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흥망성쇠는 늘 반복되는 것'
대구 동화사 조실 진제스님 인터뷰
중국 당나라 시대 북방에서 수행하던 덕산 스님은 남방의 선지식을 친견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몇 달을 걷고 걸어서 남방에 이른 스님은 허기를 면하기 위해 호떡을 구워 팔고 있던 한 노파에게 다가간다.
그러자 그 노파는 대뜸 "금강경에는 `과거심(過去心)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現在心)도 얻을 수 없고, 미래심(未來心)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다 점을 찍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금강경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던 덕산 스님은 노파의 질문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9일 동안거 해제일을 맞아 조계종 제9교구 본산인 대구 동화사에서 만난 진제 스님(75)은 덕산 스님의 일화를 전하면서 연방 크게 웃는다.
스님은 지난 3개월 동안의 동안거 정진이 끝났음을 법문을 통해 알리면서도 또 다른 화두를 사부대중에게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기자가 "기왕 마음에 점을 찍을 것이라면 과거보다는 미래가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스님은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연결돼 있는데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습니까. 이 질문은 노파가 덕산 스님으로 하여금 더 큰 도를 깨닫게 하기 위해 던진 화두일 뿐입니다"라면서 "모든 것은 지혜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고정된 실체에 연연하지 말고 항상 마음을 닦아 일상생활 속에서 `참나`를 찾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안거는 여름과 겨울철에 3개월 동안 스님들이 외부 출입을 끊고 한곳에 모여 참선에 전념하는 것을 뜻한다. 부처님도 약 4개월간 이어지는 인도의 우기 때 동굴 등지에서 이처럼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안거는 수행을 위한 `아름다운 구속`인 셈이다.
조계종 `무자년 동안거 선사방함록`에 따르면 이번 동안거에는 전국 97개 선원에서 모두 2295명의 스님이 3개월 동안 용맹정진했다.
진제 스님은 안거가 해제됐지만 여기에 괘념치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모든 대중은 해제에 관여치 말고 일념삼매(一念三昧)가 되도록 혼신의 정력을 쏟아야 한다"며 "일반 대중도 생활 속에서 어느 정도의 구속이 필요하다. 부자가 되는 지혜도 마음을 닦고 노력하는 가운데 찰나의 순간에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스님은 이어 "어리석은 사람은 많은 재산을 물려받거나 높은 자리에 올라도 이것들을 지키지 못한다"면서 "참나를 보는 진리의 눈이 열리면 그 지혜는 천번 만번 세상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다. 참나에 이르러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동화사는 1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여섯 점의 보물을 품고 있는 지방 최대 사찰 중 하나다.
특히 진제 스님은 한국 불교계에서 `남 진제 북 송담`으로 불릴 정도로 남쪽 제1의 선풍을 자랑한다. 1954년 해인사로 출가해 석우 스님을 은사로 삼았고, 1967년 향곡 스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았다. 경허ㆍ혜월ㆍ운봉ㆍ향곡 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한 이후 40년 넘게 `참된 제자`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 =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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