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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통찰력의 비밀, 스티브 잡스와 선(禪)
등록일 2011.07.30 (조회 : 32767)

 

 

통찰력의 비밀, 스티브 잡스와 선(禪)

 

 

 

- 김범진(명상코칭가)

 

 

선의 단순함과 자유로움을 제품에 담다

 


여러분과 오늘 여행할 주제는 ‘통찰력의 비밀, 스티브 잡스와 선(禪)’입니다. 우선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만약 이 자리에 있다고 가정하고 그에게 “당신의 경영과 생산한 제품이 선과 관련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가 어떤 대답을 할까요. 아마도 질문에 따라 답이 달라질 것입니다. 관련이 있냐고 물으면 없다고 할 것이고, 없냐고 물으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이 바로 선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처음 썼던 책이 ‘행복한 CEO는 명상을 한다’ 입니다. 책을 쓰면서 미국의 성공한 많은 CEO들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CEO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스티브 잡스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최초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은 잡스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처음 나온 아이폰의 뒷면을 보며 느꼈던 점은 일본 선원에서 쓰는 선돌(禪石)과 거의 유사했다는 점입니다. 단단하고 매끈하고, 선돌에서 느꼈던 선기(禪氣)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이 제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잡스는 선을 단순히 접하는 단계를 넘어 이를 제품에 투영하는 새로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다실(茶室)

 


사진으로 접한 잡스의 방은 참 특이합니다. 거실에는 가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오로지 스테레오 하나와 전등 하나, 컵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잡스는 평소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한 잔의 차와 조명, 그리고 음악뿐” 이라고 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잡스는 25세에 백만장자가 됐고 26세에 천만장자가 됐습니다. 27세엔 재산이 우리 돈으로 2500억 원이나 됐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간소하고 담박합니다. 결혼을 하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잡스는 왜 선에 빠지게 됐을까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시대와 환경적인 배경,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특성입니다.


잡스는 1955년생입니다. 1960년대는 그가 유년기를 보냈던 시절입니다. 1960년대에는 크게 두 가지 문화가 미국 서부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를 휩쓸었습니다. 하나는 히피열풍입니다. 반전(反戰), 반문화(反文化),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 히피문화의 중심지가 샌프란시스코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축이 선입니다. 당시 일본의 유명한 선승들이 미국에서 선원을 열었는데 선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느 칵테일 바에 가도 선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빠지지 않았다.” 이것은 미국불교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특히 당시 미국에서는 일본의 스즈키 선사가 유명했습니다. 당시 젊은이들은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히피문화에 빠져 들었지만 결코 만족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에 빠져들게 됩니다. 히피에서 느꼈던 자유로움, 뭔가 모를 일체감, 그런 것들을 추구했지만 내면의 깊이가 없는 자유로움은 방종으로 흘러 곧 한계에 부딪쳤고 일부는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한계에 대한 돌파구로 찾아낸 것이 바로 선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잡스의 개인적인 성품입니다. 그는 자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진실을 단연코 거부했습니다. 모든 것을 직접 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누군가의 권유나 강요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진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해 봐야 했습니다. 바로 선의 정신과 닮아 있습니다. 붓다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단지 들었단 이유만으로 무엇이든지 믿지 말라. 오랜 세월을 두고 대를 이어서 전해 왔다는 이유만으로 전통을 믿지 말라. 그대의 경전에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이든 믿지 말라. 그대의 스승이나 윗사람의 권위라는 이유만으로 무엇이든 믿지 말라. 관찰하고 분석하여 그대의 이성에 합당하며 그대의 선행과 다른 사람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판단했으면 그때에는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생활하도록 하라.”

 

 

이상 아닌 선의 실용성에 공감

 

 

불교와 다른 영적 전통과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그냥 믿을 것이 아니라 와서 보고 체득해라.” 이 부분이 잡스의 성품과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잡스는 또한 무척 실용적이었습니다. 한때 잡스는 영적 진리를 찾아 인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실망을 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이상향으로 꿈꾸던 구루들, 영적 지도자들을 만났지만 잡스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토머스 에디슨이, 칼 마르크스와 님 칼롤리 바바(인도의 영적 구루)를 합친 것보다 세계를 개선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했다.” 인도 방문 이후 잡스가 남긴 말입니다. 이 또한 선의 정신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선이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실용성입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 유명한 백장 선사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영적 수행에는 일이 필요치 않습니다. 걸식이나 탁발을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선은 그것과는 다릅니다. 백장 스님의 스승인 마조 스님은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道)' 라고 가르쳤습니다. 깨달음이 일상을 벗어난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 순간 삶에 있다는 뜻입니다. 현실과 유리된 어떤 이상향을 지향하는 모든 가르침을 부정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선입니다.


