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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묘년 음력8월 초하루 법문<소동파, 조주 오대산 노파 간파>
법문장소 해운정사 (법문일자 : 2011.08.29 / 조회 : 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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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음력8월 초하루 법문

 

 

 

[상당하시어 주장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신 후 법상을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크게 기이하고, 크게 기이함이여,
'정이 없는 것이 진리의 법을 설한다' 하니, 이 말이 크게 기이하고 기이하다.
'정이 없는 것이 법을 설한다'
집도 설하고, 바위도 설하고, 산도 설하고, 나무도 설하고, 땅도 설하고.
어째서 이러한 정이 없는 물건들이 법을 설할 수 있느냐?
법을 설하고 설한다 하니 기이하고 기이하다.
눈으로 듣고 귀로 봐야사 비로소 이 무정이 법을 설한다는 것을 압니다.
땅도 진리의 법을 항시 설하고, 나무도 설하고, 바위도 설하고, 집채도 설하고, 하늘도 설하고, 땅도 설한다.
이 말을 알려면 눈으로 듣고 귀로 봐야사 옳다.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자가 아니면 이 말의 낙처를 모릅니다.

 

그러니 이러한 법문의 낙처를 알아야사 우리가 진리의 대자유인이 되는 법입니다.
이러한 진리의 눈을 갖추지 못하면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이 근본의 중생의 업이, 이 세 가지를 좇아서 팔만사천 중생의 가지가지 근본업이 발생됩니다.
팔만사천 가지의 업이 이 세 가지를 좇아서 다 이루어지는데,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이 세 가지만 뿌리를 송두리째 빼 던지면 팔만사천 번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이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없애는 것은 이 간화선, 화두참선 뿐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간화선 참선을 해서 참나의 고향에 이를 수 있느냐?
일상생활 속에 모든 분들이,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천번 만번 참나를 찾는 의심을 밀어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천번 만번 의심을 밀면 모든 빈틈이 없어서, 이생각 저생각, 미워하고 고와하고, 시기, 질투, 공포, 불안 이러한 중생의 용심이 싹 없어집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분들,
죽음에 다달아 대자유스럽게 이 몸뚱이를 이 집에서 저 집 이사가는 것과 같이 그러한 실력을 갖추고자 할진댄,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하는 의심을 천번 만번 밀어주는데, 모든 잡념이 다 사라집니다. 모든 잡념이 다 사라지고 간절한 화두 의심만 흐르는 물과 같이 밤낮으로 흘러가서 무르익어지면 한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진리의 문에 들어가고 마음의 고향에 이르는 법입니다. 이러한 수행법이 부처님법에 있지,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금생에 우리 만난 김에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팔만사천 번뇌가 일어나는 그 근본뿌리를 뽑아 던져야사 나고 날 적마다 편안하고 즐거운 낙을 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법문을 듣고 참나를 찾는 여기에 초점을 맞춰가지고 하루하루 열심을 참선정진을 하면 일등 신자가 되고, 부처님과 같은 도인과 같은 그러한 불국토에서 억만년이 다하도록 편안한 낙을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날 중국 당나라 때, 당나라 하면 우리 신라 때와 동시대입니다. 우리나라도 삼국통일 할 때 당나라하고 서로 손을 잡아가지고 삼국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 당시에 소동파라는 유명한 일등 선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나라가 멸한 후에 송나라인데, 당나라 송나라를 통틀어서 소동파는 8대의 문장가에 속하는 훌륭한 뛰어난 선비였습니다. 그래서 벼슬도 하고 그 뛰어난 문장에 천하 사람이 당할 사람이 없는 그러한 재질을 갖췄어요.

 

하루는 ‘승호 선사가 산사에서 멋진 선 법문을 해서 모든 분들을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다’ 하는 소문이 분분하니 ‘한번 내가 가서 저울질을 해봐야 되겠다’ 해가지고 찾아갔습니다.

