은 생활 관습을 몸에 익히게 되었으며, 그것이 그의 인생 항로를 결정했던 것이다.
  고독을 좋아하는 이와 같은 뉴턴의 특성은, 실은 위대한 사상가라든가 예술가 등 세상에서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특성이다.
이에 대해서는 "로마 제국 쇠망사"를 저술한 영국의 역사학자인 기번(E. Gibbon)이 다음과 같이 요약한 말이 있다.
  "고독은 천재의 학교이다."
  "그는 자기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 정도로 자기 혼자서도 충분한 사람은 볼 수가 없습니다."
  뉴턴을 평한 같은 시대 사람들의 증언이다. 그는 그야말로 '자급자족'형의 인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뉴턴의 그 3대 발견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멀리 떨어진, 자기 고향인 시골에서 누구하고도 의논할 일 없이, 또한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행해졌던 것이다.
  가령 영국에 페스트가 유행되지 않고, 그리하여 대학이 폐쇄되는 일도 없고, 고향에서 휴가를 보낼 일이 없었다면 과연 이와 같은 위대한 발견이 가능했을까. 이것은 한 번 의심해 볼 만한 일이다. 한편 대학 교수가 된 다음부터는 강의도 해야 했다. 말하자면 18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그의 84년 3개월이라는 긴 평생을 통해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오랜 휴가 기간을 통해서 고독한 생활을 하면서도 이에 대해 전연 염증을 느끼지 않은 점, 이것이야말로 그의 특징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은 뉴턴뿐만 아니라, 그 밖의 많은 천재들의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말하자면 천재들이란 거의 비슷한 공통점의 일명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자기 자신 속에 깊이 파묻혀 들어가고자 하는 욕구는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만 갈 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완전히 고독한 등대지기와 같은 생활이 과학자에게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또 하나의 예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기의 예술가인 미켈란젤로를 들 수 있다. 그는 작품의 제작 과정을 절대로 남에게 보여 주지 않았고, 일단 일에 착수하게 되면 절대로 남과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여러 차례 일의 의뢰를 받고서도 교황에 대해서까지 자신의 작업장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했을 정도이다.
  한 번은 교황이 꾀를 내어 그의 조수로 변장을 하고 그의 작업장으로 들어간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미켈란젤로는 용케도 이를 알아차리고는 널빤지를 집어던져 밖으로 쫓아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뉴턴의 경우에는 미켈란젤로가 취한 행동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면 미켈란젤로보다 한층 더 심한 비밀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이 연구해서 발견한 업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로 일관했다. 그렇지만 의식적으로 비밀을 지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도대체가 자신의 연구 업적에 대해서 이를 공표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비밀주의자라기보다 무관심한 사람이었다고 평하는 것이 옳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런 것을 세상에 발표해 과학자로서의 명예를 얻고자 하는 욕심이 전연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것이 비록 위대한 발견이라 하더라도 자기 혼자만 알고 있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남의 시선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다. 남이 뭐라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뚜렷한 특성이요, 성격이라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무관심주의는, 남이 자신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기를 원한다.
뉴턴이 연구 성과에 대해서 이를 비밀로 해둔 것은 남과의 관계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실제로 그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예의 "프린키피아"의 제 1 편과 제 2 편이 출판되었을 때 만유 인력의 법칙의 발견에 대한 선취권을 중심으로 로버트 후크로부터 비판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뉴턴은 그와 같은 번거로운 일에 대해서는 일체 관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예정되어 있던 제 3 편의 출판을 중단하려고까지 하였다. 결국 친구의 주선으로 그 사건은 일단락되어 제 3 편을 출판하게 되었지만, 본래 뉴턴으로서는 학자로서의 업적을 인정받는 일 같은 것에는 전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 혼자로서 충분했던 것이다.