잡스는 리드 대학을 다녔습니다. 인문학이 매우 강한 대학인데 그곳에서 불교 공부를 접하고 곧 심취하게 됩니다. ‘어느 요기의 자서전’ ‘초감 트롱파의 마음공부’ ‘행복한 명상’ 등이 당시 잡스가 읽었던 책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스즈키 선사의 선심 초심’에 가장 큰 영향을 받습니다. 굉장히 얇은 책인데 간결한 언어로 선의 내용을 핵심을 찔러 다채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선의 어떤 정신들이 잡스의 삶과 제품 속에 담겨있을까요.

먼저 단순함입니다. 가장 처음 나온 제품이 아이맥인데 기존의 제품들과 달리 일체형입니다. 본체가 따로 없습니다. 일체형 디자인은 잡스가 굉장히 선호하는 제품입니다. 아이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체형이다 보니 배터리를 교환을 할 수 없습니다. 아예 밀봉을 시켜버렸습니다. 버튼도 세 개밖에 없습니다. 거의 버튼이 안보입니다. 다른 핸드폰이랑 비교해 보면 엄청난 차이입니다. 잡스는 핸드폰을 끄고 켜는 홈 버튼까지도 없애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단순함을 추구합니다.


잡스는 또한 무척이나 검소합니다. 입은 옷이 전체 가격 해봐야 우리 돈으로 20만 원 정도입니다. 언제나 청바지에 터틀넥을 입습니다. 선 또한 단순함을 추구합니다. 한자를 파자해보면 선(禪)은 볼 시(示)에 단일한, 혹은 단순하다고 할 때 단(單)이 합쳐진 것입니다. 글자 안에 선의 단순함의 정신이 녹아 있습니다. 선은 장황하지 않고 매우 시적이며 단순합니다. 종속된 삶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을 추구합니다. 1년 전 입적하신 법정 스님은 평생을 단순함과 간결함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리고 시로써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순함이란 그림으로 치면 수묵화의 경지다. 먹으로 그린 수묵화. 이 빛깔 저 빛깔 다 써 보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먹으로 하지 않는가. 그 먹은 한 가지 빛이 아니다. 그 속에 모든 빛이 다 갖춰져 있다. 또 다른 명상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그것은 침묵의 세계이다. 텅 빈 공의 세계이다. 단순과 간소는 다른 말로 하면 침묵의 세계이다. 또한 텅 빈 공간의 세계이다. 텅 빈 충만의 세계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이, 이 단순과 간소에 있다.”


 

선의 단순함이 CEO 성공 비결

 


선의 아름다움을 일본의 미학자는 심간(深簡)이라고 했습니다. 간소하고 간결하지만 그 속엔 깊이가 있다, 그런 뜻입니다. 선에서는 오직 본질이 중요하고 그 외의 피상적이고 인위적인 것들은 불필요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단순한 삶을 통해 우리가 그 이상의 존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존재의 가장 깊은 속살에는 다른 존재들이 실처럼 연결돼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잡스의 전략도 이와 같습니다.


애플은 제품을 기획할 때 핵심적인 기능만을 생산할 뿐 다른 많은 것들은 외주를 줍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단순해 질수 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만 갖고 나머지는 다른 회사에 골고루 나눠줍니다. 애플이 잘되면 다른 회사들도 함께 잘 됩니다. 그래서 하나의 유기적이며 아름다운 산업생태계가 형성됩니다. 단순함, 그리고 그 단순함의 유기적인 연결의 전략이 그가 성공한 CEO로 성장하게 된 가장 큰 비결입니다.

 

 

잡스의 어법은 선사 화법과 닮아
생각·권위 파괴, 고정관념 타파

 


단순함과 간결함은 선(禪)을 하는 미국의 CEO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의 프레젠테이션을 비교하면 잡스는 주로 사진을 이용한 간결한 스타일을 사용합니다.