수십 리를 말을 타고 가서 승호 선사 방중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는 것이, 천하 제일의 선비의 재질을 갖춰놓으니까 선사를 알기를 자기 딴에 아만심으로 높이 평을 안 하고 갔어요. 절하는 모습이 공손하지 않거든.
그래서 척 간파를 하고는,
“그대의 성이 무엇인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소동파가
“칭(秤)가입니다.”
저울대 칭. 모든 제방의 큰스님들을 시험하는 그러한 저울대 용심으로서 칭가라 했거든요.
“그러면 제방에 법을 시험하러 달아보러 다니는 격이네.” 그랬습니다.
그래놓고는 벽력같은 할을 했거든요.
“억-!” 하는 이 할입니다.
“그대는 이 할이 몇 근이나 되는고?” 그랬습니다.
제방을 시험하러 다니는 저울대라 하니까.
그러니 천하를 주름잡는 선비이지만, 백가서적을 열람하고, (누구도) 따를 재능이 없지만, 그 선사의 한마디에 정신이 혼비백산이 되어버렸어요.
할을 하면서 “제방을 시험하러 달러 다닌다 하니 한번 이 할이 몇 근이나 되는지 달아봐라.” 하니까 꼼짝을 못하고 고개가 숙여졌어요.
그래 앉았다가
“선사님, 법문을 한마디 내려주십시오.” 그러시거든.
그러니 승호 선사가
“그대는 어찌 유정설법만 들을 줄 알고 무정설법은 들을 줄 모르느냐?”
또 방망이를 내렸습니다.
정이 있는, 모든 감각이 있는 그러한 이들이 법을 설하는 것만 들을 줄 알고, 무정, 법당이나 돌이나 땅이나 산이나 나무나 이러한 무정이 법을 설하는 것은 어찌 듣지 못하느냐? 그랬습니다.
그러니 방망이를 맞은 데 또 방망이를 맞으니 혼비백산이 돼가지고 어쩔 줄을 모르거든요.
그래서 살금히 빠져나와가지고 말을 타고 수십 리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말등에 앉아가지고 ‘무정이 법을 설한다 하니, 진리의 법을 설한다’ 하니 처음 듣는 소리거든. 일생을 백가서적을 다 열람을 했지만 오늘 처음 듣는 소리라.
돌멩이도 진리의 법문을 설하고, 집도 설하고, 나무도 설하고, 산도 설하고, 모든 형상있는, 정이 없는 것은 다 법을 설한다 하니 이게 처음 듣는 소리가 돼가지고 그 말에 깜깜 절벽이 됐습니다.
얼마나 분심이 났던지, 천하를 주름잡는 선비가 선사의 한마디에 송장이 돼버렸거든.
그래가지고 집으로 몇 십리를 돌아오는 말 등을 타고 오는데 생각생각에 그 의심덩어리에 사무쳤습니다.
‘정이 없는 것이 진리의 법문을 설한다.’ 이것은 천고에 없는 소리거든.
그래서 말은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오고, 말 등에 앉아서 그 의심삼매에 들어가지고, 사람의 털구멍이 팔만사천 모공입니다. 사람 사람의 몸뚱이 털구멍이.
팔만사천 모공에 의심덩어리 뿐입니다. ‘어째서 무정이 진리의 법을 설하느냐?’ “듣느냐?” 하는 여기에 바보가 됐거든요. 이것은 선사의 위력입니다.
그래서 몇 십리를 말 등에서 생각생각에 ‘무정이 법문을 설한다’는 그 의심삼매에 들어가지고 몇 십리를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큰 산모퉁이를 돌아오는데 그 높은 폭포에서 집동 같은 물이 쏟아지는 그 물소리에 무정설법의 뜻이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참선하는 분들은 이렇게 팔만사천 사람의 모공 가운데 의심덩어리가 내 솟아 나와야 견성을 할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조그마한 분별이나 모든 이생각 저생각이 있으면 일념이 지속이 안 됩니다. 그래서 세월만 흐른다는 겁니다.
팔만사천 모공에 구멍구멍마다 의심덩어리가 되고 전신이 의심덩어리가 돼가지고 앉아있어도 밤이 지나가는지 낮이 지나가는지 모르고 며칠이 지나가는지 몇 달이 지나가는지 모르는 이러한 계제가 와야 화두가 타파가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당당한 위세로서 천하를 주름잡는 그 소동파인데, 선사의 한마디에 일생 살림살이, 선비의 식견이 다 녹아 없어져버리고 혼비백산이 돼가지고 말등 위에서 의심삼매에 들었거든요.
산도 법문을 설하고, 돌멩이도 법문을 설하고, 집도 법문을 설하고, 땅도 설하고, 나무도 법문을 설한다 하니 어째서 나는 그걸 이때까지 몰랐느냐?
그래가지고 그 폭포 내리는 물소리에 화두가 타파가 돼가지고 깨달은 경지를 글을 짓기를,

