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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산대사 "일상의 점검"
등록일 2013.07.26 (조회 : 1593)

 

 

일상의 점검 - 서산대사 

 

 

대저 참선하는 이들은 네 가지 은혜가 매우 깊은 줄 아는가?
사대(四大)의 인연으로 모인 이 몸뚱이가 순간순간 쇠잔해 가고 있음을 아는가?
우리 목숨이 오직 호흡하는 순간에 달린 것을 아는가?
일찍이 부처님과 조사를 만나고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는 않았는가?
위없는 법을 듣고서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지 않고 있는가?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행인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
분주히 시비를 일삼고 있지 않는가?
화두가 어느 때나 또렷이 들리고 있는가?
남과 이야기할 때도 화두가 끊임없이 들리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도 한결 같은가?
제 공부를 돌아보아 불조(佛祖)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반드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는가?
평소 편안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 육신으로 반드시 윤회를 벗어날 자신이 있는가?
나에게 해롭거나 이로운 경계가 닥쳐 올 때, 마음이 한결같아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의 일상에 자주 점검해야 할 도리이니,  

옛 사람이 이르기를,

'이 몸을 금생에 건지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세상에서 건지랴'고 하셨느니라.


 

말만 즐겨 배우는 이들은 말로는 깨친 듯하나, 실제 경계에 당하면 도리어 미(迷)해 버리나니,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 만일 생사를 대적하려면 반드시 이 한 생각을 폭파해 깨트려 버려야만 비로소 생사를 마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 한 생각을 한번 깨트렸다 해도 반드시 눈 밝은 스승을 찾아가 바른 안목을 점검 받아야 하나니, 옛 어른이 이르시길 "오직 그대 눈이 바른 것만 귀하게 여길 따름이요, 행실은 귀하게 여기지 않노라"고 하셨느니라. 

 

원컨대 수도인은 깊이 자기의 마음을 믿어 스스로 낮추거나 높이지 말라. 미한 마음으로 수행하면 다만 무명만을 돕는 결과가 되고 마느니, 수행의 요점은 다만 범부의 분별심만 없앨 것이요, 그밖에 따로 성인이 되어야 하리라는 헤아림을 두어서는 안 되느니라. 그러므로 중생심을 버리려 애쓰지 말고 다만 자기 성품을 더럽히지 말라. 따로 정법을 구하는 마음이 곧 삿된 짓이니라. 

 

번뇌를 끊는다는 생각으로 수행하는 이를 성문(聲門) 연각(緣覺)의 이승(二乘)이라 하거니와, 애초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 끊을 번뇌가 없는 것을 일러 대열반(大涅盤)이라 하느니라. 

 

모름지기 텅 빈 마음으로 자세히 비추어 한 생각 반연의 일으킴이 오직 무생임을 믿을지니, 죽이고 훔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다 한 마음 위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 일어나는 곳이 텅 비어 자취를 찾을 수 없거늘 무엇을 다시 끊으리오. 

 

모든 것이 환상임을 알아 바로 떠나면 그 뿐, 따로 방편을 지을 필요가 없고, 환상을 떠난 그 자리가 곧 대각(大覺)이라 실로 일정한 차례가 없느니라. 

 

중생이 생멸 없는 가운데서 거짓 생사 열반의 분별을 봄이, 마치 눈병 든 이가 헛꽃의 어른거림을 보는 것과 같나니,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여 멸도에 들게 한다 하나, 실로 한 중생도 멸도를 얻은 자가 없느니라. 

 

이치는 비록 바로 깨친다 하나, 오랜 버릇은 대번에 없어지지 않나니, 음란한 행을 버리지 못한 채 참선함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 함과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함은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려 함과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함은 새는 독에 물이 차기를 바람과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함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 함과 같아, 이런 이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끝내 마군의 길을 이룰 뿐이로다.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도 가벼이 여기고 삼업[身口意]을 보호하지도 않으며 방일하고 게으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이들까지 업신여겨 시비를 일삼는 것으로 살림을 삼나니, 계를 지니지 않는다면 오히려 비러먹은 여우의 몸도 받지 못하거늘, 하물며 깨끗한 보리의 열매를 어찌 감히 바랄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끊임없는 생사의 그물을 벗어나려면 먼저 반드시 탐욕을 끊고 애욕의 갈증을 그쳐야 하느니라.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가 다 선정(禪定)의 힘에서 나오나니, 마음이 정에 있으면 능히 세간의 생멸하는 온갖 모습을 밝게 알 수 있으리라. 

 

경계를 만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불생(不生)이라 하고, 나지 않음을 곧 무념이라 하며, 무념을 곧 해탈이라 하느니라. 