이런 잡스의 방식은 선과 너무나도 닮아있습니다. 간결하고 여백이 많습니다. 그는 1983년 위기에 처한 애플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경영자를 영입하게 됩니다. 그 인물은 펩시의 최연소 사장 존 스컬리인데 그는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고 급여도 받을 만큼 받고 있기 때문에 굳이 옮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잡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계속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삶을 보내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고 싶으십니까.”


잡스의 어법은 선사들의 대화방식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간결하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담아 핵심을 그대로 찔러 들어갑니다.


선사들은 간결한 대화나 화두를 통해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을 주로 씁니다. 운문문언(雲門文偃·864~949) 선사는 일자관(一字關)으로 유명합니다. 이를테면 “도가 무엇입니까” 라는 물음에 “친(親)” 이라고 대답합니다. “직접 체험해보라.” 군더더기가 없이 간단명료합니다. 사실 선에 많은 영향을 준 위인은 장자입니다. 장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도가(道家)가 아니라 오히려 선사(禪師)입니다. ‘장자’에는 선문답의 원형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제가 19세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 받은 저는 그 후 지금까지 쉰 살이 되도록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정말 할 것인가. 만일 며칠 동안 계속 그 답이 아니라면 저는 무언가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삶에서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가장 도움이 됐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혹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은 그 순간 죽음 앞에서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게 되니까요.” 잡스의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선사들의 어떤 결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 삶은 굉장히 복잡하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어떻게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의미 있는 일에 내 삶을 100% 전력투구할 수 있을 것인가. 잡스는 매일 거울을 보면서 불필요한 것들을 털어버리며 의미 있는 삶을 개척합니다.


 

‘곧바로 정신’은 직관 연결된 직지
사업적 성공은 내면 완성의 여정

 


잡스의 또 하나의 특징은 파격입니다. 파격은 벽을 깨는 것입니다. 미국의 슈퍼볼 경기는 시청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고 단가 또한 천문학적입니다. 1984년 역사적인 미국 슈퍼볼 경기에 애플 광고가 갑자기 등장합니다. 독재자가 스크린을 통해 지시를 하고 세뇌당한 사람들이 그 앞에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때 한 여자가 큰 망치를 들고 와서 독재자를 향해서 망치를 던집니다. 조지오웰의 ‘1984년’을 모티브로 한 것인데 독재자의 스크린이 깨지면서 애플의 제품이 튀어나옵니다. 무언가를 깨뜨리는 것, 권력 권위에 도전하는 정신을 광고에 잘 담고 있습니다. 또한 거대기업 IBM에 대한 애플의 투쟁을 부각시킨 것이기도 합니다.


잡스의 파격은 크게 2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생각에 대한 파격. 또 하나는 권위와 권력에 대한 파괴입니다. 그는 기존의 생각이나 관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품의 수가 많을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 좋다는 것이 기존의 관념입니다. 그러나 잡스는 제품의 수는 적을수록 좋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소수의 제품들만을 생산해 냅니다.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노래를 다운 받을 수 있는데 누가 돈을 내겠는가. 이것이 당시의 엠피쓰리 시장의 고정관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잡스는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면 이용자들은 기꺼이 돈을 낼 것이라면서 아이튠즈를 유료화 시킵니다. 판매 유통 경로는 다양할수록 좋다는 것이 기존의 관념이었지만 잡스는 한 곳에서만 물건을 팔게 합니다.


잡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남의 인생을 사느라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결과인 도그마에 갇혀 있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의견이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잠식하도록 놔두지 마세요.”
선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도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여! 진정한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는 일이라네. 자네들의 길을 가로 막고 선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 즉시 없애버리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거든 조사를 죽이게.”


여기서 죽이라는 것은 정말 죽이라는 것일까요. 살생은 부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가장 첫 번째 계율입니다. 죽이라는 것은 우리 머릿속의 관념입니다. 그것들을 부숴야만 진정으로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임제 선사의 가르침입니다.