 

瀑布流水廣長舌(폭포유수광장설)이요
폭포에서 떨어지는 집동 같은 물소리는 부처님의 49년 광장의 법문이요,

 

靑山豈非淸淨身(청산기비청정신)가
푸른 산이 어찌 깨끗한 부처님의 몸이 아닐 수가 있느냐

 

夜來八萬四千偈(야래팔만사천게)를
밤이 옴에 팔만사천 부처님 49년 법문이

 

他日如何擧似人(타일여하거사인)고
다른 날에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들어 보일까보냐

 

이렇게 무정설법을 깨달아가지고 깨달은 견처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러니 천사람 만사람 이 바른 참선은 무진 보배, 산더미 같은 보배를 가져와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할 것 같으면, 이것만 한 번 밝혀놓으면 억만년이 다하도록 그 밝은 진리의 낙을 수용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도, “항하사 모래 수는...”
지구상에 제일 큰 강이 항하강(갠지즈강)입니다. 제일 크니까 모래가 많거든. 내가 20년 전에 인도를 한번 가니까, 부처님 4성지를 가는데 있어서, 항하강 다리를 건너는데 그 강의 폭이 어마어마합디다. 거기에 부지기수의 모래가 널려 있거든요. 부처님도 법문을 하실 때 항시 “항하의 모래 숫자와 같은..” 그 법문을 많이, 모래 비유를 많이 들었습니다.
“항하사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써 만인에게 좋은 일을 하고, 몸뚱이 전체를 보시하기를 백천만억 겁을 행하더라 해도...”
한 겁은 어찌되냐 할 것 같으면,
바위가 두루 40리인데, 백년 만에 선녀가 하늘에서 비단옷을 입고 한 바퀴 뱅 40리를 돕니다. 바위 40리를.
돌면 그 치맛자락에 40리 바위가 닳아 다 없어져야 1겁입니다.
비단옷을 입고 한 바퀴 도는데, 얼마나 돌아야 그 40리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겠습니까? 그러니, 백천만억 겁이라 했거든.
사람의 몸으로 가지가지 선행을 하고 몸뚱이까지 보시하더라 해도 이 고준한 법문을 만 사람에게 보시하고 듣게끔 하는 그 공덕이 (앞의 공덕보다) 지나간다 했습니다.
이 법보시라는 것은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 법입니다. 그러니 나만이 와서 법문을 듣는 게 아니라, 이웃 친구들과 와서 법문을 듣게 하는 그 공덕은 한량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소동파와 같이 그 신심을 내어가지고 기상이 천하를 덮었는데 선사의 한마디에 얼음 녹고 눈 녹듯이 다 없어지고 바보천치가 돼가지고 화두와 씨름하다가 말 등을 타고 오는데 일념삼매가 돼가지고 폭포 쏟아지는 물소리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것은 그이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마음에 우러나오는 뼈골에 사무치는 팔만사천 모공에서 우러나오는 의심을 지으면 다 깨달음이 옵니다.