 

 여성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인간이란 그 누구든지 이성을 생각하지 않고 지낼 수 없다. 그것도 사춘기에 접어든 후부터는 상대방의 일거수 일투족에 시선을 쏟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이성에 관련된 문제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프로이트의 유아 성욕설을 거론할 필요까지도 없이 인간의 본능 중 성욕이란 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물의 세계에 있어서도 짝짓기를 위한 동물들 사이의 투쟁이 엄청나며 때로는 처참한 상황으로까지도 발전하게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어울리는 배우자를 얻기 위해 이성에게 편지를 쓰고 데이트를 청하며 또는 뒤를 쫓아다니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다.
  그 결과 결혼하여 새 가정을 꾸리고 잠자리를 같이하며 살아가는 동안에, 이번에는 의견의 불일치, 성격의 부조화 등으로 부부 싸움을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많이 발생하며 또한 그만큼 시간을 뺏기게 된다. 그런 동안에는 다른 일을 할 생각도 나지 않고 그와 같은 복잡한 일에 매달리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고, 결혼하게 되면 자식을 낳게 되어, 그 양육의 문제, 교육의 문제 등에 대해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며, 많은 시간을 다시 빼앗기게 된다.
  근래에 와서 독신으로 사는 남자나 여자의 수가 증가 추세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자녀에 대해서는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있는 것도, 자녀로 해서 생기는 갖가지 번거로운 일을 두고 빗대서 한 말일 것이다.
  그런데 뉴턴은 평생을 두고 독신으로 지냈다. 여성하고는 전연 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젊었을 때도 사랑한 여자 하나 없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뉴턴은 여성에 의해 마음이 혼란해진 적도 없으며 따라서 공부나 연구에 전연 지장을 가져다 줄 일이 없이 살아갔다. 다시 말해서 그는 여성에게서 완전히 해방된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생을 살았던 것이다.
  20대 중반이라고 하면 남성은 여성 문제에 의해 가장 마음이 어지러워지기 쉬운 연령이다. 바로 그런 나이게 그는 이성의 문제로 인한 그 어떤 번거로움이나 고민 없이 고독 속에서 그 유명한 3대 발견을 이루어 냈던 것이다.
  뉴턴의 생애 가운데 사랑의 대상이 될 것 같은 여성이 등장하는 것은 공립 중학생 시절 뿐으로, 그 무렵 뉴턴은 고향을 떠나서 어느 약제사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집에 두 살 손아래인 아가씨가 있어 그녀와 친해진 적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당시 그가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고 모친이 원하는 대로 농부가 되었다면 그 집의 그 여성과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여성 쪽에서는 뉴턴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 같지만, 뉴턴은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관심을 두었던 것은 오히려 약제 점포에 진열된 화학 약품 쪽이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시작된 화학에 대한 관심이 후에 가서 연금술의 연구로 발전해 나갔을 뿐 이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쏟은 일이 없었다.
  뉴턴이 태어나기 10여 년 전에 영국의 정치가인 동시에 과학자요 문필가이기도 했던 프랜시스 베이컨(F.Bacon)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아내와 자식이 있는 자는 자기 운명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내나 자식들이란 커다란 사업을 이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자식이 없는 사람이다."
  이 말은 뉴턴에게 해당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런 말을 한 프랜시스 베이컨 자신은 45세에 결혼을 하였다. 짐작건대 그 후에 한 위의 말은 아무래도 결혼한 자신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그렇다치고 실제로 철학자들 가운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여럿 들 수가 있다. 데카르트, 칸트, 니체, 쇼펜하우어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여성에게 관심이 전연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심이 있으면서도 결혼을 하지 않은 탓으로 여성에게 빼앗기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는 동시에 일에 대한 집중력에도 방해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즉, 니체는 몇 명인가의 여성에게 결혼을 요청한 사실이 있으며 데카르트는 사생아를 낳게 한 일이 있다. 그렇지만 뉴턴만은 그의 생애에 여성의 모습이 투영된 일이 전연 없다.
  그렇다면 그가 이성을 멀리한 이유가 혹시 허약 체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일단 의심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보통 사람 이상의 튼튼한 체력의 소유자였다. 하긴 미숙아로 태어나 몇 시간 정도 지탱해 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게 했지만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청력이나 시력이 약해진 일도 없었으며, 이가 한 개 빠졌을 뿐, 80세가 넘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병상에 누운 일이 없었다.
  비록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다부진 몸매를 갖고 있었으며, 두뇌를 혹사한 탓인지 30세에 머리가 온통 백발로 변해, 만년에는 은처럼 빛을 발하며 너풀거렸다고 한다. 그가 침식을 잊고 그렇듯 연구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단단하고 건강한 육체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단정할 수가 있다.