애플은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 위에 이동통신사들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SK, KT 이런 회사들입니다. 잡스 전에는 이동통신사가 휴대폰 회사 위에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잡스는 이런 수직구조를 완전히 깨버렸습니다. 오히려 휴대폰을 만드는 애플이 주도권을 잡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소프트웨어 만드는 사람들은 이동통신사나 휴대폰 만드는 회사에 종속돼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을 개발해도 겨우 인건비나 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애플이 ‘앱스토어’를 만들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프로그램 개발자가 상품을 만들어 올리면 소비자가 직접 비용을 내고 선택을 하게 됩니다. 중간에 이동통신사나 휴대폰 사업자가 개입할 여지를 없애고 수평적 관계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이날을 ‘농노 해방의 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또한 불교의 파격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양무제가 달마대사를 초청해서 자기의 공덕을 인정받고 싶어 했을 때 달마대사는 공덕이 전혀 없다고 한마디로 잘라 말합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인도에는 베타 철학에 기초한 수행방법이 있었습니다. 신과의 합일. 그리고 그에 따른 질서가 있고 이것이 인간사회에 투영해 계급이 나눠졌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기존의 수행방법과 계급제도 같은 질서를 무시하고 완전히 깨뜨려 버립니다.

파격은 곧 신비주의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평소 청바지와 터틀넥을 주로 입는 잡스가 한번은 양복을 입고 행사장에 나타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무척이나 궁금해 합니다. 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성 보도를 내놓습니다. 그럼에도 잡스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굳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궁금증 유발만으로 수억 달러에 이르는 광고 효과를 발휘합니다. 파격에 따른 신비주의입니다.


잡스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곧바로 정신’ 입니다. 곧바로 정신은 3가지로 살펴볼 수 있는데 직관(直觀), 직관과 연결돼 있는 직지(直指), 그리고 즉시(卽時)입니다. 애플의 로고에는 문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한입 베어 문 사과. 그 뿐입니다. 대상과 언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애플의 매장은 상품 설명이 거의 없습니다. 있어도 너무 작아 시선을 빼앗지를 못합니다. 대신 공간이 매우 넓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그것은 직지(直指)입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와도 상통합니다.


다음은 즉시(卽時)입니다. 잡스는 곧바로 반응하고 작동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아이팟을 만들 때 잡스가 주문한 것은 속도였습니다. “3일 연구 끝에 1초 밖에 단축시키지 못하더라도 작동 시간 단축에는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 100만 명이 맥을 사용한다면 1년 동안 3억6000만 초가 절약된다. 이는 약 50명의 인생과 같다.”


마지막은 영웅의 여정입니다. 모든 영웅들의 이야기에는 하나의 전형이 있습니다. 출생의 비밀, 영혼의 스승, 경쟁자, 시련, 부활. 잡스의 삶은 이런 영웅의 여정과 닮아 있습니다.


잡스는 입양아였고, 코분치노라는 정신적 스승이 있었습니다. 또 자신이 세운 애플에서 쫓겨나 13년간을 방황하는 시련이 있었습니다. 쟁쟁한 경쟁자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IBM이라는 거대 컴퓨터 회사가, 뒤에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라는 경쟁자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잡스는 이런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귀환합니다. 췌장암을 이겨냈고 쫓겨났던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것도 아이팟, 아이패드, 아이폰과 같은 보물과 함께 말입니다.


영웅의 여정은 얼핏 보면 외부의 성취인 것처럼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실은 내면의 완성을 위한 여정입니다. 재미있게도 선에서도 선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의 의미를 전합니다. 육조 혜능 스님의 삶이 대표적입니다. 왜 사람들은 영웅의 여정에 관심을 가질까요. 또 왜 선사들의 깨달음 여정에 마음을 빼앗길까요. 이유는 황벽 선사의 다음과 같은 시구에 잘 담겨 있습니다.

“한때의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않고서 어찌 매화 향기가 코를 찌르겠는가.”


잡스가 좋아했던 말 중 하나가 “여정, 그 자체가 보상” 이라는 말입니다. 선의 관점에서 삶은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심연(深淵)에서 와서 심연으로 돌아갑니다. 이미 모든 것이 갖춰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순간순간은 여정이고 하나의 축복이고, 그리고 그 자체로 또한 보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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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진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대 법학과 대학원을 마친 뒤 서울불교대학원대학에서 명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의 코치1세대로서 국내에 처음으로 코칭을 도입, 전파했으며 국제코치연맹(ICF)으로부터 한국 최초로 국제인증코치자격(ACC)을 취득했다. 저서로 ‘행복한 CEO는 명상을 한다’ ‘1250℃최고의 나를 만나라’ ‘섬세’가 있다. 현재 한국코칭센터 전문 코치로 활동 중이며 코칭 센터인 ‘나우코칭’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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