마음의 고향에 모든 진리가 다 갖춰져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의 고향에는 참선을 해서 바른 지혜의 눈이 열린 자만이 이르러서 무진 복과 무진 지혜를 누릴 수가 있는 것이지, 거기에 이르지 못하면 불가능합니다.

 

주 선사가 항시 십여 명 이하의 스님네를 지도를 하고 있었는데, 유명한 선사지만 성질이 괴팍해서 많은 대중의 꼴을 못 봤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많은 대중을 지도를 안하고 항시 십여 명 이내로 지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스님이 와서 인사를 하니,
“그대가 어디서 왔는고?” 하니
“오대산을 참배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러거든.
오대산을 몰라서 오대산을 찾아가는데 오대산 산입구 도로변에 어느 노파가 오두막을 하나 지어놓고 만 사람이, 신도나 스님네가 오대산 길을 물으면 인도하는 그러한 노보살이 하나 있었어요.
그러니 그 깊은 오대산을 찾아가는데 그 입구에 안 묻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 산중 길을.
그래서 스님이고 신도고, 으레 기도하러 가는 스님네, 오대산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서 신심을 내어 가는 이는 으레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다 묻게 되어 있습니다. 심산심곡을 찾아가니까.
“오대산을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그 노변에 그 노보살이 길가에 안내를 하고 있는데 물으니, 천사람 만사람에게
“바로 쭉 가시면 됩니다.” 그러시거든.
세걸음 네걸음 걸어가면,
“저 스님이 잘 걸어가는구나.” 이렇게 희롱을 하거든.
모든 스님뿐만 아니라 길을 묻는 자에게는 다 그랬습니다.
“그런 보살이 있더라.” 하고 객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이야기를 하니까,
그 말을 듣고 조주 선사가
“내가 가서 그 보살을 혼을 내주고 와야 되겠다.”
조주원에서 오대산 가는 입구는 몇 백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나도 조주 선사 회상도 가보고, 오대산도 가 보고 했는데, 몇 백리의 거리를 뒀습니다.
만 사람에게 법문을 하나 남기기 위해서 걸어서 걸어서 오대산 입구에 가서는 들어가니까 노보살이 길가 오두막에서 앉아 있거든.
“오대산을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하니까,
“바로 쭉 가시면 됩니다.” 그러거든.
조주 도인은 몇 번을 다 갖다 왔지요. 참배하러.
말없이 몇 걸음 걸어가니
“저 스님이 잘 걸어가는구나.” 또 그러시거든.
그러니 조주 선사는 아무 말 없이 몇 걸음 걸어가다가 도로 절로 돌아와서 대중에게,
“내가 그 보살을 혼을 내었다.” 그러시거든.

 

이러한 훌륭한 법문 한마디를 남기기 위해서 몇 백리를 걸어갔습니다. 나이 많은 노승이. 이 법문이라는 것은 그렇게 귀한 것이고, 이러한 만 사람을 진리의 눈을 열기 위해서 몇 백리를 다녀왔거든요.

 

어느 곳이 똑같이 만 사람과 더불어 “오대산을 가려면 어디로 가느냐?” 똑같이 물어서 갔다 왔는데, “내가 혼을 내놓고 왔다.” 하거든.
이러한 용심을 바로 보는 눈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부처님 진리를 논할 자격이 있습니다.

