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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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부가 위대한 부처되는 법이 있네
선사께서는 경남 남해 삼동면에서 출생하시어, 19세 되던 해인 1953년에 출가하셨습니다. 불공(佛供) 드리러 절에 자주 다니던 친척을 따라서 동네에서 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던 해관암(海觀庵)이라는 조그마한 사찰에 우연히 가셨다가, 조계종 초대 종정이셨던 설석우(薛石友) 선사를 친견한 것이 출가의 인연이 되셨습니다. 석우 선사께서 스님을 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생활도 좋지만 그보다 더 값진 생활이 있으니, 그대가 한번 해보지 않겠는가?"
"무엇이 그리 값진 생활입니까?"
"범부(凡夫)가 위대한 부처가 되는 법이 있네.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수행의 길을 가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래서 스님께서는 몇 일간 해관암에 머물면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생활을 유심히 살펴보시게 되었는데 세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청정한 수행생활을 하는 스님들의 삶에 큰 환희를 느껴 그길로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허락을 얻은 후 출가하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없을 ‘無’자를 놓겠습니다
남해의 조그마한 암자에서 시작된 행자수업(行者修業)은 큰스님 시봉에다가 공양주 소임, 나무를 해오고 채소를 가꾸는 등 해야 할 일들이 종일 연속이었습니다. 그러한 행자 생활을 6~7개월 한 뒤 하안거(夏安居) 해제일(解制日)이 되어 제방 선방에 다니면서 십여 년간 수행해오던 선객 스님 몇 분이 석우 선사께 인사드리러 왔다가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석우 선사께서는,
"오늘 내가 자네들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하여 보게. 옛날 중국의 삼한(三漢) 시절에는 글자 운자(韻字) 하나를 잘 놓음으로 인해서 과거에 급제하던 때가 있었네. 이것은 그 당시 시험에 나왔던 문제인데, '일출동방대소(日出東方大笑), 즉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 크게 웃는 모습이 어떠하더라.' 하는 이 글귀에 운자 하나를 놓아보게."
하시고는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은 나 '아(我)'자를 놓아서 재상에 등용되었는데 자네들은 어떤 자(字)를 놓아보겠는가?"

선객 스님들 중에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자 석우 선사께서는 신출내기 행자였던 진제 스님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네가 한마디 일러보아라."
이에 스님께서 대뜸 답하셨습니다.
"저는 없을 '무(無)'자를 놓겠습니다."
해가 동쪽 하늘에 떠올라 밝은 빛으로 온 세상을 비추지만 그 모습에는 호리(豪釐)의 상(相)도 없다는 뜻으로 '무(無)'자를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석우 선사께서는,
"행자가 장차 큰 그릇이 될 것이다."
라고 하시며 매우 흡족해 하셨습니다.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
해관암에서 열 달 가량 지내신 뒤 석우 선사께서 해인사 선방 조실스님으로 가시게 되자, 스님 역시 해인사로 가서 사미계를 받고 강원(講院)에서 경전(經典)을 익히셨습니다. 그 후 다시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동화사로 가시게 되었던 석우 선사의 부름을 받고 동화사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석우 선사를 시봉하던 중에 한 번은 대중스님 이십여 분과 함께 팔공산 상봉을 오르셨다가, 우연히 빈 토굴을 발견하고 대중스님 몇 분과 함께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을 하고 돌아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석우 선사께서는 당장에,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제멋대로 온갖 것을 다 하려고 든다."
하시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참학의지(參學意志)로 가득 차있던 스님의 심중을 간파하시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 화두를 주셨습니다.

그 후 스님께서는 동화사를 떠나 운수행각(雲水行脚)의 길에 오르셨는데, 그때가 스님의 세수 24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