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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임진년 음력2월 지장재일 법문<육바라밀, 충국사와 시자>
법문장소 해운정사 (법문일자 : 2012.03.10 / 조회 : 5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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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음력 2월 지장재일 법문(녹취원본)
- 2012.03.10. 해운정사 -

 


사람 사람의 면전에 참사람이 있는데, 모든 대중은 참사람을 보느냐?

面門出入見還難〈면문출입견환란〉이라.
사람 사람의 면전에 참사람이 출입하는데 또한 보기가 어렵다.

밝은 정안을 진리의 눈을 갖춘 이는 일용에 항시 촌보도 여의지 아니하고 수용을 하지마는, 이 참나를 모르면 천리 만리를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항시 면문에 출입해도 보기가 어려운지라.

無爲眞人咫尺間〈무위진인지척간〉이로다.
차제없는 참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할 것 같으면 지척간에 다 있다.

去路一身輕似葉〈거로일신경사엽〉이요,
길을 가는데 있어서 가벼워가지고 나무 잎사귀와 같이 가볍다. 천리 만리를 가버리구마는.

高名千古重如山〈고명천고중위산〉이라.
그 이름은 높고 높아서 그 무겁기가 천년 만년토록 산과 같다.

그렇게 참사람은 그렇습니다.
그 모양 없는 참사람 가운데는 일체 진리가 다 갖추어져 있다. 깨달으면 모든 우주의 진리가 다 갖추어져 있다. 그럼 우주의 진리가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는 만인에게 진리의 사는 법을 주기도 하고 죽이는 법을 주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고 놓기도 하고, 이렇게 자재하게 법왕이 되어가지고 임의자재하게 씁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대중! 이러한 좋은 법을 어째 듣고 넘길 일이 아니다. 사람 사람이 모양 없는 참 사람을 다 갖추어 있건마는 그걸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쓰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모든 대중, 삼생의 업, 과거 현재 미래에 지은 업은 태산과 같습니다. 그 업이 송두리째 녹아 없어져야 모든 고통이 없습니다. 그러니 ‘금생에 이 법을 만난 김에 참사람을 알고 이 몸뚱이를 바꿔야 되겠다’ 작심을 먹고 일상생활 하는 그 가운데 오매불망 간절히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24시간 365일 씨름하는 겁니다. 의심하고 “어떤 것이 참나던고?” 그러면 미워하고, 고와하고, 시기, 질투...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가 다 자버립니다. 이러한 좋은 수행이 부처님법에 있지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서구에는 지식인들이 모든 종교를 믿지만 다 참선을 합니다. 그러니 이 참선의 매력이라는 것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금생에 이 고준한 법문을 듣고 시비장단에 허송세월만 하지 마시고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어떤 것이 참나던고?” “어떤 것이 참던고?” 천번 만번 의심하는 여기에 모든 잡념이 틈이 없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잘 해서 하다 보면 일념이 시동이 걸리면 항시 흐르는 물과 같이 한 생각이 흘러가서 밤이 지나가는지 낮이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무르익는 상태가 오면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고 억만년 전 자기의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도인으로 더불어 같이 생활하고 같이 진리의 낙을 누립니다. 그러니 인생은 오늘 있다가 내일 갑니다. 내 오늘 미루고 내일 미루고 한 달 미루고 한 철 미루고 일 년 미루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염라대왕에게 잡혀가서 곤욕을 치러야 됩니다. 왜 곤욕을 치러야 되느냐? 과거 현재에 지은 죄업이 산과 같거든. 그러니 그 고통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일을 밝히는 이 일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할 일이다. 인간으로서. 그러니 이 참선수행을 꾸준히 잘 하면 아들 딸이 어머니 아버지를 잘 봉양 안 해도 참선삼매에 들면 항시 마음이 편안합니다. 원망이 없습니다. 모든 마음의 갈등이 다 없어집니다. 편안한 나날이 흘러가는 고로 여생이 즐겁고 인연이 다 되면 이집에서 저집 이사 가는 것처럼 몸을 바꾸고 얼마나 쾌활자재합니까! 이러한 수행법이 부처님 법에 뿐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잘 법문을 듣고 한화잡답 원망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고,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어떤 것이 참나던고?” “어떤 것이 참나던고?” “어떤 것이 참나던고?” 오매불망 이렇게 의심이 지속하다보면 한 생각이 시동이 걸려가지고 밤낮으로 흘러갑니다. 이렇게 수행을 분명히 가르쳐줘도 바로 하는 이가 드물어요. 그러니 우리가 잘 법문 듣고 한 번 실행에 옮겨봅시다.