 

깊이 파면 샘물이 솟아오른다.

  이와 같이 여성 문제에서 야기되는 각종 번거로운 일 없이 완전히 독신이었다는 점과 또한 혹사엘 충분히 견뎌낼 만한 튼튼한 육체를 소유했다는 두 가지 점이, 그로 하여금 집중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하였다.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쉽게 지닐 수 없는 유리한 조건이 되었던 것이다.
  이상은 그의 천재성의 비밀을 집중력이라는 점에서만 살펴보았지만, 한편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즉 집중력만 갖추고 있으면 놀라운 능력은 자연적으로 탄생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본래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력에 의해 그것이 고양되고 발휘되는 것이 아닐는지?
  이런 의문에 대해서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좋아하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점이다. 격언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듯이, 이런 격언에 대해서는 우리 주변에서 그것이 옳다고 입증할 수 있는 예가 얼마든지 있다.
  여기서 우리의 일상 생활의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일을 에로 들고자 한다.
즉 자동차의 사진이나 그 일부분만 보고 차종이나 모양을 즉시 알아맞히는 어린이가 있다. 그런가 하면 전국에 걸친 철도의 역이나 그 이름을 거의 다 알아맞히는 어린이도 있다.
  그런 어린이들은 자동차의 카탈로그나 열차의 시간표를 지켜보며 씨름하고 있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역의 이름 같은 것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즉 본래부터 기억력이 좋은 아이는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지도나 차의 카탈로그를 그렇듯 지켜보며 씨름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집중력이라는 그 자체가 어느 정도로 경이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방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증명해 준다. 이 말은 학문이 깊은 사람이라는 뜻의 불어로 정신 의학자는 정신 장애가 중증인 사람이 경이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를 '사방 증후군'이라 부르고 있다.
  트레파트라는 사람의 저서 "어떻게 해서 그들은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가"라는 책에 흥미로운 예가 소개돼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과거나 미래의 4만 년 동안에 대해서 어느 해의 몇 월 몇 일이 무슨 요일인가를 즉각 알아맞힐 수 있으면서도 숫자에 대해서는 30까지도 셀 수가 없으며, 방금 만난 사람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소년은 음악을 제대로 공부한 일도 없으면서, 언제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처음 듣고서도 이내 그 곡을 피아노로 쳐 보였다. 그 밖에도 어떤 곡이든 한 번 듣고서도 전연 실수 없이 다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인은 맹인으로서 식사 때 나이프와 포크도 제대로 쥘 수가 없는 어린이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할 후 있게 되었는가?  이들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대부분 '사방 증후군'의 사람들로서, 본인들이 좋아하는 일, 또는 특기가 있는 일 및 즐거운 일에 대해서만 열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암산에 대해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천재의 경우는, 그가 어릴 때에 100까지 셀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소의 꼬리에 나 있는 털의 수를 계산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그 후에는 여러 가지 것을 셈하게 되고 온갖 방정식을 연구해 내어, 이를 푸는 일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인물의 경우는 어느 한쪽 방향으로 지능이 지나치게 발달하게 되고,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거의 내버려두게 되어 정신 장애가 생긴 것 같다고 연구자들은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집중한다는 일 자체가 능력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땅을 깊이 파게 되면 반드시 샘물이 분출해 나오듯이 풍부한 능력을 분출하는 샘을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뉴턴은 사방 증후군의 사람들과 함께 실제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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