 

도를 닦아 열반을 증득해도 이 또한 진실이라 할 수 없거니와, 심법이 본래 적멸함을 알면 그대로 참된 열반이니, 그러므로 “온갖 것이 본래부터 언제나 스스로 적멸한 모습이라” 하시니라. 

 

가난한 사람이 와서 구걸하거든 분수껏 나누어 주라. 한 몸처럼 여기는 대비심(大悲心)이 곧 참된 보시니라. 

 

누가 나를 해치더라도 마땅히 마음을 잘 거두어서 원한의 마음을 품지 말라. 화내는 마음을 한 번 일으키면 반드시 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리고 마느니라. 

 

실로 참고 견딜 줄 모른다면 어떤 행도 이루지 못하리니, 근본의 참된 마음을 지킬 줄 아는 것이 으뜸가는 정진이니라. 

 

진언을 외워 지니는 것은 금생에 지은 업은 다스리기 쉬워 노력하면 고칠 수 있거니와, 전생의 업은 제거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신비한 가피의 힘을 빌려야 하느니라. 

 

예배(禮拜)란 공경함을 '예'라 하고 굴복함을 '배'라 하나니, 곧 참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염불(念佛)은 입으로만 외우면 송불(誦佛)이요, 마음으로 생각할 때 염불이라 하나니, 한갓 입으로만 외우고 생각으로는 잃어버린다면 도 닦는데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즐겨 법문을 들으면 귀를 거쳐 뛰어나 인연과 깨우침을 따라 기뻐한 복이 생기나니, 그림자 같은 이 몸은 없어질 때가 있거니와 참된 행실은 결코 없어지지 않느니라. 

 

경전(經典)을 볼 때도 자기를 향해 공부를 짓지 않는다면 비록 팔만장경을 다 본다 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배움이 도에 이르지 못하고 보고 들은 것만 자랑삼아 한갓 혀끝의 말재주로만 서로 이기려고 다툰다면 이는 마치 변소에다 단청하는 격이니라. 

 

수행인이 잡다한 학문에 마음 쓴다면 이는 마치 칼로 흙을 베는 짓이라, 흙은 아무 소용없는데 칼만 저절로 망가지고 마는 것과 같으니라. 

 

속된 삶을 떠나 수행하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내려는 것도 아니요,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나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니라. 오직 나고 죽음을 면하려는 것이요,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혜명을 이으려는 것이요, 삼계를 벗어나 일체중생을 건지기 위함이니라. 

 

부처님께서는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태워 버린다” 하셨고, 또 “중생들의 고통스러운 불꽃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불어온다” 하셨으며, 또 “온갖 번뇌의 도적이 호시탐탐 너희들을 죽이려 엿보고 있다”고도 하셨으니, 마땅히 스스로 알아차리고 경계하여 머리에 붙은 불을 황급히 끄듯이 서둘러야 하리라. 

 

세상이 뜬 이름을 탐착함은 쓸데없이 몸만 괴롭히는 짓이요, 명예나 이익을 따라 헤맴은 업의 불에다 섶을 더 보태는 격이라. 실로 이름이나 재물을 쫓아 탐하는 수행자는 초야에 묻혀 사는 시골사람만도 못하나니, 그러므로 일찍이 부처님께서도 “어찌하여 도적들이 나의 의복을 훔쳐 입고 부처를 팔아 갖가지 악업을 짓는고?” 라고 탄식하셨느니라. 

 

오호라. 불자여!
그대의 한 그릇 밥과 한 벌 옷이 곧 농부의 피와 직녀의 땀 아님이 없거늘, 도의 눈을 밝히지 못하고선 어떻게 삭여낼 것인고? 



 

그러므로 이르기를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은 무엇인줄 아느냐? 곧 오늘날 신시(信施)를 헛되이 받아먹는 이들의 뒷날 모습이 그것이니라.” 고 하였거니와,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끊임없이 먹고 춥지 않아도 화려하게 꾸며 입으니 이 무슨 마음인지 참으로 딱한 일이로다. 눈앞의 즐거움이 뒷날 괴로움이 되는 줄 어찌 알지 못하는고. 

 

그래서 차라리 뜨거운 철판을 몸에 두를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옷을 함부로 받지 말 것이며, 차라리 쇳물을 마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음식을 함부로 먹지 말 것이며, 차라리 끓는 가마 속으로 뛰어 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지어주는 집을 즐겨 받지 말라 하셨고, 수도인은 음식을 먹을 때 독약을 먹듯 하고 보시를 받을 때엔 화살을 받듯이 하라 하셨나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실로 수도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바이니라. 