그러면 일등 보살행은 여섯 가지 덕목을 잘 행하는 데 있습니다. 여섯 가지 덕목. 여섯 가지 덕목은 뭣이냐 할 것 같으면,
첫 번째가 보시입니다. 모든 사람이나 축생이나 모든 이에게 항시 베푸는 일입니다. 베풀지 아니하면 복은 오지를 않습니다. 베푸는 이것은 복전(福田)입니다. 복의 밭이 되는 법입니다. 하늘에서 복은 떨어지는 게 아니다 그 말이여. 스스로 행하는 여기에서 결과가 스스로 오는 법입니다. 그러니 불우한 이웃, 가지가지 좋은 일에 인색하면 안 된다.
두 번째는 부처님 가르침을 아주- 공부하는 법, 계율가지는 법, 법문 듣고 항시 실행을 해야 됩니다. 법문 듣고 내 귀로 흘려버리면 안 된다. 일거수일투족에 실행하는 여기에 덕을 쌓는 법입니다. 그러면 고통이 없어지고 그럽니다.
세 번째는 참는 것입니다. 인욕, 인욕을 잘 함으로 인해서 가정이 편안하고 친구지간에 우애도 돕고 덕망을 받고 그럽니다. 이 인욕을, 조그마한 일도 성을 내고 다투고 주먹이 날아가고 중상모략을 하고 욕설을 하고 이러면 덕이 상실되어 좋아하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형제간 부자지간도 다 싫어합니다. 항시 참는 것을 익혀야 된다. 그러면 덕을 쌓아서 다 좋아한다.
네 번째는 정진. 이 참선을 잘 해서 마음의 갈등을 싹 없어지고 밝은 지혜를 닦아 증득하는 이 일이야말로 천고 귀한 것이고 행복을 갖다 주고 출세를 갖다 주고 부처님 되고 도를 성취하는 법입니다.
선정은, 정진을 잘 하면 선정을 이룹니다. 고요한 진리의 낙에 머물게 됩니다. 이 선정이 이루어져야 도가 열리지 선정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앉아있어도 온갖 번뇌 망상과 습기에 놀아나고 꿈 가운데도 딴 짓만 하면 안 됩니다. 항시  한결같이 화두와 씨름을 해서 모든 마음 가운데 팔만사천 분별이 다 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선정입니다. 선정이 그렇게 모든 번뇌갈등이 다 재가 되고 해서 세월이 흐른 줄도 모르고 딱 화두삼매에 있을 것 같으면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밝은 지혜의 눈이 열려서 모든 부처님의 살림살이, 도인의 살림살이를 한 꼬챙이에 다 꿰어버립니다. 그러면 너도 장부요, 나도 부처가 되는 법입니다. 이러한 좋은 수행법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그래 법문을 듣고 실행하는, 실제 행하는 자만이 가장 존귀한 미래의 스승이 되는 법입니다.

옛날 남양 충 국사(國師)라고 유명한 도인인데, 삼대(三代)로 국사를 지냈습니다. 아주 복과 지혜가 뛰어나가지고 삼대의 천자의 국사를 지냈다. 그래서 40년을 산사에서 내려오지 아니하고 40년을 도를 닦는데 몰두를 했는데, 그 명성이 자자하니 나라에서 모셔다가 국사로 모셨어요. 모셔서 잘 선정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시자의 진리의 눈을 열기 위해서,
“시자야, 아무것아!” 불렀습니다.
“예.” 부르니까 대답을 하지요.
“아무것아!” 하니까,
“예.”
“아무것아!”
“예.”
세 번을 분명히 불렀는데 세 번 다 답을 했거든요. 여기에 부르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세 번을 시자를 부르니 시자가 세 번을 답을 했는데, 남양 충 국사가 하는 말이
“장차 내가 너를 저버리는가 했더니, 문득 그대가 나를 저버리는구나!”
나의 부르는 참뜻을 모른다. 모르고 대답을 한다 그 말이여.
대중은 국사와 시자의 부르고 대답하는 것을 아시겠느냐? 그 말이여.
국사가 세 번을 시자를 부르는 것은,
작대기를 가지고 풀을 치는 것은 뱀을 놀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산에 풀밭에 가면 뱀이 있는가 싶어 풀을 내 치면서 걸어갑니다. 풀속을. 풀을 치는 것은 뱀을 놀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누가 푸른 땅 푸른 소나무 아래 천년의 복령이 있음을 누가 아리오.
심산에 가면 복령이라는 약초가 있습니다. 땅밑에서. 그걸 한약재 아주 일품으로 쓰는 건데. 복령이 솔밭 밑에, 큰솔 밑에 습기가 있는데, 천년의 복령이 있는 것을 누가 아리오.

부르는 가운데, “시자야!” 하는 가운덴 뜻이 있어서 부르는 거다 그 말이여.

국사는 말이 있으되 헛된 말을 아니 하거늘, 까닭이 있어 항시 한마디 한마디 던지거늘,
시자를 세 번을 부르는 데 소식이 없다.

위대한 국사가 시자를 부르는 그 진미를 알지 못한다. 시자는. 그 말이여. 시자는 소식이 없다. 그러면

平生心膽向人傾〈평생심담향인경〉이어니,
국사는 평생심담을 기울여서, 평생을 마음과 오장육부를 기울여서 만 사람을 행함이어니, 만 사람을 위해서 그 고준한 법문을 항시 한단 말이여.

相識不如不相識〈상식불여불상식>이라.
서로 아는 것이, 얼굴을 보고 아는 것이 이 아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알지 못함이로다. 서로 아는 것이 서로 알지 못하는 것과 같지 못하다.

그러니까 국사가 부르는 진(眞)소식을 알아야 된다 그 말이여. 그러니 우리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일념이 지속되는 과정만 오면 천사람 만사람이 대장부의 활개를 칩니다. 이것이 견성하는 과정이고 이 눈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가 참선을 하고 모든 부처님이 이 고준한 도를 통하는 이러한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우리 부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러한 법문을 듣고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화두를 들고 씨름을 하면 이집에서 저집 이사가는 것과 같이 몸을 바꾸게 되는 법입니다. 잘 받아가지시기 바랍니다. (...중략...)
오늘 법문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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