 

승이 정미년 해제일에, 정미년이면 지금 마흔 다섯이니까, 여름 해제일에, 7월 보름 해제일에, 월내 묘관음사에서 화두를 타파해가지고 한가히 지내는데, 해제날 향곡 조실스님께서 법상에 오르셔가지고 해제법문을 하려는 차제에,
나가서 예삼배를 올리고는,
“선사님에게 한 가지 묻고자 합니다.” 그랬거든.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들이 알지 못한 심오한 진리의 한마디를 일러주십시오.” 하니
“구구는 팔십일이니라.” 한단 말이야.
“구구는 팔십일은 모든 성인들이 다 아신 진리입니다.” 하니
“육육은 삽십육이니라.” 하거든.
육육은 삼십육이라 하는데 있어서는 가타부타 안 하고 절을 하고 법당을 나가니, 즉시 향곡 선사께서 “오늘 법문은 다 해 마쳤다.”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게 인자 묻고 답하는 것에 심오한 진리가 다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인이 알지 못한 심오한 진리의 한마디를 일러달라는데 왜 구구는 팔십일이라 하느냐?
국민학생들도 구구는 팔십일 다 할 줄 알지요.
“그 말씀은, 답은 모든 성인과 도인이 다 아신 진리입니다” 하니까, “육육은 삼십육이라” 하는 데는 가타부타 안 하고 나간 그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나가니, 향곡 선사가 “오늘 법문은 다 해 마쳤다.”
부자지간에 주고받는 이 대문을 알아야 이 문중의 값어치를 압니다.
이걸 모르면 값어치를 모릅니다.

 

뒷날 또 장삼을 입고 조실방을 찾아가서 선사님에게 묻기를,
“부처의 눈과 지혜의 눈은 묻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의 눈입니까?” 견성대오를 하셔가지고 부처도 30방을 때리고 도인도 30방을 때리는 무서운 진리의 눈을 갖춘 납승의 눈입니까? 하니
“師姑元來女人做(사고원래여인주)니라.”
나이 많은 비구니 중노릇은 원래로 여자가 비구니 되나니라. 하시거든.
남자는 비구고 여자는 비구니입니다.
비구니 중노릇은 원래로 여자가 하느니라. 그러시거든.
“금일에야 선사를 바로 친견했습니다.”
한집에서 8~9년을 같이 기거를 하셨거든요. 금일에야 선사님 살림살이를 바로 봤습니다. 하니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봤는고?” 그러시거든.
7~8년을 한집에서 기거를 하거든요.
어느 곳에서 그대가 나를 봤는고 하는데
“시자야, 빗장을 잠가라.” 했거든.
그러니 “옳고, 옳다.” 하시면서 인증의 전법게를, 법을 전하는 인증서를 내렸습니다.

 

佛祖大活句(불조대활구)는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
전할 수도 없고 또한 받을 수도 없나니
이제 그대에게 산 진리를 전하노니
(부처님과 조사의 깊은 살림살이 그 진리를 전하노니)
만인 앞에 진리의 전을 펴거나 거두거나 그대에게 맡긴다.

 

이게 인자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오늘날까지 가풍입니다.
도를 깨달아야 이 인증서를 주지, 이 인증서를 가진 이가 이 문중 뿐이지, 다른 문중에는 드물 겁니다 아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 엿 쥐어주듯이, 운다고 떡 한 줌 주는 게 아니거든요. 이것은 마음에 흡족하게 들어서 하자가 없어서 마음에 흡족하게 들어야 제자로 봉하고 그러는데, 부처님의 살림살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때문에 만 사람의 눈을 멀게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이 독특한 이 법을 9월 15일 미국에 가서 펴려고 리버사이드 큰 교회에서 2~3천명 들어가는 교회에서 법을 펴고 법문이 끝나면 영어로 번역한 법어집을 보시를 하려고 3천 권을 인쇄를 하고 있습니다. 3천 권뿐만 아니라 미국에 2천 군데 대학, 유럽 5개국 대학에 도서관에다 기증을 해서 선불교를 온 세계에 일원화 해가지고 모든 분들이 생활선을 닦고 닦아서 세상에 안정과 평화를 누리기 위한 그러한 선풍을 진작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우리 대중, 참나를 찾는 이 수양법에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잘 들으셨지요?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하좌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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