 

도를 닦는 사람은 한 개의 숫돌과 같아서 이 사람이 와서 갈고 저 사람이 와서 갈아 들고 나며 갈아 가면, 그들의 칼은 잘 들려니와, 나의 돌은 점점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라. 그런데도 어떤 이는 도리어 남들이 나의 돌에 칼을 갈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니랴. 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삼악도의 고통을 고통이라 할 수 없으니, 가사를 입었다가 사람의 몸 잃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인 것이다.” 라고 하였느니라. 

 

우습다. 이 몸이여!
아홉 구멍마다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백 천 가지 부스럼덩어리를 한 조각 엷은 가죽으로 싸 놓았구나. 가죽주머니에는 똥이 가득하고 피고름 뭉치라, 냄새나고 더러워 조금도 탐하거나 아까울게 없나니, 더구나 백년을 잘 길러 주어도 숨 한번에 은혜를 등지고 말지 않는가. 

 

허물이 있거든 곧 뉘우치고 악업이 생겨날 땐 바로 부끄러워 할 줄 알면 참으로 대장부의 기상이라 할 수 있나니,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지면 죄업은 그 마음을 따라 곧 없어지기 때문이니라. 

 

수도인은 마땅히 그 마음을 단정히 하여 오직 곧고 바름으로 근본을 삼을지니, 표주박 하나와 옷 한 벌이면 가고 머무는 어느 곳이던 허물 됨이 없으리라. 

 

범부는 눈앞의 경계만 따르고 도인은 마음만 붙들려 하거니와 실로 마음과 경계를 둘 다 잊어야 곧 참된 법이라 할 수 있나니, 성문은 숲 속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악마에게 붙들리거니와, 보살은 세간에서 뜻대로 노닐어도 외도나 마군을 찾지 못하느니라. 

 

누구든 임종할 때에는 오온이 다 공해 이 몸에는 나라고 할 것이 없음을 관찰할지어다. 참 마음은 모양이 없어 오고 가는 것이 아닌지라, 날 때도 성품은 난 바가 없고 죽을 때도 성품은 가는 것이 아니어서 지극히 맑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한결같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바르게 알면 다시는 삼계에 끌리거나 구속되지 않으리니, 이런 이야말로 세상에 뛰어난 대 자유인이라, 설사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따라갈 마음이 없고 지옥을 보더라도 두려움이 없으리라. 

 

다만 스스로 무심하면 저 법계와 같으리니, 이것이 정말 중요한 절목이라. 그러므로 평상의 삶이 인(因)이 되고 죽을 때가 과(果)가 되나니, 바라건대 수도인은 모름지기 자세히 살필지어다. 

 

임종할 때에 다다라 만일 털끝만치라도 '범부다, 성인이다', 따져 헤아리는 분별심이 다하지 않았거나 그런 생각을 잊지 못하였다면 그는 바로 나귀나 말의 뱃속에 끌려 들어가거나 지옥의 끓는 가마 속에 처박히거나 혹은 예전처럼 다시 개미나 모기와 같은 것이 되고 말리라. 

 

참선하는 이가 본래면목을 밝히지 못하고서는 높고 아득한 진리의 관문을 어떻게 꿰뚫을 것인고. 

 

더러는 아주 끊어져 텅 빈 것으로 선을 삼기도 하고, 기억할 수 없는 흐릿한 상태로 도를 삼기도 하며, 온갖 것을 부정하여 없는 것으로 높은 견해를 삼기도 하거니와, 이런 것들은 모두가 컴컴한 완공의 소견이라, 오직 그 병듦이 깊을 뿐이니, 지금 천하에 참선을 말하는 사람들이 이 같은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고? 

 

본분종사가 법을 바로 들어 보일 때는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붙은 화로에 눈발 떨어지듯 하며, 또한 석화전광과도 같아서 학자가 도무지 헤아려 머뭇거릴 틈이 없나니, 그러므로 옛사람이 스승의 은혜를 알고 이르기를 "우리 스승의 도덕을 장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설파해 주지 않은 일을 고맙게 여길 따름"이라 하였느니라. 

 

대장부는 불조라 할지라도 마음에 담지 말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무시겁래의 미혹된 고통이 모두가 오직 집착의 얽매임과 분별의 헤아림으로 인하였기 때문이니라. 

 

무엇이든 구하여 매달리면 다 고통이 따르는 법, 차라리 본래 일 없음만 같지 못하니라. 


 

  거룩한 광명 어둡지 않아,
  천만고에 환하거니,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부디 머리로 헤아림을 버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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